우리 목욕탕 건물 외벽에는 '다 때가 있다.'라고 커다랗게 쓰인 간판이 붙어 있다. 그 앞을 지나다 간판을 발견한 사람들은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조금 뒤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 더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몇몇은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덩달아 활짝 웃는다. 남편과 10년째 목욕탕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정기 휴일인 화요일과 여름휴가를 빼고는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문을 늦게 연 적도 없다. 태풍이 한반도를 관통해 비바람이 심하게 치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학교도 휴교했고, 비행기도 배도 다 묶였는데 손님이 오겠냐며 상황을 보고 문을 열자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손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어김없이 4시 30분에 일어나 탕에 물을 받고 불을 밝혔다. "요즘에도 목욕탕 가서 씻는 사람이 있어요?" "대형 사우나도 아니고 동네 목욕탕인데 장사 돼요?" "한물간 업종 아니에요?" 목욕탕을 한다고 하면 종종 듣는 말이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동네 목욕탕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다른 곳에서는 맡을 수 없는 사람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다. 목욕탕에 올 때 말끔히 차려입고 오는 사람은 없다. 질끈 묶거나 헝클어진 머리에 맨얼굴, 편한 옷에 슬리퍼 차림이 기본이다. 목욕탕은 꾸미지 않고도 올 수 있는 곳이다. 매표소에 앉아 있으면 손님들이 창문으로 찐 고구마며 삶은 계란, 음료수를 불쑥 내민다. 물론 거친 말투로 "수건에서 냄새난다." "물이 차갑다." "사우나 온도 더 올려라."라며 속을 헤집는 손님도 더러 있다. 그래도 목욕탕을 찾는 모든 이는 깨끗이 하고자 하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몸을 깨끗이 하는 건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다. 더구나 내 몸을 드러내고 많은 사람과 함께 씻는 데에는 더 큰 긍정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게 나의 철학이다. 목욕탕은 이토록 긍정이 넘치는 따뜻한 곳이다. 우리 목욕탕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있다. 목욕탕 근처 팔팔 문방구 할머니는 몇 해 전, 마당에서 꺾었다며 빨간 동백꽃이 달린 가지를 내밀었다. 겨울의 끝에서 봄을 기다리던 차에 동백꽃이 얼마나 반갑던지. 나는 좋아라하며 목욕탕 카운터에 물꽂이를 해 뒀다. 그 모습이 좋아 보였는지 할머니는 그 뒤로도 매년 동백꽃 가지를 건네며 곧 봄이 올 거라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목욕탕 앞 원룸에서 혼자 지내는 법무사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목욕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이, 이사장! 이번 선거에 누가 될 것 같소?" "핸드폰으로 사진 보내려면 어떻게 하오?" "반찬 잘하는 아주머니 소개 좀 해 주소." 할아버지는 목욕탕에 오면 항상 남편을 붙잡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현관문이 안 열린다거나 택시를 불러 달라는 등 어눌한 모습을 보이더니, 구급차가 와서 할아버지를 태우고 갔다. 며칠 만에 목욕탕에 온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구급차가 오고 가기를 몇 차례 반복하더니 할아버지는 목욕탕에 영 오지를 않았다. 주변의 이야기로는 요양원에 갔다고 했다. 속사정을 어찌 알겠냐만 법무사 할아버지는 참 사람이 그리운 어르신이었다. 남편이 제일 신경 쓰는 손님도 있다. 바로 '금요일의 모녀'다. 매주 금요일 오후가 되면 은색 자가용이 목욕탕 문 앞에 선다. 그러면 남편은 얼른 밖으로 나가 "어머님, 어서 오십시오." 하고 직접 할머니를 부축하며 반갑게 맞는다. 구순이 넘은 어머니와 칠순을 바라보는 딸이 금요일의 모녀다. 다정한 어머니와 딸의 모습을 볼 때면 남편은 여섯 살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떠올리며 부러워했다. 금요일의 모녀는 그렇게 3년을 쭉 목욕탕에 왔는데 어쩐 일인지 올해 봄부터 오질 않았다. 한 달이 지나자 남편은 "금요일 어머니 어디 아프신가? 안 오시네." 하며 기다렸고 두 달이 지나자 "이사 가셨나? 안 오시네." 했다.
6개월이 지난 어느 금요일, 따님만 목욕을 왔다. 불안한 마음으로 "어머니는 안 오셨네요?" 하고 조심스레 묻자, 3개월 정도 병원에 있다 편안하게 돌아가셨다며 지난주에 사십구재를 지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생전에 제일 좋아하던 일이 목욕탕에 와서 깨끗하게 씻는 것이었다고, 거북탕 사장님들도 참 좋다고 했다며 말을 전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내 손으로 엄마를 씻겨드리고 보내서 덜 섭섭해요. 항상 반갑게 맞아 주셔서 감사했어요." 금요일의 따님이 울먹이며 말했다. 우리는 "저희도 금요일의 어머님을 참 좋아했어요."라고 답했다. 우리 목욕탕에는 팔팔 문방구 할머니처럼 정이 넘치고 법무사 할아버지처럼 사람을 그리워하는 어르신이 스무 명쯤 더 있다. 자매, 모녀, 부자 등 둘씩 와서 서로의 등을 밀어 주며 정을 나누는 손님도 스무 쌍 더 있다. 물론 투덜이 손님도 그만큼 더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기에 동네 목욕탕이 사라질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우리에게는 다 때가 있다. 때를 씻고 기다리면 언젠가, 때는 올 것이다. 권미희 | 거북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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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봉덕이 님 !
다녀가신 고운 흔적
감사합니다 ~
기온차 큰 변절기
감기 유의하시고
늘 건강하세요
~^^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소중한 하루
축복받은 하루
나누는 감사의 마음으로
평안하고 즐겁게
행복한 하루보내세요
~^^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네요.
(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져갑니다. 고맙습니다! )
반갑습니다
시-몬 님 !
고운 걸음주셔서
감사합니다 ~
새로이 시작하는 한 주
보람과 즐거움으로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