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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우우우” 폭염이 날아든다.
불타는 폭염은 골키퍼의 어깨를 강타하였고, 그는 황급히 어깨를 감싸 쥔다.
성난 관중들은 야유와 함께 폭죽을 던지고 운동장은 화염에 싸이며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마치 전쟁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듯이 그들의 폭격은 계속된다.
하지만 그 한 켠에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치열하게 맞상대를 펼쳤던 두 명의 선수가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
평화롭게 불타는 그라운드를 쳐다보고 있다.
이 사건은 패션의 도시 밀라노를 연기에 가득 차게 하였으며, 전 세계 축구팬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바로 이 경기가 2005년 4월 13일에 펼쳐진 A.C. 밀란과 인테르 밀란의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이었으며
우리는 이들의 경기를 일컬어 밀란 더비라고 한다.
같은 뿌리, 상반된 성향
1899년 12월 이태리의 북부에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 밀라노에는 영국인들에 의해 축구 클럽이 창단된다.
이름하여 밀란 축구와 크리켓 클럽 (Milan Football & Cricket club).
이것이 바로 A.C.와 인테르 밀란의 모태가 되었다.
초대 구단주인 알프레드 에드워즈를 주축으로 에드워드 베라와 데이비드 알리슨 등
잉글랜드 이민자들의 관리 하에 밀란 클럽은 운영되었다.
그러하기에 밀란 클럽은 필연적으로 잉글랜드 색체가 짙게 베어나올 수 밖에 없었다.
밀란(Milan)이라는 명칭 자체가 밀라노(Milano)의 영어식 표현이다.
그리고 1908년, 밀란 클럽에 변혁의 물결이 밀려온다.
구단주인 에드워즈가 이태리 인과 잉글랜드 출신의 선수만 클럽에 받아들이겠다고 천명한 것.
이는 많은 이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분리주의자들과 스위스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집단이
밀란 축구 & 크리켓 클럽을 뛰쳐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국제적인 밀라노를 천명하면서 인터나치오날레 밀라노(Internazionale Milano)를 창설한다.
이것이 바로 인테르 밀란의 모태가 되었다.
이렇듯 A.C. 밀란과 인테르 밀란은 태생이 한 줄기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상반된 기치를 들고 나온 구단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인테르 밀란은 A.C. 밀란의 반역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충돌은 이후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세계주의와 민족주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대결, 그리고 우파와 좌파의 정치적 격돌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초창기 밀란 축구 & 크리켓 클럽은 구두 수선공, 여행사 직원, 공장 인부 등
노동자 계급으로 구성된 클럽이었다.
그들은 주말이면 축구를 통해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으며, 동시에 축구 선수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러하기에 밀란 클럽의 서포터 층은 노동자 계층이었다.
반면 인터나치오날레 밀라노는 국제주의를 표방한 만큼 자본의 투입에도 적극적이었으며,
이는 곧 부르주아 계층의 클럽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하였다.
하지만 밀란 축구 클럽(밀란 축구 & 크리켓 클럽은 1919년 밀란 축구 클럽으로 개명하게 된다)과
인터나치오날레 밀라노는 1938년대 대변혁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이태리에 들어선 것.
이로 인해 양 구단은 강제적으로 클럽의 명칭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밀란 축구 클럽은 이태리어로 명칭을 바꿀 것을 지시 받았으며,
이로 인해 A.C. 밀라노(Associazione Calcio Milano)로 개명하였다.
반면 인터나치오날레 밀라노의 경우 “국제적인”이라는 의미가 파시즘과 전면적으로 대치된다는
파시즘 정부의 항의로 인해 암브로시아나(Ambrosiana)로 명칭을 변경하게 된다.
하지만 1943년 무솔리니가 실각하자 A.C. 밀라노는 현재의 명칭인 A.C. 밀란으로,
그리고 암브로시아나 역시 현재의 명칭인
인터나치오날레 밀란 (줄여서 인테르 밀란)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개의 상반된 이데올로기가 세계를 지배하였으며,
당연히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던 A.C. 밀란은 좌파를,
그리고 자본가들의 지원을 받던 인테르 밀란은 우파를 상징하는 클럽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는 바로 이태리가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는 다르게 공산당
(물론 동유럽식 공산주의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긴 하다)이
제2의 정당으로서 존재하였던 사실에 기인한다.
그리고 이러한 양 클럽의 정치적 성향은 1985년까지 지속된다.
하지만 1986년 2월 A.C. 밀란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바로 미디어 재벌인 베를루스코니가 A.C. 밀란을 사들인 것.
그리고 그는 “가자 밀란! 전진하라 이탈리아! (Forza Milan! Forza Italia!)”
라는 구호 아래 A.C. 밀란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A.C. 밀란을 구매한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이 소유한 방송국과 출판 잡지 등
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하였으며,
오렌지 삼총사(반 바스텐, 루드 굴리트, 레이카르트)를 영입하면서 전력을 강화하였다.
이로 인해 A.C. 밀란은 전성기를 보내게 되고,
그 시기의 A.C. 밀란은 밀란 제너레이션이라는 명칭과 함께 전성기를 달리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노력은 1994년 총리직 당선으로 결실을 보게 된다.
하지만 A.C. 밀란의 변화에 대해 젊은 층은 반발하기에 이른다.
이는 일종의 배신행위와 마찬가지였으며, 베를루스코니의 집권은 이태리의 많은 공산주의자들을 실망시킨다.
이로 인해 많은 젊은 층과 좌파들은 인테르 밀란으로 넘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베를루스코니의 총리직 당선 이후 급속화 되었다.
필자가 독일에 살던 시절 밀라노 출신의 이태리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인테르 밀란의 팬이었으며, 베를루스코니의 부당함을 피력함과 동시에
A.C. 밀란은 정치적인 선전 도구에 불과함을 강조하였다.
이것을 유일한 진리라고 받아들이기는 무리가 있지만,
베를루스코니 집권 이후의 A.C. 밀란은 이태리의 진보주의자들로부터
일종의 배신자와도 같은 이미지로 심어져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평화적인 밀란 더비
밀란 더비는 피파 매거진 (주: 피파 매거진은 FIFA에서 출간하는 잡지이다)에서 선정한
세계 10대 더비에 손꼽히는 유명한 더비다.
정식 명칭은 더비 델라 마돈니나(Derby Della Madonnina).
하지만 다른 유명한 더비 매치들과는 다르게 밀란 더비는 상당히 평화적인 더비로 유명하다.
이는 그들이 “하나의 뿌리이지만 서로 대립할 수 밖에 없는 형제들”이라는 명제가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양 구단 서포터들은 물리적인 충돌을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왜 작년 4월 13일, 그것도 전세계인들이 지켜보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폭염을 던지는 사태가 발생한 것일까?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설들이 팽배하지만,
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이유는 바로 인테르 서포터들이 구단주인 모라티에게 항의하기 위해
그러한 행위를 하였다는 것이다.
1995년 모라티가 구단주로 부임한 이후 인테르 밀란은 무수한 돈을 영입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97/98 시즌 UEFA컵 우승 외에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 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불만을 가진 인테르 팬들이 모라티 구단주에게
경제적, 그리고 대외 이미지적인 손해를 입히기 위해서 그러한 행위를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게다가 최근 인테르 밀란에 확산되고 있는 울트라(Ultras) 조직 역시 하나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울트라란 1960년대 이태리에서 파생된 과격 축구 서포터 집단을 의미한다.
폭력적이라는 측면에서는 훌리건과 비슷하지만, 정치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는 훌리건과 차이가 있다.
이들 울트라 집단들은 좌파와 우파로 갈려져서 격렬하게 싸운다.
이는 로마 더비를 통해 극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인테르에 바로 그러한 울트라 집단이 확산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울트라 집단은 Boys S.A.N과 Vikings.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이 울트라 집단들이 적어도 밀란 더비에서
A.C. 밀란의 서포터들과 물리적인 충돌을 가진 예는 없다.
물리적인 충돌 대신 그들은 카드 섹션 등을 통해 서로를 조롱한다.
인테르 밀란의 상징은 뱀이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엠블렘은 뱀을 상징하고 있다.
반면 A.C. 밀란의 상징은 빨간 십자가이다. 이 역시 A.C. 밀란의 엠블렘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인테르 밀란의 서포터들은 바로 뱀이 십자가를 잡아먹는 듯한 형상의 카드섹션을 자주 선보인다.
반면 A.C. 밀란의 경우 뭉크의 절규를 카드 섹션으로 넣으면서
“너네 인테르 팬들은 미쳐간다”라는 문구를 집어넣기도 한다.
밀란 더비의 또 다른 특징은 이들이 한 구장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 시로, 또는 쥐세페 메아짜로 불리는 이 구장은 처음 지어졌을 당시
지역 명칭을 따서 산 시로(San Siro)라는 명칭으로 불리웠다.
하지만 1980년, 인테르 밀란과 A.C. 밀란이 배출한
이태리의 전설적인 축구 스타 쥐세페 메아짜(Giuseppe Meazza)의 서거 1주년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경기장에 새김과 동시에 산 시로로 헌액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A.C. 밀란의 홈경기일 경우엔 산 시로로
그리고 인테르의 홈경기일 경우엔 쥐세페 메아짜로 통칭한다.
이유는 산 시로는 원래 A.C. 밀란이 소유하던 구장이며
(인테르 밀란은 1947년 산 시로에 입성한다. 그 이전까지 산 시로는 A.C. 밀란만의 구장이었다),
쥐세페 메아짜는 A.C. 밀란에서도 뛰었지만 전성기의 대부분을 인테르에서 보냈기에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홈구장이 같기에 밀란 더비 때면
인테르 측의 중계진과 A.C. 밀란 측의 중계진이 한 중계석에 나란히 앉는다.
그래서 중계진의 반응을 보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재밋거리이다.
골이 들어갈 때면 한 측은 방방 뛰면서 즐거워하는 한편
또 다른 한 측은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등 극명한 표정 대비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양 밀란은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공통의 적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
그들의 공통의 적은 바로 이태리 최고의 명문 유벤투스이다.
실제 유벤투스와 인테르 밀란의 경기는 이탈리아 더비(Derby d’Italia)로 불린다.
이는 초창기 이태리 리그가 태동하던 시절,
유벤투스와 인테르 밀란이 우승컵을 두고 언제나 격돌하였기에 생긴 명칭이다.
하지만 그 후 상황은 역전되어서 A.C. 밀란이 인테르 밀란보다 더 많은 리그 우승을 자랑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양 밀란 서포터들은 이탈리아 더비 명칭을 두고 언쟁을 벌이기도 한다.
A.C. 밀란 서포터들은 진정한 이탈리아 더비는 A.C. 밀란과 유벤투스의 경기라고 반박하는 한편,
인테르 밀란 서포터들은 당연히 이탈리아 더비는 인테르와 유벤투스의 경기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선수 구성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A.C. 밀란은 이태리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물론 오렌지 삼총사를 비롯하여 여러 유명 외국인 선수들이 A.C. 밀란에서 뛰었고 또 여전히 뛰고 있지만,
리베라, 바레시, 말디니 등 팀의 중심축은 언제나 이태리 선수들로 구성되었었다.
반면 인테르 밀란은 팀의 창단 취지와 걸맞게 과거부터 외국인 선수들을 대거 기용하였다.
그리고 이는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현 1군 스쿼드에서 이태리 선수는 단 3명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 아르헨티나 선수들(8명)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팀의 주장 역시 아르헨티나 선수인 하비에르 자네티이다.
밀란 더비의 역대 전적은 264전 104승 72무 88패로 A.C. 밀란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특히 최근 전적은 10전 7승 1무 2패로 A.C. 밀란의 압승이다.
게다가 인테르 밀란은 02/03 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전과
04/05 시즌 챔피언스 리그 8강전에서 A.C. 밀란과 만나서
두 번 연속으로 탈락하는 불운을 맛보기도 하였다.
이렇듯 최근의 밀란 더비는 경기 결과만을 놓고 보면 일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지난 5시즌 동안 리그에서 펼쳐진 밀란 더비에서 1골차 이상이 났던 경기는
단 한 번에 지나지 않는다.
통산 밀란 더비 최다 출장 선수는 바로 파울로 말디니.
그는 2003년 5월 12일, 45번째 밀란 더비에 출전하면서 종전 기록이었던 베르고미의 44경기를 깬 말디니는
현재 밀란 더비에만 총 51경기에 출전하였으며 이 기록은 현재 진행형이다.
참고로 말디니의 50번째 밀란 더비 경기는 바로 서문에서 밝혔던 문제의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 경기였다.
어쩌면 인테르 밀란 팬들은 말디니의 50번째 밀란 더비를 축하하기 위해 폭죽을 던진 것은 아닐까?
라는 식의 상념에 빠져본다.
결론
이렇듯 밀란 더비는 비록 격렬한 싸움은 없지만, 극명하게 대치되는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존중을 잊지는 않고 있으며,
이는 어쩌면 성숙한 라이벌 전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밀란 더비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더비 매치 중에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한 원인이 아닐까?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더비, 하지만 그 속에 잠재된 뜨거운 열기, 그 곳으로 당신들을 초대합니다.
(이번 돌아오는 일요일에 밀란 더비가 열린다)
<박스기사>
엠블렘을 보면 클럽을 이해할 수 있다.
인테르의 엠블렘인 뱀과 A.C. 밀란의 엠블렘인 십자가는 모두 밀라노의 역사와 연관이 있다.
일단 십자가는 밀라노 기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는 십자군 전쟁 당시 예루살렘 성벽에 올라가서 처음 십자가를 꽂은 사람이 바로 밀라노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뱀은 13세기 중엽부터 15세기 중엽까지 밀라노를 지배했던 비스콘티 가문의 상징이다.
이는 비스콘티가의 초대 선조가 용에게 잡아 먹힐 뻔했던 소년을 구해주었다는 전설에서 기인한다.
실제 비스콘티가는 십자군 전쟁 당시 방패에 뱀을 문양으로 그려 넣었다고 한다.
그러하기에 인테르의 애칭은 Il Biscione (큰 뱀)이다.
그 외 인테르의 엠블렘은 검정과 파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A.C. 밀란의 엠블렘은 빨강과 검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이들의 유니폼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러하기에 인테르의 가장 유명한 애칭은 바로 네라쭈리(Nerazzurri: 검정파랑)이고
A.C. 밀란의 애칭은 롯쏘네리(Rossoneri)이다.
출처-SAA
첫댓글 좋은글이네요 감사
마테라찌 루이코스타 멋있다 ㅋㅋㅋㅋ
저해 당시에 세계스포츠 10대사진중 하나로 뽑혓죠.
돌아오는 일요일.. 몇시경기인가요?
Rossoneri
둘이 언제 하죠?
인테르 파이팅 ㅋㅋ
밀란이 더 많이 이겼죠..?
네 5년간 최근전적이 6승3무1패인가로 밀란이 더많은거로
역대 전적은 264전 104승 72무 88패로 A.C. 밀란이 우위, 특히 최근 전적은 10전 7승 1무 2패로 A.C. 밀란의 압승이라구 나와있네요ㅎ
둘다 밀란인데요;;
ㅡㅡ AC밀란은 밀란이라고 하고 인터밀란은 인테르라고 보통 부릅니다..
새벽3시반인가 그쯤에 중계해준다고 나오던데
이번에는 누가이길까요? 쉐바의 공백이 상당히 아까운 밀란과 의외의 부진... 인테르! 저는 말디니 선수를 좋아하기 때문에~ 밀란이 이겼으면 하네요! 글구 질라르디노! 좀 날아주세요~~~
한준희씨가 해설해주신다고 합니다!!! 사랑해요 준희씨ㅋㅋ
아악~~~~~ 까까~~~ 아~~~~!!!
질라 너만 믿는다 5골,4골은 넘 많고 딱 세골만 넣어줘라
와 그렇군... 정말 기대된다ㅎ 밀란 화이팅!
인테르의 건투를 빌며..
이글멋있네 ㅋ
루이코스타는 못보네
더비더비더비더비더비~
인테르~!!!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해요!!
밀란 화이팅! 오늘 멋지게 다시 일어나는거야!!
좋은정보 ㄳ
FORZA 밀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