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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공동 명의로 이전된 것을 모르는 서린은 여전히 단검을 들고서, 표범처럼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두 남자를 바라봤다.
“이봐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서린은 눈빛을 유지하고서 계단 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위험한 현재의 상황을 자각하고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강혁은 실실 쪼개기 시작했다.
“나, 기억 안 나요? 난, 댁이 기억에 남는데.”
“모르는데요, 댁이라는 사람.”
대답하는 서린의 입가에 맺혀 있던 냉소가 사라졌다. 그것을 본 강혁은 미소를 지우지 않고 계속 말을 잇는다.
“며칠 전 런던발 서울행 비행기 안에서, 9시간 동안 어깨를 빌려준 사람한테 이렇게 막 해도 되요?”
“댁은 경찰한테 막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경찰이 단검을 들고 설치나?”
“총도 갖고 있어요. 왜요, 총 들고 설쳐줄까요?”
무기가 하나만이 아니었던 건가.
서린의 살벌한 어투는 계속됐다. 덕택에 강혁은 미소를 거둔다.
“난 범인 체포를 앞에 둔 상황이 아니면 총을 들지 않아요. 그러니, 가택무단침입죄로 체포 영장 발부하기 전에, 조용히 나가세요.”
“우리 둘 다 가택무단침입죄가 아니니까 너무 그러지 말지.”
“그걸 어떻게 믿어요?”
“어허. 경찰이 사람 말 못 믿어서야 쓰나.”
서린의 눈빛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강력수사계에 1년만 몸 담가보세요. 저처럼 되요.”
“어쨌거나 이거.”
강혁은 서린 앞으로 가서 섰다. 그리고는 위에서 챙겨온 계약서를 내민다.
서린은 단검을 오른손에 둘 다 쥐고서, 왼손으로 계약서를 받았다.
많고 많은 내용은 전부 무시하고, 서린은 계약서의 맨 밑으로 시선을 옮겼다.
“공동명의? 차서린, 윤강혁? 맙소사.”
툭. 충격으로 인해 늘어진 서린의 왼손. 그 끝에 아슬아슬 잡혀 있던 계약서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집 한 채의 명의가 두 명이 될 수 있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분명히 부동산 주인을 구워삶은 게 분명하다. 어떻게 구워삶는 건 알 바 아니고. 아니, 형사 ‘씩’ 이나 되어가지고 생판 모르는 남자와 한 집에서 살아야 하는 건지도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근처에 집이 남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도 그나마 2층 주택이라서 간신히 구한 거며, 바로 근처에 병원과 대형할인마트, 그리고 경찰청 한국본부가 있는 게 가장 이점이다.
무엇보다 부동산에 알아보니 서울은 전 세계적으로도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하다.
그러니 저 남자를 쫓아내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이거 댁 짓이지?”
서린의 눈빛이 다시 표독스럽게 변했다. 더불어 말까지 놓고 있다.
열 받으면 눈 뒤집어지고 물불을 못 가리는 성격의 서린이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 경찰관이 되면서 성격이 점차 나쁜 쪽으로 변해갔다.
“미안, 나쁜 뜻은 없었…….”
퍽! 쿠당~.
강혁은 갑작스레 날아온 서린의 주먹에 뺨을 얻어맞고 문 쪽으로 날아갔다.
얼굴을 얻어맞았다는 충격보다 여자한테 맞고 날아갔다는 충격이 더 한 강혁, 그는 벌떡 일어났다. 이제는 단검이고 뭐고 없이 이판사판이다.
“뭐야, 이 여자!”
“나갈래, 안 나갈래?”
서린은 서슬 퍼런 시선으로 강혁을 보면서 주먹을 풀었다. 양쪽의 기세가 팽팽한 가운데, 언제부터인가 제3자이던 비서가 무릎을 꿇는다. 합작한 손을 싹싹 비비는 것도 잊지 않는다.
“죄송합니다! 저희 사장님께서 너무 어린 나이에 사장직에 오르셨다 보니, 앞뒤 분간을 못 하고 있습니다! 근처에 집은 없고 회사는 가깝고,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했습니다! 2층을 내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조용히 살겠습니다! 폐 끼치지 않겠습니다!”
비서의 무릎 꿇고 손까지 비비는 행동은, 서린의 서슬 퍼런 시선을 조금 가라앉히게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
“방값 내. 2개월 동안 하루에 1000원씩. 물론 각서 써서 저 현관문 앞뒤로 붙이는 것도 잊지 말고. 그럼 언제가 되건, 내가 영국으로 다시 가게 되는 날, 집과 함께 그 돈도 모두 돌려주도록 하지.”
돌려줄 돈을 왜 받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방값은 내가 부동산에 이미…….”
“그렇게 하겠습니다!”
“허이.”
강혁은 미간을 좁히고서 비서를 바라봤다.
하지만 비서와 서린은 협상에 이미 들어간 듯하다.
“수도세와 전기세는 반값씩 충당하는 걸로 하고, 댁은 누구신지?”
“전 윤 사장님 비서 최진우라고 합니다! 제가 사는 집은 따로 있습니다!”
비서의 소개를 받은 서린은 그에게 일어나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악수를 청한다.
비서도 일어나며 악수를 받았다.
“반가워요. 아직 한국에서 제대로 경찰 승인을 받지 못 한, 영국 소속의 형사 차서린이에요. 댁 사장과는 달리, 말이 통하는 사람 같네요.”
“하하하하.”
비서는 특유의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건설업체에 전화해서 2층으로 올라가는 바깥 계단 하나 만드세요.”
“그리 하겠습니다.”
자기 비서와 서린 사이에 얘기가 오가자 강혁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허이!”
“왜요?”
서린은 탐탁찮은 시선으로 강혁을 바라봤다.
말도 안 통하는 이런 남자와는 대화도 섞고 싶지 않다. 라는 표정의, 한 마디로 벌레 보듯 강혁을 보는 서린이다.
물론 그 표정이 못 마땅한 건 강혁도 마찬가지다.
“뭡니까, 그 못마땅한 표정은?”
“난 차라리 댁을 비서 분네 집에 보내고, 비서와 같이 살았으면 하네요.”
“……!”
강혁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졌다.
착실하게 돌려지기는 했지만, 그 뜻이 “나, 너 싫어.” 라는 것쯤은 알아차린 강혁이다.
대놓고 말하는 것보다 옆으로 빗겨서 말하는 게 더 기분 나쁠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댁, 밥은 할 줄 알아요?”
“흥! 이래봬도 유학 3년 하면서 혼자 살았고, 그러면서 집에서 밥과 반찬 다 해먹었거든요?”
“그래요? 그럼 식사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서린은 만족스런 대답을 얻은 듯 단검을 벨트에 넣었다.
“이봐요. 설마, 날 일방적으로 부려먹을 생각인 겁니까?”
“걱정 말아요, 그런 거 아니니까. 비서 분! 일단 지금 식사만 부탁할게요. 비서 분 사장 때문에 제가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이해하시죠?”
“예, 이해합니다!”
거수경례까지 해보인 비서는 후다닥 도마 앞에 섰다.
하지만 강혁은 밀리지 않는다.
“<님> 자 붙이시죠?”
“일 없어요, 내가 왜?”
받아친 서린은 휙 돌아서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남은 강혁은 서린의 말이라면 뭐든지 ‘척척’ 이 되어버린 자신의 비서를 심드렁한 시선으로 봤다.
“허이, 비서 씨!”
“예, 사장님!”
“니 이랄래, 참말로?”
어딘가 방언 냄새가 나는 말이 강혁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죄송합니다만 사장님, 저는 지금 사장님보다 차 형사님이 더 무섭습니다.”
강혁은 눈을 크게 뜨며 반항하듯 받아친다.
“형사 아니야! 아직 우리나라 국적 없어!”
비명에 가까운 강혁의 말을 들은 서린. 그녀는 방문을 열고 고개만 내밀었다.
“어머? 국적 있어요. 입양절차를 밟았으니 호적 살펴보면, 제가 영국으로 입양되어 갔다는 게 남아있을 거예요.”
당당히 받아치는 서린이다.
30분 후.
비서가 차린 밥상은 간소하다. 김치, 김, 파래무침, 달걀말이, 찌개가 전부다.
애초 냉장고가 비어있다시피 하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강혁이 약간의 식사 재료를 장만해왔던 것이다.
유학 전 늘 고급스러운 식사만 해왔던 강혁은 미간을 좁혔다.
반면 서린은 만족스럽다는 얼굴이다.
“한국에서의 첫 식사치고는 반찬이 많은 편이네요. 비서 분, 잘 먹을게요.”
“형사님, 맛있게 드세요! 사장님, 맛있게 드세요.”
“쳇.”
강혁은 입술을 삐죽이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일단 배가 고프기 때문에 꾸역꾸역 넣는다고 보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린은 정말 맛있는 모양이다. 맛있게 먹던 서린은 비서를 향해 살짝 웃어 보인다.
“런던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을 몇 번 갔었어요. 그래서 지금의 식사가 그렇게 멀게 느껴지는 게 아니네요.”
“입양을 가셨다면서 어떻게요?”
“양부모님도 한국 분이세요.”
“아하.”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나먼 타지에서 힘드셨겠네요. 특히 양녀라면.”
“양녀라는 걸 안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는 몰라도, 힘든 건 몰랐어요. 어쩌면 같은 고국의 어른 두 분을 양부모로 모셔서 그런 것 같아요.”
대화를 나누며 식사 중인 서린과 비서. 그리고 혼자 억지로 먹는 강혁.
결국은 체했다.
댕기머리를 다시 한 서린은 홀로 집을 나왔다. 화장실에서 난리 치는 강혁과 비서를 무시한 것이다. 나오자마자 같이 갖고 나온 PDA로 영국의 양모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나 있잖아, 혹시 입양되었다는 기록이 어딘가 남아있지 않을까? 입양사무소? 그런 게 있구나~ 응, 알았어요! 고마워요, 엄마~”
대화를 끝내고 PDA를 주머니에 넣은 서린은 택시를 타고 가장 가까운 입양사무소로 향했다.
지금 나온 것은 한국에서도 형사 활동을 조금이라도 해서, 꽤나 비어버린 자신의 통장을 메우기 위함이다.
그리고 한국에 잠시 있기로 한 목적은 상속재산 500억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금액이 너무 크다. 통장은 만들 때 계좌이체를 한 게 아닌지 내역이 없다. 결국 은행을 통한 500억의 뒤를 보는 것은 할 수가 없다.
도착한 입양사무소 앞.
서린은 계산을 모두 카드로 했다. 어려운 점은 없다.
통장을 모두 인식 방식으로 바꾸면서, 한국의 입출금계좌도 한 개 개설하는데 성공했다. 영국의 신분증으로 처리를 어떻게 했으나, 입양되어 갔다는 증명서류가 필요하다고 한다.
부동산에서도 서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일단 한국에서의 신분증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한국에서의 국적을 가지려면 입양 당시의 기록을 쫓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무소로 가는 게 가장 빠르다.
사무소 안으로 들어온 서린은 자신의 한국에서의 사항을 말했다.
“이름은 차서린, 10살 때 영국 런던으로 입양 갔어요. 가족은 입양가기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이모도 1주일 전쯤에 돌아가셨어요.”
5분 뒤.
“찾았습니다.”
직원은 입양서류를 건네주며, 국적 취득을 어떻게 하면 잘 받을 수 있는지 도와주었다.
증명서류는 총 3개. 한 개는 은행, 한 개는 부동산, 그리고 또 하나는 원치 않는 동거를 하려 하는 남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내보낼 참이다.
다음 날, 강혁과 비서.
그간 강남구의 모든 은행을 샅샅이 뒤졌으나 거액이 오고 간 통장 기록은 도저히 찾을 수 없다.
당연하다. 서린이 통장을 바꿀 때 상속재산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은행 측은 그 돈이 함부로 세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함구하고 있다.
“<댕기머리>. 어쩐지 수상하단 말이야.”
차문이 덜컥 열렸다. 비서가 올라탔다.
“조사가 끝났습니다, 사장님.”
“어, 나왔어?”
“예. 영국에 아는 형이 살고 있어서 어렵지 않았습니다.”
강혁은 계속 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루나 데이드, 한국 이름은 차서린. 17년 전 10살 때 입양사무소를 통해 영국 런던으로 입양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영국 국적을 취득하고, 우리나라 교육제도 방식에 의거, 초등교육 수료 후 6년 동안 경찰사관학교를 다닌 모양입니다.”
“그럼 아예 처음부터 경찰이 되기로 작정했네?”
“그런 모양입니다.”
“그럼 댕기머리는 뭐야.”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경찰대학에 입학, 4년 째 다니던 중에, 어느 실종사건을 해결합니다. 이후 음주운전을 하고 단속을 피해서 도주하던 사람을 반 죽였다 합니다.”
강혁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
“반씩이나? 초주검을 만들었겠군.”
“예. 그 사람은 5년 전에 12주 동안 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은 후에도, 정신적인 공포증에 시달렸다 합니다. 그래서 1년 동안 요양을 했다 합니다.”
“…….”
“음주 사고에서 경찰관 한 명이 차에 치였으나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 합니다. 두 개의 사건을 해결한 것이 발판이 되어, 경찰대 졸업 직후 강력수사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지금은 제 1강력수사반에서 형사로 있으며, 수사 과정에서 성격이 변해 사고를 몇 번 쳤고, 그 때문에 반장으로의 진급을 못 한다 하더군요.”
“…….”
강혁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 하고 계속 헤~ 벌렸다.
좔좔 읊은 비서는 서류를 봉투에 넣고, 직속상관을 돌아봤다.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나 다시 집 알아보고 싶다.”
멍한 상관의 말에 비서는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부동산에 나와 있는 집이 없습니다. 현재 강남구에 비어있는 집은, 사장님께서 부동산 소장님을 속여서 산 2층 주택이 전붑니다. 그리고 사장님께서는 가지신 돈이 없지 않습니까?”
“너는.”
“제가 가진 돈으로 집 얻은 겁니다? 1000원씩 2개월은 알아서 하세요.”
“내가 어떻게!”
“저는 몰라요. 사장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
그 순간 강혁이 아는 건 딱 하나다.
비서 이 녀석, 못 보는 사이 사고뭉치로 변했다- 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