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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내가 존경해 마지 않는 세월회 회장님도 현직에 재직할 때 영어 선생님으로 이름을 날렸다던데, 영어 모르는 내가 이 글 쓰면 뭐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 되는 건감? 하지만 뭐 무지자무외(無知者無畏)라고,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도 있잖은가. 그저 하릴없는 늙은이의 심심풀이 파적(破寂)거리로 만든 글이니 혹여 일별하는 제위(諸位)들은 부디 하해와 같은 아량으로 넘겨 주시길...
1.
"The Quality of Mercy is not Strained(자비의 힘은 제약받지 않으니)"
- 「The Merchant of Venice」4막 1장
바사니오는 부자인 포셔에게 청혼하기 위해 여윳돈이 없는 친구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리려 하나, 안토니오는 친구를 대신하여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할 시 자신의 가슴살 한 근을 떼주기로 약속하고 돈을 빌려 바사니오에게 건넨다.
안토니오는 자신의 무역선이 입항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돈이라는 생각에 덜컥 목숨까지 위험한 담보를 내걸었지만 이야기는 엉뚱한 데로 흘러가고, 드디어 재판에까지 불려가고 살점 한 근을 도려내야 할 지경에 이르렀는데...긍까 함부로 돈을 빌려주고 빌리는 행위는 조심해야 하느니, 게다가 목숨까지 담보로 하면서까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슬 푸른 샤일록 앞에 나타난 바사리오의 연인 포셔가 변론에 나서면서 상황은 돌변한다. 포셔는 말한다. 자비의 힘에는 제약이 없으니. 정의를 행함에 자비가 더해지면 신의 힘에 가까워지고 정의를 추구함에 자비가 결여되면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그런다고 여태껏 유태인이라고 안토니오에게 무시만 당해 왔던 샤일록이 호락호락 물러서겠나, 절대 그럴 순 없지.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바, 도저히 불가능한 포셔의 고기 포 뜨는 방법론이 등장하는 거지.
2.
"To be or Not to be—that is the Question(사느냐 죽느냐 고것이 문제여)"
- 「Hamlet」 3막 1장
우리가 태어나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이 곧 이게 아닌가. 덴마크의 비극에서 햄릿 왕자의 독백은 현대의 대중문화에서 엄청난 관심을 받아왔다.
극 중 햄릿의 독백은 다음과 같이 길게 이어지고 있으니,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인디...어떤 게 더 고귀한 것일까?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질과 화살을 견디는 것? 아니면 고통의 바다에 맞서 무기를 들고 싸워 그 고통을 종식시키는 것?"으로...물론 여기서 '문제'란 건 일반적으로 다양한 상황에 적용될 수 있겠지만, 이 독백의 시작은 인간 존재의 유불리(有不利)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내면적 토의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해 두어야겠지? 아무려면 별 철학적 의미도 없는 말이 우리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경구가 되었을까...
3.
"All that Glitters is not Gold(반짝인다고 모두 다 금은 아니다)"
- 「The merchant of Venice」 2막 7장
서양에서는 이솝우화에도 나올 정도로 일찍부터 잘 알려진 경구로, 보이는 게 다는 아니란 의미를 갖고 있는데...희한하게도 세익스피어는 'glisters' 대신 구식의 완곡 어구(euphemism)인 'glitters'를 사용했다지 뭐야.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에서 부자이자 예쁜 아가씨인 포셔에게 많은 젊은이들이 구혼에 나섰는데, 그들에게 포셔는 금, 은, 납으로 만든 상자를 보여 주면서 하나를 고르게 했다나. 구혼자 중 모로코 왕자가 선뜻 나서서 금으로 된 상자를 골라 뚜껑을 열었더니 아 글쎄, 상자 속에는 해골과 위의 글이 적힌 종이가 떠억하니 들어 있었다지 않은가. 희곡에는 없지만 아마 왕자는 뒤로 발랑 나자빠지곤 다리야 날 살리라 함서 달아났겠지?
4.
"Cowards Die many Times before their Deaths; The valiant Never Taste of Death but Once(겁쟁이는 죽기 전에 여러 번 죽지만 용감한 자는 오직 한 번 죽을 뿐이니)"
- 「Julius Caesar」2막 2장
독재관(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호민관도 아니고 집정관도 아닌 독재관이라니?) 줄리어스 시저가 원로원에 출석하기 위해 집을 나설 때, 그의 부인 칼퍼니아(Calpurnia)가 간밤에 꾼 악몽을 들려주면서 죽을 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이에 시저는 콧방귀를 뀌면서 겁쟁이들이나 쉽게 죽지 자기는 용맹한 자이니 오직 한 번 죽음을 맞을 뿐이라며 부인의 말을 무시한다.
말하자면 시저의 이러한 호기(豪氣)는, 죽음을 기대하면서 자신의 삶을 낭비하는 '속으로의 죽음(dying inside)'보다는 현재 용감하게 행동하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리라. 하지만 시저가 모르는 사실 한 가지, 그것은 겁쟁이는 여러 번 죽지만 마찬가지로 여러 번 살아나지만, 용감한 자의 생명은 하나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5.
"The Robbed that Smiles, Steals something from the Thief(도둑맞았다고 슬퍼만 할 게 아니라 웃어버리고 당신을 분통 터지게 만들었다고 도둑이 기뻐할 기회를 빼앗아 버리는 게 더 좋은 거여) "
- 「Othello」1막 3장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Othello」의 제 1막 제 3장 후반부에 주인공 오셀로가 모시는 베네치아 공작의 이 말은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를 조언해 준다. 공작은 사람이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 게 분노 유발자의 충만감을 제거하는 거라고 해석되고들 있는데...
사실 이 문장은 워낙 축약(abridgement)이 심해서리 해석이 어려워 혹시나 하여 쉬운 해석 사례를 찾는다고 구글을 열심히 뒤져 보아도 찾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겨우 litcharts란 사이트(https://www.litcharts.com)에서『오셀로』대본의 원문 대역 영문 번역문을 볼 수 있었다. 해서리 위의 번역이 의역이 심하다는 걸 나만의 잘못으로 탓하지 마시길...하지만 도둑에게서 내 물건을 훔친 데 따른 희열감을 뺏어버린다는 글을 보면서 새삼 작가의 문재(文才)에 감탄한다.
6.
"Uneasy Lies the Head that Wears a Crown(왕관을 쓴 머리는 편히 쉴 수가 없으니)"
- 「Henry IV」 제2부
랭커스터 가문을 연 헨리 4세는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치세 중 끊임없이 왕위의 정당성에 대한 시비에 휘말리고 변방의 반란이 계속 발생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데 엄청 고생을 했다고 하는데...말하자면 왕관의 무게에 짓눌려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다는 말이지.
어디 헨리 4세뿐인가? 당의 태종은 다섯 수레에 실을 정도의 책을 읽었다고 하질 않나,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침략을 위해 조랑말을 타고 눈 덮힌 알프스를 넘었다질 않나, 마리 앙트와네트의 오빠인 요제프 황제는 정무를 돌보느라 밤에 잠도 제대로 못잤다더만...글고 이 글을 인터넷에서 찾아 보면, 가끔 'uneasy lies' 대신 'heavy is'란 용어로 된 것도 있더만, 하튼 왕이 되면 골치 아픈 일 많다는 뜻이렸다.
7.
"But love is blind, and lovers cannot see. The pretty follies that themselves commit(사랑은 눈이 멀었고 연인들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볼 수 없구나)"
- 「The Merchant of Venice」2막 6장
유태인 샤일록의 딸 제시카는 아버지의 돈을 훔치고 남장을 하여 사랑하는 로렌쪼와 야반도주를 감행한다지. 빨리 배에 타라는 연인의 재촉을 받으면서도 남장한 자신의 모습이 예뻐보이지 않을까 두렵고, 구두쇠 아버지의 돈을 훔친 게 부끄러워 선뜻 배에 오르지 못하고 망설인다.
사랑하면 때로 상대의 단점이나 잘못을 무시하고 용서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세익스피어가 처음 한 말은 아니라는구만. 세익스피어보다 훨씬 전에 초서(Geoffrey Chaucer)의 그 유명한 『캔터베리 이야기』에 이미 나왔던 이야기라는구만 글쎄. 세익스피어는 이 말을 좋아해서리 자신의 희곡『헨리 5세(Henry V)』와『베로나의 두 신사들(The two gentlemen of Verona)』에도 써먹었단다.
8.
"Brevity is the Soul of wit(간결함은 지혜의 정수)
- 「Hamlet」2막 2장
극에서 햄릿의 연인인 오필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우스는 사위가 될 뻔한 햄릿의 칼에 찔려 죽음을 맞을 때까지 많은 가르침을 우리들에게 전해 주는데...젠장맞을! 자신은 허접스런 삶을 살면서 남에겐 가르치려 들다니...하지만 아서라, 삼인행에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 했으니...
세익스피어 시대 땐 'wit'란 단어가 'wisdom'으로 쓰였다는구만. 해서리 폴로니우스는 군더더기 없는 말로 핵심을 찌르는 게 지혜라고 전제하면서도 막상 자신은 장황한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게 다반사였다더구만. 긍까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폴로니우스를 '늙은 수다쟁이(the old chatterbox)'라면서 조롱했다더만...
헌디 폴로니우스는 늙은 수다쟁이라 놀림을 당했지만 막상 극의 3막 4장에서 햄릿의 칼에 맞아 죽을 때는 '오매, 나 죽네!(Oh, I am slain!)'라고 정말 간결하게 한 말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패러디되고 조롱거리 안주로 씹혀지고 있대나 뭐래나...
9.
"This above all: to Thine Own Self be true, And it must follow, as the Night the Day, Thou canst not then be false to any man(다른 모든 것들은 제쳐 두고라도 항상 자기 자신에게 진실되어야 누구에게도 거짓되게 보이지 않을 터이니) "
- 「Hamlet」 1막 3장
「Hamlet」에서 왕의 측근 신하이자 오필리어의 아버지인 폴로니우스는 항상 햄릿을 염탐하고 왕에게 고자질하는 이른바 간신배의 전형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도 자식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인지라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는 아들 레어티스에게 간곡한 당부를 한다.
길 떠나는 아들을 앞에 두고 아들이야 듣건 말건 폴리니우스는 실로 장황하기 이를 데 없는 당부사항을 주절주절 늘어놓는데, 뭐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말들이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세익스피어의 고담준론인 듯하여 몇 가지 적어본다.
- 누구에게나 귀는 열어주되 너의 말은 소수에게만 전해라
(Give every man thy ear but few thy voice)
-절대로 빌려 주지도 빌리지도 말아라(Never a borrower nor a lender be)
-옷이 곧 그 사람의 인격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옷이 날개다?
(The apparel oft proclaims the man)
그리고는 폴리니우스는 말한다. 이런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은 제쳐두고라도 반드시 아들이 명심해야 될 건 자신에게 진실되라는 거다. 에궁! 아버지의 다른 조언들은 모두 실천하기 쉬운데 하필 마지막 당부의 말씀은 당최 어렵단 말씀이제, 우리 모두는 갈대와 같은 인간잉게.
10.
"Men at Some Time are Masters of their Fates(인간은 언젠가는 자기 운명의 주인일 터)"
-「Julius Caesar」1막 2장
「줄리이스 시저(Julius Caesar)」의 1막 2장에 등장하는 카시우스는 시저의 친구이자 자기의 처남인 부르투스에게, "인간은 말이지 언젠가는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된다네. 친애하는 처남, 잘못이 있다면 그건 하늘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내면의 자신에게 있다는 말일세."라고 말한다.
도움을 청하는 이 말로 카시우스는 부르투스에게 그의 친구 시저를 살해하려는 계획에 참여해 달라고 설득한다. 카시우스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조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미래라는 건 항상 어떤 보다 강력한 힘에 의해 미리 정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의지가 자신의 운명을 가름하는 결정인(決定因)이란 건데, 카시우스의 삶을 일별해 보면 보이지 않는 얄궂은 운명의 장난에 인간의 의지란 한낱 폭풍우 속의 나뭇잎배의 신세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