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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공통
◆ 코블렌츠에서 마인츠 방향으로 가는 길중
전설의 로렐라이 언덕이나 백포도주 산지로 유명한 뤼데스하임을 방문하거나 고양이성과 쥐성 등
고성을 보다 가까이서 구경하려면 코블렌쯔에서 마인쯔 방향, 강 왼쪽으로 진행하는 것이 보다
경관이 낫다. 반대 방향인 마인츠에서 코블렌츠 방향으로 진행을 하는 경우라면 강 오른쪽이 된다.
고성과 포도밭, 로렐라이 언덕 ,(마르크스 부르크성, 쥐성, 고양이성)
마르크스 부르크성, 쥐성, 고양이성을 차례대로 먼 발치에서 구경하는데
***koblenz에서 B49-B42 (강변따라서 죽 내려가다가 Lorelei입구로 올라가서 전망대 보고 파테르스베르크 마을로 내려가면 고성과 전망좋은곳 나옴.(역으로 Patersberg로 올라가면 됨)..더 내려가면B42 Lorch지나서 Rüdesheim Am Rhein 나옴
뤼데스하임 부근에 이르자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시내에는 포도주 축제를 하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로 무척 붐비고 있었다. 이곳에서 잠시 내려 포도 생산과정 견학과 시음도 해보고 포도주도 살까 했었지만 예정된 시간보다 많이 지체됐고 기회가 또 있으려니 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이곳에서 포도주를 사두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자연경관이 뛰어난 scenic byway는 주로 국도변에 위치해 있으며, 미셸린 지도에는 초록색으로,
아틀라스 지도(Atlas Routier Et Touristique Europe)에는 *표로 표시돼 있다.
◆ Cochem코헴(koblenz근처)
B9내려가다 Koblenz 바로 앞에서 우회전하여 B416 B49 타고 감(모젤강 오른쪽길(윗쪽)따라서 가면 Cochem코헴나옴
모젤계곡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
◆ 하이델베르그
하이델베르그 성, 하이델베르크 대학 ,성령교회,학생감옥,황태자 식당
※ 고성가도(Eberbach-Heilbroon-Schwabisch Hall)
독일의 전형적인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대표하는 멋진 Senic Byway
◆뮌헨
독일박물관,마리엔플라츠,전쟁과 광기의 상징인 수용소(다하우 수용소)
◆로덴부르그
중세의 마을
Rothenburg(nurnburg근처) ; 범죄박물관
Town Hall 광장 주변에는 교회 건물이 뒤에 있었고 그 옆에 시계탑이 있었는데 옛날 시계로 보여지는
천문시계
◆ 아이제나흐
루터의 집과 바흐의 집
◆ 바이마르
괴테 기념관, 쉴러의 집, 리스트의 집
◆ 라이프찌히
바흐가 생의 후반부를 이곳 토마스 교회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교회 소년 합창단으로 유명한 명실상부한 전통의 음악의
도시이자, 독일 통일운동의 기초를 닦았던 니콜라이 교회와 괴테의 파우스트의 무대가 되었던
아우어바흐스 켈러 레스토랑, 세계 최초의 신문발행 및 출판사, 인쇄소 등으로도 유명하다
◆ 드레스덴
츠빙어 궁전
18세기 작센지방의 수도이기도 했던 이곳은 독일의 피렌체라고 불리운다. 그야말로
고색창연한 아름다운 도시로 개인적으로는 여러 관광도시중 가장 인상이 깊었고 정말
강추하고 싶은 곳이다.꼭 다시 와보고 싶은 도시
◆ 작센 스위스
체코와의 국경 부근에 양쪽으로 깎아지르는 것 같은 바위산이 솟아 있는 지대로, 오랜 기간의
침식작용에 의하여 계곡 바닥부터 100m나 되는 높이의 단층절벽 지형이 만들어진 것으로,
경치좋은 스위스를 비유하여 "작센의 스위스(Saechsische Schweiz)"라고 불리고 있다고 한다
◆ 퓌센에 들어서니 노이반슈타인 성,마리엔느 다리,로만틱 가도
퓌센에서 인스부르크를 거쳐 가는 산길을 탔는데, 길이 매우 구불구불하여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했지만, 알프스로 둘러싸인 경관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가는 도중 중간 중간에 내려 절경을 감상
◆ 바트 가스테인은 산중턱에 위치한 온천 및 스키휴양지이다
타우에른 턴널인데 뵉스타인에서 말린츠를 연결하는 대략 연장 10킬로미터 정도의 터널이다.
3200미터가 넘는 고산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중간에 터널을 뚫어서 차를 열차에 싣고 우리는
열차를 타고 그곳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 116 제가 정리한 독일 간단정보 입니다.^^
독일-
세계에서 가장 기차가 발달된 나라 초고속 열차 ICE가 운행되며 유레일이 있으면 무료로 탑승이 가능하다. www.bahn.de
독일 버스 www.deutsche-touring.com 도이치 투어링 사이트
로만틱가도의 버스도 조회가 가능하다. 로만틱가도=로마로 가는길
주로 여행객들이 프랑크푸르트와 뮌헨만 가는데
뉘른베르크, 뷔르츠부르크,밤베르크, 슈트트가르트 등 좋은 곳이 많다.
특히 프랑크푸르트를 가는 여행객이면 동화가도의 기점인 마르부르크를 가도 좋을듯 하다.
기차로 약 한시간 정도 소요
중세 도시-튀빙엔-->슈트트가르트서 기차로 갈수 있으며 아기자기함이 넘쳐나는곳
로텐부르크- 뷔르츠부르크에서 가까우며 Steinach를 거쳐서 로텐부르크로 갈수 있다.
날이 맑으면 정말 마을이 이쁘다.
뉘른베르크-히틀러가 사랑한 도시 고성에 둘러 쌓인 도시모습이 정말 좋다.
밤베르크-밤베르크 대성당과 마을의 분위기 때문에 유명해진곳
뷔르츠부르크서 기차로 가깝다.
알스펠트-역시 동화가도의 한 도시 마르부르크나 하나우에서 가깝다.
빨간모자의 무대가 되었던 곳
하멜른-브레멘까지 시간이 되면 여행해도 좋을듯 하다.
# 105 독일 유스호스텔 싸이트
http://old.web02.djh.de/international/html/index.jsp
이 사이트는 다들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독일 공식 유스 사이트이구요.
http://www.backpackernetwork.de/home/
여기는 사설인것 같은데.. 암튼 이곳도 대략 숙소 많이 있습니다.
http://meininger-hostels.de/ (베를린,뮌헨, 쾰른 3곳만)
# 65 독일 숙소 정보
<독일>
로텐부르크
① Pension Becker
-주소: Rosengasse 23 (역에서 도보 5분)
-Tel: 09861 3560
-가격: 더블룸 21.5 유로/명 (아침 포함)
-식사: 아침 아주 푸짐. 빵도 많이 주시고 커피, 삶은 달걀 등
-평: 더블룸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아기자기하고 깔끔했음.
샤워시설 방에 딸려있고 주인아저씨가 아주 친절하심.
베를린
① 강촌민박
- 가격 : 학생 25유로 일반 30유로
- 전화번호 : 0049 30 8972 6764
프랑크푸르트
① 얼룩이네
-가격: 20유로
-식사: 아침(독일식: 소세지,빵,차) 포함
-평: 2인실 쓴 점이 가장 좋았고 . 깨끗. 지하철로 이동시 약40분정도 걸어야 함.
② 부천댁 프랑크푸르트민박
- 홈페이지 http://www.cafe.daum.net/ffminbak
-가격 : 학생 아침(맛있는 한식)포함 25유로
- 전화번호 : 0049 69 5482836
-평: 2인실쓰고 주인아주 친절, 깨끗 + 따뜻 +컴터4대 인터넷무료+3박 세탁무료
제경우엔 첨부터 3박한다고하여 23유로에 따뜻하고 편하게 묵었슴.
지하철 6호선 (전철요금 공짜)시내관광지 연결 교통편리.여행정보 친절히 알려줘 알짜베기 여행
③ hansyouthhostel
-가격: 18.5유 (시트비따로 안받았음)
-식사: 아침 뷔페(독일빵)
-평 : 카드키주고 시설깨끗, 중앙역서 거리가 꽤 됩니다.
강가에 있구요..조용해요가까이에 박물관이 있구요..
룸메이트 잘못만나 최악,컴퓨터 없고,인터넷 없음
④ 호텔 컨티넨탈
- 가격 : 2인실 (트윈) 32유로(일인) 3성급 호텔 (샤워실에 욕조 구비)
- 중앙역 바로 앞. 교통 편리. 쓸쓸하고 PC없음.
⑤ 풀하우스
-가격: 성인 35유로
- 홈페이지 : http://www.cafe.daum.net/germanfullhouse
-전화번호 : 00149 6109 68117
- 평: 집이 예쁘고 깨끗함. 세탁무료. 인터넷무료 .주인이 아주 친절함.
교통이 불편.숙박비 비쌈
뮌헨
① 4you Munchen
-주소: Hirtenstrasse 18 (중앙역에서 도보 5분) 중앙역에서 가까워서 편리
-Tel: 089-552 16 60
-가격 : 6인실 20유로(아침포함)
-식사 : 아침(독일식뷔페. 빵치즈햄다양 과일다양 차)포함
-평 : 12인실에서 3박했는데 깨끗 + 따뜻 맘편했음.
아침뷔페는 정말 미안했지만 빵이랑 코코아랑 챙겨서 점심먹었는데 몰라서 그런건지
눈치 안주고 봐줘서 맘편하게 좋았던곳. 강추!!
아침식사도 제법 잘나오고 맘껏 양껏 먹을수 있고, 3박에 시트세장주고 카드도 가능.
개인라커 제공. 체크아웃 후에도 러귀지룸 사용 가능.
②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유스( 여자만 숙박)
-가격 : 20유로
-평 : 깨끗하구 조용, 중앙역에서 아주 가깝고, 찾기쉬움
③ 김콘도
- 가격 : 25유로에 10유로는 열쇠빌리는 값(갈때 10돌려줌)
- 평 : 건물전체가 민박집. 식당 사용가능
화장실, 욕실 같이 쓸수 있음 . 깨끗하고 좋음
단점이라면 아줌마 말이 너무 빨라서 한국말임에도 불구하고 알아듣기 좀 힘듬
④ Euro Youth Hotel (시설은 호스텔)
- 위치 : 뮌헨 중앙역에서 5분거리
- 가격 : 1인 23유로 (3인실에 욕실이랑 세면대 있고 티비도 있음)
- 식사 : 아침은 4.9유로를 받는데. 숙소에서 만난 다른 한국인 언니들은 3유로에 쿠폰을 샀다길래, 말했더니 3유로에 해주시더라구요;;
시내까지 걸어가는데에는 10분정도 걸림
드레스덴
① 유스호스텔
-위치: 역에서 20분거리. 관광지 반대편 방향으로 나와야한다.
-가격: 조식포함해서 트리플룸이 17유로.
-평: 아침 정말 잘나오고 규모가 작아서 화장실 사용하기 편하다.
방마다 세면대랑 탁자비치. 층마다 당구다이있음
역이랑 약간 멀다는게 흠.
하이델베르크
① 유스호스텔
-위치: 역에서 버스타고 Zoo역에서 한정거장 더 가서 내림.
무지하게 커서 버스기사한테 유스호스텔이라고하면 다 알아들음.
-가격: 조식포함 4인용룸이 17.5유로
-평 : 샤워실 빼곤 내가 가본 유스중 가장 큼
수용하는 시설에비해 샤워실은 형편없음 ,커튼도없음
.알몸다보이면서 샤워해야함...
수압 정말 약하고 한 층에 샤워실에 하나밖에 없음
샤워시설때메 좋던 인상 다구긴 유스...그거하나 빼곤 다 좋다.
분위기는 좋음.
② 한국관
-가격: 20유로(아침포함)
-식사: 가져간 라면이나 햇반은 조리해줌
-전화번호 : 06221ㅡ22062 .
-평 : 주인아주머니 주업은 한식레스토랑, 윗층에 숙소가 있음 별로 추천하고 싶지않음
겨울이었는데.저희가 자는 방은 난방을 안해주셔서 양말신고. 정말 덜덜 떨면서 잤음
시끌벅적함...아침식사를 8시반까지 다 먹어야함.
뉘른베르크
① DE Nuernberg 공식유스
-가격 : 18.6유로
-식사: 아침부페
-평 : 궁을 개조해서 만든 유스호스텔.정말 좋음,.산책하기도 좋음
규모가 커서 그런지 어디서 수학여행을 온건지 떼로 다니는 무리가 많음
샤워시설이 남녀공용임다 문달린 개인샤워룸이 아니라 커텐달린 샤워룸임
이거 빼면 정말 좋슴다.
# 36 독일 로텐부르크 숙소입니다.(luca님이 링크하신 정보를 그대로 올립니다.^^ ) [29]
8. Then inn (twin room 20유로*2명=40유로, single room 23유로)
전형적인 독일 할머니가 운영하는 소규모 B&B(Bed&Breakfast).
로텐부르그역에서 나와 찻길을 건너 왼쪽으로 난 큰길을 따라 조금 가다보면 Volksbank가 나온다.
그건물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Then Inn이 있다.
전형적인 독일 시골마을의 예쁜 집이다.
깨끗하고 깔끔했다.
1층에는 방 3개와 욕실겸 화장실이 있었고 방마다 세면대가 따로 있었다.
수건도 제공된다.
할머니께 부탁하면 뜨거운 물을 얻을 수 있다.
아침식사 시간을 미리 말씀드리면 시간에 맞춰 전형적인 독일 아침식사가 제공된다.
우리 아침 식사는 빵 2개, 햄, 치즈, 버터, 잼, 삶은 계란(계란 그릇에 담겨^^), 차나 커피 중 택일이었다.
정말 깔끔하고 근사한 아침식사였다.
단점이라면 가정집이기에 좀 조심스러웠고 할머니가 수더분하지 않고 좀 무뚝뚝하셨기 때문에 친근감은 덜 느껴졌으나 깔끔하고 깨끗해서 매우 좋았고 가격도 만족스러웠다
# 30 로텐부르크 숙소 열람 페이지
시에서 운영하는 페이지인가봐요.
Then도 나와 있네요...
사진이랑 같이 나와 있어요.
# 71 독일 지도 보고 독일 여행!!
# 119 독일 웰컴카드 정보
각 도시마다 있는 웰컴카드는
교통수단의 무제한 탑승과 박물관이나 명소등의 입장료가 할인이 됩니다..
각 도시를 구석구석 보고 싶으시다면 1일권도 좋지만 웰컴카드를
이용하시는 것도 좋을것 같네요.(각 요금의 기준은 2005년 발행된 론리플래넷 4th입니다.)
뮌헨 : Munich Welcome Card (교통수단 무제한, 박물관등 최대 50%까지 할인)
- 1일 : 6.5 Euro / 3일 : 15.5 Euro
하이델베르크 : Heidelberg Card (교통수단 무제한, 성, 박물관등 무료 또는 할인, 몇몇 레스토랑도 할인가능)
- 2일 : 2 Euro
프랑크푸르트 : Frankfurt Card (교통수단 무제한, 박물관, 미술관, 동물원, 공항 테라스까지 50%할인)
- 1일 : 7.5 Euro / 2일 : 9.7 Euro
베를린 : Berlin welcome Card (베를린-포츠담지역 교통수단 무제한, 박물관, 공연, 관광투어, 크루즈까지 할인가능)
- 3일 : 21 Euro
*성인 1인에 14세 미만 아동 3명까지 가능
하노버 : hannover Card (교통수단 무제한, 박물관이나 기타 관광지 입장료 무료거나 할인)
-1일 : 8 Euro / 3일 : 12 Euro
함부르크 : Hamburg Card (교통수단 무제한, 묵물관, 관광지 약간 할인)
- 1일 : 7 Euro
* 함부르크 관광안내소, 몇몇 호텔이나 호스텔에선 판매.
* 저녁 6시 이후 구입시 다음날 전일 사용가능
뉘른베르크 : Nurnberg Card ( 교통수단 무제한, 뉘른베르크와 Furth지역까지의 모든 박물관과 관광지 )
- 2일 : 18 Euro
뷔르츠부르크 : Welcome Card (주요 관광지 할인)
- 7일 :2 Euro
라이프치히 : Leipzig Card ( 관광지 할인, 교통수단 무제한)
- 1일 : 5.9 Euro / 3일 : 11.5 Euro
드레스덴 : Dresden City-Card ( 12개 박물관 무료 입장, 씨티투어, 보트 할인, 교통수단 무제한)
- 2일 : 18 Euro
쾰른 : Koln Welcome Card (교통수단 무제한, 할인.)
- 1일 : 9 Euro / 2일 : 14 Euro / 3일 : 19 Euro
출처:네이버 유로스테이션
★ # 87 [독일 테마여행] 와인가도 로만틱가도 고성가도 동화가도 괴테가도
독일 테마여행
모젤 포도주 가도
Trier - Koblenz - Wiesbaden
모젤강은 프랑스에서 발원 트리어를 거쳐 코블렌쯔에서 라인강과 합류한다. 트리어는 포도의 재배 및 포도주 거래의 중심지로 상부 모젤의 중심도시이다. 또한 코블렌쯔 부근의 비닝엔은 3백만주 이상의 포도나무가 심겨져 있는 하류 모젤 최대의 리슬링 재배지이다.
모젤강의 양안에는 포도나무가 재배되고 있으며, 그 길을 우리는 "모젤 포도주 가도"라고 부른다. "포도주 거리"는 상류의 트리어에서 하류의 비스바덴 (헤쎈주의 수도) 까지 길이가 약 250km이다. 이곳이 포도주 재배로 각광을 받는 이유는 강 양편의 적당한 경사로 인해 일조량이 많고 따뜻한 공기가 쉽게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 모젤 강변에서 재배되고 있는 포도의 품종을 보면 리슬링이 가장 많다. 이것은 톡 쏘는 맛을 가지면서도 담백한 백포도주의 원료가 된다. 그외에 뮐러-투르가우, 엘브링 등이 있지만 리슬링이 차지하는 비중이 56%나 된다. 9월과 10월 모젤강을 따라 여행하면 개개의 도시에서 포도주 축제를 만끽할 수 있다.
로만틱 가도
Würzburg - Rothenburg - Dinkelsbühl - Nördlingen - Augusburg - Füssen
로만틱 가도는 원래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가는 통상로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가도는 프랑크푸르트의 동남쪽 100km 지점에 있는 뷔르츠부르크에서 시작한다. 옛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로텐부르크와 오랜 성벽이 인상적인 딩켈스뷜 Dinkelsbühl, 도나우강을 건너 대도시 아우구스부르크를 거쳐 독일 알프스의 산기슭에 노이슈반슈타인 성 (01 / 02 / 겨울 모습 : 03 / 04)이 있는 마을 퓌쎈에 이르기까지 350km의 길이 로만틱 가도이다.
< 사진으로 보기 >
뷔르츠부르크 : 마리엔베르크 성
로텐부르크 : 중세의 거리 / 주택 / 관광 마차, 버스 / 성 야곱 성당 / 시청사
뇌르트링엔 : 주택 / 성 게오르크 성당 내부
아우크스부르크 : 성 울리히 아프라 성당 / 성당 내부 / 결혼식 장면
퓌쎈 : 호헨슈방가우 성 / 린더호프 성 / 노이슈반슈타인 성
고성 가도
Mannheim - Heidelberg - Rothenburg - Nürnberg
만하임에서 네카강을 가로질러 동쪽 전원지대로 달려가 뉘른베르크에 이르는 총 320km의 고성가도는 대체로 붉은 색조를 띠는 고성들이 곳곳에 모습을 드러내며 지나온 역사를 이야기하는 듯 하다. 하이델베르크, 로텐부르크를 비롯한 고성가도의 도시들을 이용하는 편리한 방법은 렌트카나 유로버스 (어바웃 버스 패스, 유로라인 패스)를 이용하는 길이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철도 노선은 자주 갈아타야 하는 불편이 있어 좋은 편이 아니다.
뉘른베르크: 나폴리에서 스웨덴의 스톡홀름, 그리고 리스본에서 프라하를 경유해 바르샤바를 연결하는 미래의 유럽 고속도로 교차점에 위치해 있다. 주요산업으로는 기계제조, 전자산업 및 장남감 산업을 들 수 있다. 이곳에서 매년 열리는 국제장난감 전문 무역박람회는 이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박람회이다. 전범재판장소로도 유명하다.
< 사진으로 보기 >
하이델베르크 : 도시 전경 / 대학 / 알테 브뤼케 (다리)
뉘른베르크 : 전범재판 장면 / 피고인들 / 프라우엔 성당 / 성당 앞 광장의 샘 / 성당 내부
라인강 뱃길 : 본에서 마인쯔까지
Bonn - Koblenz - Bingen - Mainz
라인강의 유람선은 라인/마인의 합수점인 마인쯔와 라인/모젤의 합수점인 코블렌쯔가 관광의 핵심이다. 이 두 곳 사이가 5시간 정도 걸린다. 다소 지루하지만 강을 끼고 언덕 위에는 포도밭이 그리고 드문드문 고성이 보이고 강을 끼고 기차와 차도가 나란히 달리는 모습... 이것이 전형적인 라인강의 풍경이다. 로렐라이 언덕은 유명세에 비하면 다소 실망스러우나 주변의 경관은 아름답다.
① Bonn에 있는 Königswinter의 Drachenfels와 성
② Koblenz 인근의 Stolzenfels 성
③ Braubach의 철옹성 Marksburg
④ St. Goarshausen의 로렐라이 언덕 (언덕 너머 고양이 성 Burg Katz 이 있다.)
⑤ Kaub 시 근처 강 한가운데 떠 있는 Pfalz 성
⑥ Bachrach의 Stahleck 성
⑦ Bingen의 Mäuseturm
동화 가도
bremen - Hameln - Göttingen - Kassel - Marburg - Hanau
Grimm 동화의 무대가 된 메르헨 가도는 Frankfurt 옆의 Grimm형제의 출생지 Hanau에서 피리부는 사나이로 유명한 Hameln, 동물음악대로 유명한 Bremen(브레멘)까지 이어지는 600여 km의 목가적인 도로이다.
괴테 가도
Frankfurt - Fulda - Eisenach - Weimar -Jena -Leipzig
독일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대문호 괴테는 작가인 동시에 연출가였으며 정치가이자 과학자였다. 또한 와인에도 조예가 깊은 와인 애호가였다. 그런 천재의 발자취를 모아놓은 곳이 바로 괴테가도이다. 탄생지인 프랑크푸르트, 재상으로 활약했던 바이마르, 대학에서 공부했던 라이프치히 등 괴테와 관련된 지역을 연결하는 380여킬로미터의 이 길은 동서독일을 연결하는 최초의 길이었다고
출처:http://dragon.seowon.ac.kr/~jeronimo
# 44 로텐부르크에서 하이델베르크까지 그외 추천여행지
독일 여행노트
4,000종 이상의 맥주가 생산되는 맥주의 본고장이자 2006 월드컵이 열리는 독일. 독일은 유럽에서도 독특한 색깔을 지닌 나라다. 아름다운 중세의 거리에서 산책을 하고, 소시지 안주 삼아 맥주를 원샷 하고, 때론 라인강변에 앉아 대문호 괴테의 문학정취에 흠뻑 빠져볼 수 있다.
#로텐부르크
독일 로텐부르크는 중세에서 시간이 멈춘 도시다. 15세기 독일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고도.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한결같이 동화나라에 다녀왔다고 말한다.
실망스럽게도 로텐부르크에 도착한 날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자욱한 안개와 오가는 행인없이 적막한 거리. 그러나 음산한 날씨 속에서도 그곳은 진짜 동화나라였다. 집집마다 장난감 같이 얹혀진 파스텔톤 지붕은 스며든 빗방울에 더욱 빨간 색채를 띠고, 바닥에 깔린 자갈길은 비를 머금은 채 반질반질 윤기가 난다.
어슴푸레해지는 조용한 저녁거리를 산책하다보면, 중세 망토를 입고 한손에는 촛등을 든 채 딸랑딸랑 종을 흔들며 지나가는 사람과 문득 마주치게 된다. 그 옛날 종소리로 저녁임을 알렸을 중세 수도승처럼, 그는 점잖은 미소로 눈인사를 던지고는 희뿌연 안개 속으로 총총 사라진다.
혹시 비에 젖은 로텐부르크가 음산한 마녀의 잠자는 숲같이 느껴진다 하더라도,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보자. 독일의 하늘은 고지식한 독일사람들의 성격과는 정반대로 무척이나 변덕스럽다. 새파란 하늘에서 갑작스레 비를 뿌리다가도, 몇시간 후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선글라스가 필요할 정도로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쬘 테니.
이곳의 정식 명칭은 ‘타우버강 위의 로텐부르크’(Rothenburg ob der Tauber). 타우버강에서 보면 푸른 숲속에 둘러싸여 공중에 둥실 떠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도시 남쪽의 타우버 리비에라 산책로를 걸으며, 아름다운 타우버 계곡의 풍광을 내려다봐도 좋다. 졸졸 시냇물 같은 타우버강에 굽이굽이 휘감긴 채, 소담한 나무에 둘러싸인 빨간 마을은 머리 속으로나 그려봤던 그림동화 모습이다.
로텐부르크의 타임머신을 도시의 기원까지 거꾸로 돌리면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밟고 마르크트 광장의 시청사(Rathaus) 탑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도시를 감싼 12세기의 성벽과 돌로 만들어진 길과 다리, 동화 같은 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벽돌 하나까지도 중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 이곳 사람들은 창문 하나도 허락없이 교체할 수 없다고 하니, ‘중세의 보석’이란 별명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로텐부르크는 독일 내에서도 최고의 신혼여행지로 손꼽히는 도시이다.
로텐부르크에서는 1,000년 된 자그마한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친구들에게 동화나라에서 부치는 엽서 한장 써보는 것도 각별한 추억이 될 듯하다.
#프랑크푸르트
만약 중세에서 다시 21세기의 독일로 돌아오고 싶다면 기차를 타고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경제·금융의 도시 프랑크푸르트에 들러보자. 하늘을 찌를 듯한 최첨단 빌딩과 전통가옥들이 공존하는 독일의 현재 얼굴을 감상하는 것도 또다른 재미이다.
#비스바덴
프랑크푸르트 바로 옆의 비스바덴에 들러 온천욕을 즐기며, 시대를 뛰어넘은 긴 여행의 피로를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온천으로 유명한 비스바덴은 ‘황제들이 사랑한 도시’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특이하게도 산 정상에 야외풀장이 있는 네로부르크산 정상에 오르는 것도 잊지 말자. 산위에서 비키니 입고 주황색 지붕 빼곡한 아름다운 마을 전경을 내려다보며 선탠을 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산 정상까지는 설치된 지 100년도 넘은 케이블 열차가 지금도 운행된다. 그 옛날부터 비스바덴의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전력이 아닌 수력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니 부러울 뿐이다.
#하이델베르크
하이델베르크도 프랑크푸르트에서 불과 1시간 거리다. 이미 ‘황태자의 첫사랑’으로 너무나 유명한 이곳은 그 어느 곳으로 시선을 돌려도 그림이 된다. 괴테와 실러, 헤겔 등이 산책했다던 철학자의 길은 이 지역 주민들의 조깅코스로 활용되는 모양이다. 철학자의 향취를 조금이나마 느껴보려 이 먼곳까지 찾아온 사람들이 볼 땐 그 아름다운 길에서 운동복 차림으로 조깅하고 있는 그들이 넘치는 호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중간중간 도시마다 술집에 들러 그 지방 고유의 맥주맛을 감상하는 것도 반드시 넣어야할 여행코스. 분위기가 무르익어 누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모두 함께 합창하며 호쾌하게 맥주를 들이켜는 독일인의 모습에서 낯익은 친근감이 느껴질 테니
괴테는 “하늘이 어딜 가나 푸르다는 사실을 아기 위해 세계일주 여행을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빌린다면, ‘괴테가 위대한 문호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 괴테가도를 여행할 필요는 없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특별한 과거로의 여행은 또다른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괴테가도는 루터와 바흐의 발자취와도 겹쳐, 문학·종교·음악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 탐구기행 코스이기도 하다.
#프랑크푸르트-대문호의 질풍노도기를 엿보다
괴테가도는 괴테가 태어나 16살까지 살았던 도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한다. 번화한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괴테의 집’은 신기할 정도로 보존이 잘 돼 있다. 2차대전 때 폭격을 받았지만, 시민들의 노력으로 복구됐으며 가구들은 미리 안전한 곳에 옮겨놓아 무사했다고 한다. 이곳엔 괴테가 친필로 남긴 습작노트, 절친한 친구였던 쉴러와 주고받았던 편지, 심지어 조그마한 쪽지까지 고스란히 보관돼 있어 대문호를 아끼는 독일인들의 정성이 느껴진다.
18세기 복장의 가이드는 방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마치 자신이 괴테인 양 “아버지는 제가 법률가가 되길 원했지만 전 이미 셰익스피어에 빠져 있었다”고 천연덕스럽게 설명한다. 괴테는 이 집 3층의 왼쪽 방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의 초안을 구상했다고 전해진다.
#아이제나흐-아름답고 신비로운 성에 서다
아이제나흐부터는 구 동독지역에 속한다. 프랑크푸르트의 헤센주에서 튀링겐주 경계지역을 고속도로로 통과할 땐 동·서독을 갈랐던 옛 장벽의 흔적이 눈에 띈다. 그러나 오랜 분단기간도 훼손하지 못한 자연풍경만큼은 아직도 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고속도로 양 옆엔 푸른 들판과 샛노란 유채꽃밭이 보색대비를 이루며 바둑판처럼 교차돼 지평선 끝까지 닿는다.
아이제나흐는 특히 루터와 인연이 깊은 도시다. 루터가 1521년 성서를 번역했던 곳이 바로 이 도시의 바르트부르크성이다. 성 안의 박물관에는 루터의 친필메모가 담긴 성경 등이 전시돼 있다.
바르트부르크는 항상 안개에 둘러싸인 신비한 성. 1067년 루트비히 백작이 이 땅을 처음 발견하고 ‘기다려라(Wart!) 이 산에 나의 성(Burg)이 선다’고 말한 데서 이름이 유래됐다. 높은 산 위에 세워졌기에, 성의 장벽에서 내려다보는 전망 또한 일품이다. 이 성엔 하나의 전설이 전해내려온다. 13세기 초 성의 무대홀에선 미네징거(궁정연희가수)들의 목숨을 건 노래경연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면 바로 목이 날아가는, 처절한 대회였다. 이는 훗날 바그너의 ‘탄호이저’ 모티브가 된다.
#에르푸르트-나폴레옹과의 인연을 되새기다
에르푸르트는 나폴레옹이 자신의 관저로 괴테를 초대해 만났던 도시. 나폴레옹은 전쟁 중에도 ‘베르테르의 슬픔’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괴테의 팬이었다고 한다.
또 이곳은 1505~1511년 루터가 수도를 닦은 오거스티니안 성당으로도 유명하다. 루터가 명상을 하며 돌던 회랑과 그가 기도하던 제단도 볼 수 있다. 성당 안에는 여행객들을 위한 호텔도 있는데, 호텔 방에는 달랑 침대와 옷장뿐이다. TV, 전화, 라디오는 일절 찾아볼 수 없다. 저녁 8시에 취침, 새벽 2시에 일어나 기도했던 루터의 수도생활을 체험해 보라는 의도다.
크래머 다리도 놓칠 수 없는 에르푸르트의 관광명소. 다리 위에 도예나 레이스 공예품을 취급하는 작은 목조가게들이 늘어서 있어 그저 예쁘고 아기자기한 골목인 줄 착각하기 쉽지만, 터널처럼 보이는 골목 끝을 통과한 후에야 그것이 다리였음을 깨닫게 된다. 하천과 다리 주변의 잔디밭은 피크닉을 온 가족, 연인들로 항상 붐빈다.
#바이마르-은행잎에 깃든 사랑을 기억하다
괴테가도의 절정은 역시 바이마르이다. 괴테는 이 도시에서 그가 평생 사랑했던 두 명의 여성, 샤롯테와 크리스티아네를 만났다. 괴테의 사랑은 잎이 두개이자 하나인 은행잎으로 상징되는데, 지금도 바이마르 곳곳에선 은행잎 형상의 브로치·귀고리 노점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괴테가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던 집은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괴테의 ‘색채론’에 기초한 컬러풀한 벽지, 이탈리아 여행에서 수집한 각종 예술품, 6,500여권의 책들로 가득한 서재, 그리고 그가 ‘파우스트’를 썼던 작업실은 세월이 무상하게도 원래 가구 배치 그대로 보존돼 있다. 눈앞에 괴테가 앉아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 것처럼. 괴테는 죽을 때 “나에게 빛을 좀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고, 지금도 괴테가 태어난 날에는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박물관을 방문해 촛불을 켠다.
#라이프치히-대문호의 대학시절을 상상하다
괴테가도의 끝인 라이프치히는 바흐와 멘델스존이 활약한 음악의 도시. 이곳 토마스 성당은 바흐가 1723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오르가니스트 겸 합창단 지휘자로 근무한 교회이다. 해마다 5월엔 여기서 바흐 음악제가 열린다.
이처럼 화려했던 역사적 배경 때문에 통일 후 서독은 라이프치히 재건에 가장 많은 돈을 투자했다. 라이프치히 대학은 한때 괴테가 아버지의 강요에 못 이겨 법학을 공부했던 곳이기도 하다. 동독시절 ‘칼 마르크스 대학’이라 불렸던 라이프치히 대학은 동독이 무너지자 이름을 ‘괴테대학’으로 바꾸고 싶어했지만 이미 프랑크푸르트에 괴테의 이름을 딴 대학이 있어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고 한다.
독일의 자랑이자, 전세계의 자랑인 괴테. 괴테가도 여행에서 돌아온 후 제일 먼저 할 일은 사춘기 이후 한번도 꺼내보지 않았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다시 한번 들춰보며 먼지를 털어주는 일이 아닐까.
-알아두면 즐거운 독일여행 Tip-
▲일반정보 : 독일 날씨는 매우 변덕스럽다. 햇빛이 날 때는 땀이 날 정도로 덥다가도, 갑자기 비가 내리면 뼛속까지 추워진다. 여름에도 반드시 긴팔 겉옷과 우산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유로화를 쓴다. 환율은 1유로당 1,300원 안팎.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빠르다.
▲레일패스출국전 여행사(레일유럽 02-3789-6100)에서 미리 끊어 가는 것이 편하다. 독일 기차를 허용된 기간 동안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어 경비가 절약된다. 월드컵 때 각 도시의 경기장을 순회할 사람에겐 더욱 좋다. 특히 2인이 같이 다닐 경우 트윈패스를 사면, 한사람의 요금이 절반으로 할인된다. 라인강 유람선과 유럽버스 요금도 무료이거나 할인혜택이 있다.
기차를 이용,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땐 적어도 두번 이상 갈아탈 것을 각오해야 한다. 낯선 나라에서 시간과 플랫폼을 때맞춰 찾기란 쉽지 않은 일. 허둥지둥하느니 속편히 DB라 쓰여진 역 안내데스크에 가서 안내받는 것이 안전하다. 목적지를 말하면 갈아타야 할 열차번호와 플랫폼 및 시간이 적힌 리스트 종이를 뽑아줘서 편리하다.
▲항공권루프트한자(02-3420-0400)에서 운영하는 저먼윙스(www.germanwings.de)나 독일 최대 여행사인 투이여행사(www.hlx.de) 사이트에서 할인판매하는 값싼 항공권을 미리 사놓는 것도 절약의 지혜다. 독일내 이동시엔 목적지에 따라 비행기값이 19유로까지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시내 교통패스하이델베르크나 프랑크푸르트 등 주요 도시에선 유효기간 동안 트램, 지하철, 버스 등 모든 교통수단을 마음대로 탈 수 있는 패스를 판매한다. 관광안내소나 지하철역의 자동판매기에서 살 수 있다. 호텔 체크인 카드가 지원되는 곳도 있으니 미리 알아보고 숙소를 정하는 것이 좋다.
◈ 로만틱가도
# 98 로만틱가도의 볼것들
아래의 그림은 로만틱가도에 대한 정보를 볼수 있는 사이트에요^^
아래 개구리 그림을 누르시면 각도시에 대한 정보 숙소 등을 볼수 있어요 숙소는 호텔이네요^^;;
# 93 본 마인츠 로맨틱가도
본 Bonn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의 임시수도였다. 라인강(江)이 라인협곡을 이탈하여 쾰른 저지(低地)로 흘러내리는 부근의 좌안(左岸)에 위치한다. 원래 한적한 소도시였으나, 1949년에 임시수도가 된 뒤 급격히 발전하여 주변으로 도시가 확대되고, 특히 국도(國道) 9호를 따라 남부지역의 도시화가 현저해서, 1969년에는 바트고데스베르크와 그 주변지역을 합병하였다.
본의 옛 시역(市域) 안에는 라인강변에 국회의사당이 신축되고, 관청가인 코블렌츠가(街)에 대통령관저·수상관저와 몇몇 정부기관이 자리하는 외에 많은 정부기관이 바트고데스베르크를 비롯한 시 주변지역에 산재되어 있다. 한편, 사무용가구·사무용품·인쇄·출판 및 도자기·경금속·담배 등 공업도 새로이 일어나고, 보험 기타 업무활동도 활발하다.
쾰른과의 사이에는 1932년에 완성된 독일 최고(最古)의 아우토반(자동차 도로)이 통하고, 코블렌츠와의 사이에는 관광선(觀光船)이 운항된다. 시내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뮌스터 교회(11∼13세기), 쾰른 선거후(選擧侯)의 거성(居城)이었던 프리드리히빌헬름대학(1818), 라인 향토박물관, 알렉산더왕(王) 박물관, 바로크 양식의 시청 청사, 베토벤의 생가(生家), 콘서트홀인 베토벤홀 등 역사적인 건물과 문화시설이 있다. 본은 일찍이 켈트인의 취락이었으나, 1세기 중엽에 로마의 성채(城砦) ‘카스트라보넨지아(Castra Bonnensia)’가 설치되어, 오늘날의 본의 도시명의 기원이 되었다.
로마의 도시로서의 본은 자주 만족(蠻族)의 침해를 받았고, 특히 민족 대이동의 혼란기에는 철저히 파괴당했으나, 그 뒤 프랑크족(族) 지배 아래 게르만의 도시로서 재생, 복구되었다. 1244년 쾰른의 대주교에 의해 도시권(都市權)이 부여되고, 쾰른 선거후인 대주교가 그곳에 궁전을 둠으로써 크게 번영하였다. 1801∼1804년은 프랑스령, 1815년에 라인란트와 더불어 프로이센령이 되고, 빌헬름 3세에 의해 대학이 신설되어, 19세기에는 독일 문화생활의 한 중심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949년에는 이곳에서 제헌의회(制憲議會)가 열려 독일연방공화국이 성립되고, 본은 그 임시수도로 정해졌다.
베토벤하우스
루트비히 반 베토벤이 출생하여 22세까지 살았던 집이다. 1층 전시실에는 베토벤이 어린시절 연주했던 오르간·비올라와 베토벤의 자필 악보, 영원한 연인이었던 테레제의 초상화, 유품 등이 전시되고 있다. 2층 전시실에는 베토벤의 대리석 흉상이 놓여 있는데 이 방에서 베토벤이 태어났다고 한다. 3층에는 베토벤의 흉상, 데드마스크, 그가 사용하던 보청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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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츠 Mainz
마인강이 라인강과 합류하는 지점의 서안(西岸)에 위치한다. 로마시대에 건설되어 모군티아쿰(Mogontiacum)이라 불렸다. BC 13년에 로마의 드루수스가 성채를 건설한 것이 시초이며, ‘독일인 사도(使徒)’ 보니파키우스의 노력으로 747년에 대주교구청이 설치되고(1802년까지), 이후 마인츠 대주교는 1000년경부터 왕의 대관권(戴冠權)을 가졌다. 1254년에는 라인도시동맹의 중심으로서 자유도시가 되었으며, 1356년부터는 선제후령(選帝侯領)이 되었다.
주(州)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이며, 975년에 건설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돔(dome), 가톨릭 주교좌·대학·가톨릭신학교·국립미술공예학교·기능공회의소·상공회의소·철도관리국·지방법원 등이 있다. 포도재배지 라인란트팔츠의 중심에 있어서 포도주 양조업도 성하다. 인쇄술의 발명자 J.구텐베르크의 출생지이며, 그를 기념하여 지은 마인츠대학교와 인쇄박물관이 있다.
구텐베르크박물관:
1900년에 처음 만들어진 구텐베르크 박물관은 구텐베르크의 작업장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으며 구텐베르크의 초기 작품들도 여러 점 전시하고 있다
구텐베르크:
마인츠 출생. 1434~1444년경 마인츠를 떠나서 스트라스부르에 있을 때 인쇄술을 발명하기 시작하였다. 마인츠로 돌아와서 1450년경에 금은세공사 J.푸스트와 함께 인쇄공장을 만들어 천문력(天文曆)이나 면죄부(免罪符) 등을 인쇄하였다. 2~3년 후에는 기술이 향상되어 《36행 성서》와 《42행 성서》를 인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구텐베르크 성서》이다.그 때까지의 인쇄기는 아마포 압축기(亞麻布壓縮機)와 비슷하였는데, 틀에다 양피지(羊皮紙)를 바른 것으로 인쇄지를 고정시키는 개량을 하였다. 활자의 주형(鑄型)은 주석과 납의 합금이었으며, 그 주조법도 납땜 세공사의 손에 의하여 고도로 발달해 있었다. 그러나 1455년 그의 사업은 결국 파산하게 되어 출자자인 푸스트에게 부채의 보상으로 인쇄공장을 양도하였다. 그 후에는 푸스트와 푸스트의 양자 P.쇠퍼가 활자주조기술의 개량을 계속하였다. 후일 구텐베르크는 C.후메리의 원조로 인쇄공장을 재건하였으며, 1460년경 《구텐베르크 성서》라고 하는 성서를 출판하였다. 그것은 1760년 추기경(樞機卿) 마자랭의 문고(文庫)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마자랭 성서》라고도 한다. 마인츠에서 성행하던 인쇄업은 1462년 마인츠시(市)의 대주교 자리를 노리던 나소왕(王) 아돌프 2세의 약탈로 파산하였으며, 구텐베르크는 많은 제자들과 함께 편력(遍歷)의 길에 나섰다. 그 후로 인쇄술은 마인츠로부터 남독일로, 전유럽으로 보급되었으며,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을 촉진하였다. 후일 그는 아돌프 2세의 초청을 받았으며, 일종의 연금(年金)을 수여받았다.
마인츠대성당:
975년 오토 2세가 착공하여 1037년에 완공하였으며, 1081년에 불타버린 것을 12세기 말~13세기 초에 재건하였다. 이때 일부 구조물 등에 고딕 양식이 도입되었다. 십자형 구조로 동서에 내진(內陣)이 있고, 내진을 양쪽에서 끼고 있는 2개의 소탑(小塔) 외에 2개의 대탑(大塔)이 있다. 서쪽의 대탑은 1767년의 화재 후에 완성되었고, 동쪽의 대탑은 원래 고딕 양식이었으나 19세기에 네오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개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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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틱 가도 Romantische Strasse
독일 중남부의 뷔르츠부르크에서 남쪽으로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에 가까운 퓌센까지의 약 300km에 이르는 도로의 호칭이다. ‘로맨틱 가도(街道)’를 뜻하지만 호칭의 기원은 오래 되지 않았다.
이 가도를 따라서 로텐부르크, 뇌르틀링겐을 비롯한 중세의 모습이 남아 있는 소도시들이 연달아 있으므로, 제2차 세계대전 후 관광객 유치를 위하여 개발되었다. 퓌센 근처에는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가 건조한 노이슈반슈타인성(城)이 있다.
뷔르츠부르크
마인강(江)에 면하여 있는 도시로 원래 켈트족(族)의 정착지였으며 704년 피르테부르흐(Virteburch)로 문헌에 처음 언급되고 있다. 741년 보니파키우스(Bonifacius)에 의하여 주교 관구가 되었다. 10세기경 프랑켄 공국이 해체된 뒤 주교가 신성로마제국의 영주로서 마인강 양안의 광대한 영지를 관할하였다. 1168년에는 주교가 동프랑켄 공작을 겸하였다. 농민전쟁 동안 주교는 일시적으로 영지를 반군에게 상실하였지만(1524∼1525) 마리엔베르크성(Marienberg 城)에서 괴츠 폰 베를리힝겐(G tz von Berlichingen)에 대항하였다. 17세기와 18세기에 들어와 역대 영주 겸 주교는 이 도시를 유럽에서도 가장 훌륭한 주거지로 변모시켰으며 1582년에는 뷔르츠부르크대학을 설립하였다. 19세기에 인류학자이자 병리학자인 루돌프 피르호(Rudolf Virchow)와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Wilhelm R熙 ntgen)이 이 대학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1801년 뤼네빌화약 이후 정·교가 분리되자, 뷔르츠부르크는 1803년 바이에른에 일시 속하였다가 1805년에는 뷔르츠부르크 대공국으로 별도의 선제후 영지가 되었지만 1815년에 다시 바이에른으로 귀속되었다. 1821년 새 주교 관구가 설치되었다. 공업도시이자 포도주 산지의 중심에 위치하며 철도와 수운이 발달하였다. 기계, 전자, 의류, 식품 등의 제조업이 활발하며 양조 및 출판도 성하다.
주목할 만한 건축물로는 요한 B. 노이만(Johann B. Neumann)을 비롯한 국제적 건축·회화·조각 전문가들이 18세기에 건립한 주교의 궁전(1981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과 조각가 틸만 리멘슈나이더(Tilman Riemenschneider)의 작품이 소장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11∼13세기), 후기 고딕 양식의 예배당인 마리엔카펠레(Marienkapelle), 중세에 건축된 마인교, 13세기 중엽부터 18세기까지 주교의 궁전이었던 마리엔베르크성 등이 있다. 성 내에 있는 성당은 706년에 건립된 것으로 독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 된 성당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로만틱가도의 첫 관문인 뷔츠부르크는 '풀잎 언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도시는 '작은 프라하'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세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인데,제 2차 세계대전때 90%이상 파괴되었던 것을 다시 복원시켰다고 한다.독일 지폐 50마르크의 배경으로 쓰여지기도 했다.
마리엔부르크성
마인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한 이 성은 1201년 처음 건축되기 시작한 것으로 원래는 게르만족의 성채가 있던 자리였다. 당시 이 지역의 통치권을 가지고 있었던 대주교가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세웠다. 성 주변은 중세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성벽 안쪽으로는 이 지역 특산물인 프랑켄 와인과 각종 생활용품들을 전시한 프랑켄 박물관이 있다. 이 성에 오르면 뷔르츠부르크 도시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로텐부르크오프데어타우버
타우버강(江)의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지명은 '타우버강 위쪽에 있는 로텐부르크'라는 뜻이며, 줄여서 로텐부르크라고도 한다.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9세기로 로텐부레로라고 표기되어 있다. 슈타우펜왕조 때 지은 요새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하였다. 1274~1803년에 자유제국도시로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다가 17세기의 30년전쟁 이후 쇠퇴하였다. 중세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 '중세의 보석'이라 일컬어지며, 이 곳을 찾는 관광객이 연간 100만 명에 이른다. 13~16세기에 지어진 시청사에는 높이 60m의 종탑이 있는데,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장크트야코프교회에는 틸만 리멘슈나이더(Tilman Riemenschneider)의 나무 조각 작품인 《최후의 만찬》이 있다. 이 밖에 중세범죄박물관, 장난감박물관 등도 있다. 주요 산업은 섬유업·인쇄업·플라스틱제조업·전자부품업 등이다.
마르크트광장
로텐부르크 중심부에 위치한 광장으로 시청사와 시의원연회관 등의 건물이 있다. 로텐부르크 시청사는 르네상스 양식과 고딕 양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건물로, 62m 높이에 탑에 오르면 로텐부르크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마르크트 광장의 또 다른 명물은 시의원연회관 벽에 있는 벽시계인형인데 오전 11시부터 오후5시까지 매시 정각마다 시계 창문이 열리면서 인형극이 공연된다. 마이스터 트룽크라고 불리는 인형은 30년 전쟁 당시 스페인 장군으로부터 포도주 한 통을 단숨에 마시면 시민을 학살하지 않겠다는 제안을 받고 자원해서 포돝?한통을 다 마셔 시민들을 구해낸 시장의 이야기를 재현하고 있다고 한다.
성야곱 교회
1300년부터 190년이 걸려서 완성된 로텐부르크의 상징적인 교회이다. 고딕 양식의 건물인데, 내부에는 리멘슈나이더의 〈최후의 만찬〉 양각을 비롯하여, 중세미술의 걸작들이 소장되어 있다. 주 제단인 〈12사도의 제단〉은 15세기에 만들어진 문이 달린 작품이다. 이 밖에 파이프 오르간과 스테인드글라스도 훌륭하다.
딩케스빌:
로텐부르크보다 더 작은 규모의 딩케스뷜은 중세 도회지의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곳 중에 하나이다. 뒹케스뷜은 4개의 탑과 문을 갖춘 성벽에 둘러싸여 있는데 성벽의 보존상태는 거의 완벽하다고 한다. 뒹케스뷜에서는 해마다 7월 중순에 '어린이들의 축제(Kinderzeche)'가 열리는데, 이것은 30년 전쟁 때 스웨덴의 장군으로부터 도시를 구해낸 어린이들의 마음을 감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성게오르그 성당:
마르크트 광장의 서쪽에 있으며, 15세기에 세워진 남부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후기 고딕 양식의 교회이다. 첨탑에 올라가면 성벽에 둘러싸인 붉은 지붕의 시가지와 교외의 아름다운 전원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우크스부르크 시가지
뮌헨 북서쪽 64km 지점, 독일 알프스 산지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레히강(江)과 베르타흐강이 합류하는 삼각지점에 있다. 아우크스부르크의 기원은 BC 15년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에 설정된 군단 주둔지가 된 데서 비롯되며, 시의 명칭도 황제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로마 시대에는 라에티아 지방의 주도(主都)였으며, 8세기에는 교구청이 설치되었고, 1276년 제국 직할도시가 되었다. 중세 이후에는 통상도시로서 알프스 북쪽 기슭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었으며, 상업의 번영과 함께 양모공업·마직물 등의 수공업도 활발하였다. 15세기 후반 이후에는 푸거가(家)·벨저가 등의 재벌이 출현하여 유럽 각지의 상업·금융업에 크게 활약해서 아우크스부르크의 번영은 절정에 이르렀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문화의 중심지로 H.홀바인, H.부르크마이어 등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예술활동이 활발하였다. 17세기 전반에 건설된 시(市)청사는 독일 르네상스 건축의 대표작이다. 종교개혁 당시에는 이따금 제국의회가 열렸다. 1530년에는 신구 양교의 조화를 이룩하기 위한 아우크스부르크 국회가 열렸으며, 1555년 종교개혁의 결과를 알린 아우크스부르크의 화의도 이곳에서 체결되었다. 17세기 이래 대서양 항로의 발견으로, 상업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짐에 따라 쇠퇴하기도 하였으나, 근세에 이르러 다시 공업도시로 부흥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영국과 미국 공군의 폭격에 의해서 시가가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완전히 재건되었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독일 북부로 통하는 주요 가도 연변에 위치하여 중세부터 상업 중심지로서 발달하였다. 수력이 풍부하여 산업혁명 초기부터 공업이 발달한 이래, 기계·내연기판·금속·화학·전기기기 등의 공업이 활발하여 뮌헨·뉘른베르크 등지와 함께 남부독일의 공업중심지를 이룬다. 9∼15세기에 건설된 돔은 청동문으로 유명하며 내부도 아름답다. 푸거 박물관·모차르트 박물관 등이 있다.
성울리히아프라성당
개신교교회와 가톨릭교회가 나란히 서 있다. 두 교회는 성인 아프라와 울리히의 무덤이 있는 자리에 지어졌는데 가톨릭 교회의 제단 장식의 매우 아름답다.
아우크스부르크 시청사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1615년에 건설되었다. 넓은 시청사 광장에 면하여 우뚝 솟은 7층짜리 건물이다. 광장 맞은편에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기념하여 1594년에 만든 분수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내부의 '황금의 방'이 불탔는데, 1985년에 시민들의 헌금으로 복구되었다. 옆에 솟은 78m의 페를라흐탑은 시가지를 조망하는 전망대 구실을 하고 있다.
퓌센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지대 인근의 알게우알프스산맥 동쪽 끝 레히강(江) 연안에 있다. 옛 로마제국의 국경초소가 있던 지역이며 628년에 세워진 베네딕투스회 성마그누스수도원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다. 1294년 자치시가 되었다. 1745년 이곳에서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에서 바이에른군대를 철수시키는 조약이 체결되었다. 현재의 성마그누스수도원과 교회는 1701년에서부터 1917년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지은 것인데, 교회의 지하실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되어 있다. 도시에서 4km 떨어진 곳에는 슈반가우 숲이 펼쳐지는데, 그 숲 한자락에 월트디즈니가 디즈닐랜드의 성을 지을 때 모델로 삼았다는 노이슈반슈타인성이 있다. 이 성은 중세 기사 전설에 매료된 바이에른 국왕 루드비히 2세가 지었다. 관광 휴양지이며 겨울 스포츠의 중심지이다. 주요 생산품은 의류와 밧줄이다.
호엔슈반가우성
노이슈반슈타인성과는 계곡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낮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는 성이다. 막시밀리안 2세가 1832~1836년 사이에 건설한 네오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다. 성의 내부는 동양의 미술품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중세기사의 전설을 그려놓은 벽화 등도 볼 수 있다.
노이슈반슈타인성
퓌센 동쪽에 있는 이 성은 부왕(父王) 막시밀리안 2세가 사들인 슈방가유 재지귀족(在地貴族)의 옛 성채의 하나로서, 1869년부터 짓기 시작하였으나 1886년 루트비히의 죽음으로 공사가 중단된 채 남아 있다. 루트비히가 1867년에 방문한 적이 있는 발트부르크 성채와 베르사유 궁전 등을 그 전형으로 삼았다. 독특하고도 낭만적인 느낌을 주는 성으로, 이 성을 본떠 만든 것이 바로 디즈니랜드성이다.
# 82 강추 ... 마리엔 다리( 퓌센 )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상 퓌센은 가는듯 하다.
사실 퓌센에 대한 기대를 잔뜩 하고 간지라 ....
우선 퓌센 기차역에서 내려서 ... 대부분 버스를 타고 올라간다.
하지만 .. 30~40분정도 걸어 올라가면 ... 올라가는 길에 주위의 풍경도 멋지고
(우리가 갈땐 날씨가 좋아서 더 그랬다 ^^) 겨울이라 눈도 적당히 쌓여 있고 ...
그렇게 걸어 올라와서 성을 보면.. 사실 별로 감흥이 없었다 .. 너무 기대를 해서 인지
성 자체만 봐서는 그렇게 걸어서 올라온 가치를 못했다..
그치만 .. 마리엔 다리를 가보면 ... (겨울은 막아놨지만 ... 그 막아논 길 넘어서 가면 갈수 있다)
사람들 많이 넘어간다 ~~ 안가면 후회 한다.
가서 성을 바라보면 ... 뜨악 ~~~~~~~~~~~~~~~~ 최고다 ..
꼭 마리엔 다리에서 성을 바라보도록 ... 그곳에서 사진 찍어야 더 멋지게 잘 나오기도 한다
# 47 오페라가 숨쉬는 아름다운 성-노이슈반슈타인
오페라가 숨쉬는 아름다운 성-노이슈반슈타인
맥주의 고장 뮌헨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 유럽의 지붕 알프스의 거대한 산맥 북쪽 언저리 퓌센이라는 마을의 나지막한 산 중턱 위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애달픈 사연을 간직한 성이 하나 놓여있는데 이름하여 노이슈반슈타인, 일명 ‘신(新)백조의 성’이라 불리는 성이다. 오늘도 전 세계로부터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이 성은 외벽이 흰 색과 베이지 색의 대리석을 사용하여 날씬하며 우아한 자태로 건축된, 중세의 중후한 멋을 풍기면서도 무겁게 가라앉지 않고 밝은 색조를 띄며, 지붕 위에는 비대칭적인 여러 개의 푸른 원추들이 예술성을 더하고 유럽풍의 바탕에다 아랍의 특이한 문양을 가미한 듯한, 그야말로 동화 속에서나 꿈꿀 수 있을 법한 신비한 모습의 성이 멀찌감치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방문객의 마음은 설레기 시작한다.
이 성을 지은 사람은 루드비히 2세. 그는 당시 독일 남부의 바이에른 왕으로서, 1845년 8월 25일에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와 어머니 마리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감수성이 유별나게 예민하고 특히 성장하면서부터는 시와 음악, 그리고 미술과 같은 예술분야에 심취하기 일쑤였고 일찍이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이 성을 자신이 직접 설계하게 된 계기가 된다.
1861년 2월 2일 그가 16세 되던 해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관람한 뒤부터 바그너의 열성적인 팬이 되기 시작했고 그것이 그의 나머지 인생과 바그너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1864년 타계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약관 18세에 왕위에 오르게 되었으나, 이제는 과거와 같은 절대군주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자유화와 자본주의 시대가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하여 상황이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 더군다나 체질적으로 워낙에 정치에는 소질이 없었고 음악과 시와 미술과 같은 예술세계속으로 빠져들기 좋아하는 심약하고 감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으므로 궁전이 있는 뮌헨을 가급적 피하려 들었고 오히려 궁전을 떠나 남부지방의 알프스 부근의 전원에 있을 때 더욱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다.
1870년 초가 되자 유럽의 정치적인 상황이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러시아와 프랑스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충돌에 휘말리게 된다. 특히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한 이후로는 더욱 더 성을 짓는 일에 몰두하고 정치에는 흥미와 자신감을 잃게 되었다. 선천적으로 예술가로 태어나 평생 성만 짓다가 죽었다고나 할까. 루드비히 2세는 41세의 젊은 나이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만다. 침실에서 자던 어느 날 새벽 왕은 정적에게 납치 당하여 슈탄베르크 호수의 요양소에 강제로 연금을 당하게 된다. 왕은 요양소에 갇힌지 사흘만에 자신의 주치의인 구텐박사와 함께 물에 빠진 채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1886년 6월 13일의 일이다. 이 죽음은 아직까지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는데, 그 이유는 우선 루드비히 2세는 1미터 90정도의 큰 키의 소유자인데다 어릴 때부터 선수에 버금 가는 수영실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의 죽음은 두 가지로 추정되고 있는데 첫째는 왕의 무능을 보다 못한 정적에 의해 살해되었을 가능성과 두 번째로는 강제 연금된 자신을 비관해 자살을 시도하였는데, 이때 그를 말리던 구텐박사는 실수 또는 고의로 물에 빠졌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살아 생전 성을 세 곳에 지었지만 그나마 완성된 곳은 신 백조의 성 하나뿐. 그러나 이 성 역시 1869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17년 동안 지었음에도 3분의 2밖에는 완성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루드비히가 왕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개인 재산을 모두 털어 지었으며 때로는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거나, 조금씩 돈이 생길 때마다 지었기 때문이었다. 루드비히가 죽을 무렵에는 축성에 따른 빛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무려 1천4백만 마르크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게 정성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루드비히 2세가 이 성에 살았던 것은 겨우 6개월 정도밖에 안되었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왕은 매우 성격이 여성스러우며 동물들, 특히 오페라 ‘로엔그린’에 등장하는 백조를 너무나도 좋아하여 성 안의 문고리는 모두가 백조의 모양을 하고 있고 벽화와 커튼의 장식에도 역시 많은 백조가 그려져 있다. 이토록 왕이 백조를 좋아하자 사촌누이이자 오스트리아의 공주인 소피 샤를로트는 루드비히 2세에게 백조모양의 커다란 화병을 선물했다. 흰색의 백조모양을 한 이 화병은 백조의 발을 잡아당기면 밑으로 물이 빠짐으로서 물을 갈아주는데 편리하도록 설계된, 왕을 위해 특별히 주문한 것이었다. 소피는 나중에 이 왕과 약혼을 하기에 이르지만 결혼식 직전에 파혼하게 된다.
이 성은 산 중턱의 명당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예로부터 규모가 큰 건축물은 예로부터 호숫가나 강가에 짓는 것을 당연시했는데, 마치 사람처럼 그 모습을 물에 비쳐본다는 그러한 의미이다. 이곳이 명당이라고 하는 이유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3면이 각각 ‘반발트씨에’, ‘알펜지’ 그리고 ‘호프남제’ 등 세 개의 호수를 가까이에 두고 있어 성의 모습을 세 곳에서 비쳐볼 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대 규모의 성의 설계는 건축가가 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놀랍게도 이 성은 루드비히 2세와 뮌헨의 국립극장의 무대작가가 설계하였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당시까지 널리 사용되었던 보편적인 건축양식을 떠나 전혀 새로운 양식으로 아름답게 디자인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성 내부의 모든 그림은 뮌헨 미술대의 교수와 학생들에 의해 그려졌다. 성의 건너편 계곡 너머에는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가 생전에 지은 노란 색의 구 백조의 성이 저만치 발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루드비히 2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죽었다. 그가 결혼을 하지 않았던 이유도 분분한데, 첫째는 그가 바그너와 동성연애를 한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하지만 바그너는 당시 유명한 음악가이자 시인이었던 리스트의 딸과 결혼하기 전이나 그 후에도 여러 여자를 섭렵하는, 여자를 너무 밝히는 사람이었으므로 동성연애자라는 것은 당치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동성연애자도 두 종류가 있다고 하는데 한가지는 남자만 좋아하는 동성연애자가 있는 반면, 남자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하는 동성연애자도 있다고 함으로서 왕이 총각으로 살다가 죽은 이유는 그가 죽음을 당한 이유만큼이나 베일에 쌓여있다.
성 내부에는 그가 죽기 전 까지 지냈던 여러 공간들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는, 오리지날한 형태의 모든 방과 집기들을 볼 수가 있다. 접견실에 옥좌가 없는 것으로 보아 옥좌를 놓을 접견실이 완성되기 전에 왕이 사망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왕이 죽은 후 성 안의 미완성된 부분은 더 이상 공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죽은 다음에 완성시키는 것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키가 1미터 90센티였을 정도로 큰 왕이었으므로 침대의 길이는 2미터 10센티가 되었고, 문마다 손잡이는 보통 사람의 가슴에 닿을 정도로 높이 달려있다. 콘서트 홀, 또는 가수의 방이라는 커다란 방에는 바그너의 오페라 가운데 ‘영웅전’의 배경 그림으로 장식하였으며 1909년 처음으로 이곳에서 연주회를 가지게 된다. 이 성에는 왕의 초상이 어디에도 없는데, 이유는 왕이 자신의 초상이 남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이 콘서트 홀에만 그나마 초상대신 왕가의 문장만 남아있을 정도이다. 이곳에는 또한 성모마리아의 그림과 조각이 있는 아름다운 예배당이 있어, 그가 생전에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음을 보여준다. 생전에 바그너의 오페라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성안의 거의 모든 벽화는 바그너의 오페라의 등장인물과 배경으로 장식되었다. 마치 바그너를 위한, 아니, 바그너만을 위하여 지어진 성이라는 느낌이 오히려 강하게 들 정도이다. 거실에는 오페라 ‘파르치팔’과 ‘로엔그린’의 배경과 등장인물들이 아름다운 회화로 그려져 둘러싸여 있고 창 쪽의 코너에는 사촌누이로부터 선물 받은 백조 모양의 화병이 놓여 있다. 거실에서 외부로 이어지는 통로는 오페라 ‘탄호이저’에 나오는 동굴을 인공으로 만들어 놓았을 정도이며, 나머지 방들에도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겐의 반지’를 비롯한 바그너의 주요 오페라의 회화들로 가득 차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생전에 바그너는 이 노이슈반슈타인 성에는 단 한 차례도 와보지 않았다. 루드비히를 만났던 곳은 이 성 건너편의 호숫가에 있는 호엔슈방가우 성으로서, 루드비히의 아버지 막시말리안 2세에 의해 세워진 노란색의 여름 별궁이다. 이 호수에는 많은 백조가 있어서 루드비히가 백조를 특히 좋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 103 [TRAVEL FEATURE]독일③ 뷔르츠부르크, 신이 너희를 행복케 하리라
(연합르페르)
뷔르츠부르크의 밤은 길었다. 중세시대부터 주교의 직할지였던 이곳은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을 묵묵히 감내해야 했다. 후세의 자손들이 '암흑의 시기'라고 별명을 붙인 유럽의 중세는 종교의 권세 아래에서 위대하신 절대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때였다.
눈을 뜨고 세상을 주시할 수 있는, 신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며 고지(高地)에 사는 영주와 성직자를 바라볼 수 있는, 그러한 자유는 없었다. 욕구는 있었으되,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깜깜했고 우울했다.
뷔르츠부르크 최초의 주교인 킬리안(Killian)은 7세기 후반 원주민 켈트 족 어부들이 거주하던 마리엔베르크(Marienberg)에 성당을 세웠다. 13세기에는 성전의 사위를 방벽으로 둘러 요새화했다.
이 지역에 가톨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고, 뷔르츠부르크 주교에게 부여된 영지는 점차 늘어났다. 그러나 그들이 호의호식하는 동안 평민들은 악의악식했다. 높은 세율과 고된 노동은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삶의 방식이었다.
마르틴 루터에 의해 촉발돼 독일에 불어 닥친 종교개혁의 광풍마저 뷔르츠부르크를 비켜갔다. 봉기한 농민들이 마인 강(Main)을 건너 마리엔베르크로 올라갔지만 기다리는 것은 참혹한 죽음뿐이었다.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종교의 세력은 주교가 거처를 옮기면서 서서히 허물어졌다.
중세시대를 한참 지난 18세기 예술을 사랑한 주교 쇤보른(Schoenborn)은 당대의 천재 건축가였던 노이만(Neumann)에게 새로운 궁전의 신축을 요청했다. 주교가 낮은 땅에 임할 즈음 이미 시민들은 근대에 익숙해져 있었다.
젊음과 보수의 어울림
인구의 20% 가량을 차지하는 대학생은 젊은 도시로 불리는 까닭이다. 엑스선을 발견한 뢴트겐을 비롯해 노벨상 수상자를 6명이나 배출한 이 대학의 명성은 여전하다.
하지만 90%에 이르는 절대 다수가 가톨릭을 믿고, 청교도 교회는 단 2개뿐인 보수적인 색채 역시 바뀌지 않았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요소는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며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행객이 뷔르츠부르크에서 눈도장을 찍어야 할 곳은 명료하게 정리된다. 주교가 살았던 최초의 성인 마리엔베르크, 훗날의 궁전 레지덴츠, 알테 마인 다리(Alte Mainbruecke)에서 시청을 관통해 역까지 이어지는 보행자 거리다.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자 가장 멀리 떨어진 마리엔베르크부터 들르기로 결정했다.
과거에는 무기고였던 프랑켄 지방박물관을 둘러보고 입구로 걸어갔다. 여느 요새처럼 입구는 터널이었으나 넓고 짧았다. 민중의 침입을 제외하면 스웨덴 군에게 한 번의 공격을 받았을 따름인 마리엔베르크는 2차 대전 중 미군의 기지로 쓰였다.
침략자에 대응하고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좁은 창문은 완전히 막혔고, 산책로는 위압적으로 좌시하고 있는 내성(內城)과 완전히 차단됐다. 마리엔베르크의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여름에는 칼싸움을 재연하고 음악회가 벌어지거나 결혼식이 열린다고 했다.
성에서는 붉은색 삼각형 지붕들이 옹기종기 도열한 뷔르츠부르크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불쑥불쑥 튀어나온 교회를 제외하면 평평했다. 그마저도 시계가 있는 탑만 삐죽 올라가 있어서 시야를 가리지 않았다.
'로맨틱 가도의 출발점'이란 평판답게 낭만적인 풍광이 이곳저곳에서 배어나왔다. 갑자기 15층도 모자라 40층에 도전하고 있는 우리의 아파트들이 부끄러웠다. '건축'의 핵심은 사라지고, '가격'이란 껍데기만 남은 형국인 탓이다.
레지덴츠는 마리엔베르크에 비하면 작지만 세련된 느낌의 건물이다. 'ㄷ'자 모양의 내부에는 방 300여 개가 있고, 이중 20개는 온전히 주교를 위한 것이었다.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천국의 계단’의 아치형 천장에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가져온 재료로 그린 거대한 프레스코가 있다.
화가 티에폴로(Tiepolo)는 대륙을 각기 다른 형상으로 신격화해 그림을 그렸고, 나폴레옹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교의 주거지’라고 칭송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레스코가 온존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 중에 적국인 미군이 지붕을 덮어주었기 때문이다.
산업시설이 없어서 대기가 유난히 깨끗한 뷔르츠부르크는 시티 투어에 ‘싱싱한 폐(Green Lung)’라는 생경한 호칭을 달아놓았다. 그만큼 맑은 자연에 대해 자신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마르크트 광장(Markt Platz)에서 따뜻한 와인을 홀짝이며 숨을 힘껏 들이마셨다. 차갑고 순수한 공기는 가슴을 씻고 머리를 세척한 뒤 여유로움과 안온함을 선사했다.
사진/김주형 기자(kjhpress@yna.co.kr)·글/박상현 기자(psh59@yna.co.kr)
(대한민국 여행정보의 중심 연합르페르, Yonhap Repere)
# 45 독일 뤼데스하임 - 포도향 가득한 숲길 따라 클래식 선율 흐르는 옛 성으로
독일에는 독특한 자랑거리를 간직한 도시와 마을이 많다. 괴테와 베토벤 같은 거장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도시가 있는가 하면 겨우 1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도 있다. 어느 고장을 방문해도 매력적인 도시와 마을을 만날 수 있지만, 최고의 웰빙 여행지를 한 곳만 선택하라면 주저하지 않고 라인강과 니더발트 숲 사이에 자리잡은 아담한 농촌마을 뤼데스하임을 꼽겠다.
“키스처럼 감미로운 와인 향취”
뤼데스하임은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타고 라인강 기슭을 따라 1시간 남짓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있는 아담한 농촌 마을이다. 인구 1만명 가량의 이 마을이 처음 형성된 것은 로마시대. 라인강을 지배한 로마인들이 수량이 풍부하고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이 지역을 와인산지로 개발했던 것이다.
마을의 관문인 유람선 선착장과 기차역을 나서서 100m쯤 걷다 보면 포도밭 가운데 우뚝 선 고성과 마주치게 된다. 붉은 벽돌로 이루어져 고색창연함을 더하는 브렘저성에는 와인에 관한 다양한 자료와 유물이 보관되어 있어 방문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5000여 점의 관련 자료가 전시된 이 박물관에 발을 들여놓으면, 뤼데스하임을 자주 찾았던 대문호 괴테가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을 마시며 느낀 점을 적어놓았다는 글귀가 방문객을 맞는다. 와인이 입술을 통해 혀끝으로 전달되는 순간은 ‘사랑하는 여인과의 첫 키스’만큼이나 감미로웠으며, 와인을 마시기 직전의 감정은 ‘사모하는 사람을 만나기 직전의 설렘’과 비슷하다는 내용. 괴테는 생전에 자신이 뤼데스하임의 와인을 이토록 극찬하는 데는 이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정감 넘치는 분위기도 한몫 했다고 벗들에게 자주 이야기했다고 한다.
예쁘게 꾸며진 뤼데스하임의 티티새 골목 풍경.
그림엽서처럼 아기자기한 뤼데스하임의 레스토랑
봉건시대 영주의 영지와 저택을 개조한 뤼데스하임의 와인농장.
와인박물관 앞으로 뻗은 신작로를 따라 걷다 보면 티티새 골목이 나온다. 서너 명이 함께 지나가기에도 좁은 이 골목에는 수십 곳의 와인과 토산품 판매점, 레스토랑과 카페가 모여 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물건을 고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작은 상점이 있는가 하면 100여 명이 자리를 함께할 수 있는 큰 레스토랑도 있다. 이쯤 되면 단순한 상점골목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공간이다.
흡사 박물관 같은 티티새 골목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와인을 판매하는 가게들이다. 어느 곳에서는 화이트와인만, 다른 곳에서는 레드와인만을 파는 등 제각각 특색이 있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즉석에서 와인을 시음할 수 있게 해놓았다는 것, 또한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는 사실이다. 물론 왕족이나 유명인이 마셨다는 고급 와인 가운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싼 것도 있지만.
라인강 따라 열리는 문화마당
티티새 골목의 여러 자랑거리 중 놓칠 수 없는 것이 분위기 좋은 카페와 레스토랑이다. 온갖 꽃과 조각으로 장식된 입구와 테이블은 그 자체로 예술품인 데다 벽면을 가득 메운 프레스코 벽화와 독특한 간판은 뤼데스하임의 낭만 을 가득 담고 있다.
뤼데스하임에는 먹을거리와 볼거리뿐 아니라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도 다양하다. 그중 게르마니아 여신 동상이 서 있는 니더발트 전망대와 라인강변은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찾는 대표적인 명소. 산보다는 나지막한 동산에 가까운 니더발트에 오르려면 케이블카를 타거나 포도밭 사이를 걸어야 하는데, 취할 듯 강렬한 포도향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후자를 선택한다.
티티새 골목의 와인상점.
포도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일가족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
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포도밭 사이를 1시간 남짓 걸으면 1883년 최초의 독일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게르마니아 여신상을 만날 수 있다. 북쪽으로는 완만한 경사를 따라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이 큰 숲을 이뤄 삼림욕을 즐기기에 좋은 산책코스도 있다.
이 마을의 명성을 높이는 또 한 가지는 라인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고성에서 계절에 따라 열리는 음악회와 연극 등 문화행사들이다. 강변에 드문드문 설치된 공연장에서는 휴식과 문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
어스름 저녁 라인 강변에서 즐기는 클래식 선율은 여행객들이 오랜 전통을 이어온 독일문화의 다양성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달걀과 밀가루를 이용해 만든 뤼데스하임 주민이 즐겨 먹는 후식용 요리.
감자와 고기를 주재료로 쓴 요리. 와인과 함께 먹어야 제격이다.
독일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뤼데스하임에 세워진 게르마니아 여신상.
포도를 재배하는 디오니소스. 은으로 만든 와인 잔에 새겨진 문양이다.
여행정보
인천에서 독일의 관문인 프랑크푸르트까지는 매일 직항편이 운행되고 있으며(11시간 소요), 프랑크푸르트 공항이나 중앙역에서 뤼데스하임까지는 기차(1시간)와 렌터카(1시간30분)를 이용하면 된다. 숙박시설은 충분한 편이고, 산책과 트레킹, 라인강 유람선 크루즈 등이 하루 코스로 좋다. 독일은 비자 없이 3개월간 여행할 수 있으며 렌터카는 국내에서 예약하는 게 저렴하다.
출처 : 신동아
◈ 뮌헨
# 172 뮌헨 시내교통 티켓 및 실시간 날씨
뮌헨대중교통 (U-Bahn 지하철, S-Bahn 외곽철, Tram 전차, Bus 버스)
보통 뮌헨교통망은 1,2,3,4,5,6 등으로 표시된 구역(Ring 링) 또는 색깔로 구분된 구역(Zone 쪼내)을 동시에 사용하는데 예를들어 뮌헨의 모든 관광명소가 들어있는 시내구간 (Innenraum 인낸라움)은 흰색으로 1 쪼내에 해당되고 링으로는 1 부터 4 번 링 까지 해당되죠. 티켓은 역창구에서도 가능하지만 추세가 자판기로 대체되고 있고 사신티켓은 타기전에 입구에서 반드시 말뚝처럼 박아논 상자에 티켓을 집어 넣고 찍어야 합니다. 불신검문에 걸리면 벌금 40 유로 내니까 조심하십시요. 다음요금은 시내구간 (Innenraum 인낸라움)에만 해당됩니다.
0. 보통티켓 (Einzelfahrkarte 아인쩰 카르테)
-2 유로 20 쎈트 >시내구간 편도로 자판기에서 1 자 누름
-1 유로 10 쎈트 > 단거리 구간 (3번째 역까지), 자판기 K 자 누름
목적지 한 방향으로 갈아타거나 중간에 내렸다 3시간 이내 사용가능, 돌아가기나 왕복안됨
1. 씽글 일일티켓 (Single-Tageskarte 씽글 타게스카르테)-4 유로 80 쎈트
한사람이 시내구간을 거리 방향 횟수에 관계없이 다음날 새벽6시 까지 이용허용.
2. 파트너 일일티켓 (Partner-Tageskarte 파트너 타게스카르테)-8 유로 50 쎈트
다섯사람까지 허용.
3. 씽글 3일티켓(Singlekarte fuer 3 Tage 씽글 드라이 카르테)-11 유로 80 쎈트
타조건은 위와같고 3 일간 사용
4. 파트너 3일티켓-20 유로
타조건은 위와 같고 5인 까지 허용
# 46 낭만과 정열 그리고 멋진 풍광이 어우러진 뮌헨(Munich)
절이 바뀔 때마다 나의 무선전화기의 경쾌한 리듬을 노크하는 친구들이 몇 명 있다. 흔히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다는 이런 친구들은 혼잡한 바캉스 인파들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와 지난 휴가에 관련된 추억을 되새기며 일에 열중할 시점에 맞추어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내게 전화를 한다.
이들이 하나같이 던지는 질문은 요즘 여행하기에 좋은 여행지를 추천해 달라는 내용으로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나는 습관처럼 서너 곳을 추천하는데 그중 한 곳으로, 남녀노소가 친구가 되어 맥주를 마시며 즐기는 흥겨운 축제와 흥미로운 볼거리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을 한 곳에서 모두 볼 수 있는 독일 남부의 중심도시 뮌헨을 추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남부 독일 최대의 도시인 뮌헨은 ‘이자르 강가의 아테네’라는 애칭에 걸맞게 도시 전체가 볼거리로 넘친다. 뮌헨을 자주 찾았던 방문객일지라도 대부분 나의 경우처럼 습관적으로 먼저 마리엔 광장으로 향한다. 네오고딕 양식의 시청사, 수천 명이 운집할 수 있는 광장,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교회의 첨탑이 어우러진 마리엔 광장에 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멋진 조각으로 장식된 웅장한 시청이다. 네오고딕 양식으로 이루어진 시청은 1909년에 완성된 건축물로 100m에 달하는 첨탑이 특히 인상적이다. 바이에른의 공작, 성자, 신화와 우화에 등장하는 인물상으로 장식된 첨탑에서 특히 멋진 부분은 중앙에 설치된 ‘글로켄슈필레’라고 불리는 시계탑이다. 매일 11시와 오후 5시가 되면 흥미로운 조각상이 돌아가면서 편종을 울려 대는데 독특한 광경을 구경하기 위하여 찾아오는 방문객으로 광장은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룬다.
뮌헨만큼 세계적인 궁전과 오페라하우스, 박물관, 그리고 극장 등 다양한 문화공간을 갖추고 있는 도시도 드물다. 뮌헨의 명소 가운데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곳은 님펜부르크 성이다. 많은 책자와 관광 안내서에 궁전으로 수록되어 있는 님펜부르크의 공식 명칭은 궁전이 아니라 성이다. 17세기 중반에 건설된 성은 연회장, 초상화를 모아둔 갤러리, 각국의 식물을 엿볼 수 있는 식물원, 그리고 사냥 별장으로 사용했던 아말리엔부르크 등으로 꾸며져 있는데 여러 볼거리 중 으뜸은 기하학적인 패턴과 인공 조형물로 이루어진 드넓은 정원이다.
님펜부르크 성을 장식하고 있는 정원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편안하게 산책과 휴식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어 공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수많은 자랑거리를 간직하고 있는 님펜부르크 정원을 이야기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 자랑거리란 백조와 검은 오리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조류와 야생 토끼 등이 뛰어 놀고 있는 숲으로 숲 속을 걷다보면 자신이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다는 착각 속으로 빠져들게 될 정도로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뮌헨 하면 뭐니뭐니해도 맥주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도시에 자리 잡은 크고 작은 맥주홀은 줄잡아 수백 곳에 이르며 5천 명 이상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맥주홀만도 여러 곳이 있는 뮌헨은 맥주의 왕국이라도 말할 수 있다. 기원전 6000년경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에서 보리를 이용해 만들기 시작한 맥주가 이집트를 걸쳐 물이 안 좋기로 소문난 독일에 도입된 시기는 11세기 초반으로 알려져 있다. 피부와 언어를 떠나 지구촌 가족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알코올성 음료 맥주. 크고 작은 도시는 물론이고 각 고을마다 자신들의 고유한 브랜드를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다양한 맥주를 생산하는 독일이지만 바이에른 주의 중심도시 뮌헨이 가장 유명하다. 오늘날 뮌헨이 맥주의 메카로 자리 잡기까지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1810년 루트비히 1세의 결혼식을 기념하여 열리기 시작한 맥주 축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뮌헨의 거리는 한적해지지만 반대로 맥주홀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은 활기를 찾는다. 더욱 맥주축제가 개최되는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16일 동안은 도시 전체가 맥주 속에 묻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뮌헨의 옥토버 축제는 세계 3대 축제 가운데 하나로 도심의 테레지엔비제 지역에서 개최되는데 매년 300만 명 이상이 찾고 있으며 소비되는 맥주의 양은 수천만 리터에 이른다.
멋진 전통복장을 착용한 노신사부터 갓 태어난 아기를 동반한 주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찾고 있는 행사장이나 주인공은 역시 젊은 층이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같은 주변국은 물론이고 멀리 미국과 아시아에서 찾아온 젊은이들까지, 행사장을 찾아온 젊은이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누구나 동등한 입장에서 맥주를 마시며 함께 즐긴다는 사실.
뮌헨에 거점을 두고 있는 뢰벤브로이와 호프브로이, 슈파텐브로이 등 6개의 메이저급 맥주회사에서 임시로 마련해 놓은 초대형 홀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곳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호프브로이 하우스와 뢰벤브로이를 선택한다. 아우스스티너 켈러와 뢰벤브로이 켈러 등 저마다 독특한 맛을 간직하고 있는 맥주홀이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유독 호프브로이 하우스와 뢰벤브로이를 찾는 까닭은 중세 이후 왕실에 공급하는 맥주를 만들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여느 장소보다 자유분방하게 맥주축제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도 수천 평은 되어 보이는 초대형 홀은 한번에 5천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단순히 맥주축제를 즐기는 장소라기보다는 하나의 종합 문화공간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중앙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끊임없이 음악이 흘러나오고 주변에 모여든 방문객들은 누구나 하나가 되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맥주홀이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맥주홀을 찾은 사람들은 인종이나 언어를 떠나 각 테이블 단위로 팀을 이루어 경쟁적으로 여흥을 즐기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축제의 진정한 의미가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뮌헨의 맥주축제가 여느 축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누구도 타인의 시선을 인식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점이다. 젊은 층은 노래 부르는 것이 따분한지 테이블에 올라 흥겹게 몸을 비틀며 춤을 추고, 다른 한쪽에서는 둘만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도 목격된다. 이런 모습들은 비단 젊은 층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나이가 지긋한 중년 아저씨와 아주머니들도 테이블에 올라가거나 통로에 나와 숨은 춤 솜씨를 발휘하고 술맛은 모르지만 엄마 아빠를 따라온 아이들도 음악에 맞추어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추는 모습은 이곳 맥주축제에서 수시로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이다.
지구촌 최대의 맥주축제답게 축제기간에 등장하는 맥주의 종류도 다양하다. 각 회사마다 흑맥주와 생맥주는 기본이고 이름조차 생소한 독특한 맛과 비법이 숨어 있는 수십 종류의 맥주를 모두 맛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제가 벌어지는 테레지엔비제 지역에는 다양한 상점이 개설되는데 여러 상점에서 판매하는 기념품 가운데 가장 시선을 끌 만한 것은 각 맥주회사를 상징하는 모자와 티셔츠로 그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뮌헨의 테레지엔비제 지역에서 개최되는 맥주축제는 나이, 직업, 언어, 피부, 국적까지도 필요 없다. 오직 맥주를 마시며 흥겹게 노래하고 춤을 추며 자신들의 방법대로 즐기면 그만이다. 맥주홀은 서비스하는 종업원부터 지구의 반 바퀴를 날아온 사람까지 모두 동등한 입장에서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축제의 진정한 의미를 새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옥토버 축제다.
출처 : La Vie
# 40 뮌헨.......현대 건축의 백미 다섯마당
일찌기부터 부를 축적한 바이어른 공국의 수도답게 뮌헨에는 굵직한 문화재들이 산재해 있었고, 이차 대전 후에도 이를 잘 복구하여 보전하였다. 또한 이에 못지 않게 가치있는 현대식 건물들도 많이 지어지고 있다. 뮌헨의 많은 현대건축 중에 나는 개인적으로 'Fuenf Hoefe'(휜프 회페)라 불리우는 '다섯마당'을 백미로 꼽는다. 문화재와 현대건축의 접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경우이기 때문이다.
시청의 신청사 뒷면에는 유럽에서 가장 비싼 공터라고 하는 잔디밭이 하나 있다. 그 잔디밭은 밑에 유태인의 집단 거주지의 유적이 묻혀 있기에 뮌헨의 폼페이라고 과장되어 불리어지기도 한다. 이미 13세기에도 뮌헨에는 유태인들이 어린이를 제사의 산제물로 바쳤다는 엉뚱한 핑계를 구실로 유태인들을 집단으로 학살했던 역사가 존재했었고, 바로 이 잔디밭 밑에 그 역사의 현장이 묻혀 있는 것이다. 그 잔디밭은 사실은 시내에 사는 개들의 전용화장실이기도 하나, 이를 알 바 없는 관광객들은 그곳을 피크닉 장소로 애용하고 있다.
잔디밭의 건너편으로 오륙층 높이의 건물들로 구성된 블럭들이 이어져있다. 이들은 예전에 '크로이쯔 휘어텔'(Kreuzviertel - 십자가 구역)이라 불리우던, 처음에는 수도원등의 종교적인 건물들로 이루어졌던 구역이다. 17세기 말엽부터 점차로 귀족들의 고급 주택지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주교의 관사, 은행을 비롯하여 바로크 시대부터 힘있고 돈있던 인물들이 화려하고 웅장한 저택을 경쟁하듯 지었다. 이차대전 때 폭격의 피해가 특별히 심했던 곳이라, 아까운 문화재들을 잃은 자리는 현대식 건물들이 메우고 있다. 이때 이 현대식 건물들은 기존 블럭의 성격에 맞추어 특별히 튀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신청사 뒤의 잔디밭 모퉁이에 왼쪽으로 비껴서 귀중한 문화재급 건물들이 나란히 남아 있는 블럭이 하나 있다. 17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지어져, 귀족의 저택으로 또는 은행으로 사용되었던 유서깊은 건물들 사이사이에, 현대식 건물들이 주위의 분위기에 다소곳이 맞추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이 블럭은 전체적으로 고풍스럽고 얌전한 느낌을 준다.
'다섯마당'은 이 블럭 속에 숨어있다. 왜 숨어있다고 표현하냐하면 밖에서는 정말로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블럭을 빙돌면 가끔가다 하얀 글씨로 'Fuenf Hoefe' (휜프 회페 - 다섯마당)라고 쓰인 간판이 눈에 뜨일 듯 안 뜨일 듯 걸려있고, 그 밑으로 골목길이 하나씩 나있다.
가장 왼쪽에 자연석으로 지은 은행건물(1895년에 슈미트 지음)과 그옆에 포티아 저택(1693년에 추칼리 지음, 종교구역이 주택화되던 시절의 초장기 건물), 사진의 중앙에 아치로 된 출입구 위로 조그맣게 'Fuenf Hoefe'의 하얀 간판이 보인다.
다섯 골목의 있는 블럭의 평면도
블럭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이 나있는 것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늘상 있는 일이다. 무심코 따라들어가다 보면 쓰레기통들이 나열된 뒷마당이 나오기도 하고, 뜻밖에도 블럭을 가로질러 다른 쪽으로 도달하는 지름길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다섯마당의 간판이 걸린 이 골목길 안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눈이 확 열림을 느낄 수 있다. 과감한 디자인과 기발한 아이디어의 건축작품들이 경쟁하듯 눈앞에 펼쳐지며 호화찬란하면서도 개성있는 상점들이 줄을 잇기 때문이다.
바닥 전체를 두꺼운 유리로 깔고, 그 밑의 두어자 높이의 공간에는 흰 모래를 깔아 마치 일본 사찰의 모래 마당같이 갈퀴무늬를 내고 그 위로 드문드문 자기네 가게의 카탈록지를 버린 듯이 던져놓은 안경가게로부터, 절묘한 디자인의 바(bar)와 의자가 밖에서 들여다만 보아도 즐거운 카페까지 별의별 눈요기가 끊이지 않는다. 기묘한 외부 디자인을 구경하느라고 그에 못지않게 삐까번쩍한 쇼윈도우의 내용물에 행인의 눈길이 닿지 않을 때도 많다.
조금 더 따라들어가면 갑자기 높은 공간이 광장처럼 펼쳐진다. 도심 속에서 난데없는 원시림이 나타나서 초록색 덩쿨이 아득히 높은 천장에서부터 머리 바로 위까지 주렁주렁 늘어져 있고, 그 사이를 수없는 전구들이 반짝이고 있다. 다섯마당의 심장으로 쳐주는 살바토어 마당(Salvatorhof)이다.
살바토어 마당(Salvatorhof)
몇년 전에 처음으로 보았을 때 나는 이 화초들이 플라스틱 인공화초인줄 알았다. 저 꼭대기에서 화초를 가꾸어 몇 미터씩 이렇게 우람하고 싱싱하게 늘어뜨리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가 설계한 내부의 천장에 집주인이 플라스틱 인공화초를 보기좋게 잘 배열해 놓은 것을 보고, 인공화초는 유치한 것이라는 선입견에 꽉 잡혀있던 내가 웃지도 울지도 못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래서 초록의 덩쿨을 이용한 살바토어 마당의 시각적 효과가 굉장함을 일단 수긍하면서도 나는 예술과 유치함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고민하였었다.
그런데 올해 다시 보니 그새 화초들이 많이 자라있었다. 가짜도 자라나 싶어서 깜짝 놀랐다. 길어졌으므로 밑으로 더욱 가까이 내려온 덕분에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정말로 싱싱한 생화였고, 자세히 보니 저 위에는 간혹 시들어진 가지도 보였다. 클레마티스 과의 특별한 화초이며 이 방면의 전문가팀의 작품이라고 한다.
거기서 발길을 옮기면 위에서부터 촘촘한 간격으로 졸졸졸 떨어지는 낙수로 형성되는 물벽이 우연처럼 나온다. 이 물벽에 문처럼 뚫린 구멍을 발견하게 되면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자동적으로 그 문으로 발길이 향한다. 그 문을 통과하면 갑자기 하늘이 보이는 공간이 나온다. 벌겋게 녹이 나고 구멍이 난, 거친 철재 덧문을 닫았다 접었다 하면서 날씨에 따라 시시때대로 다른 모습을 연출해내는, 철갑옷을 입은 첨단의 디자인을 한 건축물이 이 공간에 면해있다.
다니다 보면 갑자기 분위기가 고적해지면서 명상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는 뒷마당에 발길이 닿기도 한다. 예술적인 의자들과 조각이 나무들 사이에 우연인 듯 널려져있는 이 조용한 공간은 이 블럭 안에 위치한 가정집 아파트의 뒷마당이다.
나의 매우 주관적인 감성으로 표현하자면, 별이 빛나는 초저녁에 아라비아의 흙집 사이로 난 골목길을 걷는 느낌을 주는 통로를 지나서 블럭 밖으로 나오게 된다. 옅은 빛 속에 단정하게 처리된 시각효과가 가져오는, 아늑하고 부드러운 골목길의 분위기에 도취되어 긴장을 풀고 걷다가, 어느 순간 바깥으로 나와서 갑자기 환하고 시끄러워지면, 나는 대도시의 시각적, 청각적 소음에 화들짝 놀래서, 마치 쫓겨나온 듯한 억울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나는 이를 설계한 사람이 혹시 어머니의 따스한 뱃속에서 바깥세상으로 태어나는 출산의 과정을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마치 굴 속같이 아늑한 프란너 골목(Prannerpassage), 여기를 지나면 첫번째 사진에 나오는 은행과 저택이 있는 거리로 나온다.
비스카르디 마당 (Viscardihof)
이 다섯마당은 유럽에서 유명한 몇 건축가들의 공동작업에 의해 설계되었다 (스위스의 Herzog & de Meuron, 독일의 Hilmar und Sattler, Ivan Gianola). 자존심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개성있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일단 정해놓은 전체적인 틀에 순응하는 일에 성공한 협동작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뮌헨은 세계적으로 경쟁하는 상공업과 문화의 도시이다. 특히 영화와 유행의 중심지로 손꼽히기도 하고, 뮌헨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 중에는 첨단의 소비문화를 기대하여 쇼핑을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의 수도 적지 않다. 여성잡지의 가십난을 보면 유럽 왕가의 무슨무슨 공주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예인 누구가 아마도 새 애인인 듯한 누구랑 뮌헨에 쇼핑을 하러 왔다가 디스코텍에서 놀았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나온다.
'다섯마당' 은 유서깊은 옛도시의 모습을 보전하면서 시대가 요구하는 첨단의 소비문화를 수용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과거를 증명하는 도시의 실루엣을 간직한 채로, 휘황찬란한 고층건물로 무장된 다른 대도시들과 경쟁하기 위한 컨셉의 하나이다.
골목길이라는 아이디어조차도 예전부터 전래되는 블럭의 성격에 거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뒷골목길, 지름길의 이미지를 타파하여 기발난 깜짝쇼를 벌인 것이 그 차이이다. 자칫하면 발전에 있어서 저해요소가 된다고 믿기 쉬운 고유한 전통을 잘 활용하여, 현대시대의 요구를 독특한 방법으로 충족시킴으로써 남다른 효과를 보았다.
나는 이 '다섯마당'에서 과거의 역사와 오늘의 발전을 똑같이 귀중히 여기는 뮌헨의 정신을 본다.
# 85 독일인이 사랑하는 고도-뉘른베르크·뮌헨
유럽여행의 매력은 역사와 건축물에 있다. 수백년 세월동안 대대로 세운 성당이나 천년이 지나도록 굳건하게 서있는 성벽, 빛바랜 붉은 지붕의 고택…. 여행길에서 이런 예스런 도시를 만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독일 남부. 하이델베르크를 비롯해 뉘른베르크, 로텐부르크 같은 많은 고도가 있지만 이중에서도 독일인들이 가장 아끼는 곳은 바로 뉘른베르크와 뮌헨이다.
빛바랜 건물과 운하. 뾰족 지붕의 노란집…동화속 풍경같은 예쁜 도시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유럽여행의 매력이다. 뉘른베르크 시내에서 맞닥뜨린 운하와 다리.
뉘른베르크
뉘른베르크는 뮌헨과 함께 독일의 가장 상징적인 도시다. 인구는 50만명 정도 되는 소도시지만 역사는 깊다. 도시가 건설된 것은 1,000년이 다 돼간다. 5㎞의 단단한 성곽으로 둘러싸인 뉘른베르크를 독일인들은 ‘제국의 보물상자’라고 불렀다. 1050년부터 1571년까지 독일왕국의 수도였기 때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4세는 15세기초 이곳에서 독일왕을 뽑는 선출절차를 담은 금인칙서도 발표했다. 그리고 새 왕의 첫 의회를 반드시 뉘른베르크에서 열도록 했으니 독일제국의 탄생지나 다름없다. 이런 까닭에 히틀러는 나치 운동이 태동했던 뮌헨 대신 뉘른베르크를 선동정치의 무대로 삼았다. 리펜슈탈이 설계한 제페린펠트스타디움은 바로 세계대전 전후사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선동정치의 무대. 히틀러는 그리스 신전처럼 생긴 이곳에서 나치 전당대회를 열었다. 제페린펠트는 지금은 F1그랑프리 레이싱카 경기장으로 변했다.
이런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2차대전 당시 뉘른베르크는 연합군의 엄청난 폭격을 받았다. 전범재판도 베를린이 아닌 뉘른베르크에서 열렸다. 괴링, 헤스, 리벤트로프 등에게 사형이 언도된 곳도 뉘른베르크였다.
세계대전 당시 90%가 파괴됐다지만 관광객들의 눈에는 여전히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아름다운 고도처럼 보인다. 전후 50여년 동안 옛 모습을 차근차근 복원해왔기 때문이다. 14세기 조성한 하우프트 광장엔 금빛 찬란한 쇤분수, 시계 공연으로 유명한 맨라인라우펜 성모교회 등이 서있다. 독일인의 유태인 학살은 히틀러 시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4세기 하우프트광장은 유태인들이 살던 습지. 황제는 이곳에서 유태인들을 모두 쫓아내버리고 광장을 만들었다. 뉘른베르크 성곽의 첨탑에 오르면 성내의 건축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탑과 건축물들이 들어선 고도. 슬픈 역사가 깃들어 있어 더 아름답다.
뮌헨
뉘른베르크가 ‘보물상자’라면 뮌헨은 독일인의 정신적인 수도(Capital Of Heart)이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 가까운데다 로마로 가는 길목에 있던 고도. 12세기 이후 바이에른 왕국의 수도로 700년 동안이나 번성을 누렸다. 인구는 1백30만명이지만 해마다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뮌헨을 찾는다. 시가지 내에선 수백년 전통의 성당과 아름답게 치장을 한 시청사 등이 남아있다. 높이 99m와 110m의 쌍탑이 서있는 성모교회, 레지덴츠 박물관, BMW박물관, 예술인의 거리 슈바빙, 미술관 피나코텍 등 볼거리도 많다.
뮌헨 역시 2차대전때 많이 파괴됐지만 상흔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잘 복원됐다는 게 부럽다.
뮌헨은 잘 알려진 대로 세계 최대의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의 도시. 아쉽게도 옥토버페스트가 끝난 직후 뮌헨을 찾았지만 그래도 그 명성을 알 수 있는 맥주집들이 남아있다. 관광객에게 가장 유명한 곳은 ‘호프 브로이하우스’로 민속공연과 함께 독일 전통맥주를 맛볼 수 있어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밀로 만든 맥주인 바이스비어, 홉을 많이 넣어 씁쓸한 필스너 비어, 발효가 진행중인 라거비어…. 맥주의 종류도 다양하다. 맥주에 따라 맥주잔도 각각 다르다.
뮌헨 근교의 님펜부르크 왕궁은 프랑스의 베르사유보다는 화려하지 않지만 규모는 많이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웅장하다. 루드비히 2세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궁으로 이어지는 수로는 한때 베네치아에서 온 작은 배가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뮌헨과 뉘른베르크는 11월부터 독일은 물론 유럽에서도 유명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선다. 천으로 만든 다양한 인형과 온갖 종류의 크리스마스 장식물이 전시된다. 도시의 광장은 아예 크리스마스 빌리지로 변하게 된다.
〈독일|최병준기자 bj@kyunghyang.com>
◈ 알스펠트(Alsfeld)
# 52 빨간 모자(Rotkappchen)의 무대 알스펠트(Alsfeld)
오늘 소개할 곳은 그림동화에 나오는 빨간 모자의 배경이 되는 도시 알스펠트. 역시 이곳은 우연하게 들린 곳인데 참으로 인상적인 곳 중의 하나였다. 물론 책에서 동화가도(Marchenstraße)의 하나라고 본 적은 있었지만, 잠시 식사나 할까 하는 마음에 별 생각없이 들렸다가 깊은 인상을 받은 곳이다.
내가 가진 자료에 의하면 독일에는 83개의 주요 관광가도가 있다. 물론 계속 생성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비교적 잘 알려진 관광가도는 Romantische Straße, Burgenstraße, Marchenstraße 등이 있다.
이 중 동화가도는 그림 형제가 태어난 Hanau(Frankfurt a.M.에서 약 20km 떨어짐)에서 시작하여 북쪽의 Bremen까지 연결된 독일의 대표적인 관광가도(Touristische Straße)의 하나이다. 1975년
Steinau에서 결성되어 3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림 형제에 의해서 수집된 동화와 관련된 크고 작은 도시들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이 중 Alsfeld는 독일의 대표적인 전통 주택 형태인 Fachwerkhauserstraße와 Marchenstraße가 교차하는곳이다.
동화가도에 속한 도시들은 저마다 하나씩의 동화와 관련된 전설을 가지고 있는데 알스펠트는 빨간모자와 관련되어 있다. 빨간모자를 좋아하는 소녀가 할머니 집으로 가다가 늑대에게 잡혀먹은 이야기. 알스펠트 시내에서 이와 관련된 것은 빨간모자 소녀의 동상이 있고 그 밑에는 물이 흐르는 수도와 같은 형태로 된 기념물이 있다. 잔뜩 기대하고 오면 조금 실망할 수 도있다. 그러나 바로 근처에 있는 시청사를 보면 허전한 마음은 조금 바뀔 것이다. 아주 예쁜 시청사가 충분히 보상해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허기친 배를 채우러 잠시 아우토반 A5에서 빠져나와 국도로 들어섰는데 처음 마주친 도시이다. 주차를 시키고 구시가지(Altstadt)로 들어섰는데 생각보다 너무나 아름다운 구시가지 모습에 반했다. 빨간모자 동상이 바로 옆에 있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약간 허름해 보였지만 음식점이 별로 눈에 띠지도 않았고, 시청옆이니까 괜찮겠지 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우선 양으로 압도를 한다. 독일 시골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 양에 놀란다. 우리가 한국에서 먹는 돈까스
(Wiener Schnitzel)만 해도 독일 시골에 가면 나 같은 사람도 다 먹기가 힘들다. 거기에 맥주까지 한잔하면 엄청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역시 독일 시골이나 한국의 시골이나 정이 있어서 좋다. 처음 방문한 인상이 너무 좋아서 다음 번에 우연하게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두번째 같을 때에도 여전히 아름다웠고 지난 번에 구경하지 못했던 다른 쪽의 구시가지를 볼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책에 나오는 빨간모자 소녀가 할머니 집으로 가는 숲길은 구경하지 못했다.
내가 독일을 여러 군데 돌아다녔지만 독일은 어디를 가든 볼만한 것은 최소한 한가지씩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독일에 어디가 좋아요? 라고 물으면 참 대답하기 난처하다.
몇가지 그림을 올려 보겠습니다.
독일의 동화가도에 속한 도시들이 나와 있는 지도
동화가도와 목조가옥 가도의 로고
시청앞 Marktplatz에 장이 서는 모습. 독일에서는 이러한 Bauermarkt가 자주 열린다. 동독과 서독의 Bauermarkt의 공통점은 여기에서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고, 차이점은 동독에서는 상당수가 자신이 직접 재배한 것을 가져와서 팔기때문에 저렴하다는 것이고, 서독에서는
Bio(Oko-)anbau(유기농)라고 해서 상당히 비싸다는 점이다.
가끔 장이 서질 않을 경우 공연과 같은 행사가 벌어진다.
알스펠트의 관광 안내소. 주위의 Fachwerkhauser와는 다른 양식의 건물이다.
시청 옆 Weinhaus -예전부터(1538년부터 시작됨) Wein을 저장하고 소매로 판매하던 곳. 건축 양식은 고딕과 르네상스 중간의 전이 형태라고 함.
알스펠트 시내 지도
동화와 관련된 동화의 집이 오픈했다는 소식이 있네요.
◈ 쾨니히 호수
# 124 아름다운 쾨니히 호수 정보
독일 남부 바이에른의 자랑, 왕의 호수라 불리는 쾨니히 호수.
뮌헨에서 약 한시간 반이 걸리고,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약 40분 거리이고,
베르히테스가덴에서 10~15분 정도면 닿는다.
스위스의 알프스가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해마다 엄청난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오스트리아와 더불어 남부독일의 이른바 바바리안 알프스도 가격 대비 성능비는 매우 좋다.
멀리 만년설이 내다보이는, 투명한 에메랄드 빛 호수를 가르는 유람선 여행...
호수 한가운데에서는 고요한 정적을 가르는 멋진 트럼펫 연주도 들을 수 있다고 하는군.
대략 왕복 소요 시간은 2시간이고...
성 바르톨로메 사원까지 왕복요금은 10.9유로.
오전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 (관련 정보는 pdf로 첨부)
남부 독일을 간다면 꼭 가볼 만한 곳 중 하나다.
먼저...유람선 루트맵.
# 11 독일 [독일] 아름다운 호수 쾨니히
먼저 쾨니히를 갈려면 뮌헨서 가면 되는데요^^
짤즈부르그에서 독일로 향하는 지점에 있는 알프스 지역,
바츠만 국립공원에 위치한 쾨히니 호수는 여행의 대가 독일인들도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꼽는곳입니다.
깊은 산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웅장한 산맥으로 둘러싸여 고요한 기운을 품고 있는 이곳은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아담한 유람선을 이용해 호수의 중간까지 다다르면 주변의 경치를 감상할수 있습니다.
잠시 배가 호수 가운데에 멈추면 선장은 트럼펫을 소중히 꺼내들고 연주를 시작합니다.
범상치않은 기운이 흐르는 호수 한가운데에서 산을 휘감아 울리는 트럼펫소리는 어떤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 그 자체입니다.
세계에서 여행을 많이 하기로 유명한 독일인들에게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를 하나만 선택하라면 십중팔구는 틀림없이 쾨니히(Konigssee) 호수를 선택할 것이다. 산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 호수는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연두색의 물결은 말할 것도 없고 아주 깊은 곳까지 투영되는 물은 이곳이 얼마나 청정한 지역인지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국립공원 입구에서 출발하는 아담한 유람선은 호수의 중간지점에 이르면 반드시 한 번은 정지한다. 아무런 고장이나 문제가 없는 유람선이 멈추는 까닭은 호수의 중앙에서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도록 하기 위한 것과 쾨니히 호수가 얼마나 신비로운 곳인지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선장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악기상자에서 트럼펫을 꺼내 연주를 시작하자 승선한 손님들은 저마다 탄성을 자아낸다. 트럼펫 연주의 아름다운 선율도 멋지고 낭만적이지만 손님들이 감탄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암석으로 이루어진 바츠만 산에 반사되어 울리는 선율의 메아리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울려 퍼지는 메아리는 실제 트럼펫에서 발산하는 선율의 10배 이상으로 되돌아오고 있어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그 신비로움을 믿기 어렵다.
트럼펫 연주를 마친 선장은 배를 천천히 회전하여 주변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데 그 풍경 또한 환상적이다. 더욱, 쾨니히 호수의 주변에는 예로부터 자리잡고 있는 수도원과 별장 그리고 산촌의 목조 건물들이 웅장한 대자연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넋을 잃게 만든다.
호수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별장과 산촌의 집도 아름답지만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성 바르톨로메(St. Bartholoma) 수도원이다. 거대한 바위산 아래에 멋진 자태를 간직하고 있는 성 바르톨로메 수도원은 아무리 보아도 현실에 존재하는 건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호수 위에서 펼쳐지는 약 1시간 동안의 경험은 바츠만 국립공원과 쾨니히 호수가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곳인지 깨닫게 해 주는 환상적인 풍경 그 자체다.
깨끗한 호수와 산 그리고 크고 작은 폭포와 암석에 피어 있는 소박한 야생화에 이르기까지 바츠만 국립공원의 매력은 무수히 많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자연과 더불어 여러 가지를 체험해 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친환경적인 운동을 펼쳐나가는 사람들이다.
우선 바츠만 국립공원에 들어서면 무수히 많은 등산코스에 놀라게 된다. 왕복 1시간 정도면 돌아볼 수 있는 산책로부터 중간에 텐트를 치고 장시간 머물면서 국립공원을 돌아볼 수 있는 코스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바츠만 국립공원 관리소에서 이토록 다양한 등산코스를 만들어 놓은 이유는 누구나 자신의 능력에 맞게 국립공원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방문객으로 하여금 쉽게 국립공원을 접하게 만들어 놓은 만큼 어느 코스를 선택하더라도 그 코스에 관한 설명과 함께 그 곳에서 자생하는 나무와 식물 그리고 곤충과 벌레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특히, 이런 안내판은 등산로가 시작되는 초입은 물론이고 중간에 마련된 휴식공간과 주요 전망 포인트마다 설치해 두고 있어 자신이 현재 등산을 즐기는 지역에 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은 점도 독특하다.
저마다 다른 볼거리를 간직하고 있는 바츠만 국립공원이지만 가장 인상적인 코스는 성 바르톨로메 수도원을 바라보며 정상으로 오르는 등반 코스다. 이 코스의 특징은 많지만 가장 매력적인 것은 능선을 따라 펼쳐진 등산로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쾨니히 호수와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바츠만 산 그리고 영롱한 모습을 간직한 수도원에 이르기까지 보이는 모든 풍경들이 과히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탄성을 연발할 정도다.
국립공원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라면 나라와 장소를 불문하고 서너 개의 호텔이나 음식점이 있기 마련이지만 바츠만 국립공원에는 배가 출발하는 마을 입구에 모두 모여 있고 공원 안에는 딱 한 곳의 휴게소만 자리잡고 있다. 휴게소가 자리잡고 있는 곳도 다름 아닌 성 바르톨로메 수도원 입구에 위치한 선착장뿐이다. 독일의 국립공원이 하나같이 환경을 최대한 보호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바츠만 국립공원만큼 철저하게 관리되는 곳을 찾기란 정말 어렵다.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는 국립공원답게 어느 곳을 방문하더라도 휴지와 쓰레기, 오물 등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하루에도 수천 명이 방문하는 국립공원에서 쓰레기를 찾아보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것은 방문객 스스로 철저하게 환경을 지키려는 자세 때문이다. 음식을 먹고 발생하는 쓰레기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에 보이는 휴지와 깡통 같은 것을 자신의 가방에 담아 돌아갈 정도로 자연보호를 철저하게 지켜나가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쾨니히 호수를 운행하는 유람선을 비롯해 호수 위에서 운행되는 모든 선박의 경우 엔진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음제거 장치를 설치할 정도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호수에서 운행되는 선박에 사용하는 연료도 모두 무연연료만 사용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고 하니 바츠만 국립공원에 대한 독일인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 트리어
# 115 로마제국의 거점이 되었던 트리어
트리어의 로마시대 기념물, 대성당과 성모마리아 성당 ( Roman Monuments, Cathedral of St. Peter and Church of Our Lady(Liebfrauen-Churcu) in Trier )
1986년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
- A.D 3세기말 '제2의 로마'라 불릴 정도로 번영을 구가했던 무역중심지
- 당시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로마문명의 훌륭한 증거를 보여준다.
- 세계유산가치 : 문화 ⅰ,ⅲ,ⅳ,ⅵ
- 로마의 유산을 계승한 트리어의 상징 포르타 니그로(검은 문). 중세에 돌 표면에 이끼로 뒤덮여 거무스름해졌기 때문에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트리어의 로마 유적, 대성당, 성모 마리아 성당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라인 지방 통치의 거점으로 삼은, 아우구스타 트레베로룸이라고 불리던 모젤 강 동쪽 기슭의 트리어는, 원래 켈트계 트레베리족의 중심 도시였다. 성문 포르타 니그라, 원형 경기장, 공공 목욕탑 등에는 ‘북의 로마’를 건설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위업이 간직되어 있다. 중세에는 대주교좌가 놓여지고, 그 직할권은 라인 강 중류 지역까지 이르렀다. 대성당과 성모 마리아 성당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쌍으로 짓도록 한 성당을 중세에 성당 2개로 바꾼 것이다. 유례없이 복잡한 구성으로 되어 있으며, 11세기 교회 건축의 최대 걸작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는 웅장한 대성당 남쪽에는 독일 초기 고딕 양식의 대표작인 성모 마리아 성당이 서 있다.
이동 민족에 대항하는 로마 제국의 거점
라인 지방에 살고 있던 켈트계 트레베이족은 갈리아 정복을 시도하던 로마 제국에 저항했다. 그러나 기원전 52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복하고, 카이사르에 이어 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15년경에 모젤 강 유역의 요충지인 트리어를 라인 일대 통합을 위한 거점으로 삼았다. 이것이 훗날의 아우구스타 트레베로룸이다.
트리어는 훈스뤼크 산맥의 산기슭을 구불구불하게 돌아가는 모젤 강 동쪽 기슭의 평지에 있다. 트리어 북쪽에는 아이펠의 높은 산들이 우뚝 솟아 천연의 성벽 역할을 한다. 한편, 트리어는 북쪽의 쾰른에서 멀리 프랑스의 리옹까지 뻗어 있는 가도와 동쪽의 마인츠에서 파리로 통하는 중요한 육로의 교차점이었으며, 당시에는 모젤 강도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지 덕분에 포도 재배를 비롯한 농업이 성행해, 트리어는 이미 기원전 1세기에 교역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
3세기에 동쪽의 게르만 민족이 이동을 시작해 로마 제국을 위협하자, 트리어는 여기에 대항할 북방의 중심지로 선택되어, 황제가 거처하는 성이 건설되었다. 그 지방의 장군 포스투무스가 게르만족을 제압해 갈리아의 황제임을 자칭했지만, 그가 죽은 뒤 275년에는 프랑크족의 침공으로 트리어는 철저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북아프리카에서 오리엔트까지 영역을 확장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 제국을 4곳으로 나누어 4분할 통치 시대를 열자, 콘스탄티누스 부제의 통치 지역인 라인 강 서쪽 갈리아, 브리타니아, 히스파니아로 구성된 행정구의 수도로서 다시 중요 거점이 되었다.
원래 트리어의 성벽 안에는 장기판처럼 직각으로 교차하는 도로가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남북으로 뻗은 카르도 막시무스 도로와 동서로 뻗은 데쿠마누스 막시무스 도로라는 간선 도로 2곳이 도시 중앙에서 교차하고, 그것을 기점으로 시가지가 펼쳐져 있었다. 각 구역은 도로로 세분화되어 거주지나 행정구로 나뉘고, 도시 중앙의 교차점에는 공공 광장이 있었다. 창건 이후 200년 동안 근처 채석장에서 잘라 온 사암으로 수많은 신전과 공공 시설, 주거지, 아케이드가 딸린 거리, 광장, 하수도 등을 만들었다. 동서로 뻗은 데쿠마누스 막시무스 도로의 연장선으로 건설된 모젤 강의 돌다리는 150년경의 것으로, 로마의 돌다리 가운데 알프스 이북에서는 역사가 가장 길다.
로마 유적
로마 시대의 트리어는 넓이가 약 285ha에 달했으며, 총길이가 6.5km나 되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북쪽에는 요새를 겸한 성벽 입구인 포르타 니그라가 있다. 고대의 분위기를 더없이 잘 간직하고 있는 이 문은 폭이 약 36m, 높이가 약 30m에 이른다. 이 문의 중앙 망루에는 아치 문이 2개가 있고, 그 위에 2층으로 된 주랑이 있다. 옛날에는 문 양쪽에 4층 탑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탑의 2층에서 4층까지는 중앙 부분과 똑같은 주랑이 있었다. 탑 자체는 거리 쪽에서 보면 각이 진 탑으로 보인다. 그 옛날 망루 안에는 안뜰이 있었고, 차곡차곡 쌓인 돌 틈 사이로 빛이 스며들어 안뜰을 환히 비추었다. 한편, 시내와 마주보는 쪽에는 문이 2개가 있다. 개선문을 연상시키는 이 포르타 니그라는 트리어 간선 도로 가운데 하나인 카르도 막시무스의 입구이다. 이 문을 포르타 니그라, 즉 ‘검은 문’이라고 부르게 된 까닭은 훗날 중세에 사암으로 만든 성문 전체가 이끼로 뒤덮여 검게 변했기 때문이다. 수평으로 쌓아 올린 네모난 돌들의 이음새에는 회반죽 대신 꺾쇠를 이용했다.
11세기에는 트리어의 대주교였던 포포 폰 바벤베르크가 포르타 니그라를 성당으로 개축했다. 이 성당 1층에는 교구 주민을 위한 시메온 성당이, 2층에는 이웃 수도원의 수도자들을 위한 기도와 의식의 장소가 있었다. 포르타 니그라는 1805년에 나폴레옹군의 공격을 받기 전까지 성당으로 이용되었다.
포르타 니그라와 함께 트리어에 남아 있는 원형 경기장 역시 로마 시대의 건축물이다. 도시 동쪽에 페트리스부르크 산자락의 땅을 돋우어 건설한 이 원형 경기장에는 폭 75m, 길이 150m의 타원형 무대가 있고, 이 무대를 둘러싼 계단 형태의 좌석은 관객을 2만 명이나 수용할 수 있었다.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 유적은 100년경에 건설된 것으로 추측된다. 지난날 이 곳에서는 제국 안의 다른 경기장과 마찬가지로 검투사끼리의 결투나, 맹수와 생사를 건 싸움을 벌였다.
한편, 2세기 중엽에는 모젤 강 둑에 바르바라 공공 목욕탕이 건설되었다. 폭 172m, 길이 240m의 거대한 이 공공 목욕탕에는 증기탕, 열수탕, 온수탕, 냉수탕 등 다양한 탕 외에도 아케이드로 둘러싸인 옥내 체육관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온돌을 이용했던 지하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바르바라라는 이름은 중세에 이 곳에 있던 성바르바라 수도원에서 유래되었다.
이것과는 별도로 궁전의 동쪽 끝, 시 중앙의 공공 광장 옆에는 4세기 초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만들었던 공공 목욕탕 흔적이 남아 있다. 이 황제 목욕탕은 대제가 비잔틴으로 천도하는 바람에 완성을 보지 못해, 결국 사용되지 않았던 것 같다. 폭 145m, 길이 260m 규모의 이 목욕탕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열수탕, 온수탕, 냉수탕이 나란히 설치되고, 이 탕들 끝에는 아케이드로 둘러싸인 운동장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욕탕의 일부, 계단 모양의 탑, 경기장에 면한 건물 정면의 창, 난방 설비인 지하 통로 등이 남아 있다. 이 건물은 중세 때 영주의 저택, 또는 성문으로 이용되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위업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로마 황제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10년 동안 트리어에 머문 뒤, 동쪽의 비잔틴으로 옮겨 가 제국의 모든 땅을 통치했다. 프랑크족과 아라만족이 파괴한 트리어를 다시 세우고, 이를 로마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웅장하고 화려한 도시로 완성한 사람도 콘스탄티누스 대제였다. 한편, 대제는 궁전과 그에 딸린 황제용 예배실, 쌍동의 성당은 물론이고 수많은 공공 목욕탕을 잇달아 건설했다. 하나같이 제국 도시에 걸맞은 웅장한 규모와 위용을 자랑하는 이 건물들은 보는 이에게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트리어 지방에는 이미 3세기 후반부터 중요한 그리스도교의 공동체가 있었다. 312년에 콘스탄티누스는 황제의 지위를 둘러싸고 경쟁하던 막센티우스와 로마의 북쪽 미르비우스에서 전투를 벌였다. 이 때 하늘에서 빛나는 십자가와 ‘이 곳에서 승리하라’라는 문자를 본 황제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예수의 가호를 받아 승리했다고 전해진다. 이듬해 313년에 콘스탄티누스는 밀라노에서 칙령을 발표해 그리스도교를 공인했다.
315년경에 콘스탄티누스는 당시에 허물어진 채 방치되어 있던 한 궁전을 거대한 성당 2개로 재건하라고 명령했다. 그것은 지난날 자신의 어머니인 헬레나사 살던 궁전이었다. 그리하여 재건된 성당의 북동은 성페터(베드로)에게 바쳐져, 주교좌 성당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남동은 교구 성당이었으며, 남동과 북동 사이에는 작은 세례당이 있다. 그 후 이 성당은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1세와 그라티아누스 1세의 지시에 따라 평면의 한 변이 40m나 되고 높이가 30m나 되는 규모로 넓어졌다. 그리고 모서리 4군데에 각각 탑이 배치되고, 중앙 교차부에도 탑이 세워졌다. 그러나 이 쌍동 성당은 11세기에 재건되어 북동은 새로운 성당으로, 남동은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바뀌었다.
로마 황제의 궁전과 상인 가족의 묘비
중세 시대를 통틀어 선제후 영지의 수도였던 트리어에는 로마 시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궁전이었던 아울라 팔라티나가 남아 있다. 이 궁전은 나중에 건설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 옆에 세웠는데, 길이 67m, 폭 28m에 이르는 웅장한 바실리카 건축물이다. 4세기 초에 벽돌로 만들어진 이 건물 정면의 박공벽은 높이가 36m에 이르며, 동쪽 끝에는 반원형의 평면을 한 후진이 있다. 이 건물의 내부에는 지주가 없는데, 이런 종류의 건축물로는 로마 제국 안에서도 규모가 가장 컸다.
‘바실리카’라고 불렀던 이 궁전은 바닥에는 대리석을 깔았고, 황금 모자이크로 장식된 각각의 벽감에는 황제 가족의 흉상을 놓았다. 전체적으로 엄격하고 화려한 이 궁전을 지은 목적은 로마 제국의 절대적인 권위를 과시하는데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부터는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사용하고 있다.
트리어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방사상 도로와 간선 도로를 따라 마치 조각상처럼 늘어서 있는 부유한 상인들의 거대한 묘비이다. 묘비에는 신화에서 따온 모티프 외에도 죽은 사람의 일상생활의 모습을 표현해 놓아, 마치 상인들의 광고탑 같은 인상을 준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250년경에 세워진 높이 23m의 ‘이겔의 기둥’으로, 트리어 근처 이겔에 살고 있던 대지주이자 세력 있는 모직물 상인이었던 제쿤디니家의 묘비이다. 그 묘비의 크기와 풍부한 부조 장식은 중앙 유럽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로마 문화의 기념비 가운데 하나이다. 1985~86년에 대규모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현재는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고 한다.
중세 건물의 개축
트리어의 쌍동 대성당 건물은 5세기에 프랑크족의 공격을 받아 철저히 파괴되어, 가까스로 외벽만 남아 있었다. 525년에 주교 니케티우스의 지휘 아래 시작된 재건 공사는 쌍동 대성당 건물을 파괴되기 전의 모습으로 되돌렸다. 그러나 이 건물은 9세기 말에 침입한 노르만족에 의해 다시 파괴되고 말았다. 그 후 11세기에 다시 한번 재건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 대주교 포포 폰 바벤베르크는 원래의 기초 평면을 넓혀 서쪽으로 폭이 50m나 되는 파사드를 덧붙였다. 이 서쪽 건물은 현존하는 11세기의 성당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손꼽히며, 오늘날에도 이 대성당의 외관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1160년에는 동쪽에 다각형의 평면으로 이루어진 제실을 갖춘 내진이 증축되고, 13세기 초에는 돌로 만든 둥근 천장이 덧붙여졌다. 1700년경에는 성의가 보관된 성루가 예배당을 찾는 순례자들이 많아지자, 프랑크푸르트의 조각가 요한 볼프강 프뢸리허가 바로크 양식으로 증축했다. 이 성의는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몸에 두르고 있던 것이라고 한다. 1717년에 불이 나서 천장이 불에 타자, 트리어 출신의 건축가 요한 게오르크 유다스가 최상부의 벽면을 개조하고 창을 여러 개 만들었다.
이처럼 대성당은 거듭된 증개축으로 로마 말기에서 중세에 걸쳐 건설되었던 부분을 거의 잃어버렸지만, 넓은 중앙 공간은 당시의 웅장한 대성당의 특징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남쪽 성당은 순수한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이 성당은 마르부르크의 성엘리자베트 성당과 함께 독일 초기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딕 양식으로서는 유례가 드문 집중식 건축의 이상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대주교 테오데리히 폰 비트가 지휘한 이 공사는 1235년에 시작되어 1260년에 끝났다. 내부 공간은 넓고 경쾌한 인상을 주며, 교차부의 돔은 숨이 멎을 만큼 높다. 이 성모 마리아 성당과 대성당은, 지금은 파괴되어 버린 로마 시대에 지어진 2개의 성당 초석 위에 서 있다. 13세기에는 이 두 성당 사이에 고딕 양식의 관상용 회랑이 설치되었다. 이 회랑에는 19세기 중엽 이후부터 참사회원의 석관이 안치되어 있다.
역사 유산의 계승
4세기 말에 로마 제국은 게르만인의 강한 압박을 받아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거처나 궁전의 소재지도 트리어에서 이탈리아 밀라노로, 그리고 라벤나로 옮겨야 했으며, 갈리아 여러 주의 장관 청사는 남프랑스의 아를로 옮겨졌다.
트리어에 살던 로마의 지배 계급이 트리어를 떠난 뒤에는 오로지 주교만이 그리스도교도들과 함께 머물고 있었다. 로마의 장엄한 건축물은 게르만인과의 전투 때는 피난소로 쓰였으며, ‘바실리카’ 궁전은 훗날 왕들의 거처가 되었다. 게르만인의 위협을 극복한 트리어는 중세에 대주교구가 되어 번영을 되찾았다.
2000년이 역사를 자랑하는 트리어의 문화유산은 20세기 말에 이르러 위기를 맞고 있다. 로마 시대의 원형 경기장이 있는 지역에 7구획 넓이의 공동 주택을 건설하려는 계획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조각상을 옮기는 계획도 들어 있기 때문에 오랜 역사를 가진 고도의 경관이 결정적으로 손상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현재 트리어 시에는 발굴된 출토품을 보호하는 규정조차 정해져 있지 않은 실정이다.
글출처:유네스코문화유산
◈ 튀빙엔
# 91 중세 대학도시 튀빙엔
튀빙엔(Tubingen)은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슈바벤 지역의 대학 도시입니다.^^
이곳은 슈트트가르트에서 기차를 한번 타면 바로 갈수 있는 지역이구요^^
하이델베르크와 다른 느낌의 도시이구요^^ 로텐부르크나 뉘른베르크의 느낌과 비슷한 도시입니다.^^
오늘은 이곳의 글을 올려볼까합니다.^^
면적은 108.12㎢, 인구는 8만 600명(2001)이다. 튀빙겐 행정구의 주도(主都)로 네카어강(江)에 면하여 있다. 문화 및 산업의 중심지이며 섬유, 기계, 금속, 목제품, 인쇄 재료 등의 제조업이 활발하다.
1078년 처음 문헌에 언급되며 1200년경 시로서의 특권이 인정되었다. 14세기 중엽에 뷔르템베르크 백작령(領)이 되었고 15세기 중엽에는 그 영지의 두 번째 수도가 되었다. 1519년에는 슈바벤도시동맹군(軍)에 점령되기도 하였고 30년전쟁(1618∼1648) 때는 신성로마제국군(1634), 스웨덴군(1638), 프랑스군(1647) 등의 수중에 번갈아 들어갔다.
구시가에는 중세적인 특징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주요 건축물로는 1435년 건립된 시청사, 역대 뷔르템베르크 공작들의 무덤이 있는 후기고딕 양식의 장크트게오르크성당(Church of St. George:1470∼1490년 건립), 11세기에 처음 언급되고 16세기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축된 호엔튀빙겐(Hohentubingen)성 등이 있다.
1477년 뷔르템베르크의 백작 에베르하르트 6세(Eberhard VI)에 의하여 설립된 대학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필리프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이 이곳 교수를 지냈다(1512∼1518). 이 대학의 신교파 신학부는 1534년 울리히(Ulrich) 공작에 의하여 설립되었으며, 19세기에는 F.C. 바우어(F.C. Baur)가 창시한 튀빙겐학파로 명성을 날렸다.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시인 J.C. 프리드리히 횔덜린(J.C. Friedrich Ho lderlin), 철학자 G.W. 프리드리히 헤겔(G.W. Friedrich Hegel) 등이 이 신학부에서 교육을 받았다. 또한 시인 J. 루트비히 울란트(J. Ludwig Uhland)가 이곳에서 태어났으며, 횔덜린은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 가미쉬 파르텐키르헨
# 90[트래블]색다른 유럽 찾아떠난다…독일 가미쉬 파르텐키르헨
색다른 유럽 찾아떠난다…독일 가미쉬 파르텐키르헨
흔히 알프스 하면 스위스의 융프라우나 프랑스의 샤모니 몽블랑을 떠올린다. 알프스에 어깨를 대고 있는 나라는 스위스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6개국. 알프스도 골짝마다 다른 풍광과 문화를 지니고 있다.
독일 알프스는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생소한 편이다. 뮌헨에서 승용차로 불과 40분이면 닿는 가까운 곳에 있지만 정작 독일이 알프스를 끼고 있는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관련기사 M2
독일 알프스의 관문 가미쉬 파르텐키르헨. 고작 인구 2만7천명의 작은 마을이지만 독일에선 잘 알려진 휴양지 중 하나다. 1936년 이미 동계올림픽을 치렀고, 해마다 스키챔피언십대회가 열리는 동계 스포츠의 천국. 여름에는 카약킹, 봄·가을엔 트레커들도 많이 몰려든다. 최근 한국에도 아름다움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 지난해엔 80여명, 올해엔 400여명이 다녀갈 정도로 급격히 관광객이 늘고 있다고 현지 관광청 직원이 귀띔했다.
가미쉬 파르텐키르헨은 가미쉬 마을과 파르텐키르헨 마을이 합쳐진 이름이다. 히틀러가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마을을 합친 탓인지, 아니면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큰 탓인지 주민들은 서로 자기 마을이 좋다고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지만 관광객들의 눈엔 두 마을이 비슷비슷하다. 외려 특이한 것은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집에 그려진 벽화. 석회에 물감이 스며들게 하는 기법으로 벽화를 그려놓았는데 보통 100년 이상 됐다고 한다. 벽화는 기독교 신앙을 나타내거나, 대장장이 등 집주인의 직업과 연관된 내용이 많지만 때론 무료하게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군인이나 용병의 그림도 볼 수 있다. 게다가 붉고 화사한 게라니움 화분을 창에 내걸어놓은 나무집이나 멋을 내지 않은 아담하고 담백한 성당을 보고 있으면 ‘한 열흘 푹 쉬고 가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실제로 유럽여행의 큰 재미중 하나는 이런 소도시 기행 아닌가? 역사도 있고, 문화도 있으며, 인정도 있다. 그래서 때론 대도시보다 전원 속의 작은 마을에 눈길이 더 가게 된다.
독일 알프스도 조금 독특하다. 해발 720m의 알프스 턱밑 가미쉬에서 정상 밑 전망대까지는 불과 75분. 아입제까지 간 뒤 아입제역에서 톱니바퀴열차로 딱 35분만 오르면 손알핀역이다. 케이블카도 운행하는데 보통 열차로 오른 뒤 케이블카로 내려오거나 아니면 케이블카를 탄 뒤 철도를 이용한다. 철도는 1928년부터 1930년까지 바위산을 뚫어 만들었다. 4.2㎞의 터널을 통과, 손알핀역(2,600m)에 도착하니 교회가 하나 덩그러니 서있다. 관광객들을 위해 1989년 지었다는 교회는 결혼식 장소로 유명하단다. 60여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작다. 손알핀 바로 앞에 빙하가 있었다는데 2003년 극심한 더위로 모두 녹아내렸다고 했다.
다시 곤돌라를 타고 정상 주크슈피체(2,964m) 바로 아래 전망대에 올라서면 크고 작은 알프스의 연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제 막 첫눈이 내려 눈을 뒤집어쓴 연봉들의 모습도 아름답다. 사실 주크슈피체는 몽블랑(4,807m), 융프라우(4,158m)에 비하면 한참 낮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영토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서있다. 정상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과거 여권심사를 하던 검문소까지 있지만 유럽통합 이후 검문소는 관광안내소 정도로 변했다. 두 나라의 경계라는 것은 양쪽에 세워진 나라의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주크슈피체에선 산아래 빙하기때 만들어졌다는 아입제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다른 알프스에서 보기 힘든 모습. 이제 막 단풍물이 들기 시작한 숲도 곱다. 마치 공원의 비둘기처럼 알프스 산까마귀들이 관광객 주변을 맴돌다 손 위의 모이를 주워먹는 모습도 이채롭다.
산에서 내려와 파르텐키르헨의 프라운도르페르라는 선술집에 잠깐 들렀다. 관광객들이 빼곡하게 앉은 술집엔 80줄쯤 돼보이는 늙은 노인이 아코디언을 들고 귀에 익숙한 알프스민요를 연주했고, 노래가 끝날 때마다 관광객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맥주잔을 들었다. ‘아이네(하나) 쯔바이(둘) 드라이(셋) 수파(마시자는 뜻의 독일 방어)….’ 전세계에서 모인 관광객들이 서로 어깨에 손을 얹고 기차놀이도 하고, 독일민속춤을 함께 배우기도 한다. 흔히 독일인은 빈틈없고, 냉정하며, 정확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술 좋아하고, 어울리기 좋아한다. 민족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그러고보면 우리 한국인과 너무 닮았다. 독특한 문화가 깃들어있는 독일 알프스지역. 판에 박힌 유럽 대신 새로운 여행지를 찾는다면 한번 권해볼 만한 코스다.
▲여행길잡이
10월말부터 서머타임이 해제돼 시차는 한국이 6시간 정도 빠르다. 유럽의 가을은 우리와 달리 더 춥다. 초겨울 날씨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환율은 1유로에 1,300원 안팎. 항공편은 루프트한자 독일항공(02-3420-0400)이 인천~프랑크푸르트를 매일 운항한다.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11시간30분 걸린다. 독일항공은 시즌마다 조기구매 상품 이벤트를 여는데 정상가보다 최고 60~70%까지 싸게 살 수 있다. 출국이나 입국시 반드시 한번은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이용하되 나머지는 파리, 런던, 로마, 리스본, 뮌헨 등 루프트한자가 선정한 20개의 유럽 도시 중 한곳을 선택하면 된다. 2006년 1월 출발하는 유럽왕복항공권은 75만원(정상가 1백75만원). 11월9일까지 예약해야 한다. 홈페이지(www.lufthansa-korea.com)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현지에서는 아무래도 철도가 빠르다. 유럽의 주요 국가 철도상품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는 회사는 레일유럽(www.raileurope-korea.com). 유레일패스뿐 아니라 독일만 다니는 독일패스, 독일 베네룩스패스, 독일~덴마크패스, 유럽 22개국 중 국경 인접국 3~5개국을 정해진 기간동안 무제한 탑승하는 유럽셀렉트패스, 독일 통과 호텔열차, 독일 야간열차 등 모든 종류의 열차상품을 취급한다.
독일 내에서만 여행할 수 있는 열차패스의 경우 고속열차 ICE와 국철을 포함, 1개월내 4일을 무제한 탑승할 수 있는 2등석 트윈(2인상품) 기준 135US달러다. 1~2번의 열차만 이용할 경우는 구간 티켓 요금과 패스 요금 차이를 비교해보는 것도 좋다.
레일유럽 티켓판매대행 여행사는 일반인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하지 않고 서울항공(02-755-1144), 리얼타임 트레블 솔루션(02-3704-2800), 하나투어(02-2127-2325) 등 판매대리점을 통해 열차표를 판다. 프랑크푸르트 근교의 뤼더스하임, 뉘른베르크, 뮌헨, 가뮈쉬 파르텐키르헨 등도 열차편을 이용할 수 있다. 가미쉬파르텐키르헨의 경우 숙박은 B&B스타일의 민박집도 많고 성수기를 제외하면 예약없이 곧바로 숙박할 수도 있다. 독일관광청 업무는 대사관 상무과에서 대행한다. 뮌헨관광국(02)773-6430
〈독일|글·사진 최병준기자 bj@kyunghyang.com〉
출처:경향신문
# 33 독일 알펜가도의 아름다운 마을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 & 오머아머가우
로만틱 가도’로부터 만하임에서 뉘른베르크에 이르는 고성가도, 그림 형제가 태어난 하나우(Hanau)에서 동물음악대로 유명한 브레멘(Bremen)에 이르는 메르헨 가도, 프랑크푸르트에서 라이프치히에 이르는 괴테가도, 그리고 그리고 이름처럼 알프스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알펜 가도 등이 대표적인 도로들이다.
그 중에서 알펜가도는 스위스와의 국경지대인 브레겐츠에서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지대인 베르히테스가덴까지 이어지는 500km의 도로로 이 지역은 알프스가 제공하는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기 위해 여름에는 휴양이나 피서, 겨울에는 스키를 타려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일년 내내 끊이지 않는다.
바이에른 알프스 산지의 독일 최고봉, 추크슈피체(Zugspitze)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동화처럼 작고 에쁜 도시이다. 파트나흐 강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던 두 마을 가르미슈와 파르텐키르헨이 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해 통합되어 1935년 시로 승격되었고 1936년 제4회 동계올림픽경기가 개최되었다.
가르미슈 중심가에 있는 공원인 쿠르파크에서는 야외 공연이 열리며, 공원 내부에 있는 쿠르하우스에서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메이슨 도자기들과 전통적인 장난감들을 구경할 수 있다. 파르텐키르헨의 중심가에는 전통방식 그대로 채색된 집들이 늘어서 있어 눈길을 끌고 작은 박물관에서는 이 지역의 생활상을 구경할 수 있다. '모모'의 저자로 유명한 미하엘 엔데가 태어난 고장이기도 하며, 이 곳에서 말년을 보내며 음악 창작에 몰두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기념하는 축제도 열린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방의 작은 도시, 오버아머가우는 루드비히 2세가 지은 ‘린더호프성’이 있어 유명한 곳이다. 1845년 바이에른 왕국 막시밀리안 2세의 장남으로 태어나 1864년 왕위에 오른 루드비히 2세는 정치보다는 동화처럼 아름다운 성을 짓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고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에 반대세력들에 의해 불행한 죽음을 맞게 되지만, 퓌센의 노이슈반스타인’과 오버아머가우의 ‘린더호프 성’, ‘헤렌키엠제 성’까지 그가 지은 세 개의 성은 아직까지 남아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린더호프 성은 왕이 살아있을 때 완성된 유일한 성이었고 왕이 자주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노이슈반스타인 성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아름다운 정원과 분수, 그리고 왕의 상상력이 표현된 인공동굴인 ‘비너스의 동굴’ 등은 감탄할 만하며 특히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천장화는 일부가 조각을 이용해 입체적으로 만들어져 시선을 끈다.
오버아무가우는 12세기부터 목각공예로 유명해 지금도 ‘국립목각학교’가 이 곳에 위치하며 마을 곳곳에서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주택을 볼 수 있다. 17세기부터 공연이 시작된 ‘그리스도 수난극’으로도 유명하다.
가르미슈와 오버아마가우 사이에 위치한 ‘에탈수도원’은 1330년 바이에른공국의 카이저 루이 4세가 세운 이 수도원으로 알프스산록에 위치한 수도원 중 가장 유명하며 유럽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순례지이다
◈ 파사우
# 79 파사우 세 강이 흐르는 도시
시 _ 라이너 쿤체 Reiner Kunze
일러스트 _ 카렐 프란타 Karel Franta
번역 및 편집 _ 유지원 Yu Jiwon
시집 Wohin der Schlaf sich schlafen legt에서.
도나우강, 일츠강과 인강,
세 강이 흘러들어 도나우강의 큰 본류를 형성하는 도시, 파사우.
이 도시는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세 나라의 국경이 만나는 지점과도 가깝다.
오스트리아로 넘어갈 때 늘 국경을 지나는 곳으로만 생각했던 파사우,
파사우에 살고 있는 시인 라이너 쿤체를 통해,
그리고 라이너 쿤체와 마음이 맞는 카렐 프란타의 매혹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나는 이곳을 굳이 찾아가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도나우, 일츠, 인, 이 세 강은 푸른 강물의 드레스 입은 처녀의 모습으로 그려져서는,
파사우라는 도시 위에서 세 몸의 아랫부분이 하나가 된다.
검은 숲에서 시작하여 검은 바다에 가닿는 도나우강은
독일의 동쪽 국경 파사우에서 일츠강, 인강과 서로 만나 몸을 합친 후,
오스트리아로, 그리고 다른 여러나라로, 동쪽으로 동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강을 바라보는 언덕배기 집들과 풍요로운 종소리 울리는 교회의 모습은,
마치 오스트리아 어느 시골 마을을 연상하게 한다.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인강의 옆구리에 서 있는 건물은
동그랗게 푸른 지붕 이고 있는 첨탑을 가진 성 슈테판 성당,
이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 성당의 화려한 내부에는
카렐 프란타의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유명한 오르간이 있다.
231개의 레지스터와 17388개의 파이프를 가진 이 교회 오르간은 세계 최대의 규모라고 한다.
도나우강을 내려다보는 절벽 위 오버하우스 요새 가던 길.
영국, 혹은 스코틀랜드의 어느 길목을 연상시키는 단촐한 문들을 굽이굽이 지나갔다.
파사우의 집들이 하늘을 두려워할만큼
굵은 비가 흩뿌리고 세 줄기 강물이 차오르던 날,
저 멀리 물안개가 아스라히 피어올랐다.
날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레겐스부르크와 파사우,
바이에른 주 중동부의 이 오버팔츠-니더바이에른 지역에는
단풍이 불타는 듯 보기 드물게 유난히 빨갛디 빨갛게 물들어서는
가을비에 낙엽으로 지고 있었다.
심장이 강하지 않은 사람은 이 도시의 붉은 가을을 버티기 어려우리라.
저녁이 이렇게 깊어갔다.
이날도 해(日)가 저물어갔나 보다.
가을이 이렇게 깊어간다.
올해도 해(年)가 저물어가나 보다.
# 57 도나우강이 만나는 Passau
파사우(Passau) 시내 지도
지도에서 볼 수 있는 것 처럼 파사우는 세개의 강이 만나는 곳이다. Schwarzwald에서 흘러오는 Donau, Alpen에서 흘러오는 Inn, 체코에서 흘러 내려오는 Ilz. 이 세강이 여기 파사우에서 만난다. 여기서 합류한 강물은 도나우로 통합이 되어서 멀리 흑해까지 간다. 특히 관점 포인트는 3번 여기에 가면 강물의 색깔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독일 어디에도 이런 곳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1번 높은 곳에서도 관찰이 가능하다. 이곳에는 유스호스텔로도 사용하는데 올라가기가 쉽지않다. 조금 다리 품을 팔아야한다. 사진찍기에는 1번이 훨씬 좋다.
나는 파사우에 2번 가보았다. 역시 한번은 레겐스부르크를 거쳐서 간적이 있었고, 그때가 성탄절 무렵이었는데 당시 나는 Weihnachtstasse에 관심이 있어서 여러군데를 돌아다녔다. 약간은 수집벽이 있는 나로서는 도시마다 특이한 Tasse가 상당히 관심의 대상이었다.
두번째는 Bayern답사였는데 바이어른 주를 1주일 간 헤집고 돌아다녔는데 그때 많은 곳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당시 5월말이었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학생들이 약간 게으름을 부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일일히 다 설명하고 준비해오셨던 것을 다 풀어 놓으셨다.
또 다른 파사우와의 인연은 바로 내 기숙사 옆방 Nachbarin이 바로 파사우 출신이었다. 의학을 전공했는데, 한국 처럼 독일도 우수한 학생들이 의학 공부를 한다. 의학은 워낙 지원자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도시를 선택할 수가 없고, NC(Numerus Clausus: 입학정원제한)학과의 학생관리를 하는 ZVS에서 배정하기 때문에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학교를 다니는 경우가 많다. 이 친구(Alexandra)랑 나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별로 기숙사에서 마주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바쁜 와중에도 매주 금요일이면 집에 가고, 월요일에 오기 때문에 같은 Einheit이면서도 1주일에 2-3번 얼굴 보는 것이 고작이다. 지금은 벌써 훌륭한 의사가 되었을 것 같다.
위의 사진에서 왼쪽이 Inn강, 중간이 Donau, 오른쪽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Ilz. Inn강의 왼쪽이 Innstadt라고 하며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오스트리아 땅이 나온다. Inn강과 Donau 강 사이에 있는 지역이 Passau의 Altstadt이며 거의 모든 볼거리가 다 모여 있다.
세강이 만나는 Dreifluesseeck은 공원처럼 되어 있어서 산책코스로도 유명하다.
강에 떠 있는 배는 Rhein-Main-Donaukanal (라인-마인 도나우 운하: 라인강과 마인강 도나우강을 연결하는 운하로서 배의 항해가 불가능한 곳을 여러 시설을 설치함으로서 연결) 로부터 흑해 (Schwarzes Meer)까지 항해한다.
Dom St. Stephan의 모습. 파사우에는 오늘날 도시의 규모로 보면 소도시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돔을 통해 보더라도 과거에 굉장히 영향력 있는 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돔(Dom)의 내부 모습
나는 가끔 이러한 의문이 들었다. Dom이라는 단어는 러시아어를 비롯한 슬라브어에서 집이라는 의미이다. 신학공부하시는 어떤 목사님께 이것을 여쭈었더니 관계 있다고 하셨는데 정확한 답변은 기억이 안난다.
세계 최대의 교회 Orgel이라고 한다. 일찍이 독일에서는 파이프오르간 만드는 기술이 발전했는데 한국인 한 분이 구모씨 (이름을 잊어버렸음)가 파이프 오르간 제작 마이스터로 활동하신다는 것을 티브이에서 본적이 있다. 음악에 대한 조예와 음향학에 대한 공학적 지식의 만남.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파사우 대학 1978년에 생긴 신생대학. 학교는 규모가 작지만 지리학과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 지역 전문교수가 오랫동안 활동하다 은퇴하셨다. 여전히 이곳은 이태리 연구가 활발한 곳이다.
이것이 내가 답사 갔을 때 하룻밤 묵은 곳이다. Rotel Inn. 마치 거인이 누워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별칭이 Ruhende. 이곳의 방안은 마치 배의 선실같다. 안에 들어 가면 시설은 대단히 훌륭하나 조금 비좁다. 마치 일본의 어느 모텔같기도하고...
그러나 아침은 푸짐하다. 결국 방이 좁은 것을 제외한다면 별로 흠잡을 곳이 없다. 가격은 1인당
25 유로, 아침은 5유로. 개장시기는 2005년에 4월 29일부터 10월 3일까지 독일에 계신분들 서두르세요.
참고로 주소를 적어 보면
94032 Passau, Hauptbahnhof/Donauufer
Tel: 0851-9 51 60
Fax: 0851-9 51 61 00
e-mail: info@rotel.de
몇가지 빠진 것이 있어서 보충
Oberhaus Dreieckfluesse에서 건너편을 보면 높은 언덕이 있는데 여기가 Oberhaus -박물관과, 유스호스텔이 있음.
구시가지에 있는 St. Paul 교회
Ilz 강 쪽에 있는 St. Salvator 교회
오늘은 여기까지....
출처:네이버 블로그 립시아
◈ 튀링겐
# 78 튀링겐 지역의 작은 마을 에르푸르트(erfurt)
오늘은 튀링겐 지방의 에르푸르트에 대해 소개를 해드릴까 해요
이곳은 프랑크푸르트를 다녀가시는 분들이 한번 가볼만 하구요^^
기차로 약 한시간 20분정도 소요 되는 곳입니다.
면적은 7,349㎢, 인구는 20만 2100명(1999)이다. 튀링겐 분지 최대의 도시이며 중세부터 이 지방의 상업 중심지였다. 742∼755년에는 대주교 소재지였고, 1392∼1816년까지는 대학이 있었다. 1802년 프로이센령 작센주(州)에 속해 있었다.
독일 사회민주당대회(에르푸르트대회)가 1891년 10월 개최되어 에르푸르트 강령(카우츠키 강령)이 채택되었다. 기계·전기·금속·제화·의류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으며, 교외에서는 원예업과 채종업(採種業)이 활발하다. 많은 행정기관과 사범학교·의학전문학교·공업학교·원예학교 등의 문화·교육시설과 중심부에는 고딕 양식의 주교구청 교회, 루터가 있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현재는 고아원) 등이 있다.
마틴루터가 폭풍을 만나 회심을 한후 종교에 전념했다는 내용의 비석이 있는 에르푸르트 외각
에르푸르트 광장
에르푸르트의 전형적인 집들... 실제로 이렇습니다.
에르푸르트를 구석구석 연결하는 트램
에르푸르트 축제때 모습
주요 볼거리는 성 마리엔 교회와 카라메르뷰르케이구요
카라메르뷰르케는 알프스 북쪽의 유일한 다리이며... 몇개의 특이한 상점들을 볼수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등이 주요 볼거리이며 도보로 약 2~3시간이면 볼수 있고
아기자기한 독일의 작은 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수 있는 곳이랍니다.^
◈ 함부르크
# 67 독일 북쪽의 한자도시 함부르크
자유 한자 도시인 함부르크는 항구와 국제공항이 있어 유럽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170만명이 사는 이곳은 독일 북부의 경제 문화 중심지이자 쇼핑과 문화 중심지이다.
수많은 수로와 해변까지 갖추고 있다.
정식명칭은 자유한자도시 함부르크이다. 엘베강(江) 하구 110km 상류의 양안에 걸쳐 있다.
베를린 다음가는 제2의 도시로서 항구와 함께 국제공항도 있으며, 유럽 교통의 요지이다.
경제의 근간은 해운상업공업이며, 특히 독일 최대의 정유산업이 입지한다.
40㎢의 항만 중 15㎢는 자유항이며, 조석항이기 때문에 외항선은 만조를 이용해서 출입한다.
상업은 여러 방면에 걸쳐 이루어지며, 상업 종사 인구율은 17%로서 독일의 도시 중에서는 그 비율이 가장 높다.
조선, 정유, 차체(車體)타이어 제조 등이 중심공업이며, 그 밖에 기계전기통신기가구섬유담배화장품 공업이 영위된다.
1. 소개
인구 170만 명의 현대적인 도시 함부르크는 서베를린 다음 가는 독일 제2의 도시이자 무역항, 상공업의 중심지.
그러나 숲과 공원, 그리고 함부르크의 보석이라고 일컫는 알스터 호수가 시내 중앙에 자리잡고 있어
대도시면서도 녹지 공간이 풍부하고 여유로운 낭만이 있다.
2. 관광
(1)알스터 호(Alstersee)
함부르크 시내를 가로지르는 넓이 184ha의 인공 호수. 케네디교(Kennedy Brucke)와 롬바르트교(Lombards Brucke)의 두 다리를 경계로 남쪽의 작은 호수가 내알스터 호(Binnenalster), 북쪽의 큰 호수가 외알스터 호(AuBenalster)이다. 호수 주변을 따라 나 있는 7.5km의 가로수 길은 산책 코스로 인기가 높다. 또 내알스터 호 남쪽의 융페른슈티크(Jungfernstieg)는 함부르크에서도 화려한 거리 중의 하나로, 비즈니스와 쇼핑의 중심지이다.
(2)브람스 기념관(Johannes Brahms Gedenkraume)
한적한 페터 거리(PeterstraBe) 한쪽 모퉁이에는 함부르크 태생의 작곡가 브람스(1833~1897)가 청년 시절을 보냈던 집이 있다. 현재 기념관으로 개방 중인데, 브람스 자필의 악보와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스페크 거리(SpeckstraBe)에 있었던 그의 생가는 철거되었다.
(3)함부르크 역사박물관(Museum fur Hamburgische Geshichte)
9세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함부르크의 역사를 시대별로 소개하고 있는 박물관. 옛날 집의 모형과 배, 항해 등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철도 모형을 전시해 놓은 특별 전시실도 있다.
(4)함부르크항(Hamburg Hafen)
북해에서 110km 정도 내륙으로 들어간 엘베 강 연안에 있는 독일 최대의 항구다.
(5)알토나 박물관(Altonaer Museum)
알토나 역 근처에 있는 향토박물관. 북독일의 문화, 풍속을 알 수 있는 민속의상, 공예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알토나 마을의 역사를 소개한 방에는 당시 무역에 사용되었던 거대한 천칭이 전시되어 있다.
(6)미술공예박물관(Museum fur Kunst und Gewerbe)
고대 이슬람이나 아시아의 공예품, 중세 미사복, 이탈리아 마요리카 도자기 등
지역, 시대를 망라한 공예품이 눈길을 끈다.
3. 교통
(1)함부르크로 가는 길
*비행기
우리나라에서 함부르크로 가는 직항편은 없으며,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야 한다. 프랑크푸르트까지 직항편 소요 시간은 11시간 35분. 프랑크푸르트에서 함부르크까지는 약 1시간 거리이다. 베를린에서는 약 45분, 뮌헨에서는 1시간 20분 소요된다.
*기차
프랑크푸르트에서 ICE로 3시간 30분, 베를린에서 IC로 3시간, 뮌헨에서는 약 6시간 소요된다.
(2)공항에서 시내로 가기
중앙역까지 운행(직행)하는 셔틀 버스를 이용하면 25분 정도 소요된다. 요금은 편도 8DM, 왕복 12DM(05:30~23:00까지 운행)이다. 에어포트 익스프레스(110번 버스)는 S-bahn 1/11의 Ohlsdorf 역까지 왕복 운행하는데, 약 40분 소요된다. 편도 요금은 4DM(05:00~23:00까지 운행). 택시를 이용하면 시내 중심가까지 약 30DM이다.
[함부르크 풀스 뷰텔 국제공항 Flughafen Hamnurg Fuhls Buttel]
시내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약 8km 거리에 위치. 모두 4개의 터미널로 되어 있으며, 루프트한자 등 주요 항공사가 발착하는 곳은 터미널 4층, 도착 로비는 1층, 출발 로비는 2층이다.
[함부르크 중앙역 Hamburg-Hauptbahnhof]
DB의 주요역은 시내 중심의 함부르크 중앙역(Hbf)을 비롯해 알토나(Altona) 역, 담토아(Dammtor) 역, 교외에 있는 하부르크(Harburg) 역까지 모두 4곳이다. ICE 등의 급행은 중앙역과 알토나 역 양쪽에 정차한다. 중앙 역사에서 나가는 출구는 북쪽(Nord)과 남쪽(Sud), 그리고 시내로 통하는 현관이라고 할 수 있는 동쪽 키르헨알레(Kirchenalle) 세 곳이다.
(3)함부르크 시내 교통
S-bahn과 U-bahn, 버스, 알스터 호 정기선 등 시내 주요 교통 수단은 모두 함부르크 교통연합 HVV에 가입되어 있어 공통 승차권 하나로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요금은 존에 따라 2.40~3.70DM이며, 역 등의 오렌지색 자동판매기에서 구입할 수 있다.
# 74 Lubeck 이란곳을 아세요?? (함부르크에서 한시간)
여행 루트 짜다보면은..
가이드북에 나와있는곳만 가기 쉽잖아요,,^^
사실 자세한 정보도 없으니 그럴수 밖에 없는건 사실입니다.
제가 소개해 드릴곳은 여행지가 아니여서 좋은 여행지??ㅎㅎ
로마나 파리.. 이런곳 가게되면은 아무래도 관광지이다보니깐
나 말고도 많은 관광객들을 볼수 있죠..그러다 보니 상업적으로 변하는게 또 현실이고~~
뤼벡 이 도시는요,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 사는곳이다 보니
구경하는 재미가 더 좋은것 같아요~~~^^
lubeck
함부르크 위쪽에 있는 도시에요. 함부르크에서 한시간 걸립니다.
호수로 둘러쌓여있어서 아주 낭만적이에요~~
하루 쉬기 딱좋아요~~~~^^
사람들도 무지 친절해요~~~
동양인이 신기한건지 쳐다보고 지나가면서 인사도 하고 그래요~~ㅋㅋ ^^;;
지도보고 있으면 옆에와서 가르쳐주시기도 하고~
어느날은 짐을 낑낑거리고 끌고 가고 있더니 차한대가 옆에 스더니
뭐 도와줄꺼 없냐고 묻기까지~~~^^
중세도시 분위기에~사람들도 좋고~경치도 좋구요~~강추입니다~
유람선도 타보시고~~ 인형박물관이 있어요~~ 그곳도 구경해보시구요~~
시내구경도 해보시고~~ 한적하게 하루 머무시기 좋아요~~~
왕 추천입니다~~~
◈ 프라이부르크
# 69 환경도시 그리고 중세도시 프라이부르크
익숙하지 않은 여행지, 고풍스런 돌길 등 의외의 볼거리 탄성
낯선 곳에서 숨겨진 매력과 만난다
프라이부르크를 찾던 날, 낮게 깔린 잿빛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듯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다. 프루다못해 검은 빛을 띤다는 독일 흑림 지대가 시작되는 도시.
하지만 4월말에 본 흑림은 검다기 보다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시원한 빗줄기를 기다리는 듯 했다.
우리에게 프라이부르크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독일이라면 베를린이나 뮌헨을 먼저 떠올리고 여행자들은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함부르크 등의 대도시와 작지만 그림 같은 성때문에 유명한 퓌센 등지를 찾곤 한다. 프라이부르크 낯선 도시다.
하지만 음악이나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혹은 유럽축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에게 프라이푸르크는 낯설지 않다. 음악과 법학으로 유명한 프라이부르크 대학, 생태도시의 본보기로 꼽히는 도시, 그리고 독일 분테스리가에서 중위권을 차지하는 SC프라이부르크팀때문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한 곳이 프라이부르크다.
흑림과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몇 천년전 인간이 만든 숲 흑림은 이제 세계를 대표하는 자연 숲지대가 되었다. 중부나 북부와는 달리 날씨가 좋고 일조량이 많아 포도가 잘 자라고 따라서 좋은 와인이 만들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고풍스러운 구시가지
구시가지의 중심은 대성당(Munster)이다. 도시 어디에서건 이 성당의 독특한 첨탑이 보이기 때문에 좋은 이정표가 된다. 성당은 1200년에 짓기 시작해 모든 부속건물의 완공을 본 것은 1513ㄴ녀에 이르러서 였다. 프라이부르크 주변에 대성당만큼 높은 건물은 없다.
일요일을 제외하면 첨탑 전망대까지 올라가 볼 수 있다. 대신 일요일 아침에는 성당의 미사를 보기 위해 광장을 가로질러오는 신부와 사제들의 행렬을 볼 수 있다. 매주 일요일마다 되풀이되는 이 행사는 아침 11시경에 있다. 미사를 위해 복장을 갖춰 입은 신부와 하얀 옷을 입고 그 뒤를 따르는 사제들, 성가대 소년들로 이뤄진 행렬이 무척 독특하다.
성당 내부는 화려하면서도 경건하게 꾸며졌다.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스테인드 글라스는 다채로운 색채로 빛난다. 첨탑에 걸린 '호산나'라는 이름의 종은 1258년에 주조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종으로 알려져 있다.
대성당 광장에는 매일 아침 시장이 선다. 인근에서 재배한 채소와 과일들을 농부들이 직접 가지고 나와 판매하기도 하고 꽃시장이 서기도 한다. 일요일이나 공휴일 등에는 장이 없다. 활기 넘치는 아침 시장을 구경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세계대전 당시 프라이부르크도 폭격을 받아 대부분의 건물드이 부서졌는데 대성당과 광장 주변의 두어개 정도는 다행히 폭격을 맞지 않았다. 광장 동편의 붉은 건물 역시 폭격을 피한 것 가운데 하나인데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인다. 프라이부르크의 역사와 유적들을 볼 수 있다.
구시가지 거리마다 작은 수로
거리를 거닐다보면 두 가지 특이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바닥에 온통 돌을 박아 포장을 했다는 것과 운하같이 생긴 작은 수로들이 거미줄처럼 도시 여기저기를 흐른다는 것이다. 먼저 거리에 포장된 돌들은 이 도시의 특징으로 라인강에서 가져온 돌을 깔아 만든 것이다. 주먹 정도 크기의 돌을 반으로 갈라 편편한 면이 위로 올라오도록 박아 넣은 것으로 일일이 수작업으로 했다고 한다.
몇 백년 된 것에서부터 최근에 보수한 것까지 연대가 다양하다. 재미있는 것은 상점의 경우 자신들이 파는 물건을 상징화해서 상점 앞에 돌을 박아 간판처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칼을 파는 집이라면 다른 색깔의 돌로 칼 무늬를 만들어 넣는 식이다.
수로는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프라이부르크만의 독특한 것이다, 수원이 흑림에서 시작되어 도시로 흘러들기 때문에 물이 맑고 무척 차다. 중세시대 당시 구시가지의 건물 대부분이 ㅁ고재로 만들어졌는데 불이 날 경우를 대비해 수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대 만들었던 수로가 그대로 이용되고 있다.
여름철이면 아이들이 물속에 들어가 장난을 치기도 하고 나이 많은 어른들은 물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잊기도 하는 등 정겨운 모습을 연출한다.
성당과 함께 구시가지를 대효하는 또 다른 건물은 시청사다. 중세시대에 지어진 여러 개의 빌딩들을 하나로 엮어 시청으로 쓰고 있다. 새 시청사 건물은 1901년에 완공된 르네상스 양식이다. 정문앞에는 시청 광장이 펼쳐지고 광장 가운데 시원한 물을 뿜어 올리는 분수대가 자리하고 있다.
프라이부르크의 나이트 라이프
중세시대 시가지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지금은 두 개의 정문이 그 흔적을 보여준다. 마틴스토어(Martinstor)와 슈바벤토어(Schwabentor) 등 두 개의 성문으로, 가운데 아치형 문이 뚫렸고 위쪽에 커다란 벽시계가 달린 첨탑처럼 생겼다.
마틴스토어 오른편으로 자리한 건물들은 대부분 프라이부르크 대학 소속 건물이다. 베르톨토 거리에 면한 올드 유니버시티 쿼터, 유니버시티 라이블러리 등이 한 구역 안에 있다. 이 곳을 대학라가라고 불러도 좋은데 밤이 되면 대학가의 작은 골목들에 젊은이들이 모여 든다. 여기에 분위기 있는 카페며 술집, 나이트클럽 등이 몰려 있기 때문.
프라이부르크는 남서부 독일의 문화적인 중심지다. 공연이 많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데 평균을 내보면 하루에 2.5회의 공연이 열린다. 크고 작은 공연장이 많고 공연을 즐기는 인구 또한 많은 편이다.
그날 열리는 공연을 찾아보는 것도 좋고 대학가에서 밤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단, 이곳 젊은이들은 본격적인 나이트라이프를 늦게 시작하므로 저녁식사를 느긋하게 즐긴 다음 천천히 찾아가도록 한다. 최소한 10시는 넘어야 하며 나이트클럽의 경우 영업 시작 시간이 11시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려면 12시 정도는 되야 한다는 얘기. 대학가의 니멘스 거리나 뢰벤 거리 등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마음에 드는 술집을 발견할 수 있다. 베르톨트 거리에는 현대적인 분위기의 바들이 몇 개 있다.
독일 최고의 테마공원 유로파 파크
프라이부르크에서 30여분 거리에 있는 유로파 파크는 독일에서 가장 큰 유럽에서는 파리의 유로 디즈니랜드에 이은 대규모의 테마공원이다. 공원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지난해 관람객 수에서 유로 디즈니랜드를 앞섰다고 할 정도로 인기 있다.
독일에 있지만 위치상 스위스 바젤에서 1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도 30분 정도면 닿을 수 있어 주변 국가들에서도 많이 찾는다.
유로파 파크의 매력은 스릴 넘치는 롤러코스터 같은 놀거리와 함깨 로맨틱하게 꾸며진 전체 분위기에 있다. 2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조금씩 부지를 넓혀가며 고목들이 많고 공원을 가로지르는 두어 개의 시냇물 등 자연이 살아있다는 느낌이다.
공원은 유럽의 여러 나라를 테마로 영역을 나누고 있다. 독일 거리, 스페인 거리, 러시아 거리, 영국 거리, 프랑스 거리 같은 식으로 모두 17개의 나라들이 존재한다. 그 나라 고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입구를 지나면 맨 처음 독일 거리가 나온다. 거리 오른쪽에는 베를린 장벽이 서 있는데 실제로 베를린 장벽 일부를 가져온 것이라고 입구에서 출발해 공원을 한바퀴 돌아오는 모노레일 전차를 타고 둘러보며 자신이 갈 곳을 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유럽에서 가장 높고 가장 큰 롤러코스터인 실버스타는 유로파 파크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탈거리. 73m 높이에서 거의 수직에 가깝게 떨어지는데 번지점프를 하는 것처럼 짜릿하다. 이밖에도 다양한 탈거리와 쇼. 공연이 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놀이시설이 많아 가족 단위로 찾는 이들이 많다.
매일 문을 열며, 오전 9시부터 오후6시까지 영업한다. 입장권은 어른 25유로(한화로 약3만5,000원), 어린이(4~11세) 22.50유로, 입장권만 구입하면 공원 내 모든 시섦루들을 이용할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www.europapark.de
☞ 항공 : 프랑크푸르트까지 항공기를 이용한 다음 프라이부르크까지 기차나 버스로 이동한다. 루프트한자 독일항공에서 프랑크푸르트행 직항편을 매일 운항한다. 약 11시간30분 소요. 대한항공은 매일 1회, 아시아나항공은 주 4회(월,수,금,일요일) 직항편이 있다.
☞ 현지교통 프랑크푸르트에서 프라이부르크까지 차량으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기차의 경우 ICE(Inter City Express)가 주로 운행하며 2시간 20분이면 도착한다. 1시간에 한두 대 정도로 자주 있으므로 편리하다. 프라이부르크 시내는 아담한 편이라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도 돌아다닐 수 있다. 중앙역에서 시내 중심에 있는 대성당까지 걸어서 15분 정도면 도착한다. 대부분의 볼거리가 구시가지 안에 몰려 있다. 흑림 여행을 할 경우 기차나 버스로 20~30분 정도 외곽으로 나가야 한다.
☞ 여행자 안내소 중앙역에서 베르톨트 거리를 따라 시내로 가다가 로텍링(Rottecking)을 만나면 길을 건넌다. 좌회전해서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여행자 안내소가 보인다. 로텍링 14번지에 위치, 시내와 흑림에 관한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평일에는 오후9시까지, 토요일은 5시, 일요일 및 공휴일에는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문을 연다.
☞ 숙소 시내 중심에 20여개의 호텔들이 있다. 버스나 트램 등을 이용해야 하는 시내 외곽의 호텔까지 모두 합하면 70여개에 이른다. 저렴한 것부터 럭셔리 호텔까지 다양하므로 주머니 사정에 따라 고르면 된다.
☞ 음식 독일 음식이라고 하면 대부분 소시지를 떠올리는데 소시지 외에도 다양한 음식이 있다. 프라이부르크만의 음식은 따로 없지만 이 지방에서 생산하는 와인이 있으므로 요리와 함께 맛보는 것도 좋다. 대성당 광장에 면한 식당들은 오래 전부터 영업해온 전통있는 곳들이다. 이 가운데 "Oberkirch"sms 1, 2층은 레스토랑, 위쪽은 호텔로 이용되는 곳인테 맛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출처:주간 한국
◈ 라이프치히
# 60 유럽의 학문 및 문화의 중심지 라이프치히
Leipzig
독일 작센 주에 있는 도시로 베를린에서 180킬로미터 정도 남서쪽에 있다. 독일에서 열 번째로 큰 도시이며, 유럽의 학문 및 문화의 중심지다. 1409년에 세워진 대학교는 1953년 "라이프치히카를마르크스" 대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 종합대학과 음대와 미대가 있다. 유지는 물론 미대지만 기숙사는 다 같은 곳을 쓴다고 한다. 인터넷 연결하자마자 "나 이뿌지?" 하면서 보내온 사진이다.(ㅋㅋ) 라이프치히는 일찍이 인쇄업이 발달하였고,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영향으로 음악의 전성기를 맞으면서 문화가 크게 발전한 도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리하르트 바그너도 이 대학교를 다녔다. 박물관과 연극예술, 음악사, 그래픽아트 학교 등이 많이 있고, 도서출판업은 국제적으로 가장 유명한 곳이다. 시립도서관으로는 독일도서관과 유럽에서 가장 큰 교육 분야 전문도서관인 코메니우스 도서관 등이 있다.
학교 창밖
그래픽 및 북아트 대학 (Hochschule fur Grafik und Buchkunst)
라이프치히 대학교
*** 유지의 편지 2
라이프치히 시내 북쪽 교외에는 시가 전차 역사 박물관이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라이프치히 시내 철로 위를 다니던 전차들을 전시해둔 곳이다.
실제 사용하던 옛 전차에 올라가 볼 수도 있고,
30년대, 50년대, 70년대... 등 지난 시절의 차장 및 기장의 복장,
전차 교통표 끊는 기계, 정류장, 좌석, 운전석, 그리고 복잡한 기계 내부 모습까지 전시되어 있다.
이 박물관까지 50년대 라이프치히를 지나다니던 전차를 타고 갔다.
이 전차는 5월부터 9월까지 세째주 일요일에만 운행한다.
즉 1년에 5일만 타볼 수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그래서 관광객들보다는 라이프치히 시민들, 특히 향수에 젖고 싶은 노인과 가족들이 많이 찾는다.
라이프치히는 구동독에서 베를린을 제외하고 가장 큰 도시여서 시내는 무척 번화했지만,
교외로 나가니 동독의 옛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외국인은 나 혼자였는데 신기해하며 말 거는 노인들이 몇 분 있었다.
그것도 작센 지방의 아주 심한 사투리로 말이다.
표준 독일어로 똑똑히 말해도 온 신경을 집중해야 알아들을 판에
웅얼웅얼한 작센 사투리로 말을 거니 좀 난감했지만, 그래도 정겨웠다.
옛 전차를 간이 레스토랑으로 개조하여
그 곳에서의 시간을 만끽하도록 하는 배려도 엿보였다.
지금도 여전히 라이프치히 교통 기관인 LVB라 써있는 전차 레스토랑 앞에서
날씨 좋은 5월 세째주 일요일 오후를 만끽하는,
작센 사투리를 쓰던 옛 차장님들의 모습이다.
전차들의 여러 모습 80여장을 촬영했는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이 사진 속의 여유가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든다.
수십년 전 라이프치히를 누비던 모습의 시가 전차와 그 차장 아저씨.
역시 심한 작센 사투리를 쓰시던...
위에 보이는 줄을 당기면 땡! 소리가 난다.
출처: http://blog.naver.com/urbanitas222
◈ 베를린
# 26 [독일] 베를린
Berlin은 참 이것저것 뭔가가 많은 동네이지요.
관광지도 좋지만. 조용한 서베를린지역을 걸어다니는것도 참 좋은 관광이 될것같아요^^
1 Reichstag 제국의사당 에서 본 Breandenbruger Tor브란덴부르크문
2 마찬가지로 Reichstag에서 본 바깥 풍경(국기가 무서워 보였다는-_-)
3 브란덴부르크 문
4 베를린대성당 Berliner Dom의 천장 (근데여기 개신교라죠-_-)
5 ZAPATA라고 하는 반전 갤러리.(동독지역에 있죠. 친구오면 반드시 데려가는곳 굉장히 유명해요)
6 ZAPATA 1층의 술집. 마리화나가 거래되고있죠. 냉전때는 이곳에 폭탄이 그대로 방치되어있었다네요
7 이름을 잊어버린-_-ZOO역근처의 극장
8 베를린오페라 매표소a
9 길-게 남아있는 베를린장벽
대강 이렇게 관광지 올려봐요~ㅎㅎ
제국의회의사당은 가는거 꽤 복잡하실꺼예요. 언제나 사람이 많아서;;;
아침일찍가는게 가장 좋답니다^^
# 21 독일 베를린 베스트 10
베를린은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들이 오매불망 사모하는 도시다. 지금 유럽에서 가장 핫한 도시인 베를린에서 꼭 경험해야 할 10가지를 추천한다.
1. 베를린의 관문, Bahnhof Zoo
정말이다. 루 리드는 베를린에 한 번도 가보지 않고도 자신의 동경을 담아 앨범 <Berlin>을 만들었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 역시 단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베를린 파시스트 젊은이들의 복장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는 베를린 주(Zoo) 역의 구조도 꽤 소상하게 알고 있다. 데이비드 보위의 베를린 공연이 꽤 길게 나와서 보았다는 영화 <Christiane F>에서 주인공 소녀가 몸을 파는 장소로 베를린 주 역이 자주 등장하니까. U2의 <Zooropa>도 바로 이 주 역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유럽의 다른 도시에서 기차로 베를린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주 역(베를린 사람들은 ‘반호프 후’라고 부른다)은 베를린을 찾아온 예술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바로 앞에 ‘섹스 박물관’이 있는 역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2. 33번 묵어보아야 할, Propeller Island City Lodge Hotel
베를린에서 객실마다 각기 다른 인테리어로 장식하여, 다시 찾게 만드는 마케팅 수법은 꽤 전통적인 축에 낀다. 그 중 프로펠라 호텔은 꽤 유명하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5명이 의기투합하여, 명상의 방, 레슬링의 방, 사자의 방, 할머니의 장롱 방 등 아기자기하고 기상천외하며 동시에 안락한 33개의 방을 디자인했다. 홈페이지(www.propeller-island.com)로 미리 원하는 방을 예약할 수 있다. 하룻밤에 약 100유로 정도. (내가 묵은 방은 갤러리의 방이었다. 색이 들어가긴 했지만 투명한 유리를 통해 샤워시설이 딸린 화장실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그 안의 사람도 함께….)
3. 베를린풍 귀염둥이
‘베를린은 젊고, 거칠고, 즉흥적이고, 공허하다.’ 디올 옴므의 디자이너이기도 한 에디 슬리메인의 말이다. 그는 베를린에서의 일상을 담은 사진집, <Intermission>과 <Berlin>을 내기도 했다. 사진집 속의 베를린 청년들, 근육이라고는 한 점도 찾을 수 없는 바싹 마른 몸에 퇴폐적인 분위기의 그들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쿠담이나 프레드리히 거리의 현대적인 쇼핑가를 돌아보다가 보면 점점 의문에 빠진다. 자정이 넘은 시간, 클럽이 즐비한 미테(Mitte)라는 지역에서 마침내 만났다. 지하의 어두컴컴한 클럽에서 만난 남녀 모두, 골반에 걸쳐진 청바지에 체인을 늘어뜨리고, 소매를 잘라 낸 검은색의 셔츠를 입고, 그 가늘고 긴 팔에 가죽 팔찌를 둘렀다. 검은색 아이라인을 둘러 퀭한 눈매까지 그 시절의 마약 복용자들 그대로였다. 파리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어진, 이 거칠고 혼돈에 빠진 젊은이의 문화를 사랑하는 에디 슬리메인은 주말이면 기차를 타고 베를린을 찾는다고 한다.
4. 클럽에서 맞는 일요일 아침
일반적인 베를린의 주말은 이렇다. 자정 무렵이면, 밤새도록 운행하는 지하철 U반을 타고 프리드리히샤인(Fridrichshain) 거리를 따라 줄줄이 늘어선 레이브 클럽,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의 펑크 클럽, 쇼네베르크(Schoneberg)의 몰려 있는 게이와 레즈비언 클럽으로 간다. 출출해지면 밤새 문을 여는 야식집에서 소시지나 베이글로 간단한 요기를 하고 클럽에서 클럽으로 옮기다 보면 어느새 일요일 아침이 밝아온다.
5. 내 생애 최고의 음반 가게, Leila-M Music Berlin
다 합쳐봐야 3백 장도 안 될 것 같은 CD들은 알파벳 순서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카드도 안 받는다. 하지만 자기 마음에 드는 중고 음반만을 갖다 놓는다는 주인이 마음에 들었다. 말년의 커트 코베인처럼 생긴 그의 취향은 뷰욕, 알렉스 고퍼, DJ 클러쉬, 피치카토 파이브처럼 대중적인 이름도 있고, 베를린을 비롯한 유럽의 인디 음반도 있다. 망설여진다면 소파에 놓인 휴대용 CD 플레이어로 들어보면 된다. 장르, 국적, 레이블의 이름으로 구분된 LP들 역시 턴테이블로 들어볼 수 있다. 어떤 음악이든 듣고 살 수 있다!
6. 베를린에서 가장 주목받는 갤러리, Kunst-Werke Berlin
에디 슬리메인이 베를린을 오고 가며 작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쿤스트 베어크 베를린에서 제공한 스튜디오 덕분이었다. 쿤스트 베어크, 줄여서 KW는 본래 마가린 공장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개조한 현대 갤러리로, 젊은 아티스트들이 베를린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돕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가장 컨템포러리한 작업을 지원하는 게 특징으로, 지난여름 아트선재에서 전시를 했던 토비아스도 이곳 출신. KW의 디렉터는 뉴욕의 대표적인 컨템포러리 갤러리 PS1의 큐레이터이기도 해서, 뉴욕과 교류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주변에 속속 현대 갤러리들이 생기면서 베를린 지역의 새로운 문화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아우구스트라세(Auguststrasse) 역에서 5분 거리.
7. 콜위츠 플라자(Kollwitz Platz)의 허름한 갤러리들
세계의 재능 있는 젊은 예술가들이 죄다 베를린으로 이주한다는 소문은 거짓말이 아니다. 싼 아파트가 필요한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뿐 아니라, 베를린 서독 지역의 갤러리들도 구 동독 지역으로 옮기고 있다. 이들이 모여있는 크로이츠베르크과 프렌즐라우에르 베르크(Prenzlauer Berg)는 베를린의 여느 동네와 사뭇 다르다. 2년간 그곳 스튜디오에 있었던 에디 슬리메인의 말을 빌리자면, ‘80년대 뉴욕 이스트 빌리지’분위기라고.
지하철 S반 로사 룩셈부르크 역에서 숀하우저 거리(Schonhauser Strasse)를 따라 콜위츠 플라자까지, 무너져 가는 건물과 공사장 사이 사이에 부티크와 갤러리들이 있다. 말이 갤러리이지 낡은 건물을 대충 고친 전시장이다. 심한 경우에는 벽의 페인트가 너덜거리고 조명 시설도 제대로 안 되 있는 허름한 공간에 달랑 대여섯 점의 작품들이 전시되기도 한다. 채 30분도 안 되는 거리에 구겐하임, 페라가몬 박물관, 이집트 박물관 등이 몰려 있는 일명 박물관 섬과 비교하면 딱하기 그지없는 수준. 하지만 주말이면 베를린 젊은이들은 전시를 보러 이곳으로 몰려 간다. 벌써 70년대에 베를린 3부작을 발표했던 데이비드 보위는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말한다. “베를린 사람들은, 자고로 예술은 거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갤러리에서가 아니라.”
8. 크로이츠베르크 호프집에서의 맥주
크로이츠베르크 주변에 밀집해 있는 싸구려 술집에 가면 2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맥주를 배가 찢어지도록 먹을 수 있다. 게다가 저녁이면 주변의 예술가,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여행자로서 유일하게 그리고 가장 합법적인 방법으로 그네들의 저녁 시간을 훔쳐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 것에 비해 강하고 쓴 맥주 맛이 입에 안 맞거들랑, 맥주에 라즈베리를 첨가한 베를리너 바이세(Berliner weise)나 레모네이드를 섞은 알스터바저르(Alsterwasser)를 마셔보시길. 가장 대표적인 독일 맥주 브랜드, 베이젠블러(Weizenbler) 맥주와 흑맥주인 쇼바르츠비에러(schwarzbirer) 이름 정도는 알아두는 것이 좋다. 어디건 점원들은 친절하지 않고 맥주의 높이는 언제나 잔마다 그려진 눈금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9. no.100 시내버스로 하는 현대건축 여행
전쟁, 분단, 통일 등 그리 즐겁지 않은 역사가 만들어낸 베를린의 미학적인 도시 풍경을 단 돈 몇 천원에 감상할 수 있다. 주요 관광지를 가로지르는 100번 버스를 타보라. 동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을 가로질러 브란덴브루크 문부터 프레드리히 기념비까지 18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과 기념비들을 볼 수 있다. 또 단단하고 단조로운 공산주의 건물들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칼 막스 광장도 구경할 수 있다. 냉전시대에 폐허가 되었다가 최근에야 개발된 포츠담 광장은, 유명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들이 많다. 안타깝게 100번 버스는 가지 않지만, 바우하우스도 꼭 봐야 할 건축물. 지금도 주거단지로 이용되는 바우하우스를 보려면 지하철 S반 샤비그니 플라츠 (Savignyplatz) 역에서 내릴 것.
10.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89년 무너진 베를린 장벽의 흔적이 남아 있는 두 장소 중의 하나. 2000년 밀레니엄 행사의 하나로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들을 초대해서 콘크리트 벽을 그림으로 장식하게 했다. 이 관광 명소를 찾은 관광객들과 동네 건달들이, 낙서라고 하기에는 의미 있는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조금씩 덧붙이고 있다.
# 55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
독일 동부 브란덴부르크주에 위치한 베를린은 1871년 독일을 최초로 통일했던 프로이센 제국의 수도였다. 이후 유럽의 경제,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해 오던 베를린은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나뉘어 분단 독일의 수도로서 명맥을 이어오다가 1990년 통일을 맞았다. 이제 베를린은 통일 독일의 수도로서, 화합과 평화의 상징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맞고 있다.
베를린은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뉘어진다. Zoo역을 중심으로 한 샤를로텐부르크(Charlottenburg) 지구, 중앙역을 중심으로 한 동베를린의 미테(Mitte) 지구, 그리고 두 지역을 잇는 티어가르텐(Tiergarten)이다.
샤를로텐부르크 지구는 문화와 상업의 중심지이다. 베를린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쿠담(Kudamm) 거리가 이 곳에 있으며 신 로마네스트 양식의 기념교회로 황제 빌헬름 1세를 기념하기 위해 1891-1895년에 세워진 카이저 빌헬름 교회(Kaiser Wilhelm Memorial Church)에 여행객의 발길이 몰린다. 교회는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이를 복원하지 않고 옆에 새 교회를 지어 전쟁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현존하는 프로이센 시대의 궁전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 샤를로텐부르크 궁전(Schloss Charlottenburg)은 프리드리히 1세의 부인인 소피샤를로테 왕비의 여름별장으로 지어졌으며, 1695년 이후 100여년에 걸쳐 증축되어 본관의 길이가 무려 505m에 달한다. 베를린의 대표적인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영국식으로 꾸며진 아름다운 정원과 도자기 전시실이 볼 만하다.
티어가르텐(Tiergarten)은 16세기 프로이센 시대의 사냥터였으나 18세기부터 공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드넓은 공원 중앙에 높이 67m의 전승기념탑(Siegessaule: Victory Column)이 우뚝 서 있는데 이것은 1873년 프로이센이 전쟁 승리를 기념하며 세운 것으로 기념탑에 오르면 아름다운 베를린의 전경이 펼쳐진다.
베를린의 상징으로 불리는 브란덴부르그 문(Brandenburger Tor)는 미테 지역에 있다. 통일 전 동과 서베를린의 경계를 나누던 이 문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프로폴리아를 본떠 세운 것으로 거대한 문 위에는 2륜 마차 동상 ‘승리의 콰드리가’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전화를 입은 것을 1957~1958년 복원하였으며 이때 동상도 다시 만들어졌다.
미테지역에서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만날 수 없는 인상적인 박물관을 만날 수 있는데 바로 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 Museum)이다. 슈프레 강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곳에 위치한 박물관 섬에 페르가몬 박물관, 알테스 박물관, 보데 박물관, 알테 국립미술관이 모여 있어 돌아보기 편리하다. 페르가몬은 현재 터키 베르가모 지역에 실재했던 헬레니즘 왕국의 수도로 제국주의 시절, 독일은 터키로부터 발굴 허가를 받아 상당수의 헬레니즘 유물을 독일로 가져왔고 그 유물들을 전시하기 위해 새로 지은 박물관이 바로 페르가몬 박물관이다. 이 곳에는 서아시아의 고대건축물과 유물 등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인류 역사의 유산이 전시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박물관에 이름을 붙인 페르가몬 제단이 그 중 으뜸이다.
출처:한화투어몰
◈ 바덴바덴
# 48 온천으로 유명한 바덴바덴
내 여행기간은 길고 자금은 부족하기 때문에,
나는 '유로라인'이라는 버스 패스를 끊어서
모든 것을 그 일정에 맞추고 있다.
그 버스 패스는 유레일 기차 패스보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북유럽과 동유럽까지 아우를 뿐 아니라 가격이 절반도 안된다.
즉, 40일 일정에 350유로만 주면 정해진 도시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처음에 여행을 시작할 때 계획으로는
유로라인의 거점도시 30여개 남짓 중에 20개 정도는 가는 것이었고
그 외의 도시로 모로코의 페스와 독일의 바덴바덴이 꼭 가보고 싶었다.
허나 그 꿈은 엄청난 이동요금의 압박으로 잠시 제쳐두고 있었다.
그런데 Strasbourg에 처음 도착한 날 아침,
유로라인 사무실로 가는 길을 묻다가
그 프랑스 아저씨께 기쁜 사실 하나를 듣게 되었다.
바덴바덴이 그곳에서 3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야 바덴바덴은 독일이므로 당연히 독일 내에서 갈 수 있는 방법,
즉 프랑크 푸르트나 뮌헨에서 이동하는 방법만 찾아 봤을 뿐인데
세상에, 프랑스인 스트라스부르에서는 3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단다.
역시나 나는 좁은 틀에 갇힌 생각을 아직 깨지 못하고 있었다.
여하튼 나는 얼씨구나 하고 바덴바덴을 가게 되었다.
바덴바덴은 푸르고 조용한 작은 마을인데
세계에서도 유명한 카지노와 온천시설을 갖추고 있고
국제대회를 유치하는 등 국제적인 휴양 도시이다.
나는 예루살렘 후 처음으로 한국어로 된 안내 팜플렛을 받아들고
벼르고 별러 오던 온천 순방에 나섰다.
바덴바덴에는 두 개의 커다란 온천이 있다.
그 하나는 카르칼라 온천장으로 그 규모가 장대한데
커다란 수영장과 갖은 사우나 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또 하나는 프리드리히 온천장으로 로마시대부터 유명한 곳이라는데
현재 여기는 남녀혼탕으로 운영되고 있다! 크크크...
첫날은 카르칼라 온천장에 다녀왔다.
그저 큰 수영장에서 물살로 마사지를 하고
오랫만에 사우나에서 몸을 불렸더니 묵은 때가 싹 빠지는 기분이었다.
여기는 2시간에 12유로로 뭐, 가격도 적당했다.
둘째 날은 프리드리히 온천장에 다녀왔다.
난 여기 가면 쭉쭉하고 탱탱한 독일오빠들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숨을 고른 다음 들어갔다.
그런데 에게게... 아마 평균연령이 예순은 되는 것 같았다.
모조리 할머니, 할아버지인데다가
결국 마지막 탕에서만 만나기 때문에 별로 남녀혼탕의 재미가 없다.
게다가 가장 높은 탕의 온도가 겨우 체온온도 36도탕이라
실망하며 벽만 보고 앉아 있는데 왠 일본사람이 말을 걸었다.
내 참, 왜 쪽팔리게 말을 걸고 난리야, 진짜!
그 아저씨랑 탕 속에서 떠들고 노느라 다른 사람들 보지도 못하구...
물은 미지근직직한 게 온천 같지도 않구...
21유로 아깝게 휙 날려버린 듯 했다. 아까워~
그러나 바덴바덴에서의 1박 2일 일정은
빡빡하게 정신없이 돌아가던 내 여행에 샘물같은 휴식을 주었다.
바덴바덴의 유스호스텔은 내가 묵은 숙소 중 최고였다.
어깨 신경통도 풀어진 듯 하고 몸도 개운해졌다.
언제 다시 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다면
저 푸르른 언덕까지 자전거를 타고 누벼 보리라...
◈ 드레스덴
# 37 드레스덴 정보
(아래:드레스텐 구시가 중심부 야경)
(드레스텐 구시가지 지도)
도착하면 버스가 설수 있는 곳은 잼퍼오페라(Smper Opera)가 있는 극장 광장(theaterplaz)입니다. (위지도상에서 강 아래 부분 중 가장 위에 보이는 주차 표시) 기사와 같은 장소에서 만날 약속 시간 정하고 이동 하면 되고요. 버스는 다른 곳에 주차를 해야 하기때문에 반드시 약속시간 정할 것. 관광은 걸어서 하며 즈윙거 궁전,아우구스투스 거리,뷔륄 테라스,호프(왕실)교회 등을 보는 거죠.
(아래: 구시가지 중심)
대부분 볼거리는 광장을 중심으로 걸어서 5분이 채 안되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쉬운 곳입니다.
가이드는 없고 혼자 공부해서 다내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베를린에서 가이드가 드레스텐까지 서비스를 했었는데 비용문제로 가이드 없이 하고 있죠.
혹 베를린 가이드에게 부탁을 하면 될 수도 있겠네요.
물론 비용을 가이드와 상의를 하셔야 될 거구요.
그런데 별로 어려운 동네가 아니니까 완전히 헤메지만 않는다면 혼자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손님들에게 점수도 따고...
그리고 한바뀌도는데 1시간 30분 정도잡고 다니시면 될겁니다.
내부를 관람하는 것은 교회 한나 밖에 없으니까.
나중에 기회되면 쯔윙거 궁전에 전시된 작품을 보시던가...
참고로 올려준 사진을 보시고 잘연구 하시길.
(즈윙거 궁전)
(광장에 있는 왕실 교회:hofkriche)
(유럽의 발코니라 불리는 Brühl Terrace 엘바강을 끼고 드레드텐 조망하기에 그만: 커피 마시기에도 그만)
(마이센 도자기 타일로 만들어서 벽면에 붙인 "대공의 행렬"이라는 걸작)
위 그림에 나온 곳 정도만 관광 하셔도 됩니다.
프라운 교회가 하나 더 있는데 2차대전 공습 때 완전 파괴된것을 공사중이라 별로 보기에 좋지는 않구요
# 6 독일 [독일 드레스덴] 레지던츠 궁전
독일에서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르네상스 스타일의 건물인 레지덴츠 궁전 (Residenzschloss (Royal Palace))은 12세기부터 역대 작센 군주가 살던 곳으로 Georg's wing, Hausmann Tower, Stallhof, Sgraffiti(사진 왼쪽위 사진부터 시계방향)로 구성되어있다.
1701년 아우구스트왕은 화재로 인해 파괴된 궁을 다시 재건하였고, 1899-1901년에는 신 르네상스 스타일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세계 제 2차 대전때 심하게 파괴되어, 1985년에 재건사업을 다시 시작, 2006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Hausmann Tower
타워안에는 박물관이 있으며, 3.5유로면(성인기준) 들어갈 수 있다.
탑위에서 보이는 시의 모습은 장관이다.
*Stallhof
원래는 마굿간이였으나 지금은 외벽의 타일 모자이크화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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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BURG은 프랑크푸르트BAHNHOF에서 기차로 1시간반정도 거립니다
대학도시이고 2차대전피해가 거의없는지역이라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