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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끓이기 -정양
<한밤중에 배가 고파서
국수나 삶으려고 물을 끓인다>
끓어오를 일 너무 많아서
끓어오르는 놈만 미친 놈 되는 세상에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이 반영된 구절임
열받은 냄비 속 맹물은
끓어도 끓어도 넘치지 않는다
▶끓어도 넘치지 않는 열 받은 냄비 속 맹물
혈식(血食)을 일삼는 작고 천한 모기가
호랑이보다 구렁이보다
더 기가 막히고 열받게 한다던 다산 선생
오물 수거비 받으러오는 말단에게
신경질부리며 부끄럽던 김수영 시인
그들이 남기고 간 세상은 아직도
끓어오르는 놈만 미쳐 보인다.
열받는 사람만 쑥스럽다
▶사소한 것에만 끓어오르는 것에 대한 반성과 끓어오르는 사람만 미쳐 보이는 현실에 대한 인식
흙탕물 튀기고 간 택시 때문에
문을 쾅쾅 여닫는 아내 때문에
'솔'을 팔지 않는 담배가게 때문에
모기나 미친개나 호랑이 때문에 저렇게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 있다면 ►택시, 아내, 담뱃가게, 모기, 미친개는 사소한 것들에 해당하 고, 호랑이는 사회 구조적 모순에 해당함
<끓어올라 넘치더라도 부끄럽지도
쑥스럽지도 않은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은 참 얼마나 아름다우랴>
▶끓어올라 넘쳐도 부끄럽지 않은 세상에 대한 소망
배고픈 한 밤중을 한참이나 잊어버리고
호랑이든 구렁이든 미친개든 말단이든
끝까지 끓어올라 당당하게
맘놓고 넘치고 싶은 물이 끓는다
▶당당하게 끓어올라 넘칠 줄 아는 삶에 대한 소망
* 한밤중에 배가 ~물을 끓인다: 시를 쓰게 된 계기
* 끓어오를 일 너무 많아서: 소시민들의 현실에 대한 분노
* 끓어오르는 놈: 사회의 부정과 불의에 분노하고 울분을 토하는 사람
* 세상: 부정적 현실
* 맹물: 비겁하게 세상의 모습에 한 마디 못하고 작은 것에만 분노하는 소시민
* 끓어도 끓어도 넘치지 않는다: 세상의 부정과 불의에 항거하지 못하고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 소시민의 나약한 모습을 나타냄
* 혈식(血食)을 일삼는 작고 천한 모기: 현실의 작은 불편을 주는 존재(말단 관리의 횡포)-정약용의 ‘증문’의 내용을 인용. ‘증문(憎蚊)’은 호랑이나 구렁이 같은 거대한 권력의 횡포에 대해서는 저항하지 못하고, 말단 관리의 횡포에 대해서는 크게 반응하는 자신의 좁은 속마음을 자조적으로 비판한 작품임. 이 시에서는 자신의 소시민적 속성에 대해 비판하기 위해 ‘증문’을 인용한 것임.
* 호랑이보다 구렁이: 세상의 부정과 불의,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의 원인이 되는 존재(거대한 권력의 횡포)
* 오물 수거비 ~신경질부리며 부끄럽던 :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인용. 사회의 부정과 불의에 항거하지 못하면서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 자신의 비겁한 모습(소시민적 속성)을 노래한 작품임. 이 시에서는 자신의 소시민적 속성에 대해 비판하기 위해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인용한 것임.
* 끓어오르는 놈만 미쳐 보인다 : 세상의 부정과 불의에 분노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이 반영됨
* <끓어올라 ~얼마나 아름다우랴>:화자가 꿈꾸는 세상. 응당 분노해야 할 것에 분노하고 그 분노가 부끄럽거나 쑥스럽지 않는 세상
* 호랑이든 구렁이든 미친개든 말단이든: 작은 것에서 큰 것까지 분노할 모든 것들
* 맘놓고 넘치고 싶은 물: 화자가 추구하는 모습-분노할 것에 당당히 분노할 줄 아는 모습
◆ 해제: 이 시는 국수를 삶기 위해 물을 끓이는 일상적 경험에서 얻은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열 받은 냄비 속의 맹물이 끓기는 하지만 좀처럼 넘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끝까지 끓어올라 맘 놓고 넘치는, 또 그렇게 끝까지 끓어올라 넘쳐도 당당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마땅히 분노할 것에 대해 분노하지 못하는 소시민성에 대한 반성과 분노하지 못하게 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 핵심 정리
▶성격: 반성적, 비판적
▶제재: 물 끓이기
▶주제: 현실의 부정과 불의에 분노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반성
◆ 생각 넓히기 - 정약용의 ‘증문’
이 시는 호랑이나 구렁이 같은 거대한 권력의 횡포에 대해서는 저항하지 못하고, 말단 관리의 횡포에 대해서는 크게 반응하는 자신의 좁은 속마음을 자조적으로 비판한 작품이다. 화자는 사회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지 않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보면 소시민적 속성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이 시는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불의에 항거하지 못하면서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자조적으로 비판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반성하고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