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文人畵의 滿開를 위하여....
문인화가 玄農 권창회 화백, 가장 한국적인 금수강산을 그대로 화선지에
40여년간 교육현장서 후학을 가르치며 시작, 사물과 함께 깊은 魂을 느끼게 하는 화풍 주목
玄農 권창회 화백의 반생은 교육으로 점철 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40여년간 이 땅의 후세들을 위한 교육에 반생을 바친 교육자라 할 수 있다. 모든 근본은 교육에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그는 교육 현장에서 후세들에게 부모에 대한 존경심과 국가에 대한 충성. 그리고 학문에 대한 열정을 불어 넣는데 반생을 바치다가 정년을 맞아 은퇴를 한 교육계의 원로라 할 수 있다.
이런 이력을 가진 것을 놓고만 볼때는 노년의 소일거리로 그림을 그린다고 할 수 있지만 그의 진면목을 보고 나면 그것이 얼마나 허상인지를 느낄 수 있다. 권 화백의 그림속엔 자연의 소리와 수려한 산하가 그대로 내려 앉아 있는 느낌을 주면서 인간의 셈세한 표정까지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은 연륜에서 묻어나온 인생을 달관한 사람만이 토해 낼 수 있는 하나의 경지에서 나온 것이라 할 때 그의 붓이 무엇을 추구 하는지 이해가 된다고 그를 아는 지인들을 말하고 있다.
이는 결코 남을 모방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畵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이런 경지에 다다른 것은 누구에게 사사를 한 것이 아닌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 하며 터득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선비가 출사를 하려면 과거를 쳤던 것처럼 화단에서 화려하게 등단 해야만 족적을 남긴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세태에 휩싸이는 것이라 생각해 초야에 은거한 현자처럼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세상에 선 보였을 때 모두가 주목했던 것은 살아있는 듯한 사물과 함께 깊은 고뇌를 느끼게 하는 그림속의 사실적 묘사 때문이었다고 회고 하는 그는 오늘도 남에게 보이는 그림이 아닌 모두가 가슴깊이 느끼는 작품을 위해 진한 먹내음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 하고 있다.
예술계에선 문인화를 하나의 화풍이 아닌 이단처럼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권화백의 문인화를 보면 이것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우리는 흔히 장인을 보면 외로움을 간직한 이들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권 화백은 결코 외톨박이가 아닌 진정한 예술을 위해 혼을 쏟는 인간의 참모습을 간직한 우리 주위의 평범한 인물임을 느낄 수 있다. 오직 하나의 작품을 위해 진한 묵향과 함께 화선지에 자신의 혼을 불어 넣고 있는 玄農 권창회 화백이야 말로 마음과 영혼이 메말라 가는 이시대에 청량함을 전달해 주는 일을 하는 선구자가 아닐 까 한다.
권창회 화백은 교단에서 후학들을 가리치는 틈틈히 먹을 갈아 화선지에 자신의 혼을 불어 넣어 왔다. 지금으로 부터 약 40여년전인 70년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는 누구의 문하가 아닌 자수성가를 이룬 화백으로 남에게 보이기 보다는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오로지 진정한 사물의 내면을 화선지에 옮기기 위해 노력 한다고 강한 어조로 강조 하고 있다. 우리 화단이 일부 계층들의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고 하고 있는 권창회 화백은 오늘도 자신과의 싸움을 위해 우리의 산하를 주유하며 스케치를 하고 이를 화선지에 담으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예술 특히 그림을 그리는 화백들에게서 범인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근엄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권창회 화백은 이런것과는 동떨어진 인물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가 오랜 세월 교단에서 후학을 가르친 인자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예술에 대해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한 마력을 풍기고 있어 문인화라는 하나의 조류에 한획을 긋고 있는 것이라 판단해 볼때 권희창 화백의 진면목을 읽을 수 있다. 권희창 화백은 그동안 개인전 3회를 비롯해 각종 초대전에 초대 작가로 작품을 선보인바 있고 현재 서울 중랑구 미술협회 회장으로 회원들의 단합과 권익을 위해 헌신하고 있으며 한국미협과 한국서예 진흥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권창회 화백은 문인화의 대가답게 서예에도 일가를 이루고 있는 독보적인 존재로 화단에선 정평이 나있는 인물이다. 이런 이력이 말해주듯 그의 붓이 화선지에 닿는 순간 신선이 사는 무릉 계곡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저절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는 경건함을 느끼게 된다.
권창회 화백이 걸어온 길
●개인전 -3회 (1982·1985·1989)
●그룹전-대한미술원전·한국미술협회전
현대사생회전·한국정예작가전
중앙미술인 초대전·한·중 국제교류전 등 다수
●초대전-프랑스 미술협회 초대전(1983)
서울강북 미술 협회 초대전
서울 노원·도봉 미술협회 초대전
2007연꽃그림 페스티벌 초대전(시흥시 지부)
2007국제플랭카드아트초대전(의왕미술협회)외 수십회 초대전 참가
●경력
중랑 청소년 사생대회 심사위원장(2005·20062007)역임
한국서예진흥협회 공모전 문인화부 심사위원장 (2006·2007) 역임
추사탄신 KBS.88체육관 전국휘호대회(2006·2007)문인화부 심사위원
한국현대 여성 미술대전 심사위원
서울정도 600년 회화 공모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회화 대상전(06.07) 운영 및 심사위원
●현재
서울 중랑 미술협회 회장
한국미술협회 윤리 장학위원
서울미협. 한국서예 진흥협회 이사
중랑 문화원 운영위원
중랑문화원 예술강좌 문인화 지도
●권창회 화백 주소
자택-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 7동 648-24(3층)
전화: 02-438-5928
화실-경기도 의정부시 산곡동 632-2
전화:018-219-5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