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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蘭)을 기르는 마음
난(蘭)의 선물
아주 가깝게 지내는(交遊) 대학 직원이 古稀 기념으로 고아(高雅)하고 청초(淸楚)한 동양란(춘란)을 선물로 보내왔다(사진 1, 2). 그 난(蘭)은 인삼벤자민, 산세베리아, 파키라, 텐파레, 호접란, 소철 등에 이어 아홉 번째로 나의 연구실 공간에 새 식구가 되었다. 난은 새 식구이기도 하지만 귀한 선물이기에 가장 햇빛도 잘 받고, 항상 눈길을 주어 관조할 수 있는 곳에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나의 연구실에는 오래전부터 키우던 춘란이 있는데, 지난겨울 혹독한 추위를 겪으면서 枯死 지경에 이르렀다. 간신히 살리기는 하였지만 난의 반은 죽어 모양새가 별로이다(사진 3). 이제 홀로 있던 춘란과 짝을 이루게 되어 전에 보다 더 각별한 관심을 갖고 난을 보살피게 되었다.
집에도 난 화분이 3개 있는데(사진 4), 그 중에 한 난이 하얀 꽃을 피웠다(사진 5). 동양란은 꽃을 피우기가 만만치 않다. 먼저 살던 집에서는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볼품이 없었는데, 아파트로 이사와 베란다에 키우면서 처음으로 청초한 하얀 꽃을 피우게 되었다. 물론 그동안 물과 영양제를 주면서 정성을 많이 기우렸고, 자주 觀照하면서 사랑을 보낸 결과이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꽃은 주인의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만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난의 종류
난은 크게 동양란, 서양란, 야생란으로 분류된다. 동양란은 주로 동북아시아(한국, 일본, 중국)에서 자생하는 난으로 춘란, 한란, 풍란이 그 대표 종(種)이다. 서양란은 동남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같은 열대 및 아열대 지방에서 자생하는 난으로 영국을 중심으로 서양에서 볼 수 있는데, 이 근래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보급하고 있는 심비다움, 호접란 등의 종(種)이다. 야생란은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난이다. 동양란은 서양란처럼 꽃의 색채가 화려하지 못하지만 청초한 아름다움과 그윽한 향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 매력이다.
난을 건강하게 기르는 법
건강한 난으로 키우기는 만만치가 않다. 무엇보다도 정성과 사랑의 보살핌이 있어야 한다. 건강한 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 햇빛, 영양제, 분갈이가 필수이다.
물은 동양란의 경우에는 봄과 가을철에는 2-3일에 한번, 여름철에는 이른 아침과 저녁에 두 차례, 겨울에는 5-7일에 한번 정도가 적당하며, 한 달에 한번 정도는 흐르는 물속에 흠뻑 잠기게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한다. 허나 나는 보통 일주일에 한 번씩 깊은 물에 밤새껏 잠겨 두고 가끔씩은 흐르는 물에 둔다. 계절에 따라서 잠기는 시간을 다르게 한다. 여름철은 가장 길게(8시간 정도), 봄과 가을철에는 조금 짧게(6시간 정도), 겨울에는 아주 짧게(4시간 정도) 물에 담겨 둔다. 물론 날이 계속적으로 흐리거나 장마철에는 날씨에 따라서 가감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반적인 원칙을 지키기보다 품종과 장소에 따라서 다르게 주며, 난석(蘭石)의 마름과 난의 상태를 확인하여 물을 주어야 한다.
난은 햇빛을 충분하게 쬐야 하지만 직사광선은 피해야 한다. 따라서 겨울과 초봄, 늦가을에는 베란다에 보관하고, 여름과 늦봄, 초가을에는 베란다 안쪽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영양제는 계절에 다라 적절하게 주는데, 나의 경우에는 영양제를 조금씩 나오게 하여 항상 꽂아 둔다.
분갈이는 3-4년마닥 봄과 초가을에 하지만 뿌리가 밖으로 나오던가 잎새 끝이 죽어갈 때에는 즉시 분갈이를 해 주어야 한다. 난의 배양토는 종류에 따라서 다르지만 화원에 가서 난의 종류를 말하면 적절한 배양토를 추천해 준다. 난을 분갈이하기 전에 난석을 하루 정도 물에 담근 후에 말리고, 영양제를 회석한 물에 4시간 정도 담근 후에 꺼내서 약간 마른 상태일 때 심는다. 난을 다시 심을 때에는 난석을 대, 중, 소로 분류하여 밑에부터 큰 난석을 차례로 넣어 심는다. 분갈이를 한 후에는 직사광선이 들지 않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약 2주일 동안 두어 안정시킨다. 물의 양과 채광량은 적절하게 조금씩 늘려 점차적으로 평상시와 같이 관리하도록 한다.
난의 교훈적 의미
옛 聖賢들은 친구 간에 깊은 우정의 관계를 金蘭之交라고 불렀다. 이는 친구의 우정을 황금과 같이 변하지 않고 단단하며, 난의 향기처럼 아름답고 깊은 관계에 비유함이다. 易經에 “두 사람이 마음을 하나로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고, 마음을 하나로 합하여 말하면 그 향기가 난과 같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잠언서는 친구의 소중한 관계에 대하여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1-12)”고 말씀한다.
스텐 톨러의『행운의 절반, 친구』에 보면, “어울림의 미학/ 블랜드 커피와 스트레이트 커피를 비교할 때 일반적으로 블랜드 커피의 구성 성분은 하나하나 뜯어놓고 보면 최상급 스트레이트 커피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지만 제대로 블랜딩이 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개별적으로 비교도 안 되던 커피들이 모여서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고 장점을 더욱 이끌어주어서 훌륭한 블랜드 커피가 되어 맛과 향에서 아주 훌륭한 커피로 탄생되는 것처럼 친구의 관계도 이와 같다”고 한다.
친구 사이의 고상하고 품위 있는 교제를 가리켜 芝蘭之交라고 부른다. 이는 지초(芝草)같은 버섯과 난초 같은 향기로운 사귐이라는데 에서 기인하였다.
왜, 성현들은 믿음과 신뢰가 두터운 우정의 관계를 난에 빗대어 말하였을가? 이는 난에 대한 비유라기보다는 난을 키우는 사람들의 友情과 心性을 반영한 말일 것이다. 난을 키우는 사람들은 蘭友라고 하여 난의 촉과 포기를 서로 나눈다. 내가 정성 드려 키운 것을 나눈다는 것은 웬만한 우정이면 불가능하다. 난을 키우는 사람들은 난을 키우면서 난의 기품과 심성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여유와 여백으로 그 안에서 蘭心을 갖게 된다. 그래서 난을 키우는 마니아들은 기다림과 여유 속에 삶의 色彩가 있고 멋이 있으며, 이는 風流로 이어지기도 한다. 빡빡한 도시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여유로움과 여백 속에 삶의 향취를 갖는 것이다. 요새 대중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는 느림과 비움의 슬로시티(slowcity) 운동이 바로 삶의 여유로움과 그 안에서 인간다움을 찾기 위함이 아닐까?
말미에서
난은 古雅한 꽃, 그윽한 향기, 절개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어 문학에서는 淸楚와 孤高함으로 표현한다. 옛 선비들은 梅蘭菊竹(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4가지의 소재를 즐겨 그려 지조있고 고결한 품격을 표현하였다. 이제 난의 세계에 첫발을 디딘 아마추어 입장에서 난을 키우면서 몇 가지 삶의 지혜를 배운다.
첫째는 기다림이다.
동양란은 쉽게 꽃을 피우지 않는다. 정성과 관심을 갖고 키우며 오랜 시간 기다려야만 청초한 꽃을 볼 수 있다. 기다림 속에서 난과 꽃이 주는 교훈을 배우게 된다.
기다림은 오래 참음으로 인내이다. 기독교에서 인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하는 신앙의 德目이다(벧후 1:6).
둘째는 여유(餘裕)이다.
난은 하루아침에 크게 자라거나 꽃을 피우지 않는다. 새 촉이 나오고 뿌리로부터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아 꽃을 피우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하므로 급한 마음을 다스려 느긋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는 삶의 여백이다.
예수께서는 제자의 선택과 동행, 말씀의 가르침, 치유의 기적, 진리를 위한 논쟁 등으로 분주한 공생애를 보내시는 중에도 전연 서두르는 모습이 없는 속에 여유로움을 갖고 자신의 삶의 스캐줄에 따라서 살으셨다.
셋째는 자족(自足)이다,
보통 식물들은 햇빛과 수분과 영양이 있으면 자랄 수 있을 만큼 욕심껏 자란다. 그러나 난은 욕심껏 자라지 않고 알맞게 자라기 위하여 스스로 잎새 수를 늘리지 않으며 길이도 적당한 때에 자람을 스스로 멈춘다.
한문에 大智知止(가장 지혜로운 것은 멈출 때를 알고 멈추는 것이다)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면서 자족된 삶을 가르치고 있다. 자족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만 할 삶의 바른 자세이며, 최상의 가치이다.
넷째는 예(藝)이다.
난을 정성 드려 키우면서 그 난이 자라고 꽃을 피우는 것을 관조하는 속에 아름다운 線과 美의 세계를 터득하게 된다. 이는 난이 갖는 예술이며, 철학이다. 꽃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사람은 결코 악하지 않다. 꽃처럼 항상 향기롭고 선하다.
선한 것은 사랑이고, 화평이고, 온유함이다. 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갖는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이다(갈 5:22-23).
난을 키우자.
난의 마니아가 되어 때의 기다림, 삶의 여유, 생활의 자족, 꽃의 아름다움을 내 안에 채우는 속에 난처럼 그윽하고 향기로운 그리스도인의 빛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어떨가요?
그리할 수 있다면 우리들의 거칠고 삭막한 삶의 자리가 좀 더 따뜻하고 훈훈하지 않을가요?
시인 신석정의 난초(蘭草)를 소개하면서 나의 글을 갈음한다.
난초는
얌전하게 뽑아 올린듯 갸륵한 잎새가 어여쁘다
난초는
건드러지게 쳐진 청수한 잎새가 더 어여쁘다
난초는
바위틈에서 자랏는지 그윽한 돌 냄새가 난다
난초는
산에서 살든 놈이라 아모래도 산 냄새가 난다.
난초는
예운림보다도 고결한 성품을 지녔다
난초는
도연명보다도 청담한 풍모를 갖추었다
그러기에
사철 난초를 보고 살고 싶다
그러기에
사철 난초와 같이 살고 싶다
2011년 7월 사강 기준서
사진 1
사진 2
사진 3
사진 4
사진 5
첫댓글 얼마전에 동양난 하나를 선물받았습니다 볼때마다 푸른잎이 삶에 기운을더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오늘이글을보니 내자신이 더욱 여유와자족과 기다림과 예를 아는 기분이듭니다 멋진 난보다 더욱 멋진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