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왕매미 울음소리 들었는가?
인재 조 명 철
한여름 왕매미가 길가 느티나무에서 떼 지어 울고 있다. 무더위를 즐기는 노래인가. 더위여 물러가라는 외침인가. 아니다. 이상 기후를 감지한 경고다. 기후 변화에 시달리면서도 인간의 잘못을 고발하는 외침이지 싶다.
신문 한 귀퉁이에 실린 작은 기사를 읽는다. “청년, 어린이들을 덮친 이상 기후발 기후 우울증”이란 표제다. “누군가 플라스틱 일회용품 버리는 모습만 봐도 숨이 턱 막힌다. 공부하다가도 기후 위기에 관한 수업 내용과 뉴스가 떠올라 눈물이 흐른다. 어른들은 걱정하는 시늉만 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 중학교 1학년 박모 양이 쓴 글이라 한다.
또 26세 대학생 송모 군의 말을 들어보자. “인류의 탄소 배출이 계속되면 2050년쯤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2~3도 오른다고 한다. 이미 내 존재가 민폐처럼 느껴지는데 기후 지옥에 태어날 아이에게 미안해서라도 출산할 생각이 없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MZ세대 청소년과 어린이 사이에 “기후 우울증”이 퍼지고 있다는 보도다.
연일 폭염주의보가 발령되고 있다. 경북 영천은 39.4도까지 치솟았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엔 31일간 43도가 이어졌다. 스페인 로던데 안달루시아에선 44.6도까지 상승했다. 중국 신장위그르 싼바 오행은 52.2도를 기록했다. 쓰촨성엔 9월에 이르러서도 40도를 넘기고 있어 휴교가 불가피하다는 보도다. 혹서가 심상치 않다. 세상이 다 불타려나 보다.
해가 뜨면 용광로요, 해가 지면 열대야다. 잠 못 이루는 밤의 고통, 더위 먹고 죽은 이는 몇몇인가? 사람들은 시원한 바람 한 솔기 찾아 바다로 산으로 떠난다. 그러나 산바람은 더위 먹어 골짜기에 널브러졌다. 바닷물은 누가 데웠는가 뜨뜻미지근하다. 모래판은 발을 지져버릴 듯 뜨겁다.
지구촌 곳곳엔 대형 산불이 하늘마저 태우고 있다. 호주에선 5개 월간 계속된 산불이 원시림을 다 집어삼켰다. 캐나다 서부에선 수백 건의 산불이 연이어 일어났다. 그리스 아테네에도, 미국 하와이에도, 우리나라 강원도 등지에도 대형 산불이 타올랐다. 브라질 아마존의 대형 화재는 지구의 허파를 불태웠다. 아마존 원시림에 의지해 살던 생명들이 내뱉는 마지막 절규가 하늘에 사무치고 있다. 인간을 원망하는 소리, 소리는 절규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지구의 종말이란 말이 떠오른다.
기후 우울증이란 기후 변화가 자신과 가족을 포함, 국가와 인류에 위기가 닥쳤다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 미국심리학회는 기후 우울증을 우울 장애의 일종으로 정의했다. 2021년 16세~25세 미국 청년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4%가 기후 변화를 “걱정한다.”에 응답했다. 60%는 “극도로 걱정한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 재임 시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했다. 그 가 퇴임 후 “지구 온난화가 심각한데 파리기후협약에서 왜 탈퇴했느냐?”라고 한 젊은이가 묻자 “조금 있으면 추워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라고 장난치듯 말해 분노를 일으켰다.
비는 또 하늘이 뚫린 듯 쏟아져 내린다. 서유럽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에도 100년만의 폭우로 대형 홍수 피해가 발생했다. 중국 광동성에도 100년 만의 대형 폭우로 성 전체를 물이 점령했다. 폭우는 산을 무너뜨리고, 촌락을 쓸어버리고, 농작물을 초토화했다. 도시가 물에 잠겨 도로는 운하로 변해 보트가 차대신 운행되었다.
2005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뉴올리언스에 대재앙을 일으켰다. 인명피해만도 2,500여 명에 이르렀다. 분지의 대형 개발이 낳은 재해란다. 2004년 23만 명을 희생시킨 쓰나미는 인도양 연안 12개국을 강타했다. 이는 남아시아에서 발생했기로 대처 능력의 후진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 최강 미국의 자연재해는 철옹성을 무너뜨린 셈이다. 문명의 한계를 절감케 한다.
유엔환경계획 세계기상기구는 지구의 재앙은 오직 인간이 저지른 결과물이라 규정했다. 수재水災, 풍재風災, 화재火災가 모두 그렇단 말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인간 의지는 부족하다. 오히려 이곳저곳에서 전쟁을 일으켜 지구를 더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핵전쟁까지 운운하고 있으니 지구의 파멸을 부르는 꼴이 아닌가.
인간은 지구의 품에 안겨 살아왔다. 지구의 젖을 빨아 먹고 살았단 말이다. 멋있게 살기 위해 문명과 기술을 만들면서 먹이사슬의 꼭지에 앉았다. 지구의 주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지구의 피와 살은 물론, 골수까지 빨아 먹는 형국이 아닌가. 배은망덕이다. 지구의 울분이 하늘에 사무쳐 천지가 인간을 벌하고 있지 싶다.
우리는 전 세계적인 유행병, 코로나를 경험했다. 인류의 환경 파괴로 야생동물 서식지가 줄면서 창궐한 바이러스가 인간을 공격한 것이라 한다. 이런 팬데믹은 또 올 것이라 한다. 미래 세대는 사계절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인과응보因果應報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우리 속담 그대로다. 업보業報에 대한 붓다의 말씀을 들어보자. “전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자 하면 현재 받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고, 내생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고자 하면 현재 하는 짓을 보면 알 수 있다.(欲知前生事 今生受者是 欲知來生事 今生作者是)”라고 했다.
그렇다. 지구의 온난화를 자초한 인간들이여! 사람은 본래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그런데 불행하다고 말하고 있다. 누가 불행을 지었는가? 사람이다. 생태계 교란의 주범인 사람, 자연의 변화보다 1천 배나 빠른 개발로 포유류와 양서류가 이미 10~30% 사라졌다는 보도다. 생명 위기다.
하지만 절망은 금물이다. 사람들은 ‘파괴는 창조의 씨앗’이란 말을 어느 날 떠올릴 것이다. 죽음 없이 부활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공멸의 위기를 돌파할 궁리를 할 것이다.
7년을 땅속에서 인고의 세월을 살다 매미로 부활한 왕매미의 울음소리, 기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청소년들을 어서 구하라는 외침이다. 지구 온난화에 무관심인 세계지도자들을 일갈하는 함성이다. 지구의 주인들이여! 어서 일어나라 한다. 아니다. 저 미물들이 지구 살리기 음악회를 열었다. 다 함께 노래하자. 부활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