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7일 (주일)
새벽 3시에 잠이 들었는데 5시 30분에 깨어서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 카페에 들어가 시를 쓰다. 아침에 우리들의 모든 짐을 싸서 차에 싣고 10시에 교회에 오다.
좁은 교회 의자에 이럭 저럭 사람들이 꽉차서 은혜롭게 예배를 드리고 차 목사님이 울면서 다카하시 부부에게 집사 임명을 하는데 나도 눈물이 나왔다.
고마바씨가 장로 안수를 세 명의 목사님께 받고 장로 패를 받고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참으로 불쌍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또 영광이라는 두 마음이 들었다.
나 목사님이 미국에서 가지고 온 좋은 볼펜을 두 사람에게 선물로 주었고 김 목사님이 축사를 했고 히로꼬가 피아노를 치며 고운 목소리로 축가도 불러 주었다. 다 끝난 후에 임직자와 목사님들과 기념 촬영을 했다.
모든 순서가 은혜롭게 끝나고 이층에 올라가서 무국과 것절이, 생선으로 맛있게 식사를 하고 김정길 선교사가 가지고 온 미니밴에 6명이 타고 밴은 다카하시가 운전하고 승용차는 차 목사님이 운전하고 김 목사님이 옆에 타고 모두 10명이 다떼야마시 시라하마(하얀 파도)에 있는 온천에 갔는데 고마바씨는 내일 12시에 손님을 만나야 된다고 해서 갈 수가 없었다.
교회에는 처음 나왔다는 에스더 조카의 애인과 김 선교사와 스기모또 지호라는 35살 먹은 처녀 전도사와 열 명이 온천을 향하여 떠나는데 바다를 잇는 아름다운 큰 다리를 건너고 푸른 바다를 보며 이곳의 최남단으로 달려와서 바닷가에 위치한 대중 온천이 있는 큰 호텔에 들어갔다.
5층 방을 세 개 얻어서 우리에게 한 개주었는데 바다가 보이고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순 일본식 다다미방으로 상이 있고 상위에 일본식 차가 있고 텅 빈 작은 냉장고가 있고 귀중품을 넣는 작은 금고에 열쇠가 달려있었다.
옷장 안에는 일본식 유가다 가운이 있었고 긴 허리띠로 묶고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게 되어 있었다. 중년여인이 들어와서 공손히 일본식으로 무릎을 꿇고 절하고 자기가 이 방 담당이라고 하는 것 같았고 이것저것 설명을 일본어로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옆방의 다카하시가 와서 설명을 하고 다같이 2층에 있는 대중온천에 들어가서 온천욕을 했는데 모든 병을 고쳤다고 써져 있었는데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고 알 수가 없었다.
6시 30분에 우리 열 명만을 위한 노래방 시설도 갖추어진 넓은 다다미방에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식탁이 있는 방으로 안내를 받아갔는데 그 중년여인이 우리의 식탁에서 서비스를 해서 팁을 주어야하지 않겠느냐고 하니 일본은 팁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한 사람 앞에 초 같은 작은 불을 켜서 각자가 직접 끓여 먹도록 세 개의 불과 솥과 냄비가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 앉으니까 전복이 들은 가마 밥솥에 불이 켜서 밥을 하고 냄비에 샤부샤브를 해서 먹도록 하고 또 하나는 산 전복을 버터를 발라 올려놓았는데 불 위에서 꿈틀거렸다.
그런 음식이 익기 전에 사라다와 생선위에 얹은 회가 나왔고 소라위에 얹은 회, 계란찜, 샤브샤브를 먹는 동안 밥솥에 불이 저절로 꺼지고 전복이 들은 간이 된 밥과 불 위에서 군 전복을 맛있게 먹었다.
샴페인이 나와서 그것은 청년이 싸 가지고 갔다.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 모양이었다. 두 시간쯤 걸려 식사를 하고 나니 어두워져서 어두운 해변가 산책 코스를 한 바퀴 도는데 유가다 가운을 그냥 입고 호텔에서 주는 발가락을 끼는 슬리퍼를 신고 걸었는데 발가락이 아팠다.
밤바다 바람은 시원하게 불었으나 무덥고 끈적거리고 땀을 흘려서 방으로 돌아와서 다시 내려가 온천욕을 했다. 밤 12시까지는 자유로 여러 번 할 수가 있었다. 방에 돌아오니 에어컨이 시원하게 돌고 있어서 두꺼운 요와 이불을 덥고 자게 시원했다.
이 호텔은 평일에는 좀 싸고 주말과 공휴일에는 일박에 두 끼의 식사를 주고 일인당 150불이라고 하니 부부 한 쌍이 300불인 셈이고 방을 여럿이 쓰면 값이 더 싸진다고 한다.
가족이 방 한 칸을 쓰면 좋을 것 같다.
차 목사님이 김정길 목사님이 당뇨로 너무 피곤하다고 안마사를 불러서 소경 안마사가 안마를 해 주는 것 같았고 우리는 밤에 해변 산책로를 한바퀴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