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2-15장 과제
제출자 선형수목사Th.M 구약학 전공
학번 1564011
제출일 2015.4.6.
제출범위 삼상 12-15장 주석 227-238, 272-287쪽
1. 필독서 요약 및 소감
(송병현 저)
12:1-25 왕정의 징검다리 사무엘
12:1-5 머리가 희어진 사무엘
빼앗은 적이 없는 인생을 산 사무엘이었다.
부패한 리더십은 빼앗는 것이다.
그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빼앗고 속이는 리더십이 오늘날에 너무 많다.
12:6-11 신실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은 늘 배반하고 어긋난 삶을 살았으나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셨다.
그들이 회개하고 부르짖으면 항상 응답하셨다.
12:12-15 왕 되신 여호와 대신 다른 왕을 구함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너희를 치실 것이라.
왕정 제도 하의 왕도 여호와의 목소리를 들어야 산다.
12:16-18 새 왕의 취임
왕의 취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중재자는 사무엘이다.
12:19-25 기도를 쉬는 죄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중보자 사무엘.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25절).
시내산 언약이 여전히 유효하다.
15:1-35 사울의 추락
13장 사울 왕조의 지속 가능성을 상실.
14장 블레셋 사람들을 제거할 기회와 백성의 지지 잃음.
15장 사울 왕국의 상실.
추락의 시작은 불순종이었다.
15:1-3 진멸하라(herem)
죄는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아말렉의 죄가 약 400년 후 보응된다.
왕의 의무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은 언약 공동체의 일원이다.
15:4-9 진멸 명령에 불순종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낳는다.
아말렉은 과거의 죄로 죽임당하고
겐사람은 옛날의 친절로 살아남는다.
사울은 진멸 명령에 불순종했다.
15:10-16 사울을 세운 것을 후회하심
사울은 불순종의 죄를 선의의 제사로 포장했다.
15:17-23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의 일원인 사울왕의 권위는 하나님께 불순종 함으로 설 자리를 잃었다.
15:24-30 두려운 것이 사람인가 하나님인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보다 사람의 체면이 두렵다.
나도 그러한가?
15:31-35 슬픔과 후회
기쁨과 기대로 시작된 사울 왕정은 여호와의 후회와 사무엘의 슬픔으로 막을 내린다.
2. 질문
당당하게 하나님과 백성 앞에서 빼앗은 적이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하는 사무엘이었습니다.
부패한 리더십은 빼앗는 것입니다.
그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빼앗고 속이는 리더십이 오늘날에 너무 많습니다.
교회와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은 주어진 지위와 권력이 빼앗고 속이는데 쓰이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습과 재정의 불투명성이 현재와 미래를 어둡게 합니다.
우월한 지위와 권위와 권력를 통해 교회의 헌금이 불의하게 쓰이거나 부당한 자의 주머니를 채웁니다.
국가는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더욱 빼앗고 속이는 권력이 등장한다는 사실이 현재와 미래를 어둡게 합니다.
정부는 정보와 권력과 지위를 독점하고 국민의 눈과 귀를 속여서 또다른 불의한 정권을 낳고 의회 권력을 낳고 대법 헌재 검찰까지 불의한 충견들을 심습니다.
또 하나 사무엘 시대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현재 진행됩니다.
부의 절대 권력화 입니다.
요직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모 재벌의 장학생이라는 의혹이 공공연합니다.
또한 이 시대는 국민 개개인이 저마다 자기 왕 노릇하는 시대입니다.
1) 이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사무엘을 만날 수 없고 다윗을 만날 수 없는 것입니까?
(물론 이스라엘과 한국을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겠습니다. 그러나 신자인 장로님들이 대통령(이승만, 김영삼, 이명박, 김대중(구교))을 지냈으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분들의 삶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2) 이 시대를 향한 우리 목회자의 사명과 역할은 무엇입니까?
3) 신자 개개인은 어찌 살도록 해야 합니까?
4) 15:24-30
사울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보다 사람의 체면이 두렵습니다.
한국 교회가 지나치게 건축 건물 위주의 목회, 성장 위주의 목회에 빠진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보다는 사울처럼 체면을 중시한 때문이 아닙니까?
또 말씀의 내용과 풍성함보다도 겉치레 의식이나 예전 예식 혹은 치장에 신경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일부 교회는 주일 마다 강단 꽃을 장식하는데만 상당한 금액을 들입니다.
그 돈이 대신에 선교지에 보내지거나 구제에 쓰인다면 어떻겠습니까?
대신에 화분을 작은 것으로 분기에 한번 바꾸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제가 섬기는 주은혜교회는 그렇게 합니다.
물론 규모가 가족같은 교회가 비교가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