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 5장 33절 – 39절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 사람들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에 대한 인식은 껍데기만 남은 그런 형태의 신앙이 중심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조상들과 형태가 똑같은 신앙생활을 하였다고 하여도 본질은 전혀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없는 그런 신앙의 형태를 추구하였고 그들의 마음의 중심은 사람들로부터 얻는 영광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이 보는 데서 경건의 모양을 추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형태는 그들로 하여금 더욱 소경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아버지께로 그리고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로 향하게 하는데 중심을 두고 사역을 하였습니다. 바로 경건의 모양만 남은 그런 신앙을 타파하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의 정립을 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례요한은 새부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아버지께로 향하게 하려고 사역을 했지만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보인 공동체의 모양은 여전히 지독하게 타락하였던 종교지도자들의 모양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이전의 헌부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새부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를 추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이전의 신앙의 공동체가 자신의 의를 근거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했던 외적인 성결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면 예수님은 내적인 성결의 바탕으로 외적인 성결을 추구하는 그런 신앙의 공동체를 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새부대를 향한 발걸음은 당시 헌부대의 종교지도자들로부터 핍박과 모함을 받는 것입니다. 헌부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는 전통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를 추구하였고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던 세리레위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레위는 이름에서 나타나듯 레위지파의 사람이었지만 레위지파의 길을 가기를 거절하고 세리로서 재물과 힘을 추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레위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해서 끝없이 갈등하고 고뇌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 레위가 바로 마태입니다. 이런 레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조건은 하나님아버지의 부르심이 있고 그리고 손에 쟁기를 잡고서 뒤를 돌아 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다가 어렵고 고달프면 언제라도 세리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레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엘리사처럼 세리의 일을 완전히 끝냈습니다.
레위는 세리의 일을 끝내면서 자신이 알고 지내던 세리들과 창기들을 불러 크게 잔치를 엽니다. 그러면서 그 자리에 예수님을 초대합니다. 당시 랍비들은 세리와 창기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함께 식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헌부대의 랍비였다면 레위의 초대를 당연히 거절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레위가 연 잔치에 가시고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시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거룩한 자인 것을 보이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셨고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서 차별이 아닌 돌봄을 통해서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십니다. 바로 새부대가 그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먹고 마시면서 그들에게 경건의 모양을 드러내려고 하시기 보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속에 들어가셔서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시므로 하나님아버지께로 나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런 모습은 당시 종교지도자의 지탄을 받습니다. 신앙의 지도자인 랍비라는 사람이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것은 그들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스스로 건강하다고 여기는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의사가 쓸 때 없지만 죄인들에게는 그들을 회개로 이끄는 의사가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은 금식과 기도를 가지고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합니다. 바로 외적인 경건입니다. 헌부대의 전형입니다. 그러면서 새부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이 새부대는 헌부대와 다르기 때문에 헌부대의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새포도주 즉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실 새포도주이신 성령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새부대를 말씀합니다. 헌부대로서는 오순절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헌부대는 성령을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즉 오순절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시는 성령님은 외적인 경건뿐 아니라 내적인 경건을 이루시기 때문에 헌부대는 그런 성령님을 따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새롭게 행하시는 것들은 보는 자들로 걸림돌이 됩니다. 성령님이 과거에 행하셨던 것들은 우리가 이미 익숙해져 있어서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묵은 포도주를 좋아합니다. 사람들로부터 비방이나 멸시를 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묵은포도주를 좋아하는 자들은 새부대의 교회에 적당하지 않습니다. 새부대의 교회는 성령님이 새롭게 행하시는 것으로 인해서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해도 성령님을 환영하고 적극적으로 따라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