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작사와 팔미의 묵석공원을 보고 딴빠로 가며>
어제 밤에 비가 내렸으나 아침에는 오지 않았다. 일행이 따오프(道孚)시내에 있는 영작사(靈雀寺)로 가는데(8:50), 따오푸 시가지의 메인도로 양쪽의 인도를 모두 뒤집어 놓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원에 도착해서 법당에 들어가니 티베트사원의 특색인 쫑카파와 불상을 같이 모시고 있었다. 여기도 쫑카파를 가운데에 모시고, 불상은 옆에 작게 만들어 모시고 있었다.
<영작사(靈雀寺) 입구>
<영작사(靈雀寺) 본당>
<영작사(靈雀寺) 본당의 벽화 1>
<영작사(靈雀寺) 본당의 벽화 2>
<영작사(靈雀寺) 본당 내부 모습>
<영작사(靈雀寺) 본당 내부 중앙에 모신 쫑카파>
<영작사(靈雀寺) 본당의 쫑카파 오른쪽에 모신 작은 불상>
옆방에는 현재 인도 맥그로드간즈에 있는 달라이라마와 중국 북경에 있는 판첸라마의 사진을 모셔놓고 승려가 그 방에서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사원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따오푸 주민들이 찾아가 마음의 평안을 찾고 기도드리기엔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작사(靈雀寺) 2층에 모신 불상>
<영작사(靈雀寺) 2층의 용무늬 목각>
일행은 영작사 관람을 마치고, 사원을 출발(09:50), 팔미(八美)로 향했다. 따오푸에서 팔미로 가는 길은 남쪽으로 난 길로 가야했다. 고개를 몇 개 넘었으나 윈난성과 쓰촨성이 연결되는 오지 길과 달리 그리 험하지 않았다. 일행은 오다가 혜원사(惠遠寺)가 보이는 전망대에서 휴식을 취하며 그곳 풍경을 감상했다.
<팔미 묵석공원 가는 길 풍경 1>
<팔미 묵석공원 가는 길 풍경 2>
<팔미 묵석공원 가는 길 풍경 3>
<혜원사(惠遠寺)와 언덕의 초르텐>
일행이 팔미에 도착(11:00)했으나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곳에 머물지 않고 바로 묵석공원을 찾았다. 묵석공원(墨石公園) 입장료는 다른 곳과 같이 연령별로 달랐다(59세 이하 60위엔, 69세 이하 30위엔, 70세 이상 무료). 입장권을 산 다음 일행이 타고 온 차로 입구주차장까지 갔다.
검표를 마친 일행은 묵석공원을 시계방향으로 돌아보기 위해 나무계단을 걸어올라 갔다. 언덕 위는 초원이고 그 아래부터 묵석공원이 있었다. 묵석공원의 석림은 한 곳이 아니고, 다섯 곳으로 나눠져 있었다. 처음 두 곳은 걸어가는 길과 너무 떨어져 있어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다른 세 곳은 바로 옆으로 길이 있어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팔미 묵석공원(八美 墨石公園) 풍경 1>
<팔미 묵석공원(八美 墨石公園) 풍경 2>
<팔미 묵석공원(八美 墨石公園) 풍경 3>
<팔미 묵석공원(八美 墨石公園) 풍경 4>
<팔미 묵석공원(八美 墨石公園) 풍경 5>
묵석공원(墨石公園)은 토번의 얼왕과 관계가 깊은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 “묵석정(墨石亭)”을 지나 언덕을 내려가자 왼쪽에 세 번째 묵석공원이 있었으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깃들어 있었다.
“격사 얼왕”이 말을 타고 당나라군의 포위망을 벗어나 본진으로 돌아올 때, 배후에서 갑자기 화살이 날아왔다. 왕의 호위무사는 자신의 몸으로 화살을 막아 희생당하고, 하나의 거대한 석림으로 변했다. 이에 후세 사람들은 그를 기념하기 위해 이 석림을 “일주경천(一柱擎天)”이라고 한다.
석림 왼쪽에는 수망성공(守望星空)이 있다. 수석호위무사에게는 충성심이 강한 독수리 한 마리가 있었다. 주인인 호위무사가 석림으로 변하자, 독수리는 석림 위에서 울부짖으며 떠나지 않았다. 오랜 시간 뒤, 석림 왼쪽에 한 마리의 돌 독수리로 변해 그의 주인을 지켜주고 있다. 는 것이 전설의 내용이었다.
<팔미 묵석공원(八美 墨石公園) 안의 이정표>
<"일주경천"의 묵림(왼쪽)과 가운데 "독수리"모습>
조금 더 올라가자, “귀운정(歸云亭)”이 나타났다. 묵석공원에는 모두 3개(묵석정, 귀운정, 강산정)의 정자가 있었다. 특별한 의미는 없고 관광객들이 이 공원을 돌다가 쉬어가는 곳이다. 귀운정이 있는 네 번째 석림을 지나면 이 공원의 마지막인 다섯 번째 석림이 나타났다. 이석림 언덕 위에는 “강산정(江山亭)”이 있었다.
<팔미 묵석공원(八美 墨石公園)의 "귀운정(歸云亭)">
묵석공원의 석림은 단단한 화강암이 아니라, 석탄 같기도 하고 손으로 힘껏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검은 흙이 섞인 돌 같았다. 일행은 대부분 세 번째 석림까지만 보고 내려갔으나, 나는 다섯 군데 석림을 몽땅 보고 입구로 내려갔다. 특히 네 번째 석림의 한글로 쓴 이정표에는 “사극림”으로 써야 할 것을 “사극실”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것은 교정을 보지 않았거나, 한글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쓴 것 같았다.
<뭇석림과 관광객이 걸어다니는 데크>
일행은 묵석공원을 나와 차를 타고 팔미 시내를 지나, 변두리에 있는 슈퍼에서 중국 컵라면과 빵으로 점심을 먹고 딴빠(丹巴)로 향했다. 오다가 아라설산(亞羅雪山)이 보이는 곳에서 내려 사진을 찍었다. 이곳에는 일행뿐 아니라, 지나가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다. 관광객이 휴식을 취하는 곳은 설산이 보이거나 풍경이 좋은 곳이라, 이런 곳을 중국 상인들이 가만있을 리가 만무하다. 여기도 꿀, 과일, 음료수 등을 파는 상인들이 있었다.
작은 하천을 따라 내려오는데, 하천 건너에 허름한 집들이 보였다. 그곳은 바로 자연적으로 나오는 더운 물로 목욕을 하는 온천이었다. 집은 허름했지만 물이 좋은지 꽤 많은 사람들이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다. 좁은 도로에는 그들이 타고 온 차가 주차돼있어 거의 일방통행을 하는 모습이었다.
일행은 비가 오는 가운데 계곡을 내려와 딴빠의 숙소인 “개흠대주점(凱鑫大酒店카이신따주디엔)에 도착(15:30)했다. 숙소는 시내 메인도로가 아니라, 딴빠에서 사파(梭坡 숴포)로 가는 통행로라 차가 많이 다녀 일행이 타고 온 차를 대고 큰 배낭을 내리기가 만만치 않았다. 경찰은 동 티베트지역 곳곳에 얼마나 많은지, 수시로 차를 타고 다니며 교통단속을 하고 있었다.
숙소에서 쉬다가 룸메이트와 같이 딴빠 시가지를 구경했다. 좁은 골짜기에 강물이 넓게 흐르며, 상가와 주택은 비탈을 깎아 겨우 짓고 언덕과 계단이 많은 특징이 있었다. 상점과 식당은 올망졸망하게 도로를 따라 이어졌다. 상당히 큰 슈퍼도 아래서 들어갈 때는 1층이나, 위에서 내려올 때는 지하와 같이 계단을 따라 내려와야 했다.
저녁을 먹을 식당은 운영자가 그 지역에 도착해서 찾아다녔다. 물론 전에 왔던 집이 있을 때는 그 집을 택했으나, 그렇지 않을 때는 새로운 집을 개척해야 했다. 오늘은 메인도로 오르막에 있는 닭고기 집이었다. 이곳의 닭은 전에 우리와 같이 밖에서 키워 고기 맛이 쫄깃쫄깃했으며, 우리 것보다 커서 맛이 좋았다. 일행은 닭고기를 안주로 맥주와 동충하초를 “랑(郞)”주에 담은 술을 마시고 숙소로 돌아왔다.
첫댓글 군수님 혜원사 초르텐 이라는 건 무엇을 뜻하는지 내용을 좀 알려 주실수 없나요 ?
혜원사는 앞에 있는 사원(절)이고, 그 뒤에 있는 것은 초르텐이지요.
초르텐은 티베트불교 경전을 쓴 오색기를 말하는데,
티베트불교(라바불교)를 믿는 곳은 언덕과 사원 주변에 초르텐을 많이 걸어요.
매리설산을 보러 상 우붕촌(상 위뻥촌)에 갈 때나, 진주해 부근 등에도 많이 걸었죠.
초르텐은 그곳의 목적과 주변 경관에 따라 그 모양새가 많이 달라지지요.
경전을 써서 걸어두면 행운이나 복을 받는 그런 신앙심에서 발상 된것 같군요.
티베트 장족들 중에 나이가 드신 분들은 문맹자가 많아요.
그래서 마니차나 초르텐이 생긴 것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