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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추억이 깃든 추암해변 덜컹거리는 비둘기호 열차에 몸을 맡기고 차창밖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상상을 가끔 한다. 바다를 끼고 있는 예쁜 역이 나를 유혹하면 미련없이 내릴 결심을 한다. 기차여행은 이렇게 예쁜 꿈이 있고 아련한 추억이 동반한다. 과거를 연결하는 녹슨 철로길을 하늘하늘 거닐다보면 어느덧 뽀얀 연기속에 희미하게 서있는 추억을 만나기 때문이다. 동해는 그렇게 상상했던 예쁜 역이 몇 군데 있다.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전에는 정동진역도 참 아늑했는데 지금은 인파 때문에 여간해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망상역 역시 내게는 아련한 추억이 깃든 곳이다. 지금은 새마을호도 정차할 수 있도록 큼직한 역사를 만든다고 한창 공사중이다. 그래도 내 추억에 변치 않는 역은 역시 추암역이다. 이 곳엔 그 흔한 역사도 없다. 기차는 자갈밭에 사람만 달랑 내려주고 훌쩍 떠나갈 뿐이다. 횡하니 가버리는 열차의 뒷꽁무니를 보면서 참 야속하게 생각했었는데.... 몇 년만에 추암역을 다시 찾았다. 난간에 팔을 드리우며 가장 편안 자세를 잡고 추암의 해변을 바라 보았다. 변함없는 쪽빛바다다. "조금전 역에서 바라본 바다가 없어지면 어떻하나" 라는 생각이 번뜩 들자 조바심을 느끼며 해변으로 달려갔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해변의 남쪽 끄트머리에 섰다. 거기서 바라본 추암해변이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동해는 주로 해안이 일직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서 이렇게 활처럼 휘어진 해수욕장을 만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추암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비릿내음이 물씬 풍기는 해변은 조용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비워졌고 어느새 정결함이 채워진다. 갈매기도 나는 것을 잊은채 해변의 주인인양 이러저리 노닐고 있다. 수첩을 꺼내 들었다. 무엇인가 느낌을 적어내고 싶은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눈으로 소박한 것을 보았지만 그 감동에 짓눌린 손가락은 아무 것도 표현해 낼 수 없었다. "쓰긴 뭘 써...그냥 즐기면 그만이지." 연속극을 그렇게 좋아하는 친구에게 추암을 다녀왔다고 했더니... "겨울연가의 준상과 유진이 처음으로 멋지게 걸었던 바다고, 마지막으로 유진을 떠나 보내면서 눈물을 쏟아 냈던 바다야."
나도 왠지 영화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군대시절 "배달의 기수"란 반공영화에서 양민을 괴롭히는 인민군 엑스트라역을 한 적이 있었다. 그나마 내가 나온 장면은 가위질 당해 나오지도 않았다. 그런 영화말고 사랑과 애증이 함께 하는 근사한 영화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오늘 나는 홀로 감독도 되어보고 주인공도 되면서 해변을 거닐었다. 그러나 봄볕에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갈매기에게 나는 또 그들을 괴롭히는 인민군이었다. 평화를 즐기는 해변의 갈매기는 나를 보고 놀라 소스라치며 "끼륵"비명을 지르며 하늘로 솟구친다. 고요함을 깬 주인공을 용서해다오. 해수욕장 왼편에 삐쭉 솟아난 바위들이 보였다. 그것을 향해 마냥 걸었다. 예쁘게 생긴 나무다리도 나왔다. 사쁜사쁜 건너갔다. 바위산을 오르다가 바다를 보려고 등을 돌렸다. 그 바다를 카메라에 담아본다.
오솔길을 조금 오르니 기어코 촛대바위가 나타난다. 큼직한 파도가 바위를 때려도 바위는 꿈쩍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무지막지한 파도가 이렇게 오묘한 바위를 만들어냈는지 모른다. 애국가에 흐르는 비장한 분위기가 바다에도 느껴진다. 실은 아침해가 살짝 걸쳐진 촛대바위를 봐야 추암의 진면목을 본다지만 게의른 탐승객은 지금의 풍경도 호사라고 생각하고 감사한다. "남한산성에서 정동방 은 이곳 추암입니다." 라는 안내돌이 세워져 있다. 남한산성은 청나라에 쫒겨 인조가 몽진하고 항전했던 곳이 아닌가? 비록 왕은 삼전도의 치욕을 보였지만 남한산성 동쪽 끝자락에는 이렇게 우뚝선 바위가 항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왕은 항복했어도 우리 국토는 한치의 양보를 하지 않았던 것이겠지. 조금 올라가면 전망대가 놓여져 있다. 하얀 벽에는 시시콜콜한 사연이 가득 담긴 낙서가 보인다. 꼭 이렇게 글로 남겨야만 사랑이 확인되는 것일까?
전망대에서 바라본 촛대바위
촛대바위에서 해암정쪽으로 내려가면 기암괴석이 가득 감싸고 있다. 하얀 포말이 바위를 덮치면 설경 속에 기암괴석이 솟아난 장면다. 자연이 만들어 낸 요묘한 조화이자 수천년동안 풍파를 견디어 낸 산고의 현장이 아닐까 조선 세조때 한명회가 강원도 제찰사로 있으면서 이런 추암의 경승을 보고 "기암괴석이 좌우로 늘어서 흡사 사람이 눕기도 하고 비스듬이 서 있기도 하는 것 같고 또는 호랑이가 꿇어 앉는 것 같기도 하고, 용이 꿈틀거리는 같이 천태만상을 이루었으며 소나무가 우거져서 그 사이로 비치니 참으로 조물주의 작품이라 하겠다. 강릉경포대와 통천 총석정과 그 경치가 난형난제이며 기이한 점은 이곳이 더 좋다." 라고 하면서 이름을 "추암"에서 "능파대"로 고치겠다고 할 정도다.
동산을 내려오면 바다를 병풍삼아 앉아 있는 해암정이 우릴 환히 반긴다. 말이 정자지 사대부집 가옥과 비슷하다. 뒷문을 활짝 제끼면 철조망이 드리워졌지만 아까 보았던 시원스런 괴석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바다를 뒷정원으로 삼은 셈이다. 시인 묵객들은 이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시심을 돋구었을 것이다. 그걸 말해주듯 안쪽 벽에는 이 곳을 다녀갔던 문인들의 글귀가 가득하다. 우암 송시열도 함흥으로 귀양살이 하러 가다가 이 곳에 들러 남긴 글도 보인다.
해풍으로 말리는 동해 오징어가 줄에 매달려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나는 지금 떠나가네 추암해변을 나오면 북방교역의 중심지인 북평공단이 나온다. 박정희대통령 시절, 창원과 더불어 대규모 공단으로 조성할려고 했다. 그러나 박대통령의 서거로 공단은 축소되었다. 그나마 화력발전소등 몇몇 회사를 빼고나면 공단은 거의 비어져 있는 상태다. 준공된지 8년이 넘었건만 분양률이 34%밖에 되지 않으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보다못한 농민들이 그 곳에 채소를 심어 놓아 연기가 가득해야 할 공단이 주말농장으로 전락했다. 이렇게 쓸모없는 땅이 된 이유가 뭘까? 동해항은 콘테이너를 선적할 수 없고 과다한 물류비용 때문에 대형항구로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콘테이너를 하역할수 있도록 항구를 만들어 주면 되지 않을까? 더구나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어 4시간만이면 서울로 연결되기 때문에 물류비용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몇 년 전 동해사람에게는 실날같은 희망이 있었다. 동해항이 금강산 유람선의 출발지가 된 것이다. 수많은 금강산 관광객을 태우고 동해항을 떠나는 유람선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남북 민간교류의 출발지로서 동해사람들의 자부심도 대단했고, 전국의 수많은 관광객은 동해항에 몰려 들기시작했다. 그에 따라 근처 횟집거리나 숙박업소는 연일 손님으로 들끓었고 관광용품은 날개놓친 듯 팔렸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경제 논리는 어쩔수 없나보다. 해상관광을 찾는 관광객은 자꾸만 줄어들고 유람선을 유지할 유가는 늘어만 가니 ..... 결국 속초항에 금강선 유람선 출항의 자리를 내주더니 지금은 그마저도 없어진 것이다. 지금 지역경제는 다시 한번 쓴 맛을 보고 있다. 한때 북적했던 동해항 터미널은 텅 비워져 쓸쓸하게 자리잡고 있고, 거대한 유람선이 서 있던 부두엔 낡아 빠진 러시아 대게잡이 배만 서 있던 것이다. 한때 북방교역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던 동해시는 이제 새로운 기지개를 펴고 있다. 북한-러시아-중국-일본을 잇는 환동해의 물류 중심지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금년 10월이면 동해고속도로의 확장공사도 마무리된다. 이렇게 동해시는 물류거점도시와 청정도시로 탈바꿈할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다. 힘찬 기상을 서린 촛대바위처럼 동해시도 다시 한번 힘찬 도약을 기대해보자. |
첫댓글 대장님의 발품으로 오늘도 좋은곳 구경잘 했습니다...^^덕에 꼬지지 가고 싶은곳이 하나..둘 늘어만 가네요..언제가 되었든 한곳한곳 새끼들 데리고 가볼께요...감사..^^
가보고싶은곳이 또하나 늘어나네요~^^; 촛대방위...동해에 가서 본것 같은데..무심결에 보낸....추암기차역이 정말 마음에 드네요~!!!
지나가면서 무심코 보았던 사물들은 대장님이 정성껏 준비해 준 음악과 대장님의 손글이 함께 하면 다른 사물로 비추입니다. 가슴이 징해지면서 감동은 온 몸으로 전해지고, 가고 싶음에 벌써 마음은 여러번 울렁울렁 거린답니다.
모놀대장님께서 추천여행지로 보내주신 멜을 보고 얼마전 사초를 하고서 천곡동굴과 추암해수욕장을 다녀왔는데 정말 좋더군요. 날씨만 조금 따뜻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시부모님 모시고 다녀왔는데 정말 가볼만한 곳이에요. 모두 다녀오세요. 대장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