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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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정교회 특징
1. 역사적 기원과 발전 분포 신학적 특징들
1.성경 2.7개 고대 에큐메니칼 공의회 3.후기 공의회들 4.교부들 5.교회 예식 6.교회 규범들 7.성화상
동방 정교회와 에큐메니칼 운동
1.에큐메니칼 운동과 동방정교회 2.정교회의 에큐메니칼 기본방향
모스크바 한인선교사회 / 남정우선교사
3.1.역사적 기원과 발전
동방 정교회라는 용어는 고대 에큐메니칼 7개의 공의회들에서(7개 고대 에큐메니칼 공희회란,1차 니케야 공의회 325년,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381년, 에베소 공의회 431년, 칼세돈 공의회 451년, 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553년, 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681년, 2차 니케야 공의회 787년를 말한다.) 정의된 신조와 예배의식을 지켜오는 기독교회를 지칭하는 말이다.'올바른 믿음/가르 침' 혹은 '올바른 예배'라는 의미의 "오르쏘독씨아( )"는 희랍어를 사용하는 기독교 세계에서 이미 언급한 바 7개 고대 에큐메니칼 공의회들에 의 하여 정의된 참 신앙을 보존한 공동체나 개인을 가르키는데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 동방 정교회의 전례서나 미사경본에 나와 있는 그들의 공식 명칭은 "정통 카톨릭 교회"이다
- 하지만 이 동방 정교회가 콘스탄티누스 로마제국의 황제가 330년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이후 동 로마제국 및 비잔티움(콘스 탄티노플)과 맺고 있는 역사적 관계로 해서 영어로는 관례상 이 교회를 가리켜 "동방 교회(Eastern Church)" 혹은 희랍 문화유산과 맺고 있는 관계로 해서 "희랍 정교회(Greek Orthodox Church)"라고도 부른다
- 대분열 이후(1054년),동방 정교회는 지리적으로 로마를 중심하여 볼 때,주 로 동부 지역을 중심하여 발전하였기에 중세기에는 모슬렘,몽고의 침입 그리고 근세기에는 공산주의의 박해 속에서 수많은 고난을 겪었다.이런 역사적 배경으 로 인하여 동방 정교회는 서방 교회와 다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AD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당시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존재하 던 기독교 세계를 로마 대관구,콘스탄티노플 대관구,알렉산드리아,안디옥,그리 고 예루살렘 대교구로 5개의 대관구 순서를 정하였다.그리고 기독교교회 전체 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가 있을 경우 이 다섯개 대관구의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교회공의회를 개최하여 해결하였다.
- 그러나 주후 590년 그레고리 제1세가 교황직에 오른 이후 로마 대관구 는 일취월장하여 다른 4개의 대관구를 훨씬 능가하는 교세와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으며,이후 로마 대관구는 다른 나머지 4개의 대관구들과 문화적,정치적,신 학적으로 소외와 갈등을 겪어오다가 급기야 1054년 동,서방교회가 대분열을 경 험하였으며,이후 12,13세기의 십자군들에 의하여 동,서방교회의 분열과 적대감 은 일반 신도들의 심중에 이르기까지 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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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분열(1054)은 어느날 갑자기 생긴 사건 이 아니라,주후 1세기부터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기독교회가 발전해 나오던 초기 시대부터 발생한 동,서교회 간의 소외 관계가 중세시대까지 계속되면서 점점 악화되어 폭발한 사건이었다. 여기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정치적 사건 뿐만이 아니라 언어적 차이와 문화적 차이도 그 불화의 요인 중 한 몫을 차지하였다. 4세기부터 11세 기에 이르기까지 콘스탄티노플은 東方 기독교의 중심지였을 뿐만이 아니라,東 로마제국 또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이기도 하였다.반면에 로마는 야만족의 침입 이 있은 이후에,비잔티움의 정치적 라이벌 이었던 西方의 신성-로마제국의 영 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1054년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간의 분열이 일어나던 당시,동방 정교회 세력은 '신로마'로 불리며,기독교 문명세계의 수도로 인정받던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여 중동,발칸반도,및 러시아에 분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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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열 이후 로마 대관구는 교회정치 행정적으로 로마 주교(교황)을 꼭지 점으로 하여 교황중심적 왕정체제와 같은 단일체제의 기독교회(Christemdom)로 발전하였으며,지리적으로는 종교개혁 시대까지 전 유럽과 북아프리카에 이르기 가지 확장되었으며,신학적으로,문화적으로는 스콜라주의를 형성하는데까지 크 게 발전해 나갔다.
- 그러나 동방의 4개 대관구는 사도시대부터 그러했듯이 집단 지도체제를 (the collegiality)중심으로 교회체제를 운영하였으며,7-8세기에는 아랍계 이 슬람교도들의 침략을 이미 받았고,이어서 터어키의 이슬람군대의 위협으로 인 하여 많은 고난을 겪는 가운데 신학적으로 문화적으로 신비주의적인 성향을 형 성하였으며,게다가 1453년 동 로마제국의 수도이자 동방 정교회 세계(콘스탄티 노플,예루살렘,안디옥,알렉산드리아 대교구 지역)의 중심지였던 콘스탄티노플 이 터어키 모슬렘군대에 의하여 무참히도 파괴당하고 멸망당한 역사적 사건 이 후에 동방 정교회 세계에서 가장 유능하다고 추정되는 지도력을 가진 나라는 러시아 뿐이었다.불가리아,세르비아 마져도 이미 터어키에 의하여 정복당하였 으며,그 나머지 정교회 지역들도 오래 전에 모슬렘 세력 속으로 흡수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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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모스크바를 중심한 러시아의 정교회는 1480 년 200여년 동안 지속되어온 몽고제국의 통치를 이반3세(Ivan III)대백작의 지 도력으로 완전히 종식시킨 후,계속되는 러시아 제국의 지리적인 확장과 비잔틴 황제들의 합법적인 계승자로 자처하는 '대단한 인물'인 이반4세(1530-1584)의 정치적인 야망과 더불어 모스크바 대주교(Archibishop)가 1589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승인을 받아 총대주교(Patriarch)의 지위로 승격하자,수도원들과 교회의 재산 소유를 주장하며 교회장식과 사제들의 의복,정교한 예배와 예전을 강조하며 열렬한 애국심으로 가득찬 요셉파(the Josephites)를 중심한 러시아 정교회와 러시아 국민들은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라고 자처했다. 그것은 모 스크바가 라틴계 사람들의 이단들에게 굴복한 제1 로마를 승계하였고,모슬렘에 의하여 희생된 제2 로마인 콘스탄티노플을 승계했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다
- 그러나 그동안 동방정교회 세계의 버팀목 역할을 해오던 러시아 총대교 구마저도 1917년 공산주의 혁명으로 신앙적 지도력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결과 서방교회에 비교하여 동방 정교회는 세계사의 무대에서 최근까지 정체현상 을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 이러한 역사적 변천으로 인해 정교회의 내적구조는 크게 바뀌어 왔으나 정교회의 신자들 대부분은,심지어 오늘날에도 똑같은 지역들에서 살고 있다
- 그렇지만 아시아 방면으로 선교가 확장되고
- ).중국의 경우에는 北京에 1715년 중국 선교회가 설립되었으며,1914년 경에는 5천 명의 정교회 신자가 있었다.일본에서는 1868년 러시아 정교회 신부가 처음으로 일본인 에게 세례를 주었다.1960년대에는 40여개의 교구와 3만6천의 신도를 가졌다.한국에 정 교회가 들어와서 활동한 역사는 다음과 같다:1897년 제정 러시아 교무원 소속인 러시아 정교회 아브로시우스 신부가 내한,정동 러시아 공사관 내에 임시성당을 설치함으로 시 작되었다.1900년 2월 7일 성.니콜라이 성당으로 명명하였고,1912년에는 러시아 교무원 의 후원으로 성당부설 보정(普正)학교를 건립했다.1919년 러시아 혁명으로 인한 선교비 지원 중단에 따라 학교,자선활동,선교활동이 모두 중단되었다.1948년 8월 한국인 김의 한 신부의 주관 하에 교회의 재건운영이 시작 되었으나,6.25사변 당시 김 신부의 납북 으로 교회운영은 다시 중단 되었다.1953년 11월,주한 UN군으로 참전했던 그리이스 군대 에 의하여 그리이스 정교회 관구 소속으로 교회가 복구되었다.1968년 교회의 위치를 현 재의 아현동으로 옮겨 건축하였다.1970년 그리이스 정교회 뉴질랜드 대관구 관할로 소 속되었다. 1975년 12월 1일에는 주관신부 트람바스 신부가 그리이스로부터 부임,선교사 겸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다.트람바스 신부는 1992년 주교로 승품되었다.그 주요교리 는 '초대교회로부터 성경과 신조를 기본경전으로 하여 초대교회로부터 계승되는 직제를 보존하고 교회분열 및 전부터 보존하고 있는 성사를 기본 신조로 함'이라고 되어있다. 임원으로는 종교위원회 회장,박순호,그 위원은 김파벨,전익수,이인수,김정옥 등이며,성 당 1개소,교직자 2명,교인수 925명(남자 420,여 505)의 교세를 지니고 있다.대표자는 트람바스 주교 신부,성당은 서울 마포구 아현동 424의 1에 있다.이외에도 부산,인천,전 주,양구에 성당이 있고,청평에 수도원 및 수녀원이 설립되어 있고 지방도시에 특수선교 교육기관 설립을 계획해 놓고 있다.1995년 5월 8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에큐메니칼 총대주교)가 방한하여 국내 종교지도자들과 만남을 가졌다.기독교대백과사전(서울:기독 교문사),항목"한국 정교회".그리고 한국 기독공보,1995년 4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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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방으로 이주가 진행되면서 정 교회는 전세계적인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 여러가지 통계에 의하면,1980년 당시 정교회 전체 신자수는 1억에서 1 억5천만명 정도인 것으로 추정되었으나,1991년 러시아에 보리스 옐친 정권이 들어 선 이후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지역에서 정교회 신자가 다시 급증하고 있으며,1995년 현재 200여 개국에 약 4억의 신도가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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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분포
- WCC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정교회 신학자 브리아(Ion Bria)는 현 재 전 세계에 존재하는 동방정교회를 크게 3개 지역으로 나누어서 그 특징들 을 기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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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아에 따르면,
- 첫째 고대 총대주교구에 속하는 정교회와 오리엔탈 교회들을 중심으로 한 중동지역의 정교회 지역,
- 둘째는 중부 동부 유럽을 중 심으로 한 정교회 지역,
- 세째는 정교회 디아스포라들로 구성된 새로운 지역 교회들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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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중동 지역의 정교회들로서
- 1)고대 총대주교들의 교구에 속했던 교회들인데,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이스탄불),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구(이집트),안디옥 총대주교구(다마스커스),예루살렘 총대주교구가 중동지역에 위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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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하나님의 작은 포도원들-오리엔탈 교회들(Little Vineyards of Gods-The Oriental Churches)이라고 불리우는 정교회로서,곱틱 교회(이집트),아르메니안 사도적 교회(Etchmiadin,Armenia),아르메니안 교회(Catholi- cossate of Cilicia,Antelias,Lebanon),에디오피안교회(아디스 아바바),안디옥 의 시리안 총대주교(다마스커스),말란카라 시리아 정교회(코타우암,게랄라,인디아)가 오리엔탈 동방 정교회에 속한다.이 오리엔탈 교회는 교회사적으로 주후 451년 칼세돈 공의회에서 단성론파(monophysites)라고 정죄당한 교회들이다.
- 이 중동지역의 동방정교회들은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기록들과 초대교회의 발자취들을 간직하고 있지만,불행하게도 수세기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 지역이 모슬렘의 정치적 군사적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세계교회 무대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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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는 중부,동부유럽 지역의 정교회들(Byzance apres Byzance-비잔틴 제국 이후의 비잔틴)인데,최근 구 소련이 몰락하기 전까지 주로 공산주의 이념 에 의하여 지배받던 지역의 교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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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번째는 새로운 지역 정교회들인데,주로 중동지역과 중,동부 유럽의 정교회 신자들이 서유럽,북,남미 지역으로 이민가서 새롭게 시작한 정교회 지 역이다.현재 서방교회와 가장 활발하게 접촉하고 있는 정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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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르노프(Zernov)는 브리아(I.Bria)와는 달리 세계 제1차대전이 발발하기 전 20세기 초엽의 상황을 중심하여 정교회 세계를 5개 지역으로 구분하여, 전 세계에 존재하는 정교회의 분포에 대하여 기술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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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는 정교회 세 계에서는 가장 많은 정교회 신자를 가진 러시아 제국 지역이다.1910년 당시 63 개의 교구,15만의 성직자,4개의 신학대학원,약 700여개의 수도원을 중심하여 러시아 지역 정교회 신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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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째는 오트만(Ottman)국가 내에 있던 정교회들인데,이 지역에 속하 는 정교회는 비잔틴 제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콘스탄티노플,알렉산드리 아,안티옥,그리고 예루살렘 4대관구가 이 지역에 속하였다.20세기 현재 8백5십 만의 신도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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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번째는 오스트리아-헝가리(Austro-Hungarian Empire)지역의 정교회 들인데,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로마카톨릭과 동방정교회 충돌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역사적으로 로마카톨릭의 개종화 작업을 통하여 우니아테 교회(Uniate Churches)를 이루고 있다
- 우니아테 교회는 교회정치에 있어서는 로마 교황의 수위성을 받아들이면서,예배 의식에 있어서는 옛날부터 지켜온 그들 자신의 동방 스타일 예식을 고수하는 교회를 말 한다.이 교파교회들은 대부분 17세기에 로마카톨릭이 배후 조종한 정치적 압력의 결과 로생겨나게 되었다.주로 Galicia와 Transylvania 지역에 많다.현재 신도수가 500만 정 도이다.이 우니아테 교회의 주교들은 오스트리아 황제가 임명하며,산하 세개의 조직이 있는데,첫째가 세르비아 교회(the Karlovits,80만),둘째가 불코비나,달마티아 교회 (루마니아인,러시아인,달마치아인,55만),세째가 헤르만스타트 교회(헝가리에 있는 루마니아인을 위한 교회 22만)이다.여기에 대한 최고의 참고서적은 D.Attwater,the christian churches of the east,2 vols,Milwaukee,1946-47.chap.xv,p.67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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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번째는 발칸 지역의 정교회들인데,그리이스 200만,루마니아 500만,세르비아 250만,불가리아 350만, 그리고 몬테니그로에 15만의 정교회 신자가 분포한다.이 모든 민족들은 19세기에 오트만 제국과 줄기찬 독립전쟁을 한 후 에 독립한 민족들이며,정치적 교회적 독립성을 각자 가지고 있다.이 교회들은 대단히 적극적이며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데,대체로 민족의 독립운동과 연관되어 있다.그러나 강열한 민족주의로 말미암아 이웃나라와 긴장관계가 심 화되고 있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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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다섯번째로 비주류 동방교회(the Lesser Eastern Churches) 라고 불리우는 정교회 지역인데,교회사적으로 보면,단성론자들,네스토리안(5,6 세기에 분리됨)들이 여기에 속한다.따라서 이 그룹의 교회는 동방정교회와 공 통점도 있고,차이점도 있다.아르메니아인 400만,콥트인 80만,에디오피아인 350 만,야곱파인 10만,앗시리아인 80만,남인도에 있는 시리아 정교회인 45만이 여 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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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신학적 특징들
- 정교회 신학의 기본적인 특징은 신학자의 사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신학을 위한 규준적 자료설정에 의하여 잘 드러난다.
- 첫째 정교회 신학자는 다마스커스의 요한(John of Damascus,?675-749) 이 남긴 말 "우리는 우리의 선조들이 설정해 놓은 영원한 경계선을 옮길 것이 아니라,그것을 수용하고 지키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는 말 가운데 자신의 사명을 발견한다
- 그러므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져야 한다(Ecclesia est semper reformanda)'라는 기본 기조 속에서 신학을 하는 개혁 교회 신학자의 성향과는 다른 보수적 전통적 성향의 신학적 특징을 정교회 신학자들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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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는 정교회 신학자는 성경과 325년 제1차 니케야 에큐메니칼 공의회 로부터 787년 제7차 두번째 니케야 에큐메니칼 공의회까지의 고대 에큐메니칼 교회공의회의 결정사항들을 중심한 교회전승을 신학과 신앙활동의 규준적 자료로 삼는다. 그러므로 66권 신,구약 성경 만을 신학과 신앙활동의 규준적 자료 로 삼는 개혁교회 신학과는 다른 특징들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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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교회 신학은 한마디로 거룩한 전승에 기초한 신학이다.여기서 정교회 가 말하는 거룩한 전승이란,성경(Bible)을 말하며,신조(Creeds)를 말하는 것이 며,에큐메니칼 공의회 결정사항들(Decrees),교부들의 저작물(the writings of Fathers),교회 규범(Canons),예식서(the Service Books),그리고 성화(Icons)를 등 7가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 이것은 여러 세대에 걸쳐서 정교회가 형성해온 교리,교회정치,예배의식,영성,예술 등의 총제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승에 대하여 정교회는 거의 절대적인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 며,앞으로 이러한 전통을 변함없이 보존하여 다가오는 세대에 그대로 전승시켜 주는 것이 정교회의 고귀한 사명이라고 믿는다.따라서 정교회의 신학적인 특징 은 이러한 전승의 구체적인 내용들,그리고 전승에 대한 그들 자신의 관점과 해 석에 따라서 형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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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정교회는 傳承을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는가? 첫째,정교회가 말하는 전승은 단순히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구두전승만 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문자로 기록된 성경과 교리서,그리고 예식서를 포함 한다는 사실이다. 즉,전승이란 교회가 보존해온 신앙생활에 관한 모든 것이다. 크리소스토모스 콘스탄티니디스(Chrysostomos Konstantinidis)교수는 전승( Tradition)에 대한 개신교의 이해와 정교회의 이해를 비교하는 가운데,정교회가 말하는 전승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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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일치의 이러한 규준들이 소위 우리가 말하는 전승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여기 서 강조하는 것이 우리 개신교 형제들에게는 유익이 없을 것인가? ;우리 정교회가 말 하는 전승이란 교회의 모든 가르침을 말한다;교회의 모든 가르침이란 주님과 사도들 의 가르침이다;주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은 성경에 필적되는 신앙의 寶庫이다.
- 그리고 전승이라는 말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단순히 과거의 것을 수 용하는 수동적이고 정적인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신앙생활의 살아있는 실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조오지 플로로프스키(George Florovsky)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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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승(tradition)이란 성령의 증거이다;즉 성령의 끊임없는 계시와 복음에 대한 증거 이다.....전승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교회 안에서 살아야 하며,교 회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에 대한 체험을 가져야 한다;우리는 교회 안에서 성령 의 호흡을 느껴야 한다......전승이란 단순히 자기 방어적이고 보수적인 원리를 말하 는 것이 아니다.오히려 전승이란 성장과 거듭남의 원리이다.......전승이란 성령의 常住하심이지 결코 말들(words)에 대한 기억이 아니다.
- 영국 성공회 신부였다가 정교회 신부로 개종한 디모디 웨어(Timorthy Ware)도 위의 내용을 다시 한번 강조하여 "전승이란 성령의 증거이다(Traditi- on is the witness of the Spirit)"라고 하면서 요한 복음 16장 13절을 인용 하여 정교회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할 것이 다" 라고 말씀 하신 그리스도의 약속 위에 기초해 있으므로,정교회가 전승에 대하여 충성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충성이라고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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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정교회가 말 하는 전승이란 또한 정교회가 거의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7개 고대공의회 결정사항들이라고 하는 거룩한 전승(Holy Tradition)을 말하는 것인데,이것은 개혁교회가 거의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성경(Holy Scripture)과 병행되는 (parallel to Holy Scripture)것처럼 보이지만 7개 고대 에큐메니칼 공의회 들 가운데서 니케야 공의회(325),니케야-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에베소서 공의회(431),칼세돈 공의회(451)의 결정사항을 개혁교회도 동방 정교회와 동일 하게 권위있는 것으로 이미 수용해 왔으며,이후 제2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553),제3 콘스탄티노플 공의회(680)의 결정사항은 4차에 걸쳐 결의된 기독론 적 내용을 재강조한 공의회이기에 개혁교회가 동방 정교회가 가장 권위있게 수 용하여 지켜오고 있는 7개 공의회 결정사항들 중에서 6개는 이미 받아들인 것 이다.단지 제7차 제2 니케야 공의회 결정사항 중 성상숭배에 대한 가르침에 있 어서 차이점이 있는데,이것 마저도 신앙 표현의 관점에서 본다면 전혀 이해될 수 없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 그렇지만 정교회는 그 중심에 있어서는 개혁교회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제2장에서 언급한 바,사도들로부터 모든 교회에 승계되어 오고 있는 그리스도 의 복음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라고 하는 일치성의 중심원리에 기초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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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정교회 자신도 위에서 언급한 7가지 형태의 모든 전승들을 동등하 게 절대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그 중에서도 성경,고대 에큐메니칼 공의회 의 결정사항들,그리고 신조들이 다른 것 보다 우위성(pre-eminence)을 가지므 로 적어도 이 세가지는 결코 변개할 수 없는 절대적인(absolute) 것으로 간주 한다는 사실이다.따라서 전승의 다른 부분들은 어느정도 變改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 그럼 이제는 정교회 전승의 내용을 구성하는 7가지 형태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차례대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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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성경
- a)성경과 교회
- 기독교는 성서의 종교이다.정교회는 개신교 만큼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 점을 철저하게 믿는다.왜냐하면 성경은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의 최상의 표현이기 때문이다.따라서 기독교인은 항상 성경의 백성(The People of The Book)이 되어야 한다고 정교회는 믿는다.그러나 정교회는 성경을 교회 우위에 두지는 않는다.오히려 성경은 교회 안에서(within the Church) 살고 이해되어 져야할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결코 정교회는 전승과 성경을 분리하지 않는 다.성경이 궁극적으로 권위를 가지게 된 것은 교회로부터(from the church)이 며,권위를 가지고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오직 교회 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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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성경 본문
- 성경 비평(Biblical Criticism). 신,구약 성경의 권위에 있어서 정교회와 개신교의 입장은 같다.그러나 성경 본문 사용에 있어서는 희랍어로 된 70인역(Septuagint)을 가장 권위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그래서 여러가지 성경 번역본들 가운데서 차이점이 있을 경 우,70인역의 번역을 정교회는 취한다. 그리고 히브리어 본문에는 구약성경이 39권으로 나와있지만,70인역에도 히브리어 본문에도 없지만 정교회 안에서는 '두번째 경전(Deutero-Canonical books)'라고 알려져 있는 10권이 포함되어 있는데,이 "두번째 경전들"에 대한 결정은 1642년 쟈시(Jassy)공의회에서,그리고 1672년 예루살렘(Jerusalem)공의 회에서 경전서로 인정되었다.이 책들에 대하여 현재 정교회 신학자들은 아타나 시우스와 제롬의 견해에 따라서 다른 구약성경 보다 약간 낮은 수준으로 평가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정교회는 이 모두를 경전으로 받아들인다. 성경비평주의에 대하여,정교회 안에서는 괄목할만한 학자가 아직 없지 만,성경을 비판적으로 역사적으로 정직하게 연구하는 일에 대하여 반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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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성경과 예배
정교회 안에서 서방교회 못지 않게 성경은 예배 시간에 자주 정규적으 로 읽혀져 왔다.조과,만과 시에 매 일주일 마다 시편을 다 읽으며,수난주일에 는 일주일에 시편을 두번 읽는다.그러나 다른 부분의 구약성경은 읽혀지지 않 는다.이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매 주일 예배 시에는 요한 계시록을 제외한 신약성경과 복음서에서 뽑아서 지정해 준 부분들을 규칙적으로 읽어서 일년에 한번 신약성서 모두를 읽도록 한다. 주님의 기도는 모든 예배 시간에 되풀이 된다.부활절은 물론 매번 성찬식마다 항상 복음서를 읽는다.이외에도 교회 예 배 의식에서 사용되는 모든 언어는 성경에서 빌려온 것이다. 정교회는 성경을 말씀의 형태로 전하여지는 그리스도의 성상(Icon)이라 고 생각한다.그것은 특별히 제7차 에큐메니칼 공의회가 성상과 복음서는 같은 방식으로 존숭(venerated)되어져야 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정교회에서는 복음서를 제단 위에 둔다.그리고 聖像 앞에서 그리하듯이 정교회 신자들은 그 복음서에 입을 맞추고 허리를 숙인다.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 한 존경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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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2.일곱개 고대 에큐메니칼 공의회:신조들
- 에큐메니칼 공의회에서 내린 교리적 결정사항은 무오한 것이다(infal- lible).그러므로 정교회가 보기에 7개 고대 에큐메니칼 공의회가 만든 신앙에 대한 진술들(statements of faith)은 성서와 함께 변개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진
- 다.
- 니케야 공의회(A.D.325)는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 본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아리우스파에 반대하여 성부와 성자의 동일 본질성,그리고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리를 확정하였다.나사렛 예수님의 神性의 문제로 .당시의 보편교회 분열의 위기를 맞이하는 에큐메니칼 공의회를 소집하 여 기독ㄱ회들이 고백하고 예배해야 할 성서적 하나님의 모습을 확정했던 것이 다. 그 다음 콘스티노플 공의회(A.D.381)는 "성령의 신성을 거부하는 자 들"(Pneumatomachians)에 반대하여 이미 논한 니케아 공의회의 삼위일체론 중 "성령을 믿사오며"라는 구절을 명쾌하고 결정적으로 부연하였다.즉, "그리고 우 리는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이신 성령을 믿는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로부 터 오셨고,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예배와 영광을 받으신다..........이 성령은 예언 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다"를 첨가하였다.그리고 본 에큐메니칼 공의회는 "하나의, 거룩한,사도적, 보편 교회"를 믿는다고 하였다. 에베소 공의회(A.D431)는 네스토 우스의 기독론을 정죄하고 시릴의 기독론을 받아드렸으며 펠라기우스의 인간의 자유의지와 행위를 말미암는 구원론을 반대하고 어거스틴적인 은총과 믿음에 의한 구원론을 펼쳤다.그리고 칼세돈(A.D451)회의는 나사렛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참 하나님이시요, 참 인간이심을 밝히고 이 두 본성 사이의 관계를 "혼동되거나 나뉨이 없는" 조화를 보았다. 제2 콘스탄티노플(553)과 제3 콘스탄 티노플 공의회(680)는 위의 기독론을 변호하고, 강화시켰고,끝으로 제2 니케아 공의회(789)는 성상숭배를 결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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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여러개의 에큐메니칼 공의회 결정문들 가운데서도 니케야-콘스 탄티노플 신조(Nicene-Constantinople Creed)가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므로 매번 성찬식을 할 때 마다 고백되며,다른 예배 시간에서도 읽혀진다.서방교회 에서 사용되고 있는 사도신경과 아타나시우스 신조는 니케야-콘스탄티노플 신 조와 같은 권위를 가지지 못한다.왜냐하면 사도신경은 에큐메니칼 공의회를 통 하여 선포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비록 사도신경에 있는 신앙고백의 내용을 수용하고 그 가르침을 인정하지만,동방 정교회 예배의식 가운데서는 결코 사용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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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의 7 에큐메니칼 공의회의 교리결정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으로서, 이는 기독교의 정통성 수호에 엄청난 공헌을 해왔 다. 이 두 교리는 사도적 전승 복음을 지키고 이에 근거한 교회의 모든 성서적 가르침들의 기본 틀거리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이 중에서 개혁교회는 이미 언 급한 바와 같이 4개의 공의회 결정사항은 이미 완전히 수용되어 왔으며, 5,6차 의 결정사항도 그 내용에 있어서 개혁교회 안에 수용되어 온 진리들이다. 동방 정통교회의 "정통"이란 말은 위에서 언급한 7 에큐메니칼 공의회의 결정내 용을 성경 다음으로 중요시하고 성경 해석의 결과인 동시에 이 성경해석의 길 잡이로 여기는 데서 비롯되었다.대체로 로마카톨릭 교회는 위의 7 에큐메니칼 공의회의 모든 결정을 받아드리고,개혁교회는 성상숭배에 관한 것만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받아들인다. 따라서 이 7 에큐메니칼 공의회의 결정내용은 오늘 에 있어서도 세계교회들의 에큐메니칼 대회를 가능케 하는 기독교의 근본 교리 들이 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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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3.후기 공의회들
- 7개 고대 에큐메니칼 공의회를 소중히 한다고 해서,정교회의 교리적 발 전이 제7차 에큐메니칼 공의회(787년) 이후 중단 된 것은 아니었다.787년 이후 정교회 신앙에 대한 진술들은 지역 공의회(local councils)를 통하여,그리고 주교 개인들이 만든 신앙에 대한 편지,진술문들을 통하여 표현되었다.지역공의 회와 주교들이 만든 신앙진술문들이 에큐메니칼 공의회 결정사항들과 결코 동 일한 권위를 가지지는 못하지만,어떤 지역의 공의회 결정사항이 다른 지역의 공의회들의 동의와 지지를 획득하게 되면 자연히 일반 에큐메니칼 공의회의 결 정사항과 버금가는 권위를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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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4.교부들(Fathers)
- 공의회 결정사항들은 교부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연구되어져야 한다.그 러나 교부들의 견해와 주장내용은 마치 지역 공의회의 성격처럼 보편성을 가지 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그러나 교부들의 기본정신(the Mind of Fathers)에 대 한 정교회의 존경심은 한결같다.따라서 교부들의 가르침을 연구할 때에 한사 람,한 사람의 저작물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그 근본정신을 이해하는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면 교부들의 기본정신이란 무엇인가? 정교회는 여기에 대해서 정확 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지만,특별히 4세기의 '바실,그레고리,크리소스톰(Basil the Great,Gregory of Nazianzus,John Chrisostom)을 존경한다.그 이후에도 교 부들의 기본정신은 막시무스(Maximus),다마스커스(John of Damascus),데오도 레(Theodore of Stoudios),시메온(Symeon the New Theologian),그레고리 팔마 스(Gregory Palmas),마가(Mark of Ephesus) 등을 통하여 계속되었다고 믿는 다.그리고 앞으로도 교부들의 탄생 가능성은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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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5.교회 예식(The Liturgy)
- 성.바실(St.Basil)은 교회전승의 두가지 형태에 대하여 "어떤 것들은 우리가 기록된 가르침들을 통하여 전수받았고,어떤 것들은 신비로서(a mys- tery)전승되어온 사도적 전승으로부터 우리가 전수받은 것이다.이 두가지는 우 리의 경건에 모두 중요하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신비로서 우리에게 전수되어 온 것이란 다름아닌 교회의 예식을 의미한다
- 성찬식,다른 성례전들,사후세 계에 대하여,하나님의 어머니에 대하여,성자들에 대하여,신자의 죽음에 대하여 기타 등등에 대하여 정교회는 문자로서 정의를 내린 부분이 아주 적지만,정교 회 신자들의 기도 가운데서 그리고 찬송과 예식 가운데서 오랫동안 표현되고 고백되어 온 신앙의 내용이 있다.이 뿐 아니라,예식 가운데서 행하여지는 몸 짓,행동,침례,기름을 바름,십자가의 형태 등도 중요한 신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이런 것들 또한 신앙의 진리의 중요한 한 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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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6.교회 규범들(Canon Law)
- 에큐메니칼 공의회는 교리적인 결정사항 뿐만이 아니라,교회조직과 치 리권징을 위하여 교회규범을 만들었다.공의회에서 만든 규범 뿐만이 아니라,지 역공의회와 주교들이 만든 규범들도 많이 있는데,이러한 규범들에 대한 가장 표준적인 해석서는 니코데무스(Nichodemus of Holy Mountain)에 의해 1800년에 출판된 '페달리온(Pedalion)'이다
- 서방교회가 동방정교회를 연구할 때,가장 연구가 안된 부분이 바로 이 규범에 대한 것이다.그래서 동방정교회 안에는 규범이 없는 줄로 착각하는 서 방교회도 있지만, 사실은 엄격한 교회 규범들이 있다.그러나 오늘날에는 기존 의 규범들을 그대로 적용하는데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으며,이미 無用之物 이 된 규범들도 많이 있으므로 앞으로 정교회 에큐메니칼 공의회가 개최된다 면,거기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 중에 중요한 부분이 이 교회 규범들에 관한 것 이 될 것이라고 본다. 정교회는 공의회의 교리적 결정사항들은 변개할 수가 없지만,규범들은 변개될 수 있다고 본다.왜냐하면 교리적 결정사항들은 진리에 관한 것이며,규 범들은 이 땅의 생활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규범은 끊임없이 시대 와 상황에 따라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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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7.성화상(Icons)
- 정교회의 전승은 언어로써,예식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몸짓과 행동으로 써,그리고 線과 色으로서 그려지는 성화상을 통하여서 표현되어 왔다.성화상은 신자의 종교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종교적 그림인 동시에,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고 정교회는 생각한다. 성화상을 통하여 정교회 신자들은 영적 세계의 비젼을 본다.성화상은 전승의 한 부분으로 간 주하기에,성화상을 그리는 화가에게는 엄격한 교회 규율이 적용된다.그래서 단 순히 화가 자신의 심미적 관심 보다는 교회의 정신을 표현하는데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성화상을 그리는 화가들은 정교회 전승에 따르며 신앙고백적 자세 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
- 지금까지 디모디 웨어(T.Ware)의 자료를 중심으로 언급한 7가지 신학적 주요 자료들은 정교회 전승을 형성하는 외적인 주요 형태들이다.이 7가지는 별 개의 것이 아니라,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하나의 전체 덩어리를 형성한 다.그 이유는 이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고,이 모든 것들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분은 동일한 성령이시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교회의 신앙생활과 신학작업의 規準的인 역할을 하는 이러한 전승적 자 료들로 인하여 정교회는 개혁교회와는 다른 특징들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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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조직신학적인 관점에서,특별히 에큐메니칼 대화의 맥락 속에서 드러나는 정교회 신학적인 특징들을 정리해 보자.페트로 바실리데스(Petros. Vassiliadis)는 '21세기에 직면한 정교회 신학(Orthodox Theology Facing the Twenty-first century)'이라는 자신의 글에서 정교회 신학의 특징들을 다음 5 가지로 기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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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는 예배 중심적 교회 중심적 신학이다.
- 실제로 정교회 신학자에게 교회 공동체를 떠난,혹은 독립적 위치를 가지는 신학이란 생각될 수 없다.신학은 교회의 학문이다.그리고 정교회 신학자는 교회를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예배 공동체로 이해한다.이 명제가 다른 어떤 교회에 대한 설명이나,증언 보다도 우선한다.예배가 첫째이고,신학과 교리는 두번째이다.예배 드림과 참석을 통하여 체험하는 神과의 신비로운 체험이 신학과 교리의 전제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교회 예배의 중심은 말씀 설교가 아니라 성찬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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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째는 삼위일체론적 신학이다.
- 정교회의 모든 신학적 기술들은 사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인 역동성(the inner dynamics of the Triune God)에서 모두 나온 것이다. 실제로 정교회는 하나님에 대한 삼위일체론적 이해를 교회 생활의 근간임을 확인하는 일과 관련하여 에큐메니칼 운동에 크게 공헌하였다
- 세번째는 종말론적 성격이 강한 신학이다
- 정교회 신학자는 근본적으로 교회의 주요 사명들 중의 하나가 종말의 영광스러운 실체를 이 땅위에 있는 교회를 통하여 미리 보여 주고,구현해 나가는 것이라고 이해한다.이러한 이해 를 근간으로 하여 예배의식을 화려하게(영광스럽게) 조직화하며,부활절을 가장 성대한 교회절기로 지키며,아이콘을 만들어서 영광스러운 종말의 모습들을 형 상화하여 흠모하는 행위를 권장하며 구원론에 있어서도 인간의 신성화 (deification)를 강조하는 특징들을 보인다
- 네번째는 성령론이 일반교회 신앙생활을 통해서 강조된다는 점이다
- 동방 정교회 성령론의 특징을 드러내 보여주는 3가지 근거로서, 1)필리오케 (Filioque)신학을 거부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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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성령초대(Epiklesis)
- 예배 의식,특히 성찬식에서 성령의 부름,초대하는 말씀을 epiklesis라고 하는데,정교회 매일 예배의식에 나오는 전형적인 예를 하나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오 하늘의 왕이시며,위로자이시며,진리의 영이시여,모든 장소에 임하소서.만유 가운데 선함과 생명으로 충만하소서. 또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모든 허물 가운데서 정결케 하시고,우리의 영혼을 구하여 주소서= . P.Vasiliades,op.cit.,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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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교회의 구성자로서의 성령을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 정교회의 주장:;그리스도는 교회를 세우시고,성령은 교회를 구성하신다. (institute, constitute).Ibid.,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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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다섯번째로 정교회 신학은 우주적이며,보편적인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보편적이라는 말은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며,삼위일체 하 나님에 대한 신앙을 핵심으로 하는 보편적 교회전승 위에 서 있다는 뜻이며,우 주적이라는 말은 정교회 신학이 온 우주 피조물과 인간의 친교와 조화를 추구 하는 총체적(wholistic) 신학이라는 뜻이다.인간의 구원론을 말할 때,특별히 이러한 특징이 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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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 다섯가지로 요약된 정교회 신학의 일반적인 특징들은 이후 우리가 살펴볼 개혁교회와의 신학적 에큐메니칼적 대화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 때로 는 상호 배타적인 부정적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상호보완적인 긍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때도 많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정교회와 서방교회의 차이점들을 상호보완적 관점에서 본다면,다음과 같은 견해 도 가능할 것이다. 첫째 교회의 진정한 보편성은 동방적 요소와 서방적 요소를 모두 지 녀야 한다.둘째 서방교회의 교회론은 교회론을 역사 지평선에만 제한시키는 경향성을 지녀왔다.결과 너무 역사화 되었다.땅의 것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성을 보여왔다.교회 가 종말의 顯現되기를 멈추었다.반면에 동방교회 신학은 너무 하늘의 것을 강조하다 보니,교회를 역사 지평선에서 非成肉化 시키는 위험성을 지녀왔다. 앞으로 이 두 흐름 의 전통이 서로 창조적으로 역동적으로 만난다면,상호 전통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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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해 보면,정교회 신학은 교회 전승에 기초하여 예배 공동체를 중심 한 교회의 기본교리를 고수하는 동시에 신비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특징을 보인 다 하겠다.한마디로 보수적인(conservative) 성격이 강한 신학이라는 것이다.
- 그러면,이러한 신학적 특징이 나타나게 된 역사적인 배경에 대하여 생 각해 보자.이형기 교수는 '세계 교회사(1)'라는 책에서 동방 정교회가 특징적 으로 지니고 있는 신비적 요소와 보수적인 요소를 정교회가 처했던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이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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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는 서유럽의 기독교에서 일어났던 창조적 운동들이 동방 교회에서 는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 동방의 경우에는 서방에 비견될만한 새로운 기독교운 동이 없었다.동방에서는 보고밀파(The Bogomiles)를 제외하고는 서방만큼 이단 운동들이 없었다
- 그리고 동방교회는 서방교회처럼 스콜라주의 신학을 생산할 수없었다.동방교회 역시 국가에 대해서 어느 정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독 립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교회를 국가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일에 있어서 는 서방교회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결과 동방 정교회는 고대의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는 특징 아닌 특징을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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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는 동방교회는 사도들과 고대교회의 신학전통들을 수호하는 일에 있어서 고의적인 강조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 정교회는 자신들을 '정통'이라고 부르면서,자신들의 전통과 다른 교파들을 구분하는 일에 열심을 보였다.그래서 심지어는 러시아가 독립교구로 인정받은 후에는 콘스탄티노플과 대립을 보이면 서 누가 더 고대교회 전통에 충실한 정통인가 하는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 동방교회에서는 서방교회에 비해 왜 새로운 운동들이 없었고,정통기독 교를 고수하는 일에 전념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을 수 있겠 으나 그 주된 이유는 비잔틴 제국이 고질적인 외세에 대하여 방어적이었다는 사실에 있다.비잔틴 제국은 무너져 가는 로마제국을 물려받았고,기울어져가는 희랍,로마문명과 특히 희랍적 유산을 승계받았다.그런데다가 비잔틴의 기독교 는 모슬렘 국가들과 지리적으로 맞닿아 있어서 항상 직접적인 위협 속에서 살 았다.따라서 동방 기독교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의 정체성 위기에 직 면하여 정통 신앙을 고수하고 보수해야 했던 역사적 상황이 있었던 것이다.이 런 상황 속에서 동방 정교회 내부적인 단합이 강조되었고,전해 내려온 정통에 서 벗어나는 모든 사상은 교회분열을 조장하는 이단으로 보았던 것이다.반대로 서방기독교는 이슬람의 직접적인 위협을 받지 않았고,4세기부터 가속화된 야만 족들의 침입이 10세기경에는 오히려 수그러들면서 힘찬 확장을 경험하는 상황 속에 있었기 때문에 서방교회의 신학은 진취적이고 모험적인 측면을 드러낸 반 면,동방기독교는 보수적인 성향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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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번째 특징은 동방교회가 국가에 긴밀히 예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비록 '총체적인 지배(total control)'라는 뜻이 내포된 완벽한 황제 교황주의 (Caesaro-papism:황제가 교황이 된다는 사상)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콘스탄틴 (Constantine)황제 이후 비잔틴 제국 속에서 정교회는 국가와 긴밀한 협력 내 지는 예속적 관계를 가져왔으며,이러한 관계성은 근대에 이르러 모스크바 러시 아와 제정 러시아 그리고 소비에트 러시아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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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와 국가 간의 이러한 특수한 관계성으로 인하여 정교회는 독자적인 신학의 발전이 부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 앞에서 기술한 정교회 신학적 특징들을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 해할 때,우리는 두가지 중요한 교훈과 시사점을 얻는다.그 첫째는 정교회가 서 방교회와는 다른 상황 속에서 모슬렘을 비롯한 여러가지 거센 위협 세력들 속 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신앙과 전통을 지켜온 사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다. 두번째는 옛 시대와는 달리 이제 지구화,개방화,다원화 시대를 살아가는 정교 회는 새롭게 변화하는 세계적 상황과 기독교 세계에 대한 인식이 날로 깊어지 면서 정교회 자신의 사명을 새롭게 재정립하고,자신의 전통과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하려는 자발적인 노력이 생겨날 것으로 시사된다는 사실이다.바로 이 점에 있어서 개혁교회는 정교회와의 에큐메니칼 대화를 진행해 나감에 있어서 긍정 적인 결과들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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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동방정교회 에큐메니칼 운동
- 3.4.1.에큐메니칼 운동과 동방정교회 비셔트 후프트는 "세계교회 협의회 기원과 형성"이라는 책을 시작하는 제1장에서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제안'을 취급하고 있다. 그것은 1919년 1월 10일 콘스탄티노플 교회 성회(the Holy Synod of the Church of Constanti- nople)에서 당시 미국 윌슨 대통령의 제안으로 조직하려고 하는 '국제 연맹 (League of Nations)'을 중심으로 서구세계의 정치,경제,군사 등의 문제를 협 의해 나가려는 모습을 의식하면서 제안된 '교회 연맹(League of churches)'을 구성하고자 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공식 결정한 사건 이었다.이로 인하여 국제 연맹을 모형으로 삼아 교회 연맹을 설립할 것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그의 회람 문서를 통하여 여러 교회에 제안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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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거의 같은 시기였던 1919년 4월 스웨덴교회 대주교 죄더블롬은 1 차 세계대전 직후에 전쟁에 참가했던 나라들의 교회를 단결시키고,그리스도의 교회로서의 일치된 목소리와 증거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에큐메니칼 교회 연합회'를 구성할 것을 말하였다.
- 처음에는 죄더블롬(Nathan Soederblom,1866-1931)이 콘스탄티노플 교회 의 제안을 몰랐고,각기 다른 동기에서 교회일치 운동을 호소하였지만,곧 이들 은 서로의 주장을 알게 되어 공감대를 형성하여 협력해 나갔다.1919년 9월 네 델란드의 우드 밧세나아르(Oud Wassenar)에서 열린 "교회를 통한 국제우호 증 진 세계연맹"(the World Alliance for Promoting International Friendship through the Churches)에서 죄더블롬은 '에큐메니칼 세계교회 협의회'를 창설 하고자 하는 그 자신의 계획을 언급하였는데,이후 1920년 발행된 에큐메니칼 총대주교의 회람문서를 통하여 더욱 고무되었다.
- 1920년 여름,주로 개신교가 주축이 된 "생활과 봉사(Life and Work)"에 관계된 세계교회협의회 준비모임에서 죄더블롬은 동방정교회와 성공회도 에큐 메니칼 세계교회 운동에 참여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음을 언급하여,<생활과 봉사>모임이 개신교 만의 모임이 아니라,동방정교회,성공회도 함께 참여하는 세계적이고도 영구적인 교회들의 친교 협의체가 준비되는 일이 본격적으로 시 작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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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1910년부터 정교회의 사람들은 세계교회일치를 위한 국제모임에 규칙적으로 참여했으며,제1차 대전 후 1920년에는 에큐메니칼 총대주교가 그 의 회람문서를 통하여 "교회들의 친교-KOINONIA OF CHURCHES"를 강조하고, 어떤 교리적 차이점에 의해서도 교회들 간의 친교와 협력을 위한 노력 이 저해될 수 없다는 말을 하였는데,이것은 이후 WCC운동의 발전에 큰 영향 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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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정교회의 교회일치를 위한 노력은 서방교회와의 신학적인 대화 보다는 주로 '삶과 봉사'의 국면을 강조하면서,현대 교회일치 운동의 중 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그리하여 정교회 대표자들은 교회사적으로 현대 WCC운동의 전위대 역할을 한 스톡홀름(1925),로잔느(1927),옥스포드(1937),에 딘버러(1937),그리고 우트레히트(1938)대회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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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인 WCC운동과 관련해서는 제1차 암스테르담 총회시에는 지중해 연안의 그리이스,키프로스,그리고 콘스탄티노플에서 대표단을 파송하는 저조한 모습을 보였으나 1961년 뉴델리 대회부터는 비록 선전용 색체를 지닌 것이긴 해도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대규모의 러시아교회 대표단을 데리고 참여하는 적 극성을 보였다.1961년부터 1965년 사이에,모든 자치,자율 정교회들이 WCC 회 원이 되었으며,지금은 WCC 內에서 단일 교파 교회로서 가장 많은 비율을 점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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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모든 정교회가 WCC운동에 처음부터 지지를 보낸 것은 아니었다. 1961년 이전까지는 정교회 안에서 WCC의 진행방향에 대하여 적지않은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그리하여 WCC의 주요 결정사항들에 서명을 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그중에서도 특별히 1954년 에반스톤 총회 시에는 정교회 대표자 들이 따로 모여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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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발표문의 내용을 일부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우리들은 단일하고 나뉠 수 없는 옛 교회와 7개 공의회의 신앙,즉 순수하고 변화되지 않은 공동의 유산에로의 복귀만이 모든 분열 된 기독교인들이 염원하는 재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왜냐하면 공통의 믿음 안에서의 기독교인들의 일치와 공동체만이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이며 동일한 몸의 지체들로서,성례전 속에서의 그들의 공동체와 그리고 자비 안에서 떼어놓을 수없는 일치를 결과로 가질 수 있는 것 이기 때문이다.우리는 정교회만이 "예전에 성자들에게 전해진 믿음"을 충만하고도 손상됨이 없이 보존해왔다는 깊은 신념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다.그것은 우리들의 인간적 공로에 의한 것이 아 니라,하나님께서 "이 보배를 질그릇"에 보존하여 그의 "능력이 심히 큰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 는 것(이 명확해짐)"(고후4:7)을 기쁘시게 여기신 때문이다.The Orthodox Church in the Ecumenical Movement:Documents and Statements 1902-1975.ed.,by Constantine G.Patelos.WCC,Geneva,1978.pp.95-96.그러나 1961년 이후에는 그와 같은 분리 선언문을 발표하는 일은 중지하였다.T.Ware,op.cit.,p.323.
- 그리고 중대한 신학적인 문제들 을 다수결 형식으로 처리하는 일에 불만을 표시했으며,또 신학적인 토론을 희 생시키면서 사회,경제적인 문제에 너무 지나친 강조점을 두는 토론 분위기에 대하여 우려하는 심정을 표시하기도 하였다.정교회는 정기적으로 WCC의 근본 목적이 '교리적 일치에 기초하여 기독교회의 일치를 회복하기 위한 교회들의 만남의 장을 만드는데 있음'을 주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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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지난 40년동안 정교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적극적인 태도 로 임하였으며,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조오지 플로포 프스키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정교회의 공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 .......때로는 소극적일 때도 있었지만,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정교회의 역할은 괄목할만한 것이었고,때로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때도 적지 않았다.정교회는 특 별히 이 교회일치 운동이 건전한 교리적 기반을 확보할 것을 계속 강조하였으며,기독 교에 대한 서방교회들의 극단적인 해석들을 화해시킬 수 있는 견해들을 제시해왔 다......정교회의 참여로 이 에큐메니칼 운동이 단순히 범 개신교 조직체의 성격을 넘어선 그야말로 범 세계적인 보편적 교회(genuinely catholic in it's scope and spirit)의 일치운동이 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그러나 더욱 결정적인 역 할은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생활과 예배 생활에 중요한 공헌을 하게 되었고,이로 인하여 개신교를 주축으로 한 서방교회가 동방 정교회에 대하여 가졌던 불필요한 의심들을 제거시켰다는 사실이다......우리는 개신교회가 여전히 거부 반응 으로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성찬식을 중심으로 한 예배 생활에 대한 재강조를 통하여 개신교 공동체들의 가장 약한 부분들을 보강케 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해 나 갈 수 있다는 점이다
- 보다 체계적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정교회의 공헌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 1)"신앙과 직제" 위원회를 통하여 정교회의 교리와 신앙들을 나누었다
- 2)"삶과 봉사"위원회 활동을 통하여 정교회의 도덕적 사회적 개념들을 소개하였다.
- 3)교회생활에 있어서의 예배의 중요성,특히 성찬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 4)정교회 신앙생활에 있어서 특징적인 요소인 바,기독교인의 경험에 있어서 神秘的이고, 禁慾的인 개념들을 소개하였다.
- 5)進行되고 있는바 敎會一致에관하여 정교회의 神學적이고 歷史的인 側面을 소개한 사실들을 주요한 공헌으로 우리가 기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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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2.정교회의 에큐메니칼 기본방향
- 이상과 같은 자부심과 신학적 특징들을 지니고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정교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위한 기본적인 방향에 있어 서도 특징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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