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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Therapist's Third Hand:
Reflections on Art, Art Therapy, and Society at Large
by Edith Kramer
Source: American Journal of Art Therapy, Vol. 24, February 1986, pp.71~86
[원고의 요지]
Her concern is about the relationship among art, art therapy and society at large.
▶ 크레이머의 관심은 미술과 미술치료 그리고 사회 전반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She investigates conditions inherent in our highly industrialized society that affect artists, therapists, and patients alike - conditions that increasingly deprive people of opportunities for vigorous, constructive action that confirms their sense of autonomy and selfhood.
▶ 크레이머는 예술가, 치료사, 환자 모두에게 똑같이 영향을 끼치는 고도로 산업화되어 있는 이 사회에 내제되어 있는 조건들을 탐구한다. 자율성과 개인성의 감각을 확인해주는 활기에 넘치는 건설적인 행위의 기회들을 현대인들에게서 자꾸만 앗아가는 이 사회의 조건들이 무엇인지 그녀는 묻고 있다.
She discusses how the alienating effects of the modern world interfere with art therapists' capacity for empathic pictorial communication.
▶ 크레이머는 또 현대 사회에서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는 효과들이 미술치료사가 공감을 바탕으로 하여 시각적 소통을 담당하는 능력을 어떻게 방해하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She shows that art therapists are not immune to the pathology that surrounds them. She concludes with ideas on ways of training the Third Hand, and suggests that such training must include cultivating awareness of the social forces that form and deform our pictorial language.
▶ 크레이머는 미술치료사들 역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병리적인 것들에 면역성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그 점을 보여주는 예들을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제 3의 손을 훈련시키는 몇 가지 방법들을 제안한다. 그러한 훈련에는 우리의 시각적 언어를 형성하고 변형시키는 사회적 힘들을 인식할 줄 아는 능력부터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제 3의 손]
"Third Hand" is a metaphor she has coined to describe an area of the art therapist's functioning wherein artistic competence and imagination are employed in the empathic service of others.
▶ “제 3의 손”은 크레이머가 만든 은유이다. 공감을 토대로 타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 예술가적 능력과 상상력을 써야 하는 미술치료사의 기능 중 하나를 묘사하는 말이다.
To support processes whereby feelings take on visual form is a central task of art therapy. Paralleling any specific maneuvers the art therapist undertakes in the name of therapy must be the effort to enable each client to produce pictorial communications that eloquently and truthfully communicate experience - eloquent, of course, within the limitations of the client's capacities and situation.
▶ 미술치료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내담자의 감정이 시각적 형태를 갖게 되는 과정을 돕는 일이다. 각각의 내담자가 웅변적으로-물론 내담자의 능력과 상황의 한계 안에서이지만- 진실하게 경험을 소통하도록 돕는 미술치료사의 노력은 치료란 이름으로 행하게 되는 치료사의 특정 전략들과 함께 나란히 가야 하는 것이다.
To assist in processes whereby pictorial communications of very personal material become therapeutically fruitful, art therapists must cultivate special faculties.
▶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을 그림으로 그려 소통하는 것이 치료적으로 결실을 맺는 과정에 도움이 되게 하려면 미술치료사들이 특별한 능력들을 개발해 놓고 있어야 한다.
They must, to paraphrase Theodore Reik’s(1948) metaphor of the psychoanalyst’s “Third Ear”, cultivate a “Third Eye” trained to perceive the multifaceted messages that may defy translation into words.
▶ 테어도르 라이크가 말한 정신분석가의 “제 3의 귀”에 대한 은유를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하면, 미술치료사들은 말로 번역하기 어려울 수 있는 복합적인 메시지들을 감지하는 데 특별히 훈련 받은 “제 3의 눈”을 개발해야만 한다.
However, a Third Eye alone is not enough. In conjunction with this special vision, art therapists must also command a “Third Hand,” a hand that helps the creative process along without being intrusive, without distorting meaning or imposing pictorial ideas or preferences alien to the client.
▶ 그러나 제 3의 눈 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특별한 시각에 더 해 미술치료사들은 “제 3의 손”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제 3의 손은 창작 과정 내내 도움을 줄 수 있는 손을 말하는데, 그렇다고 간섭하거나 의미를 왜곡시키거나 내담자에게 낯선 아이디어나 개인적 선호를 그림에 부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The Third Hand must be capable of conducting pictorial dialogues that complement or replace verbal exchange.
▶ 제 3의 손은 말로 하는 소통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그림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Like other artists, art therapists must attain fundamental graphics, painting, and sculptural skills and understanding. But unlike other artists, who may concentrate solely on developing their own style, art therapists must learn to subordinate personal style when working with clients.
▶ 다른 미술가들처럼 미술치료사들도 그래픽, 페인팅, 조소에 대한 기본적인 기술과 이해를 갖춰놓아야 한다. 하지만 자기 스타일을 개발하는 데만 온전히 집중하면 그만인 미술가들과 달리 미술치료사들은 내담자들과 작업할 때 자신의 개인적인 스타일을 무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Thus, art therapists are free to pursue their personal artistic goals and visions when they work in their studios, but must adapt to the style and imagery of their clients or patients when they function as art therapists.
▶ 미술치료사들은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업을 할 때는 개인적인 예술적 목표와 비전들을 추구할 자유를 갖지만, 미술치료사로 기능할 때는 내담자나 환자들의 스타일과 이미저리에 스스로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The latter practice requires them to cultivate an area of artistic competence distinct from their own artistic struggles and predicaments, a conflict-free sphere wherein technical skill, pictorial imagination, ingenuity, and capacity to improvise are employed solely for empathic service to others.
▶ 그러려면 미술치료사들은 예술가로서의 고유한 몸부림과 곤궁한 상태와 구분되는 예술적 자질을 개발해놓고 있어야 한다. 공감적인 서비스를 타인들에게 제공하는 데에 미술과 관련된 전문 기술, 회화적 상상력, 독창성, 즉흥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능력들이 온전히 이용되는 갈등 없는 영역을 개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Any pictorial productions an art therapist makes in the course of a client’s art therapy must be subjected to a scrutiny based in self-discipline and self knowledge that is analogous to the scrutiny verbal therapists must exercise over their choice of words, inflections, and silences in exchanges with patients.
▶ 미술치료사가 내담자의 미술치료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시각적 작품은 말로 하는 심리치료사가 환자들과 소통할 때 단어를 선택하고 어미나 어형을 변화시키고 억양이나 어조를 주목하며 침묵의 의미를 면밀히 조사하는 것과 같이 자기 원칙과 자기 지식에 토대를 둔 철저한 검토를 필요로 한다.
Full command of the artistic medium must be combined with therapeutic integrity and self-awareness. Cultivation of both the Third Eye and the Third Hand should, then, be a major task of any art therapy training program. Further refinement of these skills must remain each art therapist’s continuing concern.
▶ 미술치료사는 치료적일 수 있는 인격적 온전함과 스스로를 파악하는 자기 인식력을 갖추어야 할 뿐 아니라 미술 재료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제 3의 눈과 제 3의 손 모두를 개발하는 것이 미술치료사를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의 주요 과제가 되어야 하며 이 기술들을 정교하게 만드는 일은 각각의 미술치료사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안이다.
The Third Hand services that do constitute intervention may entail offering the right brush or the right color at the right moment, or performing rescue actions as paint oozes or sculptures threaten to fall apart. At other times it may mean tracing a helpful line in the air or drawing a sketch on a separate piece of paper.
▶ 개입을 통해 제 3의 손이 하는 서비스는 정확한 때에 제대로 된 붓이나 올바른 색을 제공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물감이 번져 흐르거나 조각품이 무너지려고 할 때 구원의 손길을 뻗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도움이 될 것을 공중에 그리거나 다른 종이 조각에 약간의 스케치를 그려 보여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It may also mean drawing, painting, or sculpting with or for an individual. For instance, when illness or old age has deprived the client of the physical capacity to make pictures and only the act of making decisions remains as a way to exercise autonomy, the art therapist may literally have to function as the patient's auxiliary hand, that is, supply the requisite muscular strength and skill. In other instances the need for direct pictorial cooperation or intervention may arise out of some specific emotional situation.
▶ 제 3의 손은 내담자와 함께거나 내담자를 위해 드로잉이나 페인팅을 하고 조소를 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질환이나 노쇠함으로 인해 내담자가 작품을 만들 능력을 상실했다면 미술치료사는 말 그대로 환자의 또 다른 손 역할을 해야 한다. 한 마디로 작업을 위해 요구되는 근육의 힘과 기술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혹은 특정한 감정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작품을 만드는데 협력하거나 개입할 필요가 생길 수도 있다.
[제 3의 손의 성공적 사례와 실패 사례]
<Successful Intervention 1> : "난 내 자신을 볼 수 없어요"
당시 만 6살이었던 앤젤은 만 4살 반에 시립 아동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자신을 슈퍼맨이라고 생각하는 망상에 가까운 신념 때문에 스스로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행동을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입원 후 상태가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가족 상황이 안정적이지 않아서 (어머니가 가족을 버림) 앤젤은 예외적으로 아주 긴 시간 동안 입원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앤젤은 수퍼맨인 양 행동하다가 나중에는 수퍼맨과 기타 영웅들을 솜씨 있게 강박적으로 반복해 그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나이에 맞지 않게 아주 조숙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여리고 작은 다리와 발을 갖고 있어 잔뜩 부풀려진 상체 토르소를 안정적으로 지탱하지 못하고 있었다. 앤젤이 그린 인물들은 앤젤 자신의 불안정한 삶의 기반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그림 1)
내가 그 병동의 미술치료사가 되었을 때 앤젤은 하나의 의식(儀式)을 만들었다. 매번 회기가 시작될 때마다 수퍼맨이나 그가 고르는 영웅들에 특징적인 자세로 포즈를 취하면서 내게 자신의 전신을 스케치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자기라고 알아볼 수 있는 얼굴 생김새를 가져야 하되 옷이나 머리모양은 그리지 말아야 했고 땅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서 있는 인물로 그려줘야 했다. 그러고 나면 앤젤은 내 스케치를 가져가서 머리와 복장에 심혈을 기울여 그림을 완성하곤 했다. (그림 2) 자신의 바람이 실현되면 앤젤은 남은 시간 동안은 제 방식대로 작업을 할 준비가 되었고 또한 그럴 수 있었다. 내가 앤젤에게 스스로를 그렇게 잘 그릴 수 있는데 왜 내 협조가 필요한지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항변했다. "내 자신을 볼 수는 없잖아요." 내가 본 것을 그려냄으로써 그의 인물들을 땅에 발 딛게 돕고 또한 그의 존재를 내가 확인해주어야 한다는 것 같았다. 내 그림들이 마술적 변신을 꿈꾸는 그의 판타지들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변신은 마술적인 변화라기 보다는 유희로서의 변장이 되어갔다.
가족에게 버림 받아 지옥에 살고 있었던 이 아동은 말로 그러는 것보다 내 그림 한장으로 더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내 그림은 그로 하여금 실제 세계를 볼 수 있게 돕는 측면도 있었다. 일단 강박적인 자신의 필요가 만족되고 나면 앤젤은 나를 그리거나 병동의 다른 아동들이나 스텦들의 초상화를 그림으로써 나의 협조에 기꺼이 화답했고 또한 그럴 수 있었다. 앤젤은 점차 복잡한 상황들과 인물들의 관계를 그림으로 그릴 수 있게 되었는데 새로 싹튼 그 능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그림 3이다. 앤젤이 수퍼맨인 양 포즈를 취하고 있고 내가 그런 그를 그려주고 있다. 특정한 상황을 포착한 것 외에도 그 그림은 세대와 세대 간에 이어지는 영원한 관계를 상징하고 있다. 어른이 아이를 지지하고 아이는 어른들을 넘어선다. 그림 속에서 앤젤은 마치 달리기 선수처럼 내 튼실한 팔과 어깨로부터 뛰어오르고 있다. 그의 작은 얼굴은 (놀랍게도 닮았다) 굳은 결심을 한 듯 앞을 쳐다보고 있다. 어찌 보면 남자의 성기처럼도 보이는 나는 내 기능과 의무가 그러하듯 그를 위해 내 커다란 크레용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때는 아직 앤젤이 땅에 잘 안착된 인물을 그릴 수 없음을 보게 된다. 그림 속 내 다리는 무르고 좌우가 똑같지 않으며 발이 화면 밖으로 잘려 있다.
앤젤은 운영이 잘 되고 있는 아동보호소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마침내 단단한 땅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마자 그의 인물들은 땅을 잘 딛고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와의 미술치료는 계속되었지만 그는 더 이상 나보고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주문하지 않았다. 그의 요청에 늘 내가 한 발 물러나 협조했던 것이 치료적으로 적절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회기의 시작마다 내가 그렇게 하면 남은 시간만큼은 앤젤이 독립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의 요청이 병리적인 의존 상태를 보여주는 증상에 불과했다면 어떻게 해도 그것은 바뀌지 않고 남아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의 생활 상황이 더 안전해졌다 해도 말이다.
<Successful Intervention 2> : 스타일의 변화
다음의 예는 미술치료사가 의도적으로 개입을 한 경우에 해당된다. 만 10살의 프랭크는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아이였다. 그는 자신의 그림 스타일을 바꾸려고 절박하게 몸부림을 치고 있었지만 정작은 나아지는 것 없이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프랭크는 인물을 묘사하는데 여전히 어린애 같은 판에 박힌 틀을 갖고 있었고, 힘이 넘치는 아주 큰 화면을 그렸지만 늘 단순하고도 견고한 색을 입히곤 했다. 프랭크 스스로 그것이 불만이었다. 그는 좀 더 "꿈틀거리는 선들"로 그려보고 싶었고 색들에 "음영을 넣고" 싶었다. 잠재기의 후반부에 속해 있는 프랭크였다. 흔히 지적 정서적 지평이 확대되는 데 가속도가 붙는 시기이다. 그러한 발달 상황은 아동들의 그림에 잘 반영되어 나타나는데 그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공간과 깊이를 재현하는 방법들을 발견하게 되고 이전의 도식적 그림 대신 더 잘 조율된 개인적 특성들을 보여준다.
프랭크에게 있어 이러한 발달 상의 정상적인 변화는 부모와의 관계가 고통스럽게 변화되었을 때 시작되었다. 프랭크의 엄마는 그가 만 7세 때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 아버지는 버려진 아이들을 수용하는 쉼터에 프랭크를 맡겼다. 하지만 프랭크는 심각한 정서적 문제를 보여서 나중에 다시 소년들만 수용하는 윌트윅 학교로 보내졌다. 7살 때부터 프랭크는 아버지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보였다. 이후에도 아버지와는그 관계를 유지했지만 엄마는 철저하게 거부했다. 하지만 프랭크가 9살이 되었을 때 이러한 입장을 그저 고수만 할 수 없게 되었다. 금방 자기를 데리고 오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던 아버지가 일년 이상 연락도 안 되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반면에 엄마는 생활의 기반을 다시 마련한 뒤에 아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프랭크의 고집스런 거부, 심지어는 말도 섞길 싫어하는 아들의 태도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들의 신뢰를 다시 얻고자 꾸준히 노력했다.
만 10살이 되었을 때 프랭크는 그가 숭배했던 아버지가 자신이 믿었던 것처럼 그리 믿을 만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엄마도 자기가 상상했던 것처럼 그렇게 사악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 둘 다 그저 결점들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아주 좋지도 아주 나쁘지도 않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교착상태에 빠진 프랭크에게 미술치료실은 그가 내적 갈등을 행동으로 드러낼 수 있게 무대가 되어주었다. 프랭크가 도식적인 딱딱함에서 초기 사춘기의 사실주의로 이행한 것은 엄마 아빠와의 관계에서 보이는 변화의 상징이기도 했다. 프랭크는 오랫동안 유지해온 자신의 딱딱한 스타일을 더 이상은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직 제 것으로 완전히 소화하지도 못한 새로운 그림 스타일을 때가 될 때까지 그저 참고 견딜 수만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시도들을 "너무 지저분"한 것이라고 경험했다. 그렇듯 이중고에 시달리면서 프랭크는 미술실을 찢어진 도화지의 바다로 만들었다. 또 또래가 만든 작품들도 늘 그래왔듯 발작적으로 파괴시키곤 했다. 프랭크는 그 어떤 충고도 조언도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나를 아무도 돕지 않는 나쁜 선생님이라고 질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뜻깊은 오후가 찾아왔다. 회기가 시작되자마자 플애크는 로켓의 윤곽을 그리고 단단한 회색 물감으로 그것을 칠했다. 주변의 하늘은 단조로운 옅은 하늘색으로 칠했다. 다시 도식적인 단순함에 불만스러워진 프랭크는 빨강과 주황색 그리고 노랑색을 하늘에 덧칠했다. 설명하기를 로켓이 태양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곧 그 뜨거운 색들이 로켓의 몸체에까지 퍼져 들었다. 그가 뜨거운 색들을 더 칠하면 칠할수록 물감이 흘러서 로켓의 윤곽을 지워버렸다. 프랭크는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태양때문에 내 로켓이 녹고 있어요." 나는 그의 스트레스에 곧장 행동으로 반응했다. 걸쭉한 흰색 물감을 붓에 가득 묻혀 로켓의 윤곽선을 따라 다시 칠했고 백그라운드의 상당 부분을 회복시켜준 것이다. 이제 하늘과 로켓이 구분되어 보였다. 이 때 프랭크가 내 손에서 붓을 뺏어 들더니 내 딱딱한 흰색 아우트라인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로켓을 없애버릴 위험에 처해 있던 주황과 노랑색을 다시 세련되게 다듬었다. 그러고 나니 그 색들이 로켓의 빛나는 표면에 반사된 태양빛처럼 보였다. 검정, 회색, 회색의 음영이 반들반들한 로켓의 금속을 보여주는 것으로 변했고, 그것의 표면이 하늘을 덮어버린 멀리 있는 큰 불을 반영하도록 가까스로 그림을 고칠 수 있었다. 차가운 하늘색 하늘을 넓게 펴서 태양과 로켓을 분리한 것도 눈에 잘 띄었다.
프랭크는 잔뜩 고양되었다. 마침내 "다 자란" 아이의 그림을 성공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스스로 돌파구를 찾은 게 분명했다. 그 날 오후에 획득한 것들을 프랭크는 이후에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그의 색깔들은 더 잘 조율되었고, 그의 선들은 더 부드러워졌으며, 사람들도 관찰에 근거하여 특성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프랭크는 자신을 화가라고 여기게 되었다. 동시에 엄마도 더 잘 받아들이게 되었다.
프랭크의 아빠는 1년의 공백 뒤에 프랭크의 삶에 재등장했다. 세 사람이 화해를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프랭크의 부모는 서로 협력하여 아들에게 보다 적절한 거처를 찾아주었다. 부모의 이혼을 좀 더 잘 받아들이게 된 프랭크는 새로운 집에도 적응을 잘 했다. 미술작업에서 얻은 그의 자신감이 학교와 새로운 위탁가정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다.
<Successful Intervention 3> : 뿔을 단 커다란 올빼미의 탄생
크리스토퍼는 혼인 외 관계에서 임신이 되어 미숙아 상태로 태어난 아이다. 날 때부터 시력이 심하게 손상되어 초기 5년 동안은 -아주 조금의 빛 지각은 가능했지만- 그나마 볼 수 있었던 것들이 점점 상실되는 불운을 겪었다. 엄마가 출산 후 병원에 버리고 가서 크리스토퍼는 위탁 기관에서 자라야만 했다.
만 13살 때 크리스토퍼는 조소를 하는 데 열정과 재능을 보였다. 사람은 한번도 만들지 않았고 늘 야생동물들과 새들을 즐겨 만들었다. 크리스토퍼는 아주 뛰어난 촉감각과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 집에서 기르는 동물들과 새들 그리고 어린이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을 만져보면 다 알았고, 그것들을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 소조로 만들어냈다.
만져본 적 없는 야생동물들을 조소 작품으로 만들고 싶어할 때는 내가 크리스토퍼에게 그 동물이 어떤 가축 종에 속하는지 말해줌으로써 그것의 모양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 내가 직접 작은 모형을 찰흙으로 만들어 그에게 익숙한 길들여진 동물들과 그가 만들고 싶어하는 야생의 것들 간의 차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내가 만든 모형을 손으로 "본" 뒤에 그는 내 작품을 단순히 도용하려는 유혹을 스스로 떨쳐버리기 위해 내 모형을 곧장 으깨놓곤 했다.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기도 했고, 내 작품을 도용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 여기면서 화가 나서 그런 것이기도 했다.
어느날 그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올빼미를 좋아한다고 하니 크리스토퍼는 선생님께 선물하겠다고 뿔을 단 커다란 올빼미를 만들려고 했다. 그렇게 하려면 크리스토퍼로선 평소보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카나리아, 앵무새, 오리, 거위 등은 만져봤지만 올빼미는 한 번도 만져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를 위해 작은 올빼미를 만들어주었다. 이번에는 크리스토퍼가 내 모형을 곧바로 짓이겨버릴 수가 없었다. 그것을 갖고 있으면서 자기 작품에 절충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는 커다란 엄마 올빼미를 만들었다. 그러면 내 작은 올빼미를 아기로 만들어 갖고 있을 수 있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그는 적절한 절차를 따라 튼실한 올빼미의 몸통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애기 올빼미가 엄마보다 먼저 태어났다는 생각에 즐거워하면서 말이다.
몇 회기가 진행되는 동안 크리스토퍼는 엄마의 몸통을 만들었다. 애기 올빼미는 엄마 올빼미의 다리 아래 내내 놓여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크리스토퍼는 마음을 바꾸었다. 작은 올빼미가 없어져도 내가 신경쓰지 않기를 바라면서 자기 올빼미가 남자여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애기새를 집어 찰흙 덩이를 만들어 놓고는 그것을 이용하여 자기 올빼미의 머리를 키우고 뿔 두 개를 만들었다. 크리스토퍼는 소나 양과 같은 가축의 뿔처럼 올빼미의 뿔도 단단하고 실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마침내 크리스토퍼는 조심스럽게 올빼미의 눈을 만들었다. (그림 4) 크리스토퍼로선 처음으로 분명하게 구현된 눈을 가진 생물체를 만든 것이었다.
올빼미의 시각적 특성은 크리스토퍼의 상태를 말해주는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다. 크리스토퍼가 올빼미에 눈을 달아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대낮에는 무력한 장님인 올빼미가 밤에는 놀라운 시력을 갖고 있지 않은가. 결코 실현될 수는 없지만 크리스토퍼의 보고자 하는 열망을 상징하는 올빼미였다. 동시에 그것은 실제 맹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표현이기도 했다. 크리스토퍼는 그것이 수컷이라고 선언했지만 겉모습은 수컷과 거리가 멀었다. 그가 만든 올빼미는 사춘기에 막 접어든 소년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선생님께 드리는 선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몇 주에 걸쳐 크리스토퍼의 조각품이 거쳐간 변형은 여러 복합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 과정에서 내가 기여한 작은 올빼미 모형이 몇 가지 기능을 담당했다. 처음에는 작업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고, 그 다음에는 엄마 새를 위한 모델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다시 거꾸로 크리스토퍼의 올빼미와 결합함으로써 그의 마음 속에 상냥한 엄마-아기 관계의 이미지(크리스토퍼가 친모와 경험해보지 못한 것)를 구성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때는 내 조각품이 아기 크리스토퍼를 대변했다. (아마도 '내가' 만든 아기 올빼미가 그 자신이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 아기 올빼미보다 어린 크리스토퍼의 상징으로 더 잘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마지막 변형에서는 나의 아기새와 크리스토퍼의 엄마새로 만들어진 한쌍이 뒤섞여 한 마리의 다 자란 남자 올빼미가 만들어졌다. 내가 기여한 부분이 그의 작품 속에 완전히 흡수되어 다시 탄생한 것이다. 당시 내 도움은 크리스토퍼의 유아적 의존성을 이끌어내지 않았다. 도리어 크리스토퍼가 그러한 상태를 뛰어넘게 도왔다. 거대한 뿔을 가진 올빼미를 만들어내겠다는 그의 목표에 부합하게 말이다.
그로 인해 더 나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면 스스로 애기 올빼미를 만들어서 엄마-아기 한 쌍을 그 자신의 작품으로 온전히 만들었을까? 이런 추측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활기에 넘치는 창조적인 작품으로 결과된 한 사람의 자발적인 결정은 그 순간에 접근 가능한 내면의 진실을 안고 있기에 그렇게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앞으로도 크리스토퍼의 존재에 중심이 되는 드라마는-그의 장애, 엄마의 보살핌이 없는 상황, 쉽게 상처 받는 자기 감각 등- 우리가 함께 하게 될 작업들 속에서 여러 다양한 모습들로 변장하여 나타날 것이다.
다음의 사례 4, 5는 뉴욕시 브롱크스의 링컨 낮병동에서 미술치료사 베라 질저가 경험한 것이다. 질저는 자칭 "작은 변화들"을 이끌어내는 미술치료를 하고 있다. 환자들이 자신들의 개념과 열망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 경우 미술치료사가 조금이라도 작품에 기여하는 바가 없으면 그러한 작품에 도달할 수 없다고 질저는 생각한다. 물론 환자의 드로잉 스타일 혹은, 질러의 표현을 빌리면, 각 사람의 "육필"을 따라 기여해야 한다. 그러한 기여는 환자가 쉽게 동화될 수 있도록 미세해야 하고 자칫 비판처럼 느껴지지 않아야 한다.
미술치료 회기는 넓은 작업실에서 매일 열렸다. 어떨 때는 12명이나 되는 환자들이 와서 나란히 앉아 작업을 하곤 했다. 미술치료 그룹은 아니고 미술에 대한 공통된 관심을 가진 개개인이 모인 시간이다. 각 사람은 매번 주제와 미술재료를 마음대로 정한다. 미술치료사는 각 환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 다양한 미술재료들이 상비되어 있는데 질저는 그 중에서도 색연필이 대부분의 자기 환자들에게 잘 맞는 재료임을 발견했다. 색연필은 환자들이 제각각 응용해서 써야 하지만 기술이 없는 환자가 사용할 때도 여러 색을 겹쳐 칠했을 때 명확히 서로 구분되는 색의 효과를 주기 때문에 보완적인 재료로 평가된다. 이러한 효과는 크레용이나 파스텔로는 얻을 수 없는 효과이다. 또한 색연필은 수채 템페라로 작업을 할 때 뒤따르는 통제의 어려움도 피하게 해준다.
<Successgul Intervention 4> : 불새 날다
20대에 발병한 정신분열증을 지금까지 앓고 있는 아담은 본인의 집에서 살면서 낮병동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고 있다. 몇 시간동안 아담은 검은 날개를 가지고 푸른 하늘을 높이 나르는 커다란 금갈색 새를 색연필로 열심히 그렸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불새라고 한다. 그러나 새의 날개가 종이의 끝에 거의 닿고 있어서 그 새는 움직임에 구속을 받는 듯 보인다. 비상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다. 게다가 그 새의 꼬리는 화면 밖으로 완전히 잘려 나가 있다. (그림 5)
질저는 아담이 완성한 그림을 보고 "이것에 액자를 만들어줍시다."라고 제안을 했다. 질저는 그 그림을 재빨리 커다란 흰색 판지에 스테이플로 고정시켰다. 그런 다음 부드러운 납연필로 액자가 된 흰 종이에 희미하게 꼬리 윤곽을 그렸다. 새의 몸체와 날개의 곡선 형태를 그대로 따라 조화로운 꼬리가 만들어졌다. 질저는 다시 아담에게 그림을 돌려주었다. 질러의 드로잉은 아주 희미해서 질저의 제안이 맘에 들지 않았다면 아담은 그 선들을 무시해버리거나 쉽게 지울 수가 있었다. 그런데 아담은 질저가 첨부한 제안을 자기 그림에 통합시키기로 한 것 같았다. 그는 몸체와 같은 갈색으로 꼬리를 힘있게 칠하고 나서 하늘에 칠했던 하늘색을 하얀 종이의 나머지 부분에 칠했다. 그 덕분에 액자는 사라졌지만 확장된 하늘이 전체로 온전해 보이고 진정으로 날고 있는 듯 보이는 불새에게 숨쉴 공간을 주도록 그림이 변했다. (그림 6) 그러고 있는 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메시지는 전달되었고 작품 속에 잘 통합되었다.
아담은 재탄생과 해방의 이미지를 창조한 셈이다. 실제 삶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상징이다. 아담처럼 새는 어디든 내려와 쉬게 만드는 두 다리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새의 배 아래 작게 돌출된 두 개의 모양은 발톱을 재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질저는 그림이건 말로써건 그 새가 땅에 내려와야 한다는 암시를 조금도 하지 않았다. 현명한 처사였다. 하지만 비상의 상징조차도 그림 속에서 제대로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만약 질저가 새에 꼬리가 없다든지 날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아담에게 말했다면 그녀가 아무리 적절한 도움을 주었더라도 아담으로 하여금 자신이 얼마나 고약한 장애를 갖고 있는지 그래서 이렇게 삶에 묶여 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직면시켰을 수 있다. 그런 직면은 그가 견딜 수 있는 것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애초의 그림을 단순히 받아들이고 칭찬이나 하고 말았다면 미술치료사를 포함해 그 누구도 그에게서 어떤 변화도 기대하지 않고 있으며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있다고 말하는 셈이 되었을 것이다. 대화없이도 변화로 통합될 수 있을 어떤 지지법을 찾아야만 했다. 언어 이전의 것, 본질적으로 공생적인 수준의 지지가 될 것, 그러나 실제로 공생해버리는 의존성은 만들지 않는 그런 지지 말이다. 이 점에서 질러는 성공했다고 본다.
아담이 그 날 맛본 것과 같은 경험은 만성 환자에게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그러나 정신분열증 환자가 항상 상징과 판타지의 세계에 살고 있는 한 재탄생의 상징적 경험은 차도를 보이게 하고 제한된 그의 존재방식에 좀 더 실체적인 것을 안겨줄 수 있다.
<Successgul Intervention 5>: 쉴 곳
스미쓰 부인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중년의 흑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다 자란 세 명의 아이들이 있었지만 더 이상 같이 살고 있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극도로 고립된 상태에서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존엄성을 되살릴 필요를 크게 느다. 그래서 더 잘 치장하고 옷도 더 잘 입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검은 피부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그래서 늘 하얀 피부에 파란 눈을 가진 예쁘게 생긴 백인 여성을 그리곤 했다. 결고 획득할 수 없는 그녀의 방어적인 이상적 자아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미지는 그녀에게 실제로는 위로가 되지 못했다. 어느날 그녀는 그녀와 세 아이들이 해변가에 있는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자신이 풀밭에 편안히 있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는데 몸이 땅에 닿게 그리질 못해 그녀가 부유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담과 달리 그녀는 도움을 요청할 줄 몰랐다. 질저는 그림 속 그녀의 부유하는 몸을 받쳐줄 작은 벤치의 윤곽선을 덧붙여 줬다. 그에 힘을 입어 스미쓰 부인은 그림을 완성시켰다. (그림 7) 나아가 자신과 아이들에게 검은 색 피부를 칠해주기까지 했다. 이 시점에 질저는 한 번 더 개입했다. 스미쓰 부인이 검은 갈색 색연필을 고르자 그와 함께 쓰일 주황색 색연필을 그녀에게 주었다. 두 색의 혼합은 스미쓰 부인의 피부색이 금빛으로 빛나게 도왔다.
스미쓰 부인의 "육필"과 관련하여 그리고 그녀의 발달적 수준과 같이 갈 수 있도록 질저는 다시 개입을 시도했다. 지면을 올려서 몸이 곧장 풀밭에 놓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실 환자가 회화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을 넘어서는 기교다. 물론 가구 하나를 더 첨가해서 통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완성된 그림은 여전히 고립과 우울감을 풍기고 있었다. 세 아이들은 한 쪽에서 여전히 공중에 떠 있는 듯 보였다. 현명하게도 질저는 그들을 안착시키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대신 왼편에 (세 아이들의 상징적 이미지로서) 꽃 세 개를 나란히 그려 넣었다. 그러나 나무와 떨어져 있으니 분리되어 있는 듯 보였고, 엄마처럼 고립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질저는 엄마 곁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땅에 잘 안착된 검은 고양이를 하나 더 그려 넣었다. 그리고 엄마의 머리 위에 커다란 검은 새가 날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그럼에도 어둠의 힘이 여전히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경직되어 보였고 그들 사이에는 아직 상호작용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소한 거기에는 스미쓰 부인이 쉴 곳이 있었다. 자신의 갈망과 열망에 형태를 주는 화면이라는 공간이 있었다.
<Failures in Intervention 1> : 공감을 잘 못한 경우
종종 의도된 맨트, 예술가의 자기애적 성향, 역전이 등이 미술치료사의 올바른 임상 판단에 먹구름을 끼게 한다. 다음은 위와 달리 미술치료사가 개입에 실패한 경우들이다.
왓슨씨는 훌륭한 화가에 조각가이자 도안가이며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등록된 간호사이다. 그는 성숙한 나이가 되었을 때 미술치료사라는 새 직업을 갖게 되었다. 정신병원의 낮병동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왓슨씨는 예술적으로 재능이 뛰어난 존스씨란 환자를 담당하게 되었다. 존스씨는 안으로 위축되어 정서가 불안한 젊은이였는데, 대신 미술 영역에서는 놀라운 고기능을 유지하고 있었다. 미술치료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던 왓슨씨는 그에게 생활 상을 스케치해보라고 권유했다. 스케치는 현실에의 접근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다른 환자들과의 접촉도 늘리는 한 방법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서 힘을 받은 존스씨는 아주 섬세하고 부드러운 드로잉들을 그려냈다. (그림 8) 그러나 그는 아직 일관된 공간 구성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의 작품들은 모두 선화들이어서 양감이나 무게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환자의 불안정함과 자신감의 부족을 보고 왓슨씨는 어떻게든 그를 지지해주려고 최선을 다 했다. 어느 날 존스씨가 그림을 그리면서 도움을 요청하자 그에 반응하여 왓슨씨는 자기 스타일 그대로 강한 선이 두드러진 스케치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그 속에서 양감과 질감도 강조했다. (그림 9) 환자의 섬세한 선화 스타일에 제 스타일을 적용해버리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존스씨가 바로 위축되었다. 왓슨씨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고 실망했다. 자기가 제공한 것을 그가 무시하는 것 같았다. 왓슨씨의 드로잉 실력이 존스씨와 같은 재능있는 환자와 작업해야 하는 도전에 적합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새 직업에서 요구되는 자제심과 공감하는 마음을 먼저 배웠어야 했다. 그의 예술가로서의 삶이나 간호사로서의 경력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에 완전히 자신을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화가로서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시각을 구축해야만 했고, 간호사로서는 환자로부터 협조와 존경을 요구하는 데 익숙해 있었다. 왓슨씨는 존스씨가 자신의 것과 너무 다른 왓슨씨의 그림을 자신에게 힘을 빌려주고 자신을 지지해주려는 시도라고 여기는 대신 비판과 거부로 느겼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독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덧붙인다면, 왓슨씨는 환자를 지지하는 것과 그에게 힘을 행사하는 것 간의 차이를 조만간 터득했다.)
<Failures in Intervention 2 : 역전이가 일어난 경우
버려진 아동 및 청소년들을 위한 보육기관에서 미술치료 프로그램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 나는 당시 만 16세였던 매튜를 다시 만나 너무 기뻤다. 매튜는 그 이전에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소년들을 보살피는 기관에 거주했고 거기서 나는 그가 만 9살에서 13살이 될 때까지 5년동안 그와 함께 작업을 했다. 그래서 나는 매튜를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그곳을 떠나야 했을 때 매튜는 여전히 거기에 남아 있었다. 그림에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스스로를 잘 컨트롤하는 아주 지적인 소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처음 만났을 때 매튜는 만 9살이었다. 당시에 그는 자신의 심리상황을 반영하며 설사와 똥을 지르는 문제를 심하게 겪고 있었다. 그로 인해 그 곳 아이들 사이에서 외톨이로 지내야 했는데 일년 쯤 지나자 증상들이 완화되어 곧 또래들 사이에서 존경 받는 아이가 되었다.
9살 때 매튜의 그림은 두 가지로 분류되었다. 강박적으로 뭐든 정확하게 그리는 연필화와 (물고기와 총들을 주로 그렸다) 물감이 서로 번져 형태를 알 수 없는 추상화가 그것이었다. 물감으로 하는 형태 없는 실험작들 중 하나에서 그와 내가 푸른 녹색의 바다와 물고기라고 볼 수 있는 어떤 것을 같이 "봤을" 때 그의 작업에 변화가 일어났다. 늘 그랬듯 줄줄 흐르는 물감으로 범벅이 된 도화지를 그냥 버리는 대신 매튜는 그 물고기를 분명하게 보이게 손을 대기 시작했다. 곧 이어 그는 총천연색의 바닷속 그림을 그려냈다. 그 때부터 매튜는 놀랍도록 물감을 잘 활용했다. 색과 형태의 균형을 잘 유지하며 전처럼 위축되는 일 없이 물감을 잘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그 기관을 떠날 때 그는 그림을 아주 열심히 그리는 화가였다.
다시 만났을 때 매튜는 어느새 추상화가가 되어 있었고 자신의 비재현적인 색구성 그림들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나는 실망해서 그에게 구상그림을 좀 더 그려볼 것을 제안하느라 열심이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런 그를 보는 것이 괴로웠던 데는 내게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이성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이유 하나는 9살 때 변을 지르는 데 문제가 있었던 그와 그가 늘 망쳐 놓곤 했던 서로 번지는 물감 그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구상적인 형태를 통해 마구잡이로 색을 썼던 것이 스스로 단련되고 통제되었던 후가의 이로운 변화들을 떠올리면 그 때의 그 그림들은 너무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감정이 이유가 된 것도 있다. 나 자신이 구상작가라서 당시 추상화가 대세였음에도 나는 내 스타일을 계속 고집했다. 나는 매튜를 희생시켜 내 자신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셈이다. 어쩌면 옛날 그 곳에서의 내 위치를 차지해 매튜의 스타일에 영향을 끼친 새로운 미술 선생을 질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유는, 아동과 사춘기 초기의 소년 소녀들과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 문제이다. 수년 동안 그들과 일해왔기 때문에 나는 그 나이 대의 아동들에 익숙했고, 청소년들과 작업을 시작한 것은 최근 일이었다. 이 모든 요인들이 내가 매튜에게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게 방해했고 나로 하여금 치료적 판단을 올바르게 하지 못하게 했다.
매튜는 내가 그의 추상화들을 거부했다고 느껴 화가 났고 내게 실망했다. 그는 미술실에 더 이상 오지 않았는데 너무 늦지 않게 내 파괴적인 행동을 인식해서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깨닫지 않았다면 나는 자칫 그를 영원히 놓쳤을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나는 매튜의 색구성 작품이 공격적인 번지기도 아니고 의미 없이 서로 침범할 뿐인 디자인도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정서적인 표현이자 그만의 비밀스러움이었고 구상화로는 담아낼 수 없는 미묘한 내용의 표현들이었다. 나는 내가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으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서적 혼란과 성적 충동을 가진 청소년을 내게 익숙한 10대 초반의 아동으로 바꿔놓고 싶어했던 것이다. 나는 내 편협한 선입견을 인정하면서 그에게 사과를 했다. 얼마 후 나는 그의 추상적인 구성화에 드러난 매튜의 굴곡 심한 기분 변화를 치료 중에 바라보고 다룰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그림들이 주는 효과가 완전히 색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흑백의 인쇄물에는 예시 그림을 담을 수가 없어 안타깝다.
<인쇄 가능하며, 사용시 출처를 <박승숙미술치료연구소> 네이버 까페 http://cafe.naver.com/arttherapywithpark 로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본 원고의 전문 중 초반부 일부는 원문장과 함께 요지만 번역, 제 3의 손의 성공 및 실패 사례 부분은 원문 없이 전체 번역했고 p.72-79에 해당합니다. 박승숙이 번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