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5. 주일. 창4:23.24. 칼의 노래.
성경에는 많은 시들이 나오죠?
시편, 아가서 같은 경우는 모두가 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학창시절 좋은 시를 외우는데 열심을 낸 일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고전 현대 시들을 몇 편들은 기억에 남습니다.
시와 노래는 인간정서에 매우 큰 영향을 줍니다.
역사적 혁명의 발단 - 시와 노래, 문학작품에서 발단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본문은 성경최초의 시이자 인류의 첫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대구와 운율을 가진 시입니다.
(대구법 - 비슷한 문장, 구조, 어조, 어세를 짝을 지어서 표현하는 수사법)
EX)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김소월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들에는 반짝이는 금 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사람은 감정이 있기 때문에 좋은 시나 동요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게 되어있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학창시절에 한 번쯤은 문학소녀나 문학 소년이 되어 있었던 때가 있을 겁니다.
중학교 입학 때 교과서 중에 사전크기 만한 애창곡집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책에는 여러 가지 명곡들이 실려 있어서 참으로 열심히 불렀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추억을 뒤로하고 오늘은 성경의 첫 시를 대하면서 슬픔과 탄식이 나오며 어쩌면 인간의 심성이 이렇게 악할 수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23절 -
A 아다와 씰라여 - 아다 웨칠라
B 내 소리를 들으라 - 쉐마안 콜리
A'라멕의 아내들이여 - 네쉐 레메크
B'내 말을 들으라 - 하젠나 이라티
C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 키...레피츠이
D내가 사람을 죽였고 - 이쉬 하라그티
C'나의 상함으로 말미암
D'소년을 죽였도다
E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 육캄 카인
F칠배 일진대 - 키 쉬브아타임
E'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 웰 레메크
F'칠십칠배 이로다 - 쉬브임 웨시브아
히브리시의 2박자 운율은 심장박동이나 호흡과 일치하며 걸음걸이의 기본리듬입니다.
행진곡에 주로 사용하며 고대인들이 사냥이나 전쟁에 나갈 때 부르는 노래가사입니다.
라멕은 두 아내를 두었다고 했는데 하나님은 원래 일부일처제를 만드셨는데 인간들이 변질되어서 다처제를 만들었고 후에는 거리낌 없이 여러 처를 두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 시조가 라멕이었습니다.
아내들에게 이르되 ~~
자신의 두 아내를 향해 호기를 부려가며 부른 노래인데 시형식은 참 좋았지만 글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생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자신의 힘으로 상대방을 잔인하게 헤치겠다는 피의 복수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최초의 시가 ‘칼의 노래’로 불리워진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첫 번째 시가 이처럼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깊이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술은 우리 인간들에게 위대한 영향을 줍니다.
문화는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므로 전쟁에서 이겨 나라를 빼앗으면 먼저 문화와 종교를 투입시키는 것입니다. 음식문화 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끌려가서 각종 산해진미를 제공 받았으나 그 나라의 음식을 거부하고 금식하며 기도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놈들이 우리나라를 지배할 때 각종문화를 심어놓아서 지금도 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한 두 가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술을 만드신 것이나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 아닙니까?
사43:21 -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데 그 소중한 예술이 자칫 잘못하면 인간의 악을 조장하는 그릇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게 됩니다.
4:23 - 라멕의 노래는 자신의 아내들의 이름을 부르며 시작하죠.
‘아다와 씰라’란 이름에 이어 ‘라멕의 아내들’이란 말을 거듭 쓰면서 두 여자가 자기의 아내임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라멕은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두 아내를 만들어 결혼의 신성함을 파괴하였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죄를 지었으나 본문을 보면
그 행위가 더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들에게 자신의 죄악 됨을 과시하는 패역한 자가 된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가인이 살인을 저질렀으나 라멕은 결혼질서 파괴 문화파괴의 죄를 짓는 등 점점 더 죄가 커지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모습이 몇 구절의 본문을 살펴보더라도 점점 가중됨을 알게 됩니다.
더 설명을 하지 않겠습니만 라멕은 사랑의 대상인 아내들에게도 거만함과 위엄을 내세우는 못된 인간이었습니다.
가인과 라멕은 인본주의 대명사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났지만 그들의 육신의 삶은 더 좋아졌고 풍부했고 온갖 문화를 누리는 세상적인 행복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예수를 모르는 부자사람들 보세요. 의,식,주 의 삶이 화려합니다.
서민들의 삶과는 극과 극입니다.
후진국들도 보면 극과 극이더군요
파키스탄 같은 나라를 보면 부자 층들은 서민들과는 상대를 안 하더군요. 노는 곳도 다르고 언어도 그들은 영어를 쓰는 등 구별이 심하더라구요..
하나님은 죄의 타락된 가인의 후예들에게도 풍성한 삶을 살도록 배려해 주시고 사랑을 주셨건만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뜻과는 점점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육신의 정욕이 가득한 삶에서 거룩한 영적 욕구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현대인들의 삶도 얼마나 풍성해졌습니까?
각종 최첨단의 문화혜택은 누리고 있으나 세상은 점점 더 타락되어져 가고 있을 뿐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육신의 정욕이 아니라 거룩한 영적욕구를 가져야 합니다.즉 우리는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심으로 자신의 피로 우리를 자신의 신부로 값 주시고 사신 신랑 되신 예수그리스도와 날마다 연합하는 거룩한 욕구를 가져야 됩니다.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을 가꾸며 사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외적인 아름다움보다 내적인 아름다움에 더욱 신경을 쓰고 가꿔서 은은한 매력을 발산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존귀와 사랑과 자비와 온유와 경건, 그리고 영적 능력을 드러내어서 세상인 들로부터 호감을 갖게 해야 합니다.
나를 통하여 불신자들이 예수를 영접하는 계기가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 모든 믿는 성도들이 이러한 거룩한 욕구가 있기를 바랍니다.
롬13:13-14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벧전3:3-4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아운 옷을 입은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을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4:23 -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상처, 상함 모두 같은 말로써 비슷한 말을 두 번 반복한 것은 리듬감을 살려서 흥을 돋우기 위함이며 인간의 살상을 주제로 노래한 것입니다.
살인사건을 노래한다?
완전 악하고 미치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 없죠?
현대 같으면 맨 정신으로 못하니까 술이나 마약의 힘을 빌려서 하는 짓입니다.
만일 유명가수가 “내가 사람을 죽였어 나를 다치게 해서 열 받아서 그 사람을 죽였어” 노래하면서 래퍼가 이 내용을 계속 반복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게 될 말입니까? 말도 안 되죠? 세상이 발칵 뒤집힐 겁니다.
그런데 그런 노래를 서슴없이 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흥을 높여가며 신나게 노래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죄는 거듭할수록 끔찍함만 계속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악인들의 특성은 악한 행동들을 무용담으로 자랑합니다. 자기들의 죄악을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자랑하듯 말합니다.
사실 자신을 다치게 한 사람을 죽인 라멕의 살인행위는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엄청난 죄악입니다.
23절 -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우리말에는 죽였다 라는 표현이 두 번 나오나 원문에는 단 한번 나옵니다.
죽인다(하라그) - 구약에 170번 나옵니다. - 동물이나 식물을 소멸경우에도 사용합니다.
그러나 희생제물을 드리기 위한 도살은 - 솨하트
사람을 죽이는 행동은 - 라차흐
여기서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서습 없이 무자비한 살상행위나 전쟁과 같은 대량살육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는 데 충격을 느낍니다.
요즘 식으로 묻지 마 폭행, 묻지 마 살인행위들을 저지른 겁니다.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큰 소리 치며 사용했다는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24절은 보면 더 가관입니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 찐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칠배의 표현은 15절에도 나오죠.
라멕은 하나님의 말씀을 일차적으로 인용한 후 더 나아가 자신을 해치는 자에게 칠십칠배 (쉬브임 웨쉬브아) 의 벌이 주어질 것을 말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왜곡하는 잘 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죄 없는 동생을 죽인 가인을 헤 꼬지 하는 자에게는 7배의 벌이 내려진다면 해를 가한 자를 죽인 자신에게 복수하려는 자에게는 77배의 벌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노래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신 보호를 잔인한 복수의 논리고 바꿔 버리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를 자초하고 있습니다.
원문- 쉬(שׁ)로 시작하는 단어를 3번 사용하는데 이것은 노래를 더욱 신나게 표현하는 방법입니다.(쉬브아타임-7배. 쉬브임- 70배. 웨쉬브라-7배)
이게 신나는 노래내용입니까?
어째서 사람을 죽였다는 내용이 흥이 나는 노래입니까?
아담과 하와 - 가인살인 -라멕의 피의노래 - 죄의 빠른 확산과 더불어 인간마음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잔혹한 복수심에 실로 놀라운 전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시52:1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약4:16 -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 무시하는 삶을 살면서 온갖 죄를 저질렀어도 회개할 줄 모르는 인간들의 방종은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당시 죄악 된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쾌락의 삶이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여겼을 겁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면서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 죄악이 극성을 부리게 되죠. 결국 하나님의 선포가 이뤄집니다.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면서
사람의 수명을 120년으로 제한하게 됩니다.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을 하신 하나님은 결국 노아의 가족들을 제외하곤 모든 세상을 것들을 멸망시키고 맙니다.
사단의 칼이 세월이 가면 갈수록 춤을 추는 현세에 사람들을 정신을 못 차리고 그들의 춤에 넋을 잃고 흥청대며 살아가고 있음을 우리는 절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 곳곳에 교묘히 스며들어 우리의 영적의 삶에 타락을 부추기는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
곧 영적 노아의 홍수가 닥쳐올 겁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이 이르기 전에 우리는 깨어 있는 삶을 살면서
주님의 품안에서 바른 영적인 삶을 살아서 주님이 다시 오심을 대비하는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