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것
72 시간
▶ 방송 : 2009년 8월 29일 (토) 밤 9시 40분, KBS 1TV
▶ EP : 김재연
▶ CP : 오강선
▶ PD : 윤성도
▶ 글 ? 구성 : 김정은
▶ 같은 세상을 다르게 살다 -도시 속 ‘성미산 마을 공동체’
옆집 사람 얼굴도 모르고 산다는 요즘 도시 사람들. 나만, 내 가족만이 삶의 범위였던 사람들에게 조금 놀라운 동네가 있다. 행정 구역도 경계도 없는 이 마을은,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성미산 일대 주민들이 생활하는 생태 공동체다. 마을 사람들은 가족 같은 이웃으로 살아간다. 아이 손잡고 장보러 길을 나서면 ‘가을!’, ‘풀잎!’하고 이름 대신 별칭을 부르며 반갑게 인사하는 주민들을 만난다. 생협에 들러 유기농 과일이며, 화장품을 사고 나면, 아이 손에 이끌려 되살림 가게로 간다. 헌 옷이지만 깨끗하게 고친 바지와, 장난감을 산다. 그래도 다 합쳐 천 원이니 부담이 없다. 반찬가게에도 들러 예약해 뒀던 반찬을 받는다. 동네 카페를 지나자니,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던 동네 엄마들이 어서 오라 부른다.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새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녀가 오늘 들른 곳은 모두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장소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주민들을 만나는, 매일 얼굴을 보는 가족처럼 느껴지는 동네. 도심 속 정겨운 시골 같은 마을- 성미산 공동체를 찾아간다.
▶ 연예인 이름보다 꽃 이름을 더 많이 아는 아이들
-매일 오전, 성미산 마을 아이들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대신 성미산에 오른다. 딱딱한 포장길이 아닌 폭신한 흙길을 밟으며 걷는다. 사방에 핀 꽃을 보며 저 꽃은 무슨 꽃이냐, ‘달개비다’ ‘아카시아다’, 소녀시대 누나들 이름보다 꽃 이름을 더 줄줄 말한다. 아카시아 줄기로 구불구불 머리를 말고 뛰어가다, 우연히 발견한 꽃매미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뭘 해도 즐겁고 신기하기만 하다. TV보다 컴퓨터 게임보다, 이렇게 자연 속에 뛰어 노는 것이 좋은 아이들이다.
“생명에 대한 것도, 꽃매미 보듯이...자연과 함께 살면서 호흡하는 게 중요하죠. 이렇게 호흡하면서 살아가는 과정들이 아이들에게 필요하거든요.”
=김민정, 어린이집 선생님=
▶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부모들
-성미산 공동체는 90년대 중반, 육아를 고민하던 학부모 30여 쌍이 세운 공동 육아 어린이집이 모태가 됐다. 부모들이 직접 참여한 공동 육아 어린이집은 갈수록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어 현재 4곳으로 늘어난 상태다. 그냥 내 집에서 키워도 되고, 좋은 교육 시설에 보낼 수도 있을 텐데. 부모들은 왜 직접 어린이집을 세워가면서까지 공동 육아를 시작했을까?
“일반 어린이집은 부모들하고 교사들이 같이, 애들을 같이 키우는 개념은 아니잖아요. 여긴 부모가 협동하는 보육 시설이고요. 부모도, 교사도 서로 서로 같이 일하는 거죠.”
=차광영(40세), 학부모=
“저희는 일등을 가르치지 않아요. 아이들이 같이 갈 수 있게, 천천히 가더라도 모두 함께 즐겁게, 마음을 나누면서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박민영(31세), 어린이집 선생님=
-공동 육아로 큰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갈 무렵, 성미산 마을에는 12년제 대안 학교인 ‘성미산 학교’도 생겼다. 입시 위주의 공교육이 아닌 자발적인 학습을 중시하는 교육 공동체다. 유난히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은 욕심도 버린 학부형들.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하루 종일 영어, 수학을 공부할 때 빵 반죽을 하고, 도서관에서 자유로이 책을 읽는 학생들.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그들에게 불안감은 없을까.
“아이들이 일류대에 가는 걸 포기하거나, 더 늦게 가길 원한다면 그럴 수도 있는 거고. 이런 부분을 열린 마음으로 보니까 많은 것들이 자유스러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성미산 학교를 보냈어요. 믿지 않으면 못 보내죠.”
=제비꽃(이설령), 학부모=
“어려서 다닌 미술학원에서, 제가 조금만 잘못해도 혼나고 스트레스를 받아가지고. 그때부터는 공동 육아는 괜찮지 않을까 해서 오게 됐어요. 여기선 선생님을 별명으로 부르기도 하고, 반 이름도 ‘해바라기 반’ 이렇게 짓고 그래서 좋아요. 성격도 전엔 무뚝뚝하고 그랬는데...지금은 활발해졌고요.”
=강다운(11세), 성미산 학교 학생=
▶ 왜 ‘강남’이 아니고 ‘성미산’인가?
-아이들에게 ‘보다 좋은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 성미산 마을에 머무른다는 주민들이 많다. 주민들이 공동 출자해 세운 교육 시설들이지만 직접 운영을 하다 보니 학비 부담은 만만치 않은 편. ‘대한민국 교육 일 번지’로 불리는 ‘강남’권의 명문 사립학교와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주민들은 왜 그 좋다는 ‘강남’ 학군도 두고 성미산 마을로 온 것일까? 무엇이 그들에게 성미산 마을의 대안 교육을 선택하게 했을까?
“주변에서 이제 애들 영어 가르쳐야 된다고, 경쟁적으로 공부 시키고 그러는데. 저는 제 아이가 아름다운 시를 쓰고, 좋은 소설을 쓰고 그런 것들이 영어 공부를 잘 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김윤현, 학부모=
▶ 부모도 성장하는 마을
-공동 육아로 어린 아이들이 자라나는 동안, 부모들도 성미산 마을과 함께 성장해 왔다. 반상회도 나가기 싫어 벌금을 내는 요즘 사람들답지 않게, 어린이집 청소를 하려고 주말도 반납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성미산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십시일반 힘을 모아 학교며, 가게며, 문화 공간들을 만들었다. 또 서로 협동하는 ‘두레’를 통해 공동체 활동을 더욱 꽃피웠다. 바느질 재주가 있는 동네 주부들은 ‘한땀두레’라는 이름으로 함께 모여 메밀로 속을 넣은 베개, 가방 등을 만든다. 어떤 주부들은 약초를 넣은 수제 비누를 만들고, 성미산 마을 두레만의 무늬를 찍으며 저녁 시간을 보낸다. 6가구가 차를 함께 쓰는 자동차두레, 차보다 자전거로 전용 도로를 달리는 생활 방식은 에너지, 경비 절감에 일석이조 효과도 있다. 성미산 마을은 이런 ‘우리끼리’ 활동을 통해 공동체를 키워 나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공동체 구성원이 아닌 일반 거주민들과 경계가 생기게 된 아쉬움도 존재한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문턱이 생겨버린 거죠. 공동 육아 어린이집이나 대안 학교를 보내려면 출자금이나 설립 기금을 내야하고, 친환경 먹을거리를 먹으려고 해도 비용이 발생하고, 뜻을 같이 하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되고....우리끼리, 우리만의 행사는 좀 아쉬움이 많죠.”
=김우, 성미산 공동체 주민=
-이런 공동체 내, 외부의 소외감을 해소해 나가는 시작점이 되고 있는 곳이 있다. 주민들이 쓰지 않는 물건을 내놓으면, 다시 새롭게 고쳐 파는 재활용 전문 가게다. 오백 원으로 구두 한 켤레를 살 수 있는 이 ‘되살림 가게’는, 공동체 참여와 그에 따른 비용들을 부담스러워하던 일반 주민들에게도 문턱을 낮췄다. 공동체 구성원이 아닌 주민들도 같이 어우러질 수 있는 미덕이 있는 것. 성미산 마을은 더디지만 조금씩, 보다 폭 넓은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
“우리 성미산 마을이 공동 육아, 생협, 되살림 가게 이런 것들을 통해서 도심 속에서 이웃들이 손을 잡고 즐겁게 살아가잖아요.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성미산 마을의 공동체 혜택, 즐거움, 이런 것들을 사회적으로 소외된 분들도 같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성미산 마을 공동체 주민=
“공동체! 공동체 마을이라는 게 다 있는 거 아냐? 공동체라는 건 서로 돕는 마음으로 주고받고 생활하는 게 공동체지.”
=백원룡(69세), 되살림가게 손님=
-마을 일에 적극적인 활동가도, 관심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누구도 공동체 활동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성미산 마을을 ‘꿈의 터전’으로 꽃피웠다. 지금도 계속해서 자라고 있는 성미산 마을의 72시간을 다큐멘터리 3일에서 함께 한다.
첫댓글 사람사는 느낌을 받아 좋아요~
네..도심에서 공동체적 삶을 산다면 효도하는 삶들이 될텐데요...대단한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