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들이 30개월 되던 해에 자폐 선고를 받았다. 청천벽력 앞에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좀더 이해하기 위한 특수교육 공부였다. 지금은 아들과 비슷한 정서장애를 겪는 학생을 가르치는 청주성신학교의 특수교사, '아들은 나의 스승인 동시에 제자' 라는 김정희 교사를 만났다. |
 |
아들의 눈을 통해 나를 보다 |
의외였다. 자폐아 엄마의 얼굴은 그늘 없이 밝았다. 정서장애아를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한 그녀의 손톱은 알록달록 화려하기 그지없다. 청주성신학교 김정희(53) 교사가 웃으며 답한다. "아이들 주의 집중을 위해 일부러 한거예요." 순간 한 방 맞은 듯했다. 선입관이란 얼마나 위험한가. 아이들을 위한 세심함이 몸에, 행동에 밴 김 교사의 미소는 그 무엇을 초월한 듯 은은하고도 깊다.
청주성신학교는 정서장애아를 위한 특수학교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졸업 후 전공과(대학 과정)까지 구성되었다. 전공과는 고등학교 졸업 후 19~25세 학생들이 주를 이루며, 나이 제한은 없다. 김 교사가 이곳에 근무한 지 올해로 15년, 전공과에서 원예를 담당한 지는 7년이 됐다.
학생들이 직접 내린 커피라며 자랑스레 내놓았지만, 정서장애인 둘째 아이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제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아이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죠? 좀 늦게 둘째를 낳았어요. 아이가 조금 늦은 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 청천벽력처럼 자폐 선고를 받았죠. 그런데 엄마잖아요. 그대로 울고 있을 수는 없었어요." '아이를 바르게 키울 수 있을까?' 발로 뛰고 머리로 고민하며 운동, 음악, 미술을 이리저리 접목하며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다 특수교육이 있는 것을 알았고, 그때부터 밤새워 특수교육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를 머리보다 가슴으로 이해하기 위한 주춧돌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특수교육의 핵심은 이론보다 '관심' '사랑' '눈높이 맞추기' 였다. 아이가 오히려 그를 키웠고, 덕분에 특수교사 자격증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둘째 아들은 아픈 손가락이자 첫 제자죠. 아들과 경험한 것이 교사 생활을 하는 데 큰 힘이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내 아이를 대하듯 학생들과 교감했고, 학생들도 엄마를 대하듯 저를 대했죠."
정서장애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여가 생활도 예외가 아니다. 김 교사는 아들에게 미술 음악 운동 등을 가르치다가, 혼자도 하고 어울릴 수도 있는 '인라인스케이트' 를 발견했다. 신체 균형에 좋고 무엇보다 판단력도 생겨 일석이조인 셈. 아들의 미래를 위해 체육지도사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했다. '고시 공부하듯' 매달린 결과, 8년 전에 인라인스케이트로 전국 일주에도 성공했다. 올해 스물여섯 살인 둘째 아들은 스포츠센터와 방과 후 인라인스케이트 강사로 활동 중이다. 지도하던 선생님이 아들의 적극적인 태도를 보고 채용해도 좋겠다고 해서 취업에 성공했다. 김 교사는 아들과 함께 '장애는 넘을 수 없는 벽' 이 라는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
'눈높이 맞추기' 와 마주 보기' |
그러나 다른 아이들과도 유대감이 있으리라는 것은 착각이었다. 특히 자폐와 같은 정서장애 학생과 교감은 '하늘의 별 따기'. 하나를 가르치려고 열 번 백 번 천 번 노력해도 안 될 때는 지치기도 여러번. "좌절하고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더군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초월했다고나 할까요? 가정, 남편, 사회, 그 어떤 일보다 우선순위에 둔 것이 아이들이에요. 내 아이뿐 아니라 학생도 마찬가지죠." 결국 고통을 주는 것도, 힘을 주는 것도 아이들이었다. 서로 알아가는 것은 눈을 마주보는 데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항상 아이의 눈을 마주했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는것' 과 '마주 보기' 를 생활화하자, 아이들이 조금씩 다가왔다. 산만하고 폭력적 성향까지 띠던 아이가 김 교사의 팔짱을 슬그머니 끼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자폐아라서 놓치기 쉬운 인성 교육 부분이 안타까워요. 한 마디라도 순화된 말, 긍정적인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달라요. 우리 아이도 무조건 잘못했다고 할 때가 있어요. 일종의 패배 의식이거든요. 나이가 들면 고쳐지지 않으니 어릴 때부터 자존감을 길러줘야 해요."
장애 학생이기 때문에 인성이 더욱 중요하다는 김 교사는 자연을 벗 삼아 아이들의 인성을 자연스럽게 순화하도록 돕는다. 학교 뒤 공터를 텃밭으로 만들어 아이들과 매일 흙을 만지고 채소를 기른다. 그 결과 '자연과 함께 자라는 우리'라는 주제로 2009년 교실수업개선 실천사례연구대회에서 수상의 영예도 안았다. |
'틀'을 깨고 인정하기 |
" '할 수 있다' 에서 출발하는 것이 저의 모토예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연필을못 쥐는 아이는 연필을 바라보는 것이 시작이죠. 중요한 것은 100이 정상인데 내 아이가 50을 가지고 태어났으면, 50을 최선을 다해 살려야 해요. 100으로 가려고 안 되는 것을 가르치려면 서로 지칠 뿐이에요."
그러나 희망이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보다 아이들에게 정말 작은 부분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 또한 얼마나 보람된 일인지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정서장애아를 둔 부모는 무엇보다 스스로 틀을 깨라고 조언한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우리 아이도 아직 끝난 게 아니거든요. 어떤 사람은 잘 키웠다 하고, 엄마가 특수교사인데 그거밖에 안 되냐고도 해요. 부모들은 아이가 조금 발전하면 언젠가 장애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무모한 기대보다 장애가 있는 만큼 인정해야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도하고, 노력도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아이가 있다. 김 교사가 주는 밥이 아니면 안 먹던 아이 때문에 연임도 했다. "그 아이에게 해주지 못한 아쉬움이 늘 마음에 있어요. 우리 애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 해요." 그래서 김 교사의 좌우명은 지극히 명료하고 단순하다. '오늘 하루 열심히 후회 없이'. |
 둘째 아들은 아픈 손가락이자 첫 제자죠. 아들과 경험한 것이 교사 생활을 하는데 큰 힘이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내 아이를 대하듯 학생들과 교감했고, 학생들도 엄마를 대하듯 저를 대했죠. | 미즈내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