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The New York Times 2012-5-31 (번역) 크메르의 세계
[기고] 캄보디아 훈센 총리 : 독재 '1만일 클럽'에 가입
10,000 Days of Hun Sen
기고 : 브래드 아담스(Brad Adams) / 휴먼라이츠워치(HRW) 아시아 지부장
"나는 야당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을 고사시켜 버릴 것이다. (중략) 만일 시위를 일으킬만큼 강력한 자가 있다면, 나는 그 놈들 모두를 두들켜패준 다음 닭장 속에 집어넣어 버릴 것이다." |
이러한 발언은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Muammar el-Qaddafi)가 2011년에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반정부 세력을 "집집마다" 쫒아가서 죽이라고 한, 악명높은 "바퀴벌레" 연설의 일부가 아니다. 이 발언의 주인공은 캄보디아의 훈센(Hun Sen) 총리이다. 훈센은 비판자들이 자신에게 튀니지 독재정권의 몰락에 관해 걱정해야만 한다고 말하자, 이러한 전형적인 위협적 언사를 통해 응답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악명높은 독재자들에 관한 논의에서 종종 간과되곤 하던 훈센 총리가 금요일(6.1)이면 "1만 클럽"(10,000 Club)에 가입하게 된다. '1만 클럽'이란 정치적 폭력 행사와 보안군의 통제, 그리고 대규모 부정부패와 외세의 전략적 지원을 등에 업고 10,000일 이상 권력을 유지한 권력자들의 집단을 일컫는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예멘의 독재자들이 몰락하면서 '1만 클럽'의 회원들은 격감했지만, 이로써 훈센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오래 집권한 10대 정치 지도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자료사진: Pha Lina / Phnom Penh Post)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의 전직 지휘관 출신인 훈센은 매우 지성적이면서도 무자비한 지도자라는 점을 증명해왔다. 그는 국내의 반대자들과 국제적인 비판자들을 균형있게 통제할 수 있었다.
그의 주된 전략은 위협과 무력의 사용이다. 예를 들어 1991년에 체결된 <파리평화협정>(Paris Peace Agreements)을 실행하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유엔 평화유지군'이 캄보디아에 들어왔을 때, 훈센과 그의 집권 '캄보디아 인민당'(CPP)은 야당 당원들을 협박하고 공격하는 데 군 병력을 동원했었다. 그에 따라 100명 이상의 야당 당원들이 유엔의 눈앞에서 살해됐었다.
1997년 3월에는 야당의 삼 랑시(Sam Rainsy) 총재가 이끌던 집회에 '수류탄 투척사건'을 일으키는 데 그의 '경호부대' 요원이 연루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16명이 사망하고 150명 이상이 부상했다. 당시 미국 시민 1명도 부상을 당해, '미 연방 수사국'(FBI)이 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당시 조사 책임자는 이 사건의 지휘계통이 훈센 총리로 이어진다고 결론내린 바 있다.
그리고 몇달 후, 훈센은 다가올 총선에서 패배할 것을 염려하여 연립정부 파트너였던 왕당파 '푼신펙당'(Funcinpec) 세력에 대한 '쿠테타'를 일으켰다. 당시 훈센의 지휘 하에 있던 부대들은 100명 이상의 사람들에 대해 초법적 살인(=처형)을 저질렀다. 당시 필자와 필자의 유엔 소속 동료들은 속옷만 입은 채 포박과 안대가 가려진 상태에서 머리에 총을 맞은 시신들을 발굴한 바도 있다. 하지만 아무도 이 문제에 관한 책임을 지지는 않았다.
현재 캄보디아의 최대 현안 중 하나는 훈센의 측근들이 저지르고 있는 '토지수탈'이다. 토지수탈은 대부분 정부가 '경제적 토지 양허권'(economic land concession)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광범위한 시위를 발생시켰지만, 시위대를 심각한 위협에 빠뜨렸다.
금년 4월에는 캄보디아의 저명한 환경운동가인 춧 우티(Chut Wutty) 씨가 불법 벌목 현장을 조사하던 중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최초에 그가 총격전 중에 사망했다고 발표했다가, 이후에는 헌병 1명이 그를 사살한 후 그 헌병 역시 스스로의 가슴에 2발의 총격을 가해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주에는 프놈펜의 주요한 부동산 개발지구에서 강제철거된 철거민 여성 13명이 신속하게 체포되어 법원으로 이송된 후, 약식재판을 통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해당 지역은 정부가 정권의 측근 기업 및 그 중국 제휴사에 팔아넘긴 땅이었다.
만연한 부정부패 역시 캄보디아인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문제이다. 훈센 총리가 캄보디아에서 정권을 잡은 것은 1979년부터였지만, 그는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보인다. 10년 전에 미국 국무부의 한 관리가 나에게 말하기를, 미국 정부는 훈센의 재산을 5억 달러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었다. 작년에 내가 미국의 또 다른 관리에게 '5억 달러'를 제시했더니, 그는 내게 "그게 전부야?"라며 반문했다.
오늘날 훈센이 캄보디아를 철권통치한다는 점에 대해, 프놈펜의 외교관들 사이에 논란의 여지가 없는 상태지만, 그것을 직접 언급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훈센은 야당의 삼 랑시 총재가 행한 비폭력 시위 활동을 문제삼아 징역 10년형을 선고토록 만들어, 결국 삼 랑시의 해외망명을 만들어냈다.
캄보디아는 매 5년마다 선거 조작의 상처를 앓고 있다. 캄보디아의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훈센이 선거를 통해 권력을 상실하게 되리라 생각하는 사람도 없는 상태이다.
1998년에 정부가 선거를 조작한 후, 수많은 사람들이 프놈펜의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Tahrir Square)의 도전적인 쇼처럼, 사람들은 한 공원에 '민주광장'을 형성하고 새로운 총선실시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훈센은 결국 자신의 병력을 보내 이 공원을 정리했다. 서방국가 정부들은 자신들의 실망감을 궁시렁대긴 했지만,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캄보디아인들이 '크메르의 봄'(Khmer Spring)을 맞이했을 때, 국제사회가 그들을 저버렸던 것이다.
훈센은 59세의 나이에 '1만 클럽'의 최연소 회원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80세가 될 때까지 집권할 것이라 밝힌 바도 있다. 모든 형태의 아랍의 봄에 관한 진정한 외교적 언사들이 독재정권에 대해 직대면하는 자세를 취한 지금에 있어서, 훈센이 다음에 다가 올 1만일 동안 일을 하게 되는 문제에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에 대해, 캄보디아인들은 그 질문을 던지는 일을 용서받을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 필자소개 : 브래드 아담스(Brad Adams)는 국제 인권감시 기구인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아시아 지부장으로서, 캄보디아 주재 유엔 사무소 소속 변호사를 지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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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캄보디아 국민이 스스로 자각해서 투표를 통한
'투표혁명'을 기대하지만 그렇다고 마땅한 대안 세력이
존재하지 않으니....
국민들 스스로의 생각과 뜻이 반영되어야 하는데
어떤 분수령이 캄보디아를 독재로 부터 벗어나게 하는 계기가 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