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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작 모음>
거미집 / 유재철 (김포문예대학)
거미가 집을 짓는다. 처마와 단풍나무 사이의 무주공간에다 집을 짓는다. 허공의 터에도 주인이 있었던가? 주인이 없으면 국유지라 해야 마땅할 처마와 단풍나무사이를 어떻게 건넜는지, 푸른 하늘을 터 삼아 눈금을 긋고 꽁무니로 줄을 튕긴다.
거꾸로 매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외줄위에서 곡예도 하며, 세상에 집 한 칸 장만하기가 여간 녹록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초의 씨줄위에 날줄을 얹으며 외장부터 시작하여 안으로 들어가며 내장공사를 하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못질하는 솜씨가 야무지기도 하다.
처마에서 단풍나무로 건너가는 팽팽한 거미줄이 문풍지 울리듯 햇빛만 튕겨낸다. 거미의 주거용 집인 줄 알았는데 하루 지난 후 거미줄에 하루살이가 걸린 것을 보고는, 주거를 겸한 좌판을 벌여놓은 것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거미의 집이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임도 알았다. 이것이 바로 주상복합 건물이라는 것인가 보다.
며칠 동안 오가며 눈여겨봐도 거미가 차린 가게에는 잠자리 같은 큰 곤충은 없고 코흘리개 하루살이 떼만 붙어있어 거미집만 더러워졌다. 거미 또한 마음에 차지 않았는지 기척도 않는다.
비가 오려는지 바람이 불던 날 저녁에 올려본 거미집은 한쪽 벽이 무너져 내려 구멍이 뚫리고 먼지와 하루살이만 덕지덕지 붙은 헌집으로 변해 있었다. 집 주인 거미 또한 먹지를 못해 기력이 쇠했던지 집 가운데서 거동도 않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랑비 오던 날 아침, 거미줄에는 거미의 눈물 같은 물방울만 그렁그렁 매달렸고 거미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제11회 전국공무원문예대전 행정안전부장관상 수상작품)
아다지오 / 최계순
‘오십’이라는 나이의 강물이 내게로 왔을 때 나는 이 시간들이 아주 천천히 느리게 느리게 지나가서 자근자근 내 곁에 오래 머물러 있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쉰’이 아주 더디게 지나가는 그래서 내게 아주 느리고 느린 아다지오이기를 바라게 된 것이다.
젖망울이 쬐그만 했던 소녀 시절에는 얼른 어른이 되는 게 희망이었다. 얇은 스웨터 사이로 들어오는 추위가 싫어서, 가난이 싫어서 돈이 많은 사람이 되길 바랐었다. 전쟁의 상흔이 겨우 가신 그 시절에는 다들 힘든 삶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그런 부모님 세대들의 고생을 딛고서 우리는 마냥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만 배를 불리면서 잘 견디고 이겨 나온 세월인지도 모른다.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슬픔 같은 것, 그리고 미진하기만 것들, 아쉬운 것들…많은 것들이 맞물려서 다가오고 지나가고 또 오려고 한다. 가 닿을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그림자들을 거머쥔 채로 늘 기다리면서 산 삶이었다.
꿈을 꾸는 몽환환자처럼 사랑에의 갈구로 평생을 보내면서 늘 잡을 수 없는 것들에 매달려서 그렇게 살았다. 가슴에 담긴 화롯불 하나가 너무 뜨거워서 그것을 주체하느라 이리저리 뒤척이며 살았었다. 어릴 때는 현해탄에서 몸을 던졌던 가수 윤심덕의 비극적인 인생에 놀라워했고, 세계를 놀라게 했던 천재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정열적인 삶과, 김일엽 스님이 선택한 구도자로서의 길 등을 동경하면서 소녀 시절을 보냈었다. 어머니와 같이 읽던 이광수의 소설에서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라는 이름을 처음 대했을 때의 감동도 또한 훗날 생각해보면 가슴 뛰는 감동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이제 ‘지천명’이라는 글귀를 새겨서 보낸 어느 친구의 정성처럼 이만한 나이쯤 되면 인생의 쓴맛과 단맛 그리고 희로애락의 틈바구니를 지나 하늘의 뜻까지를 헤아릴 수 있다는 뜻으로서 바로 성숙해가는 인간사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나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쉰’이 가리키는 숫자는 내게 정말 아주 천천히 느리게 느리게 지나가서 내게 못다한 것들을 조금이나마 더해야만 한다고 자꾸 재촉하고 있었다.
언제 이만큼의 나이를 먹은 것일까. 또 무엇을 위하여 발을 동동거리고 살았는지도 모르는 세월들 속에서 거울에 비추이는 모습에는 주름살이 새겨져있다. 근육의 뭉침이 더해지고 피부의 노화가 나이를 재촉해가면서 삶의 시간들에 목을 매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탄력 있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오늘과 내일 사이 그리고 너와 나의 사이, 택하지도 않았던 여러 가지 지나온 길 들 중에서 참으로 많은 것들을 꿈꾸었었다. 발레리나도, 화가도, 여성 정치가도, 유명한 작가도, 대부호도 다 되어 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면서 나보다 먼저 그리고 많이 이룬 사람들에 대하여 얼마나 많이 동경하고 살았는지 모른다. 그들을 엄청나게 부러워하면서 살았다. 알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것도 많은 호기심으로 가득 찬 내 성격 탓인지는 몰라도 지칠 줄 모르는 열정들로 가득 메워져서 살았다.
현실에 발을 디디고는 살지만 감정은 들쭉날쭉 지 멋대로 고집불통이었고 다듬어지지 않는 모양새로 그리움을 한평생 끌어안고 살면서 내 심장은 수시로 불꽃을 피우고 있었다고나 할까. 마음속에 자리 잡은 꿈인양, 기대인양, 미래인 양 잡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집착을 하는 사람으로…그것은 본질적인 그래서 근원적인 그런 마음의 외로움 한 자락을 늘 등에 짊어진 채로 철없는 시간들을 두서없이 건너온 탓이리라.
어릴 적에는 어머니를 편하게 해 드리는 것도 내 작은 꿈의 전부였었다. 남편 덕 없이 생활해 오면서 가녀린 생존의 길 위에서 보낸 어머니의 삶은 참으로 고달펐다. 굽이굽이 돌아 나온 길, 서로 의지하며 눈물겹게도 견뎌온 인내의 시간들은 잊을 수 없는 모든 것들이었다. 어머니 혼자 몸조차 지탱하기 어려웠겠지만 어머니이기에 견딜 수 있는 강한 모성애로 살아온 그녀의 삶은 마치 한 권의 소설책처럼 너덜너덜하게 기워져 있다.
‘빨치산 이야기’‘피란 이야기, ’귀신 이야기, 육십령 고개를 넘는 이야기 밖에 안 듣고 자랐지만 계집아이로 자라서 한 여자가 되고, 어머니가 되는 길, 그리고 어른이 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지나면서 우리는 비로소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지구라는 땅위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많은 이해와 사랑을 배우게 된다.
끊임없이 알고 싶었던 모든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우면서 탄생과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자연의 이치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면서 그러면서 사람 사는 이치를 터득할 때쯤 되면 우리는 다시금 우리가 탄생했던 별로 돌아가야 한다.
목숨이 있는 한 누구나 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내일의 태양에 거는 우리들의 기도와 염원 탓이다. 돌아가는 우주의 사이클 어느 한 시점에 머물면서 우리들 영혼들은 생존이라는 명제 앞에서 늘 고뇌하며 싸우면서 나름대로의 목숨들을 이어왔다. 서로 간에 맺어진 인연이라는 끈에 묶여서 애착과 소유와 욕심들을 있는 대로 다 부리면서 그렇게들 살아왔다. 욕망은 살아있음의 가장 근본적인 원초적 본능이다. 인연이라는 끈에 묶여 있을 때 어쩌면 다들 그것들이 주는 구속과 침해와 관심들을 바탕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들에 충실하려 애썼는지도 모른다.
인연의 이치들….관계되어진 모든 이들과의 만남과 이별들 속에서 이미 버려진 것과 앞으로도 버려야 할 것들에게 대하여 그리고 체념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서 좀 더 담대해지고 관용을 베풀어야 함도 내가 짊어져야 할 몫이리라.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는 어머니를 의지하며 뼛속 깊이 파고드는 한기와 희망 없었던 캄캄한 터널을 지나오면서 상상으로 배를 채우는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 집 한 칸에 걸었던 목마름, 따뜻한 가정, 정 깊은 친척간의 교류등이 그 시절에는 제일 부러운 관심사였다.
가족을 떠나보내고 거창에서 혼자 살면서 막연한 미래를 견뎌야 하는, 누구 하나 손잡아 주는 이 없이 나는 내 의지대로 사는데 익숙한 사람으로 자랐다. 사춘기 시절은 회색빛이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힘에 눌려 제대로 숨을 쉬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현실을 견디고 견디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토록 선망했던 서울에서의 공부는 아예 생각도 못한 채로 자존심 구겨가며 살 수 밖에 없었던 대학시절.
유쾌한 로맨스 하나 건지지 못한 학창시절을 건너 세상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직장도 잡고 결혼도 하고 그냥 그냥 철없는 선택으로 오늘까지 떠밀려왔다. 연약한 엄마의 손을 놓지 않고 견디고 이겨내는 데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외로웠던 성장기를 지나서 사그라지고 녹아지는 듯한 시간들의 재촉에도 주눅 들지 않는 의연함과 변함없는 의지 같은 것들을 늘 유지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누구나 인생이라는 고개를 넘으면서 힘들고 고통스럽고 벅찬 시련들을 겪어야 했다. 한 갈피 한 갈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통과된 시간들은 이제는 낡은 사진첩처럼 박혀있고,‘오십’이라는 숫자는 바늘 같은 통증을 일으키는 습관성 질환이다.
어영부영하며 살아온 세월들에 대하여, 사는 것에 대하여, 살아갈 것에 대하여, 시들어가는 인생에 대하여 참으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들은 참으로 신기한 요술쟁이처럼 언제 저렇게 자라서 나를 생각해주고 있는 것일까.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때가 많다. 아름다움에 대하여, 젊음에 대하여 왠지 자신을 잃을까 봐 두려움도 든다. 외면적인 것도 내면을 가꾸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세가 곧게 나이를 먹어가고 깔끔한 외양을 유지하는 것도 자기 관리 측면에서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예쁘게 늙어감도 앞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건강을 유지하며 스마트한 모습으로서 현 시대에 맞는 사고와 지식을 갖춘다는 것이야 말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노력의 일부분일 것이다.
‘오십’이라는 나이의 강물이 내게로 왔을 때 나는 아다지오의 노래를 부르면서 살려 한다. 느리게 흐늘흐늘하게 그리고 쉬어 가면서 승무같은 춤사위 동작과도 같은 느림의 여유들을 잔뜩 끌어안고서 내 노래가 침몰하는 황혼의 저녁처럼 쓸쓸하지 않기를 그저 기도할 뿐이다.
최계순 시인
경남 함양 출생
경남 마산대 간호과 졸업
1990년[한국문학 신인상] 수필 부문으로 등단
2009년 <애지>로 등단
현대 대구문협, 대구불교 문협 회원
주인 잃은 학교 / 박종은
초봄의 어느 하루, 등교일도 등교시간도 아닌데 나는 시골학교정문 앞에 서있다. 학교종이 울리기만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요, 친구들을 기다리는 중도 아니다. 까까머리에서 희끗희끗한 반백이 되어서야 찾아온 터이다. 꼭 45년 만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들에 에워싸인 꿈동산이 어떻게 변했을까. 당시 60여명이 꿈을 키우던 교정이다. 세월에서 오는 두려움에 선뜻 들어서기가 망설여진다.
촌로村老가 논둑길을 따라 자전거를 끌고 와서는 싣고 온 거름을 논에다 부린다. 고향마을 이웃동네분이면 알아볼 듯도 한데 초면이다. 가볍게 인사를 하니 그는 내가 묻기도 전에 폐교의 원인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농현상에다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더해져 아이들이 도시로 나가게 되었다고. 자신은 이 학교 출신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면서 머지않아 주변 개발이 이루어지면 다시 개교하게 될 거라며 은근히 지역개발을 기대하는 눈치이다.
철제로 된 정문은 굳게 닫혀있고 쪽문만이 한쪽으로 기운 채 열려있다. 수명을 다한 듯 장식마저 떨어져나갔다. 교문위에는 아치형으로 ‘아름다운학교’라는 글자가 흐릿하다. 오른쪽 기둥에 달린 ‘○○국민학교’란 교명만이 문패역할을 한다. ‘초등학교’란 명칭을 사용하기도 전에 주인을 잃은 운동장은 빈터로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여기저기 듬성듬성한 새싹들이 눈부시다.운동장 둘레에는 반세기를 넘긴 측백나무들이 울타리역할을 하는데, 띄엄띄엄 서있는 은행나무와 교문 양쪽에 버티고 선 플라타너스 두 그루가 학교의 역사를 말해 준다. 플라타너스는 한 아름이 넘는 둘레로 가지가 삭아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예전엔 이 나무아래서 꿈을 키우고,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으며, 알 수 없는 외로움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었다. 나는 일순 어린아이가 되어 나무들을 팔 벌려 안아본다. 귀를 대고 고목의 깊은 숨소리도 들어본다. 묘한 기운이 감돈다. 아름답고 포근하면서도 순간순간 소스라치게 한다.
학창시절 숙제를 안 해가 벌청소를 한 날이면, 혼자서 텅 빈 운동장을 서성거리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저 나무들이 든든하게 지켜주었었다. 이제는 제 역할을 다한 놀이기구들만이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있어 마음 한쪽이 허탈해진다. 졸업생인 듯 보이는 두 여성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학교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졸업앨범이 없었다. 달랑 한 장의 사진이 그 시절을 말해줄 뿐이다. 뒷면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코팅을 하였지만, 누렇게 변한 사진속의 얼굴은 나로 하여금 어렴풋한 옛 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징소리와 함께 막은 오르고 그동안 갈고 닦은 갖가지 재능을 펼치는 학예회가 시작되었다. 학부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펼쳐지는 행사는 가을운동회 다음으로 컸는데, 나는 그때 노래를 하기로 되어있었다. 교실 두개를 합해 한쪽에는 무대를 만들고 나머지 공간에는 학부형들이 빼곡히 자리했다. 나는 무대 뒤 교실에서 대기하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긴장한 탓인지 용변이 급해,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그만 무대에 올라가질 못했다. 간발의 차이로 노래가 무산되었으니 무대 뒤에서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초등학생으로서의 마지막 기회였는데 망쳤다는 생각에 발까지 굴렀었다.
사진속의 교실은 목조건물이었는데, 자취를 감춘 지 이미 오래인가보다. 옛 교실 터엔 ‘국민교육헌장’ 탑과 ‘자연보호헌장’ 탑이 새로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들에게서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조금 전까지 일던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아쉬움에 잠겨 우두커니 서있다. 공간사이사이에 있던 연못과 동물사육장의 흔적이 쓸쓸함을 더해준다.
교실을 둘러보려고 다가갔으나 문이 잠겨 들어갈 수가 없었다. 유리창을 통해 안을 볼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교실엔 칠판만이 남아 있을 뿐 액자는커녕, 책상 걸상마저 없었다. 텅 빈 창고를 방불케 했다. 허탈감에 건물 뒤로 돌아가 보니, 지나간 시간으로 나를 되돌린 듯하다.
내 또래들의 학창시절은 동란(動亂)이후라서, 굶주림에 지치고 지쳐 허기를 끌어안던 때였다. 미국의 원조품인 밀가루와 우유가루를 배급받던 기억이 떠오른다. 옥수수 빵으로 굶주림을 달래던 시절, 그래도 교육열만은 높았다. 어른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고, 우리들은 한자라도 더 배우려고 교실 안으로 몰려들었었다.
교정을 한 바퀴 돌고나서 나는 다시 운동장에 섰다. 가을하늘아래 펄럭이는 만국기 아래에서 그 옛날 운동회 때처럼 마음껏 달려보고 싶다. 뭐니뭐니해도 운동회의 꽃은 릴레이경주였는데, 어디선가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순간,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찾았을 때의 놀라움 같은 것이 가슴에 와 닿는다.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우렁우렁하고, 어느 교실에선가 새나오던 여선생님의 풍금소리도 환청으로 들린다.
모처럼의 학교방문을 마치고 돌아서는 길, 주인 잃은 학교의 목련꽃이 배웅이라도 하는 양 미소를 보내온다. 논에 거름을 부리던 촌로의 바람대로, 새 주인들이 운동장 가득 들어차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박종은 수필가
경기 안성 출생
2006년『한국수필』로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지송회 회원
잔소리 외 1편 / 유재철
총은 군인들이 쏘고 잔소리는 여자들이 하는 줄 알았다. 내가 군대를 다녀오고 결혼을 하고보니 그 말이 맞기는 맞았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전투 수칙’ 여섯 번째에 ‘나는 단 한발의 탄약도 아끼겠다.’라는 항목이 있다. 그 만큼 실탄을 아끼고 요긴하게 쓰라고 강조하는 소리였다. 결혼 후 나의 아내도 군인들이 실탄 아끼듯이 잔소리를 아끼면 전혀 문제가 없을텐데, 그 놈의 잔소리를, 물자 흔한 양놈들 총 쏘듯 해대니 환장할 노릇이다.
어떠한 날은 조반 전부터 잔소리라는 총질을 해대는데, 타켓트라 할 수 있는 목표물이 아들 녀석일 때도 있고 딸일 때도 있지만, 그 총구는 거의 다 나를 향해 불을 뿜었다.
한번은 아들 녀석을 향해 총을 쏘아대는 옆을 지나다가 당신도 똑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사선에서 얼쩡거리다 튕겨 나온 유탄에 맞아버린 짝이 난 것이다. 싸우다가 총에 맞으면 전사로 분류되지만, 유탄에 맞아 죽는 것은 사망으로 취급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내의 총은 자동소총이 아닌 반자동이라서 나름대로 위안이 되는데, 반자동이던 자동이던 간에 총소리는 총소리다. 그 총소리를 하루라도 듣지 말아야 할 터이지만, 아내 빼놓고 우리 세 식구가 총 맞을 짓을 하고 사는데 문제가 있다.
아내가 사온 옷을 아들 녀석이 고집피우고 안 입다가 또 총 한방 맞았다. 건성건성 청소하던 딸아이도 두어 방 맞았고, 나는 뭘 그리 잘못한 일이 많았는지 셀 수도 없이 총을 맞았다. 아들 녀석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 문틈으로 보니 뱀이 허물 벗은 것처럼 옷이 널브러져있고 이불은 둘둘 말린 채로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아침에 늦잠 자느라고 비몽사몽간에 즉사하게 총을 맞았던 녀석인데, 아내는 학교 간 아들 녀석의 빈방에서 연신 총질을 해댔다. 아내의 총구 앞에서 얼쩡거려 화를 자초한 일이 어이 한두 번뿐이었으랴, 신문지를 집어 들고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물소리 들리는 것으로 봐서는 주방에서 물을 마시는 모양인데, 벌컥벌컥 소리가 아니고, 피시식, 피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벌겋게 달구어진 총열이 식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오늘 유별나게 총질을 해대더라)
아내의 총 얘기를 했는데, 무기를 말 할 때는 그 무기의 제원 특성을 먼저 얘기해야 맞는데, 총은 숨겨둔 채로 총구만 내놓고 쏴대는 통에, 확실한 총의 실체를 못 보았으니 함부로 총의 특성을 말할 수가 없었다. 총소리로 봐서는 반자동총이 확실했고, 총소리가 창문 밖이나 담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만 울렸다. 총소리를 못들은 이웃들은 우리 집에서 총을 쏴대는지 전쟁이 났는지 도통 모르고들 사니 그들에게 물어 볼 수도 없었다. 단, 총의 성능은 나도 인정하는 바다. 60-70년대에 한국영화에 나오는 총들처럼 영화시작부터 끝까지 총을 쏴대도 (그것도 자동으로) 탄창 한번 갈아 끼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어림짐작으로 봐서는 바로 내 아내가 그 총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탄창도 갈아 끼는 것을 보지 못 했는데, 몇 년째 총질을 해대니 말이다.
어느 날과는 달리 아내의 얼굴에 결연한 의지가 서렸다. 집안이 냉랭해지며 전운이 돌았다. 세상에나! 총의 탄창이 아니라 실탄을 박스채로 쌓아놓고 총의 크리크 수정까지 하는 것을 보니, 말은 없지만 분명 나를 조준하기 위한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개인용 화기 총열에 여간해서는 사용 않는 양각대까지 부착하는 것을 봐서는 아주 작심을 하고 총을 쏘겠다는 모양인데, 왜 그런지 그 원인을 찾다가 그만 사색이 되었다. 책상위에는 금융기관에서 날아온 고지서가 보였다. 아내 모르게 땅을 저당 잡혀서 친구 사업자금으로 돌려줬는데, 이 친구가 이자를 내지 않아 날아온 독촉장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누구든 총구 앞에 서봐라. 서지도 못하고 아예 주저앉아버릴 것이다. 총구 앞에는 귀신도 안 붙는다는 말이 있다. 총구멍이 대포구멍처럼 커 보일수도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이럴 때는 삼십육계가 최고의 방법이라 문을 박차고 밖으로 튀어 날았다. 그와 동시에 난무하는 총소리가 들렸다. 총을 맞아 그러했는지 몸이 허공에 뜬 상태로 동작이 멈췄고, 총소리만 어지럽게 들렸다. 시간이 정지된 느낌이 들었다.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한 장면 그대로였다.
알량한 자존심이 총에 맞아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남자의 체면이라는 다리가 푹 꺾이며 몸이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고 동작 또한 슬로모션처럼 흐느적거렸다.
아내의 총질에 정신적인 영혼의 죽음을 당했지만, 육신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겠다. 내가 무기가 없어서 가만히 당하는 줄 아는 것 같은데, 판단착오라는 것을 보여 줄때가 된 것만 같다.
성질 같아서는 머리채를 휘어잡아다가 반쯤 죽여 놓는 것이다. 그리고는 핵폭탄에 버금 갈수 있는 이단옆차기를 날리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한가정이 지구상에서 멸망하는 것이다. 핵폭탄을 맞았으니 온전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강대국 밑에는 약소국이 있듯이 어린 자식들이 걸렸다. 핵단추 스위치에 얹었던 손을 힘없이 내려놓으며 생각 많은 사람의 비애를 느꼈다.
애들을 봐서라도 내가 죽어(맞춰) 살아야지
어언 총상을 당했던 곳에 새살이 돋는데 또다시 총소리가 들린다. ‘전선야곡’이라는 노래의 가사에 ‘들려온다 총소리 자장가 삼아...’라는 구절이 있다. 거리상으로 산 너머에 버금갈만한, 안방 밖의 주방쯤에서 쏘는 듯한 총소리가 들린다.
이제는 나에게도 그 총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타앙.타아 아 아 아 앙 ~
보약 / 유재철
어깨가 늘어지고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 어느 한 곳 특별히 아픈 곳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몸이 부대낄 정도로 힘든 일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매사에 의욕도 없다. 혹시 인생의 슬럼프 기간 아니냐고 하는데. 글쎄다. 보약 한 재 지어먹어 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다.
보약? 좋지!
너머말 사는 친구 한 녀석은 보약을 주기적으로 먹는다고 했다. 그리고 검단 사는 또 다른 친구는 개소주가 떨어지지를 않는다고 했다. 아내에게 보약 얘기를 하니 아내가 반색을 한다. 반색을 하는 아내를 보니 기쁘기도 하려니와 왠지 몸이 움찔하고 오그라든다. 내가 몸이 부실하여서, 아내가 살아오면서 혹시 밤에 허전함이라도 느꼈단 말인가? 이상한 방향으로 생각이 비약되더니, 뱀, 개소주, 녹용, 인삼 등이 머리에 떠올랐다. 아내는 옷매무새를 고치며, 이왕 말 나온 김에 진맥 짚으러 가자며 손을 잡아끈다.
아니, 진맥은 무슨 진맥? 내 몸은 내가 잘 알듯이, 내 몸에 맞는 보약은 내가 알아서 챙겨먹겠다고 만류했다. 아내와 며칠간의 실랑이 끝에 간신히 보약 한 재 챙겼다. 확실히 보약이 좋기는 좋았다. 먹지도 않고 챙기기만 했는데도, 팔 다리에 힘이 저절로 솟는다. 아침 출근길이 상쾌하기 그지없다. 이러니 세상에 누가 보약을 마다하겠는가? 이렇게 좋은 보약을 나 혼자서 먹는 것도 죄가 될 것 만 같았다.
약은 혼자서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조사장, 박주사 등 몇 명을 불러다 ‘돈’이라는 보약을 술로 다려 나눠 먹었다. 친구와 동사무소 김주사 불러다 남은 보약을 저녁에 재탕으로 끓여서 나눠 마시며, 보약 한 재를 하루 만에 말끔히 해치웠다.
더운 열이 훨훨 솟구치며 힘이 났다. 내가 언제 의기소침했냐면서, 보약 먹은 기운에 어깨를 휘저으며 집으로 들어섰다. 아내가 으아! 소리를 지르더니, 보약은 무슨 얼어 죽을 보약이냐 한다.
항시 어깨 축 늘어졌던 인간이 보약 기운 없으면 이 추운날씨에 어찌 이렇게 혈기왕성할 수 있겠냐며, 양말을 벗고 쓰러졌다.
죽었던 사람도 살리는 것이 돈이라는데, 돈의 보약 힘이 이렇게 좋은 줄은 몰랐다.
부모 살아생전에 자식의 보약냄새가 집안에 감도는 것이 죄악이라던 사람이 보약 타령할 때 알아보았어야 하는 것인데, 어리석게 몰랐다는 아내의 한숨 내쉬는 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쓰러졌다.
오늘 보약 한재 잘 먹은 탓으로, 앞으로 며칠간을 아내의 잔소리라는 독약을 몇 첩이나 먹게 될는지, 생각만 해도 죽을 맛이다.
[2008 평사리 문학대상 수필부문 수상작]
인생학교 / 정성희
그 학교에는 유독 통과해야 할 문들이 많다. 나는 그곳을 지키는 파수병이다. 사람들은 두터운 성벽으로 둘러싸인 그곳을 큰집이라고도 부른다. 그 주벽(主壁)은 견고한 ‘배타(排他)'라는 벽돌담으로 높이 울타리 쳐져 있기에 밖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도 무너져 있고 땅도 간 곳이 없다. 짙은 안개속의 마법에 걸린 듯 모든 사물들이 실종되어 있다. 마치 사차원의 블랙홀 세계로 말려가는 착각 속에 시간이 기화되고 공간마저 증발한다. 세상이 한순간 그렇게 정지된 채 정박해 있다.
‘철커덕’하며 철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순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본다. 모든 상품에 찍힌 바코드처럼 그들 존재를 저울질하는 고유번호가 각각의 가슴위에 붙여져 있다. 모두들 초조하고 불안한 표정들이다. 사무실 천장 위에 매달린 백청색 형광등 불빛들의 산만한 움직임마저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극심한 단절감이 가슴 밑바닥을 스치며 지나간다. 그들을 향한 나의 눈빛은 단호한 선입감과 딱딱한 편견으로 굳어 있다. 애써 감추려 해도 무채색의 공간 속에 무채색의 고독과 무채색의 절망을 끌어안고 입소한 그들의 예민한 눈이 어찌 그것을 모르겠는가.
철문을 통과한 어둠의 혼령은 신분대조를 마친 그들을 앞세워 지옥문 같은 빗장이 질린 감방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주변은 철시한 상가처럼 쓸쓸하다. 그 속을 서러운 고요만이 종종걸음으로 그들 뒤를 따라 들어와 이 척박한 뒷방으로 유배시킨다. 시간이 뒷걸음질 치면 칠수록 꾸리에 감긴 명주실마냥 사연 사연들은 되살아난다. 잊어버리고자 애쓰던 일들, 떠올리면 마음만 아픈 일들이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키면서 그들을 옥죈다. 바람이 스치면 나뭇잎이 흔들리고 배가 지나가면 물결이 일듯이, 그들은 자신이 남긴 잘못된 흔적 때문에 늘어나는 회한으로 가슴을 적신다. 거실 구석구석마다 설치된 감시 장치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 어느 것도 그들 내면에 쌓인 번뇌는 투시하지 못한다.
나는 사동문을 잠그는 열쇠로 그들의 인생을 단단히 옭아맨다. 지정된 거실에 들어선 그들은 불가항력적인 운명의 사슬에 의해 에누리 없이 돌돌 말려 포박된 꿈을 안고 더욱더 몸부림친다. 밤낮으로 날아오는 빚 독촉 고소장은 날을 바짝 세운 채 그들을 이 좁은 방으로 몰아붙였을 것이다. 그 허탈감은 정수리에 돋아나는 새치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그들 속을 휘젓는다. 이젠 그들은 줄에 묶인 염소처럼 말뚝 바깥의 세상으로 더 이상 나갈 수가 없다. 무력감은 장마철 먹구름이 되어 그들 영혼을 점령하고 희망은 이미 거세되어 요절 당한다. 문을 열면 눈부신 하늘이 갇혀진 창들의 횡포에 손수건 한 장 크기만도 못하게 남아있다. 삭막한 대지를 훑고 몰아치는 메마른 바람만이 육중한 철문에 부딪히면서 날카로운‘쉿’소리를 연신 뿜어댄다.
밤이 깊어지면 해묵은 시간들이 슬며시 기어 나와 갇힌 자들의 희망과 좌절, 고통의 시간들을 응축시킨다. 순리를 베어버린 한순간의 실수로 뒤틀린 자신의 인생을 원망하며 이 밤 잠 못 드는 것일까. 하나 값지게 보낸 하루는 잘못을 저지른 십 년보다 나은 것이라며 창살 밖으로 스쳐가는 어둠이 전해준다. 또한 신은 한쪽 문을 열어놓지 않고는 절대로 다른 쪽문을 닫지 않으신다고. 그들의 굳은 입술에는 여전히‘꿈이라는 믿음이 삐져나온다. 비록 그것이 신기루처럼 허망할지라도 그러한 욕망 때문에 그들은 삶을 지켜갈 수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현실 속에서 꿈을 간직하고, 꿈을 그리면서 현실을 덤으로 살아가게 된다.
멀리서 ‘꼬끼오’하는 닭울음소리가 들린다. 하늘을 흔들어 여명을 부르는 그 소리에 사람들은 아득했던 의식의 세계에서 기도와 명상으로 신이 준 아침을 연다. 영 풀릴 것 같지 않았던 운명의 고리가 벗겨지듯 조여든 햇빛이 감방 안의 어둠을 걷는다. 창살 밖 사각형의 먼 하늘에는 불그레한 조각해가 구름을 딛고 불쑥 솟아오른다. 빗장으로 덧대어진 문이 열리는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깨운다.
싸늘한 공기를 코끝으로 맡으면서 커다란 싸리비로 너부러진 앞마당의 오물들을 쓴다. 욕망의 시샘을, 금전에 대한 쟁취를 싸악 싸악 쓸어버린다. 마음속에 비좁게 차지했던 조각난 삶들, 묵은 회한들을 말끔히 털어낸다. 겨울동안 빛을 잃고 향기를 잃고 그 모습마저도 잃어버린 꽃들이 다시 만개하듯, 그들은 억압된 공간에서 차단의 고통을 성숙된 거듭남으로 두터운 철문을 박차고 다시금 비상하고 싶어 한다.
그곳 벽 안에 사는 사람들은 아주 잘난 사람들과 아주 못난 사람들,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눠진다. 수많은 애환을 세월의 더께 속에 묻어두고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이 그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소나 양 같은 초식동물이 반추라는 과정을 통해 소화를 완성시키듯, 그들은 겨울과 같은 내면의 침묵을 통해 인생을 다시 한 번 이모작하고 싶어 한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 때문에 웃옷 전체를 일그러지게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은 담장 안에서의 공동생활을 통해 세파에 지쳐 생채기가 난 마음의 상처를 서로의 진물로 보듬어주면서 작은 사랑의 정을 나눈다. 비록 남아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지만, 아직도 이를 악물고 참아낼 수 있는 몇 개의 희망에다 하루 하루치 남은 자투리행복을 더하면 벽 밖에 사는 사람들보다 못 할 바가 없다. 이러한 깨달음은 수많은 모퉁이를 돌아 모든 뒤척임을 잠재운 뒤에 얻게 되는 숭고한 해탈이다. 그리하여 창틈으로 새어나오는 잘디잔 햇살과 구김살 없는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면서 세상을 향한 그들 안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부식되지 않은 삶의 의지가 이 벽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음을 본다.
우주는 자연만물의 조화를 이룬 신의 창조물이라고 한다. 그러면 감옥은, 그 질서에서 벗어난 지상의 인간들에 대한 조물주의 이변적인 통치기관일까. 신으로부터 최종심판을 받은 영혼들을 가두는 창살이 하늘 문에도 있단 말인가. 왜 창조주는 그들을 시험하려고 감금의 시련을 제물로 바치게 한 것일까. 만 가지의 의문들이 가슴속에서 춤을 춘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고유한 신의 지문이 있다. 신은 왜 시험이라는 것을 통해 선악을 판단하여 그들에게는 전과자라는 지문을 기록하려 했을까. 아담과 이브에게 무화과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그들을 시험했던 하느님의 처세는, 위험한 나무에 올라가게 해놓고 그것을 흔드는 격이 아닐까. 우리네 인생살이에 함정이라는 선악과나무를 도처에 심어놓은 하느님의 의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연습이 없는 일회분의 삶만을 허락한 신은 감금이라는 응보를 통해 그들을 환생시키려 했던 것일까. 하나 순리인 줄 알면서도 거역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 있다는 것을 신은 그저 간과했단 말인가. 사람의 한살이에 예상치 못한 순간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또 그것으로 인하여 삶이 크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신은 그저 묵시한 것일까.
어느새 나는 사물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져 있는 자신을 간파한다. 사막에서는 한마디의 명언보다 한 방울의 물을 나눠 마시는 것이 더 소중하듯이, 감방에서는 매서운 눈초리보다 젖은 가슴으로 그들을 보듬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인장 가시와 같은 경계의 촉수를 곧추세우며 그들을 감시하고 있는 경직된 자신이 문득 부끄러워진다. 얼마나 많은 걸림돌들을 건너야 선긋기와 같은 뿌리 깊은 경계의식을 넘어서 그들의 머리 위에 얹힌 먼지 한 점까지도 사랑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잃고서도 그런 현실을 눈물겹게 사랑하며 촉촉한 웃음을 나눠 가진 그들은 내 깨달음의 등불이요 인생의 진정한 스승이다.
정규적인 학교는 내게 너무 작은 것들을 가르쳤다. 수많은 공식들과 법칙들로 입력된 그곳에서 나는 학문을 통한 경쟁의 원칙과 무리를 통한 갈등의 원리를 배웠었다. 체계적인 책상이론은 마음보다는 머리를 중시하는 가장 협소한 지식의 감옥이었음을 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야 깨우치게 되었다. 아름다운 세상은 머리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내 인생의 진정한 학교는 바로 그 큰집이었다.
교도소 안에는 스승 아닌 것이 없었다. 갇힌 사람들의 제반문제들은 하루하루 연습과제물이 되었고, 그들의 인생은 곧 교과서가 되었다. 책장을 넘기면 문밖에도 문안에도 어디에도 삶은 있었다. 곱고 순정한 것뿐만 아니라 추하고 혼탁한 것들도 아울러 응축하여 무색과 무언으로 내 안에서 거듭남을 배우게 하는 숭고한 고행의 현장이었다. 소홀했던 것으로부터, 또 자신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상처받았던 모든 것들로부터 새로운 푸른 거듭남으로 부활시키려는 신의 죄 사함이었으리라.
한 생각 돌이키니 그곳은 감옥이 아니라 사람을, 자연을, 인생을, 우주를 바라볼 수 있는, 그런 폭넓은 가슴을 담게 해주는 국립선원이었다. 용서와 사랑을 몸소 실천하게 될 즈음이면, 그 인생학교로부터 졸업장이 수여되지 않을까 싶다. 하나 그 증서를 받기 위해서는 평생의 마음수련이 필요할 것 같기에 오늘도 여전히 나는 그 학교로 등교한다.
[2008년 신라문학대상 당선작]
물풀과 딱풀 / 허효남
월말이면 습관처럼 편지를 보낸다. 고작해야 작은 문학회의 월례회 안내장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내게 번거롭고도 소중한 시간을 선물한다. 풀로 회원들의 주소를 하나하나 붙이다 보면 가끔씩은 받는 이의 안부가 궁금해질 때도 있고, 작품을 발표할 사람의 차례에는 새 글에 대한 기대로 벌써부터 가슴이 뛰기도 한다. 끈적끈적한 풀로 봉투를 모두 붙이고 나면 내 마음마저 끈끈하게 동인들 곁에 다가간 것 같아 이 일은 늘 귀찮으면서도 즐겁기 그지없다.
어느 달엔가는 봉투를 붙이다가 풀이 다 되어버린 적도 있다. 슬리퍼를 신고 동네 문구점으로 급하게 뛰어갔다. 하지만, 정작 풀은 사지도 못한 채 오히려 고민에 빠져 버렸다. 신랑각시처럼 나란히 붙은 물풀과 딱풀, 그 중 어느 것을 고를지 갈등이 된 까닭이다. 언제부터인가 뒷마무리가 깔끔한 딱풀이 등장하면서 물풀은 오래된 유물인 양 뒤 안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것은 잘못 누르면 흥청망청 갈지자의 취객이 될 뿐 아니라, 손에 쩍쩍 감기는 추태까지 부린다. 오히려 그런 칠칠맞고 세련되지 못한 느낌 때문인지 나는 이날 물풀을 집어 들었다. 모질지 못하고 무른 데다 수필 공부 한답시고 흐느적흐느적 감정을 흘려대는 꼴이 꼭 나와 닮았다고 여겨져서이다.
물풀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딱풀 같은 사람도 존재한다. 천성이 우유부단해서인지 나는 누구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딱 부러지게 내 의사를 잘 드러내는 데 서툴다. 이런 감정의 흐리멍덩함으로 인해 오해도 많이 받았지만, 어쩌면 이 흐리터분함 덕분에 결국 남편과의 만남도 이루어진 것 같다.
매사에 끊고 맺음이 분명한 그이는 연애시절 경기도에서 주말마다 꽃을 사들고 대구로 오곤 했다. 먼 거리를 왕복하는 고마운 마음에 미안함과 호감이 섞여 만남을 이어갔고, 일 년 후에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그와 내가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이가 사들고 온 노란 후레지아처럼 결혼은 모든 것을 화사하게 밝혀 줄 거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물풀 같은 나와 딱풀을 닮은 그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나는 물풀 같은 진밥을 좋아하고 그이는 딱풀 같은 고두밥을 즐긴다. 물컹물컹 씹혀서 부드럽게 잘 넘어가는 죽밥을 내어놓으면, 그는 알갱이가 톡톡 톡 살아있는 밥이 먹고 싶다고 타박을 한다. 계량컵을 들고 부산을 떤 지 서너 달이 지나도 상 위에 진밥만 오르자, 결국 그것 때문에 우리는 다투고 말았다.
물풀처럼 끈적끈적한 인정이 넘쳐흐르는 재래시장을 나는 좋아하지만, 딱풀처럼 잘 정돈되고 깨끗한 대형마트를 그는 더 선호한다. 계절마다 바뀌는 시장의 모습을 내가 넋 잃은 듯 바라보면, 그이는 볼멘소리로 꼭 한 마디씩 초 치는 말을 던지고 만다. 고등어 눈이 이렇게 흐리멍덩해서 어디 사 먹겠느냐, 국내산이라고 할머니들이 내놓은 콩은 모조리 중국산일 거라고 말이다. 그이의 청대로 다음번에는 대형마트에 가 보지만, 두 시간에 걸친 충동구매 끝에 양 손 무겁게 짐을 들고 돌아오자 또다시 말다툼을 하고 말았다.
나는 물풀같이 물크러진 성격 탓에 따지기를 꺼려하지만 그는 딱풀처럼 딱따그르 말싸움도 서슴지 않는다. 식당에서 머리카락이 나오면 그럴 수도 있다며 내가 얼버무리는 데 반해, 그이는 단골식당의 복어찜에서 다른 때보다 고기가 적게 나온 날에는 어김없이 주방장과 다투고야 만다. 하물며 극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을 발견하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주변 사람의 눈총을 한꺼번에 받은 적도 있다.
주말이면 나는 물풀 모양으로 끈질끈질한 이웃들의 모습이 정겨워 어머님과 전국노래자랑을 본다. 반면 그이는 젊은 사람이 뭐 그런 걸 보냐며 한마디 툭 던지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홀로 박자가 딱딱 떨어지는 최신가요 채널을 돌린다. 어머님과 둘이서 끈지근한 트로트를 흥얼거리면, 그는 혼자서 딱따개비 마냥 리듬 빠른 인기가요를 엉덩이춤까지 곁들여 신나게 따라 부른다.
어쩌다 외출을 할 때도 그렇다. 나는 물풀처럼 가는 곳마다 감정을 철철 흘리고 다니고, 딱풀 같은 그이는 딴딴한 표정으로 내 감상이 멎기만을 기다린다. 붕어빵을 보면 나는 호떡 굽는 농아인 부부를 소재로 한 「침묵」이라는 수필이 떠올라 그에게 전해주고 싶어 하지만, 그이는 다른 곳보다 호떡이 비싸다는 한마디 말로 내 입을 막아 놓고서야 직성이 풀린다.
문구점의 물풀과 딱풀은 나란히 붙어있어도 항상 선택되기 위해 자리다툼을 벌인다. 통상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딱풀에게 밀려날까 봐 물풀이 향기를 머금는가 하면, 고운 색으로 몸을 물들이고 반짝이를 바를 때도 있다. 이에 뒤질세라 딱풀은 더욱 세련된 디자인으로 겉옷을 갈아입고, 우둔한 물풀보다 자신이 현대적이라며 광고까지 한다. 기득권을 가지기 위해 둘은 가까워도 먼 채로, 또는 멀어도 가까운 채로 늘 거리를 두며 살아간다.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다. 물풀은 딱풀이 처음부터 저렇진 않았다며 실망의 감정을 쏟아냈고, 딱풀은 물풀이 계속해서 축축 처진 물풀인 채로 살아가는 게 못마땅하다며 투덜댔다. 물풀은 딱풀이 되기를, 딱풀은 물풀로 살기를 원했기에 둘은 다투고 또 다투었다. 이기지 못하면 도태되어 버린다는 불안감에 기를 쓰고 맞서고, 양보해 버리면 서로의 자리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오기에 악을 내어 달려들었다.
물풀은 액체이고 딱풀은 고체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 액체와 고체의 다툼은 늘 칼로 물 베기며, 물로 칼베기에 불과하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흐름을 가진 물풀은 본래 부드럽고 감성적이며, 형태가 있는 딱풀은 천성이 딴딴하고 지적이라는 것도 몰랐다. 늘 곁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물풀 공장과 딱풀 회사에서 납품되어 온 탓에 상대방을 전혀 이해하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또다시 월례회 편지를 보내는 날이다. 겉봉투에 회원들의 주소를 붙이는 물풀 곁에, 어쩐 일인지 딱풀이 다가와서 봉투 시접을 마무리해 준다. 그간 종잇장처럼 찢어졌던 마음을 물풀과 딱풀이 어루만져 주자 한결 편해지기 시작했다. 또, 그때 처음으로 알 것만 같았다. 물풀과 딱풀은 생김새부터 시작해서 서로가 하나같이 다르다고 여겼지만, 무엇인가를 붙인다는 공통점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흔 아홉 개의 다른 점 가운데도 한 개의 같음이 존재하기에 숱한 허물은 모두 덮어질 수 있는 것인가. 비밀 같은 아흔 아홉 개의 문을 모두 열고 들어가면 그 끝에는 정녕 무엇이 있단 말인가. 오늘 같은 날에는 누군가 내게 그 비밀의 문을 열 수 있는 작은 열쇠라도 던져 주었으면 좋겠다. 물풀과 딱풀이 하나 될 수 있는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2008 경남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멱둥구미 / 박모니카
시골의 겨울밤은 길기도 하다. 먼데 개 짖는 소리 잦아들고 간혹 눈 밟고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 멀어지면 공간이 비어버린 듯 아득해진다. 그 공간을 달빛이 서성인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까치둥지에, 흙벽 옆에 그을릴 대로 그을린 굴뚝 위에도 달빛은 그림자를 남겨둔다. 그렇게 겨울밤은 깊어만 간다.
잠자라고 재촉하듯 건넌방에서 아버지는 헛기침을 해대지만 못 들은 척 살그머니 할머니 방으로 기어들어간다. 밤참이 생각나서다. 동지섣달 긴긴 밤, 잠이 오지 않아 화로에 잉걸불을 뒤적이시던 할머니는 할머니를 찾아 준 손녀가 살가워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손녀를 쓰다듬어 주신다. 할머니에게는 항상 태우다만 지푸라기 냄새가 났다. 동백기름 냄새에 섞인 할머니만의 특유한 냄새였다. 조르지 않아도 할머니는 대청마루를 건너온 손녀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빙긋이 웃으시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휠대로 휜 허리를 한 번 쭈욱 펴고는 창호지 너덜거리는 문지방 문을 밀어냈다. 할머니가 문을 밀고 나간 틈으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칼바람이 휘익 휘돌아쳤다.
한참 만에 들어온 할머니의 옆구리에는 멱둥구미가 들려 있었다. 응달진 장독 안에 짚 사이 켜켜이 넣어 두었을 겨울 주전부리를 넣어 온 것이었다. 할머니가 방바닥에 멱둥구미를 내려놓자 꾹 참았던 침이 꼴깍 하고 넘어간다. 멱둥구미 안에는 보기에도 탐스러운 홍시가 새색시 볼처럼 발갛게 익어 있었다. 어머니도 손댈 수 없는 할머니만의 간식거리를 할머니는 차례로 찾아드는 손자들에게 야금야금 즐거운 마음으로 빼앗기고 있는 것이었다.
내 눈에는 할머니의 멱둥구미가 어느 보석함보다 더 빛나 보였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잘 마른 짚으로 멱서리를 엮듯 둥글고 울이 깊게 할머니가 직접 멱둥구미를 만들었다. 간혹 싸리나무 껍질 같은 것을 사이사이 넣어 할머니는 갖가지 모양으로 멋을 부리곤 했다.
우리 속담에 ‘고운 사람은 멱 씌어도 곱다’고 할 때의 ‘멱’은 멱둥구미를 덮어 쓴다는 말이다. 겉보기에 까칠한 멱둥구미 안에도 정을 담을 수도 있다는 말일 것이다. 사실 속정이 들면 겉이야 어찌 됐든 상관없다는 것이 아닐까? 주름 자글자글한 할머니의 얼굴이 나에게 제일 고와 보였던 것도 이런 마음 때문이리라.
할머니가 멱둥구미를 엮는 데는 이틀이 걸렸다. 잘 말린 짚에 훈김을 쏘여 새끼를 꼬아 만드는 일은 힘든 일임에 틀림없었다. 한꺼번에 수백 개씩 찍어대는 플라스틱 제품과는 비교 할 수 없는 것이다. 할머니의 멱둥구미 안에는 세월이 들어 있었다. 벼가 익기까지 벼줄기로서 버팀목이 되었던 시간들이 촘촘히 배어져 있었다. 그 지푸라기 한 올에는 따가운 햇살도 있었고 어둠살 짙은 별빛도 내려앉아 있었다. 무엇보다 그 속에는 기교 없이 무념의 상태로 물레질하여 구워 낸 막사발 같은 할머니가 솔 향을 피우며 들어가 있었다.
추수가 끝난 빈 들판이 조금씩 수척해 보이긴 하지만 슬퍼 보이지 않는 것은 짚 낟가리가 있어서였다. 짚 낟가리를 바라보면 부드러운 우수와 쓸쓸한 해방감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었다. 가을 들판에서 제 몸의 습기를 증발시킨 멱둥구미 안에는 완전히 가을이 익어 있었다. 멱둥구미에 담긴 것이 무엇이든 맛이 있는 것은 그 속에 넉넉한 가을 맛이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멱둥구미를 엮어내는 지푸라기는 볍씨 뿌리기에서 탈곡을 할 때까지 긴 여정을 거쳤다. 긴 장마와 불볕더위, 태풍과 정적을 견디는 시간을 건너왔다. 반딧불이와 물매미들의 놀이터가 되어주기도 했다. 삶의 재빠르고 포악한 관성은 끝없이 우리들 자신을 일상의 편리함 속으로 매몰시켰다. 그러나 할머니의 멱둥구미는 간편한 플라스틱에 밀려나면서도 그것을 배척하지 않고 따르지도 않았다. 멱둥구미는 삶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만든 할머니의 작은 우주였다. 할머니의 시름도 정한도 다 녹아있었다.
나에게 멱둥구미는 할머니가 만들어 낸 요술바구니였다. 멱둥구미는 비워졌다 싶어도 또 다시 다음날 채워져 있었다. 쫀득한 고구마도 있었고, 달싹한 무도 있었다. 운 좋을 때는 곶감이나 강정도 얻어 걸릴 때가 더러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의 멱둥구미만 보면 입 안에 침부터 고였다. 멱둥구미에 담긴 주전부리를 더 맛나게 했던 것은 할머니의 구수한 얘깃거리였다.
우렁각시 얘기며, 박꽃이 왜 밤에만 피는지, 소쩍새 울음이 왜 그렇게 슬픈지 실감을 섞어 걸지게 얘기해주었다. 나붓나붓 떨어지는 눈발 속에 어둠이 동굴처럼 깊어져가는 겨울밤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몰랐다. 얼어있는 홍시가 몸을 풀어 단물을 낼 때쯤 할머니는 얘기를 그쳤다. 다 녹은 홍시를 한 입 베어 물면 홍시 속살의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얼얼하게 입 안 가득 고였다. 정신없이 먹어대는 손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할머니의 정겨운 눈빛에 눈보라를 동반한 삭풍도 비켜가고 있었다.
멱둥구미는 할머니 냄새가 배어있었다. 거칠고 까칠한 멱둥구미처럼 할머니의 삶도 순탄하지 않았다. 역병으로 두 아들을 가슴에 묻으시고, 6.25동란 때 남편을 잃은 할머니는 올망졸망 칠남매를 데리고 밥을 얻어 먹여가며 기가 막힌 세월을 사셨다 했다. 살아 있는 역사의 증인이기도 했다. 두 아들과 남편을 잃은 할머니는 짚을 꼬며 부르시던 노랫가락이 상여소리였던 것도 한이 많아서였을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못 가겠네 못 가겠네 차마 정두고 못 가겠네 고생살이 못 면하고 북망산천 가는 구나.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일세.……’
어릴 적 할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노랫가락 구절구절을 뜻도 모른 채 유행가처럼 따라 하곤 했었다.
고향의 겨울이 더 그리운 것은 네온사인 휘황한 도회지보다 긴 겨울밤이 있기 때문이다. 수더분하고 속됨 없이 무심한 자연처럼 텅 빈 듯 충만한 멱둥구미 같은 할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유년은 추억할 수 있는 풍성한 얘깃거리를 만들어준 할머니가 있었기에 행복했다.
당선소감 / 박모니카
산길로 차를 몰다가 첫눈처럼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귓바퀴를 타고 내장에까지 스며들어 홧홧하게 하는 뜨거운 그 말을 식히느라 나는 산모롱이에 차를 세우고 한참이나 심호흡을 해야 했습니다.
돌아보면 수필은 나의 일그러진 자아를 되비추는 거울이며, 가쁜 호흡을 고르게 해주는 창(窓)이었습니다. 삶에 지칠때 마다 흰 종이가 가져다 주는 여백의 숨결 앞에 앉으면 앞산처럼 조용하고도 묵직하게 나를 떠받쳐 주었던 수필. 거칠고 성글던 문장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 제 곁에 다가 서는 것이 보였습니다. 맨 몸과 맨 정신으로 만나야 수필은 자신의 문을 열어 준다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 했을때 이 기쁜 소식을 받았습니다.
더 낮아져서 내 주변의 사라져가는 작고 초라한 것들과 키를 맞추겠습니다.
인간의 도리를 가르쳐 주신 이근식 선생님, 수필의 정도(正道)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신 안재진 선생님, 글의 생생한 감각과 형형한 정신의 깊이를 수혈해주신 경주대 문창반의 손진은 교수님, 그리고 저를 아껴주시는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수필의 여린 마디 하나가 겨우 돋았습니다. 지금부터 뼈와 살을 웅크려 이파리를 키우고 꽃 봉우릴 맺겠다는 실한 약속을 심사위원님과 경남일보사에 드립니다.
심사평
소재와 생명에 대한 사식 돋보여
쉰 명이 넘게 응모해주셨다. 작품수로는 이백 여 편이 넘었다. 그것은 성대한 ‘글 잔치’였다. 응모자 여러분과 신문사와 함께 이를 크게 반기고 또 기쁨 가득 기리고 싶다.
전체 작품 수준도 눈부셨다. 기성 작가의 수준에 다다른 작품도 결코 적질 않았다. 그러기에 심사는 별에서 또 별을 고르는 것 같았다.
제 일차 심사에서는 첫째, 문장의 정교, 둘째, 표현의 적절함이 기준이 되었다. 수필은 시나 소설에서보다 월등이 두 가지가 막중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늘구멍만한 흠집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에 불을 켰다. 그 결과 여덟 편이 일차 합격을 했다.
제 2차 심사에서는 소재며 주제의 개성과 글의 짜임새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야말로 서로 막상막하였지만 간신히 네 편의 작품을 골라냈다.
제 3차에서는 사색의 깊이와 논리의 설득력에 초점을 맞춘 결과로, 네 편의 글이 남겨졌다. 수필은 ‘생활 속의 사유(思惟)’라는 점을 존중한 것이다.
거기서 당산 작 , 한편 고르는 일은 옥에서 옥을 고르는 일, 진땀을 빼면서 세 차례나 고 고쳐 읽고 따지고 했다.
그 중,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이 , 바로 ‘멱둥구미’였다. 우선 소재가 돋보였다. 그리고 거기 담긴 , 한 생명의 궤적(軌跡)에 대한 깊은 사색이 은은한 여운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편의 후보작, ‘사진의 의미’와 ‘말하는 것이 꽃피는 것이다’의 저자들에게는 개인적인 경의를 표하고 싶다/ 김열규/수필가 서강대 명예교수
[2009 경남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삶의 나무, 죽음의 나무 / 성낙향
사거리로 내려가는 길의 한쪽 어름에 공터가 있다. 그곳에는 버려진 문짝과 의자와 그것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로부터 버려진 것 같은, 별 특징도 볼품도 없이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원래는 어느 집 마당의 정원수였던 것이 그 집 식구들이 떠나고 주택마저 철거되어 공터에 혼자 남은 듯했다.
겨우내 그 나무를 지나치면서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산으로부터도 밀려나고, 인간으로부터도 버림받은 그 나무는 내게 있어 낡아빠진 문짝이나 의자와 똑같이, 그저 그 공터에 방치된 하나의 고물이자 우중충한 정물일 뿐이었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멀리 공터 위로 낯선 것이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깨끗하게 빨아 넌 흰 손수건 같기도 하고, 환하게 불 밝혀진 알전구 같기도 한 것들이 공터 뒷집 먹색 슬라브 지붕을 배경으로 점점이 떠있었다. 공터 가까이 다가간 나는 한순간 탄성을 지르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방세가 밀린 세입자처럼 늘 어딘가 불편한 자세로 서있던 그 나무가 전날 내린 비에 부풀어 오른 무수한 흰 꽃송이를 가지에 매달고 있었던 것이다.
눈부신 순백의 꽃들을 보고서야 신원을 알 수 없던 그 나무의 정체가 ‘목련’임을 알게 되었다. 마치 몇 년간 데면데면하게 지내온 동네슈퍼 주인이 사실은 잃어버린 친동생임을 알게 되었을 때의 기분, 그런 황당함 같은 걸 나무 앞에서 느꼈다.
목련이라면 항상 우리 곁에 있어 친숙한 나무다. 오랜 세월동안 수없이 보아왔기에. 누군가 나에게 목련나무를 아느냐고 물었다면, 분명 잘 안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목련을 몰랐다.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단지 목련나무가 피워 올린 희고 탐스런 꽃에 불과했다.
나무의 둥치나 껍질이나 잎사귀에는 제대로 눈길을 주지 않았었다. 비가 내리거나, 찬바람이 불적에 목련나무가 그것들을 견뎌내는 모습을 지켜본 적도 없이, 그저 봄날의 짧은 며칠, 발화(發火)하듯 피는 꽃송이들에 열광했을 뿐이다. 이지러진 양초 덩어리처럼 뚝뚝 꽃들이 떨어지고 그 자리에 새살 차듯 자잘한 잎이 돋아나면 나무는 차츰 시선 밖으로 물러났다가, 다른 신록들 속에 묻히게 되는 여름이 오면 그만‘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가 돼버리곤 했다. 목련나무 본연의 모습보다 한순간의 꽃단장에만 미혹되었던 나의 부박함이 느껴져 씁쓸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저 공터의 나무처럼, 목련이란 나무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꽃피는 것이 너무도 극적이다. 겨울동안 메마른 가지를 치켜들고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조용히 서 있다가 다른 꽃나무들이 겨울과 봄의 모호한 날씨를 탐색하는 사이에 기습적으로 꽃을 확 피워버린다. 선수를 빼앗길까봐 두려운 듯 잎사귀도 내기 전에 꽃부터 피우고 본다. 도발적일만큼 당찬 개화에 정작 그것을 생산해낸 회색의 나무둥치와 가지들은 한낱 꽃을 위한 버팀목처럼 내 눈의 초점 밖으로 밀려났는지도 모르겠다.
열정도 의지도 없이 다만 생장할 뿐이라고 여겼던 나무의 내부에 응축되어 있던 욕망을 본다. 세상에 자신이 있음을 당당하게 밝히고자 인고하며 때를 기다려온 뜨겁고 질긴 욕망이 그 나무를 돌아보게 한다.
공터 한쪽에서, 돌멩이를 던지고 발로 차도 구부정한 자세 그대로 묵묵히 서있을 뿐이던 나무는 별 보잘 것 없다가 난데없이 일등을 한 아이처럼, 오늘 찬란하다. 일 년 중 며칠간은 온몸에 명찰을 달고 세상에 제 이름을 외치는 목련나무를 떠나오면서, 그것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제 존재를 알리는 참나무를 생각해보았다.
한 알의 도토리에서 시작되는 상수리, 떡갈, 굴참 등 우리 산야의 흔하디흔한 참나무들. 이렇다 할 특징도 없이, 산속에 군집해서 살아생전 누군가의 눈길 한 번 끌지 못했을 한 그루의 참나무는 톱으로 베어져 제 속살이 지닌 향을 드러내고서야 나로 하여금 제 존재를 돌아보게 한다.
고대 그리스 신들이 맨 처음으로 만든 나무라 하여 ‘어머니 나무’로 불리는 참나무. 나에게는 그런 참나무로 만든 작은 밥통이 있다.
갓 지은 뜨거운 밥을 그 밥통 안에 넣어놓으면 둥글게 맞물려진 참나무 널조각들은, 시골 방 아랫목에 놋주발을 묻어두는 어머니처럼 제 가슴에 흰쌀밥을 품고서 오래도록 온기를 보존시켜준다. 온기도 온기지만 밥알마다에 은은하게 스며든 참나무 향기는 또 어떤가. 무심코 밥통의 뚜껑을 열었을 때 밥의 훈기에 우러나있던 나무의 향기가 코끝에 물씬 와 닿으면, 바흐의 무반주 첼로를 들을 때처럼 마음의 갈피마다 아늑한 울림이 인다.
향이 좋은 까닭에 옛날부터 청어나 연어를 훈연시킬 때, 질 좋은 와인을 숙성시킬 때, 수많은 나무들 중에서 참나무를 골라 사용 했다. 물론 편백나무나 향나무처럼 생살 속에 고아한 향을 가진 다른 나무도 있긴 하다. 그러나 자신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세상에서, 낯선 방식으로, 낯선 추억을 쌓으며 자라난 연어와 포도, 그 이질적인 것들이 가진 본래의 향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오히려 깊고 그윽한 풍미까지 더해주는 나무는 오로지 참나무뿐인 것을 옛사람들은 알았던 모양이다.
한겨울, 늙은 군고구마장수가 끌고 다니는 수레의 양철화덕 속에서 타닥타닥 타오르는 참나무 냄새는 고층건물로 빽빽한 도심의 거리에 일순, 이른 저녁나절의 시골 정취를 풀어놓는다. 장작 몇 개일 뿐이나, 그 향이 너무도 짙고 깊어서 양철화덕 속에는 해묵은 참나무 숲 하나가 통째 타고 있는 듯하다.
스님들의 독경처럼, 수사들의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긴 여운을 남기며 대기 속으로 사라지는 향기가 아까워, 주린 듯 그 향을 맡는다. 무엇을 태운들 저리 맑고 그윽한 향기를 풍길까. 태워도 결코 정갈한 향을 풍기지 못할 내 몸, 내 삶을 알기에 참나무 향기를 맡을 때마다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열매를 겹겹의 껍질로 싸고도 가시까지 촘촘하게 세우는 밤나무와 달리, 산짐승들에게 순하게 도토리를 내어주고, 외부의 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독소를 만들어내는 은행나무와 달리, 제 속의 영양분을 둥치에 달라붙은 버섯들과 나누어가지는 욕심 없는 나무. 소나무처럼 그악스럽게 햇빛을 긁어모으지도 않고, 꽃송이마저 잎사귀 아래로 드리우는 가식 없는 나무. 남보다 많은 겸손의 덕을 몸 안에 지니고, 남보다 적게 탐하는 일생을 살아왔기에 불길에 사루어지는 참나무의 향기는 고결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지난 가을, 갑작스럽게 이모님이 돌아가셨다.
세상 사람들 속에 묻혀 눈에 띄지 않게 평범하게 살아온 그 분의 삶이었건만, 나흘간의 장례식 동안만큼은 일생 받지 못한 주목을 받았다. 묵묵히 살다 느닷없이 활짝 꽃피워 세상에 제가 있었음을 알리는 목련나무처럼.
이모님은 남아서 고인을 추모하는 자들의 기억 속에서 한결같이 아름다웠다. 모두들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사고로 망가진 고인의 싸늘한 얼굴에 뺨을 부비며 눈물 흘렸다. 그렇게 모두들 울면서 고인의 자취를 아린마음으로 더듬었다. 관속에 누운 이모님에게서는 양철화덕 속의 참나무 같은 향기가 장례식 내내 풍겨났다.
내 삶도 사람들에게 조상되는 때가 올 것이다. 죽음을 들여다보며, 어떤 죽음을 맞을까 생각하면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는 분명해진다. 무심히 지나쳐온 목련과 참나무는 이모님의 별세를 통해 인생의 종결부를 되새기게 하고, 남은 삶에 대해서도 숙연해지게 하는 그런 나무가 되었다.
[당선소감]
“솔직함은 수필 세계로 가는 열쇠”
20년이 훨씬 넘도록 수필을 쓰지 않았다.
쓰지 않기로 작심한 게 아니라, 도무지 써지지 않았다. 의도했던 수필은 번번이, 상징과 비유로 압축된 몇 구절의 시로 마무리되거나, 교묘한 허구적 장치들로 연결된 소설의 형태로 끝없이 이어지곤 했다. 아들을 원했건만 줄줄이 딸만 해산한 것처럼 낭패스러웠다.
어디를 어떻게 먹어야 좋을지 모를 람부탄처럼 늘 나를 당혹스럽게 했던 수필.
지난여름, 7월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나는 마침내 한편의 수필을 완성했다. 늘 실패했으므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뜻밖에도 그것은 별 어려움 없이 써졌다. 가까스로 걷는 법을 터득한 아기처럼 희열에 차서 그 여름 정신없이 자판 위를 내달렸다.
자클린 뒤 프레 덕택이다. 자클린의 첼로를 듣는 내내 그녀의 음악적 재능과 가혹한 운명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다. 그녀와 그녀에 대한 내 감정을 조금도 과장하거나 변형시키지 않은. 그렇게 해서 20년 세월의 질곡을 딛고, 마침내 한 편의 수필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진솔하게 서술할 것’ 수필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외워야할 주문은 바로 그것이었다는 걸.
수필은 나 자신의 내면을 투명하게 내보여야 하고, 그렇게 해야만 성립되는 문학이다. 그럼에도 나는 수필이 요구하는 솔직함을 내내 거부했다. 돌이켜보면 참 우스운 일이다. 감춰야할 특별함도 없으면서 심각한 상처라도 있는 듯, 난 왜 그토록 심중을 꼭꼭 여미며 살았던가. 어쩌면 너무도 지극한 그 평범함이 무안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수필은 이제 나에게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고해이다.
오랜 동안 무면허이던 사람이 마침내 면허증을 받은 기분이다. 면허증을 벽에 걸어놓고 작업을 하는 기분은 어떨까.
자클린 뒤 프레에게 감사한다. 내 영혼의 음식이자 피난처인 가족들에게도. 그러나 오늘은 그 누구보다도 내 속에 내재된 수필가로써의 자질을 평가해주시고, 격려를 보내주신 심사위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그 분들의 신뢰에 최선을 다해 부응할 것이다.
-약력-
동아대 국문과 졸업
부산MBC 신인문예상
월간 문학세계 신인상
[심사평]
"작품 구성에서 보인 대조법 묘미 돋보여"
수필부문-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
귀하고 애쓰신 원고를 보내주신 여러분께 우선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120 편 가까운 작품을 읽어내는 일은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또박 또박 한자 한자, 한 문장 한 문장 현미경 들여다보듯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당선작 고르는 일은 돌 더미에서 옥을 가리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구슬 상자에서 보옥 한 알 , 고르는 것이나 진 배 없었습니다.
고르는 절차는 삼 단계를 밟아 갔습니다. 문장에 무리가 있고 문리(文理)에 어긋남이 있는 글을 우선 뒤로 물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필은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서 ‘글의 미학’과 나란히 ‘글의 정교함’이 두드러지게 살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일차 읽기가 끝난 다음, 열편 정도의 예비 후보 작품이 남겨졌습니다. 그것들을 고쳐 살피고 따지고는 3 편이 남겨졌습니다. 이들은 그야말로 막상막하! 호불호를 가리기는 무척 힘겨웠습니다. 그 중에서 애석하게도 ‘선소리’가 물러나게 된 것은 주제나 내용 보다는 두어 곳 문장과 문리가 드러낸 작은 흠집 때문이었습니다.
드디어 두 편이 맞겨루게 되었을 때는 실로 난감했습니다. 최후의 왕좌를 놓고 겨루게 된 것은 ‘낙엽을 위하여’와 ‘삶의 나무 , 죽음의 나무’였습니다. 오죽하면 두 편 다 당선작으로 삼을 수 없을까 하고 궁리를 했겠습니까.
우선은 발상이며 착상의 창의성을 두고 두 작품을 견주어 보았습니다. 다음으로는 글 전체의 구성이며 논리적 전개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삶의 나무, 죽음의 나무’가 상대적으로 조금 더 선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주제와 겹친 작품 구성에서 발견되는 대조법의 묘미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비유법이며 이미지의 재미가 선자의 취향이나 주관에 보다 더 가까웠던 것입니다. 성낙향님에게 삼가 기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서도 가작으로 뽑힌 , ‘낙엽을 위하여’의 유 정서님께는 우수한 수필 작가로서의 긍지를 더한층 살려 가시도록 박수를 드립니다.
응모하신 모든 분과 함께 한국 수필 문학의 내일을 축복하는 것으로 심사평을 마치겠습니다.
[2009 15회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수필 당선작
호박 / 정경자
참으로 못 생겼다. 울퉁불퉁한 굴곡은 흘러내린 뱃살이라고나 할까, 풀숲에서 훔쳐본 촌부의 둔부라 할까.
추녀의 대명사가 아니었어도 호박은 신세대나 아이들에게 푸대접받는 신세다. 애호박이나 늙은 호박이 아무리 싱싱해도 생식(生食)할 수 없음은 채소로서의 결격사유다. 익히거나 삭혀 먹어야 하므로 아삭하게 씹히는 맛은 일찍이 포기해야 한다.
채소지만 단맛이 나는 것도 못마땅할 것이다. 단맛이라고는 하나 과일의 당도에는 어림없는 싱거운 단맛이다. 별맛이 없다면 차라리 시원함으로 승부를 내던가. 화끈하게 맵기라도 하면 인사라도 들으련만. 이도저도 아니니 독특한 개성과 자극적인 맛에 익숙한 세대에겐 호박이야말로 열외일 수밖에 없다.
채소라면 마땅히 부엌이나 냉장고가 제격이겠지만 겨울철 늙은 호박의 자리는 보통 안방이나 거실이다. 꽃처럼 예쁘지도 않고 모과처럼 좋은 향도 없는 그것을 안방이나 거실에 모시는 이유는 따로 있다. 호박을 추운 데로 내몰아 푸대접을 하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속부터 썩어 짓무르고 만다. 덩치만 컸지 속은 여린 탓이다.
거실에 유하는 동안 호박은 홀로 결가부좌를 틀었거나 석탑으로 쌓여 면벽수행 중이다. 무슨 명상에 빠졌을까? 갈수록 각박하고 냉혹해져가는 세상에 사람들은 원래 따뜻한 심성으로 어우러졌었다고 설파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겸손의 철학을 묵언으로 역설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끼니도 부족했던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가마솥에 호박죽 끓이시던 날은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날이었다. 따뜻한 호박죽 한 그릇이 가면 돌아오는 그릇엔 삶은 고구마나 김장김치가 그득했다. 그때가 보통 늦가을께나 초겨울쯤이어서 쌀쌀했지만 마음만은 훈훈했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나는 호박씨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곤 했다. 씨앗을 얻어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일거리로 농사짓는 어르신들과 시장 좌판에서 채소를 파는 아주머니들이었다.
어느 해엔 받아간 씨앗에서 호박이 열리지 않는다고 채소 파는 안강댁이 내게 푸념을 했다.
좋은 종자만 골라 손질해 준 나로선 난감한 일이었다. 곧 그 내막을 알아 본 나는 파안대소하고 말았다.
해마다 호박을 수확해서 팔던 그녀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호박만 파는 것보단 잎도 따서 파는 것이 훨씬 큰 이익이 나겠더란다.
그것이 그녀의 판단착오였음을 여름이 다 지나고서야 알 수 있었다. 호박도 맺기 전에 여린 잎을 줄기차게 따버린 탓에 그 해엔 호박이 하나도 열리지 못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여력이 있어야 열매도 맺고 씨앗도 열린다. 잎을 생산하는데 사력을 다하고 나면 열매 생산에 쏟을 에너지는 고갈되고 만다.
요즘 세태가 그러하다. 물질은 풍족하지만 생활수준 욕구가 훨씬 높아진 탓에 자식 낳기를 꺼린다.
설사 아이를 낳는다 해도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주의다. ‘물질만능주의’는 자연의 섭리도 변질시키고 있다. 과욕은 재앙을 부를 수도 있음이다.
지난 봄, 묘목 농장주변에 호박씨를 심겠다는 남편에게도 씨앗 한줌을 내주었다. 남편은 성에 차지 않았는지 한 움큼의 씨앗을 더 덜어갔지만 수확량은 고작 애호박 두개가 전부였다. 짬을 내서 거름도 줄 것이고 호박이 맺히면 무성한 잎들도 솎아내겠다고 했지만 남편은 생업에 쫓겨 뿌린 씨앗에는 언제나 말만 보탰을 뿐이었다.
의욕만 가지고 되지 않는 것이 어디 농사뿐이겠는가. 세상에 노력 없이 저절로 맺어지는 열매는 없다. 튼튼한 움 하나를 틔우더라도 병들지 않은 씨앗에 기름진 흙, 적당한 비바람과 부지런한 농부의 손길이 척척 아귀가 맞아야 한다. 게으른 농부에게 충실한 결실을 주신다면 그것은 또 다른 게으름을 낳을 지도 모를 일이다.
조물주는 얼마나 지혜로우신가. 작고 여린 과실은 나무에 달리게 하셨고 호박이나 수박처럼 크고 무거운 열매는 덩굴에 열리게 하셨다.
작아도 밀도가 높아 단단한 결실은 땅속에 맺도록 하셨다. 만약 커다란 호박이 나무에 열린다고 가정하면 잘 익어 거두는 일도 큰 공사일 테고 농익어 저절로 떨어진 호박에 다친 사람도 부지기수 일 것이다.
단단한 감자나 고구마도 나무에 열려 낙과된다면 중상은 아니라도 사람에게 가벼운 상처쯤은 입혔을 법하다.
흥부전에 나오는 박은 사실 호박이 아니었을까? 가끔 해외토픽에 거대 호박에 관한 뉴스가 나온다. 스무 명도 넘는 흥부의 자식들이 호박구덩이에 무차별적으로 뒷거름을 주었을 것 같다. 풍부한 거름 덕분에 흥부네 텃밭에도 집채만 한 호박이 열렸을 것이다.
하얀 박이 그처럼 크게 열리는 경우도 잘 없거니와 잘 익은 호박을 쪼개어 눈을 게슴츠레 뜨고 보면 물기 머금은 누런 섬유조직은 마치 반짝이는 금붙이패물을 겹겹이 쟁여놓은 모양이다.
좌르르 쏟아지는 호박씨도 연주에 꿰어 규방처자의 목걸이나 양반 갓의 주영(珠纓)으로 늘어뜨려도 좋을 유백색 비취구슬 같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호박도 사람처럼 관상이 있다. 옹골찬 주름도 없고 핏기 없이 허연 것은 수분이 많아 장기간 견디지 못하는 부실한 것이다. 또 덩치가 커도 가벼운 것은 속빈 강정이다. 짙은 담황색에 단단한 육질, 묵직한 무게감이 있어야 알찬 속이 잘 상하지도 않는다.
과일만이 숙성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다. 늙은 호박도 처음 딸 때는 껍질에 설핏 파릇한 기운이 돌고 풋내가 난다. 자숙의 시간을 거쳐야 꼭지의 수분이 사라지고 무르익는다. 그제야 누런 껍질에 뽀얀 분이 나면서 단맛도 깊어진다. 늙은 호박이 시골집 대청마루에서 가을볕을 쪼이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람도 그러하다. 설익은 패기만 믿고 대책 없이 세상에 부딪히다간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스스로 다지고 삭히는 성찰만이 세상에 융화되고 또 감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호박만큼 인간에게 요긴하게 쓰이는 것도 드물다. 매실이 사람에게 아무리 이롭다하나 그 씨앗에 독이 있고 감자의 싹도 그러하다. 잎, 꽃, 열매, 씨앗 어느 것 없이 음식도 되고 약도 되는 것이 호박이다.
또한 사계절을 두루 섭렵하는 것이 알고 보면 호박이다. 봄이면 잎과 꽃,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애호박, 늙은 호박, 한겨울엔 썰어 말린 호박오가리로 나물과 떡을 해 먹었다.
자신의 공을 앞세우고자 화려한 공치사가 난무하는 마당에 온몸을 바쳐 살신성인하는 호박의 음덕이 가상하다. 범상한 외모에 비범한 희생정신이 서렸음에 아직도 ‘꽃은 꽃이되 호박꽃’이라 폄하할 것인가.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나는 호박씨를 이웃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다. 비록 호박씨 한줌이지만 그것이 잎과 호박으로 열려 어르신들의 소일거리가 되어도 좋고 시장에 나가 채소상의 벌이가 되어도 좋다. 이도저도 아니면 결국 우리 탕제원으로 호박 즙을 내러 와도 그만이다. 무엇보다도 호박을 닮은 넉넉한 인정이 넝쿨에 호박이 열리듯 번졌으면 좋겠다.
엽렵하고 예쁜 것이 지천이지만 투박한 호박이 더욱 정겹다. 식당이나 가게 한쪽에 늙은 호박 몇 덩이를 보기 좋게 포개놓은 집은 어쩐지 인심도 후할 것 같다. 호박 때문에 예민하게 경계하던 마음이 풀리고 느긋하게 바라보는 여유도 생긴다.
손톱만한 씨앗에서 폭염과 비바람을 이겨낸 바위만한 열매, 필시 조물주가 내려주신 들녘의 황금 알이다.
약력
△1964년 대구 출생
△수필사랑문학회 회원, 에세이포럼 1 기
△2007년 시흥문학상 입상
당선소감
20대에 품었던 꿈, 불혹 넘기고서 실현
기다림도 형벌이라는 걸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원고를 보낸 죄로 형벌을 안고 살다가 그 오랏줄에서 풀려나는 한통의 전화를 받고나니 머릿속이 온통 하얗다.
새 해 새 장을 여는 신춘문예에 도전하고픈 꿈을 20대쯤에 품었던 것 같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었고 불혹을 넘기고서야 겨우 짬을 내어 수필을 만나게 되었다.
20년 전의 꿈은 포기한 것이 아니라 아직 가슴 밑바닥에서 유보되고 있었음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최악의 경기불황이라 손님들은 얼굴이 어둡다. 나는 탕약을 달이는 그저 평범한 아줌마지만 몸에 좋은 약만 달일 게 아니라 이제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약이 되는 수필을 써야겠다.
아직도 풋내 나는 글에 새로운 장을 열어주신 동양일보사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수필부문 심사평
호박에 대한 위트와 유머, 삶의 지혜 돋보여
전국에서 몰려온 164편 수필 원고가 모두 고루 상당한 실력에 도달해 있음을 보여준다.
원고 수도 지난해보다 40여 편이나 늘어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으며, 작품도 제대로 수필 작법을 공부한 흔적들이 많이 보여 단순한 수기나 편지투가 흔하던 시절과는 다르다.
당선작으로는 ‘호박’(대구·정경자)이 단연 돋보였다. 간결하고 짜임새 있는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는 내용이 읽는 이에게 호감을 주게 한다. 호박의 후덕함을 예찬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호박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이 오래 가꾸고 관찰하고 깊은 생각을 품은 글임을 나타낸다. 삶의 지혜, 인생의 무게가 도처에 엿보인다. 호박 농사에 빗대어 오늘날의 세태를 읽을 수 있게 한다. 주변에 흔한 호박에 대한 깊은 애정이 위트와 유머를 품은 이런 작품을 빚게 했으리라.
함께 보낸 ‘피아노’도 훌륭한 작품이다. 학창시절의 단순한 회고 취미가 아니라 피아노에서 연상된 피아노를 잘 치던 친구가 성장통을 겪어내며 뒤틀렸던 성격이 소생되는 과정을 잘 이끌어냈다. 피아노가 더 이상 허영심이나 과시욕의 대상이 아님을 깨닫게한다.
당선작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클로버에 대한 단상’(횡성·최옥순)이 아깝게 되었다.
수능을 앞둔 자녀와 가족을 위해 찾은 산사에서 간절히 기도하며 느낀 점을 깔끔한 글솜씨로 펼쳐보였다. 정밀한 산사의 분위기에다 밤에 기도하는 모습의 클로버를 보며 참회와 염원의 소중함을 잘 담아낸다. 앞으로 좋은 수필을 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등나무’(대구·임만빈)는 의사와 환자가 갈등을 겪으면서도 함께 등나무처럼 엉겨 붙어 하나의 줄기를 만드는 등나무와 같은 숙명적인 관계임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의사란 직업인이 아니고는 이런 경험을 잘 살릴 수가 없겠다.
문학작품은 낱말과 문장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명심하여 우리말을 좀 더 갈고 닦은 그런 작품이 출현하길 고대한다. 심사위원:조성호(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