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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 선암사
○ 일자 : 2015. 1. 28(수) - 29(목).
○ 장소 : 선암사 (순천시 조계산 선암사)
〇 템플스테이
항상 바쁘게 쉼 없이 앞만 보고 살아왔다. 여유도 없고 승부로만 평가하는 삶을 살아왔다. 젊어서는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욕심과 독선일 뿐이다. 나이 60이 넘으면서 차츰 젊음의 원동력은 쇠하고 과거의 망령으론 저 벽을 넘지 못한다는 것을 새삼 느껴진다. 욕심과 독선의 벽이다.
연구년이라고 1년 휴가를 받아 벌써 반년이 지나간다. 조급증이 발동한다. 언젠가 템플스테이라도 해야지 하고 막연히 기대했다.
방학 중, 혼자 남겨진 이곳 아파트가 두려워진다. 오전 중 전화로 문의하니 오늘 입사가 가능하다는 승낙을 받고 산사(山寺)로 달려간다.
〇 선암사
태고총림 선암사(仙巖寺)는 전통 고찰(古刹)의 흔적이 잘 보존되어 있고, 여기저기 산사마다 뿌려대는 자본주의 물감이 덜 느껴지는 곳이다. 산사 들머리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숲길은 절을 찾는 중생에게 미리 세속의 때를 벗겨주는 선계(仙界)로의 진입로이다.
10여분 숲길 따라 부도밭이 나오고, 숲길을 조금 더 오르면 조계산의 맑은 계곡을 건너지르는 승선교(昇仙橋)가 있다. 속계에서 선계로 오르는 다리이다. 승선교 아래에서 승선교 너머 보이는 강선루에 이르는 짧은 구간에 서면 중생의 눈에도 여기가 선계임이 감지된다. 선암사 절경 중에서도 백미이다.
강선루(降仙樓), 신선이 내려오는 누각이다. 강선루는 실질적으로 선암사가 시작되는 산문(山門)이다. 긴가민가하면서 한참을 더 가야 사찰의 일주문이 나오고 아담한 듯 우람한 듯 단아한 절 선암사 경내가 정말로 시작된다. 눈알을 부라리는 사대천왕이 안보여서인지 경내로 들어서는 마음이 편안하다.
( 선암사 일주문 )
〇 템플스테이 - 첫 날
061-754-6250. 인터넷에서 찾은 선암사 템플스테이 사무실 전화번호이다. 1박 2일의 휴식형 템플스테이는 16:00까지 오면 가능하다고 하여 전화로 신청한 후, 14:00경 광주에서 승용차로 출발한다. 고속도로 사정이 좋아서 15:30분 경 사찰입구 매표소에 여유롭게 도착한다. 항상 걸어서 다녔던 이곳 오솔길을 오늘은 손님대접을 받으며 의기양양 승용차를 들이밀고 간다. 걸음걸이 속도로 운전해 가면서도, “아- 여기는 걸어야 하는데-”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 선암사 가는 오솔길 )
16:00 종무소에 들려 인사하고, 상하 수행복과 고무신을 지급받고 방을 배정받는 것으로 수속완료이다(1박 2일 비용은 4만원이다). 3-40년 전 대학 동아리의 수련회 참가나 고시공부를 주로 산사에서 해왔던 터라 절 생활은 너무 익숙하지만 나홀로 정식 템플스테이 참가는 오늘이 처음이다. 그때는 고시공부라는 삶의 현장이었지만, 오늘은 생활을 관조하기 위해 온 목적과 격이 전혀 다른 같은 현장이다.
오늘 함께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사람은 6명인데, 나 이외의 5명 모두가 미혼 여성분들이다. 2명은 경기도 구리와 성남에서 온 여선생이고, 대구에서 온 직장여성, 광양에서 온 여자 대학생, 부산에서 온 여고 2년생 등이다.
16:20-. 대웅전에서 사찰예절 및 안내 시간이다. 절(인사)과 사찰예법에 관해 반시간 정도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된다.
16:50-17:20 저녁식사. 사찰예법 중에 식당과 화장실 등에서 조용히 하라고 하더니만, 식당건물의 이름마저 적묵당(寂黙堂)이다. 10여명의 학승이 식사 중인데, 정말 조용하다. 중생들도 10여명이 보이는데 모두 밥만 먹는다. 우리도 밥만 먹는다. 음식은 소찬(素饌)이지만 정갈하고 맛있다. 본인이 먹은 국그릇으로 식사 후 물을 먹으라고 써있다. 젊은 아이들이 익숙할 리 없다. 식판에 반찬을 남겼다가 스님에게 한 소리 듣는 일행이 있다. 아- 여기가 생활교육 현장이구나.
( 저녁 식사 - 자율 배식이다 )
우리 애들도 오면 좋겠다. 저녁예불까지 십여분 여유가 있어 경내를 돌아본다. 650년 되었다는 와송, 대웅전 주위를 기웃거린다. 대웅전 앞마당 동서 양쪽에는 보물 제395호로 지정된 3층 석탑이 나란히 서있다. 수행복을 입었으니 여기가 기념촬영의 적지인듯, 관광객의 도움으로 증명사진도 마련했다.
( 대웅전과 삼층석탑 )
17:30-18:00 저녁예불. 자율참여이다.
17:20 경 가사장삼을 두른 한 무리의 스님들이 범종루(梵鐘樓)에서 경건하게 대기하다 법고를 치고 목어도 친다. 범종각에서는 한 스님이 커다란 종에 힘껏 타종을 한다. 대웅전에서 저녁예불이 시작된다. 자율적 참여이지만, 이번 행사에는 모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에 대웅전에 들어선다. 10여분 스님과 여남은 중생들이 예불을 올린다.
한 시간 정도 휴식시간을 갖고, 19:00 스님과 차담(茶啖) 시간이다. 스님과의 대화시간이다. 오늘 참가한 어린 친구들이 모두 누구의 지시 없이 자진하여 참가했다니 부모인 나로서는 대견해 보인다. 스님의 말씀은 일체유심조와 따뜻한 가슴, 열린 마음을 가지라는 요지이다. 한 시간의 예정시간이 40분 초과하여 계속되다.
21:00 취침시간. 이제 저녁 뉴스 시간인데, 벌써 잠이 올 리 없다. 가져간 책, 법정 스님의 칼럼집 『아름다운 마무리』(문학의 숲, 2008년) 앞 부분을 읽어나간다. 스님은 <노년의 아름다움>이란 제목의 글에서 “우리는 자신의 꿈과 이상을 저버릴 때 늙는다”고 하신다. “노년의 아름다움이란 모든 일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남에게 양보할 수 있는 너그러움에 있음을 잊지 말 일이다”라고 맺는다.
잠자리가 바뀐 탓에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 온돌 방바닥이 뜨거워 좋기는 한데, 어느새 몸은 침대생활에 길들여 온돌이 오히려 편치 않다. 이상과 현실이 부지불식간에 엇갈려 간다.
〇 템플스테이 - 둘째 날
어제 밤 자정이 넘도록 뜨거운 방바닥에 옅은 요를 이리저리 밀치며 지척이다가, 불현 듯 법고소리에 새벽잠에서 깨어난다. 적막한 산사의 새벽은 법고의 두드림에서 시작된다. 숙소(심검당)가 범종루․범종각과 인접해 있기도 하지만, 어둠속에서 화들짝 울려나는 법고소리는 마치 중생인 나에게 깨어나라는 듯 요란하게 다그친다. 아침 식사시간에 마쳐 05:20 알람 설정을 했는데, 지금 눈뜬 시간은 아직 3시도 못되었다. 새벽 꿀잠을 자야할 시간인데 예불소리가 새벽잠을 허락하지 않는다.
04:00, 대웅전의 새벽예불을 구경 가다. 30여 년 전 새벽예불을 드리는 여스님의 낭낭한 염불소리만 만연사 공부방에서 들어보았을 뿐, 새벽예불에 참석은 이번이 처음이다. 20명도 넘는 스님들이 넓은 대웅전 법당 안에 가득하다. 보살 한분과 젊은 처사 한분이 한쪽에서 예불 중이어서 그 옆에 자리를 잡고 눈치 보아가며 따라서 예불시늉을 하다. 진즉 시작된 예불은 내가 참여한지 20분만에 끝난다. 잠은 깨었지만 새벽공기가 추워서 밖에 있을 수 없다. 방에 들어왔지만 아침 식사 때(05:30)까지 새벽잠을 자기도 어중간하다. 아예 시계 알람을 해제하고 어제오늘의 일기를 정리해 본다. 예불이 끝난 산사의 새벽은 다시 적막강산이다. 세면장과 화장실 울타리 너머에서 들려오는 개울물 흐르는 소리, 바람소리가 여기가 산사임을 알려주는 듯하다.
05:30-06:00 아침 식사 시간이다. 대학 졸업 후 오랜 절방 생활에서는 밤늦게까지 야반공부에 아침식사를 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오늘은 산사의 체험이니 아침식사를 거를 수 없다. 식당(적묵당)이 숙소(심검당)에서 멀다. 춥기도 하거니와 어둠속에서 혼자 걷기가 익숙하지 않아 으스스하다. 식당 안에는 서너 명이 말없이 무표정하게 식사중이다. 식사를 마친 6시에도 어둡기는 매 한가지다. 어릴 적 시골 동네에서 밤길을 걸으면서 내 발자국 소리에도 가슴 조였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 천연기념물 제488호 선암매 ) - 3월 하순경 매화꽃이 장관인데, 개화기를 맞추어 다시 와야 겠다
09:30-11:00 편백나무 숲길 트래킹. 스님의 안내로 대웅전 건축물에 대한 설명, 절 뒤쪽 원통전과 그 앞에 있는 선암매에 대한 설명을 듣고, 후원에 있는 ‘야생 작설차’을 지나 편백나무 숲길의 트래킹에 들어선다. 도중에 스님의 애기를 우리는 듣는다. 그때서야 스님은 법명을 말씀하신다. 등명(燈明)인데 이름 값 못한다는 소개이다. 연세는 62세, 젊은 참가자들에게 문답식으로 많은 깨우침을 주셨다. 오늘도 충분히 이름값 하신다.
그동안 소식 몰라 했던 남명(南冥)스님의 안부를 물었더니 오래 전에 작고하셨단다. 20여 년 전 광주에서 뵈었을 때 작호(作號)를 해 주셨던 어른이다. 그로부터 상당기간 로타리 클럽에서는 현암(玄巖)이라는 호를 사용하였다. 현암(玄巖)은 남명스님이 주신 글귀에 뜻이 있다. 玄中如海闊 萬古不易巖.
( 편백나무 숲 트래킹 )
11:20-12:00 점심식사를 마치다. 편백나무 숲에서 피톤치드를 마셨더니 밥맛이 더욱 좋다.
귀가. 식사 후에는 옷을 숙소 앞 바구니에 반납하라는 종무소 직원의 말에 따라 각자 그대로 하고는 바람같이 사라진다. 여기가 절이니, 산문에서는 산문의 법에 따르는가 보다. 오고가고 하는 세속적 인사는 없다.
일주문을 나서는데 여고생, 직장인 2사람을 만나 승용차에 동승시키다. 선계에서 속계로 하산하면서 선행을 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나 보다. 부산 가는 여고생은 시내버스가 있는 주차장에 내려주고, 마침 광주에 간다는 대구의 직장인은 광주에까지 동승했다.
2015. 1. 29. 현암
(오늘은 모처럼 현암이란 호를 써야겠다).
첫댓글 이교수가 현암이란 호를 아는 동문친구들은 몇 안될것 같은 나도 많이 불러주지는 안했지만
현암 호를 받아와 얼마나 되지 않아 알게되었지ㅋ 산사를 찾아 일반인도 체험 수행를
하는구려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선암사 편백숲이 장관이지요 현암친구 체험담에서 많이 배우고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