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말로 배워야하는데 자신없다고 통 입을 안여니…"
영어게임 교육효과는 별로…토플 잘할수록 회화 더 서둘러
▲사진설명 : 서울시내 초등학교 영어 원어민 교사들이 교육 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영어는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도구로,어려서부터 틀리더라도 자신있게 얘기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고 말하고 있다./채승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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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상토론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친 지 올해로 5년째.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직접 영어를 가르치거나, 영어담당 한국인 교사들을 상대로 교육을 실시하는 원어민 교사들이 만나 이 영어 조기 교육의 현실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들 교사들은 교육학·영문학·언어학 전공자들로 모두 TESOL(영어교사) 자격을 갖췄으며, 수년간 한국 내 학원에서 가르친 경험도 있다. 이들은 “애들이 영어에 깊은 흥미를 보이지만, 주당 수업 시간이 너무 짧아 조기 교육의 이점을 거두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여전히 책과 학원 위주의 수업에 더 치중하는 국내 영어 학습 분위기를 꼬집었다.
◆학원에선 ‘패스트 푸드 영어’가르쳐
=학원에서 가르치다 학교로 왔을 땐, 애들이 학교에서 더 바르게 행동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애들이 학원에선 왜 영어 배우러 왔는지 잘 아는 것 같았다. 담임 교사들과 부모들이 애들에게 학교 영어 시간을 재미있게 즐기되, 심각하게 공부하라고 얘기했으면 한다.
=전에 가르쳤던 학원에선 많은 외국인 교사들이 교육 방식도 모르는 18~19세의 불법 체류자들이어서 실망스러웠다. 이들은 ‘우노(uno)’ 카드게임이나 색칠하기 등으로 애들이랑 놀아주기만 했다. 반대로 학교에선 “우선 애들의 호기심이 마구 발동하게, 게임도 하고 질문도 많이 하게 해서 외국인에 대해 적극적인 생각을 갖게 하라”고 한다.
=영어 조기 교육 학원에서 게임이나 그림 그리기, 색칠하기를 하는 것은 시간과 돈의 낭비다. 그림 그리기도 좋은 교육 방법이지만, 이는 공공교육 기관이 할 일이다. 물론 언어 학습이나 대화에 목적을 둔 게임이라면 예외지만….
=게임이라도 뭘 성취하겠다는 목표가 명확히 설정되고 잘 짜여져 있으면 된다. 그런데도 애들이 집에 가서 “게임했다”고 하면, 한국 부모들은 일단 흥분한다.
=전에 일했던 유치원의 원장은 오히려 애들이랑 게임을 더 하라고 했다. 애들이 집에 가서 “영어가 재미없다”고 말하면, 부모는 곧바로 이웃 학원으로 애들을 옮기기 때문이다.
=학원은 학부모들의 불만이 있으면, 항상 외국인 교사를 비난한다.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무조건 부모의 비위를 맞추는 것 같다. 학원은 ‘패스트 푸드(fast food) 잉글리시’를 가르친다.
=그래도 학원이 학교보다는 영어를 잘 가르친다. 정부가 사(私)교육 비용을 줄이고자 한다면, 학원을 공격하기보다는 학원과 경쟁해야 한다.
=학교 영어 교육에 대해 부모들로부터 의견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통역이 필요해서인지, 너무 피드팩(feedback)이 없다. 오히려 학원에선 “(애들을) 높은 등급으로 올려 달라” “놀이·게임 시간이 많다” 등등의 불만이 들어온다. 학교에서도 영어 담당 교사들끼리 말고는 일반 담임 교사들과는 서로 전혀 얘기가 없다.
◆책으로만 배우는데 익숙
=아이들은 수동적인 상황에 너무 만족해 한다. 작년에 애들을 학습 과정에 보다 개입시키고 책임감을 갖도록 했지만, 애들이 별로 원치 않더라. “이런 것 하지 말고, 그냥 책 배우자”는 식이었다. 책으로 배우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워낙 주입식 교육에 시달리다 보니, 창의적일 시간도 욕구도 없다. 내 경우엔 스페인어를 친구와 전화로 연습하고 우리만의 ‘비밀 언어’로 키우면서 숙달했다. 얼마나 재미있나. 한국에선 그런 아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내 경험은 좀 다르다. 아이들은 교복부터 모든 것이 획일적인 형식에 매여 있다가, 칠판 모양이나 벽의 색깔부터 일반 교실과 전혀 다른 ‘영어 구역’(English zone)에 오면 너무 재미있어 한다. 한국어는 쓸 수 없고 완전히 영어에 빠지는 ‘몰입(immersion) 수업’이다. 어떤 때는 바닥에 앉아 게임도 하는데 애들은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에 즐거워한다.
=가급적 애들에게 무슨 얘기든 말할 기회를 많이 주자는 것이 내 철학이다. ‘10년 배우고도 영어 한마디 못한다’는 한국 농담을 안다. 문법·단어만 따지는 책으로 공부한 탓이다. 어쩔 수 없이 말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언어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틀려도 자신있게 얘기하는 게 완벽하게 얘기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런데도 초등학생들부터 벌써 자신 없으면 얘기하길 꺼린다. 실수해도 자꾸 얘기해야 더 정확한 언어에 가까워지는 것 아닌가. 그래서 가끔 애들을 명동으로 데리고 나가 외국인에게 말을 걸게 한다. 한국 문화에선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거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난 애들에게 이를 장려한다.
=더듬거리더라도 상대방이 알아들을 때까지 얘기하면서 어떻게든 자기가 (말하는 법을) 알아내야 한다. 이 과정을 혼자 겪어나가야 한다. 하지만 어떤 애들은 종종 지나가면서 참을 수 없이 심한 욕을 하기도 한다. 무슨 뜻인 줄이나 아는 건지….
◆일주일에 40분 수업으론 역부족
=4학년인 한국인 의붓딸이 있는데, 영어책이 3학년 때 배운 책이랑 비슷하고, 내용이 매우 제한돼 있다. 한 달에 겨우 몇 개의 표현을 배우는 정도다. “How are you?” “Fine, thank you.” “How is the weather?” 같은 것이다. 내가 전에 학원에서 1학년생에게 가르쳤던 것이 3학년 영어 수준보다 훨씬 높다. 공교육 기관의 영어 교육이 시작되는 3학년이 되면 다시 ABC부터 배우는 꼴이다.
=한국정부가 3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친다고 해서, “더 어린 나이에 영어에 노출되니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겪어보니 ‘나이가 어릴수록 영어 배우기가 쉽다’고 해서 그런 결정을 한 게 아니라, 그저 영어 교육 햇수를 더 늘리려고 한 것 같다. 책의 표현이 너무 간단하고, 이를 몇 년간 천천히 반복할 뿐이다. 한 주에 40분 수업 한 번(3·4학년) 하면서 이런 쉬운 표현을 되풀이해서 어떻게 애들을 영어에 흠뻑 젖게 하나.
=어차피 정부에서 만든 영어책을 교과서로 써야 한다면, 좀 더 과학적인 평가를 해 달라. 도대체 원어민들이 철저히 분석한 책인지, 원어민과 한국인이 한 팀이 돼서 만든 책인지 의문이다. 교과서의 지시사항은 모두 한국어라 이해할 수가 없다. 처음부터 한국인 영어 교사들을 위해 만든 책이다.
=원어민이 가르치는 학원 수준이 학교를 훨씬 능가한다. 언어는 원어민으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언제부터 배우기 시작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영어 조기 교육은 미국인이 영어의 억양과 문법을 자연스럽게 배우듯 그런 환경에서 배우게 해야 효과가 있다. 영어를 모르는 한국인 교사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곤 있지만, 애초 (조기 교육) 취지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또박또박 발음하는데도, 내 수업을 받는 한국인 교사 중 최소 10%는 전혀 영어로 말할 줄 모른다.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영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이 어떻게 교실에서 애들에게 영어를 가르칠지…. 물론 초등학교 영어 교육은 초기 단계라, (정착에) 시일이 걸린다.
=일부 교사들은 “왜 한국 사람이 영어를 배워야 하느냐”는 편견도 갖고 있다. 영어는 역사의 실수로 지금 세계어가 됐지만, 어차피 전세계를 향해 한국을 보여줄 수 있는 ‘도구’ 아닌가. 적극적으로 배워야 한다. 지나친 국민적 자부심은 종종 영어 학습에 장애가 된다.
◆‘마법의 지름길’은 결코 없어
=한국인들은 인내심이 부족하다. 언어 습득이란 전혀 몰랐다가 반쯤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 능숙하게 구사하는 순서를 밟게 되고 각각 여러 단계가 있다. 나중에 다른 것을 배우다가 6개월 전에 배웠던 것을 기억해내는 식이지, 어느날 갑자기 능숙해질 수 있나.
=성인 영어 학원에서 가르칠 때도 영어를 빨리 잘할 수 있는 ‘마법의 지름길(magical shortcut)’을 묻는 질문이 많았다.
=‘R’ 발음을 잘 하게 어린애의 혀 밑을 자른다는 얘기는 얼마나 황당한가. 나 자신도 초등학교 1학년때까지 ‘sh’ 발음을 잘 못했지만, 혀를 자를 생각은 안 했다.
=영어 학습을 둘러싼 잘못된 인식(misconception)이 많다. 너무 어려서 영어를 배우면 모국어를 까먹는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많은 나라가 2개 국어를 갖고 있지 않나.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부모들의 생각도 잘못됐다. 영어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Fine thank you, and you?”와 같은 것을 외우는 것보다는 훨씬 깊은 과정을 필요로 한다.
=내경험으론 토플(TOEFL), 토익(TOEIC) 성적이 높은 사람일수록 영어로 말할 줄은 모른다.
◆회초리 대신 경쟁풍토 만들어야
=외국인 교사들은 때리지 않는다는 것을 애들도 알고 있어, 통제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룹으로 나눈 뒤, 한 애가 떠들거나 싸우면 팀 전체가 함께 점수를 잃게 했다. 그랬더니 “쉬쉬, 그러지 마”하면서 자기들끼리 주의를 주더라. 또 잘하면 스티커와 점수제로 보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3년간 영어를 배운 애들과 그렇지 않은 애들을 같이 경쟁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자신과 경쟁하게 하고 그 성과를 평가해 상을 준다.
=경쟁은 늘 효과적이다. 나도 ‘잉글리시 파워 카드’라는 스티커를 써서,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애에게는 빨간색을, 잘하는 애에겐 화려한 색깔의 스티커를 준다. “잘했다!(Wonderful)”는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우리 학교에선 능력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눠서 경쟁하지만, 개인별로 누가 제일 잘하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전체 학생의 교육 능력을 최대화하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우리는 가나다 순서로 그룹을 만들었다. 능력별로 나눌까 했지만, (낮은 그룹에 속할 학생들의) 부모들이 불평할 것 같아 관뒀다. 그룹으로 나눈 것은 아이들의 수를 줄여서 가르치자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