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단경3 20031231-1..zip
惠庵 門人 淸峯 淸韻 선사 의역 강설
6. 六 祖 惠 能 大 師
1) 나무장사 少年
혜능대사(惠能638-713)는 당나라 태종(太宗) 정관(貞觀)12년 남해신흥(南海新興=중국최남부지방)의 빈농(貧農)의 아들로 태어났다.
속성은 노씨(盧氏)이며 3세 때 아버지를 잃고 소년 시절부터 나무를 해서 시장에 팔아 늙은 어머니를 효성으로 봉양했다.
교육을 받은 일은 없으나 그 마음은 진실하였고 비범한 데가 있었다.
어느날 시장으로 나무를 팔러 가다가 반점가(여관음식점거리)에서 객승(客僧)이 경을 독송하는 소리를 듣게 되어 나뭇짐을 벗어 놓고 자세히 듣다가 應無所住 而生其心(마땅히 머묾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경문에 이르러 홀연히 마음이 열리게 되었다.
독경하는 객승에게 "지금 읽는 책이 무슨 책이냐?"고 물으니
"금강경(金剛經)이라" 했다.
소년 나무장사 능(能)은 그 객승에게 금강경 배우기를 간청하며 자기가 조금전에 들은 바의 마음을 이야기하니 그 스님은 빙매산(黃梅山) 五조 홍인대사(弘忍大師)를 찾아가라고 소개해 주었다.
그러나 소년(능)은 늙은 어머니의 생계를 걱정하며 멀리 빙매산까지 갈수 없음을 한탄했다.
이때 그 객승은 능의 진실한 구도심과 비범한 태도를 살피고 느낀바 있어 금자(金子) 한 덩어리를 내주며
"이 금자의 일부로 너의 여비에 쓰고 나머지로는 네가 공부를 마칠 때까지 어머니 생활에 쓰도록 하라" 하였다.
이에 능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 하고 집에 돌아와 늙은 어머니에게 간청하여 허락을 얻었다.
2) 방아찧는 노행자
당시 5조 홍인대사는 7백여명의 문도(門徒)들을 거느리고 황매 빙매산에서 종풍(宗風)을 크게 드날리고 있어 사방에서 영재준걸(英才俊傑)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노능이 5조 홍인대사를 처음 뵈옵고 "화상의 높은 도를 배우려 하오니 가르쳐 주십시오" 하니
五조가 "어디서 왔는가?" 하셨다.
"영남에서 왔습니다" 하니
"영남인은 오랑캐인데 어찌 성불(成佛)하겠는가?" 하시자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겠지만 불성(佛性)에야 어찌 남북이 있겠나이까?"하니 홍인대사는 이 몇마디 말로 대기(大器)인 줄 알고 다른 학인들의 위해를 염려하여 큰소리로 꾸짖듯 "방앗간에 가서 일이나 하라"고 몰아 내었다.
이렇게 하여 노행자는 8개월 동안 7백여 명이 먹을 곡식을 몸무게를 무겁게 하고 자 돌을 짊어 지고 방아를 찧으면서 대중법회에나 참석하여 법문을 듣는 정도일 뿐 제대로 학인 생활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3) 神秀와 能行者의 悟道頌
어느날 五조께서 문하 대중을 모아 놓고
"대중은 각자의 깨달은 바를 나에게 보이라. 나의 뜻과 계합하면 의발(衣鉢)과 법을 전하여 제六조가 되게 하리라"하시어 일대포고를 하셨다.
그 당시 대중들은 모두 五조의 법을 이어 六조가 될 사람은 오직 신수(神秀)일 것 이라고 추측하였었다.
그는 五조 문하의 수좌로 학덕이 출중하며 대중의 존경을 한몸에 받아 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수도 五조 앞에 직접 나아가 깨달음을 보일만한 확실한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조실스님과 대중들이 다니는 벽에다가 이름을 밝히지 않고 게송을 지어 붙이었으니
五조는 이 게송을 보시고 대중에게 "후학들은 이 게송을 따라 그대로 수행하면 훌륭한 과를 얻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노행자는 여전히 방아 만 찧다가 어느 사미승이 외우는 신수대사의 게송을 듣고 그 게송이 써 붙여진 벽 앞에 안내 받아 가서 "그 어구(語句)는 매우 훌륭하나 아직 깨달음의 진의(眞意)는 증득하지 못했구나" 하고
글을 잘 모르는 노행자는 한 처사에게 부탁하여 자기가 부르는 게송을
이것을 본 대중들은 "신수대사의 게송보다 더 잘된 것 같다" 하며 수근대었다. 이것을 보신 5조스님께서 곧 노행자의 게송임을 알아 보시고 신발로 문질러 지우시면서
"이 게송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 하시며 대수롭지 않은 듯 조실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4) 能行者가 六祖가 되다.
5조는 슬그머니 방앗간으로 가셔서 방아를 열심히 찧고 있는 노행자에게 물었다.
"쌀은 다 익었느냐?" 하시니
"예, 쌀은 다 익었으나 아직 키질(점검)을 하지 못했나이다" 하였다.
이에 5조께서 주장자( 杖子)로 방아 머리를 세번 치시고는 뒷짐을 지고 가버리셨다.
그 뜻을 안 노행자는 삼경에 뒷문으로 조실방을 찾아갔다.
이날 밤 황매 五조 홍인대사의 조실방(祖室房)에는 병풍을 둘러 쳐 불빛을 가리고 은밀히 마주 앉은 五조께서 자비와 엄숙한 위의를 갖추시고 행자 노능에게 금강경의 대의와 요긴한 대문의 강설을 해 주시고 나서 전수되어 온 증표인 가사와 발우를 주시고 정법안장을 내려 인가하셨다.
"달마초조께서 만리 이역에 오시어 대법(大法)을 2조 혜가대사에게 전하실 때 사자상승(師資相承)의 증표로 주신 이 의발이 나에게 이르렀다.
이제 정법(正法)이 크게 일어날 것이니 이후로는 신표로서 의발은 전하지 말것이니 이것은 유형의 물건이기 때문에 쟁탈이 일어나 법란이 벌어질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이 의발은 너의 대에서 그치고 더는 전하지 말라.
이제 너는 곧 이밤으로 대중의 눈을 피하여 남쪽으로 피신하라.
대중이 전법한 이 일을 알면 너를 해칠것이다.
아무쪼록 남쪽멀리 산중에 은거하여 인연시절이 익어오면 크게 법을 드날리라" 하셨다.
이렇게하여 六조가 되신 행자 혜능(선사)은 오체투신 3배하고 스승의 지시에따라 하직 인사를 드리고 곧 빙매산을 밤중에 떠나게 되셨다.
5) 不思善 不思惡
노행자는 일개 나무꾼으로서 행자가 된지 8개월 만에 정법상승인 의발과 교법(衣鉢敎法)을 5조 홍인대사로부터 은밀하게 전수 받음으로써 제六조의 지위에 올랐으나 남으로 법란을 피해 가시게 되었다.
이튿날 늦게야 이 사실을 안 대중들은 노행자를 잡기 위해 앞을 다투어 사방으로 흩어져 달려 가게 되었다.
그 가운데 6조의 뒤를 제일 앞장서서 쫓고 있는 이는 혜명이라는 스님(후에 도명대사) 이었다.
그는 원래 무장출신으로 체격이 우람하고 천명 대중 가운데 제일 날쌔고 힘이센 승려였다.
그는 마침내 대유령이라는 큰 고개에 이르러 6조의 뒷 모습을 멀리 바라 볼 수있는 거리까지 쫓아와서
"노행자는 조사님의 의발을 거기 놓아라" 고 소리쳤다.
6조는 곧 의발을 큰 바위에 얹어 놓고 몸을 숨긴채 말했다.
"이 의발은 석가세존으로부터 전해진 전법의 신표인데 어찌 힘으로 뺏을 것인가? 그대가 힘으로 가져 갈 수 있거든 원대로 가져가라"하였다.
달려온 혜명은 희색이 만면하여 의발을 집었다.
그러나 의발은 웬일인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장사인 그는 바위라도 뽑을 듯 있는 힘을 다했으나 허사였다.
그는 점차 두려운 생각이 들면서 비지땀을 흘리며 잘못을 깨닫고 마침내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간청했다.
"행자님 소승은 결코 의발을 탐내어 쫓아 온 것이 아니오며 오직 불법을 구하고자 했을 뿐 이오니 원컨대 저를 불쌍히 생각하시어 법을 가르쳐 주시옵기 바라옵니다" 하니 몸을 숨기고 있던 6조는 몸을 나타내어 바위 위에 단엄하게 앉아 "갸륵하오, 그대가 진정으로 법을 구한다면 내가 기꺼이 법을 설해주리다" 하였다.
혜명은 六조의 숭고한 모습에 존경과 믿음과 환희가 용약하는 마음으로 세번 절하고 합장하고 숙연히 기다렸다.
이때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不思善不思惡) 이러한 때에 그대의 진면목(眞面目)은 무엇인가?" 하시는 말씀에 활연히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는 다시 절을하고 물었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밀어밀의(密語密意) 외에 또 다른 의지(意旨)가 더 있습니까?" 하니
"내가 지금 설한 것은 결코 밀의가 아니요. 밀의는 그대 스스로의 면목을 마음으로 밝혀 보는(反照) 바로 그곳에 있노라" 하셨다.
이렇게 하여 혜명은 천만가지 망상이 모두 쉬어 생각이 끊어진 자기 본래면목이 들어난 경지를 얻었고 불법의 비밀한 뜻은 태어나기 전부터 있는 본래의 실상인 마음을 밝혀 보는 데 있음을 깨달았으며, 그 뒤 법명을 도명이라 고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