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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호젓한오솔길 원문보기 글쓴이: 호젓한오솔길
주왕산 종주산행 (주왕산~ 가메봉~ 왕거암~ 명동재~ 먹구등~ 금은광이~ 장군봉)
* 위 치 : 경북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 일 자 : 2012.06.24(일요일)
* 동행자 : 호젓한오솔길 홀로
* 산행코스 : 주차장~ 대전사~ 주왕산(720.6m)~ 가메봉(887m)~ 왕거암(907.4m)~ 명동재(876m)~ 먹구등(846.2m)~ 두수람
~ 금은광이(812.4m)~ 장군봉(685m)~ 주차장
* 산행거리 : 약 25 Km
* 산행시간 : 9시간 40분 소요 (알바 1시간 20분 정도 포함)
올 여름 들어 다른 지방에서는 가뭄이 극심하고 때 이른 무더위로 전국의 전력 예비율이 위태로울 정도로 떨어지는 등 국민들이 생활의 고통이 심하다고 하는데, 다행이 포항은 그 동안 비도 충분이 와서 저수지 마다 물이 여유가 있고, 연일 동해에서 시원하게 불어 주는 샛바람(동풍) 덕분으로 아직 선풍기도 한 번 켜지 않고, 저녁엔 추워서 창문을 닫으며 더위를 모르고 지내니 아마도 포항은 축복 받은 도시임이 분명하다.
이번 주에도 어제 토요일 근무를 하는데 동해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니, 여름 산행하기에 그만인 날씨라는 생각을 하면서 안타깝게 하루를 보내고, 일요일에는 약속된 산행이 없는지라 주위의 명산인 주왕산을 종주 해보기로 한다. 주위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산이 어디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이웃동네 청송군에 있는 주왕산이라 할 것이고, 제일 좋은 산이 어디냐고 물으면 두 말 없이 우리들의 안방인 내연산이라고 할 것이다.
청송군에 있는 주왕산은 인기명산 14위에 당당히 올라 있는 주변의 명산이다. 주왕산 종주는 7년 전(2005.08.27일)에 무더위 속에서 8시간 30분이나 걸어서 종주한 조금은 장거리 코스다. 무엇보다 산행길 대부분이 등산로가 아니고, 국립공원으로 오랫동안 출입을 통제한 지역이라 숲이 많이 우거져, 요즘 처럼 무더운 여름철엔 길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침 일찍 서둘러 간다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인지 늘 출근하는 시간과 비슷하게 아침 7시 20분경에 집을 나선다.
7번 국도를 따라 영덕군 강구면 삼사 해상공원을 지나 좌회전 하여, 옥계 팔각산 앞을 통과하여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에 있는 주왕산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침 9시가 가까워진다. 주차비 4,000원을 지불하고 자동차가 몇 대 주차되어 있지 않은 한산 한 주차장에 주차하고, 서둘러 상가 골목을 따라 대전사 앞 매표소에 도착하니 입장료가 2,800원이다.
지난 번 종주 때에는 좌측 장군봉을 먼저 올라 시계 방향으로 돌았으나, 오늘은 주왕산 골짜기를 겨누게 될 카메라의 역광을 피하기 위하여, 지난 번과 반대로 우측 주왕산에 먼저 올라 가메봉, 왕거암, 명동재, 먹구등, 구수암, 금은광이, 장군봉 순으로 돌아올 요량으로, 주왕산 기암과 대전사 풍경을 사진에 담아보고 골짜기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기 전 입구에서 우측으로 난 주왕산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 주차장에서 대전사 쪽으로 올라가다 바라본 주왕산의 대표선수 기암과, 좌측의 장군봉 풍경을 담아본다.
* 상가 골목을 따라 올라가는데, 눈이 마주치면 들어와서 한 잔 하고 가라고 하여 고개를 못 돌리고 똑바로 올라간다.
* 주왕산 입구에 도착하여 좌측 매표소에서 표를 싸는데, 입장료는 2,800원이다.(주차비 4,000원을 합치면 6,800원인 샘이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입장객이 별로 없으니 검표를 하는 아저씨 심심하신지 열심히 준비운동을 하고 계신다.
주왕산 국립공원 : 면적 105.6㎢. 주왕산(721m)은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있다 하여 석병산(石屛山)이라고도 하며, 주방산(周房山)이라고도 한다. 중심부는 금은광이산(812 m)과 주왕산을 잇는 지역이며 태행산(太行山:933m)·연화봉(蓮花峰)·장군봉(將軍峰) 등을 거느리고, 이들 사이를 월외(月外)·주왕·내원(內院) 등의 계곡이 흐른다. 대전사(大典寺)·광암사(光岩寺)·연화사 등의 절과 주왕암 ·백련암(白蓮庵)·연화암 등의 암자와 기암(旗岩)·석벽암·급수대(汲水臺)·정암(淨岩)·아들바위 등의 기암과, 주왕굴·무장굴(武藏窟)·연화굴 등의 굴, 제1·2·3 폭포 외 월외·주산 폭포 등이 주요 관광자원을 이룬다.
망개나무·눈측백나무 등 393종의 식물이 자라고, 59종의 산짐승, 콩새 등 산새 100여 종이 서식한다. 주왕산 4대명물의 하나인 수단화(水丹花)를 비롯하여 망개나무·고양목·산작약 등이 봄에 만발하며, 복령(茯笭)·백출(白朮) 등의 약초와 송이버섯도 유명하다. 산허리에 높이 6 m의 자하성(紫霞城)이 15km 가량 뻗쳐 있고, 괴내[塊川] 중류에 있는 달기물 약수터도 찾는 사람이 많다.
주왕산은 1976년 3월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웅장하고 특이한 기암괴봉으로 이루어져 있어 장관이다. 설악산 및 영암 월출산과 더불어 남한의 3대 암산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주방천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대전사에 이르러 주왕산의 진면목이 펼쳐지기 시작하며. 절에서 오른쪽으로 계류를 끼고 올라가면 우람하게 치솟은 기암을 필두로 암벽과 기암괴봉이 치솟아 마치 바위병풍을 두른 듯하다고 하여 석병산(石屛山)이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주왕산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다음과 같은 전설에 의해서다.
중국 당나라 덕종 15년(799년, 신라 소성왕 1년), 후주천왕(後周天王)을 자칭하고 난을 일으켰던 주도(周鍍)가 당나라 군사에게 패하여 쫓겨 신라의 석병산으로 숨어든다. 석병산의 천연암굴에 숨어 있던 주도는 암굴 입구의 벼랑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에 세수를 하러 나왔다가 신라 마일성 장군의 화살에 맞아 죽는다. 이에 따라 주도가 숨었던 암굴을 주왕굴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한 그 후 나옹화상(1320∼1376)이 석병산을 주왕산으로 고쳐 불러야 이 고장에 복이 온다고 하여 산이름을 바꾸었다는 전설이있다.
주왕산 유래 : 주왕산은 역사적으로 신라시대에는 석병산, 신라말부터 주왕산으로 불리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주방산 또는 대둔산(시증동국여지승람1530, 대동여지도1861,청송군읍지1861), 주왕산(양양기구록1757, 주왕산지1833)으로 불리었다. 이러한 기록은 관에서 발간된 문헌들은 주방산, 대둔산으로 불렀으나, 민간에서 발간되 문헌에서는 주왕산으로 불린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주왕전설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 후 청송군지(1937)에서 공식적으로 주왕산으로 기록한 후 정식적으로 지명을 가지게 되었다. 신라 선덕왕의 후손인 김주원이 이곳에 와 있었다 하여 주방산이라 하였고, 신라말엽 중국 당나라 사람 주도가 자칭 주왕이라 칭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한뒤 이곳에서 은거하였다하여 주왕산으로 불리고 있다.
주왕의 전설 : 진나라에서 복야상서 벼슬을 지낸 주으라는 사람의 9대손으로 태어났으며, 이름이 주도였던 그는 어려서부터 천품이 범상치 않았을 뿐 아니라, 5세때 이미 글을 배워 11세 때에는 육도삼략(六韜三略)을 통달하였고 천문지리에도 능했다고 한다.
주도는 이때부터 왕후장성을 꿈꾸면서 “황하강의 물을 들이마시고 태산을 갈아 없애겠다”고 말했다 한다. 그러나 주도는 진나라의 후손 중에 큰인물이 없음을 한탄했는데, 그는 성인이 되자 장사 1백명을 거느리고 웅이산에 들어가 1만여 명의 군중을 모와 남양땅에 웅거하며, 이때가 당나라 덕종15년(799년, 신라 소성왕1년)이었다.
진나라의 후예인 주도가 후주의 천황임을 자청하며, 반기를 들고,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쳐들어가 대패하였다. 싸움에 패배한 주도는 숨을 곳을 찾아 요동을 통하여 신라로 도망을 왔다고 한다. 그때 주도를 따르는 군사는 1천여 명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 후 관동지역을 거쳐 진성(지금의 청송군 진보면)에 다다른 주왕은 석병산(주왕산의 옛이름)이 매우 깊고 험준하다는 말을 듣고 이곳에 숨어들었으나, 식량이 없었으므로 인근 주민의 식량을 약탈하는 등 노략질을 일삼게 되자 석병산에 많은 산적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온 나라안에 퍼졌다. 이때 당나라 조정에서 주도가 신라땅으로 도망갔음을 알고 신라에 주도를 잡아 줄 것을 부탁해 왔다. 당나라로부터 주도를 잡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신라황제는 석병산 일대의 산적들이 주도와 그의 군사들임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마일성 장군과 그의 5형제들에게 명하여 주도를 잡아들이라고 명령하였다. 결국 마일성 장군에게 패한 주도는 화살을 맞아 죽었다.
주왕산 대전사 :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672년(신라 문무왕 12)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919년(고려 태조 12) 눌옹(訥翁)이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절이 있는 산과 절의 이름은 주왕의 설화에서 유래한다. 《주왕내기(周王內記)》에 따르면, 중국 당나라의 주도(周鍍)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하고 신라로 건너와 주왕산에 숨었다. 이에 당나라에서 신라에 주왕을 없애달라고 부탁하자 마일성 장군 오형제를 보내 주왕의 무리를 죽였다고 한다. 그 뒤부터 주왕이 숨었던 산을 주왕산이라 하고, 절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라 하였다는 것이다. 절 이름은 나옹화상 혜근(惠勤)이 붙였다고 한다.
신라의 주원왕(周元王)이 수도했던 산이라서 주왕산이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주원왕은 태종무열왕의 8대손인 김주원(金周元)을 말하는데, 김주원이 김경신(뒤의 원성왕)에 밀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자 이곳에서 수도를 하다가 명주(지금의 강릉)로 가서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창건 이후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사(周房寺)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승군을 훈련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 중기에 불에 탄 것을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부속 암자로는 백련암(白蓮庵)과 주왕암(周王庵)이 있다. 이 중 백련암은 주왕의 딸 이름에서 유래하며, 옛날에는 이 암자에 큰 종이 걸려 있어 아침 저녁으로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고 하나 지금은 걸려 있지 않다. 주왕암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주방사로 추정되며, 나한전과 가학루·산령각 등이 남아 있다.
대전사 건물로는 보광전(普光殿)과 명부전·산령각·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보광전 앞 삼층석탑 2기와 사적비·부도 등이 남아 있다. 이 중 보광전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2호로 지정된 정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부에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李如松)이 유정에게 보냈다는 친필 서신을 목판으로 음각한 것이 보관되어 있다. 보광전 앞의 석탑은 근처에 흩어져 있던 석탑재를 짜맞춘 것이다.
절 오른쪽 밭에는 우물을 메운 자리가 남아 있는데, 이 우물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본래 이 절에서는 부처에게 올리는 물을 매일 냇가까지 가서 길어오곤 하였다. 이를 귀찮게 여긴 승려들이 조선 중기에 앞뜰에 우물을 파고 그 물을 길어서 청수(淸水)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곧 불이 나서 전각이 불에 타고 말았다. 뒷날 한 도사가 와서 불이 난 이유를 설명하기를, 이 절의 지세는 배가 바다에 떠서 다니는 부선형(浮船形)인데 우물을 판 것은 마치 배 바닥에 구멍을 낸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다시 우물을 메웠다 한다. 이밖에 노루가 우물에 빠져 죽은 뒤 메웠다는 설도 있고, 이 물을 마신 승려들의 힘이 넘쳐 난폭해지는 바람에 인근 주민들의 원성이 많아지자 메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절이 들어선 산은 1976년 3월 26일 주왕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 대전사 보광전과 석탑.
* 대전사 경내에 있는 돌탑과 주왕산의 대표선수 기암.
* 대전사 후문으로 나가서 주왕산 골짜기 입구로 들어선다.
* 다리를 건너기 전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우측 주왕산 가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간다.
* 주왕산 오름길에서 돌아본 기암.
주왕산의 기암 : 주왕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고개를 들어 보이는 것이 바로 이 기암으로 산에 들어서는 사람을 압도하는 위엄을 갖추고 있다. 주왕이 신라 마장군과 일전을 벌일때 이바위에 이엉을 두르고 쌀 뜨물을 흘러 보내 적을 현옥시켰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웅장한 자태는 주왕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 주왕산 오르는 오솔길에는 간혹 산꾼들과 탐방객들이 눈에 띈다.
* 주왕산 입구에서 보이는 암봉들. 멀리 좌로부터 혈암, 장군봉, 기암.
* 주왕산 골짜기의 압봉들. 연화봉, 병풍바위, 급수대.
* 주왕산을 오르는 산님들 모습.
* 초록 속에서 주왕산 정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 우측으로 부동면 상의리 쪽 풍경.
* 좌측으로 주왕산 골짜기 암벽 풍경.
* 병풍바위와 급수대 풍경.
* 주왕산 올라가는 계단길.
* 주왕산 정상 풍경. 해발 720.6m로 낮은 봉우리가 주왕산의 주봉이다.
주왕산 [周王山] : 경상북도 청송군과 영덕군에 걸쳐 있는 주왕산. 태백산맥의 남단에 위치하는 주왕산(721m)은 암벽으로 둘러싸인 산들이 병풍처럼 이어져 석병산(石屛山) 또는 주방산(周房山)이라고도 한다. 주왕산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진나라에서 주왕이 이곳에 피신하여 왔다고 해서 붙은 것으로 산봉우리, 암굴마다 주왕의 전설이 얽혀 있다.
주요 명소로는 신라 문무왕 때 창건한 고찰 대전사(大典寺)를 비롯해 주왕의 딸 백련공주의 이름을 딴 백련암(白蓮庵), 청학과 백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鶴巢臺), 앞으로 넘어질 듯 솟아오른 급수대(汲水臺), 주왕과 마장군이 격전을 치렀다는 기암(旗巖), 주왕의 아들과 딸이 달 구경을 했다는 망월대(望月臺), 동해가 바라다보이는 왕거암, 주왕이 숨어 살다가 죽었다는 주왕굴(周王窟) 등이 꼽힌다. 그밖에 자하성(紫霞城:일명 주방산성), 주왕이 무기를 감추었다고 하는 무장굴(武藏窟)·연화굴(蓮花窟) 등의 명소가 있다. 연꽃 모양의 연화봉과 만화봉, 신선이 놀았다고 하는 신선대와 선녀탕, 폭포 등은 경승지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산이 깊고 지질이 우수하여 다양한 동·식물이 넓게 분포하고 있는데 특히 회양목, 송이버섯, 천연이끼, 산철쭉(수달래 혹은 水丹化라고 부른다) 등은 주왕산의 특산물로 유명하다. 소나무 군락을 비롯해 망개나무·복장나무·자작나무·난티나무 등 희귀식물의 군락도 볼 만하다. 산세가 웅장하고 기암절벽과 폭포가 많아 자연경관이 빼어난데, 특히 주왕암과 별바위에 이르는 13㎞의 숲이 유명하다.
1976년 산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77년에는 국민관광지로 설정되었다. 2003년 10월 31일 명승 제11호로 지정되었으며 지정명칭은 청송 주왕산 주왕계곡 일원이다.
* 주왕산을 지나 가메봉으로 가는길.
저기 끝에서 우측으로 통제된 길이 가메봉으로 가는 능선길인 줄 알고 들어가니, 헬기장이 나오고 능선으로 계속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수풀 속에서 주위에 지형이 잘 보이지 않지만 아무래도 아니다 싶어 다시 올라와 길을 따라 걷는다.
(약 10분간 더듬거리며 알바를 한 느낌이다.)
* 후리메기 삼거리 가는 이정표.
후리메기 삼거리 골짜기까지 내려가지 않고 바로 능선을 따라 가메봉으로 가는 통제된 길을 찾다가 한바탕 알바를 하고, 여기서 잠시 내려가서 우측으로 '등산로 아님'으로 막아둔 희미한 옛길을 찾아 가메봉으로 향한다. 주왕산에서 가메봉으로 가는 능선 길은 2005년 1차 종주 때에도 통제되어 있었으니, 아마도 약 10년간 통제되었다가 이제 등산로를 개방하려는 듯 곳곳에 이정표 설치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 가메봉으로 가는 옛길.
* 지정된 탐방로가 아니고,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고 있으니 주의 하라는 표시가 걸려 있다.
* 곳곳에 옛길의 흔적이 선명하다.
* 등산로를 개방하려고 이정표 설치 공사를 하는 중인가 보다.
* 낙엽 쌓인 옛 오솔길이 초록 속에 정겹다.
* 이곳에도 새로 이정표를 설치한 것을 보니 등산로를 곧 개방할 모양이다.
* 낙엽 소복이 쌓인 오솔길은 호젓하기만 하다.
* 이제 수풀 우거진 오르막을 치고 올라가는 것이 가메봉으로 접어드는가 보다.
* 이곳 이정표 뒤로 난 옛 길로 올라오니, 지정된 탐방로와 만난다.
* 가메봉 오르는 계단길.
* 가메봉 석탑봉우리에 올라선다.
* 가메봉에서 내려다 본 절골 풍경.
* 가메봉 전경.
* 해발 887m의 가메봉 정상이다.
석름봉(가메봉) : 언제부터 가메봉으로 지명이 바뀐 것은 알 수 없으나 산지당의 중턱에 있는 가마를 닮은 가메바위에서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
* 가메봉에서 바라본 왕거암으로 가는 초록 능선, 왕거암은 안개 속으로 숨어버렸다.
* 주왕산 골짜기 건너 가야 할 명동재와 먹구등도 모두 안개 속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
* 가메봉 바위에 뿌리 내리 돌양지꽃과 기린초.
* 가메봉을 지나 안부 사거리에 내려오니, 왕거암으로 가는 길은 '탐방로 아님'으로 통제되어 있다.
여기서 부부 산꾼이 앉아 정답게 점심을 먹고 있어, 서로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데,
그리로 가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오기에 왕거암과 명동재를 돌아 대전사 쪽으로 내려간다고 하고 올라간다.
여기서 만난 부부 산꾼이 주왕산 이후에 오늘 산행길에서 만난 사람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 왕거암으로 가는 길에 초록 융단.
* 부드러운 초록이 펼쳐진다.
* 주왕산의 초록 머리 가르마 오솔길을 걸어 가는 나는 한 마리의 개미나 이 정도 되는가 보다.
* 왕거암으로 가는 오솔길은 우거진 곳도 있다.
* 목쟁이의 부드러운 초록은 고라니 등 초식 동물의 식당인 듯 뜯어 먹고 새순이 올라오고를 반복한 흔적이 있다.
* 썩은 둥치에 올라오는 버섯.
* 우거진 수풀 길을 잠시 치고 올라가니.
* 우거진 헬기장이 나오는 여기가 왕거암 이란다.
* 해발 907.4m의 왕거암 정상인데,
오늘 종주 산행을 하는 주왕산 계곡을 둘러싼 봉우리 중에 제일 높은 봉우리다.
주위에 작은 바위 몇 개가 숲 속에 숨어 있는 이 곳에서 주왕이 살았으리라는 느낌은 들지는 않는다.
* 다시 초록 가르마 오솔길은 이어진다.
* 부드러운 초록 숲은 이곳 주왕암에서 대궐령을 거처 별바위까지 (약 13Km) 펼쳐지는 주왕산의 또 다른 진풍경 이란다.
* 숲 속의 초록 융단.
* 왕거암을 조금 지나서 낙동정맥 길과 합류하여 먹구등까지 동행한다.
* 왕거암을 지나서 만난 낙동정맥 길은 느리미재를 향하여 서서히 고도를 낮추다가 골짜기로 뚝 떨어진다.
* 지도 상으로는 산행의 중간 지점쯤 되어 보이는 느리미재 삼거리. 출발한지 3시간 정도 소요되어 도착한다.
오늘 종주 길에 고도가 제일 낮아 보이는 이곳 느리미재에서 좌측 골짜기로 내려가면 내원동 마을 터를 지나 주왕산 골짜기로 내려간다. 정오가 조금 지난 점심 시간이라 여기서 점심을 먹을까 하다가 배부른 오르막 길이 부담스러워 출출한 배를 사탕으로 달래며 명동재 까지 그냥 가기로 한다.
* 다시 명동재를 향하여 차츰차츰 고도를 높여 간다.
* 이곳에도 숲 속 초원은 이어진다.
* 잠시 낙엽 오르막 길에서 가뿐 숨을 토하면,
* 한숨 돌리게 하는 초록 오솔길이 이어진다.
* 분위기 호젓한 길은 이어진다.
* 봉우리에 헬기장이 있어 여기가 명동재인가 싶었는데,
* 조금 더 가니 작은 바위가 하나 지키고 있는 명동재가 나온다.
해발 875m 명동재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 출발한지 4시간이 소요된 샘이다.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점심 도시락을 해결하고 서둘러 또 출발한다.
* 먹구등 오르는 오르막 길 폭신한 낙엽이 좋다.
* 낙엽과 초록이 어우러진 바람 시원한 오솔길.
* 낙동정맥과 갈라지는 해발 846.2m 먹구등에 도착한다.
여기 먹구등 정상에서 낙동적맥 길과 헤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정상에서 우측으로 휘어지는 큰길에 낙동정맥을 표시한 커다란 리본이 길 복판에 달랑 달려 있어, 별생각 없이 여기서 갈라지는가 보다 하고, 좌측으로 수풀 우거진 작은 오솔길로 들어서는 실수를 범하고 만다.
* 룰루랄라 작은 초록 오솔길을 따라 신나게 내려가는데...?
7년 전에 꺼꾸로 돌아온 길과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오랫동안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계속 따라 내려가니 길은 점점 고도를 낮추고, 숲 사이로 보이는 건너 산 봉우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갑자기 골짜리로 뚝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지도를 꺼내어 들여다 보니, 아풀사 이 길은 먹구등 정상에서 옛날 내원동 마을로 오르내리는 길인가 보다. 숲 속 비탈에서 되돌아 보니 내려온 능선이 하늘 같이 높아만 보인다.
이대로 내원동 마을로 하산하여 주왕산 골짜기 풍경을 즐기면서 내려가버릴까 하는 마음 약한 생각이 자꾸 든다. 잠시 제자리에 서서 망설이다가, 아서라 마음 먹고 온 종주 산행을 여기서 포기 할 수가 없어서 내려온 길을 다시 돌아 올라가기로 한다. 동풍 시원한 능선과는 달리 알바로 떨어진 골짜기는 마음이 급해서인지 무덥기만 하다. 수플을 헤집으며 비스듬이 비탈을 붙어서 기를 쓰고 먹구등까지 다시 돌아 올라가니, 시간이 벌써 오후 3시를 가리킨다. 넉넉히 1시간 이상 알바를 한 샘이다.
* 다시 올라온 먹구등 정상에서 낙동정맥 길을 따라 잠시 내려가니, 펑퍼짐한 곳에 갈림길을 알리는 리본들이 보인다.
여기서 좌측으로 희미한 길을 따라 두수람으로 향한다.
* 잠시 고도를 낮춘 두고개를 지나고.
* 수풀 우거진 길을 따라 두수람을 향하여 고도를 높여간다.
* 해발 높이를 알 수 없는 두수람에 도착하니, 치고 올라온 고도를 보아 먹구등과 명동재보다 훨씬 높아 보이는 느낌이다.
* 금은광이를 향하여 가는 고개 길에 부처처럼 생긴 바위가 보인다.
* 옆에서 보니 눈사람처럼 생겼다.
* 금은광이인 듯한 헬기장.
여기서 '금은광이 사거리'로 간다는 것이 우측으로 길을 잘못 들어 또 알바를 한다.
* 분지골로 하산하는 길로 잘못 내려와버렸다.(오늘 3번째 알바를 한다.)
* 좌측 '등산로 아님'으로 통제된 곳으로 방금 내려온 곳이고, 금은광이 삼거리까지는 우측 길로 0.7Km를 돌아 올라 가야 한다.
* 금은광이 사거리 이정표.
* 금은광이 삼거리 전경. (한쪽 내가 내려와야 하는 능선은 등산로가 아님으로 삼거리로 표시되어 있다.)
* 월미기, 장군봉으로 가는 길은 정식 등산로 이므로 잘 정비되어 있다.
* 아낌없이 주는 나무 :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매미'로 인해 고목들이 많이 피해를 입은 구간으로, 쓰러진 고목은 균류 및 미생물의 주요 공급원이 되며 각종 곤충의 서식 장소로 이용되는 등 자연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탐방객의 안전한 산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고목이 쓰러진 상태로 유지,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 월미기로 가는 초록길.
* 주왕산 소나무의 상처
주왕산의 울창한 소나무의 상처는 일제 말기에 자원이 부족한 일본군이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 에너지원인 연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송진을 채취한 흔적 일부가 남아 있으며, 그 후 1960년대 중반 당시 경제 사정에 의해 주왕산이 개발 대상이 되어 3년동안 송진 채취 흔적 일부도 남아있다. 이 사업이 한창 진행되던 1976년에 주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중단되었다고 한다. 송진 채취 과정에서 생겨난 빗살무늬 상처는 반세기가 넘게 지나도록 근대사의 한 단면을 간직한 체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다.
* 월미기 삼거리로 가는 길에.
* 앞에 돌탑을 정성껏 쌓아놓은 멋진 바위도 보인다.
* 월미기 삼거리 이정표.
* 월미기 삼거리에서 장군봉으로 가는 길은 150 미터 정도 고도를 높여 간다.
* 장군봉 가는 길에 전망 바위에서 바라본 기암과 건너 아침에 올라가던 주왕산 풍경이 시원하다.
* 당겨본 기암은 봉우리 사이 마다 신비로운 초록 비밀을 간직한 체 우뚝 솟아 있다..
* 장군봉으로 가는 오르막 길에서 바스락 바스락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 낸다.
장군봉 : 중국의 주도가 쫓겨 주왕산에 들어와 도적질을 일삼았고, 조정에서 마일성 장군이 상장군(上將軍)이 되고 이성(二聲)은 선봉장(先鋒將),삼성(三聲),사성(四聲),오성(五聲)은 후장군(後將軍)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진을 쳤다. 그러나 마장군의 군사들은 선뜻 주왕을 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주왕의 군사들이 기암봉에 이엉을 씌워 노적가리처럼 위장하여 군량미가 많은 듯이 보이게 하니, 마장군 형제들은 주왕의 군사가 많은 것으로 여기고서 감히 공격하지 못한 것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마장군은 장군봉에 올라 위장해 놓은 노적가리를 향해 활을 쏘았는데, 기암의 중간쯤에 바위가 뚝 떨어져 나간 듯한 흔적이 바로 마장군이 화살을 쏘아 바위가 떨어져 나간 것이라고 한다.
* 마일성 장군의 전설이 있는 장군봉을 뒤로 하고.
* 장군봉에서 바라본 주왕산.
* 장군봉에서 바라본 기암.
* 부동면 상의리 주왕산 입구 전경.
* 기암과 주왕산, 대전사 전경.
* 가까이서 본 대전사 전경.
* 기암과 주왕산.
* 기암 전경.
* 주왕산의 바위와 초록.
* 누군가 정성스럽게 돌탑을 쌓았다.
* '바위채송화'도 피었다.
* 우측으로 보이는 '혈암' 전경.
* 대전사와 월외리 전경.
* 현재 시간 오후 6시에 바라본. 대전사 전경이 한산하게 보인다.
* 한산한 주차장에는 내 자동차도 보인다.
* '바위채송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 나무계단 길.
7년 전, 처음 주왕산 종주 길에 처음 이 곳을 올라오는데 철계단 공사를 한다고 못 올라가게 한다. 아래 안내소에서 올라가도 된다고 허락을 받아 올라 왔다고 하니, 아래서 허락을 한 사람이 아버지이고, 여기서 공사를 하는 젊은 사람이 아들인 모양인데, 아버지가 허락하여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을 돌려 보낼 수가 없었던지 '아이구 아버지도 참' 하면서 조심해서 올라 가시라며 길을 비켜주어, 설치중인 계단 철구조물 밑으로 기를 쓰고 기어서 올라오던 기억이 새롭다.
* 계단에서 바라본 장군봉.
* 마일성 장군의 화살에 맞아 쪼개졌다는 기암의 옆꾸리.
신라 마장군의 화살은 박격포 보다도 더 센 아마도 미사일쯤은 되는 모양이다.
* 잘 단장된 나무계단 길을 따라 골짜기로 내려선다.
* 장군봉 골짜기에서 어디 씻을 물이 있나 하고 찾아 보니.
가뭄으로 말라가는 개울에 조금씩 고인 물 웅덩이에는 물 반 고기 반 이다.
물속의 생명들이 물을 따라 모여들어 바글거리며 비를 기다리고 있는 곳에서 감히 씻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포기한다.
* 개망초 동산 위에 장군봉.
* 비릿한 밤꽃 향기와 우뚝한 기암이 조화를 이룬다.
* 대전사 앞에서 바라본 기암이 주왕산의 얼굴이다.
* 오늘 걸은 주왕산 종주길(알바 3번으로 1시 20분 정도의 시간과 체력을 낭비한 산행길.)
<오솔길의 주왕산 종주기>
1차, 2005.08.27 : 장군봉- 금은광이- 두수람- 먹구등- 명동재- 왕거암- 가메봉- 주왕산 : 8시간 30분 소요
2차, 2012.06.24 : 주왕산- 가메봉- 왕거암- 명동재- 먹구등- 두수람- 금은광이- 장군봉 : 9시간 40분 소요(알바 1시간 20분)
오늘 산행의 대부분이 오랫동안 출입을 통제한 수풀 우거진 능선 길이라, 이정표와 리본이 하나도 없는 복잡한 옛길을 따라 가다 보니, 길을 잘못 들어 알바를 3번이나 하면서, 1시간 20분 정도의 시간과 체력을 낭비한 산행이라 온 몸에 진이 쪽 빠진 듯한 기분으로 자동차에 돌아오니, 출발할 때 하산 예정 시간을 훨씬 넘긴 오후 6시 40분이다. 산행 시간을 9시간 40분을 소요한 샘이다.
자동차에 돌아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옛날에 늘 다녀 눈에 익은 죽장면으로 둘러서 오려고 하다가, 네비게이션을 치니 아침처럼 영덕군 강구면으로 돌아서 가라고 하며, 주행거리 80Km 와 도착 예정 시간을 저녁 8시 31분이라고 알려준다. 잘못하면 주말 드라마 무신을 처음부터 못 보겠다 싶어 서둘러 포항을 향해 달린다.
여름철 주말 오후에는 늘 교통이 막히는 동해안 7번 국도가 밀리지나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시간이 늦어서인지 도로가 생각보다 원활하게 흐른다. 흥해읍을 지나니 마눌에게서 전화가 걸려와서 시원한 막걸리 한 병 싸다 놓으라고 부탁하고, 저녁 8시 20분경에 집에 도착하여 얼른 샤워하고, 시원한 포천 막걸리 반주에 저녁을 먹으니 TV 에서는 드라마 무신이 막 시작되는 멋진 타이밍이다. 샛바람 불어 시원한 여름 어느 날의 주왕산 초록 종주 길을 갈무리해본다.
2012.06.24 호젓한오솔길
첫댓글 와~~~
항상 맘속에 있는 주왕산.......
오솔길님의 후기를 감상하고 나니 당장 달려가고 싶어집니다^^
감사합니다..
늘 즐거운 산행길 되세요..
남편이랑 새벽에 출발할라 했더니 빗님 때문에~
그래도 촉촉히 내려주는 단비에 가뭄 해갈이 되었으면...
오늘도 여유로운 시간속에 행복하세요..
가을철 풀잎이 좀 오그라들고 단풍 고울 때가 좋을 듯합니다.
감사합니다..늘 안전한 산행길 되세요..
완전 구경 잘 하고 갑니당...^^
감사합니다.. 늘 즐거운 산행길 되세요.
주왕산~가메봉~금은광이~장군봉~대전사로
돌고 왔답니다..
왕거암 명동재 먹구등 두수람 고개는 엄두조차도 못내고..
누구랑 함께라면 모를까...ㅋㅋ
볼만한 곳은 다 보고 오셨네요.
나머지 구간은 오로지 똑 같은 우거진 숲과 길 뿐입니다...ㅎㅎ
감사합니다.늘 즐거운 산행길 되세요..
왕거암은 통제되어 있어 진정한 종주는 못했는데 통제가 해제도면 가봐야겠네요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겁고 안전한 산행길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