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웅 선생님께서 오랜만에 대학에서 학생청년들과 이야기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참고 : 기독청년학생운동과 사회참여, 시민사회운동 - 안재웅 선생님 (2019.9.25)
'인연'에 대해 말씀해주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가고 싶어 했던 대학에 두 번이나 떨어져 군대를 가려고 하였지만 교회 목사님의 대학에 있다가 군대를 가라는 말을 듣고 숭실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세요. 입학하고 얼마 뒤, 독재정권을 물러나게 한 4·19혁명이 일어났고, 선배들 뒤를 따라다니며 데모에 참여했는데, 그때 공부만큼이나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셨어요.
대학에서 4년간 활동한 기독학생회는 아주 각별한 것이었습니다. 종로에 있는 전국 기독학생회 본부로 각종 세미나, 강연회를 다니며 새로운 신학사상을 접하고, 타대학생들과 많은 교류를 했습니다. 무엇보다 기독학생회 지도교수님이셨던 조요한 교수님, 성경연구반의 교사로 계셨던 오재식, 재임스 레이니 선생님과의 인연을 잊을 수 없다고 하셨어요.
스승과 제자로 쌓은 4년간의 우정은 안재웅 선생님의 졸업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군 제대 후 입학허가서까지 받은 상태로 유학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박형규 목사님이 기독학생회 간사를 권하여 유학을 접고 실무 활동을 하셨어요. 함께 일한 오재식 선생님과는 기독학생운동을 새롭게 펼쳐가려고 학생사회개발단(학사단)을 만들었습니다. 학사단의 가장 중추적인 역할은 학생들을 엮어 현장으로 가서 보고 행동하게 하는 것이었어요.
유신체제를 고발하고 저항했던 기독학생운동은 쉬이 당국의 감시대상이 되었어요. 안 선생님은 네 번이나 옥고를 치렀고요.
하지만 숱한 외부의 압력에도, 학생들과 모이기에 힘쓰셨습니다. 이후, 세계학생기독교연맹(WSCF) 아시아 총무를 하는 등 계속하여 기독학생운동의 자리에 있으셨습니다.
이렇게 청년학생 때 만난 스승과 선배들로 인해 지금까지의 삶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특히, 이 인연이 졸업 이후에도 쭉 이어졌다는 것이 주목되었습니다. 인연이라는 것이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뜻과 계획 너머에 있다는 것이 참 다가와요. 저도 기독청년학생들을 만나기 시작하여 지금 이자리에 있는게 신비로운데, 여러 인연들로 지금에 이르렀다 생각해요.
그 인연들과 인생의 방향을 모색하고, 중요한 전환의 시기를 함께 통과하며 배운 것을 스스로 뜻 세워 올곧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안재웅 선생님과의 만남도 그러한 소중한 인연 가운데 하나라 생각됩니다. 고마운 인연들 기억하며, 저도 누군가에게 그러한 인연이 되는 삶 살아가길 마음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