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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文科)
김피(金彼) - 정종조(正宗朝)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였다.
양봉래(梁鳳來) - 태종조(太宗朝)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였다.
최연(崔淵) -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였다.
송득시(宋得時) - 판서(判書)에 올랐다.
송포(宋褒) - 좌랑(佐郞)에 올랐다.
장중성(張仲誠) - 세조조(世祖朝)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였다.
김보중(金寶重) - 절의편(節義篇)에 있는 김계금(金係錦)의 아들이다. 중종조(中宗朝)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장흥부사(長興府使)에 올랐다.
어한형(魚漢亨) -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직학(直學)에 올랐다.
주(註) 340. 직학(直學) : 고려조(高麗朝) 국자감(國子監) 국학(國學) 성균관(成均館)과 조선조(朝鮮朝) 성균관(成均館)의 종구품(從九品) 벼슬.
김일준(金逸駿) -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부사(府使)에 올랐다.
안희(安憙) - 선조조(宣祖朝)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부사(府使)에 올랐다.
류영락(柳英洛) - 자(字)는 보국(補國)이고 충신편(忠臣篇)에 있는 류식(柳湜)의 손자(孫子)이다. 현종조(顯宗朝)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환로(宦路)가 다단(多端)하였으며 빼어난 뜻으로 사진(仕進)하였고 임천(林泉)에서 독서(讀書)하며 자손(子孫)들을 가르쳤다.
주(註) 341. 사진(仕進) : 사진(仕進)은 관리(官吏)가 근무처(勤務處)로 간다는 뜻.
김재진(金載鎭) - 순조조(純祖朝)에 좌랑(佐郞)에 올랐다.
허직(許稷) - 철종조(哲宗朝)에 대사간(大司諫)에 올랐다.
주(註) 342. 대사간(大司諫) : 조선조(朝鮮朝) 사간원(司諫院)의 으뜸 벼슬로 정삼품(正三品)임.
김석렬(金奭烈) - 고종조(高宗朝)에 정언(正言)에 올랐다.
주(註) 343. 정언(正言) : 조선조(朝鮮朝) 사간원(司諫院)의 정육품(正六品) 벼슬.
홍수인(洪秀寅) - 전적(典籍)에 올랐다.
주(註) 344. 전적(典籍) : 성균관(成均館)의 정육품(正六品) 벼슬.
노상익(盧相益) - 자(字)는 치삼(致三)이고 호(號)는 대눌(大訥)이며 유행편(儒行篇)에 있는 노필연(盧佖淵)의 아들이다. 관직(官職)이 홍문관(弘文館)의 시강(侍講)이었으며 집으로는, 피난지(避難地) 요하(遼河)에서 12년(年) 후에 돌아와 압록강(鴨綠江)에 이른 해가 나이 90의 늙은이였는데, 천산재(天山齋)를 선영(先塋) 옆에 지어 놓고 드디어 은거(隱居)하였다.
주(註) 345. 시강(侍講) : 조선조(朝鮮朝) 경연(經筵)에서 임금에게 글을 강독(講讀)하던 벼슬.
허석(許襫) - 부학(副學)에 올랐다.
주(註) 346. 부학(副學) : 부제학(副提學).
양재팔(梁在八) - 시독(侍讀)에 올랐다.
주(註) 347. 시독(侍讀) : 조선조(朝鮮朝) 말(末)과 대한제국(大韓帝國) 때 경연원(經筵院)의 판임관(判任官) 벼슬임.
사마(司馬)
안곤도(安坤道) - 음사편(蔭仕篇)에 있는 안선(安善)의 아들이다. 세종조(世宗朝)에 생원(生員)이 되었다.
안보(安輔) - 음사편(蔭仕篇)에 있는 안선(安善)의 손자(孫子)이다. 생원(生員)이었는데 학행(學行)으로 천거(薦擧)되어 참봉(參奉)이 되었다.
강신효(姜藎孝) - 자(字)는 인경(仁卿)이고 호(號)는 송담(松潭)이며 진양인(晉陽人)이고 은열공(殷烈公) 강민첨(姜民瞻)의 후손(後孫)이다. 경술(經術)에 밝았고 바른 행실(行實)을 하여 긍식(矜式)이 있었다. 성종조(成宗朝)에 생원(生員)이 되었는데 문인(門人)인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이 조예(造詣)를 깊이 얻어 글을 지어서 제사(祭祀)를 지냈다.
주(註) 348. 경술(經術) : 경서(經書)에 관(關)한 학술(學術).
김옥린(金玉麟) - 절의편(節義篇)에 있는 김계금(金係錦)의 손자(孫子)이고 진사(進士)가 되었다.
김영(金瑛) - 김해인(金海人)이고 진사(進士)가 되었는데 문장(文章)과 학문(學問)을 표치(標致)하여 선비와 벗들이 추앙(推仰)하고 따랐다.
주(註) 349. 표치(標致) : 취지(趣旨)를 드러내 보임.
김목(金穆) - 자(字)는 경온(敬溫)이고 김해인(金海人)이며 모암(慕庵) 김극일(金克一)의 후손(後孫)이다. 중종조(中宗朝)에 진사(進士)가 되었다.
강추(姜鰍) - 호(號)는 우헌(愚軒)이고 강신효(姜藎孝)의 아들이다. 유림(儒林)의 존중(尊重)과 명망(名望)이 있었으며 향사(鄕射)를 창설(創設)하고 강습(講習)을 담당(擔當)하여 음사례(飮射禮)를 하였다. 진사(進士)가 되었다.
주(註) 350. 향사(鄕射) : 시골 한량(閑良)들이 모여 활 쏘는 곳.
주(註) 351. 음사례(飮射禮) : 활쏘기 재주를 겨루고 술을 먹던 일.
김엄(金淹) - 절의편(節義篇)에 있는 김계금(金係錦)의 증손(曾孫)인데 진사(進士)가 되었다.
송정백(宋廷伯) - 자(字)는 공보(公輔)이고 호(號)는 청암(晴庵)이며 충신편(忠臣篇)에 있는 송빈(宋賓)의 아들인데 진사(進士)가 되었다. 선조(宣祖)의 부름을 받고 전정(殿庭)으로 들어가 대학(大學) 한 부(部)를 하사(下賜)받아 높은 소문(所聞)이 아름다웠으며 신오봉(申梧峯)의 공경(恭敬)과 신호계(申虎溪)의 적절(適切)한 도(道)와 김오우(金五友)의 친근(親近)함을 좇아 노닐었다. 동계(桐溪) 정온(鄭蘊)이 만가(挽歌)에서 말하기를 북풍(北風)에도 마음이 변(變)하지 아니함은 남국(南國)에 한 사람이 있을 뿐이네.라고 하였다.
주(註) 352. 전정(殿庭) : 궁전(宮殿)의 뜰.
박치정(朴致貞) - 자(字)는 태이(太異)이고 호(號)는 둔암(遯庵)이며 고령인(高靈人)이고 영산현감(靈山縣監) 박진(朴珍)의 후손(後孫)이다. 명종조(明宗朝)에 생원(生員)이 되었는데 마음을 오로지 시(詩)와 예(禮)에 쏟았고 문달(聞達)을 구(求)하지 아니하였다. 어려서 고시(怙恃)를 잃고 추복(追服)을 3년(年) 입어 선비와 벗들이 추앙(推仰)하고 존중(尊重)하였다.
주(註) 353. 고시(怙恃) : 믿고 의지(依支)하는 존재(存在)라는 뜻으로 아버지를 말함.
주(註) 354. 추복(追服) : 상사(喪事) 때 입지 못한 상복(喪服)을 뒷날에 입음.
김여득(金麗得) - 자(字)는 성함(聖咸)이고 호(號)는 설순당(雪筍堂)이며 원종훈편(原從勳篇)에 있는 김상(金祥)의 아들인데 진사(進士)가 되었다. 광해조(光海朝)에 폐모소(廢母疏)로 거슬러 물러남을 당(當)하여 순천(順天) 쌍암(雙岩)에 있었는데 효도(孝道)로 편친(偏親)을 봉양(奉養)하고 친(親)히 농사(農事)를 지으며 독서(讀書)하여 스스로 즐거워하고 종신(終身)토록 세상(世上)을 사양(辭讓)했다고 한다.
이엽(李燁) - 충신편(忠臣篇)에 있는 이대형(李大亨)의 손자(孫子)이며 진사(進士)가 되었다.
허건(許健) - 자(字)는 덕응(德膺)이고 학행편(學行篇)에 있는 허경윤(許景胤)의 후손(後孫)이다. 문장(文章)과 학문(學問)이 순수(純粹)하고 독실(篤實)하였다. 순조조(純祖朝)에 생원(生員)이 되었다.
허선(許亻言羊言) - 생원(生員)이 되었다.
주(註) 355. 亻言羊言 : 모양(模樣) 지을 선(亻言羊言).
허임(許恁) - 진사(進士)가 되었다.
류엽(柳曄) - 자(字)는 성관(聖觀)이고 진양인(晉陽人)이며 부사(府使) 류시무(柳時茂)의 후손(後孫)이다. 헌종조(憲宗朝)에 생원(生員)이 되었다.
허흡(許日翕) - 자(字)는 용회(用晦)이고 호(號)는 구연(龜淵)이며 음사편(蔭仕篇)에 있는 허늑(許玏)의 아들인데 진사(進士)가 되었다. 유고(遺稿)가 있다.
안규화(安奎華) - 자(字)는 무여(茂汝)이고 호(號)는 괴강(槐岡)이며 수직편(壽職篇)에 있는 안기철(安基喆)의 아들인데 생원(生員)이 되었다. 문사(文詞)에 일찍이 저명(著名)하였고 필법(筆法)이 창경(蒼勁)하였으며 태학(太學)에 유학(遊學)하고 있을 때 낙파(洛坡) 상국(相國) 류후조(柳厚祚)와 상국(相國) 강로(姜㳣)와 동경(同庚)으로서 교계(交契)가 심(甚)히 두터웠다.
주(註) 356. 창경(蒼勁) : 노련(老鍊)하고 힘이 있음.
주(註) 357. 태학(太學) : 조선조(朝鮮朝)에는 성균관(成均館)을 가리킴.
주(註) 358. 상국(相國) : 정승(政丞).
주(註) 359. 교계(交契) : 교분(交分).
허희(許僖) - 자(字)는 경헌(景憲)이고 호(號)는 낙애(洛厓)이며 음사편(蔭仕篇)에 있는 허척(許倜)의 아우인데 진사(進士)가 되었다. 문장(文章)의 명성(名聲)이 있으며 유고(遺稿)가 있다.
송은성(宋殷成) - 자(字)는 원백(元伯)이고 호(號)는 백하(白下)이며 송정백(宋廷伯)의 후손(後孫)이고 허성재(許性齋)의 문인(門人)인데 진사(進士)가 되었다. 문장(文章)으로 세상(世上)에 저명(著名)하였으며 문집(文集)이 있다.
안민중(安珉重) - 자(字)는 진오(振五)이고 호(號)는 소강(小岡)이며 늘그막에는 호(號)가 우천(雨泉)인데 안규화(安奎華)의 아들이고 허성재(許性齋)의 문인(門人)이다. 고종조(高宗朝)에 생원(生員)이 되었고 반궁(泮宮)에 유학(遊學)하여 성예(聲譽)가 갈수록 저명(著名)하였다.
송한영(宋漢榮) - 자(字)는 정여(貞汝)이고 송은성(宋殷成)의 아들인데 진사(進士)가 되었다.
송한준(宋漢駿) - 자(字)는 주팔(周八)이고 호(號)는 소강(小岡)이며 송한영(宋漢榮)의 아우인데 진사(進士)가 되었다.
노식용(盧寔容) - 자(字)는 백능(伯能)이고 호(號)는 지헌(志軒)이며 문과편(文科篇)에 있는 노상익(盧相益)의 아들이다. 만구(晩求) 이종기(李種杞)의 문하(門下)에서 수학(受學)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유고(遺稿)가 있다.
허섭(許灄) - 이름을 허만순(許萬純)이라고 고쳤다. 자(字)는 윤홍(閏弘)이고 호(號)는 수암(守庵)이며 증직편(贈職篇)에 있는 허규(許鍷)의 아들인데 진사(進士)가 되었다. 수신(修身)하고 바른 행실(行實)을 하여 명망(名望)이 일세(一世)에 존중(尊重)을 받았다. 유고(遺稿)가 있다.
허발(許土發) - 자(字)는 달중(達中)이고 호(號)는 춘전(春田)이며 음사편(蔭仕篇)에 있는 허관(許爟)의 아들인데 진사(進士)가 되었다.
이기주(李起住) - 자(字)는 정화(正化)이고 호(號)는 각재(覺齋)이며 명환편(名宦篇)에 있는 이번(李氵旛)의 후손(後孫)이다. 고종조(高宗朝)에 성균박사(成均博士)가 되었다.
주(註) 360. 사마(司馬) : 소과(小科)에 급제(及第)함. 병조판서(兵曹判書)도 사마(司馬)라고 함.
무과(武科)
이부(李玸) - 재령인(載寧人)이고 부제학(副提學) 이중현(李仲賢)의 아들인데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주부(主簿)가 되었다.
김소권(金紹權) - 절의편(節義篇)에 있는 김계금(金係錦)의 손자(孫子)이다. 성종조(成宗朝)에 내금위장(內禁衛將)이 되었다.
주(註) 361. 내금위장(內禁衛將) : 조선조(朝鮮朝) 내금위(內禁衛)의 으뜸 벼슬로 정이품(正二品). 효종(孝宗) 이후(以後)에는 정삼품(正三品)임.
류용(柳墉) - 명환편(名宦篇)을 보라. 일찍이 무과(武科)에 등제(登第)하여 군공(軍功)이 있어 초배(超拜)로 훈련원(訓練院)에 부임(赴任)하여 오전(五典)을 받아 부군(府君)을 다스렸다.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세 번(番)하였으며 물러나서는 김해(金海)에 살면서 공북정(拱北亭)을 지었다.
주(註) 362. 초배(超拜) : 등급(等級)을 뛰어넘어 벼슬을 받음.
주(註) 363. 오전(五典) : 오륜(五倫) 또는 오상(五常). 여기서는 다섯번 은전(恩典)을 받았다는 뜻.
주(註) 364.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 조선(朝鮮)조(朝) 각도(各道)의 수군(水軍)을 통솔(統率)하던 정삼품(正三品) 벼슬.
김유선(金惟善) - 절의편(節義篇)에 있는 김계금(金係錦)의 현손(玄孫)이다.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주(註) 365. 선전관(宣傳官) : 선전관청(宣傳官廳)의 벼슬로 정삼품(正三品)부터 종구품(從九品)까지임.
이사두(李思杜) - 이부(李玸)의 증손(曾孫)이다. 선조조(宣祖朝)에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주부(主簿)가 되었다.
김인필(金仁弼) - 명신편(名臣篇)에 있는 김보(金普)의 후손(後孫)이고 승지(承旨) 이견수(李堅壽)의 증손(曾孫)이다. 인조조(仁祖朝)에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첨정(僉正)이 되었다.
주(註) 366. 첨정(僉正) : 조선조(朝鮮朝)의 여러 관청(官廳)에 있는 종사품(從四品) 벼슬.
이만지(李萬枝) - 자(字)는 윤일(允一)이고 유행편(儒行篇)에 있는 이장손(李長孫)의 손자(孫子)이다. 관직(官職)이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이르렀다.
주(註) 367. 어모장군(禦侮將軍) : 조선조(朝鮮朝) 정삼품(正三品) 당하관(堂下官)의 무관(武官) 품계(品階).
송제룡(宋齊龍) - 자(字)는 치운(致雲)이고 청주인(淸州人)이며 충신편(忠臣篇)에 있는 송빈(宋賓)의 손자(孫子)인데 부사과(副司果)가 되었다.
주(註) 368. 부사과(副司果) : 조선조(朝鮮朝) 오위(五衛)의 종육품(從六品) 무관(武官) 벼슬.
류모수(柳耄壽) - 명환편(名宦篇)에 있는 류용(柳墉)의 후손(後孫)인데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만호(萬戶)가 되었다.
주(註) 369. 만호(萬戶) : 고려조(高麗朝)와 조선조(朝鮮朝)에 있었던 종사품(從四品) 무관(武官) 벼슬.
류시무(柳時茂) - 자(字)는 용대(用大)이고 진양인(晉陽人)이며 판서(判書) 홍임(洪淋)의 후손(後孫)이다. 인조조(仁祖朝)에 김해부사(金海府使)를 하였다.
임상유(林商儒) - 자(字)는 상경(商卿)이고 인조조(仁祖朝)에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였다. 현종조(顯宗朝)에 벼슬에 나와 김해부사(金海府使)를 하였는데 관청(官廳)에서 죽었다.
이욱(李薁) - 명환편(名宦篇)에 있는 이번(李氵旛)의 손자(孫子)이다.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가 되었다.
주(註) 370.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 : 조선조(朝鮮朝) 각도(各道)의 큰 진(鎭)에 두었던 정삼품(正三品) 무관(武官) 벼슬.
조덕룡(趙德龍) - 자(字)는 태욱(泰旭)이고 함안인(咸安人)이며 어계(漁溪) 조여(趙旅)의 후손(後孫)이다. 인조조(仁祖朝)에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류수홍(柳秀弘) - 충신편(忠臣篇)에 있는 류식(柳湜)의 아들이다.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부사과(副司果)가 되었다.
송민영(宋敏英) - 자(字)는 수이(秀而)이고 음사편(蔭仕篇)에 있는 송밀(宋密)의 아들이다. 집안의 법도(法度)를 높이 받들고 고을의 기강(紀綱)을 규정(糾正)하였으며 무종(務從)으로 관대(寬大)하고 공평(公平)하게 하여 고을 사람들이 믿고 우러러보았다.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주(註) 371. 규정(糾正) : 법(法)에 어긋나는 일을 바로잡음.
주(註) 372. 무종(務從) : 될 수 있는 대로.
류우신(柳又新) - 자(字)는 영지(榮之)이고 류시무(柳時茂)의 아들이다. 선략장군(宣略將軍)이 되었다.
주(註) 373. 선략장군(宣略將軍) : 조선조(朝鮮朝) 종사품(從四品) 무관(武官) 품계(品階).
이운(李芸) - 명환편(名宦篇)에 있는 이번(李氵旛)의 손자(孫子)이다.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직장(直長)이 되었다.
류영호(柳英湖) - 문화인(文化人)이고 류수홍(柳秀弘)의 아들이다. 칠포만호(漆浦萬戶)가 되었다.
조함발(趙咸發) - 자(字)는 은백(殷白)이고 함안인(咸安人)이며 조덕룡(趙德龍)의 아들이다.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였다.
류영문(柳英汶) - 문과편(文科篇)에 있는 류영락(柳英洛)의 아우이다.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부사과(副司果)가 되었다.
조준창(趙俊昌) - 자(字)는 현직(賢直)이고 조함발(趙咸發)의 아들이다.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였다.
류원전(柳元荃) - 자(字)는 원서(元瑞)이고 문과편(文科篇)에 있는 류영락(柳英洛)의 손자(孫子)이다.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부사과(副司果)가 되었다.
손삼석(孫三錫) - 자(字)는 명거(命擧)이고 호(號)는 삼은정(三恩亭)이며 유행편(儒行篇)에 있는 손원갑(孫元甲)의 손자(孫子)이다.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가 되었으며 삼은정시(三恩亭詩)가 있다.
조익제(曺翼濟) - 자(字)는 여익(汝翼)이고 문행편(文行篇)에 있는 조익성(曺翼成)의 아우이다.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부사과(副司果)가 되었다.
노규문(盧奎文) - 자(字)는 취오(聚五)이고 절의편(節義篇)에 있는 노한석(盧漢錫)의 후손(後孫)이다.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절충부호군(折衝副護軍)이 되었고 승자(陞資)하여 첨중추(僉中樞) 겸(兼) 오위장(五衛將)이 되었다.
주(註) 374. 오위장(五衛將) : 조선조(朝鮮朝)에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에 속(屬)하여 오위(五衛)를 이끌던 벼슬로 초기(初期)는 종이품(從二品) 임란후(壬亂後)에는 정삼품(正三品)임.
김규화(金奎華) - 자(字)는 성우(聲宇)이고 호(號)는 모은(慕隱)이며 유일편(遺逸篇)에 있는 김수천(金受天)의 후손(後孫)이다. 철종조(哲宗朝)에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었다.
동헌모(董憲模) - 자(字)는 홍언(洪彦)이고 호(號)는 금와(琴窩)이며 증직편(贈職篇)에 있는 동하욱(董夏旭)의 아들이다. 널리 경사(經史)를 보고 겸(兼)하여 무략(武略)에도 정통(精通)하였고 효도(孝道)와 우애(友愛)가 인륜(人倫)에 뛰어나 선비들이 추앙(推仰)하고 존중(尊重)하였다.
김창수(金昌壽) - 자(字)는 영원(永元)이고 호(號)는 학산(鶴山)이며 절의편(節義篇)에 있는 김계금(金係錦)의 후손(後孫)이다. 고종조(高宗朝)에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선략장군(宣略將軍)이 되었고 임오군변(壬午軍變) 후(後)에 물러나 고향(故鄕)에 돌아와 다만 세로(世路)에 발자취를 끊고 영화(榮華)와 이익(利益)을 도모(圖謀)하지 아니하고 경적(經籍)을 강학(講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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