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천상병
나는 술을 좋아하되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막걸리는
아침에 한 병 사면
한 홉짜리 작은 잔으로
생각날 때만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
맥주는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
마누라는
몇 달에 한 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다만 이것뿐인데
어찌 내 한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
즐거움은 인생의 최대목표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밥일 뿐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소풍/천상병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 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의 삶이 소풍이었다고
그 소풍이 아름다웠더라고
오늘
한쪽의 일터에서는 굴뚝위에서 농성을 하고
바람이 바뀌었다고
다른 쪽의 사람들은 감옥으로 내몰리는데
이길이 소풍이라고
따르는 식구들과
목마 태운 보따리
풀숲에 쉬면 따가운 쐐기
길에는 통행료
마실 물에도 세금을 내라는 세상
홀로 밤길을 걷고
길을 빛추는 달빛조차 몸을 사리는데
이곳이 아름답다고?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첫댓글 지금 한국에는 막걸리 열풍이 일어 양주와 포도주 소비가 현격히 줄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막걸리'란 시가 있었다는 것이 반갑네요. '귀천'은 언제 읽어도 좋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