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교단생활에서 인연이 닿은 어느 모임에서 여름에서 갖던 여름 야유회를 올해는 가을로 옮겨 실시했습니다. 무더위와 직장, 집안의 행사를 피해서였습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원로 선배님을 모시고 함께하는 뜻 깊은 나들이였습니다. 이미 추석 전에 참석 가능 유무를 여쭈어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참석 여부를 예비 조사하여 함양 황석산으로 다녀오는 일정을 잡았습니다. 주간 일기 예보엔 우리 산행일인 토요일에 가끔 비가 올 것이라 했는데 아주 맑은 아침이었습니다.
창원시청 앞에서 7시 50분에 출발하려든 버스가 마산시청에서 기다렸던 관계로 창원권 회원님은 택시로 마산역으로 이동하여 마산권 회원님과 함께 타게 되었습니다. 마창에서 열여섯 분이었습니다. 마산역에서 출발시각 8시 20분은 지켰습니다. 가을걷이가 마무리되는 함안들판을 지나 문산 휴게소에 잠시 들렀습니다. 예식장으로 단풍놀이로 떠나는 관광버스의 행렬로 휴게소 넓은 주차장이 비좁았습니다. 이후 서진주로 들어가서 촉석초등학교 사거리에서 진주에서 타기로 한 회원 여섯 분을 모셨습니다. 오늘 참석회원은 모두 22명이었습니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차창 밖 산하가 아름답고 깨끗한 산청을 지나 함양 서상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림 같은 서하초등학교를 지나 황석산 아래 우전마을 주차장에 닿았습니다. 산 아랫마을 어귀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 볼이 너무 고왔습니다. 점심을 예약해 둔 식당 주인의 봉고로 황석산의 임도 끝까지 올랐습니다. 그곳부터 바로 가파른 등산이었습니다. 선두를 이끌고 후미를 도와준 분은 함양 출신 회원님이었습니다.
올 가을이 유난히 가물어 그간 시들고 있던 단풍잎들이 지난 주 내린 비로 생기를 찾고 있었습니다. 낙엽지지 않은 일부 이파리나마 노릇노릇하고 알록달록했습니다. 산행 중간에 땀을 식히면서 여총무가 정성들여 준비한 오이 밀감 사탕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드디어 해발 1,190고지 황석산 정상을 밟았습니다. 마운틴 오르가즘을 느끼는 바위산이기에 땅속 깊은 자기장을 많이 받았으리라 믿습니다. 회원님들과 함께 사진도 한 장 찰깍했습니다.
이 황석산에서 바라본 사위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멀리 서로는 지리산의 천왕봉에서 반야봉이 이어졌습니다. 북으로는 가까이 기백산이 눈앞이고 거망산 금원산 남덕유산이 겹겹으로 펼쳤습니다. 동으로는 아스라이 가야산이 보였고, 남으로는 황매산이 우뚝했습니다. 날씨가 쾌청했기에 주변의 산세를 다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 정상의 북사면은 용추계곡이고 남사면이 안의에서 서하로 들어가는 계곡이었습니다.
이곳은 삼국시대 때 신라와 백제의 접경이라 그 당시에 이미 옛 성이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평시에는 가까이 거창 수승대에서 양국에서 오고가는 사신을 맞이하고 보낸 곳이니, 전시에는 이곳에서 땅을 빼앗고 뺏긴 치열한 전장이었지 싶었습니다. 북사면은 낭떠러지라 축성의 수고를 들고 골짜기 입구만 성을 쌓으면 외침을 막는 성곽이 손쉽게 만들어졌습니다. 이를 포곡형 산성이라 했습니다.
이 산성에서 오백년 전 정유재란 때 함양의 사람들이 가등청청에게 맞서 싸웠습니다. 성이 함락되자 부녀자들이 침략자 왜군에게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 몸을 던져 떨어져 죽은 곳이 피바위전설로 전해온다고 안내문에 새겨져있었다. 그 당시 흘렸던 핏자국이 지워지지 않고 바위에 얼룩으로 남아 있는 듯 했습니다. 그 산성 안에서부터 흘러내린 샘물이 바위를 타고 내려오기에 몹시 가물지 않으면 늘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슬픈 사연이었습니다.
제법 걸어 내려온 산성 안에는 지금도 땅을 파 보면 막사발 조각들이 나오지 싶었다. 이 산성 안은 아랫마을 사람들이 고로쇠물을 채취하는 곳이었습니다. 케이블 선 같은 가닥들이 여러 줄 나무사이로 놓여있었습니다. 고로쇠나무마다 청진기 같은 꼭지를 달고 있었다. 봄이면 나무에다 구멍을 내어 한 쪽을 꽂아 두고 다른 한 쪽은 관에다 연결해서 산 아래 쪽으로 흘러내리게 해서 채집하나 봅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혜택만 주는데 우리는 자연에게 무슨 보답을 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려오는 산길도 조심해야 합니다. 비탈길도 길이지만 가을 산은 낙엽이 쌓이면 자칫 헛방을 디뎌 발목을 삘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산행에서 일흔에 가까운 은빛 선배와 아리따운 여성 회원도 계셨습니다만 한 분의 낙오도 없이 산에 오른 20명은 모두 안전하게 내려왔습니다. 알맞게 땀을 흘렸고 날씨와 풍광이 너무 좋았습니다. 참, 모임의 회장과 어느 선배 한 분께선 산 아래서 무사 하산을 기원해주시면서 점심 자리를 주선하셨습니다.
하산 후 농월정 근처 방실식당으로 이동하니 오후 세시였습니다. 배가 출출한 시간에 취향에 따라 단고기와 닭고기로 나누어 맛있게 드셨습니다. 왜 방실식당이가 궁금했는데 안주인의 모습(?)을 보니 의문이 풀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좌장이신 용재선생님께서 덕담을 건네 주셨습니다. 좋은 계절에 좋은 사람하고 좋은 자리에 와서 좋은 음식을 앞에 두고 있어 축복이라고 하셨습니다.
반주를 곁들인 늦은 점심을 맛있게 들고 네 시 반에 버스에 올랐습니다. 안의로 나가지 않고 다시 서상인터체인지로 들어갔습니다. 오르내린 계곡엔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이 그림 같이 있었습니다. 비록 농월정은 지난 여름 의문의 화재로 안타까이 불타고 없었지만 주변 자연은 그대로였습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인근 산청의 어느 학교 교장은 정자는 자연과 인간의 경계에 있는 선비문화의 표상이라 풀어주었습니다. 역시 좌 안동과 쌍벽을 이루는 우 함양이었습니다.
차안에서 지리산 정기를 받으신 또 다른 교장은 잠시 잡은 마이크는 녹음해 두지 않음이 다행입니다. 이 부분까지 공개하면 오늘 행사에 참여한 회원과 참석하지 않은 회원의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황으로 생중계된 아나운서의 멘트를 알고 계신 회원은 오늘 산행에 동행한 분으로 한정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 바랍니다. 존경하는 은빛 선배님들의 덕담은 잘 새기고 가락은 즐거웠습니다. 진주 거쳐 마산 거쳐 창원 닿으니 날이 저물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