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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 을 다녀와서!
구미시(龜尾市)관광자원
구릉성 산지가 널리 분포해 이름난 높은 산은 없으나, 낙동강이 시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류하고 있어 하천을 중심으로 하는 아름다운 자연적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명산 금오산과 낙동강이 어우러진 천연의 명승관광지임과
동시에 우리나라 불교의 발상지로서 문화적 관광자원도 풍부하다.또한 우리
나라 최대의 전자공업도시로서 산업관광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산업관광
지로서의 구미공업단지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서쪽에 섬유단지로 출발한 일반
단지와 전자공업의 요지인 전자단지로 형성된 제1공업단지가 있고, 동쪽에는
반도체 및 컴퓨터단지인 제2공업단지(일명 인동공업단지)와 전자 관련 부품
공장이 들어선 제3단지가 있는 전국 최대의 내륙공업단지이다.
금오산은 구미역에서 남서 약 8㎞ 지점에 솟아 있는 높이 977m의 명산으로,
1970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경승지이며, 천혜의 요새를
이루어 신라시대부터 변경수호의 간성이 되어왔고, 임진왜란 때는 크게 활용
되었다. 금오산도립공원에는 관광자원이 포장(包藏)되어 있으며, 관광호텔과
케이블카 등 관광시설도 잘 되어 있다. 도선굴과 높이 25m의 명금폭포 그리
고 정상 북쪽 아래 거대한 암벽에 높이 5m쯤 되는 마애보살입상, 박희광동상
(朴喜光銅像), 허위유허비(許蔿遺墟碑), 동락서원과 그 밖에 6·25 때 격전지
인 낙동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충혼탑 등이 있으며 금오산 가는 길에 경관이
아름다운 보트장이 있다.
그리고 해평면과 도계면의 경계지역에 우뚝 솟은 냉산(冷山 일명 태조산,
692m) 중턱에 도리사가 있다. 이 절은 신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래한 아도
화상이 417년(눌지왕2)에 창건한 ‘해동 최초의 가람’으로, 우리나라 불교의
발상지이며, 경내에 화엄석탑(華嚴石塔)·금동육각사리합(金銅六角舍利盒)·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이외에도 아도화상과 관련된
갖가지 유물과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17세기에 세운 아도화상 사
적비를 비롯해 아도화상이 좌선을 했다는 좌선대와 황악산 직지사의 터를
가리켰다는 망대 서대(西坮)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이 밖에도 시내
도처에 대둔사(大芚寺)·수다사(水多寺) 등 불교유적이 많다. 고아읍 예강리
낙동강변에 세워진 매학정은 조선 중종 때의 명필로 중국의 대서예가들이
왕희지 이후의 제1인자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황기로선생의 유적지로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도개면의 청화산 남쪽 기슭에 있는 주륵폭포(朱勒瀑布)는 4계절 쉬지 않고
떨어지는 물이 주변 경치와 조화를 이루며, 피부병과 관절염에 특효가 있다
해 특히 여름철이면 많은 피서객들이 찾는 곳이다. 또한 동락유원지
(東洛遊園地)가 조성되었고, 그 앞에는 제1공단과 인의동을 잇는 구미대교가
가설되어 낙동강 동안지역의 관광객 유치에 한몫을 하고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구미 시가지
▼ 구미시가지와 전자공단이 보입니다.
금오산도립공원(金烏山道立公園)
경상북도 구미시·김천시·칠곡군 지역에 걸쳐 있는 도립공원.
금오산도립공원의 면적은 39.91㎢로, 1970년 6월 1일에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산 자체의 관광성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도 경부
간의 철도와 고속도로의 이용으로 접근이 매우 쉽다. 그리고 공업도시인 구미
시의 성장과 함께 관광개발에 더욱 활기를 띠며, 더욱이 등산, 휴양, 관광지로
활기를 찾고 있다.
어느 날 이곳을 지나던 아도(阿道)가 저녁놀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
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 지었으며, 중국의 사신들이 중국의 5악 가운데 하나인
숭산과 같다 하여 남숭산이라 불렀다가 다시 금오산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이라고 하였다고 전해진다.
시설이 잘 되어있고 전국적으로도 유명한데 금오산(976m)은 크지는 않지만 기암
괴석이 어울려 장관을 이루고 경사가 급하고 험난하나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금오산 일대는 대부분이 화산암류로 구성되어 급한 경사와 험한 산세를 이루고
있다. 북동쪽은 퇴적암으로 된 천생산(407m)이 있고, 동쪽은 응회암질 암석으로
구성된 봉두암산(326m), 유학산(839m)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급한 경사와 상당
한 기복량을 나타내는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금오산으로부터 발원하는 소하천으로는
율곡천, 연봉천, 경호천, 연곡천 등이 있고, 율곡천, 연봉천 등은 감천(甘川)으로
합류하고, 경호천과 연곡천 등은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이들 수계는 계절에 따른
유량변동이 심하다.금오산 일대의 식생은 낙엽활엽수림으로서 신갈나무군락이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소나무·구실사리군락을 비롯한 암벽지대의 식생은 매우
높은 자연도를 나타낸다. 금오산의 중하부 사면과 대부분의 저지대에는 소나무가
굴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등과 함께 혼효림을 이루고 있으며, 아까시나무가
섞인 식분이 많다. 금오산 주변지역에서 관찰되는 포유류로, 너구리가 산림지대를
중심으로 서식하고, 족제비는 농경지와 과수원 주변 사림에서 자주 관찰된다. 고양
이과의 삵은 금오산 일대에서만 나타난다. 그 외에도 멧돼지, 사슴, 고라니, 멧토끼,
고슴도치, 두더뒤, 땃쥐 등이 관찰된다.어류는 서식이 확인된 11개 지점에서 총 6과
18종의 서식이 조사되었는데, 일차담수어는 17종이고 육봉형어류는 1종으로 일차
담수어가 매우 우세한 특징을 나타내었다. 버들치와 참붕어가 우점하였고, 보호를
요하는 종으로는 돌마자, 쌀미꾸리, 자가사리 등이 있다.조류는 총 44종이 관찰되
었고, 원앙, 붉은배새매, 황조롱이, 검은댕기해오라기, 황로, 새흘리기, 검은등뻐
꾸기, 청호반새, 청딱다구리, 물레새 등이다.
주요 지질은 금오산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안산암, 유문암 및 안산암질유문암을
포함하고 있는 금오산화산암류가 남북으로 약 11㎞, 동서로 약 4㎞ 정도 길게 뻗어
있고, 그 주위를 부분적으로 박층의 석회암과 규암을 협재하고 있는 화강암질편마암
이 둘러싸고 있다. 계곡부의 최하단부인 하상에는 제4기의 충적층이 분포하며 구성
물질은 모래, 자갈 및 점토 등 이다.
산 계곡의 입구는 좁고 길지만 입구 왼쪽 봉우리는 전망대와 계곡에는 고려 말기의 충신
길재(吉再)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채미정이 있다. 케이블카 정류장 부근에는 명금폭포가
있고 폭포 옆에 ‘명금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 외에 해운사·약사암·금강사·법성사
·대원사 등의 고찰과 금오산마애보살입상(보물 제490호)과 인근에 선봉사대각국사비
(보물 제251호), 오봉동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45호) 등의 유서깊은 문화유적이 많이
있다. 또한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수도하던 도선굴을 비롯해 대혜폭포, 세류폭포 등이 있다.
산정부에는 고려시대에 자연 암벽을 이용해 축성된 길이 2㎞의 금오산성이 있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방어하는 요새지로 이용되었다. 주요 산행 코스로는 공원관리소·해운사·명금폭포
·약사암·정상·금오산저수지에 이르는 코스(약 3시간 소요)와, 공원관리소·해운사·명금폭포
·약사암·정상·금오산성·지경에 이르는 코스(약 3시간 30분 소요)가 있다.
『한국(韓國)의 산지(山誌)』(건설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2007)
『한국의 산 여행』(유정열, 관동산악연구회, 2007)
『구미(3·01)의 자연환경:금오산』(환경부, 1999)
『한국관광지리(韓國觀光地理)』(김홍운, 형설출판사, 1997)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금오산 도리사(桃李寺)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태조산(太祖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아도(阿道)가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서라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겨울인데
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하여 있음을 보고 그곳에 절을 짓고 도리사라
하였다.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 절이 신라 최초의 사찰이라고 전해
지고 있다. 처음의 절터는 태조산 기슭에 있는 옛 절터로 보고 있으며, 지금의
절이 있는 곳은 금당암(金堂庵)이 있었던 곳이다. 창건 이후 조선 후기까지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1677년(숙종 3)의 화재로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건물
이 불타 버린 뒤, 1729년(영조 5)대인(大仁)이 아미타불상을 개금(改金)하여
금당암으로 옮겨 봉안하고 금당암을 도리사로 개칭하였다. 1807년(순조 7) 절
을 중창하였고, 1823년 조사전(祖師殿)을 중수하였다. 1876년(고종 13) 극락전
을 중건하였으며, 1922년 칠성각을 건립하였다.
1976년 6월 아도의 석상(石像)이 발견되었으며, 1977년 4월 세존사리탑
(世尊舍利塔)을 해체, 복원하다가 금동육각탑 형태를 띤 사리구(舍利具)와 석가
모니 진신사리(眞身舍利) 1과가 발견되었다. 이 사리구는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
관에 보관되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극락전을 중심으로 태조선원
(太祖禪院)삼성각(三聖閣)·조사전·요사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극락전은 정면 3칸
,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로 내부에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불상은 조선시대 양식을 띠고 있고 높이 129㎝, 무릎너비 92.5㎝로서
1731·1764·1876년에 개금하였다. 조사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이며 창건주
아도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470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아도화상 석상·세존사리탑·아도화상 사적비, 조선 후기의 탱화 등이 있다
. 이 중 아도화상 석상은 높이 97㎝의 입상으로서 전면 너비가 좁아 기이한 감을
주나 조각의 윤곽이 뚜렷하다. 아도화상 사적비는 총 높이 296㎝, 비신 높이 197㎝
로 그 뒷면에 자운비(慈雲碑)가 음각되어 있으며, 사적비는 1639년(인조 17)에,
자운비는 1655년(효종 6)에 새긴 것이다.특히 세존사리탑에서 발견된 사리는 무색
투명하고 둥근 콩알 크기의 큰 사리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사리로 평가되고 있다. 또, 1876년에 그린 후불탱화(後佛幀畫)를 비롯하여 1881년
에 그린 신중탱화(神衆幀畫)·독성탱화(獨聖幀畫)·칠성탱화(七星幀畫) 등이 있고,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판목(板木) 24매가 보관되어 있다.
참고문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범우고(梵宇攷)』
『한국사찰전서』(권상로 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도리사사리탑의 조사」(장충식, 『고고미술』135, 1977)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혜폭포(大惠瀑布)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에 자리한 대혜곡의 폭포.
금오산 정상 근처 산성 안에는 1595년경 임진왜란 당시 만들어진 아홉 개의 우물
[九井]과 일곱 개의 못[七澤]이 있어 거기서 비롯된 큰 계곡을 대혜계곡이라 하였
고, 그 곳에서 형성된 폭포를 대혜폭포라고 하였다. 또 그 물이 여울을 이루어 구미
지방의 용수 공급에 큰 혜택을 주었다는 의미에서 대혜폭포라 불렸다는 설도 있다.
대혜폭포는 명금폭포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1935년쯤 경상북도 도지사인 일본 사람이 이곳을 찾아 주변 경관과 물소리에 매료
되어 한동안 넋을 놓고 있다가 차가운 기운에 정신이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사물은
희미한데, 쾅쾅 울리는 소리만 있어 ‘금오산을 울리는 소리’라고 탄복하고 자기의
시상(詩想)이 사라지기 전에 석수(石手)를 불러 암벽에 ‘명금폭(鳴金瀑)’이라 새겼
다고 한다. 그 후로 바위에 새겨진 이름이 많은 등산객들에 의해 전해지면서 오늘날
명금폭포라고도 불리고 있다.
대혜폭포는 금오산 북측 대혜곡(大惠谷)의 중간 지점 해발 400여m 지점에 위치하며
, 높이가 28m이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은 사계절 변함이 없으며, 그 위력으로도
유명하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기암괴석의 벼랑은 계곡을 흐르는 감입 곡류에 의한
침식의 결과물이다. 가파른 경사로 병풍처럼 보이는 계곡에는 겨우내 대혜골에서
흐르던 물이 절벽에 얼어붙어 고드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대혜폭포를 통과해서 하류로 흐르는 물은 남통천이라 불리며 금오산저수지의 수원이
되어 금오천으로 흘러 낙동강과 합류한다. 가장 많이 찾는 등산로에 위치한 대혜폭포
는 그 자체로 등산객들에게 계절마다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능선
, 도선굴, 약사암 등과 어우러져 금오산 관광의 백미를 구성한다. 왼쪽의 짧은 능선과
오른쪽의 긴 바위 능선 사이에 패인 골짜기로 떨어지는 높이 28m의 대혜폭포는 여름
철 강우량이 많을 때 보면 큰 폭포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내리며 부서지는 물보라와 폭풍 같은 냉풍이 주위를 시원하게 한다. 갈수기
(渴水期)에는 떨어지는 물의 양이 극히 적어 물방울이 휘날릴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나
, 지금은 폭포 위에 폭포수량을 조절할 수 있는 대혜담이란 조절지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금오산도립공원 매표소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케이블카 승강장이 나온다. 현재
대혜폭포 부근까지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다.
『정밀 토양도』-선산군(농촌진흥청 농업기술연구소, 1975)
『한국지명요람』(국립지리원·한국지명요람편찬위원회, 1982)
『한국지지』-지방편(국립지리원, 1984)
『경북마을지』중(경상북도·경북향토사연구협의회, 1991)
『선산의 맥락』(선산군·선산문화원, 1994)
『구미시지』(구미문화원, 2000)
『전국 자연환경조사 보고서』(환경부, 2001·2002)
『구미시지』(구미문화원, 2005)
「지형도(1:50,000)」(국립건설연구소, 1963)
「지형도(1:50,000)」(국립건설연구소, 1974)
「지형도(1:50,000)」(국립지리원, 1995)
「지형도(1:50,000)」(국토지리정보원, 2007)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금오산 주봉인 현월봉(懸月峯)
높이는 976m이다. 주봉인 현월봉(懸月峯)과 약사봉(藥師峰), 영남8경 중의
하나인 보봉(普峰)이 소백산맥 지맥에 솟아 있으며, 시생대(始生代)와 원생대
(原生代)에 속하는 화강편마암과 화강암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산 정상은 비교적 평탄하나 산세가 높고 기이하며, 고려시대에 자연 암벽을
이용해 축성된 길이 2km의 금오산성이 있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방어하는
요새지로 이용되었다.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루고 계곡이 잘 발달되어 경관이
뛰어난 산으로, 1970년 6월 한국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해운사·약사암·금강사·법성사·대원사 등의 고찰과 고려 말기의 충신 야은 길재
(吉再)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채미정(採薇亭), 신라시대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수도하던 도선굴을 비롯해 명금폭포·세류폭포 등이 있다. 금오산 마애보살입상
(보물 490), 선봉사 대각국사비(보물 251), 오봉동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45)
등의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많이 있다.
약사암(藥師庵)
소재지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산 24-6번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금오산(金烏山, 977m)
정상의 약사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
고 있으나 당시의 유물은 발견된 바 없으며, 1618년(광해군 10) 간행된
<일선지 一善誌>, 1799년(정조 23) 간행된 <범우고 梵宇攷>에 고찰(古刹)
이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종 때 편찬된 <영남진지 嶺南鎭誌>
에는 ‘법당은 8칸으로 성내(城內) 삼리(三里)에 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약사암은 약사전·삼성각·일주문·종각·요사로 구성되어 있다. 1985년 기암
절벽 아래에 남향으로 건립한 약사전은 정면 4칸·측면 2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집으로 약사암의 중심법당이다. 내부에 신라 말 또는 고려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강암으로 조성한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1935년 우상학이 지은 ‘약사암중수기’에 본래 지리산에 있던 석불 3기 중
1기를 이곳 약사암으로, 나머지 2기를 수도산 수도암과 황악산 삼성암
으로 옮겨 봉안했다고 쓰여 있다. 석조여래좌상 좌우로 일광·월광보살이
협시되어 있으며, 후불탱·신중탱·독성탱 등의 불화가 걸려 있다. 요사채
왼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있는 바위에는 고려시대에 조성한 높이 5.5m의
금오산 마애보살입상(보물 제490호)이 조각되어 있다.
출처: (두산백과)
옛동산에 올라 백남옥, Mezzo Sop.
백남옥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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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6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