過靑石嶺 (과청석령)
孝宗大王(1619~1659, 재위 1649~1659)
이름은 호(淏), 자는 정연(靜淵), 호는 죽오(竹梧).
청석령을 지나느냐
靑石領已過兮 청석령이과혜
초하구는 어디메뇨
草河溝何處是 초하구하처시
호풍은 차기도 차구나
胡風凄復冷兮 호풍처부(복)냉혜
궂은비는 또 무슨 일인가
陰雨亦何事 음우역하사
누가 처량한 내 행색을 그려다가
誰畵此形像兮 수화차형상혜
님 계신 곳에 갖다 드릴고
獻之金殿裡 헌지금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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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에 있는 영릉에 갔다
英陵(영릉)은 조선 4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합장묘이고
寧陵(영릉) 은 조선 17대 효종대왕과 인성왕후 上下 쌍릉이다
두 陵(릉) 사이가 1킬로 남짓, 왕의 숲길로 이어져 있다
살아서는 양택(陽宅)이요, 죽어서는 음택(陰宅)이라던가
묘를 보면 그 사람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살아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두 분의 陵(릉)이 지척에 있어서
알게 모르게 비교가 되어 씁쓰름한 마음이 든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세종대왕의 묘는 앞이 탁 트인
너른 평지가 살아온 삶같이 펼쳐져 있다
대부분 사람들도 세종대왕릉에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에 비해 효종대왕릉은 앞이 답답한 면이 있다
뒤에서 인선왕후를 감싸주는 느낌이 든다
三拜九叩頭(삼배구고두)의 치욕을 당한 병자호란 때
봉림대군으로 8년간 인질로 선양에 체류하다가 환국하는 아픔을 겪었다
효종대왕의 재실에는 300년 된 회나무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으면
속을 비운 채 살아가고 있을까
짧은 삶을 살다 간 그의 북벌의 꿈도 못내 아쉽다
"역사를 잊은 미래는 미래가 없다."
마음이 무거운 하루였다
그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