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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가는길
 
 
 
카페 게시글
생활을 발견하다 스크랩 생전 처음 마트 놀이
tazan 추천 0 조회 54 12.07.14 22:23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1. 진안에서 자연농, 유기농으로 소농을 하는 몇 분들과 농사꾼 모임을 만들었다.

"생기발랄 농사꾼 모임"

다섯 집이 모여 한 달에 한번씩 돌아가며 농사 이야기도 하고, 세상 이야기도 하고...

모두들 소박하고, 소탈하고, 재미있다.

 

모이면, 농산물 파는 이야기도 한다.

주로 직거래...  이야기...

우리는 그 사람들에 비하면 완전 초보에다가 농사라고 할 것도 없는...

근데, 자연농으로 한다고 회원으로 낑겨 주었다.

그저 감지덕지 할 뿐이다.

 

그러던 차에 시골에서 목회하시며 농사를 지으시는 목사님들과 의기투합이 되어

7월부터 매월 둘째, 넷째 주 토요일, 전주 남문교회에서 장터를 열기로 했다.

이것 때문에 몇 차례 모임을 했고, 어떤 물건을 낼 수 있는지 의논을 했다.

대량 농업이 아니라 소농이다보니 정말 장터를 열어도 될까?  싶을 정도로 물건이 적었다.

목사님들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용기를 내보기로 하고 오늘 드디어 첫 시작을 했다.

 

2. 어떤 물건을 내야 하나?  진짜 없다.

그래도 이것저것 만들어보자.

 

우리 한나가 우리밀과 유정란을 이용하여 쿠키를 11봉지, 식빵 두 봉

우리 한결이가 작년에 농사지은 녹두를 정리하여 600g 짜리 한 봉지를

우리 남편이 폐식용유 18리터에 가성소다, 쌀겨물,EM용액을 넣어 비누 4개씩 15셋트를...

나는 남는 실로 짜다가 팽겨쳐 둔 발매트를 마저 마무리를 했고

밭에 가서 풋고추 200g씩 8봉지

조림감자 1kg씩 세 봉지

작년 겨울에 내가 담군 고추장 1kg 씩 2통

......

이 정도되면 망신을 안 당하겠지?

 

3. 전주 남문교회는 남문시장이라는 거대한 재래시장 옆에 있는 작은 교회다.

그나마 길가에 주차해 둔 차에 가려 우리 행사장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처음 행사라 플랭카드 한 장도 못 걸고...  교인들과 아는 몇몇을 핸드폰으로 부랴부랴 연락해서 소문을 낸다.

 

오늘 비가 오고 천둥번개가 친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비는 안온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없다.

그나마 있는 교인들도 다 할매, 할배들이다.

돈이 없거나 힘이 없거나...  이래저래 무거운 농산물을 가져가기엔 너무 ...

 

다른 사람들은 자연방사유정란, 오이, 마늘, 감자, 떡, 효소, 천연 물파스...

나름 열심히 준비해 왔다.

농사 짓는 목사님들도 현미, 오미자 효소, 된장, 간장...

 

작지만 나름 물건들이 다양하다.

어떤 목사님의 어린 딸은 자기 아빠가 장터에 서 있는 걸 보며 말한다.

"아빠, 마트 놀이 하는거야?"

ㅋㅋㅋ...

 

4. 지나가던 사람들은 관심도 없이 빠르지 지나간다.

어쩌다 오는 사람들도 시장 물건보다 시원찮아 보이는게 친환경이라고 비싼듯 하니 휙~~~

 

감사하게도 연락 받은 사람들이 하나 둘 온다.

그 사람들이 큰 손들이다.

이 사람들은 이런 물건을 기다리고 찾는 사람들이다.

 

어떤 할머니는 우리 녹두를 보더니, 허겁지겁 돈을 구하러 다닌다.

팔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녹두를 가져오면서 팔릴까 걱정했는데, 제일 먼저 팔렸다.

 

다른 사람들이 와서 사는 것도 있었지만

서로서로의 물건을 사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는 우리 모임에서 제일 젊은 새댁이 가지고 온 고사리와 들깨를 샀다.

우리 밭에서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오이, 상추도 사고...

 

유정란을 가져온 사람은 너무 순진해서 가격을 싸게 받으려고 한다.

팔리지 않을 거 같다고...

그래서 내가 유정란은 없어서 못 팔테니, 더 비싸게 받으라고 가격을 정해줬다.

그런데, 계란은 정말 순식간에 다 없어지고

계란 좀 많이 가져오라는 부탁과 예약을 받았다.

 

5. 이래저래 마감시간이 되었다.

성황리에 마친 것은 아니지만...  나름 재미가 있었다.

정말 마트 놀이를 한 기분이다.

 

다음에는 뭘 더 준비하고,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지 서로 의논을 하고

어떤 것을 장터에 가지고 나가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 되고...

 

농사를 더 잘 지어야겠다는 다짐도 생기고...

 

6. 아직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인식은 없다.

더더군다나 자연농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할매들은 그저 크고, 굵은 것을 좋아한다.

젊은 새댁이 가져온 마늘은 제대로 지은 것인데, 알이 작다는 이유로 외면을 받았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 실망을 하지는 않는다.

그 물건을 사가는 사람은 이익이고, 안 사가도 다 우리가 먹으면 되니까~~~

 

그런데, 불쌍한 농부의 물건을 사준다는 태도나

사줘야 하는데 못사줘서 미안하다는 태도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사람들이 우리 물건을 사주거나 사주지 않거나 우리는 똑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지을 것이다.

더 많이 더 크게 무엇인가를 만들 생각은 없다.

 

우리가 생각하고, 지향하고, 지켜내는 농사를 알고, 우리의 가치를 알아 찾는 사람들은 오니까~~~

 

7. 돌아오면서 모두가 재밌었다고 한다.

이 정도의 소박한 즐거움에 행복해 할 줄 아는 넉넉한 사람들이다.

 

집에 돌아와 우리 딸들에게 자랑을 하며

작은 딸에게는 과자와 빵값 28,500원을

큰 딸에게는 녹두값 10,000원을...

 

우리 남편에게는 오늘 8만원을 벌었다고 자랑했다.

 

 

8. 어린이 동화책 중에 '달구지를 끌고..." 라는 책이 있다. 

   농사꾼이 농사를 지으며 만든 모든 농산물, 여러가지 물건들을 달구지에 싣고

장터에 가서 팔고, 돌아오는 길에 또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이야기가 있다.

별로 극적인 스토리는 없지만 참 소박하고 정이 가는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오늘은 내가 꼭 이 책의 주인공처럼 한 것 같다.

 

소박한 마트 놀이 너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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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7.15 00:39

    첫댓글 전주에 신시(神市)가 열렸군요. 그야 말로 삶과 노동이 일치하는 모습이고 제가 어렸을때 경험했던 모습입니다.
    달구지를 끌고라는 내용이 바로 70년대 제 고향의 장날 풍경입니다.

  • 12.07.15 09:11

    농민장터가 명실상부한 전주의 자랑이 되었으면 합니다.
    첫 발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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