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가리긴 가렸는데 곱절이나 궁금하더라
1. 서문 발
어릴 때 부르던 동요 중에 고드름이 있다. 노래의 가사를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놓아요.
또한 남원민요에 이런 것이 전한다.
발이 열 발이라도 마음이야 가리겠나.
총총 발 틈으로 새어나는 가락가락 정일랑.
토막토막 올려서 님의 영창에 화조발을 엮으리.
2. 발의 정의
발은 ‘바알’이라 부르듯 길게 발음해야 한다. 대부분은 가늘고 길다란 것을 씨줄로 삼고 끈으로 엮어 만든다. 때로는 구슬이나 조개껍데기, 복숭아씨나 매듭 같은 것을 한 줄씩 쭉 꿰어 만든 발도 있는데, 이런 발은 주렴이라고 부른다. 발은 중국, 한국, 일본을 비롯한 동양문화에서 특히 많이 사용한다.
3. 서양, 발과 비슷한 커튼
창문이나 출입구의 간막이로 발 이외에 커튼이 있다. 커튼은 광선조절, 시선차단, 방음, 방서, 방한의 목적이 있다. 커튼은 발과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데가 있다. 커튼은 사시사철 쓰는데 발은 주로 여름철에 많이 쓴다. 커튼은 주로 좌우로 여닫는데 발은 상하로 여닫는다. 커튼은 안과 밖의 모든 것을 완전하게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발은 주로 안의 것이 밖에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4. 발의 사용과 용도
발은 주로 여름에 창문, 대청에 쳐서 햇볕이나 외부의 시선을 막는다. 사대부나 반가, 부유한 집안에서는 구슬이나 옥, 자기나 나전 등으로 만든 주렴을 사용하지만 일반적으로 서민들은 식물의 줄기를 이용해 만든다. 뺑쑥대, 갈대, 억새, 싸리, 대오리, 껍즐을 벗긴 삼대(겨릅대), 달풀 등을 삼이나 실로 엮는다. 발을 치면 직사광선은 막지만 발 사이사이로 햇볕이 약하게 스며들어 환하다. 안에서는 밖이 어른어른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바람은 물론 잘 통한다. 발은 또 농작물을 말리는 데 아주 유용하게 쓰이는 농기구이다. 이때 주렴은 논외로 친다. 주렴 같은 경우 실용성보다는 장식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발은 땅이나 마루, 마당이나 방바닥에 펴고 고추, 무우말랭이, 호박, 가지, 고구마 등의 곡식을 널어 말리는 데 그만이다. 농작물이 바닥에 직접 닿지 않아 위생적이고 공기가 사방으로 통해서 잘 마른다. 쓰지 않을 때는 둘둘 말아 한구석에 세워놓거나 선반에 얹는다. 발을 엮을 때 줄기의 마디를 이용하거나 색실을 넣어 쌍희자나 목숨수자, 복자의 무늬를 넣었고 주위에 완자를 돌려 새겨 넣고 남색 모단으로 마감선을 두른 아름다운 공예품도 있다. 또 발은 가리개로 사용하기보다는 벽을 꾸미는 장식품으로도 쓰인다. 또 발로 벽공간을 만들고 그 위에 상품을 진열 및 장식하는 데도 쓴다. 발은 규칙적인 가로줄 무늬 때문에 보기에 깔끔하고 소재의 질박함 때문에 시원한 느낌을 준다.
5. 발에 담긴 사상, 의미
이규태는 “한국인의 의식구조”에서 ‘발은 나를 숨기고 남을 보려는 은폐의식의 대표이다’라고 말하면서 서양의 커튼이 외계차단과 개방이라는 완전히 다른 가치의 개념이라면 한국의 발은 차단과 개방의 중간으로 외계는 차단하고 내계는 개방하는 이중적인 것이라 했다. 한말의 알렌 공사는 수기 “things korean”에서 ‘한국의 모든 것은 발의 장막에 가리웠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서양의 문화가 속이 훤히 보이는 유리의 문화라면 한국의 문화는 속이 안 보이는 도자기문화라고 했다. 한국은 속에 무엇이 얼마만큼 있는지 알 수가 없고 남에게 나를 모두 알린다는 것은 자기소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물론 이들은 한국인의 의식을 아주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상당히 자의적이고 편파적이다. 우리에겐 유교에서 비롯된 예의범절과 체면의식, 내항성 등 우리민족의 특성이 있다. 남이 나를 보고 안 보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은밀한 생활 면면을 남에게 보인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예를 벗어난 것이다. 선조들은 한여름에 집안에서도 버선을 신고 지냈다. 보는 사람이 없어도 망건을 동여매고 갓을 썼다. 삼복에도 선비들은 윗통을 벗지 못하고 세숫대야에 찬물을 담아 탁족을 해야 했다. 이 모든 의식구조가 모여 동방예의지국을 낳은 것이다. 과연 무엇은 좋고 무엇은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한 겨레의 오래된 의식구조는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한국은 밝은 햇살과 맑은 공기를 마음대로 누릴 수 있는 나라였다. 우리나라는 여름과 겨울이 있는 기후에 바깥 공기와 친하면서도 아늑함을 찾으려는 이중적인 구조로 집이 발달했다. 서양의 문화가 자연을 정복하는 문화였다면, 우리의 문화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문화였다. 무더운 여름철, 창문을 열어놓아도 더운 때다. 그러나 유교적 사상과 예의를 갖춘 조상들은 그냥 무작정 창을 열수도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발이 탄생하게 된 것이 아닐까. 닫히면서도 한편으로는 열린 구조로 선들선들 여름의 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발에 한 번 걸러진, 강렬하지 않은 햇쌀도 자유롭게 들어왔을 것이다. 커튼처럼 반사시키거나 가리는 것이 아닌, 막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드려보내는 발. 그 모습에서 우리네 조상들의 정신이 얼핏 느껴지는 듯도 싶다. 서양의 커튼도 개량이 되고 있다. 발의 사촌격인 블라인드가 나오고 발을 옆으로 눕힌 버티칼 블라인드가 나왔다. 발 사이로 부는 바람 아래 부채질을 하며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함께 어울리던 조상들을 떠올리며 과연 발이 ‘나는 숨고 숨기고 감추면서, 남은 빼곡히 내다보려는 나쁜 의식구조에서 생겼을까’ 곰곰 궁리해 본다.
* 출처: 점자도서 김종태 ‘옛껏에 대한 그리움’ 5권중 4권 ‘발’ 지문 발췌
* 편집 및 필사: 카페 주인장
* 비고: 원고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닙니다. 필자가 일부 내용을 첨삭하여 더하고 뺐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