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믿을 수 있을까?
황영철 (2023.09.28.02:13)
기독교 내에 널리 퍼진 오해 중의 하나는 신자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죄인이어서 그렇다는 건데, 이게 어디서 온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독교 내에 퍼진 가장 큰 오해다. 신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살 수 있다. 이걸 믿을 수 있을까?
믿고 안 믿고 문제가 아니라 성경이 그렇다고 가르치는 거 아닌가. 새 언약, 중생, 성령의 힘주심과 역사, 그리스도와 신자의 신비한 연합, 이 모든 교리가 근본적으로 가르치는 게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다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살 수 있다는 거 아닌가?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타락한 아담다운 품성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그리스도께서 사람 몸을 입고 아담 후손으로 오셔서 아담으로 인해 발생한 모든 죄를 처리하실 뿐만 아니라 아담다운 품성 자체를 십자가에 못을 박으심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더 이상 아담에게 속하지 않고 새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하신 거 아닌가.
이 복음을 처음 들은 사람들은 자신이 죄책을 용서받아 죽어서 그리스도 품에 안긴다는 것만으로 기뻐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자기들이 더 이상 죄의 종으로 살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으로 인해서 기뻐한 것이다. 지긋지긋한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돼 하나님의 종으로, 의의 종으로 살 수 있게 됐으니 이것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성경이 이 진리를 핵심적으로 가르치지만, 이 교훈을 가르치는 성경에서는 [히브리서]가 압권이다. 구원의 완전성이 [히브리서] 핵심이다. 신자를 죄책에서 완전히 해방하실 뿐 아니라 새언약에서 선언하신 대로 신자로 하여금 그 마음에 기록된 율법을 따라서 살게 하신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신자에게서는 죄를 범하는 것이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러므로 죄를 범한 신자는 ‘도대체 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을 한 거야?’ 하면서 후회하며 고통스러워한다. 자기에게서 있을 수 없는 일,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한 일을 두고 후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임에도, 신자가 죄를 범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가르친다면 이것처럼 위험한 일이 어디 있을까? 만약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친다면 신자가 범죄를 자연스러운 일로 여길 것이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다.
신자는 죄책에서만 해방된 것이 아니라 죄의 권세에서 해방됐다. 그러므로 자유롭게 의의 종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살 수 있다. 그렇게 살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일이다. 참된 신자라면 모든 불의와 불법을 미워하고 의를 사랑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까닭이다. 의를 추구하지 않는 신자? 이건 네모난 동그라미처럼 모순된 발언이다. 그런 그리스도인은 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페북} 황영철 목사님 담벼락에서 옮겨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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