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아기 바르바라 (1783-1801)
경기도 광주 태생인 심아기(沈阿只) 바르바라는 오빠 심낙훈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한 뒤 신자로서의 본분을 지키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에 성인들의 모범에 감동하여 하느님께 동정을 바치기로 결심하였으며, 이후로는 조용히 집 안에서만 지내면서 모범적으로 교회의 법규를 지켜 나갔다.
1801년의 신유박해로 오빠가 체포되자, 심 바르바라는 포졸들이 얼마 안 있어 자신에게도 찾아올 것이라 예상하고 그들을 기다렸다. 마침내 포졸들이 들이닥쳐 체포하려고 하자, 그녀는 어머니를 향해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제가 천주의 성스러운 뜻에 순종하도록 놓아두십시오.”라고 말한 뒤, 스스로 그들 앞으로 나아가 분명하게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런 다음 동요하지 않고 옷을 갈아입고서 한양으로 끌려갔다.
이후 심아기 바르바라는 포도청에서 배교를 강요당하며 모진 형벌을 받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계속되는 형벌을 견디어내지 못하고 순교하였으니, 그때가 1801년 4월 초로, 당시 그녀의 나이는 18세였다. 반면에 심 바르바라에 앞서 체포된 오빠는 형벌을 이기지 못하고 무안(務安)으로 유배되었다. 그녀가 매를 맞다가 순교한 뒤, 그녀의 오빠가 박해자들에게 진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제 누이 바르바라에게 (천주교의 교리를) 가르쳐 포도청에서 매를 맞아 죽게 하였는데, 누이는 끝까지 (신앙의 가르침을 믿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출처:한국천주교 주교회의,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