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4일
『어느 날, 갑자기, 사춘기』 (윤다옥, 교양인)
‘어느 날, 갑자기’에 대처하는 법
‘왕J’인 내가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갑자기’다. 이제는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미화된 건지도 모르지만, 학교 다닐 때는 하라는 대로, 정해진 대로 하면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다가올 일을 미리 준비하는 것, 언제 무엇을 할지 계획표를 만들고, 하나하나 체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가 한 만큼, 못 하면 못 한 만큼 결과가 주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살면 살수록, 더욱이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서 ‘어느 날, 갑자기’가 많아진다. 언젠가 오겠지 생각하며 준비한 일들도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다. 책에서 본 것과 다른, 내가 계획하며 그리던 모습과 너무 다른 현실은 참 어려웠다.
10년 전 첫째를 임신했을 때, 『임신 출산 육아 대백과』를 보고 또 보며 아이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때 당시 그 책은 나에게 성경 다음이었다. 임신 주수에 맞춰 내 상태를 점검하는 것, 아이에게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는 것 모두 그 책을 보며 확인했다. 지금은 더하지만 그때도 정보는 차고 넘쳤다. 그런데도 유독 그 책에 꽂혀 깨알 같은 글씨까지 놓치지 않고 읽었다. 책 대로 하면 출산도 육아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겠지 싶었다. 얼마 전 아이를 낳은 올케도 그 책을 열심히 읽고 있더라. 그런 올케를 보며 ‘책, 그거 믿을 거 못 된다. 그냥 참고만 해라.’ 했지만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첫째는 대부분 예정일보다 늦게 출산한다는 책의 내용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11월 둘째 주가 예정일이었던 아이는 10월 25일에 태어났다. 예정일에 맞춰 준비하고 있었던 일들은 하나하나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멘붕의 연속이었다. 출산 후 내 몸의 회복 속도도, 모유 수유도 책에서 본 것처럼, 내가 준비하고 생각했던 것처럼 되지 않았다. 실패가 계속되었고, 이유는 잘 모르겠고, 뭐든 해야겠기에 시도 때도 없이 책이며 핸드폰을 뒤적였다. 산후조리를 도와주시던 엄마는 아기가 울면 먹이고, 아기가 자면 같이 자고 하면 되지 뭐하냐고 나무라셨다. 그래도 그땐 정말 몰랐다. ‘갑자기’에 대처하는 법을. 왜 책에 나온 대로, 내가 한 대로 되지 않냐며 억울해할 뿐.
아이를 키우며, 살아있는 존재와 함께하는 일상은 정말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10년째 배우고 있다. 나는 내가 계획한 대로 착착 진행되는 게 너무 중요한데 말이지. 육아는 그렇지 않다. 어린이집 등원을 거부할 때는 이렇게, 초등 입학 때는 이렇게, 학년별로 과목별로 학습은 이렇게. 몇 년 새 정보는 더 많아졌고, 어설프게 따라 해보다 실패를 경험하는 일도 많았다. ‘그래, 사람이 다 다른데, 상황이 이렇게 다양한데 어떻게 책 한 권에 담아낼 수 있겠어. 어떻게 다 맞겠어.’ 생각하면서도 책을 보거나 정보를 찾다 보면 다 내 아이 이야기 같고, 우리집 같아서 금세 꽂힌다. ‘금쪽이’를 보고 있으면 우리 아이도 저런데 싶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한동안 아예 보지 말자, 찾지 말자 다짐하며 아이를 키웠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우리 아이는 달라. 우리 아이한테는, 나한테는 효과가 없을 거야.’ 하며 체념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건 그것대로 어려웠다. 아이의 문제행동을 가볍게 보기도 했고, 아이에게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지나치기도 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수없이 고민하고 방황하다 다시 책 앞을 서성이고 있는 나를 본다.
큰아이의 사춘기가 저만치서 다가오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사춘기』 제목이 참 좋다. 나는 다시 책을 보며 준비한다. 눈을 들어 전체를 살펴본다. 요즘 아이들의 사춘기는 어떤지, 사춘기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 건지, 부모인 나는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 건지.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아이를 본다. 이 아이의 사춘기는 어떨지. 아이와 함께한 지 10년, 이제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올 일들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세상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 특별한 존재이므로 어떤 공통된 원리와 공식만으로 대할 수 없다는 점을 꼭 기억”(13쪽)하며, 내가 준비하는 것은 “여러 갈래 길 중 하나가 되면 좋겠다”(13쪽)는 마음으로 내 힘을 빼는 것. 이렇게 하면 이렇게는 되겠지 싶은 내 기준을 내려놓는 것. 한걸음 물러서 있지만 눈과 귀는 항상 아이의 마음과 행동을 향해 있는 것. 그러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첫째의 사춘기를 괜찮게 보내볼 수 있지 않을까. 사춘기는 처음이라 또 어렵긴 하겠지만.
첫댓글 이것이 오늘의 최선!! 그러나 아쉬움은 남고.. 퇴고를 준비하겠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