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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큰 음녀의 받을 심판
14그들이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 심을 입고 택하심을 받고 진실한 자들도 이기 리로다(14).
17-18장은, 16:19절에서,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한, 바벨론 심판에 관한 상론(詳論)입니다. 그렇다면 바벨론의 멸망을 이처럼 두 장(章)이나 할애하여 자세하게 설명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구약성경에도 이러한 예가 있습니다.
예레미야서 마지막 부분인 46-51장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대적한 열 나라를 심판하실 것에 대한 예언인데, 애굽으로 시작해서(46장), 바벨론으로 마치고(51장) 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에 대한 심판은 두 장(50-51章), 110절이나 되는 분량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계시록이 17-18장 두장을 할애하여 다루고 있는 것과 상응(相應)하고 있는데, 이는 구속사에 있어서 바벨론의 멸망이 그토록 중대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벨론을 이처럼 비중 있게 다루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벨론이 “이방인의 때”(눅 21:24)를 상징하는 머리(대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점이 “신상”의 황금 머리가 바벨론을 상징하고 있다는 데서 드러납니다.
예루살렘이 전에도 여러 번 침공을 당했으나 성전이 불타버리도록 짓밟히기는 바벨론에 의한 것이 처음입니다. 이점을 구속사라는 맥락으로 보면 거룩한 곳이 이방인에게 짓밟힌, 즉 “이방인의 때”가 시작된 것으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후로 이방인의 종주국(宗主國)은 바벨론→바사→헬라→로마로 바뀌었어도 머리는 여전히 바벨론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벨론”이란 요한 당시로는 로마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심판을 받아 무너졌다는 것은 거룩한 곳을 짓밟고 있던(11:2) 이방인의 때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바벨론 심판에도 과거, 현재 미래적인 의미가 적용된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바벨론과 요한 당시의 바벨론(로마)과, 종말에 있을 “바벨론”에만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현재의 바벨론”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심판을 17-18장, 두 장을 할애하여 상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세 단원으로 나누어 상고하겠습니다.
첫째 단원(1-6) 심판 받아야 할 이유
둘째 단원(7-14) 음녀와 짐승의 관계
셋째 단원(15-18) 음녀의 멸망
첫째 단원(1-6) 심판 받아야 할 이유
①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1)합니다. 그냥 천사라 하지 않고 일곱 대접재앙을 쏟은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말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은, 17장이 16:17-21절(바벨론 멸망)에 대한 상론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②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1하) 합니다. 여기서 “큰 음녀”는 바벨론(5), 즉 요한 당시로는 로마를 가리키는 말인데, “많은 물위에 앉았다”는 뜻은 무엇인가? 이점을 15절에서 설명해주기를,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라합니다. 이는 바벨론(로마)이 열국 위에 군림하고 있는 종주국(宗主國) 노릇을 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묘사입니다. 그래서 5절에서는 그 이름을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는 것입니다.
③ 2절은 바벨론(로마)이 심판을 받아야 할 이유를 말씀해주고 있는데,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게”(2)했기 때문이라 합니다. 바벨론을 가리켜 “큰 음녀”라 말하면서, 땅의 임금들과,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했다는 것은 영적인 음행, 곧 우상숭배에 가담했음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요한 당시로는 로마의 황제를 신격화하여 숭배한 것을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이점은 14:8절에서,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고 이미 말씀한 바입니다.
④ 6절에서는 심판 받아야 할 또 다른 이유로,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합니다. 이는 큰 음녀가 음행, 즉 우상숭배만 강요한 것이 아니라 이를 거부하는 성도들과 증인들을 죽여 피를 흘렸음을 나타냅니다. “취하였다”는 묘사로 보아 수많은 성도들의 피를 흘렸음을 나타냅니다.
바벨론 당시에도 신상(神像)에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니엘의 세 친구를 불가마에 던진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큰 음녀가 심판 받아 마땅한 죄는, “우상숭배와, 성도들을 박해한 일”입니다.
⑤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3상)합니다. “붉은 빛 짐승”은 당시로는 로마를 가리키고, 그 짐승을 탄 “여자”는 13:1절에서 언급한 바다 짐승과 동일한 존재로 로마 황제를 가리킵니다. 이를 정리하면, 〈붉은 빛 짐승+큰 음녀=사탄의 하수인 로마>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3하) 합니다. 이점에서 대적의 상반된 두 얼굴, 두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4-5)한 묘사는 “금잔에 가득한 음행”을 마시게 하려는 창녀의 모습입니다.
반면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3)한 묘사는 가공할만한 적그리스도의 모습이요,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6)한 묘사는, 흡혈귀와 같은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성도들은 “붉은 빛 짐승을 탄 여자” 앞에서 “우상숭배를 할 것이냐, 아니면 순교를 당할 것이냐” 양자택일을 강요당했던 것입니다.
⑥ 이점에서 경각심을 갖게 되는 것은 이런 두 얼굴과 양면성(미혹과 박해)을 가진 대적은 과거와 미래에만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지금도 현대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양면성이라는 점을 명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큰 음녀가 누구이며 그가 심판 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16:5-7절에서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한 의미가 더욱 분명해졌다 하겠습니다.
둘째 단원(7-14) 음녀와 짐승의 관계
① “천사가 이르되 왜 놀랍게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가 탄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7)합니다. 우리는 이제 논란(論難)과 이설(異說)이 많은 부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본문을 상고하기 전에 두 가지 점을 명심하자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계시록은 환난 중에 있는 교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주어진 말씀인데, 도리어 이 지점에서 싸움을 하듯 논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자는 것이고,
둘째는 계시록에는 줄기 말씀과 가지 말씀들이 있는데 여기 등장하는 세세한 부분들은 가지에 해당이 된다는 점입니다. 17-18장의 내용은 16:17절에서,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고 선언하신 바벨론 심판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상론입니다. 그러므로 세세한 부분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계시록을 통해서 교회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중심 주제를 파악하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② 분명한 것은 그 누구도 단정적인 해설을 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본문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보다 앞서 나가려 하지 말고 겸비한 마음으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거시적으로 보아야 하는데 그렇게 본다면,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7)도 난해한 것만은 아닙니다.
이점에서 교회가 싸워야 할 대적은 “하나이면서 여럿이요, 여럿이면서 하나”라는 점입니다. “일곱 머리 열 뿔”이 아니라 70머리 100뿔이라 해도 그것은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20:2)한, 한 몸의 지체일 뿐입니다. 일곱 머리는 “일곱 왕이라(10), 열 뿔은 열 왕이니”(12) 한대로 이들은 모두가 초대교회 당시 교회를 박해한 적그리스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의 진영만 그런 체제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진영도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 하니라”(고전 12:12)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武器)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고 권면합니다.
또한 “뿔”은 권세를 상징하는데 적의 진영에만 뿔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눅 1:69)고 그리스도를 뿔이라고 말씀합니다. 계시록 5:6절에서는,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하면서,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합니다.
일곱 머리 열 뿔
형제가 그리스도의 지체가 분명하다면 형제도 사탄의 진을 파괴할 “의의 무기”요, 선한 싸움을 싸우기 위한 뿔이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9:12절에서는, “그 피를 네 손가락으로 (번)제단 뿔들에 바르라” 말씀하는데 번제단에도 뿔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대속 제물이 되어주신,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인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이란 1차적으로는 초대교회가 직면했던 상황, 즉 로마 제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권력 구조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④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8상)하는데 이 “짐승”은 무엇인가? 학자들은 13:3절에서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보아 당시 소문이 난무했던 “죽은 네로가 다시 살아서 돌아온다” 는 네로의 환생 설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어떠하든 17장은 초대교회가 직면했던 당시 상황을 예표로 하여 지상에 존재하게 될 모든 교회들에게 경계하는 말씀이라 하겠는데 중요한 점은 계시록이 기록된 지 2천년이 지난 오늘에 사는 현대교회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는 적용입니다. 이점을 8절에서 재차 강조하고 있는,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자”라는 표현에서 구할 수가 있는데, 이는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1:8)하신 하나님의 속성과 대칭을 이루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적은 어떤 자인가? 주님은,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요 12:31),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 16:11) 하십니다. 그러니까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게 되었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하고 지금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즉 “장차 나올 자”이나 “멸망으로 들어갈 자”(8중)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20장에서 무저갱에 갇혀있던 사탄이, “그 후에는 반드시 잠시 놓였다가(20:3),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리라”(20:10)는 말씀과 부합합니다.
⑤ 여기 중요한 요점이 있는데,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8하)한 말씀입니다.
13:8절에서도,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고 말씀하는 데서 중요성이 나타납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이 된 자들”, 즉 성도들은 미혹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 성도들은 안전합니다.
⑥ 또 교회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점은,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10)라는 묘사에서 구할 수가 있는데, “일곱 왕”은 무두가 적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다섯은 망하였으나 현재의 독자들에게 위협이 되는 요점은, “하나는 있다”(10중)는 사실입니다. 이는 요한 당시로는 재임 중의 어느 왕을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하나는 있다
그런데 요한 당시만이 아니라 어느 시대나 “하나는 있다”는 사실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위(位)가 비어있는 때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들이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13), 즉 한 뜻으로 교회를 박해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한 대로 미래에도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⑦ 17장을 통해서 교회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중심적인 말씀은 결론과 같은 14절이라 할 수가 있는데, “그들이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14상)합니다. 적그리스도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운다는 것이 종말에만 있을 일이겠습니까?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바로가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라”(출 1:22)한 것을 구속사라는 문맥으로 보면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운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 당시도 있었습니다. 헤롯이 베들레헴 경내의 두 살 이하의 영아를 다 죽인 일(마 2:16)이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은 분명 어린 양으로 싸운 전쟁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잔멸하려는 사울을 향해,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하셨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⑧ 그러나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터이요”(14중) 합니다. 어찌하여 주님을 이 지점에서 어린 양이라 하지 않고 “만왕의 왕”이시라고 말씀하는가? 17장에 “많은 왕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제아무리 많은 왕이 등장한다하여도 우리 주님은 그들을 주관하시는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그들을 이기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승리로 말미암아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14하)합니다. 이들이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첫째가 하나님의 선수적(先手的) 은혜인 “택하심과, 부르심”에 있고, 둘째로 “진실한 자들”이라 한 믿음인 것입니다.
⑨ 계시록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이 부분은 이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계시록이 난해(難解)하다는 것은 관점의 문제입니다. “일곱 머리 열 뿔”로 상징된 왕들이 역사적으로 누구인가를 규명하려는데 주안점을 두니까 난해하다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중에 정말 난해한 책이 어느 책인지 아십니까? 요한계시록이 아니라, “요한복음”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얼마나 어렵습니까? 참으로 난해한 것은 “일곱 머리 열뿔”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아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엡 1:17) 해달라고 간구했던 것입니다.
“일곱 머리 열 뿔”이 김 서방이면 어떻고, 박 서방이면 어떻습니까? 분명한 것은 17장의 중심이 이를 밝히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14하) 하신 “승리”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17장은 이 한 말씀을 하시기 위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셋째 단원(15-18) 음녀의 멸망
①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네가 본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16) 합니다.
여기 필연적인 종말을 보게 되는데,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악이 악을 칠 것을 의미합니다. 네로 왕도 원로원에 의해서 쫓겨나 자살하는 것으로 종말을 고했던 것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도,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고 자고할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라”(단 4:28-33)고 말씀하십니다.
② “이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17)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다니엘서에는, “하나님의 뜻대로”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단 4:32, 17, 25)고, “하나님의 뜻대로”가 세 번이나 강조되어 있습니다.
③ 17장에 등장하는 왕들도, “하나님의 정하신 때와 뜻”에 따라 일어나기도 하고, 폐하여지게도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분명한 것은 “붉은빛 짐승을 탄 음녀”는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구약시대에 등장했던 “바로, 느부갓네살, 안티어커스에피파네스, 그리고 요한 당시의 네로, 도미시안” 등은 모두가 다 짐승들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제도 적그리스도는 활동하고 있음을 분별력을 가지고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종말의 결정적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9:15) 적그리스도는 등장을 하였다가 “멸망으로 들어가게”(8) 될 것이라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만, 결론은 어린 양과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14)한 이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지금은 없으나”(8) 한 주님께서 사탄을 결박하신 승리에 근거하여, “하나는 있고”(10)한 지금도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는 긴장 사이에서 싸우는 싸움인 것입니다.
17장을 마치기 전에 한 가지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1),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한 〈음녀〉와,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21:9)한 〈신부〉의 대조입니다. 그리고 천사가 보여준 신부가 누구인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형제입니다. 음녀가 사탄의 신부라면 형제는 어린 양의 신부라는 말씀입니다. “음녀”만을 보고 의기소침하지 마시고 어린 양의 신부인 자신을 보시고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큰 음녀의 받을 심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