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당선소감/김현성
수필을 쓰면서부터 조금씩 마음에 변화가 왔습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고요. 참으로 기쁜 변화였습니다. 한 포기의 풀에도 마음이 가 머물고, 기어가는 벌레에게서 연민을 느끼는 순수한 마음의 발견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수필에 대한 사랑으로 긴 밤을 지새우는 날도 있었습니다.
막 집을 나서려는데 낯선 전화번호가 신호를 울렸습니다. 신춘문예 당선을 축하한다는 상냥한 음성이 믿기지 않아 기뻐하기보다 ‘잘못 온 전화가 아니야?’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난무하는 눈발이 온통 축하하는 웃음소리로 들렸습니다. 발걸음도 가볍게 춤추듯 눈 속을 걸었습니다.
애초부터 기대는 하지도 않았습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가슴앓이를 보듬으며 썼던 글을 망설이다 응모하고는 설렘으로 행복해하던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너무나 부족한 글임을 알기에 당선소감을 쓰리라고는 정말로 생각지 못했습니다. 응모한 글을 꺼내어 다시 읽어 봅니다. 거슬리는 부분이 많아 조금 더 다듬을 걸 하는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수필과 만날 수 있는 다리를 놓아주신 이점승 선생님, 글을 쓸 수 있도록 가르치고 보듬어 주신 김정자 선생님, 그리고 함께했던 문우들,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나이를 잊고 열정을 담아 글을 지으라는 격려로 용기를 북돋아 주시는 동양일보와 심사위원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약력
1950년 진천 출생
16회 여성주간 양성평등 글 공모 대상
직지사랑 백일장 대회 일반부 대상(2011)
6회 청주. 청원 1인1책 펴내기 최우수작 선정(비 오는 날 산책)
○수필 부문 심사평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118편 수필 작품을 보며 역시 수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음을 새삼 알게 된다. 수필은 무슨 거창한 스토리나 구성, 큰 감동을 주려고 일부러 꾸밀 필요가 없다. 일상의 소소한 얘깃거리도 흥미를 주고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소재도 잘 소화하면 신선한 맛을 준다.
수필은 산과 숲을 대충 말하기보다는 그 속의 나무며 낙엽, 들꽃, 개미 한 마리에도 애정을 갖고 구체적으로 읽어야 한다. 망원경의 거시적 안목보다는 현미경의 미세한 세계를 관찰하고 우리 인생살이와 잘 엮어내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 수필 공부를 체계적으로 잘 익힌 작품이 많아 반가우면서도 선택의 어려움에 쩔쩔맨다.
'하루(윤봉중)'는 정년퇴직하고 보내는 하루 일과를 재미 있게 그리고 있다. 30년 넘는 고장난 괘종시계를 버리지 못하며 자신의 처지와 비교한다. 그러면서 잘 활용하는 시간을 펼쳐 보인다. 시간을 지배할 줄 아는 현인이고자 한다. 시계 판을 피자 한 판으로 연상한다. 피자 조각과 시간의 조각을 자를 것을 마음대로 정한다. 군자 같은 책과 '뷔페 서점'에서 데이트를 하고 서예에 심취하고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로 부부 사랑을 엮는다. 하루 시간을 잘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함께 낸 작품 '잠바'는 도심에 있는 건조하기 쉬운 사무실에서 따뜻한 인정이 샘솟던 시절의 삽화가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일깨운다. 추레한 과일 봉지 행상 노인이 방문한 이래 김 양을 비롯한 직원들이 관심을 기울이며 단골이 되었다. 오리털 잠바를 전달하려다가 결국 나타나지 않은 노인에게 전달하지 못한 안타까움이라니.
'하루'는 충분히 당선작감이었다. 비유와 은유, 위트와 유머, 깔끔한 문장력, 해박한 지식, 삶의 관조 등 수필의 속성을 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푸새하던 날(김현성)'이 나타나며 서로 우열을 가늠하게 되었다. '푸새'란 낯선 말이 실은 삼사십 년 전만 해도 흔히 우리 옷에 풀을 먹이던 말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쓰지 않고 잊혀졌다. 홑청이나 모시옷에 풀을 먹일 일이 의류의 변화로 실제 쓰질 않는 것이다. 어머니 시대에나 어울릴 이런 전통이 아직도 여름이면 대청마루에서 계승하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는 장면은 큰 감명을 준다. 옷을 손질하는 과정만도 우리네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데 상세한 묘사는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더 지켜볼 수 있을지 알길이 없다. 고결한 기품을 느끼게 하는 할아버지의 모시옷의 섬세함이 살아 있는 듯 흐트러짐이 없이 또렷한 결을 보이며 시조 가락을 읊으시던 모습을 그리며 정년 퇴직하여 위축된 남편의 모습을 꼿꼿하게 살려낼 푸새한 모시옷을 마련하는 데에서 새로운 지혜가 떠오른다. 사라져가는 우리것에 대한 연민에다가
'오답노트(오하늘)'와 '숨바꼭질(이혜경)'도 평범한 일상을 인생살이와 잘 대비한 슬기가 보이나 아직 작품으로서는 미흡했다.
심사위원 : 조성호(수필가)
첫댓글 소재가 신선하군요 .어린 날 우리도 엄마를 통해 본 모습인지라 정겹기도 하구요.
빨래의 푸새와 인생의 푸새를 놓고 고민하는 작가의 시선이 특별해 보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옥례샘~~^^
울산 에포에 이혜경선생님도 최종심에 올랐네요.
올해는 꼭, 당선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