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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20 그해 첫 봄, 선생님... 저와의 첫 만남이 어디였는지 기억하십니까? 학교일까요 아니면 매곡동 로터리 어디 햇살 빙빙 도는 오거리였을까요 우리 잔디 강산이 따박따박 앞세우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어느 늙고 평화로운 한낮의 책방 앞은 아니었나요 두돌박이 세살 나들이 봄길을 붙잡고 "안나..." 뒷춤에서 은빛 동전 한닢을 꺼내던 그 인자하신 책방 아저씨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십 수년 전 순천 웃장 건너 당신과 마주친 눈인사가 그 인연의 첫 실오라기였을 것. 어느덧 그 시간이 돛을 달고 한 줄기로 마음의 강물을 삼아 교정의 포구에 닿았습니다. 오랜 책갈피 속 바람에 스치는 갈꽃들 사이로 재잘거리는 개개비 박새 도요새 아이들과 황새 흑두루미 중대백로들 선생님으로 우리는 만났습니다. 싱그러운 갯벌의 운동장과 창문밖 가지런한 들판 시골학교를 달리던 우리들 착한 출근길의 인연 그 어디쯤으로 맑아오던 들길이었을까요. 그 어디쯤에서 밝아오던 산길이었을까요. 이 길을 열어주신 당신의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한바다를 견디는 곰솔처럼 외롭고 힘들고 서러운 것들 내색 없이 저 먼 하늘을 드넓게 쓸어안아 가슴팍 불덩이로 그 수평선 아래를 다독여 오신 것, 참 잘 하셨습니다. 아름다운 교정의 무지개처럼 시원한 뒷산의 소낙비같이 선생님... 어제는 정든 교문을 나서며 이렇게 고백하셨죠. “나 이 길 떠나 어디를 서성일까.. 사십 년 꿈 그리운 내 정원 같은 학교를 떠나 나 이제 어느 모퉁이를 에돌아 출석부를 꽂고 나 누구를 달려 이 하얀 손끝에 분필을 묻힐까...” 꽃편지를 접고 종이비행기를 높이 들어 교실 창가에 어지러이 날리는 아이들이 끝내는 목이 메어 손을 흔듭니다.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이 사랑한 것은 한결같이 내일이라는 희망의 시편들이었습니다. 지쳐 쓰러진 꽃들의 씨주머니요 상처 입은 새들의 날개깃이요 밤늦은 별들의 합창이었습니다. 낮은 데를 쓰다듬는 눈빛이요 어린 데를 토닥이는 손길이요 외진 시대를 안아주는 따스한 품이었습니다. 주름진 이마와 마른 주먹과 우리들 백발이 외친 아, 살아 숨쉬는 교육 교육민주화 다 못 피운 참교육의 꿈! 꽃 진 자리에 찬 서리 내리고 한겨울 바람받이에 하얗게 남은 눈석임 곁 제비꽃 당신님 발끝에 돋아나는 봄을 축하드립니다. 개소시랑개비 하나 진달래 한 송이 더불어 내려놓겠습니다. 우리들 깝짝도요처럼 만났던 옛 갯벌처럼 부디 우리들 헤어지는 기슭의 명아주처럼 오래도록 꿋꿋합시다. 어디든 예쁜 관계의 꽃을 뭉게뭉게 피우시고 나룻배로 띄워서 황포돛배로 돌아오세요. 참교육으로 이기고 참세상으로 승리하고 참내일로 옳게 거두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거룩한 신앙과 뜨거운 동지애를 잊지 않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행운이 낮밤으로 파릇파릇하고 지상의 만 가지 기운이 해와 달 같아지시기를 뭇동지의 이름으로 기원하겠습니다. 2009. 2. 20. 최연택 선생님 정년퇴임에 부쳐 김진수 삼가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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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에 썼던 글이 제 블러그 어디서 나왔어요. 곧 블러그를 치우고 안으로 정리하려 해요. 순천지역 해직교사 가운데 연배가 젤 높은 형님이죠. 최연택선생님처럼 병으로 함께하지 못하기도 하거니와 여러 복잡한 인생살이 속에서 모두들 항상 첫시절만한 흥을 유지하기 어려운 나이들이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