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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성숙한 신앙생활(4) - 헌금 생활”
+ 본 문 : 말라기 3장 7절 – 12절 (구약 1330쪽)
+ 서로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 ‘축복 많이 받으십시요.’
+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
올바른 신앙생활, 성숙한 신앙생활을 위해 우리가 힘써야 일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맨 먼저 ‘말씀생활’ / 다음에 ‘예배생활’ / 그리고 ‘기도생활’ 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말씀은 설교자나, 듣는 성도들에게 가장 부담이 되는 ‘헌금생활’ 에 대한 말씀입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설교를 듣는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싫어서,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교인들이 부담스러워 교회를 떠날까봐 헌금에 대한 설교를 가급적 잘 안 하려 합니다.
그러나 헌금생활이 바로 되지 않으면, 신앙생활이 어느 단계 이상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담을 안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혹 시험 들거나,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설교자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헌금생활에 대한 가르침을 통하여, 바른 헌금생활을 하시므로
성숙한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며 복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중직을 맡은 분들 가운데 오히려 헌금에 대한 설교를 부담스러워합니다.
뿐만 아니라, 바른 헌금생활을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직자들은 교회와 하나님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자고 뽑아놓은 사람들인데, 십자가의 헌신은
둘 째 치고, 헌금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니, 그와 같은 사람들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낼 훌륭한 교회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올바른 헌금생활을 통해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종교개혁자 루터는 ‘돈지갑이 회개하기 전에는 진짜 회개한 것이 아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죤 웨슬리는 '벌 수 있는 대로 벌어라, 저축할 수 있는 대로 저축해라. 드릴 수 있는 대로
드려라.‘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헌금을 줄이지 말고, 탐심을 줄여라!’ 하는 말씀을 드립니다.
* 첫째로, 올바른 헌금생활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최고를 드려야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가난한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용돈을 넉넉히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돈으로 헌금을 드려 본 기억은 별로 없고, 쌀이나 보리쌀로 헌금을 대신 했었습니다.
그러나 세배 돈을 받았을 때만은, 작지만 저도 당당하게 종이돈으로 연보를 했었습니다.
전기다리미가 없을 때여서 숯불 다리미로 다림질을 하는 때였는데, 숯불을 피워서까지,
연보 돈을 다리미질을 해 가지고 가서 드린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께 드릴 연보를 아무렇게나 드려서는 안 된다는 전도사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저는 제가 가진 돈 중에 가장 새 돈으로만 연보를 드립니다.
가끔은 은행에서 처음 나온 신권으로 바꾸어 놓았다가 드릴 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 돈으로 헌금을 드려보십시오.
헌금을 드리기 위해 돈을 바꾸러 은행엘 한 번 가보십시오.
만약 새 돈을 바꾸지 못했다면, 그 연보 돈을 다리미로 한번 다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다리미로 다린다고 천 원짜리가 오천 원짜리가 되고, 만 원짜리가 이만 원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신앙의 격과 수준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왕에 예수님을 믿으려면, 무엇을 하든지 정성껏 해보십시오.
헌금도 새 돈으로 바꾸어 드려보고, 주일날 교회에 가기 전에 목욕도 하고,
가장 좋은 옷으로 골라 정장을 하고 교회에 가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 돈이나 생각 없이 헌금으로 드리고, 아무 옷이나 편하게 하고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옛 찬송가 가사 중에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는 가난한 사람, 부요한 사람, 높은 사람, 낮은 사람 관계없이,
누구나 와도 되지만 '아무렇게나' 나와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 중에 "아무나 오게." 라는 말을 "아무렇게나 오라." 는 뜻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아무렇게나 나와서, 함부로 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하나님께는 무엇을 하든지 가장 깨끗하고 좋은 것으로 정성껏 드리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이며, 그렇게 예배를 드릴 때에 예배 중에 성령이 역사
하셔서 우리가 늘 바라는 은혜 충만하고, 성령 충만한 예배가 가능하게 됩니다.
은행에서 새 돈을 바꾸어 오거나, 아니면 돈을 다림질하여서라도 늘 새 돈으로 연보하기를 힘쓰고,
주일날 교회에 갈 때마다 가장 깨끗하고 반듯한 옷으로 정장을 할 수 있기를 권합니다.
형식적인 것 같지만 형식이 내용을 주장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을 드리려고 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될 때, 우리의 모든 삶이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화의 그림이 진짜 예수님이 아니라고, 성화를 깔고 앉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책이 일반 인쇄소에서 인쇄된 책이라고 마구 찢어 휴지로 쓰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피아노가 악기일 뿐이라며, 예배용 피아노로 유행가를 연주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돈은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머니에서 꾸깃꾸깃 돈을 꺼내 헌금함에 내어 던지듯,
헌금하는 사람이 내는 그 돈은 그의 인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최선을 다해, 최고를 드리려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서정주 시인은 "해녀도 가장 좋은 전복은 님을 위해 아낀다." 고 노래했습니다.
* 둘째로, 올바른 헌금생활을 위한 기본인 십일조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헌금생활 중 가장 힘들고 부담스러운 것이 바로 십일조 헌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수입 중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그것을 하나님의 창고에 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른 십일조 생활을 하는 사람을 축복하신다고 말씀하시며, 바른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아니하는 사람을 저주하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소득의 십분의 일을 떼서 헌금으로 드린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일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우리에게 십일조 헌금을 하라고 하시는 것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십일조 헌금을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약1:15)
모든 사망의 원인은 죄요, 죄의 원인은 욕심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을 다스리려면 죄를 다스려야만 하고, 죄를 다스리려면 욕심을 다스려야만 합니다.
욕심 중에는 여러 종류의 욕심이 있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욕심은 물질에 대한 욕심입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다스릴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 밖의 욕심도 얼마든지 다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물질에 대한 욕심을 다스리며 살라고, 십일조의 법을 내신 것입니다.
물질은 하나님의 축복의 산물인 동시에, 하나님이 주신 선물 중 하나인 은사입니다.
은사란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목적으로 주셨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데 쓰라고 주셨습니다.
물질도 은사이기 때문에 소유하라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쓰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물질을 바로 쓸 줄 아는 사람에게 물질의 은사를 주실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게 물질의 은사를 주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의 축복, 물질의 은사를 받기 원하신다면, 십일조 생활을 결단하십시오.
내가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십일조 원칙이 있습니다. 참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모든 돈은 십일조를 떼고 난 후에 쓴다는 원칙입니다.
모든 수입이 생길 때마다, 제일 먼저 그것의 십일조를 계산하여 먼저 떼어놓는 것입니다.
즉 쓰고 남은 돈으로 십일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떼고 남은 돈으로 생활합니다.
십분의 일을 계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 먼저 드린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둘째, 밥을 굶어도 십일조는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 평생 십일조를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가능한 한 온전한 십일조를 흠없는 것으로 드리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원칙입니다.
십일조 헌금에 대하여 한 가지 더 이야기해야 할 게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기는 하지만, 구태여 구분을 하자면 소득의 십분의 일은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것이요, 나머지 아홉은 우리를 위해 쓸 수 있도록 허락받은 물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물질의 10분지 일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반드시 온전한 십일조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십일조 헌금 외에 주일헌금, 선교헌금 등, 기타 헌금은 내가 쓸 수 있도록,
허락 받은 돈에서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자신의 십일조를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에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십일조가 아니라, 선교헌금에 속합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의 선교헌금을 자기 돈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돈으로 한 셈이 됩니다.
'일석이조' 라는 말이 있습니다. 돌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헌금은 일석이조의 정신으로 하면 안 됩니다.
십일조 헌금으로 십일조도 하고, 선교도 하고, 구제도 하는 식으로 헌금을 해서는 안 됩니다.
십일조는 십일조로만 끝내는 것이 깨끗한 것이고 온전한 것입니다.
* 셋째로, 바른 헌금생활을 위한 기본인 십일조 헌금외의 헌금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우리가 드리는 헌금에는 이렇게 주일날 드리는 주일헌금이 있습니다.
모든 제사에는 예물이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가난하여 드릴 것이 없을 때에는 깨끗한 물 한 그릇이라도 떠놓고 빌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빈손으로 오지 않고, 물 한 그릇이라도 정성껏 떠오는 심정으로 드리는
헌금이 바로 주일헌금입니다.
그러면 주일헌금은 어느 정도 드리는 것이 좋습니까?
형편대로 할 수 있으나,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주일헌금이 길가 걸인에게 구제하는 수준이어서는 안 됩니다.
친구들을 만나서 커피 한 잔 정도는 큰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드리는
주일헌금이 커피 값보다는 많아야 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점심 대접해드리는 마음으로 주일헌금을 드립니다.
내가 정말 좋아서 만난 사람에게 점심 한 번 잘 대접하려고 할 때, 쓸 수 있는 액수를 생각하고
나는 한 주일에 한 번 예수님에게 식사대접을 한다는 마음으로 주일헌금을 작정하고 드립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것은 개인의 형편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부의 엽전 두 푼을 귀히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다음으로 우리가 드리는 헌금에는 구제헌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축복하시는 헌금이 십일조 헌금이라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 받으시는 헌금 중의 하나가 구제헌금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소자 한 사람을 위하여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자에게 결단코 상을
잊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제헌금도 형편에 따라 하는 것인데,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대로 하면, 한달 수입의 하루 분은 가난한 자를 위하여 드려야 합니다.(신14:28-29)
예수님의 말씀처럼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통해서 목회자가 구제 대상자에게 전함으로 은밀하게 할 수도 있고,
자신이 직접 은밀하게 전할 수도 있습니다.
# 그리고 우리가 드리는 헌금에는 선교헌금이 있습니다.
요즘도 세계 방방곡곡에서, 그리고 국내에서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참으로 헌신적으로 나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들이 일선에 나서서 헌신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후방에서 저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기도로, 선교헌금으로 후원하는 후원자가 드리는 헌금이 바로 선교헌금입니다.
이 외에도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여러 종류의 헌금이 있습니다.
신년,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성탄절과 같은 절기헌금과 교회를 건축한다든가 할 때에
드리는 건축헌금이 그것입니다.
* 넷째로, 우리가 바른 헌금생활을 하도록 하나님이 도우시고, 축복하십니다.
저는 앞에서 말씀드린 헌금의 종류들을 정리하면서, 교회생활을 하면서 성도님들이 내는
헌금종류가 그렇게 많은 것에 대해서 놀랬고, 또 한편으로는 이와 같이 여러 종류의 헌금을
드리면서도 부담을 느끼지 않고, 감사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에 놀랬습니다.
물론 부담이 된다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러면서도 교회를 떠나지는 않는다는 것에 놀랬습니다.
그와 같은 헌금생활을 감당하면서 산다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이 감당하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에 그와 같은 헌금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헌금 작정은 우리가 하지만, 그 헌금을 감당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듯이, 바른 헌금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더 많은 것으로
축복하시고, 그러므로 하나님께 더 헌금할 수 있는 여유까지도 주십니다.
헌금은 계산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헌금은 믿음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온전하고도 바른,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풍성한 헌금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 다섯째로, 바른 헌금생활을 위해서 절제생활을 해야 합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교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의 종류와 액수가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이 살아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신앙인들의
절제생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술, 담배를 하지 않고,
도박과 허랑 방탕한 데 돈을 쓰지 않으며, 깨끗한 생활을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에 헌금은 하지 않지만, 교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나쁜 곳에
돈들을 낭비하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물질생활이 어렵습니다.
바른 헌금생활을 하려면, 건전한 생활을 하여야 하며, 절제생활을 하여야만 합니다.
헌금생활을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같이 헛된 일에 사치하여 돈을 낭비하면서 산다면,
그는 정말 망하고 말 것입니다.
저는 세 아이들을 버겁게 교육시키면서, 저 나름대로의 절제 생활에 대해서 교육을 시킵니다.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으로 경쟁해야지, 얼마짜리 메이커 운동화를 신었는가, 얼마짜리 옷을
입었는가로 경쟁한다는 것은 공정치 못한 일이요, 부끄러운 일임을 가르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약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나의 이 두 가지 이론을 이해해 주고, 동의해 주면서 잘 자랐습니다.
그리고 이젠 가정을 꾸리면서 가능한 한 절제하고, 바른 헌금생활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바른 헌금생활을 하려면, 건전한 생활을 하여야 하며, 절제생활을 하여야만 합니다.
* 여섯째로, 바른 헌금생활을 위해서는 유산을 바르게 정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유산 안 남기기 운동을 벌이는 분들이 있어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가족은 그 재산의 각자의 몫이 있습니다.
가족이 5명이면, 각자의 몫은 오분의 일이며, 우리가 자식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유산의 한계도 바로 그 자녀의 몫인 오분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부모 몫은 자식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고, 하나님께 드려 선한 일에 쓰여지도록,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자기 재산을 모두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죽을 때 자녀들의 몫까지 모두 하나님께,
바치거나 선한 일에 쓰도록 내놓는 일은 월권이라고 생각하며,
자기 몫의 재산까지도 모두 자식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재물을 물려주는 부모는 바보요, 재물을 다스리는 지혜와 생활 자세를 물려주는 부모는 괜찮은
부모요, 그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삶을 물려주는 부모는 흘륭한 부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바른 헌금생활을 하도록 하나님이 도우시고,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늘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듯이 바른 헌금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더 많은 것으로
축복하시고, 하나님께 더 헌금할 수 있는 여유까지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계산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고, 믿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절제생활, 깨끗한 경건생활, 유산을 바르게 정리할 줄 아는 생활로,
신앙이 아름답게 성숙해지고, 하늘의 신령한 축복과 땅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