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25일은 '요지경에 담긴 고사'를 중심으로
몇가지 고사를 더듬어 봤습니다.
한쪽에서는 선거판 흙탕물 튀기는 꼴에 뵈는 게 없는데
또 한쪽에서는 아무개 가수하고 배우가 어쨋다네 소리로
온 나라가 요지경 속 처럼 보였던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요지경이란 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괜찮은 세상이었거든요. 그래서 판소리 심청가에 나오는
한구절을 인용하기도했었죠. <소녀는 서왕모 딸일러니
반도진상 가는 길에......> 이렇게 시작되는 심청가 태몽 대목은
이리 저리 따지자 보면 씁쓸한 구석도 있습니다만, 요지경과
관련있는 구절이거든요. 우선 심청이가 태몽에 나타나 밝힌
<서왕모> 딸이라는 것은 중국 곤륜산에 신선이 사는 땅
그 <요지>에 여 신선인 <서왕모> 딸이라는 계보로 본다면
심청은 그 전생에 있어서 신선의 땅, 요지에서 온 선녀라는 데
반갑고 놀랍지만 한국여성이 아니라는 점에서 씁쓸하더란 겁니다.
심청가를 지은이가 분명 조선 사람이었을텐데.
어째서 이 나라 장백 태백 지리산 계룡신선을 두고서 그쪽에다 족보를 걸었는지
그게 씁쓸하더란 겁니다. 이걸 중화주의에 빠진 사대정신이라
말하기도 하겠죠. <요지경>의 '요지'가 원래 신선들이 산
전설의 낙원이란 뜻에서 점차 신선 사는 땅 보다 별종들이 많아
별스럽고 기상천외한 인간세 사는꼴이 요지경 속이란 말로
바뀌었다는 게 아쉽다면 또 아쉬운 대목이겠죠.
청나라 당시 서구에서 돋보기가 들어 오면서
상자나 기구 안에다 별천지 그림들 넘기며 확대해 구경하면서
<요지경>이란게 이땅에도 들어오고, 그 꿈결 같은 환상의 세상을
보면서 신선들이 사는 세상 전설을 되새기기도 했던건데.
이제는 그 신선들 보다 더나 가관인 인간세 모습이 신기하고
별스럽고 놀랍고 기발해서, 아마 신선들도 지금은 인간들 사는 별스런 꼴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요지경>
이었습니다. 우선 방송글 부터 보시고 잠시 제 이야기 계속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신 명심보감 --- 요지경 속 고사 ’
놀보 이 시간은 마음을 밝혀줄 보배로운 거울같은 ‘명심보감’을
새롭게 풀어보는 ‘신 명심보감’ 자리입니다.
초란 고전 속에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 마음에 양식을 쌓아보는
‘신 명심보감!’ 오늘은 고전 속에 어떤 구절인가요?
놀보 ‘요지경’이란 말이 있죠?
초란 아,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라네에에
놀보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긴 세상은 정말 요지경 속이죠.
지금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가수와 배우 사이에
결혼했었다. 이혼했다더라. 법정소송중이라더라.
초란 아니, 그 이야길 ‘신 명심보감’에서 하려구요?
놀보 애초에 요지경의 요지는 그런 뜻이 아니었거든요.
초란 아하, 오늘은 ‘요지경’에 요지란 말을 돌아보자는거군요.
놀보 그렇죠. 그 ‘요지경’의 <요지>란 말이 중국 곤륜산에
산다는 여성 신선 서왕모 고사에 등장하거든요.
초란 그럼 여성 신선인 곤륜산 서왕모가 사는 동네가 요지였군요.
놀보 그렇죠. 여기 홍길동을 지은 허균이 노래한
역대 신선들을 노래한 ‘열선의 찬’이란 시를 보세요.
초란(낭송) 빛나도다 서왕모(西王母)여 / 昭哉金母
상서로운 기운을 조절하고 하늘을 받들었네 / 調氣承天
아낙네 몸이로되 도를 구하여 / 女兮求道
그 바탕으로 신선되어 올라갔다네 / 資以昇仙
놀보 바로 그 서왕모가 살았던 곳을 요지라고 했던겁니다.
그래서 훗날 요지는 신선이 사는 곳을 뜻했는데
주나라 목왕이 ‘물고기, 자라, 악어로 다리를 만들어 드디어
춘산에 올랐고, 또 요지 위에서 서왕모에게 술잔을 드렸더니
천도 복숭아를 선물해 받았더라.‘ 이게 《태평광기》에도
전하고 <사마천 사기> 에도 기록돼 있더란 겁니다.
초란 요지경의 요지가 애시당초 여성 신선인 서왕모가 살았군요.
놀보 우리 심청가에 곽씨부인과 심봉사가 같은 태몽을 꾸었잖아요.
그 꿈에 심청이가 등장해서 ♬소녀는 서왕모 딸일러니
반도진상 가는 길에~~~ 이 대목이 나오죠.
초란 그럼 심청이 어머님이 원래 서왕모였다는거잖아요.
놀보 이야기로는 그런 셈이죠. 자 그런 신선의 마을 요지가
청나라 때 와서 요지경으로 바뀌는데요. 장사꾼들이
서구에서 들어 온 돋보기로 상자나 기구 안에 자그만
별천지 그림들을 넣어 두고 구경하게 했던겁니다.
초란 인간세상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세상을 보여주는
그 요지경 속에 풍경은 그 당시 충격이었겠군요.
놀보 그게 현대에 와서는 신선 사는 동네 요지경 속이 아니라
인간이 별스럽고 유별나고 기상천외하게 사는 모습으로
바뀌게 된 겁니다. 그래서 우린 또 요지경 속 이야기를
이렇게 늘어 놓고 있는 것이구요.
초란 요지경 하면 신선들 사는 세상을 봐야 하는데.
말로 형언할 수 없이 이상하고 별스런 사람들 사는
모습을 바야 하는 오늘이란 말이 됐군요.
놀보 조선시대 전기만 해도 우리 산천도 신선이 사는 산천으로
노래했었습니다. 서거정등이 편찬한 <동문선>에
곽동순이 남긴 ‘팔관회 선랑’에 대한
시 구절에 이런 말이 있거든요.
<꽃다운 이름을 금록에 적고 높은 발자취는 요지에 이르니>
초란 그런 신선의 나라이기도 했던 이 땅에 요즘은 유별난 사람들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요지경 속으로 들끓어서 또 이런 노래가
♬(요지경)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 친다.” 이래야할까요
놀보 오늘 ‘신 명심보감’ <요지경>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다음 카페’ ‘우사모’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초란 좋은 자료나 담론은 ‘우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땅에 신선들이 살았다는 <요지>가 있었다고 한다.
신라 화랑이 그 요지를 찾고자 나선 기록도 있었다고 한다.
신선고을 요지를 잠시 구경하고 나와서 돌아보니
엊그제 검은 머리가 허연 백발이 됐노라 너스레 떨며
하룻밤 꿈 같은 신선골 <요지> 이야길 소설로 쓴 사람도 있다.
고려 인종때 곽동순(郭東珣)의 <팔관회선랑하표(八關會仙郞賀表)>를 보면
“풍류(風流)가 역대에 전해 왔고, 제작(制作)이 본조(本朝)에 와서
경신(更新)되었으니, ...5백년 간에 화랑(花郞)들이 배출돼
원랑(原郞)ㆍ난랑(鸞郞)같은 적선(謫仙)들이 명승지를 두루 찾아
소요(逍遙)하여 노닐었고”하는 기록을 보면 화랑의 프로그램 중에
신선도를 즐기는 동호 그룹도 있었던가 싶다. 물론 신라 청소년단을
지도하는 한 방편으로 '산천정기 좋은 기상을 자연 속에서 수련하는 과정' 중에
신선의 자취를 탐방해 보는, 요즘 말로 '체험 프로그램'이 있었던 성 싶다.
우리땅에도 신선골 <요지>가 있었던 셈이다.
꼭 지리산 청학동이 아니래도 상관없이, 도처에 신선이 살았음직한
수려한 경관 신비로운 자연 그대로 별천지들이 꽤 있었다는 소리다.
조선 광해군에서 인조 때 문신이며 '척화론자' 였던
정온은 청나라에 항복한 망국의 나라에 살 수 없노라 자탄하며
스스로 덕유산 속으로 들어가 산지 5년만에 세상을 떴는데
그가 남긴 '자리를 펴 놓고서 신선을 기다린다' 노래를 보면
죽기전에 잠시 꿈에서라도 가보고 싶었던 신선골을
덕유산 산골에서 그려 보기도 했던 모양이다.
천자가 그 나름 무력으로 천하를 살륙질 해놓고서
신선을 찾아 산으로 들어갔더란 이야기 형식으로 전개되는
정온의 신선 기다리는 노래는
코 앞에서 신선과 만나 별천지 체험해 보는 세상을
그림처럼 그려주고 있다. 그 형언할 수 없는 경치며
음악이며 불로장생 술 한잔이며 천도복숭아까지
신선놀음에 등장하는 신선 전유물들이 다 등장한다.
그리고 천자가 말하기를 천하를 무력으로 다스리면
자기도 편해 질까 했더니 무력을 쓰는 사이 늙어 버렸다.
그래서 신선을 찾은 것이다. 저 세상을 잊으라면 잊을테니
신선놀음이나 한번 해보세. 그러면서 시작된 요지의
신선놀음은 새벽에 닭 우는 소리로 산통 깨지고 만다.
방금 코 앞에서 펼져졌던 그 아름다운 풍광도 사라지고
훨씬 더 늙어빠진 백발의 자신을 보게 되더란 거다.
그리고,
삶의 무상함을 이 몇구절로 갈무리 한다.
지금 저 적막한 무릉에는 / 但見夫寂寞茂陵
쓸쓸한 송백만 보일 뿐 / 蕭蕭松柏
신선은 어디에 있는가 / 仙官何處
옛 자리는 흔적도 없네 / 舊座無跡
해마다 칠석이 되면 / 年年七夕
삼경의 달에 운다오 / 三更月泣
신선을 만나려던 천자도 갔고, 그런 환상을 체험해 보고 싶었던
정온도 갔다. 그리고 이땅에 신선골이라 할 동네는 이미 인간들이 다
차지하고서 그래서 오갈데 없는 신선들이
지금은 자기들 보다 별스럽고 흥미롭고 아찔하면서 기상천외로 사는
인간들 사는 꼴을 요지경 속 보듯이 구경하고 있을 것이란 소리다.
그래도 만화 속이라도 신선세상이 그립거나.
이슬방울 마를 새도 없이 빠른 인생이 허무하다 싶어서
숨이라도 더 쉬고 싶은 불로장생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아래 '허균'이 <성소부부고>에 남겨 둔
역대 신선을 찬탄한 노래로 신선갈증을 조금 식혀 보도록 하자.
때로는 실존했던 인물들도 신선으로 추대된 것은
허균이 보기에 그래도 신선 같이 살았다고 인정해 준 셈이라 치고
그가 꼭 신선이었나 아니었나 따지지 말기로 하자.
노자(老子)
선천은 무극이요 / 先天無極
대도는 무위요 / 大道無爲
현묵과 순정은 / 玄黙純精
만법의 스승이라 / 萬法之師
오천문 읽어보니 / 閱五千文
아 밝도다 지극한 덕이여 / 於昭至德
숨기도 드러나기도 하여 변화가 무궁하니 / 隱顯變化
용인 양 그 조화 알 수 없고나 / 猶龍莫測
왕예(王倪)
넋을 단련하고 신을 날려라 / 煉魄飛神
숨었다 드러났다 단서가 없네 / 隱見無端
나는 그 도(道)를 / 我得其道
복희(伏羲)ㆍ신농(神農)에게서 터득했다네 / 羲農之間
울화에게 배운 것도 아니오 / 匪師鬱華
설결에게 전수하지도 않았다네 / 匪授齧缺
무극은 늘 있거니 / 無極常存
만법은 하나로 돌아간다네 / 萬法歸一
광성자(廣成子)
아득하고 그윽함은 / 窈窈冥冥
지도(至道)의 정기이거니 / 至道之精
신을 감싸고 형을 바로 하며 / 抱神正形
잠잠하고 고요하고 맑도다 / 昏黙靜淸
그대 하늘이란 / 子之謂天
오래 삶도 오히려 군더더기라 / 長生亦贅
꿈이 이상향(理想鄕)에 노니니 / 夢游華胥
인간이란 그 어떤 세상인고 / 人間何世
서왕모(西王母)
빛나도다 서왕모(西王母)여 / 昭哉金母
기(氣)를 조절하고 천을 받들도다 / 調氣承天
아낙네 몸이로되 도를 구하여 / 女兮求道
그 바탕으로 신선되어 올라갔다네 / 資以昇仙
화림(華林)의 어여쁜 난이오 / 華林媚蘭
현대(玄臺)의 푸른 물이로다 / 玄臺翠水
목만(穆滿)은 무엇을 할꼬 / 穆滿奚爲
유철(劉徹)은 헛된 짓이었네 / 劉徹徒爾
상원부인(上元夫人)
하얀 옷 빛나고 빛나라 / 霜袍燁燁
기린 타고 배회하네 / 麟駕徘徊
그 누가 진적(眞籍)을 가지고 / 孰領眞籍
영대(玲臺)에 오는 건가 / 來御玲臺
삼천(三天)을 어찌 다하며 / 三天焉極
오태(五胎)를 어찌 다스릴꼬 / 五胎焉治
도(道)의 요체(要諦)를 가르치니 / 授以道要
영비의 십이사(十二事)일세 / 靈飛十二
윤희(尹喜)
하늘은 강소에 떨어지고 / 天墮絳霄
땅에선 금련이 솟았다네 / 地湧金蓮
눈 들어 힐끗 보니 / 仰睇紫氣
보라빛 기운 함곡관을 에우고 / 來抱函關
흰 수레에 검푸른 소 타고 / 白輿靑牛
노자(老子)는 천천히 서로 가네 / 遲遲西邁
오천 마디 도덕경(道德經) 일러 주니 / 授五千言
현묘한 이치 깨달았네 / 帝懸方解
광속(匡俗)
아름답다 광군(匡君)이여 / 猗七匡君
그 정기 북두성에서 받았다네 / 稟精斗宮
기를 먹고 신을 연마하니 / 服氣煉神
구름 타고 하늘을 나네 / 乘雲駕空
폭포를 병풍 삼고 / 瀑布屛風
향로봉을 궁궐 삼았네 / 香爐金闕
만고 선산 남장산(南障山)엔 / 萬古仙山
푸른 물과 가을 달만 / 碧潭秋月
장주(莊周)
소요(逍遙)는 유(遊) 아니며 / 逍遙匪遊
물론(物論)은 제(齊) 아니랴 / 物論匪齊
인간세에 머물러도 / 住人間世
시도 종도 없는 것 / 無始無倪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할 뿐인데 / 薪火相傳
태초의 혼돈(混沌)을 칠규(七竅) 뚫어 이렛만에 죽였구나 / 混沌七鑿
선(善)을 기록한 여러 편 책은 / 闌編紀善
그 자취 더욱 크도다 / 其迹愈莫
갈유(葛由)
나무를 깎아서 양을 만들어 / 災木作羊
저자에 내어 팔더니 / 賣之都市
그 양 타고 촉(蜀) 땅에 들어가 / 騎而入蜀
수산(綏山)에 가 살았다네 / 綏山之趾
아미산(峨眉山)은 구름에 닿고 / 峨眉參雲
옥루(玉壘)에는 노을이 되는데 / 玉壘蒸霞
저 아름다운 계집 서로 뒤따라 / 彼姝相隨
지거를 같이 탔도다 / 同駕芝車
금고자(琴高子)
순 임금의 거문고를 잘도 타고 / 能鼓舜琴
전갱(錢鏗)의 술도 지녔다오 / 亦行鏗術
기주(冀州) 들 탁주(涿州) 물에 / 冀野涿河
내 집인 양 살았다오 / 我囿而室
깃발 이끌고 수레 달려 / 導旟引軒
용자 용손을 데려 내오고 / 龍子龍孫
저 쌍잉어 타고 / 駕彼雙鯉
무궁문으로 들어갔다네 / 入無窮門
이팔백(李八百)
하루 팔백 리를 가고 / 行八百里
팔백 세를 살았기에 / 住八百年
팔백이라 호칭했으니 / 號曰八百
그 누가 알리오 신선인 것을 / 孰知其仙
저자에선 한가한 듯 / 廛市若閑
산림(山林)에선 시끄러운 듯 / 山林若鬧
숨었다 나타났다 자유 자재하니 / 隱現無方
도체(道體)가 절로 묘할 수밖에 / 道體自妙
섭정(涉正)
석뇌(石腦) 먹고 금단(金丹) 먹고 / 服石服丹
기(氣)를 행하고 욕심 끊었네 / 行氣絶慾
기욕이 마음과 다툼에 / 嗜好戰心
내 눈을 꼭 감았다네 / 盍閉吾目
뉘라서 눈 뜨기를 권할 건가 / 疇勸開睫
어찌해 번갯불을 겁낼 것인가 / 疇懾電光
묘도(妙道)는 이미 달성했거니 / 妙道已成
그윽이 구황(九皇)을 찬양하네 / 幽贊九皇
안기생(安期生)
소매 속의 외는 대추만한데 / 袖瓜如棗
회오리바람 타고 바다 속 봉래산으로 가네 / 飆行海寓
진(秦) 나라 정치에 진저리나니 / 嬴政骨膻
지극한 도를 어찌 말하리오 / 至道奚語
옥 신[玉舃]에 금서(金書)를 / 玉舃金書
속세에 남겼으니 / 留報人間
반도(蟠桃)가 열리거든 / 蟠桃結子
봉래산에 날 찾으소 / 訪我蓬山
모군(茅君)
훌륭하다 큰 모군(茅君)이여 / 猗大茅君
서왕모의 무리로다 / 金母之徒
태극(太極) 현진(玄眞)은 / 太極玄眞
있는 듯 없는 듯 / 爲有爲無
금빛 당(幢)에 깃발은 / 金幢羽節
펄렁펄렁 노을로 오르니 / 翩翩霞擧
저 두 아우 지선은 / 彼二地仙
부질없이 고개 빼고 기다리누나 / 徒勞延佇
동방삭(東方朔)
세번 반도(蟠桃)를 훔쳐 / 三偸玉桃
금문(金門)에 귀양 가 살았네 / 謫隱金門
어느 누가 공경이며 / 孰是公卿
어느 누가 임금인고 / 孰爲至尊
천고를 솟아나고 / 凌厲千古
사해를 내리보았네 / 傲睨四海
호탕하게 구름을 타고 / 浩蕩乘雲
홀로 가니 어디 있는가 / 獨往何在
황안(黃安)
그 몸은 시원시원 / 彼體洒洒
등골뼈는 곧기도 해라 / 彼龜肩肩
목을 한번 움츠렸다 펴는 데 / 縮頸伸頸
삼천 년이 가깝다네 / 纔三千年
한 무제(漢武帝)는 태성(胎性)이 탁하여 / 漢徹胎濁
한갖 태산에 봉선(封禪)만 하네 / 徒封垈泰
수레 타고 다님이 뭐 영화리요 / 輩行奚榮
몸을 속세 밖으로 날리도다 / 跳身域外
장진인(張眞人)
북두성(北斗星)이 하강하여 / 星降北魁
이인(異人)이 태어났도다 / 篤生異人
정법(正法)으로 마귀를 잡고 / 正法攝魔
지도(至道)로 참을 이루며 / 至道成眞
맹위(盟威)와 아름다운 공은 / 盟威都功
만 대까지 전해지리 / 傳至葉萬
보라빛 수레에 검은 용(龍)이 / 紫轝黑龍
신선 나라로 높이 올랐도다 / 高昇閬苑
마고(麻姑)
하늘이고 땅이고 / 天曹地貴
마음대로 노닐었네 / 游戲自在
괄창산이며 곤륜산이라 / 括蒼崑崙
어디라서 꺼리끼랴 / 來往焉閡
마고는 속인(俗人)이 아니요 / 麻姑非俗
채자는 진인(眞人)이 아니라 / 蔡子非眞
다만 기약하길 / 但指歸期
봉래 바다 물이 되어 띠끌 날거든 돌아오마고 / 蓬海揚塵
황초평(黃初平)
네가 내 양을 / 爾牧我羊
금화산 꼭대기에 길렀건만 / 金華之顚
네 주인 못 본 지 / 不見汝伯
이제 십 년일세 그려 / 于今十年
백석을 나란히 하여 가니 / 騈然白石
염소뿔이 모여드네 / 其角戢戢
속세의 꿈 한번 깨자 / 塵夢一醒
하늘로 들어가누나 / 寥天便入
호공(壺公)
천지를 용광로라면 / 天地如爐
해와 달은 구슬이라 / 日月如珠
그 누가 실컷 완롱하다가 / 疇極擺弄
옥항아리에 숨어버리나 / 藏之玉壺
옥항아리에 들면 금당이오 / 入壺金堂
항아리 밖에 나면 저자로다 / 出壺闤肆
시연도 또한 신선이 되니 / 市掾亦仙
겨우 엿보기를 허용하네 / 纔容竊視
조선온(曺仙媼)
나를 옥치(玉卮)에게 이끌고 / 携我玉卮
나를 영방(靈尨)에게 이끄네 / 引我靈厖
뱃사공을 손짓하니 / 招招舟子
오강(吳江)에 해는 저물었네 / 日暮吳江
내 스스로 물결을 우습게 여기거니 / 我自凌波
그 누가 상앗대를 멈출 것인가 / 孰停其枻
저 석감(石龕)에 살면서 / 居彼石龕
저 초여(椒荔)를 누리리라 / 享彼椒荔
도홍경(陶弘景)
푸른 용이 품에서 나오니 / 蒼龍出懷
그 누가 묘질을 알 것인가 / 疇識妙質
고개 들어 바라다 보니 / 仰而覩之
푸른 하늘에 밝은 해라 / 靑天白日
너울너울 노을에 올라 / 翩然霞擧
봉래산에서 물을 다스리네 / 治水蓬萊
호교(壺嶠)에서 발을 씻고 / 濯足壺嶠
단대(丹臺)에서 머리 말리네 / 晞髮丹臺
이백(李白)
아미산(峨眉山) 민산(岷山)엔 구름 비꼈는데 / 峨岷橫雲
태백은 가을에 다다랐구나 / 太白臨秋
그대는 신선 재주 있거니 / 子有仙才
귀양 온 게 아니라 노니는 걸세 / 非謫乃游
푸른 용은 구물구물 / 蒼蝸蜿蜿
비단 도포에 송골매를 탔도다 / 錦袍盤鶻
만리 창파에 / 萬里滄波
온 하늘엔 밝은 달만 / 一天明月
여순양(呂純陽)
도(道)는 천지와 같고 / 道齊天地
이름은 해와 달 같네 / 名並日月
중생을 다 제도하고 / 度盡衆生
바야흐로 선계(仙界)에 오르네 / 方昇絳闕
아무데서나 숨었다 드러났다 / 隱現靡方
그 조화 그지없네 / 變化無端
가을 하늘은 해맑은데 / 秋空鶴透
이슬은 금단(金丹)을 적시네 / 露浴金丹
유해섬(劉海蟾)
오직 해섬옹(海蟾翁)은 / 惟海蟾翁
정양자(正陽子)를 스승 삼았네 / 正陽是師
환단법(還丹法)을 가르치고 / 還丹演敎
달걀을 쌓아 위험을 보였네 / 累卵示危
백학이 되어 하늘에 뜨니 / 白鶴沖空
붉은 노을 바야흐로 사라지네 / 絳霞方滅
천지는 무너진다 해도 / 雖毁乾坤
자기의 일월을 따로 갖고 있다오 / 自有日月
장자양(張紫陽)
성명(性命)을 닦으니 / 修性修命
정기(精氣)는 엉기고 형체는 흩어졌네 / 聚氣散形
내 경수화(瓊樹花)를 잡아 보인들 / 我拈瓊花
그 영험 뉘라서 헤아리랴 / 孰測其靈
사리진편(舍利眞篇)에 / 舍利眞篇
신화(神化)를 머물러 보이네 / 留表神化
아 진인을 슬퍼하노니 / 噫悲眞人
만고에 긴 밤이로다 / 萬古長夜
진남(陳楠)
태소의 낭서며 / 太霄琅書
태을의 금단이라 / 太乙金丹
그 누가 그 비법 가져다가 / 疇將祕術
금단의 묘법을 가르쳤는가 / 來授金丹
손에는 쇠채찍 / 手裏鐵鞭
발바닥엔 테 멘 삿갓 / 脚底笟笠
용을 몰아 바다에 들매 / 入海驅龍
비바람도 부르누나 / 風噓雨吸
무지사(武志士)
오작교도 아니고 은하수도 아니건만 / 非鵲非銀
비단을 던져서 다리 만들고 / 擲練爲橋
뛰어넘어 구름에 올라 / 躡以登雲
보라빛 하늘에 나래치네 / 翶翔紫霄
요해(瑤海)는 천중이요 / 瑤海千里
봉래산(蓬萊山)은 만리로다 / 蓬山萬里
한바퀴 밝은 달이 / 一輪明月
가을 물을 내리비치네 / 下照秋水
살수견(薩守堅)
뉘라서 벼락 내려 / 誰遺雷火
우리 총사(叢祠) 불살랐나 / 焚我叢祠
옥황상제 옥도끼 주어 / 帝授玉斧
삼 년을 뒤따르게 했네 / 三載相追
돈으로 뱃삯 주니 / 償舟以錢
어둠에서도 속이지 않네 / 不欺于暗
법(法)의 뜻 받들어 행함에 / 奉行法旨
어찌 전의 유감 있으리오 / 奚有前憾
여도장(呂道章)
주정은 옥인 양 빛나고 / 珠庭玉瑩
옥루는 노을에 떴네 / 瑤構霞浮
하늘 가의 황하는 / 天際黃河
만고에 동으로 흐르네 / 萬古東流
내 일 내 마치고는 / 我訖我工
옷을 떼 삼아 타니 / 衣以爲筏
겨드랑 밑엔 하늘 바람 / 腋下天風
소매 속엔 밝은 달일세 / 袖裏明月
[주D-001]울화(鬱華) : 태양(太陽)의 정(精) 즉 태양신(太陽神)을 가리킨다.
[주D-002]설결(齧缺) : 요(堯) 임금 때의 현인(賢人)으로 일찍이 선인(仙人) 왕예(王倪)에게서 배웠다 한다.
[주D-003]목만(穆滿) : 주 목왕(周穆王)을 가리킴. 만(滿)은 바로 주 목왕의 이름이다. 주 목왕은 일찍이 서쪽으로 곤륜산(崑崙山)에 순행하여, 선녀(仙女)인 서왕모(西王母)에게 요지(瑤池)에서 잔치를 받았다 한다.
[주D-004]유철(劉徹) : 한 무제(漢武帝)의 성명(姓名)이다.《한무고사(漢武故事)》에 의하면, 선녀(仙女)인 서 왕모(西王母)가 내려와서 한 무제에게 선도(仙桃) 네 개를 바치자, 한 무제는 그를 받아서 먹었다고 한다.
[주D-005]삼천(三天) :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세 하늘, 즉 청미천(淸微天)ㆍ우여천(禹餘天)ㆍ대적천(大赤天)을 가리키는데, 이를 삼청(三淸)이라고도 한다.
[주D-006]오태(五胎) : 《한무내전(漢武內傳)》에 의하면, 선녀(仙女)인 상원부인(上元夫人)이 한 무제(漢武帝)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선도(仙道)를 좋아하는가? 자주 방술사(方術士)를 초빙하여 산에 올라가서 산신(山神)에게 제사를 지내니, 역시 선도에 열중한다 하겠다. 그러나 그대의 태성(胎性)이 사납고[暴], 태성이 음란하고[淫], 태성이 사치를 좋아하고[奢], 태성이 혹독하고[酷], 태성이 잔인하여[賊] 이 다섯 가지가 항상 기혈(氣血)과 오장(五臟) 속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아무리 양침(良針)을 가지고 다스리려 해도 다스릴 수 없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7]영비(靈飛)의 십이사(十二事) : 영비는 도가(道家)의 경(經)인《영비경(靈飛經)》을 가리키고, 십이사는 바로《영비경》에 있는, 도를 수련하는 열두 가지의 일을 가리킨다.
[주D-008]반도(蟠桃) : 3천 년 만에 한 번씩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다는 선경(仙境)에 있는 복숭아를 가리킨다.
[주D-009]채자(蔡子) : 후한(後漢) 때의 채경(蔡經)을 가리킴. 환제(桓帝) 때에 신선(神仙) 왕방평(王方平)이 채경의 집에 와서 선녀(仙女)인 마고(麻姑)를 부르자, 마고가 그 집에 내려와서 왕방평에게 이르기를 “내가 상제(上帝)를 모셔온 이래 벌써 동해(東海)가 세 번 상전(桑田)으로 변하였고, 또 이제 봉래(蓬萊)의 해수(海水)가 반쯤 얕아졌으니, 동해가 다시 육지로 변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였다. 그런데 마고의 손톱이 마치 새 발톱처럼 길쭉 길쭉하게 생겼으므로, 채경이 마음속으로 ‘저 손톱으로 가려운 등을 긁으면 매우 좋겠다.’고 생각하였더니, 채경의 이 생각을 알아차린 왕방평이 채경에게 ‘마고는 선녀인데 네가 감히 그런 생각을 갖느냐.’고 꾸짖었다 한다.
[주D-010]시연(市掾)도……되니 : 시연은 저자의 아전을 가리키는데, 후한(後漢) 때 비장방(費長房)이 저자의 아전으로 있으면서, 선인(仙人) 호공(壺公)을 사사(師事)하여 선도(仙道)를 터득하였다고 한다.
[주D-011]옥치(玉卮) : 선녀(仙女)의 이름. 선녀인 서왕모(西王母)의 셋째 딸이라 한다.
[주D-012]영방(靈庬) : 선인(仙人)의 거소(居所)나 혹은 선인의 이름인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주D-013]호교(壺嶠) : 호령(壺領)과 같은 말로 선인(仙人)이 주거(住居)하는 산(山)을 가리킨다.
[주D-014]단대(丹臺) : 선인(仙人)이 주거하는 곳을 가리킨다.
|
첫댓글 교훈을 받기도 하지만 작가 선생님에 대단한 지력과 문장에 감탄합니다.. 신선들이 요지가 요즘은 노른자라하는 부동업자들에 돈인듯 싶어 요지경이 된듯싶고 일장춘몽 같은 꿈과 현실은 우리도 젊은날 수없이 좌절하고 희망하는 것과 같은 것 같습니다.. 마음 만큼은 요지을 찾아 늘 정진하고 싶어 집니다.
초심님 제 육신도 제것이 아니고 잠시 빌린 것인데, 이런 생각들도 빌려 온 것이고
그리 살았던 사람들에게 귓속말 들은 거 정도 아니겠어요. 다만 오늘의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일들
그게 옛 사람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은건지 자주 돌아보는 건 있답니다.
우리 젊은 시절 제가 존경한다고까지 했던 멋진 선배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인류사에 멋들어진 말들은 동서를 통해 기원전에 이미 다 나왔더라>.
그날로 함부로 멋진소리 흉내내지 말자 했답니다. 살아 오신 분들 저작권도 생각해
드려야겠죠. 근데 때로는 글쟁이들 버릇이 나오죠. 그러니 씨알만 간추리실 줄 알겠습니다.
빌려서 사는 것 맞는 것 같습니다.. 따지고보면 내것도 내것이 아닌 것이지만, 같은 진리래도 받아 들인 줄 아는 이만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는 것 같습니다..^^
살면서 가끔은 요지경이니 샹그리라니 상상을 해 봅니다. 정말, 그런 땅이 있을까하구요.
뭐, 실크로드의 장수촌 훈자를 샹그릴라라고 하는 사람도 간혹 있더만요?
그렇지만, 너무나 제한적이고 삭막하고 고된 인생살이에서 일탈해 보는 그 순간이
바로 선경이요, 요지경이요, 샹그리라가 아닐까요?
지구 구석구석 인간의 발길이, 문명이 할퀴고 지나지 않은 곳이 없고, 그나마 자연에서 순진하게
사는 사람들 정신까지 더럽게 오염되는 이 과학문명의 시대 아닙니까?
어쩜, 그런 오지에서 어렵게 살지만 마음만은 순진성을 잃지 않던 그런 오지인들이 신선의 마음
한 자락이라도 더 갖고 살지는 않을런지.....
지리산에서 견불이란 개를 보고 싶네요. 어제 지리산 화가 연선생님
꽃비 내리는 사이로 펑퍼짐한 궁둥이 내려 놓고 꽃잠자는 진돗개 견불이 그림을 봤는데
정녕 그가 신선처럼 살지 않을까 싶구요. 지난번 하우님 지리산 갔을 때 함께 가서
홍매화랑 한두마디 말이라도 걸어 봤으면 하는 생각이 자주 드네요. 이렇게 봄날은 또 가고 말이죠.
지리산은 사시사철 제 얼굴이 있더라고요 ^^ 시간나실때 훌~쩍 한 번 가보시죠^^ㅎㅎ 낮에는 산허리 아래 내려다보며 술한잔도 흥이나고요. 밤에는 밤하늘 별빛보며 한잔 할수 있어 참 좋답니다... 견불님은 생활이지만 우리네는 별천지죠 ^^
친구따라 등산 가거나, 어려운 사람 초대로 산에 갔거나
앉을 자리가 없더군요. 전에 스승님은 이런 말을 하셨죠.
홀로 산을 거닐다 니 마음이 맑거든 땅이 부를 거다.
그곳에 앉아 보거라 어머니 품안처럼 편안쿠나 싶으면 그곳이 신선자리란다.
그런데 등산가면서 보니 개미떼 처럼 올라갈 줄만 알지 멈출 줄도
산과 눈 한번 맞출 여지도 없이 앞사람 발하고 궁댕이만 보고 줄창 가니
어느 겨를에 양지바른 엄니자리랑 눈을 맞추겠는가?
그 뒤로 떼거리 등산은 졸업을 했는데, 어쩐지 견불이 사는 동네는
견불이 궁둥이 대고 누운 자리가 신선자리 같을 거란 느낌이 드니.....
모를래라. 그립지만 상상으로 갈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