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25일 저녁 18시 20분부터 19시 45분까지 동화작가 박기범씨를 만나서 왜 단식농성까지 하면서 파병을 반대하는지를 여쭙고, 파병 문제와 얽힌 문제 실타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
|
▲ 힘든 `밥굶기 저항'을 하는 틈틈이 생각을 적는 박기범씨 모습입니다. 어느덧 엿새째에 접어든 밥굶기라 얼굴이 많이 야위었습니다. |
|
ⓒ2003 박기범이라크통신 | (1) 무엇이 힘든가요?
단식농성을 하는 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처음 던진 물음은 '밥 먹고 싶지 않는가?'였습니다. 나흘째 단식을 하던 박기범씨는 그때까지 `괜찮다'며 '아직까지 몸이 힘든 게 없어요'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일을) 함께 돕는 보통 우리들이 하는 단식농성이잖아요. 지금도 많은 단식농성이 (여러 곳에) 있는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운동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길로 나오고 밥을 한 끼 굶거나 며칠을 굶는 이런 일들을 제대로 알리는 일도 중요해요'
박기범씨는 그저 눈에 띄는 운동으로 `단식농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롯한 `이름없고' 보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전쟁이 지닌 위험함과 평화를 해치는 나쁨을 알고 길거리로 나온다는 걸 나라에서도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더불어 단식농성을 하는 서울 혜화동(혜화역 4번 나들목 앞)을 오가는 사람들이 `우리가 무엇을 왜 하는지' 들여다보아 주면서 이번 파병 문제 본질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다음으로 '요즘 이라크에서는 게릴라 공격 때문에 우리 나라 군인들이 죽거나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파병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우리가 위험해서 반대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가면 힘없는 거기 사람들, 이라크에서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 애기 키우는 사람들, 구두 닦는 아이들을 죽이게 될 께 뻔하거든요. (이라크 보통사람들이) 테러리스트를 숨기지 않았느냐고 의심하면서 수색하고, 그러다가 죽이기 쉽거든요'
그리고 '나중에 마음으로만 아파하고 문학으로만 반성하는 건 늦어요. 힘없고 약한 목숨들이 죽게 되는 게, 되돌릴 수 없는 게 속상하지만, 이라크가 불안해서 파병 철회할까 하고 말하는 관점에 머무는 게 속상하지만, 그래서라도 그 침략 전쟁을 하는 곳에 안 가면, 그렇게라도 안 가면 좋겠어요'
박기범씨 생각은 `우리 군인 위험' 때문에 안 가는 건 이번 전쟁 본질을 흐리는 일이기 때문에 반갑지 않다고 말합니다. `애꿎은 사람들을 죽이는 전쟁'이기 때문에 반대를 해야 옳지, `우리 나라 이익'을 생각해서 `군대를 보내려는 정책'인데, 그러다가 우리 나라 군인이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 때문에 다르게 바라보는 눈길은 안타깝다고, 나아가 올바른 눈길이 될 수 없다고, 하지만, 지금 현실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그런 흐름으로라도 `적어도 군인이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2) 공병이든 비전투병이든 군인이에요!
|
|
|
▲ 서울 대학로 혜화역 앞에서 벌이는 `밥굶기 저항' 하는 곳 모습입니다. |
|
ⓒ2003 박기범이라크통신 |
다음으로 이런 물음을 던졌습니다. '이번 파병을 놓고 여론은 `전투병'이 아닌 `비전투병'이나 `공병'을 보내는 데에는 많이 찬성을 하는데, 이런 여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요.
'(이라크 사람들은) 외국에서 왔다고 다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군복을 입은 사람과 민간인으로 온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아주 달라요. 민간인으로 온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친절하고 호의를 베풀어요. 군복을 입은 사람들은 언제 자기를 죽일지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척 경계를 해요. 그리고 공병이라고 해도 총을 들고 가거든요. `총을 든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없어요''
박기범씨는 이 대목에서 무척 길고도 중요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총을 든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없'다면서, 공병대든 비전투병이든 `군인'이 가게 되면 `총'을 들고 가게 마련이라고, `총'을 들고 가면, 자기들(공병대나 비전투병)에게 위협이 있을 때 총을 쏘기 마련이라고, 그래서 똑같이 사람을 죽이는 짓을 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부에서 이라크를 제대로 돕고 싶다면 `군인'이 아니라 말 그대로 100% 민간지원단이나 자원봉사자를 정부 지원금으로 보내서 도와야겠죠. 박기범씨는 정부에서 이라크로 보내는 게 `군인'이 아니라 `100% 민간인이나 자원봉사자'로서 의약품과 복구시설을 갖고 가면 그런 일은 옳게 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라크사람들은 살아가는 존재감에 위험을 느끼고 있는데, 공병대를 보내면 된다는 게 아니라, 공병대도 공격을 받으면 자기들도 반격을 하지 않겠어요. 총을 들고 가면 싸우는 게 되는데, 돈은 돈대로 전비부담금이라고 엄청나게 내고, 목숨은 목숨대로 내는데, 그런 돈(전비부담금)으로 민간활동과 봉사, 복구사업, 재활사업을 하는 데에 쓴다면 우리 나라로서도 자부심을 얻을 수 있어요'
(3) 본질은 우리 나라에서 `군인'을 보낸다는 것
박기범씨는 지금 정부에서 여론에 물타기를 하려고 '파병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전투병이냐 혼성이냐'는 논리를 퍼트린다며 안타까워합니다.
'전쟁터에서는 전투병, 비전투병의 구별이 없거든요'
스스로 `인간방패'가 되어 이라크로 들어갔던 박기범씨입니다. 인간방패가 되어 이라크로 들어가 보니 싸움터에서는 전투병과 비전투병이 아무런 구별이 없고, 똑같이 이라크사람들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로밖에 비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4) 낮은 눈길을 받고 농성도 힘들지만
|
|
|
▲ 파병 반대 서명을 하는 모습입니다. 책상 위에 놓은 꽃은 오며가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평화 선물'이에요. |
|
ⓒ2003 박기범이라크통신 |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궁금한 게 하나 있었습니다. 이곳을 지나가며 서명을 하는 사람이 몇 사람쯤 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지 말이에요. 저녁 여덟 시에 농성장을 거두고 돌아가기 앞서 이날 하루(25일) 동안 서명한 사람들 숫자를 세었습니다. 모두 1000사람쯤 되었습니다. 대학로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훨씬 많을 테니 1000사람이란 숫자는 무척 적어요. 하지만 '우와 이렇게 많아요' 하고 활짝 웃는 박기범씨입니다.
'억지로 (사람들을) 끌어와서 서명을 바라는 게 아니라 보통사람들이 (자기 마음) 안에 가지고 있을 정치나 사회 문제 관심을 표현해 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보통사람들이 이런 파병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쪽으로 다가가려고 해요'
박기범씨는 단식농성을 하는 내내 자리에 그냥 앉아 있지 않습니다. 농성장 앞에서는 틈틈이 공연을 합니다. 공연을 하는 사람들은 어린이일 수도 있고 어른일 수도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부모나 공부방 교사와 함께 이곳을 찾아와서 앳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파병 반대' 뜻을 담은 글을 써서 읽기도 합니다. 물론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편지를 읽을 때 귀기울여 들어 주는 사람들은 많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박기범씨는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같이 따라 부르며 함께 웃고 손뼉을 치면서 즐거워합니다. 저녁때에는 회사 일을 마친 사람들이 찾아와서 기타를 퉁기며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학교 아이들과 공부방 아이들이 손수 그린 그림을 빨랫줄에 빨래 널듯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고, 박기범씨를 비롯한 많은 활동가들이 이라크에서 만난 사람들 모습을 담은 사진도 함께 놓았습니다. `단식 농성'을 하는 자리라기보다 `파병이 지니는 문제'와 `전쟁이 주는 아픔'을 이야기하고 알리는 자리랄까요. 그런 느낌이 짙게 들었습니다.
이쯤에서 박기범씨는 왜 자신이 `굶기'까지 하기로 마음먹었는지 말합니다.
'서명운동과 굶기가 뭐가 다른가 했지만, 조그맣게라도 내 얘기를 건네고 건네고, 이런 게 앞으로 살아가고 일할 힘이라고 생각해요. 미래를 위한 일로요. 개인으로는 아이들에게 동화를 쓰잖아요. 우리가 침략군이 되어 군인을 보내고, 파병을 하려고 하는데, (이런 일들을 그냥 관심없이 지나쳐 버려서) 이대로 가만 있으면 나중에 무슨 이야기를 (아이들 앞에서) 할 수 있을까, <몽실 언니>나 <초가집이 있던 마을> 같은 동화를 읽으면서 (아이들하고) `전쟁은 안 된다'고 얘기를 했는데, 눈앞에 닥친 전쟁 이야기를 겪으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떳떳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일(파병 반대)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부안 핵폐기물 문제도 있고 노동계 문제도 있고 해서 이 일이 큰 문제는 아닐 수 있고, 소중한 일들은 세상에 아주 많은데, 그중의 하나, 전쟁 문제를 제 문제로 받아들인 것이고, 자기가 중심을 두고 관심을 두고 해야 하는 일은 다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단식 농성은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덟 시까지만 합니다. 대학로 앞에는 노점을 하는 분들이 많아서 자리를 잡기 힘든 한편, 저녁 일곱 시부터 지금 `단식 농성을 하는 자리'에서 장사를 하는 분이 계십니다. 다른 자리에서도 밀려나서 지금 자리에 있지만, 이곳에서도 쉽지 않아, 장사하는 분과 이야기를 나눠 저녁 여덟 시까지만 농성장을 지키겠다고 하고 그때까지만 있습니다. 이날(25일)도 저녁 일곱 시 반 무렵에 장사하는 아저씨가 와서 약속한 시간까지 다 치우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말이 오갔습니다.
(5) 언제부터 파병을 반대하는 일에 몸담았는지
|
|
|
▲ `밥굶기 저항'을 하는 곳 옆에는 파병을 반대하는 바람과 꿈을 담은 편지를 적어서 거는 `소망의 나무'를 놓았습니다. |
|
ⓒ2003 박기범이라크통신 |
처음에는 텔레비전으로만 이라크 전쟁 이야기를 만났던 박기범씨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반전평화 운동을 하는 데에 자기 후배가 가 있더라고, 그 모습을 보고 '어, 그 후배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이 컸어요. 그때부터 나도 (이라크로) 갈 수 있을까 알아봤'다고 합니다. '나 같은 애도 끼워줄까 걱정했는데 사무실에 가서 얘기했더니 이틀 뒤에 마지막으로 간다고 해서 부모님께 인사도 못 드리고 갔어요'
이때 이라크로 가게 된 계기와 이라크로 가서 겪고 보고 한 일과 이라크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쓴 이야기 들은 인터넷 다음까페(http://cafe.daum.net/gibumiraq)에 들어가면 찬찬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보통사람들 목소리가 묻힌다는 게 아쉬워요. (운동을 할 때) 겉으로 멋있고, 단체 이름 내걸고 하는 운동들은 식상할 수 있다고 봐요. 이름없는 (사람들만이 하는 운동이라는) 게 아니라 보통사람으로서 하는 운동이고요, 그냥 (단식 농성장 앞을) 지나가다가 (농성하는 모습이나 전시물이나 공연을) 보고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6) 기자들과 출판사 사람들에게 하고픈 말
이날(25일)까지 박기범씨를 찾아와서 취재를 해간 기자들이 꽤 많답니다. 하지만 기자들은 취재만 하러 왔지, 정작 자기들이 왜 이렇게 농성을 하는지를 보도하지 않았다며, 조금 서운해합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섰다고, 재주도 없지만 못하는 노래면 못하는 대로 하는 거고, 없는 손재주로 그림을 그리고, 정말 절실한 마음으로 손잡고 나왔어요. 정말 가난하고 이름없는 사람들의 소망을 모으고 있어요. 나라의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을 더욱 외면하고 ...... 세상에 대해 작은 목소리지만 얘기하고 싶고, 얘기해서 알리고, 이웃나라 사람들을 죽이는 이야기를 알리고 싶어요'
기자는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아직 우리 나라 사람이 이라크 전쟁을 줄거리로 이야기를 펼친 어린이책이 없거든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박기범씨 글을 받아서 책으로 내고자 할 출판사가 많았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혹시 박기범씨 스스로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를 책으로 알릴 생각은 없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박기범씨는 한동안 머뭇거립니다. 그리고는 '(출판사 사람들이 와서) 책을 내자고 해서 되게 서운했어요. 여기(이라크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몸이 몇 개라도 이라크 사람들을 돕는 일이 모자란데, 자꾸 책을 내자는 이야기만 해서 되게 서운했어요'
이야기를 들으니 꽤나 많은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고 닦달을 하고 재촉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라크 이야기를 담은 책이) 상품이 될 수 있어서 찜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아서 되게 서운했다고, 그분들, 책 만드는 분들이 '돈을 버는 장사만이 아니라 이라크 사람들에게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협조를 해서 그 나라 사람들도 얼마나 아픈가, 적어도 이라크사람들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헤아리면 좋겠어요'
(9) 만화책 <맨발의 겐>을 들고온 <풀무질> 은종복 아저씨
이제 박기범씨 만나보기를 어느덧 끝낼 무렵입니다. 그때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을 꾸리는 아저씨 가운데 한 분인 은종복씨가 단식 농성장을 찾아왔습니다. 어제(24일) 단식 농성을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며, 홍보물을 잔뜩 책방으로 들고 가서, <풀무질>을 찾는 대학생들에게 한 장씩 나눠 주면서 파병 문제를 알아 보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합니다.
책방 <풀무질>에서 한 시간 남짓 홍보물을 나눠 주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풀무질>을 찾아온 학생들 가운데 2/3는 얼마만큼 관심을 보이며 잘 읽겠다고 가져갑니다. 하지만 1/3쯤 되는 학생들은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귀찮은 종잇조각'이나 건네준다고 받아들입니다. 관심없음을 보이는 학생들이 책방 문을 밀고 나갈 때 <풀무질> 아저씨는 한 마디를 더 합니다. '나중에 자식들이 아빠보고 `전쟁 났을 때 뭐했어' 하고 물으면 `고시 공부만 했어' 하고 대답할 거니?' 하지만 여러 학생들이 관심없어하기는 마찬가지. 고시 공부, 시험 공부, 과제물 내기에는 신경을 많이 쓰지만 이라크 파병 문제를 놓고 제대로 걱정하거나 생각하는 학생들은 무척 적어 보였습니다. 그나마 홍보물을 잘 받아서 가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보이는 형편이었습니다.
<풀무질> 은종복 아저씨는 만화책 <맨발의 겐(나카자와 게이지 그림)> 1권을 들고 농성장을 찾아왔습니다. <맨발의 겐>은 1945년 8월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을 맞아서 지금도 원폭병을 앓고 있는 나카자와 게이지라는 사람이 실제로 겪은 이야기를 담아낸 만화(1975년 작품)입니다. <맨발의 겐>은 전쟁이 얼마나 나쁘고 위험한지를 몸소 겪은 이야기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풀무질> 아저씨는 날마다 찾아와서 열 권짜리 만화책을 한 권씩 주겠다며 힘내라고 말한 뒤 일터로 돌아갑니다.
(10) 마지막으로 한마디
|
|
|
▲ 박기범씨가 <오마이뉴스> 독자들 앞으로 써서 보내는 글입니다. |
|
ⓒ2003 박기범.최종규 |
만나보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못 다한 말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사실 잘 몰라요. 난 그냥, 나라든 사회 관계가 어떻고 그런 거 잘 모르고, 그냥 요즘에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누가 죽거나 폭탄 터진다 얘기 들을 때, 거기서 만난 구두닦이 아이들과 친절한 많은 이라크사람들이 죽거나 다치지 않았나 하고 정말 참을 수 없어요. 그곳에 우리 나라 군인이 가서 위협하고 혹여나 죽인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그럴 수가 있는 건데, 어떻게 하든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 (가끔씩 편지를 주고받는 이라크 친구에게) `너와 네 식구를 위협하고 죽이는 일' 그것만은 막겠다 하고 생각하고 말하지만, 자신은 없고 못 막을지도 모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야기를 모두 마치면서 여러 모로 걱정이 되었습니다. 단식 농성을 하기가 수월하지 않고, 몸도 많이 축날 텐데 너무도 많은 말을 시켜서 말입니다. 하지만 박기범씨는 몸이 힘들어도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많았고, 사람들이 이번 전쟁 본질을 제대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무엇보다도 자기처럼 `이름'도 `돈'도 없는 보통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와서 단식 농성을 한다는 사실을, 이런 절박함을 나라에서 제대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한편, 우리 나라 사람들이 전쟁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나라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일이 무엇인지, 우리 삶을 가꾸는 소중한 일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큼을 느꼈습니다.
엊저녁부터인가요?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도 단식 농성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한나라당 대표로서 참을 수 없는 `불의'를 견디다 못해 단식이라는 길로 나섰겠지요. 어쨌든 세상엔 단식 농성을 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옳은 일을 하고자 나서는 단식 농성인지는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어요.
박기범씨 같은 사람이 하는 `밥굶기 저항'을 구태여 알아줘야 할 까닭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사람들조차 나서서 `밥굶기 저항'을 하는 대목을 헤아려 주고 목소리를 차분히 귀기울여 들어 주고, 우리 눈길도 따뜻하게 돌려 본다면 어떨까요. 지금 이라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전쟁 위험에 떨고 있으며, 미국 탱크와 비행기에서 쏘아댄 포탄에 맞아서 집이 부서져 집없이 사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굶주림과 힘겨움과 죽음이란 공포 앞에서 바들바들 떠는 이라크사람들을 참으로 헤아리는 나라정책이 나오길 바라요. 더불어 우리들 생각도 하나하나 차분히 모아서 평화와 사랑과 믿음으로 나아가는 `참살길'을 찾으면 좋겠고요.
대학로에 가실 일이 있는 분들은 혜화역 4번 나들목 앞에서 벌이는 단식 농성장으로 찾아가서 전시한 그림과 글도 보시고 서명운동도 함께 할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
|
이라크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
|
|
|
다음까페에 있는 `박기범이라크통신' 게시판에 올라온 글입니다. 글쓴이 박기범씨 허락을 받고 온글을 하나 옮겨 놓습니다. 이라크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날 느낌을 적은 글입니다.
번호:188 글쓴이: 회의중 조회:186 날짜:2003/09/20 16:22
.. 1. 집 - 벌레들의 마을
집에 왔다. 집이 말이 아니다. 문을 여니까 이게 무슨 냄새. 습한 날 동안 썪은 내, 곰팡내 그런 거. 그런 냄새가 확. 정리고 뭐고 잠부터 자야지 했는데 어디 누울 수가 있어야지. 그 사이 나 살던 이 집은 벌레들의 집이 되어 있었다. 아니 군데 군데 모여 있는 벌레들의 마을. 폴짝 폴짝 뛰는 벌레, 꼬물꼬물 기는 벌레, 앵앵 날아다니는 벌레, 또 고것들의 조고만 애벌레. 벽으로는 발이 백 개씩 달린 것들이 기어다니고, 그 아래는 발 없이 미끈한 몸으로 꿈틀꿈틀 거리는 애들이 기어다닌다. 냉장고와 개수대가 있는 부엌 쪽이 가장 볼만하다. 거기가 중심, 대도시 쯤이려나. 숟가락이 도망갈까, 젓가락이 달아날까, 태풍 바람에 그릇이 흔들릴까 그랬는지 거미란 놈들은 그것을 아주 칭칭 감아 놓았다. 예쁘게 방사 모양으로 집만 가꾼 것이 아니라 아주 칭칭 감아 놨네.
갑자기 왠 커다란 짐승이 들어와 형광등을 켜고 이리 저리 성큼성큼 둘러보니 이것들이 놀랐나 보다. 저들이 평화롭게 사는 마을에 이게 웬 족속인가. 발 많이 달린 벌레 놈들이 바삐 움직이고, 발 없어 겁만 먹은 꿈틀 벌레들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천장 가까이 날아다니는 놈들은 불빛 두레로 모여들어 앵앵이다. 저희들끼리 알아듣는 싸이렌이라도 울렸는가.
내가 키가 커서 그런 거니, 한 발짝만 움직여도 얼굴로 목으로 거미줄이 걸린다. 거미란 놈들은 여기 저기 끊긴 거미줄 한 가닥에 찌이익 매달려 대롱거린다. 미안하다, 미안해. 그치만 나는 어쩌니.
한참이나 앉을 자리를 못찾고 서성였다. 이것 참. 부엌 쪽은 아예 들여다보지도 못하겠다. 글쎄 내가 왜 양념장 만들어 놓은 거며, 잘게 썰어 놓은 양념 채소 따위들을 그냥 두고 갔을까. 그 쪽에는 아주 드글드글하다. 눈도 없고, 코도 입도 없는 애들이 퍼렇고 허연 곰팡이 위에서 놀고 있다. 애기들 놀이방이구나. 그것 먹고 살았니?
딴 건 못해도 집에서 싸준 음식이나 냉장고에 넣어야지. 엄마는 와서 먹을 것들을 두 상자나 싸주면서 가서 이것부터 냉장고에 넣으라고 했는데... 냉장고를 열어보니 이건 또 뭐야. 냉장고 밑으로 썪은 물이 줄줄 흐르고, 흐르다 말라 붙고 했는데, 아, 아마 나는 냉장고 문을 꼭 닫고 가지 않았나 보다. 열기가 무섭게 다시 닫았다. 냉동실이고 냉장실이고 아주 숙성이 오래된, 발효가 깊은 그것들이 저마다 무언가로 부활중이다.
아무 것도 못하겠고 하여 나 누울 자리나 닦고 이불을 펴려 했는데, 아 베개에서도 솜털 같은 가루가 손에 쓸린다. 야 곰팡들아, 너네는 왜 먹을 거 많은 부엌으로 가지 않고 베갯솜을 파먹고 있었니? 다행히 이불에는 검거나 퍼런 가루들이 보이지 않아 그거라도 폈다. 아, 축축해. 여름 내 습해서 그런 거라면 축축했다가라도 이젠 그만 말라 있을 것이지. 축축한 거에는 냄새가 있다. 무슨 시멘트 냄새 같기도 한 그러 거.
집은 그렇게 벌레들의 마을이 되어 있었다. 비는 여전히 주룩주룩 내리고. 아, 달이라도 떴으면.... 문득 애네 벌레들을 보면서 방정환의 '사월 그믐 밤'이던가 하는 동화가 생각났다. 분위기야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2.
이리 저리 서성이다가 나 혼자 지내기에는 너무 집이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세이프 생각이 났다. 맨날 쫓겨만 나던 세이프, 갈 곳이 없는 아이들. 세이프와 그 친구들이 여기에 오면 참 좋아할 텐데.
바그다드에서 나오던 마지막 밤, 세이프는 어린 아이답지 않은 눈빛으로 얼굴로 말했다. 나도 코리아에 가요? 나도 데리고 가요? 아이 원츄 고투 코리아.
한국에 돌아와 서울에서 한 달이 조금 못되게 머물렀다. 안정되지 못한, 알 수 없는 불안함이었지만 나는 어느덧 예전의 일상, 그 일상의 관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어떤 자리에서 술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싸둔 스트리트로 가고 싶다.
3.
아직 회의 정리가 되어 있지는 않지만 요 며칠 전 까페 운영자들과 회의를 했고, 9월 안에 까페를 닫기로 했다. 전쟁 뒤 민중지원 활동에 대한 평가, 그리고 아이들과 만난 이야기나 그 전에 마저 쓸 수 있을까 모르겠다. 사실 못하는 이야기가 참 많다. 허나 나를 그곳에서 정말 미치게끔 하던 그 이야기들.
4.
책상 머리 맡의 달력은 아직도 2월이다. 이 집은 여전히 2월이구나. 2월에서 9월로 어떻게 끌어다 맞출까. 눈속임을 하듯 종이를 두 번 접어 당겨 맞추듯이 그것도 그리 할 수 있다면.
5.
파/병/반/대 / 박기범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