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 2013.10.12 03:13 | 수정 : 2013.10.12 17:04
또 낙동강 주변의 지세를 읽어 효과적으로 방어막을 치는 법을 연구했다. 8월과 9월 2개월여간 마산·왜관·영천·포항 일대를 잇는 낙동강 전선, 일명 '워커 라인'을 성공적으로 사수하며 전세를 만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워커의 지휘 아래 참전 용사와 학도병, 유엔군은 하나가 돼 최후 저지선을 지켜냈고,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바탕이 됐다. 낙후된 무기에, 훈련이 덜 된 보병들을 이끌고 증원병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한 상황에서 투지 하나로 상대의 위협을 잠재운 것이다.
하지만 워커의 한국 생활은 너무나도 짧게, 그것도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추운 날씨 탓에 전쟁이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던 그해 12월 23일. 의정부 24사단과 27여단 소속 사병들에게 '표창'이라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고 서울에서 떠났던 그의 지프가 경기도 양주군(현 서울 도봉구 도봉동 596-5)에서 마주 오던 한국군 트럭과 충돌해 그 자리에서 숨진 것이다.
그날 워커 중장의 표창을 받기로 한 미군 가운데에는 6·25에 참전한 또 한 명의 '워커', 그의 외아들 샘 워커 대위도 있었다. 그는 24사단 소속 중대장으로 의정부 북방의 최전선 전투에 투입됐다. 북진(北進) 때의 전공(戰功)으로 미 정부가 수여하는 은성무공훈장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 훈장을 아버지 워커 중장이 직접 아들에게 달아줄 계획이었다.
사망 뒤 4성 장군으로 추서된 월튼 워커 장군의 명성은 아들 샘을 통해 이어졌다.
아들 샘 워커는 6·25 참전에 이어 베트남전에도 참전하는 등 32년간 군에 복무하면서 은성훈장, 수훈비행장 등 훈장을 받았고, 52세엔 육군 최연소 4성 장군에 올랐다. 미 육군 역사상 아버지와 아들이 4성 장군에 오른 건 이들이 처음이다.
워커 가문의 참전 역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故) 월튼 워커 장군의 손자, 즉 샘 워커 장군(88)의 두 아들 월튼 워커 2세(64) 예비역 대령과 샘 워커 2세(61) 예비역 중령은 수십년간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면서 걸프전 등 전장을 누볐다.
"군인 외엔 다른 건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이 손자들이 이번에 한국을 찾았다. 65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국방부가 주최한 '제1회 백선엽 한·미동맹상' 수상자로 선정된 월튼 워커 장군의 대리 수상 자격이었다.
'하늘이 열리고 우리나라가 세워졌다'던 지난 3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호텔에서 이들을 만났다. 주한 미군의 휴양 시설 용도로 1963년 완공된 이 호텔은 '한국을 구했다'고 칭송받는 워커 장군의 이름을 따 '워커힐(워커의 언덕)'로 불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