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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엿보기
청킹맨션(한국문연)
이사철 강원도 삼척 출생. 2015년 《시와소금》으로 작품 활동. 시집 『어디 꽃피고 새 우는 날만 있으랴』, 『눈의 저쪽』, 『멜랑코리사피엔스.』
의미에 고정되지 않고 이쪽과 저쪽을 오가는 이사철의 시어들은 무엇에서 무엇으로 변하는 도정 위에 놓인 사물들을 에둘러 드러내고 있다. “원심력의 저편에서”(청강맨션 4)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중심이 없는 공간을 맴돌다가 덧없이 다음 공간으로 흘러나간다. 구심력이 없는 게 아니다. 다만 원심력이 구심력을 능가할 따름이다. 「청킹맨션 2」에서 시인은 이 상황을 “시작은 끝에서 아물고/끝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았다”라는 진술로 표현한다. 새싹이 끝에서 돋아난다면, 끝이 곧 (새로운) 시작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무엇은 언제나 또 다른 무엇으로 변한다. 무엇이 ‘무엇’을 고집하면 무엇에서 무엇으로 가는 ‘흐름’은 이내 단절될 수밖에 없다. 시인은 시작에서 끝을 보고, 그 끝에서 새로 돋아나는 새싹을 본다. 흐름이, 달리 말하면 변화가 이사철 시(어)를 특정 짓는 근원으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죽은 손으로 악수를 했다. 그는 팔만 내밀었을 뿐, 흔들지도 않았고, 머리도 숙이지 않았다. 정지된 미소가 얼굴에서 흘러 나왔다. 가슴이 녹슬어 오는 느낌을 받았다. 사타구니에 달고 다니는 열쇠를 만져보았다. 청동 빛으로 눅눅해 있었다. 접힌 지점이 덜컹거렸다. 사용하지 말라고 해서 버렸다. 물이 푸르게 변했다. 어제 죽은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건드려보니 차가웠다. 그래도 오래 잡고 있었다. 그 사이에 손이 지워졌다. 누군가 외치는 사이에 시간이 흘렀다. 견딜만해서 참았다. 한쪽에서 한쪽으로 늙어갔다. 아무도 과거와 미래를 읽어 주지 않았다. 서운한 기색으로 수염을 어루만졌다. 죽은 손 옆으로 하늘호수가 다가왔다. 빛의 보호구역이라고 했다. 별은 사라지고 어두운 냄새가 났다. 다가갔으나 물은 흐르지 않았다. 물의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움직이듯, 출렁이는 별빛이 수면을 긁고 지나갔다. 죽은 손을 다시 내밀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팔머호수」 전문
무엇에서 무엇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는 언제나 “죽은 손”이 있다. 무언가가 죽은 자리에서 무언가가 다시 살아난다. 죽음과 삶이 완전하게 단절된 것이 아니라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삶이 가능해지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시인은 “죽은 손으로 악수를 했다.”고 쓰고 있다. 죽은 손으로 악수를 하려면 죽은 손이 살아나야 한다. 팔만 내밀 뿐, 손을 흔들지도 머리를 숙이지도 않는 그와 악수를 하며 시인은 “가슴이 녹슬어 오는 느낌을 받았다.” 시인과 악수를 나누는 그는 죽은 사람일까, 살아있는 사람일까? “정지된 미소가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걸 보면, 그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듯싶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그와 악수를 하려면 확실히 시인 또한 그에 걸맞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시인은 “죽은 손”으로 경계에 선 그를 만난다.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사람들이 아무도 과거와 미래를 읽어주지 않는 세계에서 만나 무엇을 할까? 과거와 미래를 아무도 읽어주지 않지만, 시간은 “한쪽에서 한쪽으로 늙어갔다.” 늙는다는 건 시간이 흐른다는 걸 의미한다. 죽은 손을 지닌 자는 과거도 미래도 읽을 수 없으므로 오로지 현재만을 살게 된다. 현재를 사는 존재에게 시간은 흐르는 것일까, 흐르지 않는 것일까? 어찌 보면 흐르는 것도 같고, 어찌 보면 흐르지 않는 것도 같은 이 시간의 세계 속으로 하늘호수에서는 정작 별은 보이지 않고 “어두운 냄새”만 흘러나온다. 호수에 담긴 어둠은 흐르지 않는다. 당연히 그 깊이도 알 수 없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오로지 암흑뿐인 이 세계에서 시인은 “움직이듯, 출렁거리는 별빛이 수면을 긁고 지나”가는 장면을 상상한다. 움직이듯 출렁거리는 별빛은 어둠을 뒤흔든다. 그 빛을 느낀 것일까? 시인은 죽은 손을 다시 내민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의 손이 잡힌다. 시인과 그를 꼭 나눌 필요는 없다. 경계에 서 있거나, 경계를 넘은 사람들은 이미 둘이면서 하나인 관계를 형성하는 법이니까. 중요한 것은 그들을 둘로 나누는 게 아니라, 둘로 나뉜 그들을 하나로 묶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시집해설, 오홍진 「흐르는 경계에 그리는 ‘하얀 가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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