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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제34강 -4 (2012. 12. 3.)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十三
菩薩問明品 第十.
五. 福田甚深(복전심심)
2. 目首菩薩의 偈頌答 - (1) 一喩總答(일유총답)
(2) 九喩異答(구유이답)
六. 敎法甚深(교법심심)
1. 文殊問勤首菩薩(문수문근수보살)
* 十種敎法無差別(십종교법무차별) *
2. 勤首菩薩의 偈頌答 - (1) 許答(허답)
(2) 勇猛精進(용맹정진)
(3) 懈怠者(해태자)
七. 正行甚深(정행심심)
1. 文殊問法首菩薩(문수문법수보살)
* 十種隨煩惱(십종수번뇌) *
2. 法首菩薩의 偈頌答 - (1) 勸諦聽(권제청)
(2) 譬喩(비유)
福田甚深, 질문하는 내용을 한번 보겠습니다.
그 때에 문수보살이 목수보살에게 물어 말하되
佛子야 여래의 복전은 평등하여 하나이고, 다름이 없거늘, 어찌하여 중생이 보시함에 과보가 부동함을 봅니까? 見자.
所謂種種色과 種種形과 種種家와 種種根과 種種財와 種種主와
種種眷屬과 種種官位와 種種功德과 種種智慧니, 부처님이 거기에서,
중생들의 과보가 부동한 그 사실에서, 그 마음은 평등해서
無異思惟니이다. 다른 思惟가 없습니다.
2. 目首菩薩의 偈頌答
時에 目首菩薩이 以頌答曰
目首菩薩의 偈頌答. 목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다.
時에 目首菩薩이 以頌答曰,
그 때에 목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해 가로되
(1) 一喩總答(일유총답)
譬如大地一이 隨種各生芽호대
於彼無怨親인달하야 佛福田亦然이니라
一喩總答. 한 가지 비유로써 전체적인 것을 답하다.
譬如大地一(비여대지일)이, 비유하자면 대지가 하나인데
隨種各生芽(수종각생아)호대, 종자를 따라서 = 隨種.
종자를 따라서 각각 그 싹을 나게 하되
於彼無怨親(어피무원친)인달하야,
종자를 따라서 각각 다른 싹을 내게 하는 그 사실 = 彼. 거기에 대해서 怨親이 없어요. 가시가 나도 땅은 그만. 무슨 사과가 나도 땅은 그만. 무슨 옻나무가 나도 땅은 그만. 뭐가 나도, 우리가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할 뿐이지, 땅에는 아무런 멀고 가까운 怨親이 없어요.
佛福田亦然(불복전역연)이니라. 부처님의 복전도 또한 그러하니라.
부처님 원망할 것이 아니라고요.
요즘 어린 아이들 유치원 보내는데 무슨 100:1. 60:1. 그런데 아이고 기도했는데 떨어졌다고 그러더라고요. ㅎㅎㅎ 그것을 중계를 했더라고요. 쭉~~ 줄서가지고... 요즘은 돌려가지고 간단하게 뽑기 하잖아요. 기도를 그렇게 했는데 자기아들이 떨어졌다 이겁니다. “기도를 그렇게 했는데 떨어졌다.” 부처님의 복전은 怨親이 없습니다. ㅎㅎㅎ 뭔가 자기에게 이유가 있겠지요. 본인에게 이유가 있겠지 부처님의 복전은 아무 허물이 없습니다. 가깝고 먼 사람이 없습니다. 도둑놈 와서 기도해도 기도 들어주고 하하하, 공부 잘하는 스님이 와서 기도해도 기도 들어주고, 기독교인이 와서 기도해도 기도 들어주고, 불교인이 와서 기도해도 기도 들어줍니다. 아무런 그런 차별이 없습니다.
(2) 九喩異答(구유이답)
又如水一味가 因器有差別인달하야
佛福田亦然하야 衆生心故異니라
亦如巧幻師가 能令衆歡喜인달하야
佛福田如是하야 令衆生敬悅이니라
如有才智王이 能令大衆喜인달하야
佛福田如是하야 令衆悉安樂이니라
譬如淨明鏡이 隨色而現像인달하야
佛福田如是하야 隨心獲衆報니라
如阿揭陀藥이 能療一切毒인달하야
佛福田如是하야 滅諸煩惱患이니라
亦如日出時에 照耀於世間인달하야
佛福田如是하야 滅除諸黑暗이니라
亦如淨滿月이 普照於大地인달하야
佛福田亦然하야 一切處平等이니라
譬如毘藍風이 普震於大地인달하야
佛福田如是하야 動三有衆生이니라
譬如大火起에 能燒一切物인달하야
佛福田如是하야 燒一切有爲니라
又如水一味(우여수일미)가, 또 비유를 하자면 물은 한 맛이다. 그런데
因器有差別(인기유차별)인달하야, 그릇을 따라서 차별이 있다.
얼마든지 그럴 수가 있겠지요?
佛福田亦然하야, 부처님의 복전은 물이 한 맛이듯이, 그릇을 따라서 차별하는 것과 같이
衆生心故異(중생심고이)니라, 중생심이기 때문에 짐짓 다르다.
이것이 복을 짓는 일도 각자 중생들의 마음 따라서 다 달라지는 것이지요.
우리 공부하는 것도 다 다르잖아요.
亦如巧幻師(역여교환사)가, 또한 마술하는 사람이
能令衆歡喜(능령중환희)인달하야, 능히 대중들을 환희케 하듯이
佛福田如是(불복전여시)하야, 부처님의 복전도 또한 그와 같아서
令衆生敬悅(영중생경열)이니라. 중생으로 하여금 기쁘게 하느니라.
그렇습니다. 부처님의 복전은 중생들에게 다 기쁘게 하지만, 또 사람마다 무슨 마음을 가지고 복을 지었는지, 그 복 짓는 과정에서 뭐라고 할까?
야로가 생겨가지고 그 과보가 각각 다른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겨울에 기도도 많이 하고, 또 연말연시도 오면 그런 이야기가 많이 있을 수가 있는 것이지요. 이런 것, 화엄경 펴놓고 한 마디 해 주세요.
如有才智王(여유재지왕)이, 예컨대 재주와 지혜가 있는 왕이
能令大衆喜(능령대중희)인달하야, 능히 대중으로 하여금 그 왕이 기쁘게 했다. 많은 백성들이 기쁘도록 그렇게 한다.
佛福田如是하야 令衆悉安樂(영중실안락)이니라.
대중들로 하여금, 중생들로 하여금 안락케 한다. 복전의 그 영향력, 복전의 그 효과, 복전의 그 어떤 결과, 이런 것들이 여기 다 나타나지요? 중생들에게 기쁘게 하고, 안락케 하고, 또
譬如淨明鏡(비여정명경)이, 아주 맑은 거울이 있어요. 거울이 있는데
隨色而現像(수색이현상)인달하야, 사물을 따라서 = 隨色.
사물을 따라서 상을 나타내듯이, 그러지요? 김 씨가 서면 김 씨가 나타나고, 박 씨가 서면 박 씨가 나타나고, 사물을 따라서 現像하듯이,
佛福田如是하야, 부처님의 복전도 이와 같아서
隨心獲衆報(수심획중보)니라.
마음을 따라서, 우리 마음 따라서 갖가지 과보를 얻게 된다.
야~ 참, 그렇습니다. 우리 한국불교가 특히 복 짓는 문제. 이것이 참 중요한 문제이고, 또 많은 불자들의 관심이고 그렇습니다. 이런데 이러한 것을 인용을해서 이야기를 하면 참 좋은 포교가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것 한 대목 확실하게 인쇄하고 거기다 한글 음 달고, 또 번역하고 그래가지고 한 장씩 나눠줘 가지고, 집에 가져가 가지고도 읽어볼 수 있게 하고, 밑에 또 번역을 하고 한문도 넣어주고 음도 달아주고 아주 친절하게 해주세요. 포교를 할 때 부처님의 이런 훌륭한 법문을 신도님들에게 한 구절이라도ㆍ한 구절이라도 마음에 쏙쏙 들어가게 아주 친절하게 쉽게, 애쓰지 않더라도 이해되도록 이렇게 배려하는 것, 이것이 주지 스님들이 크게 복 짓는 일입니다. 복 지을 기회가 얼마든지 있잖아요.
그렇게 해서 ‘아이고 부처님 말씀에, 이런 것이 있구나!’ 하고 가져가 가지고 붙여놓고 보기도하고 읽기도하고 또 사경도하고, 그렇게 할 수가 있도록, 이런 것이 얼마나 근사합니까? 거울 앞에 딱 섰는데 사람 생긴 꼴 따라서 다 나타내요. 마찬가지로 부처님 복전도 그와 같아가지고, 우리 마음 쓰는 대로 隨心獲衆報. 우리 마음 쓰는 대로 갖가지 과보를 얻게 된다. 마음을 따라서 갖가지 과보를 얻는다.
如阿揭陀藥(여아가타약)이, 아가타라고 하는 그 약이
能療一切毒(능료일체독)인달하야, 독을 치료하는 인도에 있는 약이지요.
일체 독을 치료하듯이
佛福田如是하야, 부처님의 복전도 그와 같아요. 그래서
滅諸煩惱患(멸제번뇌환)이니라. 온갖 번뇌의 근심덩어리를 전부 소멸한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요. 우리가 불법을 수행하는 것은 무엇을 하고자 함인가? “斷障(단장)과 成德(성덕)이다.”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지요.
장애를 끊는다 = 斷障. 우리 삶에 있어서 부정적인 면을 제거하는 것. 어두운 면을 제거하고 그리고 한편 덕을 키워가는 겁니다. 자기의 복덕과 지혜를 자꾸 성장시켜 가는 것 = 成德이지요. 斷障과 成德. 결국은 두 가지입니다. 두 가지뿐이에요. 우리가 공부하면서 나의 부족한 면을 자꾸 채워나가고, 또 좋은 점을 자꾸 키워가고 또
亦如日出時(역여일출시)에, 또 해가 뜰 때에
照耀於世間(조요어세간)인달하야, 세간을 환하게 비추듯이
佛福田如是하야, 부처님의 복전도 이와 같아서
滅除諸黑暗(멸제제흑암)이니라. 온갖 黑暗. 어둡고 캄캄한 것을 멸제 한다.
우리가 지혜를 이야기할 때, 지혜는 세상의 것으로 비유하자면 빛이다. 태양빛과 같은 것이다. 亦如日出時에 = 태양이 뜰 때에 세상을 환하게 비추듯이 부처님의 복전이라는 것도 결국은 우리들의 마음에 어리석음을 제거하는 것. 어리석음의 어두움을 소멸하는 것이다. 그것이 제일 큰 복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불교 공부하면서 얻는 복ㆍ얻는 복이 결국은 어리석음을 소멸하는 것이 부처님에게서 얻어낼 가장 큰 복입니다. 그 다음에
물질적인 복도 얼마든지 가능하겠고, 존경을 받는다든지ㆍ명예를 얻는다든지ㆍ무슨 의복이 풍부해진다든지ㆍ또 기와집 밑에 사는 것이라든지, 부처님 빽 으로 우리가 얼마나 좋은 환경에 삽니까? 요즘 또 시내 한가운데는 공해에 찌들려있지만, 대개 사찰은 또 시내에 있어도 그 중에서도 괜찮은 데입니다. 또 약간 변두리에 있어도 공해가 적은 곳에 살잖아요. 그것이 누구 빽 입니까? 사실은 전부 부처님 빽 입니다. 佛福田이라고요. 佛福田입니다. 그런 것 까지도 사실은 부처님의 복 덕택에... 자기 처지를 한 번씩 생각해 보세요. ‘내가 만약에 지금 세속에 있었더라면 지금 무슨 꼴을 하고 있었을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솔직하게 이것은 너무너무 황당한 겁니다. 모르겠어요. 스님들은 본래 훌륭한 집안 출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의 경우는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참, 너무 감지덕지입니다. 과분하고도 과분한 그런 상황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 오로지 부처님 빽 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부처님 빽으로 이렇게... 그 중에서도 제일 우리가 부처님으로부터 얻는 최고 근사한 복은 어리석음, 어리석음을 소멸하는 것. 세상이치. 모든 존재가 가지고 있는 존재의 원리. 이치를 아는 것. 그래서 그 이치대로 우리가 살려고 하는 그 자세. 그것이 부처님으로부터 배운 가장 큰 복입니다.
亦如淨滿月(역여정만월)이, 아주 보름달,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보름달이普照於大地(보조어대지)인달하야, 대지를 환하게 널리 비추듯이
佛福田亦然(불복전역연)하야, 부처님의 복전도 또한 그러해서
一切處平等(일체처평등)이니라. 일체 처에 다 평등하다.
보름달이 뜨면 어디 안 비추는데 있나요? 다 비추지요. 온 대지를 환하게 비추는 겁니다. 부처님 복도 또한 그와 같다. 아~~ 이런 것 신도님들에게 이야기해주면 좀 좋습니까? 부처님의 복은 그와 같다. 환하게 뜬 보름달과 같은 그런 것이 부처님의 복이다. 우리 모두에게 福田의 보름달이 다 비추고 있다. 우리 몸에... 알게 모르게 다 비추고 있는데 모두ㆍ모두 그것을 그냥 외면하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아주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 차이지요.
譬如毘藍風(비여비람풍)이, 毘藍風 = 태풍입니다.
비유하자면 태풍이 불어와
普震於大地(보진어대지)인달하야,
대지를 크게 진동해요. 막 휩쓸고 지나가잖아요.
佛福田如是하야, 부처님의 복전도 이와 같아서
動三有衆生(동삼유중생)이니라. 욕계ㆍ색계ㆍ무색계, 3계의 중생을 그냥 막 뒤 흔들어놔요. 태풍이 그냥, 큰 태풍이 보통 여름에 오는 태풍 한 여남은 개 합친 것 같은, 그와 같은 큰 태풍을 상상하세요. 부처님의 복은 사실은 그와 같아요. 우리 3계의 중생들을 다 뒤 흔들어놔요. 그 정도로 부처님의 복은 그러한데,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외면하면 그것 또한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지요.
譬如大火起(비여대화기)에, 예를 들어서 큰 불이 일어났다.
能燒一切物(능소일체물)인달하야,
큰 불이 일어나서 능히 일체 물을 다 태워요. 일체 사물을 다 태우듯이
佛福田如是하야, 부처님의 복전도 또한 이와 같아서
燒一切有爲(소일체유위)니라. 일체 유위법, 허망한 것을 다 태워버린다.
아~ 이 佛福田, 부처님의 복전에 대해서 참, 정말 근사합니다.
물이 한 맛이듯이ㆍ그 다음에
마술사가 마술을 부려서 여러 사람을 기쁘게 하듯이ㆍ그 다음에
재주와 지혜가 있는 왕이 백성들을 기쁘게 하듯이 부처님의 복전도 그와 같다. 그 다음 또 내려오면서
밝은 거울이 있어요. 거기에 사물을 갖다 대면 다 나타내요. 부처님 복도 중생들의 마음 따라서 온갖 과보를 다 얻게 해준다.
아가타약이 일체 독을 소멸하는 것과 같다.
태양이 떴을 때에 세간을 환하게 비추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온갖 어리석음의 어둠을 소멸한다. 또
환하게 밝은 보름달이 대지를 비추듯이, 부처님 복전도 또한 그러해서 일체 세간이 모두 평등하다.
태풍이 대지를 몰이치는 것과 같이, 부처님 복전도 3계의 중생을 뒤 흔들어놓는다.
큰 불이 일어났을 때 일체 사물을 다 태우듯이, 부처님의 복전도 일체 유위법을 다 태워버린다.
아~ 참! 근사한 과연 화엄경입니다.
제가 법화경 좋아하고 임제록 좋아하고 그러는데, 근래에 화엄경 공부를 이렇게 하다 보니까 ‘야~ 과연 참 화엄경이구나!’하는 것을 아주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 다음에
六. 敎法甚深(교법심심)
1. 文殊問勤首菩薩(문수문근수보살)
* 十種敎法無差別(십종교법무차별) *
爾時에 文殊師利菩薩이 問勤首菩薩言하사대
佛子야 佛敎가 是一이어늘 衆生이 得見에
云何不卽悉斷一切諸煩惱縛하고 而得出離이닛고
然其色蘊受蘊想蘊行蘊識蘊과 欲界色界無色界와 無明貪愛는
無有差別하니 是則佛敎가 於諸衆生에 或有利益이며
或無利益이니이다
敎法甚深, 敎法이 매우 깊다.
文殊問勤首菩薩, 勤首 = 부지런할 근자네요.
十種敎法無差別, 열 가지 교법이 차별 없음이라.
爾時에, 그 때에
文殊師利菩薩이 問勤首菩薩言(문근수보살언)하사대,
문수사리보살이 근수보살에게 물어 말하되 佛子야
佛敎가 是一이어늘, 하~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하나인데, 佛敎는 하나다.
衆生이 得見에, 중생들이 그것을 얻어 보는데, 불교를 얻어 보는데 있어서
云何不卽悉斷一切諸煩惱縛(운하부즉실단일체제번뇌박)하고,
일체 번뇌의 속박을 곧 바로 다 끊어버리지 못하고, 또
而得出離(이득출리)이닛고? 出離를 얻지 못합니까?
일체 번뇌의 속박을 다 끊고 거기서 벗어남을 얻지 못합니까? 아니 不자를 거기다 새겨야 되겠지요. 一斷에 一切斷(일단일체단)이라. 한번 끊으면 일체가 다 끊어진다. 사실은 그런 도리가 또 있습니다. 우리가 불법을 제대로 알기만 하면 그렇습니다.
然이나 其色蘊受蘊想蘊行蘊識蘊(기색온수온상온행온식온)과,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이지요.
欲界色界無色界(욕계색계무색계)와 無明貪愛(무명탐애)는
無有差別(무유차별)하니, 차별이 없으니
是則佛敎(시즉불교)가, 이것은 佛敎가
於諸衆生(어제중생)에, 모든 중생에게 있어서
或有利益(혹유이익)이며 或無利益(혹무이익)이니이다.
혹은 이익이 있기도 하고, 혹은 이익이 없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 말입니다.
불교는 결국 일체 번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일체의 속박을 다 끊어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色ㆍ受ㆍ想ㆍ行ㆍ識이라든지, 欲界ㆍ色界ㆍ無色界라든지, 無明ㆍ貪愛라든지 이런 것들, 이것이 불교의 어떤 기본교리니까 그것은 불교 하나라고하는 사실에서 볼 때는, 사실은 차별이 없는 겁니다. 무유차별입니다. 그런데 중생들이 거기에 대해서 이익이 있기도 하고, 이익이 없기도 하다.
2. 勤首菩薩의 偈頌答
時에 勤首菩薩이 以頌答曰
時에 勤首菩薩이 以頌答曰,
근수보살이 게송으로써 답해 가로되
(1) 許答(허답)
佛子善諦聽하소서 我今如實答호리니
或有速解脫이며 或有難出離니라
佛子善諦聽(불자선체청)하소서, 불자야 잘, 그리고 자세히 들으소서.
我今如實答(아금여실답)호리니, 내가 지금에 如實히,
사실대로 답하리다.
或有速解脫(혹유속해탈)이며, 혹 어떤 이는 빨리 해탈도하고
或有難出離(혹유난출리)니라. 어떤 이는 出離하기가 아주 어렵기도하다. 반대로... 出離나 解脫이나 같은 뜻이지요? 삶의 질곡, 생 노 병 사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出離. 또 생 노 병 사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解脫. 같은 뜻입니다. 어떤 이는 불교를 듣자마자 바로 해탈해요. 육조 혜능스님같이 나무 한 짐 팔러갔다가 금강경 한 구절 듣고 바로 마음이 환히 밝아져서 해탈해버린 사람도 있고, 우리같이 평생해도 아직도 그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도 있고요.
(2) 勇猛精進(용맹정진)
若欲求除滅 無量諸過惡인댄
當於佛法中에 勇猛常精進이니라
若欲求除滅(약욕구제멸) 無量諸過惡(무량제과악)인댄,
만약에 한량없는 모든 허물과 악을 除滅하고자 한다. 소멸하기를 구할 진대는,
當於佛法中(당어불법중)에, 마땅히 불법 가운데에
勇猛常精進(용맹상정진)이니라. 용맹스럽게 항상 정진하라.
우리 흔히 알고 있는 내용이 여기에 많이 등장합니다. [보살문명 품] 하고 [정명 품] 이런 데서 우리 일상에 염불이라든지 의식 문이라든지 등등 그런 데에 대한 내용이 많이 있지요. 불법 가운데 용맹정진 하는 수밖에 없다 말입니다. 열심히ㆍ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저절로 풀린다 이 말입니다. 해태 자에 대해서, 아주 게으른 사람, 부처님이 마지막에 제자들에게 당부할 때, 게으르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해태하지 말라. 게으른 사람은 성취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요. 아무리 머리 좋고ㆍ건강하고ㆍ상식은 환하고 그래도 게으르면 말짱 황입니다. 아무것도 성취하는 바가 없습니다. 여기 그런 내용을 쭉~~ 이야기합니다.
(3) 懈怠者(해태자)
譬如微少火에 樵濕速令滅인달하야
於佛敎法中에 懈怠者亦然이니라
如鑽燧求火에 未出而數息이면
火勢隨止滅인달하야 懈怠者亦然이니라
如人持日珠호대 不以物承影이면
火終不可得인달하야 懈怠者亦然이니라
譬如赫日照에 孩稚閉其目하고
怪言何不覩인달하야 懈怠者亦然이니라
如人無手足하고 欲以芒草箭으로
徧射破大地인달하야 懈怠者亦然이니라
如以一毛端으로 而取大海水하야
欲令盡乾竭인달하야 懈怠者亦然이니라
又如劫火起에 欲以少水滅인달하야
於佛敎法中에 懈怠者亦然이니라
如有見虛空에 端居不搖動하고
而言普騰躡인달하야 懈怠者亦然이니라
譬如微少火(비여미소화)에, 비유하자면 아주 작은 불이 있어요.
그런데 그 작은 불씨를 가지고, 성냥불 하나 정도 되는 것을 가지고
樵濕速令滅(초습속영멸)인달하야, 나무는 축축이 젖어 있어요.
젖어 있는데 그 성냥불을 갖다 붙이려고 하면 어떻게요? 타던 성냥불마저도 꺼져버리는 겁니다. 速令滅입니다. 빨리 하여금 소멸하게 되듯이,
於佛敎法中(어불교법중)에, 부처님의 교법 가운데서
懈怠者亦然(해태자역연)이니라. 게으른 사람도 또한 그러하니라.
이 대목에는 전부 우리 모두가 가슴 찔리는 곳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읽어야할 대목들입니다. 懈怠者亦然이니라. 그렇습니다. 불씨 조그마한 것 가지고 젖은 나무에다 대보세요. 그것 타나요? 또
如鑽燧求火(여찬수구화)에, 이것은 나무를 비벼가지고 불을 구하잖아요.
옛날엔 다 그랬지 않습니까?
未出而數息(미출이삭식)이면, 아직도 불이 나오지 않았어요.
계속 끊임없이 그것을 비벼대야 거기서 연기가 나고, 연기가 좀 나다가 그 다음에 불꽃이 오르고 그렇게 되는데, 불이 아직도 나오기 전에 數息 = 자주 쉰다. 비벼대는 것을 자주 쉴 것 같으면
火勢隨止滅(화세수지멸)인달하야, 불의 세력이 그침을 따라서 소멸하잖아요. 불이 나려다ㆍ나려다 마는 겁니다.
懈怠者亦然이니라. 懈怠한 사람도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그 전에 우리 어릴 때 화경이라고 돋보기잖아요. 돋보기가지고 햇빛에다 이렇게 하면 얼마 안 되면, 한 1ㆍ2분쯤 기다리면 솜 같은 것은 타거든요. 연기가 나고 타는데, 조급한 사람들은 그것 못 기다려요. 자꾸 옮기는 겁니다. 여기가 잘 탈까ㆍ저기가 잘 탈까 하루 종일 옮기면 그것 한 번도 불구경 못해요. 딱~~ 참고 꾸준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불을 본다는 것이지요. 또
如人持日珠(여인지일주)호대, 여기 바로 나오네요.
日珠 = 돋보기입니다. 옛날엔 구슬이었어요. 구슬, 그것이 햇빛을 받으면 초점이 더 강합니다. 불이 훨씬 더 잘 일어나요. 왜냐면 둥글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빛을 모으는데 그것이 훨씬 강하거든요. 어떤 사람이 日珠를 가졌어요. ‘햇빛을 모으는 구슬.’ 이 뜻입니다. 구슬을 가졌는데,
不以物承影(불이물승영)이면, 사물로써,
어떤 사물로써 그 햇빛 그림자를 받아들이지 아니할 것 같으면
火終不可得(화종불가득)인달하야, 불은 마침내 가히 얻을 수 없듯이
懈怠者亦然이니라. 게으른 사람도 또한 그와 같다.
譬如赫日照(비여혁일조)에, 아주 붉은 태양이 비추는데,
孩稚閉其目(해치폐기목)하고. 어린 아이들 = 孩稚.
아주 어린 아이들이 장난한다고 눈을 가리고는, 눈을 감고 가리고는,
怪言何不覩(괴언하부도)인달하야, 괴이한 소리를 하는 겁니다.
태양은 저렇게 밝게 비추는데 괴이한 소리를 하면서 뭐라고 하는가 하니 “어찌하여 못 보는가? 태양이 왜 안 보이는가? 달이 왜 안 보이는가?” 지 눈 지가 가리고 어린아이들 그런 장난치잖아요. 懈怠者亦然이니라.
如人無手足(여인무수족)하고, 어떤 사람이 手足이 없어요.
그러면서도 수족도 없는 사람이
欲以芒草箭(욕이망초전)으로, 풀로 만든 화살로, 당치도 않는 일이지요.
손발도 없는 사람이 그것도 풀로 만든 화살로
遍射破大地(변사파대지)인달하야, 두루두루 살을 막 그냥 온 땅에다 쏘아가지고, 다 그 화살을 맞도록 한다 이 말입니다.
그와 같이 懈怠者亦然이니라. 그것이 될 일인가? 그것은 당치도 않는 짓이다 이 말입니다. 하는 일을 당치도 않게 하면서 뭔가를, 결과를 얻으려고 한다. 또 그 다음에도 그래요.
如以一毛端(여이일모단)으로, 터럭 끝 하나로, 털 하나를 뽑아 가지고서
而取大海水(이취대해수)하야, 이것을 大海. 큰 바다 물을 한 방울씩ㆍ한 방울씩 찍어내요. 그래가지고
欲令盡乾竭(욕령진건갈)인달하야,
그것으로 저 태평양 바닷물을 전부 다 말리려고 한다. 비유도 참 기가 막힌 비유지요. 懈怠者亦然이니라. 그렇게 해가지고 도대체 그것 될 일이냐? 이 말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그와 같다 이 말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뭘 하려고 마음은 있어도 실천에 안 옮기는 일이 그와 같은 것이지요.
又如劫火起(우여겁화기)에, 또 劫火. 겁의 불길이 일어날 때에
欲以少水滅(욕이소수멸)인달하야, 조그마한 물,
한 양동이쯤 되는 물가지고 겁의 불길을 끌려고 한다 이 말이지요.
아까 말씀드렸지요? 劫火燒海底(겁화소해저). 겁의 불길은 일어나면 저 바다 밑까지 태워버려요. 바닷물이 전부 불이 돼버려요. 물이... 대개는 물이 많으면 불이 꺼지는데, 劫火는. 겁의 불길은 하도 센 불길이기 때문에 물이 전부 탄다니까요. 물 탄다는 소리 처음 듣지요? 물이 타버려요. 겁화가 일어날 때에 조그마한 물로써 끌려고 하듯이
於佛敎法中(어불교법중)에, 부처님의 교법 가운데
懈怠者亦然이니라. 懈怠한 사람은 또한 그와 같다.
如有見虛空(여유견허공)에, 예컨대 어떤 사람이 허공을 보는데
端居不搖動(단거불요동)하고, 단정히 앉아서 움직이지 아니해요.
而言普騰躡(이언보등섭)인달하야,
그러면서 “내가 하늘로 올라 갈거다.” 오를 騰ㆍ밟을 躡. “하늘을 밟고 올라 갈거다.” 라고 그렇게 하면, 가만히 앉아가지고 손가락도 까딱 않으면서 그러고 있으면 도대체 하늘로 1미린들 올라 갈 수 있겠습니까?
懈怠者亦然이니라. 懈怠한 사람 또한 그와 같다. 우리 이런 이야기 많이 들었지요? 보통 조사스님들이 [경책 문] 쓸 때 이런 내용들을 많이 활용합니다.
七. 正行甚深(정행심심)
1. 文殊問法首菩薩(문수문법수보살)
* 十種隨煩惱(십종수번뇌) *
爾時에 文殊師利菩薩이 問法首菩薩言하사대
佛子야 如佛所說하야 若有衆生이 受持正法하면
悉能除斷一切煩惱어늘 何故로 復有受持正法호대
而不斷者니잇고
隨貪瞋癡와 隨慢과 隨覆와 隨忿과 隨恨과 隨嫉과 隨慳과
隨誑과 隨諂이 勢力所轉으로 無有離心하니 能受持法인댄
何故로 復於心行之內에 起諸煩惱니잇고
正行甚深, 바른 행의 매우 깊음.
文殊問法首菩薩.
十種隨煩惱, 10종 수번뇌라고 이름은 그렇게 했지만 수번뇌뿐만이 아니고, 골고루 일체 중요한 번뇌를 다 이야기를 하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탐 진 치 3독 같은 것은 수번뇌가 아니거든요. 근본번뇌입니다.
貪ㆍ瞋ㆍ痴ㆍ慢ㆍ疑(탐진치만의)ㆍ十纏十使(십전십사)같은 것이 근본번뇌이고, 수번뇌는 교리 상으로 20종 수번뇌가 있고 그렇습니다. 여기도 수번뇌도 있고 근본번뇌도 있고 그래요.
爾時에 文殊師利菩薩이
問法首菩薩言(문법수보살언)하사대, 법수보살에게 물어 말하되
佛子야 如佛所說(여불소설)하야, 부처님이 설하신 바와 같아서
若有衆生(약유중생)이, 만약 어떤 중생이
受持正法(수지정법)하면, 정법을 受持하면
悉能除斷一切煩惱(실능제단일체번뇌)어늘,
모두 다 일체 번뇌를 다 끊어 除하거늘
何故(하고)로 復有受持正法(부유수지정법)호대,
왜 다시 정법을 受持하는데
而不斷者(이부단자)니잇고? 不斷者가 있습니까? 끊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정법수지하면 당연히 일체 번뇌를 끊어야 되는데, 정법을 수지하기는 하는데 어찌하여 일체 번뇌를 끊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서 여기는 교리 상의 근본번뇌ㆍ수번뇌라는 뜻이 아니고, 여기는 그냥
隨貪瞋癡(수탐진치)와, 탐 진 치를 따르고,
隨慢(수만)과, 만을 따르고, 탐 진 치는 잘 아는 것이고,
慢 = 업신여기는 것 = 교만.
隨覆(수부)와, 覆 = 자기허물 덮어 버리는 것, 이것 누구나 하는 짓입니다.
절대 자기 잘못한 것 드러내놓고 발로참회 하는 사람 없습니다. “아, 내가 이러고저러고 해서 잘 못 됐다고” 이런 소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어버려요. 또
隨忿(수분)과, 忿 = 분 내는 것
隨恨(수한)과, 恨 = 한이 많은 것
隨嫉(수질)과, 嫉 = 질투
隨慳(수간)과, 慳 = 아끼는 것, 간탐심. 그 다음에
隨誑(수광)과, 誑 = 거짓, 속이는 것이지요.
隨諂(수첨)이, 諂 = 아첨하는 것. 이런 것들의
勢力이 所轉(세력소전)으로, 이런 세력들의 굴리는 바로서
無有離心(무유이심)하니, 마음을 떠나지 못하니
能受持法(능수지법)인댄, 능히 불법을 수지 하는 댄,
공부하고ㆍ참선하고ㆍ기도하고ㆍ염불할진댄
何故로 復於心行之內(부어심행지내)에, 어찌하여 다시 마음행하는 안에,
起諸煩惱(기제번뇌)니잇고? 그럼 하는 것은 다하지요? 공부하고ㆍ기도하고ㆍ참선ㆍ염불, 좋다는 것은 다 하는데 아직 마음속에서는 온갖 번뇌가 다시 일어나고, 꾸역꾸역 일어나고ㆍ일어나고 한다 이 말입니다. 여기에 소개된 것.
貪ㆍ瞋ㆍ癡ㆍ慢ㆍ覆ㆍ忿ㆍ恨ㆍ嫉ㆍ慳ㆍ誑ㆍ諂. 이겁니다. 이것이 열 가지지요. 이런 것이 어찌하여 있습니까?
2. 法首菩薩의 偈頌答
時에 法首菩薩이 以頌答曰
時에 法首菩薩이 以頌答曰, 법수보살이 게송으로써 답해 가로되,
화엄경이요? 이것이 우리가 공부를 이렇게 해보면 제가 재주가 부족해서,
우리의 현실과 일상생활하고 제대로 매칭을 시키려고 하는데 제대로 시키지를 못해서, 아주 적절하게 그렇게 갖다 붙이지를 못합니다만, 사실 이 화엄경 내용은 뭐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현대, 우리의 생활과 먼 것이 절대 아니고, 사실은 알고 보면 그저 우리생활 한 순간ㆍ한 순간의 삶과 바로 직결 되어 있는 내용들입니다. 이것을 좀 더 밝은 지혜로, 그리고 세상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이런 구절 하나하나를 읽으면 정말 제대로 우리 일상생활하고 잘 갖다 붙일 수 있을 겁니다. 사실은 그런 것이 우리들의 과제입니다.
경전은 아주 만고에 변하지 않는 진리의 가르침인데, 그것을 우리가 오늘을 사는 우리 현실에 잘 갖다 부합을 시켜서 거기서 어떤 교훈과 경책으로 말하자면 걸러내야 되겠지요.
(1) 勸諦聽(권제청)
佛子善諦聽하소서 所問如實義니
非但以多聞으로 能入如來法이니라
佛子善諦聽(불자선제청)하소서, 불자여 잘 들으소서.
所問如實義(소문여실의)니, 묻는 바가, 물으신 것이 如實한 뜻이다.
非但以多聞(비단이다문)으로, 다만 多聞으로써, 많이 듣는 것으로써
能入如來法(능입여래법)이니라. 능히 여래의 법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多聞. 이것은 철저히 100% 저보고 하는 소리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첫 째는 저를 위해서, 모든 법사ㆍ포교사ㆍ주지를 위해서 하는 소리 되겠네요. 그러니까 우리가 多聞. 이렇게 법문 많이 듣고 경전 보고 하면서 실제적인 수행과 병행하라. 하는 그런 의미지요. 병행하라ㆍ조화를 이뤄서하라.
그런데 일단은 많이 들을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많이 듣고ㆍ많이 읽고ㆍ많이 보고요. 그래 저는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계속... 요즘은 또 BBS도 잘 나와 가지고 BTN도 잘보고 BBS, 두 개를 한꺼번에 틀어놓고 법문을 봅니다. 또 아침에 BBS는 라디오에 좋은 법문이 많아요. 송담스님 법문 나오고, 지관스님 법문도 나오고, 그 다음에 도림스님 법문도 나오고 BBS는 라디오에 참 좋은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또 지금 여기서 우리 공부하는 화엄경도 지금 계속 찍잖아요. 화엄경도 계속 나오고요. 그 외에 또 좋은 법사 스님들 강의가 많이 나옵니다. 저는 하루 종일 TV 두 개 틀어놓고 듣습니다. 정말 저는 다문 중에 다문자입니다. 하하하 다문 제일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과거스님들ㆍ현재스님들. 여기서 우리 학무 거사가 우리나라에서 큰스님들 법문 녹음을 제일 많이 하잖아요. 녹음하는 것마다 갖다 주니까요. 저보고 공부 하라고 갖다 주면 저는 좋다고 계속 틀어놓고 듣기도 하고요. 여기 이런 비유가 있습니다.
(2) 譬喩(비유)
如人水所漂에 懼溺而渴死인달하야
於法不修行이면 多聞亦如是니라
如人設美饍호대 自餓而不食인달하야
於法不修行이면 多聞亦如是니라
如人善方藥호대 自疾不能救인달하야
於法不修行이면 多聞亦如是니라
如人數他寶호대 自無半錢分인달하야
於法不修行이면 多聞亦如是니라
如有生王宮호대 而受餒與寒인달하야
於法不修行이면 多聞亦如是니라
如聾奏音樂에 悅彼不自聞인달하야
於法不修行이면 多聞亦如是니라
如盲繢衆像에 示彼不自見인달하야
於法不修行이면 多聞亦如是니라
譬如海船師가 而於海中死인달하야
於法不修行이면 多聞亦如是니라
如在四衢道하야 廣說衆好事호대
內自無實德인달하야 不行亦如是니라
如人水所漂(여인수소표)에, 어떤 사람이 물에 떠내려가고 있어요.
懼溺而渴死(구익이갈사)인달하야, 빠져 죽을까 두려워서,
목이 말라 죽겠는데도 물 한 모금 안마시고, 물에 빠져 죽으면서도 물 한 모금 안마시고 죽어버려요. 아, 그것 한 모금 꿀꺽 마시면 목말라 죽진 않을 것 아닙니까?
於法不修行(어법불수행)이면, 법에 대해서 수행하지 아니하면
多聞亦如是(다문역여시)니라.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그래 우리가 이런 화엄경을 보면서 저는 자자입심ㆍ구구입심. 그런 표현을 가끔 씁니다. 글자ㆍ글자가 내 마음에 아로새겨지고, 구절ㆍ구절이 내 마음에 아로새겨지고 그래서 감동으로 다가오고요. 그래 감동으로 다가오는 동안 내 마음ㆍ내 정신세계는 정화가 되는 것이지요. 달리 다른 것 없습니다. 이런 주옥같은 부처님의 가르침, 최고의 가르침, 최고의 성인의 말씀을 우리가 하~~ 이렇게 한 구절ㆍ한 구절. 한 자ㆍ한 자 감동하는 그것이 구구입심이라. 구절ㆍ구절 내 마음속에 젖어든다. 그렇게 표현하잖습니까? 그렇게 마음에 젖어들고 감동을 하게 되면 사실은 그 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습니다. 최고 좋은 수행입니다.
如人設美饍(여인설미선)호대,
어떤 사람이 아주 좋은 음식을 차려놨어요.
自餓而不食(자아이불식)인달하야, 스스로는 굶어요. 스스로는 배고파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면서도 먹지 않듯이
於法不修行이면 多聞亦如是니라.
법에 대해서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如人善方藥(여인선방약)호대, 어떤 사람이 훌륭한 방문과 약이 있어요.
自疾이 不能救(자질불능구)인달하야, 스스로 병이 났는데도 능히 그것을 능히 고치지 못해요. 자기는 좋은 약방문도 있고 약도 있는데 자기병은 못 고친다 말입니다. 於法不修行이면 多聞亦如是니라.
如人數他寶(여인수타보)호대 自無半錢分(자무반전분)인달하야
於法不修行이면 多聞亦如是니라. 이 구절 귀에 익숙하지요?
은행원이 계속 하루 종일 돈을 세지만 자기 돈은 한 푼도 없다. 법에 대해서 수행하지 아니하면 多聞亦如是니라.
如有生王宮(여유생왕궁)호대, 어떤 이가 예컨대 왕궁에 태어났어요.
而受餒與寒(이수뇌여한)인달하야, 왕궁에 태어나면 온갖 것 다 있을 텐데도, 그 굶주림을 받고 추워서 덜덜 떤다 이 말입니다. 굶주리고 추위를 받아들여, 한기를 받아들여, 그와 같이
於法에 不修行이면 多聞亦如是니라.
우리가 지금 왕궁에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모두가 왕궁에 태어났어요.
그러면서도 굶주리고 한기 들리고 몸 가릴 옷 한 벌 제대로 없는 그런 처지다 이 말입니다. 이것이 전부 갖다 맞추면 다 그렇게 맞아요.
우리가 다 부처님왕궁에 태어났잖아요. 부처님의 아들딸입니다. 전부가 부처님의 장자이고 장녀입니다. 세상에 그런 영광이 어디 있습니까? 부처님의 장자ㆍ장녀인데... 그런 영광을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가 굶어죽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것이 말이나 될 일입니까? 於法不修行 하면 그렇다는 것이지요. 多聞도 亦如是니라. 그 다음에
如聾奏音樂(여롱주음악)에, 어떤 귀먹은 사람이 음악을 연주해요.
悅彼이 不自聞인달(열피부자문)하야, 다른 사람은 기쁘게 해요.
그 음악연주를 통해서 남은 아주 기쁘게 하는데, 스스로는 한 소절도 못 들어요. 음악 한 소절도 못 들어요.
於法에 不修行이면 多聞亦如是니라.
이것은 철저히 저보고 하는 소리네요.
如盲繢衆像(여맹훼중상)에, 어떤 눈 먼 사람이 온갖 모양을 수 놓아요.
그림그릴 繢, 수놓을 繢, 그렇습니다. = 수를 놓는다.
示彼不自見인달(시피부자견)하야,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면서,
그림을 그려서 딴 사람에게는 보이면서 자기는 보지 못 하듯이
於法不修行이면 多聞亦如是니라.
譬如海船師(비여해선사)가, 선장입니다. 비유하자면 선장이
而於海中死(이어해중사)인달하야, 바다 속에서 죽어요.
於法不修行이면 多聞亦如是니라. 아니, 선장쯤 되면 어떻게 하더라도 배를 몰고 나와야지, 어떻게 바다에 빠져 죽느냐? 이 말입니다. 於法에,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多聞도 또한 이와 같다.
如在四衢道(여재사구도)하야, 네거리, 저기 시내 네거리에 있어서
廣說衆好事(광설중호사)호대, 좋은 이야기를 널리 이야기하는 겁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런 것이 아주 좋고, 저런 것이 좋고, 이러면 잘살고 저러면 잘살고 하는 소리를 널리 설명을 해요. 그런데
內自無實德(내자무실덕)인달하야, 자기 속으로는 실다운 덕이 하나도 없어요. 자기 자신에게는 실다운 덕이 하나도 없듯이
不行亦如是니라. 어법에 불수행하면 다문역여시. 그것을 이렇게 한 구절로 또 줄였네요. 不行亦如是 = 어법에 불수행 다문역여시.
한문이라는 것이 이렇게 아주 묘미가 있습니다. 열 자를 다섯 자로 감축해버렸지요.
內自無實德인달하야, 자기 자신 속에는 實德이 없듯이
어법에 불수행 = 수행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다문도 역여시. 그것을 생략을 딱 아주 이렇게 했습니다. 참 아주 좋은 내용, 오늘 특별히 좋은 내용들 같습니다. 해태한 사람ㆍ다문만하고 수행하지 아니한 사람. 여러 가지 아주 좋은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첫댓글 _()()()_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강의 들으면서 두드려 맞고, 녹취하면서 두드려 맞고...
TV 두 개 틀어놓고 듣으신다는 것은 건성건성 들으신다는 말씀이지만,
스님의 건성건성과 이 사람의 세밀히는 천양지차지요.
譬如淨明鏡이 隨色而現像인달하야 佛福田如是하야 隨心獲衆報니라...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_()()()_
우리가 불법을 수행하는 것은 무엇을 하고자 함인가? “斷障(단장)과 成德(성덕)이다.” ...고맙습니다 _()()()_
斷障과 成德
...큰 불이 일어났을 때 일체 사물을 다 태우듯이, 부처님의 복전도 일체 유위법을 다 태워버린다.고맙습니다_()()()_
勇猛常精進...고맙습니다 ()()()
_()()()_
斷障 成德..勇猛常精進...고맙습니다._()()()_
[우리가 불법을 수행하는 것은 우리 삶에 있어서 부정적인 면을 제거하고 또 한편으로 덕을 키워가는 것이다(斷障과 成德)][물이 한 맛이듯이, 마술사가 마술을 부려서 여러 사람을 기쁘게 하듯이, 재주와 지혜가 있는 왕이 백성들을 기쁘게 하듯이, 밝은 거울에 사물을 갖다 대면 다 나타내듯이, 부처님 복도 중생들의 마음 따라서 온갖 과보를 다 얻게 해준다]
[若欲求除滅 無量諸過惡인댄 當於佛法中에 勇猛常精進이니라...만약에 한량없는 모든 허물과 악을 소멸하기를 구할 진대는 마땅히 불법 가운데에 용맹스럽게 항상 정진하라] [於法不修行이면 多聞亦如是니라]
釋대원성 님! 수고 하셨습니다.._()()()_
오늘에서야 녹취해 주신것을 프린트 했습니다.
이렇게 까지 공부 할 수 있게 해 주시는데도 바쁘다는 핑계로 늦장을 부리는것 같아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釋 대원성님~!
고맙습니다._()()()_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늦게 프린트하세요.
왜냐면 제가 거듭거듭 봤어도, 제 눈에 안보인 오자 탈자가 있거든요.
여러 님들이 보신 오자 탈자가 수정된, 늦은 프린트가 좋습니다.
올릴 당시는 안 보였던 34-3의 오자를 방금도 수정했는 걸요.
고맙습니다._()()()_
_()()()_
斷障과 成德...고맙습니다. _()()()_
亦如日出時(역여일출시)에, 또 해가 뜰 때에
照耀於世間(조요어세간)인달하야, 세간을 환하게 비추듯이
佛福田如是하야, 부처님의 복전도 이와 같아서
滅除諸黑暗(멸제제흑암)이니라. 어둡고 캄캄한 것을 멸제 한다.
亦如淨滿月(역여정만월)이, 깨끗한 보름달이普照於大地(보조어대지)인달하야, 대지를 환하게 널리 비추듯이
佛福田亦然(불복전역연)하야, 부처님의 복전도 또한 그러해서
一切處平等(일체처평등)이니라. 일체 처에 다 평등하다.
어리석음의 어두움을 소멸하는 큰 복을 입게해주신 어른스님께 합장합니다._()()()_
정성 가득한 불사를 여여하게 이뤄가시는 釋대원성 님께 새해에도 평안하시옵고 뜻하신 바 이루시길 빕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한량 없는 허물과 악을 소멸시키려면
불법가운데 항상 용맹스럽게 정진해야 한다
--게으름에 대한 경책 비유
고맙습니다._()()()_
다문지해,수행이필요 나무관세음보살
어떤 사람은 해탈을 빨리 얻고 어떤 사람은 해탈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게으름 때문이다
;한량없는 허물과 악을 제멸하기를 원하면 마땅히 부처님법가운데서 용맹스럽게 항상 정진하라
--게으른자에 대한 경책이 비유로 이어짐
나무를 비벼서 불을 구하는 데 비비다가 그치면 불길도 생기다가 소멸된다
터럭하나로 바다물을 찍어내어 바다를 마르게 하려고 한다
큰 불이 일어났는 데 조그만 물로 불을 끄려고 한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하늘로 올라 가려고 한다
當於佛法中 勇猛常精進
불자가 부처님 가르침을 수지하면 일체 번뇌를 끊어야 될텐데 왜 부처님 가르침을 수지하는 데도 끊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多聞만으로는 여래법에 들수 가 없다.실제 수행을 해야 한다
-좋은 음식을 차려놓고 먹지 않는 사람처럼
-다른 사람의 보배는 세면서 자기에게는 반푼도 없는 사람처럼
해태한 사람, 다문만하고 수행하지 아니한 사람 ... _()_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큰스님
춥습니다 따드시 지내시고 미끄러운 눈길 조심하세요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譬如淨明鏡, 隨色而現像
佛福田如是, 隨心獲衆報
, 불법을 수행하는 것은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우리 삶에 있어서 부정적인면, 어두운 면을 제거하고 (=斷障)
한편 덕을 키워가는 것이다. 자기의 복덕과 지혜를 자꾸 성장시켜 가는 것 즉 成德. 결국은 이 두가지이다. 우리가 공부하면서 나의 부족한 면을 자꾸 채워 나가고 좋은 점을 자꾸 키워가고.....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佛福田如是, 隨心獲衆報.......滅除諸黑闇
감사합니다
_()_
如盲繢衆像(여맹훼(궤?)중상)에, 어떤 눈 먼 사람이 온갖 모양을 수 놓아요.
그림그릴 繢(궤), 수놓을 繢, 그렇습니다. = 수를 놓는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은행원이 하루종일 돈을 세어도 정작 자기 돈은 하나도 없듯이,
수행하지 않고 법문만 듣는 사람도 이와같다.
감사합니다.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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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나무대방광불화염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염경 ()()()
우리가 불법을 수행하는 것은 무엇을 하고자 함인가? “斷障(단장)과 成德(성덕)이다.” ...고맙습니다 _()()()_
_()()()_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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