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성품이 갖가지지만 어디서나 얌체도 있고 쓸데없이 술마시고
게걸거리는 사람도 있고 주는거없이 얄미운 사람도 있고,,,,,
인터넷 잘하는 상설이가 하나둘 나오라더니 사진을 찍는다.보나 마나지
카페에 올릴려고.....누가 모를까바...중학교만 여기서 나왔던지 나왔던지 고등학교만
우리 학교 나온 나온 애들은
전체적인 코드는 안 맞지만 중학교 졸업생은 중학교 이야기 고등학교만 졸업생은
고등학교 이야기만 하게 되는데 그들 끼리는 반쪽 처럼 코드가 안 맞는게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같이 재미있게 노는데는 상관없다......제일 인기없는 애들은 잘난체
하는애들이다 .잘난것도 없으면서 남의말에 토달고 자기주관인 애들은 어딜가나
인기없다.아마 나도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는 얌체 쪽인지도 모르겠다.
동문회나 동창회에 참석이 저조한 나는 정말 많은 기억을 잊어 버린것 같다
등교길에 하교길에 같이 다니던 충기 복규 일진이가 생각나는데 그들중 복규 일진이는
이세상을 떠났댄다. 충기는 기억저편에 아스라히 멀었는데 지난 5월 보자마자 생각이 떠오르는것은
많은 날들을 같이 등하교 했기 때문이것 같다.
충기 책가방에 물을 부어서 미안 ...장난치고 놀던 그시절이 어느새 머나먼 돌아갈수없는
옛날이 되었을까? 영철이가 석화에게 유노숙 얼어? 하며 손가락질하니 알어...오금리 한다
하하하 그래도 지난 5월 동창회 버스 대절하고 한번 가서 좀 얼굴이 기억 되는지
나는 친구들 얼굴이 기억 안나면 지금 얼굴에 교복을 입히고 학생모를 씌워본다,
그러면 생각난다........아 그래 맞어 .그애 .그친구......
삼성 초등 학교가 없어진다고 한다 내가 다닌 학교는 아니지만 아쉽다 하자가 사는 세수리 어딘가로
이전하나 보다 . 얘나지금이나 한하자는 변함이없다.
얼굴이 하얗고 다소곳하던 하자..그러면 정옥자 정구자가 떠오르고 주욱 원당 을 가다보면
그쪽 사는 애들이 떠오른다....
나는 하필 그날 저녁 6시에 둘째 손주 첫돐 잔치가 성남 모란에 6시에 아웃백이란데서 있다
40년 넘게 못보던 동창들과 끝가지 같이 하지 못함이 아쉬우나.....나는 3시쯤 운동장을 떠나야 한다.
정연이 동애가 음식이 많으니 나누어 가라고 하나 나는 저녁에 음식 먹으러 가니
됐고 쥐포나 오징어포나 땅콩을 좀 가방에 넣었다. 삼송역 까지 따라 오는 동애는 좀 개인적으로
특별히 친하다 . 나를 챙겨주고 마무리 해주려는 동애가 고맙고 ...........
우리 선배들이 체육관을 돌로 날라다 지어서 못 허물게 한다는 소리도 듣고 가슴이 뭉클하고
내가 살았던 1965년 부터 1971년 고등학교 졸업때 까지 내 10대의 청춘이 흠벅 물든 삼송리를
잊을수가있을까? 하얗게 기억속에 지워진 장인권 선배님이 내게 오셔서 네가 왜 나를 모르냐?
학교다닐때 늘 보았으면서 신원리 살앗잖니 하시며 내가 기억 못하는것을 좀 서운해 하시는것 같아서
죄송하기도 했다.멀리 스페인에 사시는 강명희 선배님과 아주 닮은 모습인데 난 아주 헷갈린다.
그래서 다시 머릿속에서 장인권 전 총회장님하셨다는 분께 교복을 입혀 본다
아! 생각난다......생각 나고말고......어깨를 꼿꼿이 세우고 가방을 반듯이 들고 빠른 걸음으로
행진 하듯 걷던 선배님 모습이 .....
죄송합니다. 내게도 아주 친절하게 잘해주셨던것 같아요 ..생각납니다. 그시절이 ......
전깃세 낼 걱정도 괸리비낼 걱정도 할필요 없었던 꿈많던 그 시절..봄에 피는 진달래 여름에
피는 붕숭아 가을낙엽 겨울 흰눈 그 모든것들이 나를 위해 존재 했던 내 인생의 가장 찬란 했던 시절
삼송리 고양 중학교 고양 농업고등학교 ......은백양 나무 햇볏에 반짝이던 오후 운동장에서
배구부 지도 하시던 안봉균 체육 선생님 키가 우리들 보다 작아 킥킥 거리고......
나는 문학 소녀여서 중학교땐 소진율 고등 학교땐 이재호 국어선생님을 좋아했지 . .
소진율 선생님은 내 짝사랑이기도 했어 . 선생님이 무슨 심부름 시키셔서 선생님 댁에 갔는데
선생님은 종권이 집에서 하숙 하셨지.......흐음.........
나는 공부를 못했는데 거기엔 이유도 단단히 있었지....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울 것도 없지만
나는 충청도에서 초등학교 졸업 하고 오금리에 왔는데 이모댁인데 이모가 장사를 하셔서 난 늘 심부름에
시간이없이 시달리고 내 공부방도 늘 장사군들로 붐볐지./........이야기 끝내야 하는데 자꾸 삼천포로
빠지네......에라 더쓰자........계속 ....
첫댓글 이궁~ 실상 나를 지칭한 것은 절대 아니니라 믿지만 자리를 먼저 떠난 나를 칭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드네.
난 아버님 직업(경찰) 따라서 초등학교를 세 번이나 전학다니다가 삼송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어린 시절에 전학 다니면서 가장 부러웠던 게 한 번 사귄 학우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었어. 그꿈을 고양중학교와 서울공고에서 이루었지.
삼송리는 나에게 어린 시절 정착하게된 고향이라 고양중학교는 더없이 나에겐 초심의 고향이야. 전에도 말했듯이 부모님은 모두 이북이 고향이라서.
그래서 고양중학교는 지금도 포근한 고향집처럼 느껴지지. 특히 이종환 교장선생님과 우리 아버님과는 절친이셨고 나 결혼 때 주례도 서주셨거든!
누구를 지칭한것은절대 아닌데
본인들이 그렇게 느끼면 본인들
책임
@1816 /유노숙 ㅋㅋ 나 책임 안져.
박정봉이 자격지심이겠지 뭐.
농담이야.
코드가 맞는사람! 코이야기만 하면 코드가 다맞지...............
안 맞어 코 이야기 하면 또
딴소리 하거든
입 이야기 하는사람은 ?
코드가 절대 안맞나? ㅎ
동문회 방문후 표현해준 글 잘보고 동감이 가는게 많구먼.몇십년만에 모교를 방문하고 오랜친구들 선.후배 를
만나게해준 박신자 와 또,한사람이 있었기때문에 가능하다는 사실은
인정 하시지? 정문 앞에 귀율 이 아니고 규율 이 맟는것 같은데 그래도 67~68년도 그때 가
지금생각하니 아름다운 추억 이 되어 그때 그시절 을 떠올려지는것은 나이가 들어서일까?~~
박광선 선배님을 만나게 되서
동창들을 찿아냇습니다 .감사하구
말구요
올해는 못뵈서 좀서운 하데요 건강하시죠
나에 가슴을 울리는 한 줄에 글귀~~ 종권이는 기억 못해도 종권이에 집을 기억해주는 동기 동창인 유노숙 중학교3학년때 써준 싸인지가 생각이 나서 보았다. 중학교때는 나는 참으로 매우 까불였나 보다.
나는 고등학교을 고양농업고등학교 원예과을 들어갔다. 왜냐구요? 수도공업고등학교 전자과을 시험을 보았으나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그 이유는 공부을 못해서 이다.중학교3학년 시절엔 온통 동네가 과외공부란~것이 생겼는데
딸라집 임봉규 고양농고 농무, 큰딸이 가장많은 학생을 가르쳤고. 두번째가 고치경씨 부인이 두번째로 많은 학생을 가르친 것으로 기억이 된다. 나는 그때 이상혁,박정봉,권영섭,조도화, 강정자,손희영이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