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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의 깊은 맛을 보다. (2부; 주왕산 그리고 안동)
2012년11월17일~18일.
안동역 광장 옆 관광안내소를 찾아 주왕산 가는 안내를 받고 안동역에서 길 좌측 보행로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안동초등학교 앞 시외버스 정류소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25분이 소요되어 주왕산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20시25분이었다.
동 서울 터미널에서 주왕산으로 직행하는 우등버스인데 안동을 경유하게 되어 있어 그 버스를 이용하여 청송 주왕산으로 가게 되었다.
이미 땅거미가 지고 어두운 밤풍경이 비치는 가운데 버스는 법흥교를 지나 용상을 지나고 있다. 용상은 안동시내에서 떨어진 외곽의 조그만 한 마을에 불과 했는데 모든 도시가 그렇듯이 안동도 외곽이 오히려 새로운 발전으로 과거 내가보던 거리와 확연히 다른 용상의 밤 풍경은 넓은 도로에 깨끗한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안동 시내를 능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주왕산으로 가는 국도는 구석구석 잘 뻗어 있어 편안하게 갈수 있었는데 늦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토요일인데 관광객을 태운 차량들이 별로 보이질 않는다, 우리가 탄 버스도 우리 외 관광객이 3~4명 정도였다. 주왕산 바로 아래 터미널에도 주차장이 텅 비어 있었다.
< 주왕산 숙소부근 식당에서 소주를 곁 드려 저녁을 >
우리는 터미널에서 민박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아 민박 숙소를 정하고 저녁 겸 한잔하러 인근 식당으로 갔다. 주왕산에 오면 꼭 먹어주어야 할 것은 달기약수에 삶은 닭백숙이다.
닭백숙을 먹고 나면 죽도 달려 나온다. 우리는 닭백숙에 동동주, 소주를 시켜 내일 주왕산에 오를 전야제(?)를 하였다.
황기와 인삼을 넣고, 특이하게도 녹두를 넣어 삶아낸 백숙 맛은 허기진 배를 기절하게 만든다. 달기약수와 녹두가 비법인가 닭 특유의 냄새도 없고 연한 고기 살이 살살 녹는다. 동동주 두어 잔이 들어가니 기분이 좋아진다. 시골의 안방에서 따뜻한 구둘 장 생각나는 방바닥의 따뜻한 온기가 알콜에 의하여 금방 취기가 오른다. 하지만 내일의 등정(?)을 위하여 술은 더 이상 자제하고 죽 한 그릇을 닭백숙과 함께 다 비우고 나니 속이 든든해진다.
식당주인은 내일 아침도 여기 와서 먹으라고 권한다, 우리는 흔쾌히 답하고 민박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씻고 TV를 잠깐 시청하고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06시에 일어나 세면을 하고 등산 채비를 꾸려 어제 그 식당으로 가서 아침으로 구수한 된장찌개와 산나물로 맛나게 먹었다. 시골 토속된장이라 구수한 맛이 오래 동안 객지에서 돌아온 고향의 아침 맛이었다. 산행 코스도 조언을 해 줄 정도로 아주머니의 특별한 배려가 우리를 기분 좋게 한다.
< 07시59분의 주왕산 입구 대전사 앞에서, 뒤에는 기암이다>
주왕산 대전사(大典寺) 앞에서 멀리 기암(旗岩)이라 불리는 7개의 봉우리가 보이는데 주왕이 대장기를 꽂았다하여 기암(旗岩)이라고 한단다, 더 재미있는 것은 사진에서 보는 봐와 같이 가운데봉우리가 금이 가 갈라놓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고려시대 마일성 장군이 쏜 화살에 맞아 생긴 것 이라한다. 처음부터 재미있는 전설이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기대에 부풀게 하고 있다.
< 자하교로 가는 길 >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대전사-자하교-무장굴-주왕암-주왕굴-주왕암-전망대-급수대-시루봉-학수대-제1폭포-제2폭포-제3폭포 까지 가는 코스로 잡았다.
< 자하교 위에서 >
아침 먹을 때 식당 아줌마가 일러 준대로 우리는 자하교에서 제1폭포 쪽으로 가는 길과 주왕암(周王庵)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면 주왕암으로 가서 무장굴과 주왕굴을 먼저 보고 제1폭포로 가라고 권장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우리는 30여분 걸어서 도착한 자하교에서 우측으로 주왕암 쪽으로 걸었다
< 낙엽을 밟으며 >
< 낭떠러지가 있는 비탈길을 오르고 있다 >
자하교에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주왕암 가기 전에 우측으로 비탈길 산을 올라가는데 인적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수북이 쌓인 낙엽에 발목까지 빠지는 비탈길 옆에는 아찔한 낭떠러지가 있고 그 아래는 우리가 걸어 왔던 평탄한 길과 계곡의 주방천이 흐르는 것을 볼 수 가 있고 건너편 산등선은 아침 햇살을 받아 막 깨어나는 돌산인 연화봉과 병풍바위가 수줍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아침 햇살을 받은 연화봉이 아름답게 비춰진다>
< 무장굴이 보인다, 힘내자! >
무장굴은 주왕이 무기를 저장하여 숨겨놓았다 하여 무장굴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고한다. 그런데 굴 입구에는 큰 암석이 가로 막고 있어 7m이상은 들어 갈수가 없었다.
무장굴(武藏屈) 자체는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올라가기까지의 주변의 아름다움은 극치를 이루고 때 묻지 않은 자연에 동화되어 잠시 신선이 된 느낌을 받은 기분이었다.
< 무장굴(武藏屈)에 도착 입구에서>
< 멋진 광경에 감탄 하며 >
무장굴 입구까지 올라와 뒤를 돌아보니 이제 막 깨어난 연화봉과 병풍바위는 무장굴을 대신하여 신선한 볼거리를 보여주어 무장굴에서 의 아쉬움을 달랠 수가 있었다.
< 주왕굴과 제1폭포로 가는 이정표>
< 주왕암(周王庵) 전경 >
무장굴에서 멋진 경관을 감상하고 내려오면 2층의 일주문을 지나면 주왕암이 나온다. 주왕암(周王庵)은 주차장 입구에 있는 대전사와 함께 창건 되었는데 주왕 굴에서 죽은 주왕의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지은 암자라고 한다. 팔작지붕의 날아갈듯 아름다운 암자는 인적이 드문 자연 속에서 속세의 상한 마음을 내려놓고 힐링 하기에 어울릴 것 같은 조용한 암자였다.
주왕암(周王庵)을 지나 산으로 오르면 암벽의 협곡이 나오고 협곡을 오르는 길은 철재로 된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좁은 협곡의 암벽은, 무장굴을 갈 때의 울창한 숲과 낙엽의 자연스러움과는 반대로 인공 철재계단이 다소 거슬렸으나 암벽을 오르기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 덕분에 쉽게 오를 수가 있었다. 암벽으로 된 좁은 협곡도 새로운 장관을 연출하고 이었다.
< 주왕굴 이 보인다 >
< 주왕굴 입구, 그 옆에 떨어지는 폭포수를 처다 보고 있는 J님>
주왕굴(周王屈)은 주왕이 마장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이곳에 은거하였다 고 한다, 주왕굴 옆에는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어 주왕굴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암벽들에 운치와 기풍을 불어 넣었을 것 같은 광경이 있었다. 여기서 주왕이 떨어지는 폭포수에 세수를 하려고 동굴 밖으로 나왔다가 마장군에 발각되어 화살에 맞아 높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지기도하는 곳이다.
동굴은 입구보다 안쪽은 그리 넓지 않은데 그나마 돌로 막아놓은 상태이고 그 주변에는 초라한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직도 주왕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인가? 동굴입구 옆에 떨어지는 폭포수는 수량이 적어 가는 물방울만 떨어지고 있어 초라한 제단을 더 을씨년스럽게 보이게 한다.
< 주왕굴 안에서 밖으로 배경 >
< 주왕굴에서 주왕암으로 내려가는 계단 길 >
주왕이 은거했다는 주왕굴을 뒤로하고 철재계단을 통하여 주왕 암자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데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진다. 아침 이른 시간(09:00)이라 그런지 슬픈 전설에 인적이 없어 더욱 그런 느낌이다.
올 때 보았던 암자를 지나서 제1폭로로 가는데 자하교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아도 갈 수 있는 샛길이 있어서 우리는 그쪽으로 들어섰다.
< 망월대에서 본, 중앙이 연화봉 우측이 병풍바위 >
< 병풍바위와 급수대 >
샛길을 통해 제1폭포로 가는데 뜻밖에 횡재를 한다. 망월대 라는 전망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 아래 자하교에서 바로 제1폭포로 갔었더라면 이곳을 못 보게 될 수도 있었으니까. 전망대에서 본 광경은 무장굴에서 본 연화봉과 병풍바위를 더 가까이 할 수가 있었다. 주왕산은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3대 암산(巖山)중의 하나인데 과연 명산에 걸맞은 암산이 버티고 있었다. 빛을 받아 훤한 걸출한 돌산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반긴다.
< 좌측에 선이 그어진 바위가 급수대(汲水臺)다. >
망월대에서 멀리 있는 암반으로 된 급수대를 볼 수 있었는데 바위에 급수자국(?) 인지는 몰라도 선이 급수대에 위에서 아래로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 망월대에서 제1폭포로 가는 길에 급수대 아래에서 >
망월대에서 경치 좋은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급수대를 지나 시루봉과 학소대가 있는 곳이 나온다.
< 학소대 부근에 있는 시루봉>
학소대 아래 학소교를 지나 제1폭포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 양옆에는 괴석으로 된 암반사이에 물이 흐르고 기기묘묘한 괴석은 여기가 주왕산이 자랑하는 명소가 가까워짐을 알 수가 있었다.
<제1 폭포가 있는 곳 >
< C 와 J 사이에 제1폭포가 보인다 >
학소교를 지나 20여 미터 거리에 제1폭포가 드디어 그 모습을 나타내고 뒤로 돌아서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절벽이 바로 학소대(鶴巢臺)다.
학소대는 그 절벽위에 청학과 백학 한 쌍이 둥지를 틀고 살았는데 어느 날 사냥꾼에 의해 백학이 잡혀 짝을 잃은 청학이 날마다 슬피 울면서 바위를 배회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 제1폭포의 모습 >
주왕산의 폭포는 조선시대까지 불리어 왔던 우리고유의 명칭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 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들어가는 순서대로 제 1,2,3폭포로 단순히 명명되어 현재까지 관행대로 사용되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주왕산 국립공원 사무소에서는 폭포명칭을 복원 변경하여 정통성회복을 하려고 팜프랫을 돌리며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하지만 이정표에는 아직도 제1, 제2, 제3폭포로 표기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옛 고유 명칭이 친근감이 간다. 우리 고유 명칭을 소개하면
제1폭포; 용추폭포(龍湫瀑布), 선녀폭포, 외용추폭포.
제2폭포; 절구폭포, 중용추폭(中龍湫瀑布).
제3폭포; 용연폭포(龍淵瀑布), 내용추폭포(內龍湫瀑布). 라고 한다.
< 제2폭포 배경 >
제1폭포에서 20여분 주변계곡의 수려한 경치를 보면서 걸어가면 우측으로 들어가는 제2폭포 이정표가 나온다. 그리 멀지 않는 거리에 감추어진 보석이라고 찾은 기분이드는 아담하고 멋스런 제2폭로의 2단 폭포가 보인다.
제1폭포도 그랬지만 제2폭포도 수량이 적어 폭포의 위용은 다소 수그러진 상태지만 1박2일에서 이수근이 가 다녀간 곳이기도 하다.
그때 여름에 나오는 TV화면은 나도 보았지만 수량이 풍부한 폭포의 위용은
엄청난 광경에 실제 가보고 싶은 호기심을 자극했던 장면이 생각난다.
우리는 다시 들어 왔던 길로 나가 제3폭포가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 제2폭포에서 >
제3 폭포가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주방천 계곡이 조금 더 깊어가는 것 같다. 이제까지는 평탄하고 부담이 없는 길을 걸었으나 지금부터는 다소 경사가 있는 길이다. 계속 걸어가다 보면 이정표가 보인다. 주왕산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주왕산은 여러 가지 코스가 있지만 여기서는 ‘후리메가삼거리’에서 주왕산정상을 올라 대전사로 가는 3시간코스의 등산길 이다.
우리는 내친김에 주왕산 정상으로 갈 마음도 있었으나 시간과 여건상 제3폭포만 보고 돌아가기로 했다. 주산지를 들렸다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 제3폭포의 전경 >
제3폭포가 나뭇가지 사이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닥아 온다. 폭포 아래쪽과 위쪽에 전망대가 보인다. 급한 마음에 아래쪽으로 내려가려는데 안내표시는 위쪽으로 가라는 화살표시가 있다.
< 제3폭포 위쪽 전망대에서 C와J>
< 제3폭포 위쪽 전망대에서 >
우리는 위쪽 전망대로 갔다. 제1, 2 3 폭포 중에서 가장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아쉽게도 수량이 적어 웅장한 모습을 볼 수 는 없었으나 같은 폭포에서 두 갈레로 물이 떨어져 쌍폭이라고도 한다는데 전체적으로 2단 폭포이다.
오랜 세월동안 물줄기에 페인 웅덩이가 아름다운 모습을 더해주고 신비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수려한 수림과 주방천이 어울려 계곡의 운치가 제3폭포를 더욱 빛나게 해준다. 그래서 주왕산에 오면 가능한 주왕산 정상에는 못 오르더라도 이곳까지는 오려고 했나 보다.
우리는 다시 계단을 타고 아래쪽 전망대로 갔다.
< 계단을 타고 아래쪽 전망대로 가고 있다 >
< 아래쪽 전망대에서 본 제3폭포 모습>
아래쪽으로 내려오니 위쪽 전망대가 보이고 두 갈레 물줄기가 확연히 보이며 쌍폭을 이루고 있다. 신선이 놀고 갔을만한 맑은 물과 두 물줄기는 수량이 많을 때 웅장함보다 오히려 곡선미가 있는 여성스런 수려한 풍경에 눈을 뗄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전체적으로 주왕산이 주는 인상은 돌산으로 된 무게보다도 더 무겁고 깊은 맛이 느껴지는 중후함이 나를 사로잡는다.
< 제3폭포 정면에 선 C 와 나 >
주왕산은 여기까지가 우리의 목적지이다.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지금시간이 10시20분, 아침 07시30분에 출발하여 약 3시간이 지났다. 주산지를 가려면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어 내려가기로 했다.
아쉬움을 달래며 우리는 다시 왔던 길로 내려가는데 올라 올 때와는 달리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었다. 제1폭포까지 내려 왔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단체 관광객이 주를 이루며 대부분 각 지방에서 온 관광객들이다. 멀리 부산에서도 단체 관광객이 올라 온 모양이다. 왠지 부산 사투리가 귀에 익다.
어 ! 놀랍게도 일요일이긴 하지만 주왕산을 찾는 관광객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우리는 관광을 끝내고 돌아가는데 이제 찾아오는 관광객은 대부분 제1폭포가 있는 곳까지 오는 관광객들 같았다.
지금 시간은 11시10분 쯤 되었다. 우리가 아침에 07시40분경 주왕산 터미널에 텅 빈 주차장을 보고 관광시즌이 끝나가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우리 생각이 빗나갔다. 역시 주왕산 인기는 대단하다 주방천 계곡 트레킹 로드는 관광객으로 꽉 메어졌다.
우리는 주차장 근방에 와서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하여 길옆에 있는 식당에서 맛나게 파전, 감자전, 김치전을 부치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 맛나게 파전을 부치고 있는 모습 >
메밀가루를 섞은 칼국수는 칼칼하고 담백한 맛 또한 일품이었다. 보통 관광지의 맛은 믿을 수가 없었는데 오늘은 대 만족이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서 우리는 주산지를 가기 위하여 터미널로 갔다. 아침에 텅 빈 주차장이 관광버스로 꽉 차 있었다.
주산지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나오는 촬영지이기도 하다. 내용은 어린 동자승이 성장기를 거치면서 파란 많은 곡절을 겪으며 주산지의 사계절위에 그려진 작품이다, 이때의 주산지의 사계(四季)의 아름다움과 신비스런 광경은 아직도 잊을 수 가 없다.
터미널에 도착한 우리는 주산지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야만 했다. 안동으로 가기 전에 2시간 정도 여유로 가보려고 했는데 교통편이 마땅치 않다. 버스 시간은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하고 택시는 편도 3~4만은 주어야 한단다. 그리고 도착해서도 30분 이상은 걸어야 주산지를 볼 수가 있단다.
< 안동역 광장에서 >
14시 45분에 안동역에 도착 하였다. 먼저 청량리 행 시간표를 보았다. 15시15분 행은 이미 좌석이 동이 나버렸다, 할 수 없이 17시15분 행 청량리 행 기차를 예매하고 나서 딱히 할 일도 없어 안동시내 관광에 나서기로 했다.
2시간 정도 여유시간으로 제비원미륵불(이천동석불)이나 하회마을정도 관광을 하자고 제안 했으나 일행들이 너무 멀리 가지 말자고 한다, 나 말고는 다소 피로한 모습들이다. 그래서 나는 가까이에 있는 어린 시절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내가 양해를 구해 그곳으로 가기로 하였다.
나만을 위한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 고마워서 혼자 다 쓸 수가 없었다. 미안한감도 들고 해서 동부초등학교에 들렸다가 사우나에 가서 몸을 풀고 기차를 타기로 일정을 조정했다.
< 안동 동부 초등학교 전경>
1963년에 나는 안동 동부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아마도 18회 졸업생으로 생각된다. 아~! 얼마나 이런 시간을 기다렸는데 계획에도 없이 갑자기 찾아 온 내가 원망스런 생각이 든다. 계획을 갖고 찾았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하고 있다. 초등학교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나는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지난세월이 교사(校舍)가 있는 곳에서 멈춘다.
그때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목재로 된 단층의 교사(校舍) 건물이 앞 1동과 뒤에 1동 모두 2동(棟)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동(棟)은 2동 그대로이나 단층 목재건물이 3층 시멘트 건물로 변해 있었다. 고무신 수줍은 처녀가 하이 힐 멋쟁이 처녀로 변해 있었다.
< 메인교사(校舍) 뒤 교사의 5학년시절 우리반 앞에서 >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던 나무들은 고목이 된 몇 그루가 남아 낙엽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를 들어내 늙어감 을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돌면서 그때는 엄청난 크기의 운동장이 지금은 반으로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교사(校舍) 뒤로 걸어가 보았다.
그랬다 그때는 한반이 남녀 혼합 반에서 6학년이 되면서 남자들로만 구성된 1반,2반,3반 이 있었고, 여자들만으로 구성된 4반, 5반으로 모두 5반이 있었다. 나는 6학년2반이었다.
국화꽃이 향기를 뿜으며 50년 만에 찾아 온 나를 잊어버리지 않고 반기는
것 같아 숨바꼭질 하다가 들킨 어린애가 되어 어린 시절 그때 그 시절 생각이 간절한 그리움으로 몰려온다. 겨우 생각을 떠 올려 5학년 때 교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때 선생님은 이영주 여선생님으로 기억된다.
마침 일요일이라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며 동쪽 쉼터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불쑥 생각 없이 찾아온 내가 바보스럽기도 하지만 50년이란 시차가 주는 것은 나에게 무엇인가? 그저 여행자로서 잠시 다녀가면 그만인가? 하는 생각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하지 않는다.
혼자 왔더라면 더 많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지만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일행과 함께 안동역전 앞에 있는 찜질방으로 갔다. 멀리서 옥상간판을 보고 찾아 갔는데 옛 안동극장 자리가 찜질방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늘로서 우리의 일정이 마감되고 사우나로 피로를 풀고 상쾌한 기분으로 나 와 17시15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기위해 역으로 갔다. 좌석을 확인 하고서는 시간이 남아 플렛트 홈으로 가서 나는 다시 한 번 어린 시절을 떠 올리면서 영남 산을 바라보며 지나간 추억을 되풀이 해 보기로 했다.
< 안동역 지하도 >
< 안동역에서 >
플렛트 홈에 가기위해 역사에서 지하도를 이용 건너야했다, 어둡고 칙칙했던 그때의 지하도에 비해 밝고 깨끗하게 단장되었고 에스컬레이터도 갖추어져 있었다. 플렛트 홈 지붕도 새로 설치되어 있었다. 남들에게는 평범하게 보이지만 나에게는 충분한 만감이 교차되는 추억이 떠오른다.
< 저 산자락 사이가 안동댐이 있는 곳이다 >
플렛트 홈 끝 저쪽에 있는 철길 건널목을 지나면 우측에 천방(제방)이 나온다. 낙동강 범람을 막기 위한 천방에서 네잎 클로버 찾고, 씨름한다고 몸을 구르며 놀던 때, 낙동강 백사장에서 피라미 잡으려고 사발무지 하던 생각 등이 순간적으로 스치고 지나간다.
< 청량리 행 기관차 앞에서 >
나는 부친이 철도 기관사이셨기 때문에 철도에 대해서 잘 알고 그래서 지리에 관한 것에 대해 좋아했고 여행에도 차츰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천방(제방) 안쪽에 우뚝 서 있는 탑도 아직 보인다. 그 탑은 급수탑이다, 증기기차가 다닐 때 증기를 생산하기 위해 물을 공급받던 급수탑이다. 지금은 아마도 폐기 되었을 것이다. 이제 안동을 떠날 시간이 다 되어 간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잠깐 동안의 나만의 추억 여행은 많은 시간이 흘러간 지금 마음속에 행복감이 가득하다. 조그만 한 것에도 감사해야 할 마음이 우러난다.
< 무궁화호 열차 내부 >
< 청량리 행 열차를 타고, 잘 있어라 안동아! 나는 간다. >
서서히 차는 움직이고 있다. 길지 않는 여정이었으나 나에게는 알찬 여행이었다, 우연케도 나만이 느낄 수 있었던 안동 회상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은 만감이 교차되는 감개가 무량하도록 만든 특별 보너스로 나에게 배려한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주산지와 바꾼 선물이기도하다.
유서 깊은 부석사! 그리고 우리나라 3대 암산(巖山)중 하나인 기묘한 돌산의 무게만큼이나 깊은 맛을 느끼게 하는 주왕산! 오래도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여행의 진수를 느끼게 해주는 뜻 깊은 여행이었다.
사람들과 섞여 사람 냄새를 느끼는 여행, 시골 민박의 불편함이 오히려 더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훈훈함, 일정계획을 완주한 성취감이 차창에서 멀어져가는 불빛이 아련하다.
감사합니다. 2012년 12월1일 마침. 염영호.
첫댓글 안동고향땅에서 주황산 등반까지 주황산은 특이한 점이 등산도 등산이지만 관광지처름 볼곳이 수없이 많아
주왕암.무장굴.폭포수.망월대.연화봉.병풍바위.급수대.폭포가 1~3폭포까지 등산이 안이라 관광이것만 사진으로
잘보고요.마지막으로 안동 초교 내가 어린시절 뛰놀든 보금자리 회갑을 지난 지금 지난날 발자국을 새롭게 밟아
볼때 그 감미가 매우향기롭고.등반모습과 아울려 여행 발자취 잘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황혼길의 인생 열차를 타고 달리는 무의미한 여행이 아니오라 벗들과 주왕산의 깊은 맛을 보기 위한 멋드러진
기차 여행과 더불어 산행하는 염영호님 여행 중의 견문과 감상을 그 발자취를 따라 서술한 기행문과 찾아보기
힘든 귀한 사진들 촬영하여 편집 한것이 pro급 이상이라 아주 뜻 깊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송년회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