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란 신을 이해하는 방식의 다양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유대교와 무슬림과 달리 그리스도교만 삼위일체 하느님을 통해서 신을 이해한다.
니케아신경은 성부, 성자.성령을 '우리는 이렇게 이해합니다'하고 고백하는 내용이다.
그러면 삼위일체는 무엇인가
설교대에서, 교회의 삶에서 삼위일체 교리는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
삼위일체는 신비인데, 서서히 하나의 신화가 되어 교회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위일체를 빼면 그리스도교라고 할 수 없다.
여성주교문제나 동성애문제가 교회의 위기가 아니라 삼위일체의 위기가 교회의 위기이다.
일반적으로 크리스천이란
삼위일체를 통해 하느님의 존재와 활동을 이해하고 믿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성자께서 이 땅에 오신 그 역할,
곧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창조자 성부께 연결시키는 성자의 역할과,
그 성자의 역할을 우리의 삶 속에서 알아차리게 하는 성령의 영감이 없이는
우리 크리스천들은 하느님을 알 도리가, 하느님을 체험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한마디로, 우리 크리스천의 하느님 체험은 성부, 성자, 성령 각기 따로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 다른 세 위격들의 관계 안에서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 위격들 간의 상호 관계적이고 수용적인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과 일치의 커뮤니언의 삶-
상호의존과 공존의 삶-을 엿볼 수가 있다.
모든 커뮤니언의 뿌리는 삼위일체적 삶에서 나온다.
삼위일체적 커뮤니언으로 살기만 하면, 동성애나 여성주교나 (천주교의) 사제의 결혼에 대한 문제는 지엽적인 문제가 된다.
'삼위일체적 커뮤니언으로서의 삶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한다.
'One God'이라는 말에는,
'only God'(유일한 하느님)이라는 배타적인 유일신 신앙도 있지만
'who make us one'(우리를 하나되게 하는 한 하느님'이라는 뜻도 있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삶이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되게 하시는 One God이시다.
보스니아 출신의 성공회사제이자 신학자인 볼프는 분열을 삶에서 직접 체험했던 분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안되지'하는 고민을 했다.
심리학자는 그 이유에 대해서 두가지로 분석을 했다.
첫째는, 내가 갖고 있던 귀한 것을 뺏길까봐, 고유한 자기를 잃을까봐 (남한테 못 들어가는 이유)
둘째는, 우리안에 들어와 있는 지배욕으로 잘나고 싶어서 (타자 지배욕)
이 두 가지만 극복이 되면 우리는 섞여들어가서 살 수 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역동적인 관계의 삶을 살 수있다.
이것이 성공회 공동체의 커뮤니언 삶의 원천이며 근거이다.
1) The Anglican Communion (성공회 공동체)
2) Holy Communion (감사성찬례)
3) Communion of Saints (성도들의 상통)
4) Communion (영성체)
이 네개가 커뮤니언의 출발점이다.
커뮤니언을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일치와 권위이다.
일치(Anglican Unity)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는 저스틴 웰비 켄터베리 대주교는 성공회교회와의 일치를 위해서 부산주교좌 교회를 방문한다.
일치에 관한 성공회의 이해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일치와 사랑 안에서 결속 되어지는 다양성'으로 표현된다.
'성공회적 일치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밀한 인격적, 관계적 본질인 커뮤니언에 근거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이 다른 세 위격이 서로 자신을 내어주고 받는 사랑은 하느님과 우리의 친교,
그리고 우리 상호 간의 친교의 원천이며 근거이다' (버지니아 리포트, 1996)
삼위일체적 커뮤니언(Trinitarian Communion)은 성공회 공동체의 일치적 삶의 원천이며 근거이다.
권위(Anglican Authority)는 일치를 위한 수단이다.
권위에 대한 성공회의 이해는 '분산된 권위(dispersed authority)'로서 성공회의 권위이다.
'삼위일체의 관계적이고 공동체적 본질로부터 나오는,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상호협력과 상호체크의 과정이다'
(람베스 컨퍼런스, 1948)
다시 말해서, 성공회적 권위란, 일치를 만들어내고 표현하기 위해 중앙집권화하는 파워나 고정적 시스템이 아닌,
삼위일체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일치의 삶을 구현하기 위해
서로 돕고, 서로 체크함으로써 상호 보완해 나가는 여러 다양한 수단들 중의 하나이다.
성공회 권위에는 두가지 자율성의 원칙이 있다.
하나는, 아디아포라(adiaphora)로
공동체 내의 핵심 교리들간, 즉 본질적인 것들(기본)과 비본질적인 것들(지엽)의 식별의 중요성을 표현하고
다른 하나는, 보충성(subsidiarity)으로 공동체 내에서의 지역성(locality)의 중요성을 표현한다.
따라서 성공회 자율성(Anglican autonomy)은
상호책임과 상호의존(Mutual Responsibility and Interdependence in the Body of Christ, MRI)에 기반한
'관계 속에 있는 자율성(autonomy-in-relation)'과
'관계 속에 있는 자유(freedom-in-relation)이다.
분산된 성공회 권위의 정신은 MRI이다
교회는 커뮤니언의 삶이 증거되는 장소이자 커뮤니언을 믿는 장소이다.
F. D 모리스에 의하면,
삼위일체 커뮤니언의 삶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하는 세 가지 조직이 있다.
첫째는 가정으로, 가족구성원이 서로 섞여들어갈 수 있다.
둘째는 국가로, 국가가 제대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으려면 민주주의가 아닌 '테오크라시(Teocracy)'가 되어야 한다.
셋째는 교회로, 위 두 조직의 원래의 삶의 가시적인 모델을 제시한 것이 교회이다.
관계의 삶을 증거하는 곳이, 눈에 보이는 수단으로서의 교회이고,보이지 않는 수단으로서의 종교이다.
따라서 교회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역동적인 관계의 삶을 증거하는 곳이다.
또한 선교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역동적 관계의 삷의 반영으로서 커뮤니언의 삶을 사는 것이다.
"교회의 선교는 하느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 그 결과로서 타자와 세계와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곧 선교란 타자와 세계 그리고 하느님과의 커뮤니언의 삶을 사는 것이다"
The Revd Dr Simon Ro <http://www.uspg.org.uk/article.php?article id=729>

<부산주교좌성당 카트라이트홀>
첫댓글 하느님에 대한 이해들이 조금씩 열려지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의 기본 진리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주일밤에 더없이 좋은 글입니다^^ 그립네요...
수녀님, 고마워요.. 참석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달레지네요...^~^
그러면 다행입니다.
저도 삼위일체 하느님을 이렇게 명확히 설명해주셔서 깜짝 놀랐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