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eter Pauwel RUBENS The Meeting of Abraham and Melchizedek, 1625, Oil on wood,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구약성경 중에서 가장 해설하기 어려운 부분 중 하나인 창세기14장은 내용이나 양식 및 자료에 있어 오경의 어느 기초 문헌에도 속하지 않은 특수한 부분이다. 멜기체덱은 살렘의 왕이자 사제였다고 추정된다. 한 인물이 왕과 사제를 겸하는 제정일치 현상은 고대 동양권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멜기체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그가 부른 하느님의 이름과 칭호는 다분히 가나안적이다. 즉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창조주), 지극히 높으신 분(엘리욘), 신(엘)의 칭호는 고대 가나안 일대 만신전의 신들을 각각 지칭하던 이름이었으리라 여겨진다.
멜기체덱이 그들 신의 이름으로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주자 아브라함은 그 보답으로 십일조를 바쳤다. 본래 십일조는 매년 정기적으로 생산물의 십 분의 일을 예물로 바치던 농경사회의 제의였는데, 특별한 경우에 얻은 소득에 대해서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쳤다는 것은 먼저 멜기체덱의 축복을 받아들이고 그를 예루살렘의 왕이자 사제로 인정하였다는 뜻이다. 다음으로는 아브라함이 가진 것 전부에서 십일조를 냄으로써 정기적인 소득에만 내던 십일조의 성격을 변화시켰다.
이렇게 보면 멜기체덱 이야기의 배경이 드러난다. 이교적인 예식과 그 사제에 대한 언급은 구약성경에서 찾아 보기 힘든 이례적인 예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경우란 이스라엘이 가나안인들과 평화롭게 살았던 초기 왕정시대, 곧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서만 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멜기체덱 이야기의 초점도 멜기체덱에 있지 않고 아브라함에게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대선조인 아브라함이 예루살렘의 왕과 사회적 권위로부터 축복을 받았다는 것과 그를 인정하고 십일조를 바쳤다는 내용, 그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받은 축복에 나타난 신의 이름이 이스라엘의 하느님과 같다는 사실 등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윗 왕조와 연결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오랫동안 이방인의 도시였던 예루살렘을 새로운 왕국의 정치와 종교의 중심으로 삼으려 한 다윗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자신의 왕조에 대한 정통성과 권위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위대한 조상 아브라함이 멜기체덱을 인정하였다는 사실은 예루살렘과 그 왕을 인정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이는 후대의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예루살렘의 왕에게 속해야 할 근거를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다시 말해서 이 이야기는 예루살렘 성전과 그 사제직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근거가 되였고, 더 나아가서는 예루살렘 성전과 그 사제직이 아론이나 레위 지파의 사제직보다 더 우월한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예루살렘의 축복과 그들에게 바치는 십일조의 기원을 설명함으로써 다윗 왕조와 십일조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있다.
(출처 ; 보시니 참 좋았다 – 성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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