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 동안을 두고 찾다 못하여 경찰서에 수색원을 제출한 사흘 되던 날 밤중에 연통 속으로 기어나온 것처럼 대가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탈을 하고 훌쩍 돌아와서 불문곡직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코를 골며 잤다. 이튿날 아침에는 조반을 걸신들린 사람처럼 그릇마다 핥듯이하여 다 먹고 삼촌이 건너오기 전에 또 뛰어나갔다.
삼사 시간 뒤에 쫓아간 그의 백부는 유정(柳町)유곽 산 뒤에서 조용히 그를 발견하였다.
그가 처음 감시의 비상선을 끊고 나올 때는 맑은 정신이 들어서 그리하였는지, 하여간 자기의 고향을 영원히 이별할 작정으로 나섰었다. 위선 시가를 떠나 촌리로 나와서 별장 이전의 상지(詳地)를 복(卜)하려고 이 산 저 산으로 헤매었다. 가가호호로 돌아다니며 연명을 하여가며 오륙일 만에 평양 부근까지 갔었다. 그러나 평양이 가까워 오는 데에 정신이 난 그는 무슨 생각이 났던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포로 향하였다. 그중에 다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지는 않았으나 무엇보다도 불만족한 것은 바다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자기 서재로 자기를 위하여 영원히 안도하라고 하느님이 택정하신 바 유정 뒷산 밑으로 기어든 것이었다.
인간에게 허락된 이외의 감각을 하나 더 가지고 인간의 침입을 허락치 않는 유수미려한 신비의 세계에 들어갈 초대장을 가진 하느님의 총아 김창억은, 침식 이외에는 인간계와 모든 연락을 끊고 매일 같은 꿈을 반복하며 대지 위에 자유롭게 드러누워서 무애무변(無涯無變)한 창공을 쳐다보며 대자연의 거룩함과 하느님의 은총 많음을 홀로 찬양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태가 달포나 되어 시월 하순이 가까워 초상(初霜)이 누른 풀잎 끝에 엷게 맺을 때가 되었다.
하루는 어두워서야 들어오리라고 생각한 그가 의외에 점심때도 채 아니되어서 꼭 닫은 중문을 소리없이 열고 자취를 감추며 들어와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서 일을 하고 있던 고모는 도둑이나 아닌가 하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고 문 틈으로 지키고 앉앗으려니까, 한식경이나 무엇인지 부스럭부스럭하더니 금침인 듯한 보따리를 들고 나온다. 가슴이 덜렁하던 고모는 문을 박차며 내다보고,
"그건 어디로 가져가니?"
소리를 버럭 질렀다. 도망꾼처럼 한숨에 뛰어나려던 그는 보따리를 진 채 어색한 듯이 히히히 웃으면서,
"새 집 들레…… 히히히, 영희 어머니를 데려오려고 저기 한 채 지었어……."
또 히히히 웃고 휙 돌아서 나갔다. 고모는 삼촌집에 곧 기별을 할래도 마침 아이가 없어서 걱정만 하고 앉았었다. 조금 있다가 또 발소리가 살금살금 난다. 이번에도 안방으로 향하여 어정어정 들어오더니 부엌간으로 들어가서 시렁 위에 얹어놓은 병풍을 끌어 내려다가 아랫방 앞에 놓고 퇴로 올라 서서,
"아지먼네, 그 농 좀 갖다놓게 좀 주시소고래."
하고 성큼 뛰어들어와서 윗칸에 놓았던 붉은 농짝을 번쩍 들고 나갔다. 다행히 영희의 계모가 갈 때에 그의 의복이며 빨래들을 모아서 농장 속에 넣어두었기 때문에 고모는 걱정을 하면서도 안심하였다. 낙지(落地) 이래로 이때껏 비 한 번 들어보지 못하던 그가 그 무거운 농짝에다가 병풍을 껴서 새끼로 비끄러매어 가지고 나가는 것을 방문에 기대어 보고 섰던 고모는 입을 딱 벌리고 놀랐다.
기지이전(基地移轉)에 실패한 그는 유정에 돌아와서 일이 주간 이나 언덕에 드러누워 여러 가지로 생각하였다. 답답한 방을 면하려면 위선 여기다가 집을 한 채 지어야 하는데 단층으로는 좁기도 하거니와 제일 바다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층? 삼층? 삼층만하면 예서도 보이겠지!"
하고 일어나서 발돋움을 하고 남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인가에 가리워서 사오정이나 상거가 있는 해면이 보일 까닭이 없다.
"삼층이면 그래도 내 키의 삼사 배나 될 터이니까…… 되겠지."
하며 곁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들고 차차 햇발이 멀어가는 산비탈에 앉아서 건축의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누렇게 된 잔디 위에 정처없이 이리저리 줄을 쓱쓱 그면서 가다가다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해가 저물어가는 것도 모르고 앉았었다.
그날 밤에 돌아와서는 책 궤 속에서 학생시대에 쓰던 때묻은 양척(洋尺)과 사기(四機)가 물러난 삼각정규를 꺼내가지고 동이 트도록 책상머리에 앉았었다.
도안을 얻은 그는 동이 트기도 전에 산으로 달아났다. 위선 기지(基地)의 검분을 마친 후 그는 그길로 돌을 주워들이기 시작하였다. 반나절쯤 걸리어서 두세 삼태기나 모아놓은 후, 허기진 줄도 모르고 제일 가까운 유곽 속으로 헤매이며 새끼오라기, 멍석조각이며 장작개비, 비루궤짝, 깨진 사기 그릇 나부랑이를…… 손에 걸리는 대로 모아들이기 시작하였다. 돌아 다니는 동안에 유곽 속에서 먹다 남은 청요리 부스러기를 좀 얻어먹었으나 해질 무렵쯤 되어서는 맥이 풀려서 하는 수 없이 엉기어 들어와 저녁을 먹고 곧 자빠졌다.
그 이튿날은 건축장에 나가는 길에 헛간에 들어가서 괭이를 몰래 집어 숨겨가지고 도망하여 나왔다. 오전에 위선 한칸통쯤 터를 닦아서 다져놓고 산을 내려와 물을 얻어다가 흙을 이겨놓고 오후부터는 담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 모퉁이에서부터 쌓아나와 기역자로 곱뜨릴 때에 비로소 기둥이 없는 데에 생각이 나서 일을 중지하고 산 등에 올라 앉아서 이 궁리 저 궁리 하여보았다…… 자기 집에는 물론 없지마는 삼촌집에 가면 서까래 같은 것이라도 서너 개 있을 터이나 꺼낼 계책이 없었다. 지금의 그로서 무엇보다도 제일 기외(忌畏)하는 것은 자기의 계획이 완성되기 전에 가족의 눈에 띄거나 탄로되는 것인 동시에 이것을 계획하는 것, 더욱이 이 계획을 절대 비밀리에 완성하는 것이 유일의 재미요, 자랑거리이며 또한 생명이었다. 만일 이때에 누가 와서 '너의 계획은 이러저러하고 너의 포부는 약차약차히 고대(高大)하나 가엾은 일이지만 그것은 한 꿈에 불과하다'고 설파하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는 경악 실망한 나머지 자살을 하거나 살인을 하였을지도 모를 것이다. '……어떻게 하였으면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는 동안에 하루바삐 이 신식 삼층 양옥을 지어서 세상 사람들을 놀래 보일까!' 침식을 잊고 주소(晝宵)로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것이 오직 이것이었다. 그는 삼촌집의 재목을 가져올 궁리를 하였다. '밤에나 새벽에 가서 집어와?…… 그것도 아닐될 것이다. ……그러면 어느 재목상에나 가서?…… 응응 옳지옳지!'하며 그는 흙 묻은 손을 비벼털며 뛰어내려와서 정거장으로 향하여 달아나왔다. 그는 '재목상에나!'라는 생각이 날 제 십여 년 전에 자기가 가르치던 A라는 청년이 재목상을 경영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뛰어나온 것이었다. 삼거리로 갈리는 데 와서 잠깐 멈칫하다가 서로 곱뜨려서 또다시 뛰었다. K재목상회라는 기단 간판이 달린 목책(木柵)으로 돌라막은 문전에 다다라 우뚝 서며 안을 들여다보고 멈칫거리다가 문 안으로 썩 들어섰다. 그는 무엇이나 도둑질하러 온 사람처럼 황황히 사방을 돌아보다가 사무실에서 누가 내다보는 것을 눈치채고 곧 그리로 향하였다.
"재목 있소?"
발을 들여놓으며 한 마디 부르짖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오?……재목이야 있지요. 하하하……."
테이블 앞에 앉아서 사무원들과 잡담을 하고 있던 주인은 바로 앉아서 그를 마주 쳐다보며 웃었다.
그는 얼이 빠진 사람처럼 이 사람 저 사람 사무원들을 차례차례로 쳐다보다가 마치 취한이나 광인이 스스러운 사람과 대할 때에 특별한 주의와 긴장을 가지는 거와 같이 뿌연 눈을 똑바로 뜨고 서서 한 마디 한 마디씩 애를 써 분명한 어조로,
"아니 좀 자질구레한 기둥 있거든 몇 개 주시소고래, 지금 집을 짓다가……."
"그것 해 무엇 하시랴오? 그러나 돈을 가져오셔야지요?…… 하하하."
사소한 대금을 관계하는 것은 아니나 그가 광증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주인은 그대로 내주는 것이 어떨까하여 물어보았다.
"응응! 옳지! 돈이 있어야지. 응응! 돈이 있어야지……."
돈이란 말에 비로소 깨달은 듯이 연해 고개를 끄덕거리며 멀거니 섰다가 아무 말도 없이 도로 뛰어나갔다. 처음부터 서로 눈짓을 하며 빙긋빙긋 웃고 앉았던 사무원들은 참았던 웃음을 왓하하하 하며 웃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유리창을 흘겨다보며 급히 달아 나왔다.
그길로 자기 집으로 뛰어갔다. 방에 쑥 들어서면서 흙이 말라서 뒤발을 한 손으로 책상 위에 놓인 물건을 뒤적거리며 한참 찾더니 돈지갑을 들고서 선 채 열어보았다. 속에는 일원짜리 지폐가 석 장하고 은전 백동전 합하여 구십여 전쯤 들어있었다. ……옥중에서 차입하여 쓰고 남은 것이었다. 그는 혼자 히이 웃으며 지갑을 단단히 닫아서 바지춤에다 넣고 다시 뜰로 내려섰다. 대문을 막 나서렬 때 삼촌과 마주쳤다. 그는 마치 못된 장난을 하다가 어른에게 들킨 어린아이처럼 깜짝 놀라며 꽁무니를 슬슬 빼며 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자는 체하고 드러누워 버렸다. …… 그날 밤에는 종내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에는 위선 재목상을 찾아갔다.
마침 나와앉았던 주인은 아무 말 없이 들어와서 훔척훔척하다가 삼 원 오십 전을 꺼내놓고 '얼마든지 좀 주시고래'하고 벙벙히 섰는 그의 태도를 한참 쳐다보다가,
"얼마나 드리리까?"
하며 웃었다.
"기둥 여섯하고……."
"기둥 여섯만 하여도 본전도 안됩니다."
주인은 하하 웃으며 그의 말을 자르고 사무원을 돌아다보고 무엇이라고 하였다. 그는 사무원을 따라나가서 서까래만한 기둥 여섯 개와 널빤지 두 개를 얻어서 짊어지고 나섰다. 재목을 얻은 그는 생기가 더 나서 위선 네 귀에 기둥을 세우고 두 편만은 중간에다 마주 대하여 두 개를 세운 뒤에 삼등분하여 새끼로 두 층을 돌려 매어 놓고 담을 쌓기 시작하였다. 담 쌓기는 쉬우나 돌멩이 모아 들이기에 날짜가 많이 걸렸다. 약 삼 주간이나 되어 동편으로 드나들 구멍을 터놓고는 사방으로 삼사 척의 벽을 쌓았다. 위선 하층은 되었는고로 널빤지를 절반하여 한편에 기대어서 걸쳐놓고 나머지 길이를 이등분하여 어긋매어서 삼층을 꾸렸다. 그 다음에는 이층만 사면에 멍석조각을 둘러막고 삼층은 그대로 두었다. 이것도 물론 그의 설계에 한 조목 든 것이었다. 그의 이상으로 말하면 지붕까지라도 없어야 할 것이지만 우로(雨露)를 피하기 위하여 부득이 역시 멍석을 이어서 덮었다.
이같이 하여 이렁저렁 일 개월 이상이나 걸린 역사는 대강대강 끝이 나서 위선 손을 떼던 날 석양에 그는 삼층 위에 올라앉아서 저물어가는 산경치를 내다보고 혼자 기꺼움을 이기지 못하였다. 인생의 모든 행복이 일시에 모여든 것 같았다. 금시에라도 이사를 하려다가 집에 들어가면 또 잡히어서 나오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어둡기까지 그대로 드러누웠었다. 드러누워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다. 위선 세계평화 유지사업으로 회를 하나 조직하여야 할 터인데…….
"회명은 무어라고 할까? 국제연맹이란 것은 있으니까 국제평화회? 세계평화협회? 그것도 아니되었어, 동서양이 제일에 친목하여야 할 것인즉 '동서친목회'라 하지! 옳지! 동서친목회……되었어."
그 다음에 그는 삼층 양옥을 어떻게 하면 거처에 편리하게 방세(房勢)를 정할까 생각하였다. 위선 급한 것은 응접실이다. 그 다음에는 사무실, 침실, 식당, 서재……차례차례로 서양사람 집 본세를 생각하여가며 속으로 정하여 놓고 어슬어슬한 때에 뛰어내려왔다. 일단 집으로 향하였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다시 돌쳐서서 유곽으로 들어갔다. 헌등(軒燈) 아래로 슬금슬금 기어가듯하며 이집저집 기웃기웃하다가 어떤 상점 앞에 와서 서더니 저고리 고름 끝에 매인 매듭을 힘을 들여서 풀고 섰다.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드는 것도 모르는 것같이 시치미를 떼고 풀더니 은전 네 닢을 꺼내서 던지고 일본주 이 홉병을 받았다. ……낙성연을 베풀려는 작정이었다.
공복에 들어간 두 홉 술의 힘은 강렬하였다. 유정의 사람자취가 그칠 때까지 이집저집 돌아다니며 동서회 친목 회장이 너희들을 감독하려고 내일이면 또 나오신다고 도지개를 틀며 앉았는 여희원 들을 웃기며 비틀거리고 돌아다닌 것도 그날 밤이었다.
8
세간을 나르느라고 중문 대문을 훨씬 열어젖혀 놓은 것을 지치려고 뒤를 쫒아나간 고모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그의 가는 방향을 한참 건너다보다가 긴 한숨을 쉬고 들어와서 큰집에 갈 영희만 기다리고 앉았으려니까 십오 분쯤 되어 삐이꺽 하는 소리가 나더니 또 들어와서 이번에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한참동안 훔척훔척 하다가 석유통으로 만든 화덕 위의 냄비를 들고 나왔다. 그 속에는 사기그릇이며 수저 나부랑이를 손에 잡히는 대로 듬뿍 넣었다. 그는 안에서 무엇이라고 소리나 칠까 보아서 연상 힐끗힐끗 돌아다보며 뺑소리를 쳐서 나왔다. ……십수 년 동안 기거하던 자기 집을 영원히 이별하였다.
그날 석양에 고모는 영희를 데리고 동리 사람이 가르쳐주는 대로 그의 대로 그의 신가정을 찾아갔다. 고모에게 대하여는 가장 불행하고 비통한 집알이였다. 엿과 성냥 대신에 저녁밥을 싸가지고 갔었다. 물론 가자고 하여야 그는 무슨 정신이 났던지 측은하여하는 듯한 슬픈 안색으로 목소리를 떨며,
"어서 가거라. 어서 가거라……아아 춥겠다. 눈이 저렇게 왔는데 어서 가거라."
혼잣말처럼 꼭 한 마디 하고 아랫간에 늘어놓은 부엌 세간을 정돈하며 있었다.
고모는 하는 수 없이 돌아와서 남았던 시량(柴糧)과 찬을 그에게로 보내주고 나서 어둑어둑할 때 문을 잠그고 영희와 같이 큰집으로 건너갔다. 근 보름이나 앓아 누운 그의 백부는 눈물을 흘리며 깊은 한숨만 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소년과부로 오십이 넘은 그의 고모는 건넌방에 영희를 끼고 누워서 밤이 이슥하도록 훌쩍거렸다. 영희의 흘흘 느끼는 소리도 간간이 안방에까지 들렸다.
아랫목에 누웠던 영감이,
"여보 마누라, 좀 가보시구려."
하는 소리에 잠이 들려던 노마님이 건너갔다. 조금 있다가 이 마누라까지 훌쩍훌쩍 하며 안방으로 건너왔다. 미선을 가슴에 대고 반듯이 드러누운 노인의 눈에도 눈물이 글성글썽하였다.
십칠야의 교교한 가을 달빛은 앞창 유리구멍으로 소리없이 고요히 흘러들어와서 할머니의 가슴에 안기어 누운 영희의 젖은 베게 밑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9
평양으로 나온 우리 일행은 그 이튿날 아침에 남북으로 뿔뿔이 헤어졌다. 그 후 이개월쯤 되어 나는 백설이 애애(崖崖)한 부국 어떠한 한 촌 진흙방 속에서 이러한 Y의 편지를 받았다.
형식에 빠진 모든 것은 우리에게 있어 벌써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아니오? 어느 때든지 자기의 생활에 새로운 그림자(그것은 보다 더 선한 것이거나 혹은 보다 더 악한 것이거나 하여간)가 비쳐올 때나 혹은 잠든 나의 영(靈)이 뛰놀 만한 무슨 위대한 힘이 강렬히 자극하여 있기 전에는 같은 공기 속에서 같은 타임 속에서 동면상태로 겨우 서식하는 지금의 나로는 절(絶)하고 대적(對的)으로 누구에게든지 또는 무엇에든지 붓을 들지 않으려고 결심하였소. 자기의 침체한 처분, 꿈꾸는 감정을 아무리 과장한들 그것이 결국 무엇이오…….
그러나 지금 펜을 들어 이 페이퍼를 더럽히는 것이 현재의 내가 무슨 새로운 의의를 발견하고 혹은 새로운 공기를 호흡하게 된 까닭은 아니오. 다만 내가 오래간만에 집을 방문하였다는 것과 그외에 군이 어떠한 호기심을 가지고 심방하였던 삼 원 오십 전에 삼층 양옥을 건축할 철인의 철저한 예술적 또한 신비적 최후를 군에게 알리려는 까닭이오.
여기까지 읽은 나는 깜짝 놀랐다. 손에 들었던 편지를 책상 위에 놓고 바로 앉아서 한 자 한 자 세듯이 하여가며 계속하여 보았다.
……사실은 지극히 간단하나, 이 소식은 군에게 비상한 만족을 줄 줄로 믿소. 하느님이 천사를 보내시어 꾸며 놓으신 옥좌에 올라 앉아서 자기의 이상을 실현치 않으면 아니될 시기라고 생각한 그는 신의(神意)로써 만든 삼 원 오십 전짜리 궁전을 이 오탁(五濁)에 싸인 속계에 두고 가기 어려웠을 것이오. 신의 물(物)은 신에게 돌리리라. 처치하기 어려운 삼층집을 맡길 곳이 신 이외에 없었을 것도 괴이치 않은 것이겠소. 유곽 뒤에 지어놓았던 원두막 한 채가 간밤 바람에 실화하여 먼지가 되어 날아간 뒤에 집주인은 종적을 감추었다……라고 하면 사실은 지극히 간단할 것이요. 그러나 불은 왜 놓았나?
나는 이하를 더 읽을 기운이 없다는 것같이 가만히 지면을 내려다보고 앉았었다. 이외의 사실에 대한 큰 경이도 아니려니와 예측한 사실이 실현됨에 대한 만족의 정도 아닌 일종의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다대한 호기심과 기대에 긴장하였던 마음을 일시에 느즈러지게 한 상태였다. ……나는 또다시 읽기 시작하였다.
'추위에 못 견디어서……라고 세상 사람들은 웃고 말 것이오. 그리고 군더러 말하라면 예의 현실 폭로라는 넉 자로 설명할 것이오. 그러나 그가 삼층집에서 내려와 자기 집 서재로 들어가기 전에는 불을 놓았다고도 못할 것이오. 또 현실 폭로의 비애를 감하여 그리하였다 하면 방화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오. 신의에 따라서만 살 수 있다는 신념을 확집(確執)한 그는 인제는 금강산으로 들어갈 때가 되었다고 삼층 위에서 뛰어 내려온 것이오. 그리고 그 건 축물은 신에게 돌린 것이오…….
아아 그 위대한 건물이 홍염의 광란 속에서 구름탄 선인같이 찬란히 떠오를 제 그의 환희는 어떠하였을까. 그의 입에서는 반드시 할렐루야가 연발되었을 것이오. 그리고 일편의 시가 흘러나왔을 것이오. ―마치 네로가 흥염 가운데의 로마 대도를 바라보며 하프에 맞춰서 시를 읊듯이. 아아, 그는 얼마나 위대한 철인이며 얼마나 행복스러운가……반열 반온의 자기를 돌아볼 제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매도(罵倒)치 않을 수 없소…….
10
기뻐하리라고 한 Y의 편지는 오직 잿빛의 납덩어리를 내 가슴에 던져 주었을 따름이었다. 나는 여기저기 골라가며 또 한 번 읽은 뒤에 편지장을 책상 위에 펼쳐 놓은 채 드러누웠었다. 음산한 방 속은 무겁고 울적한 나의 가슴을 더욱더욱 질식케 하는 것 같았다.
까닭없이 울고 싶은 증이 나서 가만히 누웠을 수가 없었다. ……나는 뛰어 일어나서 방밖으로 나섰다.
아침부터 햇발을 조금도 보이지 않던 하늘에는 뽀얀 구름이 건너다 보이는 앞산 위까지 쳐져서 방금 눈이 퍼불 것 같았다. 나는 얼어붙은 눈 위를 짚신발로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R동 고개로 나서서 항상 소요하던 절벽 위로 향하였다.
사람 하나나 간신히 통행할 만한 길 오른편 언덕에 거무스름하게 썩어서 문정문정하는 짚으로 에워 쌓은 한 칸 집이 있고, 그 아래에는 비스듬하게 짓다가 둔 헛간 같은 것이 있다. 나는 늘 보았건만 그것의 본체가 무엇인지 아직껏 물어도 보지 않았다. 그러나 삼층 양옥의 실화사건의 통지를 받고는 새삼스럽게 눈여겨보았다. 나는 두세 걸음 지나가다가 다시 돌쳐서서 언덕으로 내려와서 사면팔방을 멍석으로 꼭 틀어막은 괴물 앞에 섰다.
나는 무슨 무서운 물건이나 만지듯이 입구에 드리운 멍석조각을 가만히 쳐들고 컴컴한 속을 들여다보았다. 광선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속에서는 쌀쌀한 바람이 휙 끼칠 뿐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속에서는 쌀쌀한 바람이 휙 끼칠 뿐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공연히 마음이 선뜻하여 손에 쥐었던 거적문을 놓으려다가 다시 자세히 검사를 하여 보았다. 그러나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기둥 두 개를 나란히 늘어놓은 위에 나무 관 같은 것을 놓고 그 위에는 언젠지 대동강변에서 본 봉황선 대가리 같은 단청한 목판짝이 얹혀 있었다. 나는 보지 못할 것을 본 것같이 꺼림하여 마른침을 탁 뱉고 돌아서 동둑 위로 올라왔다. 나는 눈에 묻힌 절벽 위에 와서 고총(古塚)앞에 놓인 석대에 걸터앉으려다가 곁에 새로 붉은 흙을 수북이 모아 논 것을 보고 외면을 하며 일어나 왔다. 이것은 일전에 전골[寺洞]에선가 귀신이 씌어서 죽었다는, 무녀(巫女)가 온 식전 굿을 하던 떼도 안 입힌 새 무덤이다. ……저녁 밥상을 받고 앉아서 주인더러 등너머의 일간두옥(一間斗屋)은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그것이 이 촌에서 천당에 올라가는 정거장이라우."
하고 웃으며 동리에서 조직한 상계(喪契)의 소유라고 설명하였다. 이 촌에서 난 사람은 누구나 조만간 그곳을 거쳐야만 한다는 묵계(默契)가 있다는 그의 말에는 무슨 엄숙한 의미가 있는 것같이 들리었다. 나는 밥을 씹으며 저를 손에 든 채로 그 내력을 설명하는 젊은 주인의 생기 있는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앉았었다. 그 순간에 나는 인생의 전 국면을 평면적으로 부감한 것 같은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는 동시에 무거운 공포가 머리를 누르는 것 같았다.
그날 밤에 나는 아무것도 할 용기가 없어서 몇몇 청년이 몰려와서 떠드는 속에 가만히 드러누웠었다. 어쩐지 공연히 울고 싶었다. 별로 김창억을 측은히 생각하여 그의 운명을 추측하여 보거나 삼층집 소화(燒火)한 후의 행동을 알려는 호기심은 없었으나 지금쯤은 어디로 돌아다니나 하는 생각이 나는 동시에 작년 가을에 대동강가에서 본 장발객의 하얀 신경질적 얼굴이 머리에 떠올랐다.
과연 그가 그 후에 어디로 간 것은 아무도 몰랐다. 더구나 뱀보다도 더 두려워하고 꺼리는 평양에 나와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몽상 외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평양에 왔다. ……평양은 그의 후취의 본가가 있는 곳이다.
……일 년 열두 달 열어 보는 일이 없이 꼭 닫은 보통문 밖의 보금자리 같은 짚더미 속에서 우물우물하기도 하고 혹은 그 앞 보통 강가로 돌아다니는 걸인은 오직 대동강가의 장발객과 형제거나 다만 걸인으로 알 뿐이요, 동리에서도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